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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인 이어폰 줄 :: 2017/05/08 00:08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이어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그렇게 이어폰이 주머니 안에 자리를 잡게 되면
주머니 안에서 이어폰 줄은 나름의 운동을 하게 된다.
줄이 길어서 결국 줄은 어떤 형태로든 서로 꼬이게 된다.
꼬인 매듭이 늘어나고 또 꼬이고 매듭이 늘어나고
그렇게 꼬인 이어폰을 꺼내 보면 가관이다.

바로 음악을 듣고 싶은데
일단 꼬인 이어폰 줄을 풀어 헤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꼬여도 단단히 꼬여 있는 이어폰을 보면서
나의 생각 흐름도 형상화 해보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고 주머니 속에서 계속 꿈틀거리는 이어폰처럼
내 생각의 선들도 이렇게 서로 꼬이면서 형태를 만들어가지 않을까

생각의 선
그건 어디로든 움직여 나간다
가만 놔두어도 움직이고
의도를 가해도 움직인다
계속 움직인다
생각은
생각의 선은
그게 생각의
선의 법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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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타일 :: 2016/09/14 00:04

준비해 둔 가사 없이 즉흥적으로 랩을 하는 프리스타일.

내가 하는 블로깅도 그러한 듯 하다.

뭔가 준비해 둔 생각이나 맥락 없이
그냥 키워드 하나가 불현듯 떠오르면 그 키워드를 믿고 블로그 에디터창을 열고 무작정 글을 써내려가는 흐름.

그런 흐름을 타다 보면
글의 내용보다는 그런 흐름을 타고 있는 나 자신이 좋아진다.

그래서 프리스타일 블로깅을 즐겨 하게 되고
프리스타일 플로우 속에서 글의 내용보다는 랩의 플로우와 리듬감 자체에 의미를 두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거기에 음악까지 배경으로 곁들여지면 더할 나위가 없다,
깔려있는 음악은 내게 주어진 비트이고
난 주어진 비트에 우발적으로 떠오른 키워드를 주제 삼아 래핑을 한다.
블로깅할 때 들었던 음악까지 함께 포스팅될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예전에 썼던 블로그 가사를 비트와 함께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나는 힙합을 하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재밍?  ㅋㅋㅋ



PS. 관련 태그
즉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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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D와 시간 :: 2015/09/18 00:08

VOD를 통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되니 참 편리하다.

본방을 꼭 사수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VOD로 원하는 시공간을 설정하는 건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VOD를 즐기면서
FOD를 연상하게 된다.

Time Flow On Demand

시계바늘의 흐름
상황의 흐름
의식의 흐름
시선의 흐름

VOD는
흐름을 편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기제인 듯 하다.

나는 VOD 메커니즘을 활용해서
방송,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VOD 메커니즘 속으로 틈입해서
시간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VOD로
내가 보는 건
방송,영화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일 듯 싶다.

문명의 이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문명의 이기로 퇴보된 상황 속에 놓이면서
프리퀄이란 기제로 들여다보는 오래된 미래(=과거)를 보는 것이고
오래된 미래와 대화하면서 그 과거가 실은 미래였음을 깨닫게 해주는 도구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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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현재형 질문 :: 2014/09/08 00:08

이 질문은 언제 물어봐도 따끈따끈한 답변을 도출할 수 있어서 참 좋다.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you've learnt about yourself in the last 30 days?

뭐든지 그걸 고정시켜 놓고 그것을 중심으로 세계를 작동시키는 놀이를 즐겨보면 좋을 듯 싶다. 하나를 고정시키고 다른 모든 것을 그 하나에 초점 맞추게 하는 순간, 매우 날카롭고 집요하게 세상을 보는 눈이 생겨난다. 강력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하나의 질문과 답변 주체에 따라 시간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춤을 추는 답변들을 나열하고 그것을 읽어 보는 것 만으로도 생각은 유연하게 흘러갈 수 있겠고 그런 흐름 속에서 질문과 답변 간의 설레는 긴장감은 지속되어 간다.

나는
마음 한 지점에 고정시켜놓을 수 있는 질문이 몇 개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간에 따라 달리 적을 수 있는가?

그렇게 생성된 답변들이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되는 나의 생각을 잘 대변하는가?

결국 나는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고 있음이 그 질문을 통해, 그 답변을 통해 확인되는가?

시간이 흐른 후, 질문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는가?

질문과 답변 사이의 거리는, 답변과 또 다른 답변 간의 관계는 어떤 양상을 띠게 되었는가?

질문을 고정시키면 '영원한 현재'를 지속적이고 강렬하게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다.


고정 질문 하나. 그거 하나만 가지고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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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서로를 증명하는 것 :: 2014/02/03 00:03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중혁 외 지음/문학동네

3년 전에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e북으로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 책엔 재미난 단편소설들이 여럿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드는 따뜻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은 이후로 부쩍 소설을 읽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요즘도 소설을 종종 읽는다. 이렇게 된 것은 '안녕, 인공존재!'를 읽고 받은 감흥이 매우 컸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문학과 사회 2013년 여름호에 수록된 권여선의 '봄밤'이란 단편소설을 읽었다.  '안녕, 인공존재!'가 갑자기 생각났다. 내게는 '봄밤'이 '안녕, 인공존재!'란 질문에 대한 대답이고, '안녕, 인공존재!'가 '봄밤'이란 인사에 대한 화답인 것 같다.  


특정 시공간에서의 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내가 사라졌을 때, 누군가가 자신의 삶에서 뭔가가 증발되었음을 느낄 때.
내가 머물다 사라진 자리에 구멍이 뻥하고 뚫렸음을 누군가가 알아차릴 때.

존재 A는 흘러간다. 존재 A는 흔적을 남긴다. 존재 자체는 '허'일 수 있어도 존재 A는 흐름 속에 자취를 남긴다. 그걸 존재 B가 느낄 때 A가 존재했음이 증명된다. B 또한 존재했음이 증명된다.

존재는 상대방을 증명하면서 자신을 증명한다. 존재는 증명의 주고 받음이다. 그것은 존재함으로 유지되고 부재함으로 완성된다. 존재는 그런 것이다.

'봄밤'을 읽고 나서 '안녕, 인공존재!'를 소환하게 되었고, '안녕, 인공존재!'를 소환하면서 봄밤을 망각하게 된다. 내 맘 속에서 두 소설은 소환과 망각을 반복하면서 상호 존재의 증명을 지속할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흔적

부활과 봄밤
존재 확인의 압박
존재와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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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 2013/08/0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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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아크몬드 | 2013/08/09 09:36 | PERMALINK | EDIT/DEL | REPLY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형태(RSS ...)로, 발행자에겐 자유로움을, 검색 엔진에는 단비와도 같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존재... 블로그입니다. ^^

  • wendy | 2013/08/12 11: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횡성수설을 통한 플로우감 충만한 모드로의 돌입이라.... 너무 굿뉴스인걸요! 횡설수설은 자신있거든요!! ^^ 통찰에 또 한 번 감동하고 갑니다.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한 상태에서의 횡설수설이 충만한 플로우감으로 흘러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길 기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횡설수설데이'로 살아보렵니다 후훗 ㅎㅎㅎ

    • BlogIcon buckshot | 2013/08/13 09:09 | PERMALINK | EDIT/DEL

      횡설수설, 침묵. 참 좋은 생각 수련의 도구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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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에 대한 태도 :: 2013/03/29 00:09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시간이 흘러가면 그 누구도 늙어가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런데 사람은 마치 자신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을 것처럼 사고/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젊어 보이기 위해, 젊어지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늙어 보이면 크게 손해 본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젊어 보이면 은근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결국 늙어간다. 어떻게든 늙어 보이지 않으려 애를 빠득빠득 쓰는 건, 자신이 늙어감을 부정적으로 여긴다는 것인데. 젊음에 대한 의식적/무의식적 긍정과 늙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굳어져 있다면 그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볼 필요가 있겠다. 

늙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자신의 생이 흘러가는 방향성에 대해 안티란 것이고 그런 안티 태도는 결코 자신에게 이로울 수가 없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든 막아보겠다고, 지연시키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은 좀 안쓰럽다.

피할 수 없는 것.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태도는 다분히 유연할 필요가 있다. 늙는 것이 순리이고 늙어가는 걸 피할 수 없다면 젊음과 늙음에 대한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빤히 늙어갈 것이 보이는데 젊어 보이려고 애를 쓰는 건 유아적 발상이고 일종의 떼쓰기이다. 젊음과 늙음을 차별하지 말고 젊음은 젊음대로, 늙음은 늙음 대로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노화는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생의 흐름 자체일 뿐이다.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보듯,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보듯. 편안하게 감상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젊음을 갈구하는 것은 stock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젊음과 늙음은 고정형이 아니라 유동형이다. flow에서 stock을 붙잡고 늘어지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끊임 없이 늙어가고 있다. 늙어가고 있는 것이 나라는 사실을 긍정하고 늙어가는 나를 즐거워하는 태도를 가져보자. 노화에 대한 태도는 삶에 대한 태도이다. 노화를 피하고 싶어하는 건 삶을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노화는 삶이다. 삶은 노화이다.
난 노화(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



PS. 관련 포스트
운빨과 수용
우리는 모두 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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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 2012/07/18 00:08

경계의 사전적 정의는 아래와 같다.
1.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
2. 지역이 구분되는 한계.

경계의 사전적 정의는 극복되어야 한다.

경계는 편의상 만들어진 가상의 설정이다.
경계를 구분의 용도로만 사용하면 경계의 반만 사용하는 것이다.
경계는 구분으로 시작되고 투과로 마무리된다.

Stock의 세상에선 구분이 유력한 수단이고
Flow의 세상에선 투과가 유력한 수단이다.

세상은 Stock과 Flow로 구성되어 있다.

Stock을 북마크하고 Flow를 팔로우한다.
북마크는 저장이 아니다. 한 순간을 포착해서 그것으로 전체 흐름을 암시하는 것이다.
팔로우는 구독이 아니다. 전체 흐름에 연결되어 그를 통해 한 순간을 암시하는 것이다.

경계를 만들고 경계를 투과하고 경계를 해체하고 또 다른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를 투과하고 그것을 해체하고.. 생성,투과,해체,생성,투과,해체.. 끝없는 순환고리 상의 쳇바퀴 돌기. 이는 시지프스 신화에 나오는 형벌을 연상케 한다. 산 위로 바위를 굴려서 올리면 바위는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다시 산 위로 그것을 끌어 올리면 또 다시 떨어지고 무한반복되는 행위. 어찌 보면 덧없는 행위의 연속이지만 사실 그 속에 만물 운용의 진리가 숨어 있다. 만물은 모두 시지프스의 행위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경계에 대한 벅샷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1. 사물이 진동하는 단위
2. 끊임없이 생성되고 투과되고 해체되어야 하는 영원의 과업이 행해지는 막

하루를 시작하는 질문, 나는 오늘 어떤 경계를 생성,투과,해체할 것인가?
하루를 마감하는 질문, 나는 오늘 어떤 경계를 생성,투과,해체했는가?

만물은 시지프스다.  광물도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모두 다. ^^







PS. 관련 포스트
시지프스의 링 - 영속발전의 플랫폼 (發展 & 發電)
분류, 막..
세포와 세포 사이
막, 도구, 의도, 양자
태그,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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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만화다. :: 2012/06/18 00:08

신의탑을 읽다가 느낀 점.

만화는 '칸'과 '사이'로 이뤄진다.

만화를 읽는 독자는 만화를 구성하는 수많은 '칸'들을 본다. 칸은 정지된 '상'이다. 정지된 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면서 flow를 표출하게 된다. 독자는 칸과 칸으로 이어지는 토막그림들을 보면서 칸과 칸 사이의 빈 공간을 스스로 메우면서 만화를 소비한다. 정지된 그림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상그림을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창출하면서 연속된 영상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나름 심대하다. 어디 만화만 그럴까.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만화의 '칸'과 '사이'처럼 작동한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텍스트도 만화와 같다. 독자는 글자와 글자로 이어지는 토막 텍스트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가상의 텍스트를 생성한다. 저자의 토막 글들과 독자가 생성하는 가상의 토막 글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연속된 스트림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독서다.

세상은 텍스트다. 세상을 구성하는 만물은 모두 텍스트이다. 사람은 칸과 칸 사이를 호흡하고 칸과 칸 사이를 걸어가면서 칸과 칸 사이에 숨겨진 코드들을 의식/무의식적으로 해석하고 반응한다. 사이는 일종의 진공이다. 진공은 텅 빈 공간으로 일축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진공은 우리 인지체계로 파악이 되지 않을 뿐 분명 뭔가를 함유하고 있고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다. 만물의 기본은 원자도 아니고 소립자도 아니다. 만물의 기본은 진공이다. 거대한 진공 속을 유동하는 칸들. 칸과 칸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진공은 만화 속에도, 텍스트 속에도 세상 속에도 존재한다. 진공의 색깔, 진공의 냄새, 진공의 소리를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은 끊임없이 진공과 대화하고 교감할 수 밖에 없다.

만화를 읽으면서 '사이'에 집중하는 경험. 사이를 보면서 칸을 지워나가는 경험. 사이를 들으면서 칸에 둔감해지는 경험. 사이를 관찰하면서 사이의 존재감을 느낄 때 칸은 파동이 되고 사이는 입자가 된다. 입자를 파동으로 보고 파동을 입자로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만화는 칸의 구성체가 아니라 칸,사이가 모두 가시화된 구성체가 되고 칸,사이가 모두 흐릿한 구성체가 된다.

만화를 보다가 별 생각을 다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만화는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매체임이 분명하다. 제약은 한계를 낳고 한계는 내공을 낳고 내공은 세계관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나 보다. 만화에 내재한 한계가 만화에 본질이 착상되는 것을 용이하게 했을 것이다. '사이'를 인지하게 해준 만화에게 감사를 느낀다. ^^




PS. 관련 포스트
신의 탑을 정주행하다
공간 지각력 = 공간 창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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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tore

    Tracked from toms store | 2013/06/13 10:56 | DEL

    Remarkable! Its really remarkable Read & Lead - 세상은 만화다., I have got much clear idea concerning from this article.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0:56 | DEL

    Hi there I am from Australia, this time I am watching this cooking related video at this %title%, I am in fact delighted and learning more from it. Thanks for 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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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기 vs. 재즈뮤지션 :: 2011/12/21 00:01

예전엔 뛰어난 암기력은 곧 명석한 두뇌를 의미했다. 많은 양의 복잡한 정보를 통째로 암기하고 출력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대단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컴퓨터가 점점 인간의 생활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고, 인터넷이 인간의 일상이 되어가고, 스마트 디바이스가 인간의 삶을 리드하고 있는 상황이 되자 암기력은 그 의미와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기계가 인간의 영역 속으로 침투하면 할수록 기계는 인간의 암기 능력을 무용화(?)시켜 나간다. 이제는 전화번호를 예전처럼 달달 외우지 않아도 되고 정보를 시시콜콜 외우고 있지 않아도 검색만 하면 필요한 정보가 체계적으로 쏟아져 나온다. '암기력'이란 단어는 점점 구시대적인 느낌을 주는 고색창연함을 띠어가고 있다.  

이제는 암기능력보다는 즉흥변주 능력의 가치가 훨씬 더 돋보인다. 암기한 내용을 출력하는 것보단 다양한 정보를 엮어 즉흥변주 형태로 출력하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이제 인간의 지적 능력의 지향점은 복사기(암기능력)에서 재즈뮤지션(즉흥변주능력)으로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복사기의 가치는 여전하다. 즉흥변주의 능력이 복사능력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해도 모든 즉흥변주는 복사를 전제로 하기 마련이다. 즉흥변주 출력이 모사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한, 복사 능력은 즉흥변주가의 기본 소양일 수 밖에 없다. 단, 순발력 측면에선 예전 복사기와 최신 복사기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고 봐야 한다. 복사를 위한 복사가 아니라 즉흥변주를 위한 복사이니까. 새로운 창조를 위한 복사는 기존의 복사와는 다른 태도를 지닌다. 저장형 복사에서 접속형 복사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지점에서 즉흥변주는 시작된다.

오늘 포스트는 아래 TED 강연을 보고 느낀 소감을 적은 것이.  나중에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다시 보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것만 같아서 나중에 다시 함 꺼내서 볼 생각이다. ^^




PS. 관련 포스트
Jam Reading
튓잼, 알고리즘
재밍, 알고리즘
생성, 알고리즘
Charles Limb: Your brain on impr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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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토댁 | 2011/12/22 23: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와우~~~^^
    먼저 본문은 댓글 달고 읽겠삼!~~~^^

    inuit님게서 2012년 지향에 대한 릴레이 바통을 덥석
    토댁에게 넘겨주신바
    토댁은 낼름 바통 받아
    다시 우리 buckshot님께로 쓩~~~(초금은 조심스럽게)
    보냅니다.!!^^

    2012년 우리 buckshot님의 지향은 뭘까요?^^
    헤헤

    • BlogIcon buckshot | 2011/12/23 20:29 | PERMALINK | EDIT/DEL

      아, 그렇지 않아도 담주 월요일 예약 포스트가 바로 2012년의 지향입니다. 저는 2009년도 2010년도 2011년도 2012년도 기정을 지향할 계획입니다. ^^

    • BlogIcon 토댁 | 2011/12/25 14:09 | PERMALINK | EDIT/DEL

      호호호!!
      빨리 월욜이 왓으면 좋겠어요^^

      건강조심하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1/12/25 16:01 | PERMALINK | EDIT/DEL

      4년 연속으로 동일한 문구를 지향점으로 삼다 보니 보시기엔 많이 지겨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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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 Economy가 도래하다. :: 2011/07/18 00:08

파편화된 토막 토크의 범람. 끝나지 않는 이야기.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 플랫폼이다. 시작과 끝이 없다는 것. Never beginning 이어서 Never ending인 Story. 앨범 단위가 아닌 파편화된 싱글 단위로 음악을 소화하기. 파편화된 정보들의 스트리밍 기반 소비. 페북/트위터는 일종의 정보 스트리밍 서비스이다. 트위터/페북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stream 기반의 소비 시대를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정보가 streaming된다는 것은, 뮤직 앨범과 같이 완성된 스토리가 시작과 끝, 스토리라인이 거세된 체 파편화된 정보들로 해체되어 속절없이 스트리밍 미디어 상을 흘러감을 의미한다. 시작과 끝이 제거되고 스토리라인이 해체된다는 것은 저자의 자존심이 분해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저자의 context가 해체된 파편화된 정보들이 스트리밍 미디어 속에 편입되는 것. 스트리밍 기반의 음악 소비는 스트리밍 기반의 정보 소비의 예고편이었다. 이제 저자의 스토리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투입할 수 있는 소비자의 pool은 점점 엷어져 가고 있다. 저자의 스토리 전체는 소비자에게 중요하지 않다. 소비자는 자신의 관심에 부합하는 파편화된 정보들에 주목할 뿐이다.

Stream Economy가 도래했다. 시작과 끝이 없이 어디론가 속절없이 정보는 흘러만 간다. Streaming Media에 편입하기 위해선 저자는 자신의 스토리라인을 해체해야 한다. 스트리밍 뮤직 서비스에 앨범을 온전히 탑재하기 어려운 것처럼.

음악에 이어 정보도 소비자와 컨텐츠 간의 관계 양식이 소유에서 접속으로 바뀌고 있는 모습이다. 소유에서 접속으로의 관계 양식 변화와 '접속-friendly' 관점의 저자 컨텍스트 해체 현상은 매우 큰 변화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변화는 음반과 책을 수없이 사 모으던 사람들에겐 꽤 서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LP/CD로 음악을 소비하던 시절엔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 모으며 음반을 사재기 했었다. 그게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고 생각했었다. MP3가 뜨자, 음악에 대한 열정이 급속도로 식었다. 결국 난 음악 보단 음악 컨테이너에 열광했던 것이다. LP/CD는 완성된 스토리를 담는 스토리 컨테이너였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지금도 앨범 단위로 음악을 소비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파편화된 싱글 단위로 음악을 소비하고 있다. 스토리 보단 컨테이너에 더 집착했던 나였다. '컨텐츠'란 본질 보단 '컨테이너'란 표피에 집착을 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어찌 보면 컨텐츠보다 컨테이너가 더 본질적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해보게 된다. 만물은 정보다. 결국 세상 어디서나 정보는 흐른다. 그걸 어디에 담을 것인가가 관건인 것이다. MP3가 'LP/CD' 컨테이너를 무력화시켰듯이 e북도 '종이책'이란 컨테이너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무력화시킬 것이다. 나 개인적으론 예스24가 아이패드 전용 앱을 내놓고 예스24에 충분한 규모의 e북이 올라온다면 난 종이책을 LP/CD처럼 대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컨테이너는 이렇게 진화되어 가는 것인가? ^^

결국, 저자의 컨텍스트를 극대화시킨 LP/CD 컨테이너를 통해 뮤직 사업자들은 장사를 해왔던 것이고, 저자 컨텍스트가 해체되고 독자 컨텍스트의 주도성이 커지는 요즘엔 신 흐름에 부합하는 스마트폰/스마트패드와 같은 신 컨테이너가 득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 페이스북/트위터도 streamed content를 효과적으로 담는 신 컨테이너로 볼 수 있겠다. 주체적 정보 소비 시대는 모두를 '독저자(독자이면서 저자인 자)'로 만들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Everything Flows.라고 말했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 만물은 정보임이 분명해졌고
정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과 같이 행동하고 있다. Everything Streams. ^^




PS. 관련 포스트
페이스북 LIKE, 트위터 RT
Facebook, Storyvertizing Platform
페이스북, 지불 플랫폼
페이스북, 감염 플랫폼
페이스북의 광고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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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Like(좋아요)는 통화이다.
프로슈밍 플랫폼 = 트위터/페이스북
피드 플랫폼 (트위터/페이스북, 인간)
경험 속에 녹아 들어간 용어
페이스북이란 이름의 블랙박스
사이, 알고리즘
페플, 알고리즘
네트,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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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Playing | 2011/08/21 16:1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욤!
    조금 늦었나요? 하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이전 글들도 너무 잘 보고 있었는데... 과연! 이 글로 이전 글들이 어느정도 분류되어지는 거 같아요

    세상의 모든 것을 정보와 한 권의 책으로 보는 것도 그렇고,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본래 의도와 그것을 담는 물질(형식)으로 보는 것도 그렇구요~!

    P.S 하늘이 노하신 듯한 여름이 지나고 있는데 가을맞이 잘 준비하세욤!

    • BlogIcon buckshot | 2011/08/21 21:05 | PERMALINK | EDIT/DEL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시죠? ^^

      아,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 듭니다.
      역시 의미를 부여해 주시니 의미가 살아나네요. ^^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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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 정보의 동적평형 :: 2011/06/10 00:00

경계는 생성되고 허물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경계를 만들기만 하고 허물지 않으면 경계는 썩어간다. 끊임없는 동적평형의 중심에 경계는 위치해야만 한다.

Bookmark는 덧없는 저장이다. 매번 "다음에 봐야지"하면서 북막해 두지만 나중에 그걸 다시 꺼내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북막의 진정한 의미는 "저장해서 나중에 보기"가 아니라 "접속한 정보의 인덱싱" 정도인 것 같다.
Bookmark는 stock과 flow 간 절묘한 중간 지점에 포지셔닝하고 있다. 부질 없는 저장에 대한 욕망과 다이내믹한 접속에 대한 욕망의 중간 지점에 북막은 위치한다.

Bookmark 기능을 흐르는(flow) 정보를 저장(stock)하는데 사용할 것인가? 저장(stock)된 정보를 흐르게(flow) 하는데 사용할 것인가? 흐르는 정보를 저장하는 행위보다, 저장된 정보를 흐르게 하는 행위가 훨씬 순리적이다. 정보의 속성은 'stock'보단 'flow'에 훨씬 더 가깝다.

경쟁적 성격의 재화는 '저장'의 의미가 분명 있다. 하지만 정보는 태생이 비경쟁적이다. '저장'한다는 개념 자체가 정보의 속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정보는 flow의 속성을 갖고 있다. 정보를 억지로 저장(stock)하려고 하면 정보는 가치를 잃어간다. 가만히 있느니 차라리 단순 복제라도 하는 게 훨씬 낫다. 정보는 흐른다. 사람도 일종의 정보다. 사람이란 이름의 정보는 끊임없이 시공간 좌표 상을 흘러간다. 정보도 흐르고 사람도 흐른다. 모든 시공간은 맥락을 갖고 있다. 정보는 시공간을 흐르면서 맥락과 접속하는 것이다. 정보가 흐른다는 것은 다른 정보와 접속/연결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접속은 경계와 경계가 만나서 새로운 코어가 생성됨을 의미한다.

내가 어떤 정보에 접속한다는 건, 내가 그 정보를 관찰/해석하고 그 정보는 나에 의해 관찰/해석당하는 것이다. 관찰/해석하든, 관찰/해석당하든, 접속은 양 쪽 모두를 변이시킨다. 접속/연결은 단절된 것들의 만남이 아니다. 애초부터 나눠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분리' 환상을 깨는 작업이다. '분리'는 인간 인식/역량의 한계가 낳은 엄연한 착시효과다. ^^




PS. 관련 포스트
나, 시공간, 해체
정보 배설
만물은 고갈한다. ^^
무엇이 희소한가?
휘발의 흐름, 흐름의 연결
유동, 알고리즘
[지식] Stock vs F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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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1/06/11 15: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정보와 존재(Information And Being)는 앞으로도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둘 다 동일성(identity)을 바탕으로 하는 개념이고, 그 심연에는 언제나 '해석하는 주체'가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6일자 포스팅과 오묘하게 통하는 이번 내용도 어김없이 신기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1/06/11 17:59 | PERMALINK | EDIT/DEL

      예, 정보와 존재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생각을 해보고 싶습니다. 역시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군요. 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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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시공간, 해체 :: 2011/06/06 00:06

전략은 어디에 위치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여기서 '어디'는 시공간 상의 포지셔닝을 의미한다.

전략은 시공간 상의 특정 지점을 점유하는 것이다.

'나' 자신이 바로 시간이고, 공간이다. '나' 자체가 곧 시공간이다.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것은
'전략'이란 프레임 상에서의 play 보다 한 차원 높은 행위이다.
시공간 좌표 상의 점 찍기 보단 시공간 자체가 되는 것.


어떤 책을 완전히 해체할 수 있다면
그 책을 완전히 새로운 책으로 재창조할 수 있다.


뭔가를 완전히 해체한다는 것은
빙산의 일각 밑에 숨겨진 거대한 빙산(본질과 원형)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많은 책을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행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책 1권을 읽더라도 완전히 해체할 수 있는 지경까지 가는 것이 독서의 의미가 될 수 있다.
빙산의 일각만 무수히 핥으면 뭐하나? 빙산의 진동을 느껴야지. ^^


나의 생각과 행동을 완전히 해체하기 전까지는
나를 온전히 이해한다고 보기 어렵다.


내가 속한 시공간과 나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
나를 해체하는 과정이다.
node & link, stock & flow.


정체성은 무의식적으로 형성되기 마련이다.
이미 형성된 정체성을 해체하고 거기서 '나'를 구성하는 본질과 원형을 발견 및 정의한 후
거기에 의도를 더하고 그것을 재구성하면 나는 재창조될 수 있다.

시간, 공간, 인간을 해체하는 것.
간(間)을 해체하는 것.
간해(間解), 間을 푸는 것. 간풀기. ^^




PS. 관련 포스트
Blogging = Broadcasting Identity
정체, 알고리즘
감아,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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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도구, 의도, 양자 :: 2011/05/27 00:07


경계는 가상으로 설정한 막(membrane)이지 실체가 아니다. 근데 살다 보면 경계를 '막'이 아닌 하나의 견고한 '벽'으로 믿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막'으로 구성된 존재다. 인간 '막'은 수많은 물질적/비물질적 정보들이 빠른 속도로 투과되는 다이내믹한 공간이다. 인간의 '안'과 '밖'을 과연 명확히 규정할 수 있을까? 인간의 '안'과 '밖'을 명확히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인간을 완전 독립된 개체로 규정하고 생존을 위해 경쟁의 몸부림을 지속하는 존재로 살아가게 해야 이익을 보는 구조가 만연되어 있어서 그런 환상이 Fact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도구
인간은 편하게(?) 살기 위해 도구를 발전시킨다 도구가 진화하면 할수록 인간의 삶은 간접화/가상화의 물결 속에 휩쓸려가게 된다. 도구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인간은 '섬'이 되어간다. 도구는 인간과 인간을 매개한다. 매개 당하는 존재는 소외를 당하는 경향이 있다. 도구는 인간을 소외시킨다. 자본, 기술, 미디어는 모두 경지에 이른 거대한 도구들이다. 도구를 통한 커뮤니케이션도 분명 의도를 담은 메세지를 발신/수신하는 과정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도구에 의존하는 커뮤니케이션이란 설정 자체에 함정이 있다. 도구가 규정하는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매개 당하는 과정에서 의도의 감도는 저하되기 마련이다. 도구를 통해 나의 의도를 발신한다고 생각해도 실상은 도구의 의도를 대신 발신하는 의도 에이전트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도구가 advanced 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의도
만물은 저마다 의도를 갖고 있다. 하물며 인간이 고생고생해서(?^^) 축조한 자본/기술/미디어와 같은 거대 도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자본은, 기술은, 미디어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하여 시시각각 우리에게 의도된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만물은 저마다 자신만의 메세지를 발신한다. 인간을 향한 거대 도구의 메세지 발신은 증폭의 양상을 띠고 있다. 그에 비해 도구를 향한 인간의 메세지 발신은 미약하기 그지 없다. 인간-도구 간 메세지 flow의 비대칭 현상. 고유한 나만의 '의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나만의 정체성에 기반한 unique한 의도를 견지할 수 있다면, 어떤 도구를 사용한다 해도 그 도구의 의도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의도를 제대로 발산할 수 있다.

양자
광물, 식물, 동물, 인간은 모두 양자(quantum)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인간이 발전시킨 문명은 인간에게 원자(atom)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도구를 선사했다. 가시적 원자가 암묵적 양자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구 문명은 인간을 자꾸 원자(atom)적 존재로 환원시키려 한다. 하지만 인간은 원자(atom)적 존재로만 환원시키기엔 너무나 양자(quantum)적이다. 바로 여기에 서구 문명의 비극이 존재한다. 나와 타인이 대화할 때, 타인은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바라보고 느끼고 대화하는 게 아니다. 타인은 자신의 인식체계 안에 별도로 '가상의 나'를 새롭게 구축하고 그것을 인지하는 거다. 그건 '실재하는 나'와 다른 별개의 존재다. 수시로 탄생하는 '나'



PS. 관련 포스트
생각의 파동, 언어의 파동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2 - Compilation Post
가설, 알고리즘
심로,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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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퀴아오에게 배우는 리듬 :: 2011/05/09 00:09

어제 파퀴아오 vs. 모슬리 경기를 보았다.

미구엘 코토를 박살낸 마가리토를 사정없이 두들겨 팬 모슬리였기에
마가리토를 KO로 제압하지 못한 파퀴아오가 모슬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했지만
역시 경기는 3회에 모슬리를 다운시킨 파퀴아오의 압도적 리드로 시종일관 흘러갔다.
모슬리가 넘 도망 다니고 파퀴아오가 나름 조심하는 스탠스여서 결국 경기는 판정으로 끝났다.

어제 경기를 보면서 드는 생각.

파퀴아오는 리듬을 장악하고 있다.
상대방을 어정쩡한 스탠스로 옭아매고 자신만의 스텝과 펀치의 흐름으로 공기를 지배하는 모습.


생각을 파동에 비유한다면,
파동의 리듬이 공기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매니 파퀴아오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생각 재료도 파동이요, 나의 생각도 파동이다.
생각 재료의 흐름을 나의 리듬으로 컨트롤할 수 있어야
생각 재료는 나의 생각 프레임을 살찌우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

나만의 리듬감으로 공기를 부유하는 생각 재료들을
날카롭게 베어낼 수 있는 생각 발전소가 되어야 한다. ^^




PS. 관련 포스트
튓잼, 알고리즘
조월,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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