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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관찰 :: 2016/09/26 00:06

사물을 관찰하다 보면
나의 관찰이 나만의 행위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뭔가를 관찰한다는 건
내가 관찰하려고 하는 그것이 나의 시선을 잡아 당겼다고도 볼 수 있어서이다.

시선은 던지는 것인 동시에
잡아당겨지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시선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인 동시에
나의 외부로부터 나를 향해 인입되는 인력이기도 하다.

관찰이 쌍방향성을 띤다면
결국 관찰은 피관찰과 동일한 개념이 될 수도 있을 듯 하다.

내가 무엇을 관찰하고 있다면
나는 동시에 무엇으로부터 관찰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나의 주의력이 미치는 범위가 넓지 않다 보니
나는 관찰을 하기 보다는 받는 빈도가 훨씬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나를 향하는 시선은 무한대에 가깝고
나의 시선이 미치는 범위는 유한하다.

무한과 유한의 만남
무한의 유입과 유한의 유출

그런 연결 관계 속에서 나는 관찰을 하고 있는 것이고
나의 시선은 그런 극적인 관계망 속에서 뭔가 영역을 형성하게 되고 흐름을 낳게 된다.

관찰이란 무엇인가?

어떤 단어나 개념에 대해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것의 사전적 의미가 대단히 피상적인 기술에 그치고 말뿐
사실상 그것의 의미는 대단히 깊은 곳에 비밀스러운 코드로 겹을 형성하며 숨겨져 있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남는 것은 질문 뿐이다. 아주 단순하고 무식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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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 2016/05/09 00:09

눈에 보이는 공간을 살아가고
감각에 느껴지는 시간 속을 쫓기듯 흘러가다 보면
인간은 명시적인 공간과 시간만 현존하는 것이라 느끼기 쉽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존재로서 갖춰야 할 존재의 감각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공간과, 감각기관에 선명하게 드러난 시간은
인간이 아닌 자본을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자본은 인간으로부터 최대한 이익을 추출하기 위해
공간과 시간을 최대한 자본 환원이 가능한 상태로 포장하기 마련이다.

그런 자본적 프레임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고 그 속에 젖어들다 보면
정작 인간은 자신의 프레임을 상실한 채 어디론가 어리둥절한 상태로 계속 흘러갈 수 밖에 없게 된다.

존재감의 상실이다.
존재의 감각이 어디로 사라졌을까에 대해서 반추해봐야 한다.

존재는 의도가 있어야 존재 감각을 발휘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바라는 것, 내가 지향하는 것이 과연 나의 것인지.
그건 내가 아닌 자본의 욕망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반드시 분석해 봐야 한다.

지금의 나.
자본에 의해 얼마나 잠식 당했는지 명징하게 이해하기 되면

나의 의도가 뭔지
그게 존재하기는 한 것인지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완전한 무지에 가까운 상태는 아닌지

조금씩 알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럼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이 얼마나 자본에 의해 왜곡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된다.

의도
이해
시공간
시공간 상의 내 위치

지금 보이는 공간, 지금 느끼는 시간. 그런 건 의미가 없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
느껴지지 않는 시간의 흐름
그 속에 내가 있다는 것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아니, 답하지 못하더라도 그 질문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블로깅을 한다. 물리적 웹 공간이 아닌
내 마음 속에.. :)

중요한 질문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것만큼
인간으로서 비참한 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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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을 멈추기 :: 2015/07/01 00:01

끝까지 해내는 힘
나카무라 슈지 지음, 김윤경 옮김, 문수영 감수/비즈니스북스


판단을 하다 보면 생각하는 힘이 자라기 마련이다. 나의 생각이 나만의 색깔을 드러내면서 고유한 결을 생성해 나가도록 하는데 있어서 판단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판단하기는 가치 있는 행위다.

그런데.
판단을 멈추는 것의 매력 또한 그리 만만치가 않다. 판단을 하다 보면 특정 방향성에 대한 선택압이 작동하면서 뭔가를 취하고 뭔가를 버리는 편향성을 띨 수 밖에 없는데 판단 자체에만 몰입하다 보면 선택하지 않고 단지 응시만 할 때 얻을 수 있는 은근한 풍미를 맛 볼 수가 없게 된다.

책을 읽다가 아래 문장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판단을 멈추는 시간은 왜 중요한가"

판단을 멈추고 뭔가를 응시할 때 판단으론 도저히 얻을 수 없는 무엇을 은근히 얻게 된다. 판단하지 않고 형상을 구체화시키지 않고 그저 멍하니 응시만 할 때 집요하게 판단의 잣대를 아무리 들이대도 파악할 수 없었던 본질에 대한 접근이 슬며시 일어나게 된다.

판단을 멈추고 응시하기
응시를 멈추고 판단하기
둘 사이를 아주 천천히 오갈 때
판단과 응시는 서로를 보완하게 되는 듯 하다.

판단을 멈출 때
무의식의 수면 위에서 떠오르는 여러 가지 편린들을 살며시 집어 올리는 경험.
멈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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