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에 해당되는 글 18건

자각 :: 2017/12/18 00:08

역량이란 건
딱 자각한 만큼만 발휘되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걸 볼 수 없듯이
자각되지 않은 역량은 발휘될 길이 없다.

역량이 온전히 자각의 문제라면
자각이란 렌즈를 오롯이 역량에 들이대는 건 꽤나 중요한 문제가 된다.

자원의 희소성이란...
희소하지 않은 것을 희소하다고 지레짐작해버렸기 때문에 생성되는 개념 아닐까.

희소하지 않은데
실은 무한한데
애써 희소하다고 성급하게 결론 지어버리면
졸지에 희소 자원이 탄생하게 된다는.. ㅋㅋ

자각은 희소한 것처럼 보이는 자원의 엷음 속에서
무한한 자원의 보고를 추출해내는 것..

자각은 희소함의 적..
희소함이란 개념의 허상에 균열을 가하는 예리한 송곳.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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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게팅 :: 2017/09/20 00:00

타임라인에서 내가 보는 정보들은 나를 겨냥한 정보들일까, 내가 겨냥한 정보들일까.

타임라인 상에서 나는 겨냥당하는 걸까, 겨냥하는 걸까

내가 원하는 정보는 뭘까
내가 소비하는 정보는 내가 원하는 것에 근접해 있은 걸까
아니면, 내가 그것을 원한다고 느낄 수 있도록 끌려가고 있는 걸까

정보들의 범람 속에서
난 정보들의 흐름에 의해 어디로 이끌려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내가 선택당하게 되는 흐름 속에서
난 온전히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

선택의 강도가 흐려지면
결국 피선택의 흐름이 강해지는 건데

선택과 피선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은 점점 희소한 자원이 되어간다.

타임라인은 내가 선택한 정보들로 피딩되는 게 아니라
나를 겨냥한 정보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나는 온전히 선택하기 어려운 프레임 속에 놓여 있다.

내가 원하는 정보는 타임라인 상에서 희소하다.
타임라인을 풍성하게 수놓는 정보들은 소비자들을 찔러 보는 거다.
찔러보고 넘어지면 패대기치는 것이고, 안 넘어지면 다른 초이스를 들이밀면서 또 찔러 보는 거다.

찔러보기와 찔리기 사이의 긴장감이 타임라인 상에 배어 있다.

모바일 폰은 강력한 타게팅 디바이스다.
사용자를 이롭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용자를 강력 타게팅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기이다.

그걸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은
모바일 트래커를 부적처럼 지니면서
초강력 타게팅의 총공세를 온 몸으로 흡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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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의 낮잠 :: 2017/03/13 00:03

일요일 오후의 낮잠
그건 억만금을 주고서도 살 수 없는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지고지순의 가치다. :)

나에겐 그런 것들이 꽤 된다.
누구나에게 그런 것들이 꽤 될 것이다.
단, 그런 게 있는지를 선명하게 인지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만 있을 뿐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들이 줄어드는 세상을 살면서
돈으로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나는 경험을 한다는 건
자본주의 사회의 엔트로피와 다른 결을 살아가는
시대착오적 소중함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런 게 있다는 걸
잊지 않는 것은
희소한 것을 보듬어 내는 자세이겠고. :)

자고로 돈이 더 많아지는 것을 지향하는 세계에서
비가격, 무가격의 가치를 기억한다면

그 기억 체계는
시간, 공간의 흐름 속에서
유니크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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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 2016/06/17 00:07

짧은 글이 범람하면서 긴 글은 이제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장벽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긴 글은 고립되어 가는 듯 하다.

그럴수록 긴 글은 희소한 자원이 되어간다.
긴 글을 쓰는 사람의 시간, 긴 글을 읽는 사람의 시간도 희소한 자원이 되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짧은 글을 생산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짧은 글을 소비할 때

긴 글의 생산 가치가
긴 글의 소비 가치가
새로운 위치를 갖게 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짧은 글의 장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짧은 글이 긴 글을 압도할 이유는 없다.
그저 흐름을 타고 짧은 글이 대세가 되었을 뿐, 짧은 글은 그저 짧은 글일 뿐이다.

짧은 글의 범람을 활용하는 것이지
짧은 글에 휩쓸려서는 안된다.

긴 글에 주목하다 보면
짧은 글의 한계가 더 선명해진다.

긴 글을 가까이 하기 위한 노력 자체가 소중하다.

짧은 글이 대세를 가져갈 때
긴 글이 경쟁력을 가져간다.

항상 희소한 쪽에서 승부가 갈리기 마련이다.

긴 글.
시간이 흘러가면서 더욱 매력적인 정보가 되어간다. 지금 이 순간 더더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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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6/06/17 03:2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buckshot님! 험한 시절 속에도 잘 지내고 계신가요? ^^ 아직도 buckshot님을 통해 보고 나눈 말씀들이 생각나서 살다살다 가끔씩 미소가 지어져요. 몇년만에 짧은 글로 안부드리지만 왠지 마음은 잘 아실 것 같아요. 부디 계속 계속 가주시고 따님과 가족 분들도 모두 건강하시길 빌게요 😁

    • BlogIcon buckshot | 2016/06/18 14:18 | PERMALINK | EDIT/DEL

      와.. 3년 만이네요. 너무 반가워요. 잘 지내시죠~
      전 아직도 블로깅을 하고 있네요. :)
      제가 계속 블로깅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고 영감을 주셔서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시는 일 계속 잘 되시길 바라겠구요.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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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한다는 것 :: 2016/02/24 00:04

집중하지 않는 흐름이 일상이다.
주의 산만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아서.

그래서 집중이 희소가치가 되었다.

그런데.
집중은 전체에서 일부만을 택해서 그걸 파고 들어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집중은
전체를 머금을 수 있는 일부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일부가 전체를 머금을 수 있는 시공간.
그걸 포착하는 것이 집중이다.

주의를 온전히 기울이다 보면 그런 특이점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겠고,
특이점이 우연히 내 레이더의 사정권 안에 들어와도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겠다.

집중, 티핑.
그런 단어를 나의 몸과 마음 속에 주입을 시켜 놓는 것.
일단 그것이 필요하다.

일단, 맥락을 조성해 놓으면 (키워드 주입)
결국 맥락은 답을 하게 되어 있으니까. :)







PS. 관련 포스트
티핑,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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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찾기 :: 2015/09/30 00:00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맘에 들 것 같은 사이트를 발견하면 즐겨찾기를 한다.
그리고 웬만하면 재방문을 안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의 즐겨찾기는 내겐 슬로건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하는 기능인 셈이다.
말만 즐겨찾기이지 실제로는 즐겨찾고 싶지만 좀처럼 그렇게 되기 어려운 명목 상의 즐겨찾기.

게다가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나의 관심은 점점 특정 사이트에 맘을 주기가 어려워지면서
즐겨찾기는 그야말로 희소한 행위가 되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즐겨찾기의 대상이 좀처럼 나타나주지 않는 요즘.
정말 희소한 가치를 뿜어내며 내 눈 앞에 홀연히 나타나는 사이트가 생겨나면
그건 정말 발견의 순간, 아니 창조의 섬광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느낌이다.
경건한 손 떨림으로 즐겨찾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사이트에 다음 날 재방문한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도 당연히 그 사이트를 찾아간다.

즐겨찾기라는 슬로건을
명목 상의 기능에서 실재하는 기능으로 격상시켜 주는
그런 사이트를 만난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마치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았을 때의 감격과 비견할 수 있는
위대한 이벤트.

즐겨찾기.
그건 정말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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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에 대한 조종 :: 2014/06/23 00:03

누가 내 생각을 움직이는가
노리나 허츠 지음, 이은경 옮김/비즈니스북스


내 생각을 누가 조종할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 게 자연스럽다. 그게 생각의 본질이니까. 생각은 필연적으로 유동적이다. 나의 생각이라고 생각한 것이 실은 내 생각이 아닐 수 있고 어디선가 유래한 것일 수 있다. 생각은 소유권을 규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장르이다. 가장 유연하게 흘러 다니기 마련이고 가장 자유롭게 서로 얽힐 수 있는 게 생각이다. 결국 인간이 홀로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메커니즘 중의 하나가 생각 회로이다. 누구나 생각 회로를 가동시키곤 하는데 그 회로엔 실로 대단한 dynamics가 잠재해 있는 것이고 그 회로가 인간을 조종하는 지 인간이 그 회로를 활용하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인간이 살아가는 것인지 생각 회로가 호흡하는 것인지 판가름하기 어렵고 인간은 생각 회로 상에서 움직이는 장기의 말과도 같고 생각 회로는 인간 위에서 인간에게 의지하며 인간을 컨트롤하는 주체이자 객체이다.

나의 생각은 수시로 조종된다.

조종은 언제나 늘 존재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조종과 생각은 언제나 늘 그렇게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고 항상 흘러 다니고 있고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호흡을 지속하고 있다.   생각은 풍부한 자원이다. 생각의 스케일이 커질수록 조종의 스케일도 커진다. 조종도 매우 풍부한 자원이다. 그래서 희소한 자원은 자연스럽게 규정된다.

생각에 대한 생각
조종에 대한 조종

그건 언제나 늘 그렇게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게 아니다. 주체나 객체의 의지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의 간극이 발생할 수 있는 흰 바탕의 캔버스 그 자체이다.

생각과 조종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아니 언제나 성숙기였다. 
반면, 생각에 대한 생각과 조종에 대한 조종은 이제 시작이다.  말 그대로 early phase이다. 사업을 하면서 성장의 퍼텐셜과 속도를 매우 따지기 마련인데 생각생각 시장과 조종조종 시장은 그야말로 앞으로 거대한 시장성을 갖고 있는 무시무시한 성장 퍼텐셜의 지대이다.

그리고 이 시장에 침투하기 위해선 seed money도 seed people도 필요 없다. 
오로지 의도만 필요하다.
'생각에 대한 생각'을 생각 만큼 하고자 하는 의도.
'조종에 대한 조종'을 조종 만큼 하고자 하는 의도.

생각과 조종의 깊은 역사 속에서
생각생각과 조종조종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고자 하는 의도.
과연 나에게 있는 것일까? ^^




PS. 관련 포스트
생각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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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 :: 2014/06/20 00:00

전문화가 깊어지면 대행이란 개념이 자연스럽게 꽃을 피우게 된다.
뭔가를 전문적으로 대행해 주는 자.
대행구조가 심화되면 대행에 의존하는 행태가 보편화되고 대행은 또 다른 대행을 낳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희소해지는 것이 있다.
나 스스로 모든 것을 다 하려는 의도.
완결력.

완결력이 너무도 희소해지고 있어서
완결력에 관한 한 뭘 해도 유니크하다.

하나의 테마를 정하고
거기서 완결성을 구현해 보고자 노력해 보자.
그럼 뭘 시도해도 그건 매우 의미 있는 결과물로 이어질 것이다.

완결을 하려는 욕구가 거대한 대행 구조에 의해 무력화되는 시대를 우린 살고 있다.
대행만능 시대를 살아가면서 완결을 꿈꾸고 완결을 시도하는 행위는 희소성을 넘어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인간은 과연 무엇일까?  대행 구조 속에서 그 질문 자체가 희소해지고 있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점점 어려운 지경으로 시공간이 흘러가고 있는 지금, 나는 어떤 완결을 선택할 것인가?는 나를 알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겠다.

대행의 마음을 이해해 보자.
그럼 완결력을 향한 힌트가 생겨난다.

왜 대행이 존재하는가?
완결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공간에서 균열이 발생하니까.

물리적 환경 측면에선 대행에 의존해도
생각에 있어선 대행이란 개념이 너무 득세하면 안 된다.

대행과 완결.
반드시 관계를 규정하고 밸런스 내지는 우선순위 매기기를 해줘야 하는 긴장의 고리 구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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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한 생각 :: 2014/06/16 00:06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의 지평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할 수 없는 것을 꿈꾸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데.

나의 생각은 현재 어디까지 와 있고 앞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생각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의 생각은 어떤 양상을 띠고 진동하고 움직이고 멈춰 있는 것일까?

나의 생각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 자체가 너무 희박하다.
희소한 것에 몰입하는 노력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나의 생각을 생각하는 것에 대해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것 같다.

생각에 한계가 있는 게 아니라 생각에 대해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에 생각에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생각엔 근본적으로 한계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생각에 대한 생각. 그 리소스에 한계를 부여하고 있는 게 현상이다.

생각 만으론 허전하다.
생각에 대한 생각

생각에 대한 생각이 넘 희소하다.
그 희소성에 관심을 갖게 되면 희소성과 나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된다.

희소와 대화를 나누면
나 자신에게 희소성을 부여해 나가는 노력을 시작하는 것이다.

범용성과 어울리면 범용한 존재가 되는 것이고
희소성과 친하게 지내면 희소한 존재가 되어나가는 과정을 밟게 된다.

생각에 대한 생각.
일상 속에서 가장 놓치기 쉬운 희소성이다.

일상은 희소보단 범용에 기울어지기 쉬운 중력 구조를 갖고 있다.

중력의 지배력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중력장 속에서
중력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작동시킬 때 중력장에겐 새로운 기회가 부여된다.
일상적 중력에 균열이 일어나면서 그 균열은 중력장을 새롭게 쓸 수 있는 소설판이 되어준다.
중력장이 건조하게 기계적으로 메커니즘을 반복해 나가게 하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중력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중력장 스스로가 일방적인 중력 행사를 할 수 없게 브레이크를 걸 때
인간도 중력장도 각성하게 된다.
인간의 존재가 중력장 속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려면
생각에 대한 생각을 하는 수 밖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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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셜록홈런볼 | 2014/06/17 21:1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2008년에 재밍이란 이름으로 블로그 했었다가
    회사다니고 못하고 네이버 블로그로 옮기고 그러던 중
    몇 년만에 다시 티스토리로 오게 되었는데
    예전에 댓글 달고 했던 분들 한번씩 들어가보면 죄다 접으셨더라고요.
    역시 꾸준하기가 아주 어렵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아직도 좋은 글 올려주시고 계신걸 보니
    반갑고 대단하시단 생각도 들고 감회가 새롭네요.
    좋은 밤 되세요 ^^

    • BlogIcon buckshot | 2014/06/19 06:37 | PERMALINK | EDIT/DEL

      http://read-lead.com/blog/897#comment27131

      5년만이네요. 너무 반갑습니다. ^^
      그냥 블로깅이 좋아서 계속 글을 적다 보니 셜록홈런볼님의 반가운 댓글도 받게 되어서 너무 좋네요.

      너무 반갑고 감사하구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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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04 00:04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에선 메세지가 휘발된다. 뭔가 열심히 글을 적어서 올리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텍스트는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기계적인 전진 스텝의 기조 하에서 fade out의 수순을 밟아나간다. 글을 올리는 순간, 등장과 함께 퇴장의 기운이 가득한 타임라인 상에서 하염없이 유동하는 텍스트의 모습. 마치 신진대사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다. 먹고 싸고 먹고 싸고의 반복 속에서 동적 평형의 묘미를 느낄 수 있겠으며 텍스트 자체보다 텍스트의 흐름에 더 큰 매혹을 느낄 수도 있는 포맷이라 볼 수도 있겠다.

반면 블로그는 먹고 싸고 싼걸 다시 먹고 싸고 싼걸 다시 먹고. 뭐 이런 식의 순환적인 모습의 피드백 메커니즘으로 작동되는 것 같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텍스트가 일방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태그 키워드를 중심으로 아카이빙이 된다. 무심코 부여한 태그가 나중에 우연한 계기로 소환될 수 있는 단서가 되어준다. 또한 예전에 적었던 글이 태그 키워드를 계기로 기억의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한다. 휘발되지 않고 뭔가 축적되는 느낌. 트위터/페북/카톡에서 절대 해줄 수 없는 큰 뭔가를 해주고 있는 느낌.  내가 쓴 글을 나도 망각하게 하는 트위터/페북/카톡과는 달리 내가 쓴 글을 돌아보게 만드는 블로그라는 구조. 상당히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먹고 싸고 먹고 싸고

끊임없이 나를 관통해 나가면서 나를 파이프라인으로 만드는 타임라인형 서비스.

근데 블로그는 그렇지 않다.

내가 싼 걸 내가 또 먹는 시스템이다.

자체 피드백 시스템.

이게 얼핏 보면 별 것이 아닐 수도 있으나 가만 생각해 보면 살짝 기가 막힌 것이다.

휘발형 서비스가 대세가 되면서 그것과 대비되는 특성을 지닌 블로그의 가치를 새삼 인지하게 되어 너무 다행스럽다. 모두가 즐겨 사용하는 대중적 플랫폼에 결핍된 뭔가를 확실하게 갖추고 있는 대안적 플랫폼. 항상 미래는 과거 속에 있었다. 내가 쓴 글을 내가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블로그이다. 되새김질이란 행위가 가면 갈수록 희소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되새김질은 성찰과 연결된다. 되새김질이 희소한 가치가 되어가듯 성찰도 역시 그러하다. 끝없는 전진형 서사 속을 살아가는 사람과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면서 미래와 과거가 공존하는 현재란 이름의 장을 가꿔 나가는 사람.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에선 메세지가 휘발된다.

블로그에선 메세지가 순환(循環)된다.

블로깅을 하면서 '환(環)'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환(環)의 묘미를 알아갈 시간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



PS. 관련 포스트
배설 타자
가치 생태계
진화와 죽음, 일각과 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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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범용화시키는 질문 :: 2013/02/11 00:01

설과 추석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아래 같다. 
연령대별 주요 관심사에 최적화된 묵직한 질문들이다.

10대: 공부 잘 하니? 어느 대학 가니?
20대: 취직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하니?
30대: 결혼 안 하니? 애는 언제 갖니?  애는 더 안 낳니?
40대: 건강은 괜찮은가? 애는 잘 크고 있는가?
50대: 은퇴하면 뭐 할 건가?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자식들은 공부 잘하는가?

묻는 입장에선 매우 궁금하고 대답하는 입장에선 살짝 불편한(^^) 촌철살인과도 같은 질문들.

인간의 라이프 사이클을 관통하는 둔중한 질문들이 난무하는 명절은 우리에게 어떤 메세지를 주는 것일까?  우리의 일상이, 우리 각자의 인생들이 정형화된 몇 가지 질문에 의해 가볍게 체크당할 수 있는 거대한 속물화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는 걸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인생이 이리도 단순한 질문 몇 가지에 의해 빠르게 파악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기만 하다. 우리는 이렇게 쉽게 파악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들인가? 우린 언제부터 이렇게 쉬운 존재들이 되었을까?

인간을 파악/판단하기 쉬운 간단한 질문들에 의해 인생이 가볍게 재단 당하는 시대를 우린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단순한 질문 안에 인생이 통째로 담긴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인생의 품질은 이런 질문들 말고 나에게 특화된 질문이 과연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 나를 범용품으로 간주하고 범용품의 어느 레벨에 위치하는가에 해당하는 질문들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그런 질문들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현 상태를 답해주면 된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만 내 주위에 배치하면 안 된다. 나를 파악하기 쉬운 질문 말고 나를 파악하기 어려운 질문을 항상 내 주위에 분포시켜야 한다. 나를 파악하기 힘든 질문을 나에게 던지고 그것에 대답해 나가는 과정 속에 나의 발견과 성장이 존재한다.

답이 쉽게 나오는 질문은 대상을 무력화시키고 발가벗기는 질문이다.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질문은 대상과 함께 호흡하고 대상을 풍요롭게 하는 질문이다. 나는 어떤 질문들을 받고 살아가는가?  내 주변에 온통 범용화 질문만 가득하다면 난 수시로 무력화되고 발가벗김을 당하는 존재로 전락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범용화 질문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수시로 생성하면서 그 질문들로 내 주위의 공기를 맑게 정화시켜 보자.

나를 범용화시키지 않는, 나를 진정한 나로 보아주는 그런 질문들. 매우 희소한 가치가 되어 버렸다. 그런 희소가치를 견지하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의 간극은 계속 벌어질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경쟁 노예: 이기고 웃는 노예, 지고 우는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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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ndy | 2013/02/13 20:52 | PERMALINK | EDIT/DEL | REPLY

    대상과 함께 호흡하고 대상을 풍요롭게 하는 질문을 하는 제가 될테에요! ^^ 또 하나의 소중한 삶의 목표가 생겼습니다, 덕분에요~!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2/14 07:47 | PERMALINK | EDIT/DEL

      자욱한 범용화 안개 속에서 희소한 것들을 챙기며 살아가는 기쁨은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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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 생산 :: 2012/10/05 00:05

사람은 누구나 존중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존중을 받고 있지 못한 처지에 머무를 때가 많다. 그렇다면 존중은 나름 희소한 자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

존중, 어떻게 주고 어떻게 받을 것인가?

존중은 일종의 재미인 것 같다.
재미를 결정하는 것은 재미있는 사람, 재미있는 현상이 아니다. 재미를 결정하는 것은 재미있어 하는 자이다. 재미있다고 느끼는 자가 재미를 결정한다. 재미는 주는 자보다는 받는 자 쪽에서 레버를 쥐고 있는 것이다. 재미가 유통되기 위해선 재미를 인지하고 느끼는 자가 많아야 한다. 재미를 생산하는 메인 주체는 재미있는 사람들이 아닌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이다. 존중도 마찬가지다. 존중이 유통되기 위해선 타인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 많아야 한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좀처럼 존중을 생성하지 못하는 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선 존중은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존중 받고 싶다면 먼저 존중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존중은 일종의 선물인 것 같다.
타인에게 선물을 주고 나서 대가를 바란다면 이미 선물의 취지는 자취를 감춘 뒤라고 봐야 한다. 대가를 바라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다. 선물은 대가를 망각할 때 빛을 발한다. 주고 나서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존중도 마찬가지다. 타인을 존중하려는 마음 자세를 갖추고 존중할 타이밍이 도래할 때 용감하게 존중을 해야 한다. 재미를 느끼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고 선물을 주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듯 존중도 용기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타인의 향기를 느끼려고 촉각을 곤두세우는 자세에서 존중이 나온다.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타인을 존중하려고 자세를 가다듬고 존중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존중의 에너지를 발산했는가에 좌우된다.  

존중 받기, 행복해지기.. 모든 사람들이 의식적이든 암묵적이든 바라고 바라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거울의 법칙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에 거울의 법칙을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한 존중과 행복을 가까이 하기란 매우 어렵다. 존중을 하는 만큼 나의 클래스가 격상하고 행복을 전파하는 만큼 나의 자존이 강화된다.

존중 받고자 하는 마음. 치기 가득한 마음이다. 그 유치함을 잘 어르고 달래주면서 성숙한 인간의 향취를 뿜어내기 위해선 존중의 방향키를 반대 방향으로 확 돌려줘야 한다.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을 세상에 더해 보자. 존중의 소비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존중의 생산자가 되려고 노력해 보자. 재미의 생산자가 되려고 노력하면 세상은 재미로 가득한 곳이 되고 존중의 생산자가 되려고 노력하면 세상은 존중으로 가득한 곳이 된다. 내 주위를 재미와 존중과 선물로 가득 채우면 세상은 그렇게 된다. 

결국 핵심은 "내 주위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란 질문에 잘 대답하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재미주기 vs. 재미받기
망각, 알고리즘
자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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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가치 vs. 희소가치 :: 2012/07/11 00:01

돈의 영향력이 커져가는 세상이다. 예전보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내가 어릴 적엔 동네에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놀 수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그런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림을 그리려 해도 미술학원 가서 돈 주고 그려야 하고, 축구를 하려고 해도 축구 교실에 가서 돈 주고 해야 한다. 모든 것이 급속도로 BM화 되어가다 보니 돈을 주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돈을 줘야 할 수 있는 일들은 계속 많아진다.

세상은 점점 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로 뒤덮여 갈 것이다. 교환가치가 세상을 삼키고 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 수록 돈의 위력은 배가될 것이다. 하지만, 대척점에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뭔가가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그것의 희소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무엇이 희소한가?

초연결 시대엔, '단절'이 최고의 희소자원이다.
스마트 디바이스의 시대엔, '스마트 핸드'가 최고의 희소자원이다.
외모 지상주의 시대엔, 외모에 대한 끝없는 결핍감을 생까는 '외모튜닝 무감증'이 최고의 희소자원이다.
스펙의 시대엔, '자존감'이 최고의 희소자원이다.
문명의 압박이 횡행하는 시대엔, '자유'가 최고의 희소자원이다.
돈의 위력이 거세지는 시대엔, '돈이 안되는 것'이 최고의 희소자원이다.

돈이 안 되는 것은 돌려 말하면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돈 안 되는 일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모든 사람이 범용품(commodity)이 되어가는 시대를 살면서 희소한 것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범용품의 무리에서 헤어나와 홀연히 자신 만의 빛을 발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희소가치를 즐기고 있는가?

돈이 안되는 것을 즐겨보자. 돈이 안됨을 진심으로 기뻐해 보자. 왜? 그것이 희소하니까. 희소하지 않은 것만 즐겨라 하면 결국 범용품으로 살다가 범용스럽게 사라져 갈 테니까. ^^




PS. 관련 포스트
가장 희소한 자원
제자리
극세관심
자유, 알고리즘
무엇이 희소한가?
가격, 알고리즘
MECE vs. 약간의 무질서, 환원주의 vs. 상호작용, 혜자 vs.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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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세관심 :: 2012/05/11 00:01

스마트폰은 관심을 분절화시키고 커스터마이징시킨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나의 관심을 극도로 세분화시키고 세분화된 관심을 철저히 나의 취향에 맞게 최적화시키게 된다. 예전엔 1시간~2시간을 진득하니 투입하던 관심이 이젠 1분 단위로 쪼개져서 운용된다.

극세화된 관심은 매우 쉬크한 태도를 취한다. 사람과 같이 있어도 사람에 관심을 그닥 많이 주지 않고 철저히 나의 관심을 끄는 정보에만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회의를 해도 자신에게 관심가는 정보에만 귀를 기울이고 나머지 정보는 모두 스킵한다.

스마트폰은 수많은 연결을 가능케 한 동시에 심도 깊은 단절을 리드하고 있다. 연결은 증식에 증식을 거듭하고 있으나 각각의 연결점들의 농도는 매우 희박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끊어짐 상태로 지내면서 간헐적인 연결이 일어날 뿐이다. 연결 심화 & 단절 심화.

극세화/이기주의적 관심이 심화될 수록, 문자의 힘은 드세져만 간다. 면대면 회의 대신 이메일로 일을 하고 면대면 대화, 음성통화 대신 메신저 대화가 일상을 점유한다. 그게 극세화된 나의 관심의 이기주의적 스탠스에 적합한 툴이기 때문이다.

심이 분절화될 수록, 관심의 대상인 인간도 분절화된다. 나는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가? 사람? 아니다. 나는 극도로 세분화되고 나의 순간적 관심 취향에 부합하는 세포 레벨의 극세화된 존재와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결코 사람이라 볼 수는 없다.

내가 보는 드라마, 내가 읽는 책, 내가 먹는 음식에서 나의 취향에 부합하는 것만 취한다면 드라마,책,음식은 해체 후 재조립되어야 한다. 관심/취향은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관심은 드라마,책,음식 뿐만 아니라 사람마저도 재단하고 있다.

관심 기반의 연결은 관심 기반의 단절의 이면이다. 관심을 따라 연결되고 관심을 따라 단절된다. 단절 기반의 조건부 연결. 그게 연결의 본질이다. 연결성이 좋아진 게 아니라 on-off의 자유도가 높아진 것이다. 사람도 관심 앞에선 철저히 해체된다.

나는 누구인가? 
극세관심의 총합인가? 

그럼 나는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가?
나의 극세관심에 적합한 분절화된 극세모듈들인가?

관심이 세분화되고 세분화된 관심의 이기주의가 창궐하게 되고 있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인간은 과연 무엇이 되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



PS. 관련 포스트
바깥, 알고리즘
감정과 관심을 지불하다
가치 에너지 준위차에 의한 '관심'의 이동
주목,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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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5/12 00: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단절 기반의 조건부 연결" 진짜 어렵고 오묘한 용어네요 ㅎㅎ 이런 스타일의 철학 세계를 여기 말고 어디서 또 경험해볼 수 있을까요? (군대 땜에) 심신이 지대로 지쳐가는 와중에도 뚫어져라 집중하게 만드는 흡입력, 정말 닮고 싶습니다. ^^ 주말이라 정말 다행인 것 같은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2/05/12 15:44 | PERMALINK | EDIT/DEL

      저도 잘 모르고 적는 글입니다. 잘 몰라서 적는 것이고 적다 보면 좀더 잘 이해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 항상 응원해 주시는 것이 제겐 무한의 에너지 공급처럼 느껴지구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 더러운곰 | 2013/09/01 11: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심심하면 이곳에 들러 포스팅을 읽곤 합니다. 이렇게 댓글을 달기는 첨인대... buckshot님의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포스팅들이 자꾸 저를 이끄는거 같네요. 연결성이 아닌 on-off의 자유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9/01 16:38 | PERMALINK | EDIT/DEL

      댓글 주신 덕분에 저도 다시금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 포스트는 제가 나름 아끼는 포스트인데 댓글 주셔서 너무 기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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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 :: 2012/04/27 00:07

많은 것들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이동한다.  그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너도 나도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변화하려고 노력한다. '적응'이란 단어의 위상은 예전과는 사뭇 그 느낌이 다르다. 모두가 고속 주행하고 있을 때 아무리 빠르게 달린다 한들 티가 나기란 매우 어렵다. 절벽으로 돌진하는 레밍들의 무리 속에서 유니크한 레밍의 모습을 찾기 어렵듯이. 거대한 commodity 군상들의 돌진 속에서 쉽게 차별화될 수 있으려면?  여기서 차별화의 의미는 남을 앞선다는 관점 보다는 내가 나 스스로를 알아본다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이 떼소비를 즐길 때, 차별화된 소비를 하면 그것으로 나를 식별할 수 있다. 소비자로서의 나는 내가 거부한 me-too의 합이다. 남들이 다 소비하는 것 중에 내가 소비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나를 강력하게 규정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모든 상품/서비스는 그 안에 특유의 논리를 담고 있다.  특정 상품/서비스가 대유행되고 있을 때 그 상품/서비스를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상품/서비스에 내재된 특유의 논리와 심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고속,변화의 물결 속에서 나 자신을 식별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모두가 움직이고 있을 때 나만 멈춰설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면 된다. 모두가 트위터/페이스북/카카오를 하고 있을 때 나 혼자 블로깅을 하고 있다면 그건 충분한 식별 요건이 된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나 혼자 피쳐폰을 당당히 사용하는 것도 분명한 자신 만의 스탠스 선언에 해당한다. 중요한 건 어떤 희소한 공간에 내가 당당히 서 있을 수 있느냐이다.

한 자리에 계속 머문다는 것은 에너지의 축적이다. 한 자리에서 뭔가를 계속한다는 것을 적응력의 부족이나 일상의 지루함으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중요하지 않은 것이 변하기 마련이다. 한 자리에 머무는 이유를 잘 정의하는 순간, 속절없는 변화의 허상은 더욱 명확해지고 commodity화 되어가는 밋밋한 인간 군상들의 무리 속에서 내가 나를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는 식별자를 획득하게 된다.

블로깅의 인기가 시들해진 지금, 오히려 블로깅은 내게 더욱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진 이 자리에 여전히 남아 즐기는 블로깅은 예전보다 더욱 분명하게 나 자신이 식별되는 가치 있는 자리가 되었다. 나는 오늘도 제자리에 머무르며 커피향 가득한 블로깅을 통해 나 자신을 또렷이 식별한다.

변화 속에서 무엇이 변화에서 뒤쳐지고 있는지, 고속 플로우 속에서 무엇이 저속 또는 정지 상태에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무턱대고 변화하고 무작정 빨리 달려가는 레밍 플랫폼 속에서 나 자신을 식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될 것이다. 변화와 속도는 항상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메세지를 외면하고 변화와 속도 자체에만 매달리면 절벽으로 질주하는 레밍과 똑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



PS. 관련 포스트
변화,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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