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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기와 담기기 :: 2011/06/15 00:05

관찰은 담기이다.
나만의 생각 프레임(컨테이너) 안에 관찰 대상을 담는 것이다.

관찰이 담기이기 때문에,
관찰은 대상과 거리를 두고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라기 보단
대상을 컨테이너 안에 끌어들여 대상을 변화시키는 것에 더 가깝다.

언제부턴가 세상 전체가 나에게 책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컨텐츠가 더 이상 컨테이너 속에 박제된 형태로 존재하기 보다는 컨테이너라는 '막'을 끊임없이 투과하고 유동하는 동적 평형 상태에 놓이게 됨을 의미한다.

컨테이너는 컨텐츠를 견고하게 가두면서 가치를 발현한다. 컨텐츠는 컨테이너를 자유롭게 투과할 수 있는 '막'으로 정의하는 순간 강력한 가치를 획득한다. 컨텐츠와 컨테이너의 관계가 atom적이면 컨테이너가 돋보이고, quantum적이면 컨텐츠가 돋보인다.

언어도 일종의 컨테이너다. 안개와도 같이 뇌리를 맴돌며 말로 잘 표현이 되지 않는 그 무엇. 그건 언어라는 컨테이너 안에 담기 어려운 양자(quantum)적 컨텐츠를 의미한다.

'나'는 무엇을 담을 수 있는 컨테이너인 동시에 무엇에 담길 수 있는 컨텐츠이기도 하다.
내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나는 무엇 안에 담길 것인가를 정의하고 그것을 관리해 나가는 것.

내 안에 무엇을 담지 않고 그저 무엇 안에 담기기만 한다면 '나'는 입자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담기는 동시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 널린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기는 안습을 면할 수 있다.

구글이란 '검색 네트'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 페이스북이란 '소셜 네트'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 기술/미디어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 자본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 Quantum-Self. ^^

관찰은 담기이다.
나만의 생각 프레임(컨테이너) 안에 관찰 대상을 담는 것이다.



관찰과 상상 (2011.5.6)

관찰력은 상상력과 맞닿아 있다.
관찰을 잘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역동적 상상력을 가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관찰은 상상과 재구성(일종의 창조)의 영역이다.

관찰은 현상을 사진 찍듯이 내 머리 속으로 입력시키는 것이 아니다.
현상에 대한 나만의 해석을 내 머리 속에서 구성해 내는 것이다.
관찰은 입력 보다는 생성에 가까운 개념이다.


무엇인가를 관찰할 때,
관찰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나만의 해석 간에는 반드시 간극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 간극의 유형이 관찰자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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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도구 :: 2011/05/04 00:04

'연결'의 시대는 곧 '의존'의 시대이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는 관계이다. Technology가 발전(?)할수록, 인간은 Technology에 의존하게 된다. Technology는 인간의 영역을 극도로 확장시키는 동시에 인간의 영역을 극도로 축소시킨다. 거대한 확장은 거대한 축소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박테리아는 인간 기반에서 생활하는 친인간적 생물이다. 박테리아는 인간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무수한 피부조각과 땀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미네랄 성분을 먹고 산다. 인간은 박테리아의 생존 기반이다. 사람은 자신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수십조의 박테리아와 상시 붙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눈에도, 나의 머리카락에도, 나의 손에도, 나의 입에도, 나의 내장 기관 속에도 박테리아는 존재한다. 나는 과연 혼자인가? 박테리아는 잘 죽지 않는다. 박테리아는 거의 어디서든 생존한다. 뜨거운 용암 속에서도, 달 표면에서도 박테리아는 살아갈 수 있다. 어디서든 대상에 착 달라붙어 대상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먹고 살아간다. 짱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가공할만한 박테리아의 생존 능력과 번식 능력. 생명체의 능력을 판단하는 유력한 척도가 생존과 번식인데, 박테리아가 갖고 있는 놀라운 환경 적응력은 박테리아가 지구 상에서 강력한 적합도 생성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테리아는 대상에 달라붙어 대상을 빨아먹고 살듯이, 인간도 대상에 달라붙어 대상을 빨아먹고 살아간다. 생명체의 능력은 대상에 착 달라붙어 대상으로부터 에너지원을 공급받는 능력이다. 박테리아는 가공할 적응력을 갖고 있기에 아무 대상이나 선정해서 그 대상에 착 달라붙으면 그만이다. 박테리아는 달 표면을 먹고 살 수도 있고, 용암 국물을 먹고 살 수도 있고, 인간 세포를 먹고 살 수도 있다.

인간은 박테리아에 비하면 너무나 적응력이 형편 없기에 아무 대상이나 선정해서 그 대상에 달라붙을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대신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그것을 레버리지할 수 있는 능력을 끊임없이 진화시켜 왔다. 인간은 박테리아처럼 대상에 직접 달라붙는 능력은 떨어진다. 대신 인간은 '도구'를 통해 대상에 간접적으로 달라붙어 대상을 간접적으로 뜯어먹을 줄 안다. 박테리아가 direct 빨대 전략이라면, 인간은 indirect 빨대 전략이다.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도구는 인간을 변화시킨다. '인간-도구'는 공생관계를 이루면서 진화한다. 도구를 통한 인간 확장과 도구를 통한 인간 축소는 뫼비우스의 띠를 형성하게 되고 인간은 '확장-축소'의 진동 속을 살아간다. 인간은 박테리아에 비하면 매우 복잡한 존재이다. 복잡도가 높은 인간은 도구 의존도가 높고 대상에 대한 간접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인간 문명의 역사는 간접성 고도화의 역사이다.

Technology는 강력한 인간 도구이며 인간을 변화시키는 힘도 강력하다. '인간-Technology'는 대상에 직접 밀착하여 대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박테리아와는 사뭇 다른 유형의 대상과의 관계 설정 능력을 진화시키게 된다. 인간은 도구를 통해 인간을 확장하고 도구는 인간을 잠식한다. 확장을 무조건 반길 것도 아니고 잠식에 의한 축소를 무조건 꺼릴 것도 아니다. 확장의 이면에 축소가 있고 축소의 이면에 확장이 있다는 상충적 진실을 직시만 하면 된다. 디지털화가 심화될수록 휴머니즘은 약화되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디지털화는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인간도구' 진화의 한 유형일 뿐이다. 휴머니즘은 모호한 개념이다. 인간에게서 도구를 제거하면 공허만 남게 된다. ^^


PS.관련 포스트
고수, 알고리즘
"인터넷은 우리를 바보로 만드는가?"란 질문 자체가 바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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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Holy Ager | 2011/05/04 09:4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인간이 도구에 의해 존재하듯이, 도구는 인간에 의해 자기 지평을 고도화시키는군요. 한편으로 "인간의 도구"가 있듯이 "도구의 인간"이 있다면, 그것은 Art가 아닐까 싶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1/05/04 19:19 | PERMALINK | EDIT/DEL

      인간의 도구, 도구의 인간. 앞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연구해야 할 주제인 것 같습니다.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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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바라는 아티클 :: 2007/03/03 00:03



아래 아티클들..  뽀다구 나고 멋있다..
그런데 좀더 본질적인 진단/예측이 나왔으면 한다.

Customer의 니즈를 정면으로 다룬 진단과 예측..

근데 그런걸 다룬 아티클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잘 못 찾고 있는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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