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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통제 :: 2017/10/27 00:07

유튜브는 나의 취향을 잘 안다.
그래서 나에게 컨텐츠를 추천하기 용이한 포지션을 갖고 있다.

하지만
유튜브가 나에게 추천해주는 컨텐츠 리스트를 보면서
문득 나는 유튜브에 의해 훈육 당하고 있는 것 아닌가란 느낌도 생긴다.

취향이라는 건
그저 나의 관심이 흘러가는 경로를 따라 자유 여행 하듯이 플로우를 타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마치 패키지 여행처럼 내가 갈 만한 경로를,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디자인해서 나에게 가져다 주는 흐름은 왠지 인위적이고, 그게 설사 편하고 좋을 수 있어도 왠지 가공의 냄새가 많이 나서 좀 부담스럽긴 하다.

유튜브가 가면 갈수록 패키지 취향 여행의 강력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듯 제안해 올텐데..
앞으로 유튜브의 공세에 나는 어떤 자유 여행 경로로 맞서야 할지. ㅋㅋ

여행은 그냥 내 맘 가는 대로, 발걸음 닿는 대로 하는 게 좋은 건데 말이다.
취향을 적중 당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취향을 통제당하는 것 아닐지.

취향이란 건 맘에 들지 않는 여러 경험 끝에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 나가는 과정인데 그걸 너무 정교한 알고리즘에 의해 재단당하고 필터링 당하면서 크게 무리가지 않는 적중율 속에서 컨텐츠를 온실 속 화초처럼 소비해 나가는 게 과연 바람직한 상황인지 살짝 고민이 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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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의 컨트롤 :: 2017/01/16 00:06

부자의 습관
가야 게이치 지음, 김지윤 옮김/비즈니스북스

흐름을 대하는 자세는 2가지이다.

하나는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냥 흐름을 타고 흐름이 이끄는대로 나를 내버려 두는 것
일종의 무위
겉보기로는 무위이지만 그것도 일종의 의도이고 행동이다.

또 하나는 흐름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흐름의 양상을 잘 읽고 그 흐름을 이용하기 위해 흐름 상의 중요 지점에 위치하고 있거나
흐름에서 생성되는 에너지를 활용하여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

흐름에 민감해지면 컨트롤 스킬이 생겨난다.
컨트롤에 민감해지면 흐름을 잘 감각해낼 수 있게 된다.

컨트롤과 흐름은 그렇게 상호작용하면서 순환 구조를 만들어간다.
컨트롤은 컨트롤을 강화시키고, 흐름은 흐름을 강화시킨다.
그리고 그 기저엔 의도가 존재한다.

컨트롤을 향한 의도
흐름을 향한 의도

태초에 의도가 있었고
의도에 의해 컨트롤과 흐름이 만들어졌고
둘은 서로 엮이면서 자신과 상대방을 강화시킨다.

흐름을 대하는 자세가 어떤 것이든
흐름을 대하는 자세가 탄생하면
그 이후는 그냥 진행이 된다.
시작이 에너지이고
시작점의 존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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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입 :: 2017/01/13 00:03

나의 생각이라 생각하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나의 생각이 아닌 외부로부터 주입된 생각인 경우가 많다. 아니 대부분일 수도 있다.

너무나 많은 정보가 외부로부터 나를 향해 주입된다.
특히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폭증하는 정보를 관리해 주는 피드(FEED)라는 개념이 일상 속으로 침투하면서 더더욱 그런 현상이 심화된다.

내가 찾아서 나만의 생각 체계를 구성하고 정보의 깊이를 다져나가는 과정 속에서도 얼마든지 주입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마련인데..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나를 향해 정보가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흐름이 지속된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주입 메커니즘이 지배하는 시간 속을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나는 주체가 되어 생각하기가 힘들다.
나는 내 자신이 생각의 주체가 되어 사고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나의 생각을 지배하는 정보들이 있는 것이고
나는 내 취향에 맞는 정보들로 내 주위를 꾸민다.
내 주위에 있는 내 취향의 정보들은 스스로 나의 생각 체계를 구성하고
나의 사고 흐름을 지배한다.

그렇게 통제당하는 나의 뇌는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정보 시스템에 의해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그걸 나 자신의 것이라 은연 중에 믿게 된다.

결국 내 자신이 스스로 생각을 생산하지 못하고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전문화된, 정제된, 권위있는, 믿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그런 정보들이 온통 나를 강력하게 지배하는 흐름이 탄생한 것이다.

그게 FEED이다.
피드는 내 자신이라는 존재는 엷어지고 나를 통제하는 외부 기제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표상하는
2017년 1월 현재의 정보 플로우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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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된 방해와 혁신 :: 2017/01/04 00:04

하버드 최강 공부법
이노마타 다케노리 지음, 조소영 옮김/비즈니스북스

저자는 디스트럭션 타임을 줄이고 집중하게 되는 루틴을 만들라고 조언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뭔가로 인해 주의집중력이 산만해지고 방해를 받는 상황이 빈번하다 보면 원하는 결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주의집중을 방해하는 디스트럭션과
혁신을 낳는 디스럽션은
종이 한 장 차이의 간격을 두고 서로 가까이 있는 듯 싶기도 하다.

주의집중을 방해받는 상황이 많아지면 곤란하겠으나
만약 그 상황 자체를 통제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어차피 디스트럭션은 수시로 일어난다.
그런 상황 자체를 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오히려 의도된 프레임 속으로 편입시킨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의도된 디스트럭션
그건 방해를 받는다는 게 아니라
방해 인자들을 적극적으로, 선별적으로 초청하는 것이다.

액티브하게 선택된 방해 요소들..
그것들은 주의 집중을 흐리기 보단 주의 자체의 유연화를 유도할 것이고
생각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사고의 촉진제가 될 것이다.

디스트럭션 타임을 줄이는 것은 지당하다.
그런데 디스트럭션 타임 줄이기의 요체는
대부분의 디스트럭션을 배제하는 과정 속에서 엄선된 디스트럭션.
그것을 기반을 생각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인식이다.

디스트럭션과 디스럽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아주 긴밀하게.
그것을 잘 인지하고 그 둘 사이에서 줄타기 놀이를 즐기게 되면 재미있는 상황들이 연출될 것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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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플레이 :: 2016/06/03 00:03

음악을 들을 때는
철저히 음악을 만든 사람의 속도에 맞춰서 음악을 듣게 된다.

음악을 연주하는 속도. 딱 그 속도에 맞춰서 나는 음악을 듣는다.
한 번도 그런 음악 청취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종이책을 무심코 넘기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넘긴다는 건, 책을 플레이하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음악을 플레이하면서 수반되는 수동적 행위이다."

"음악을 들을 때는 저자가 책정한 속도. 그걸 의심없이 그대로 준수하면서..
왜 책을 플레이할 때는 왜 책정한 속도대로 책을 감상하면 안될까?"

책을 충분히 인지하며, 이해하며 책장을 넘겨야만 할까? 
그냥 정해놓은 속도에 맞춰 책장을 기계적으로 넘기면서 책을 읽으면 안될까?
그렇게 하면 책의 내용을 다 읽지 못하고 책장이 넘어간다고?
음악은 안 그런가? 음악을 들을 때 음악 속에 담겨진 메세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음악을 듣는 건가? 그냥 대부분의 소리를 그냥 속절없이 흘려 보내는 거 아닌가? 제대로 의미를 건지면서 메세지를 추출하면서 음악을 듣고 있는 건가?

책을 플레이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니
책도 음악과 같은 방식으로 감상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종이책 한 권을 임의로 골라 잡아서 뮤직 플레이 방식으로 읽어 본다.
책이 음악처럼 리듬감 있게 흘러가면서 그 짜여진 리듬 구조 상에서 나의 감각기관이 책을 읽어가는 듯한 느낌.

과히 나쁘지 않다.
아니 재미있고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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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측정 :: 2012/08/27 00:07

빈 카운터스 
밥 루츠 지음, 홍대운 옮김/비즈니스북스


뭔가를 측정한다는 것은 단지 뭔가가 갖고 있는 정보를 단편적으로 읽어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측정을 하다 보면 측정을 통해 얻게 되는 숫자의 시각적 자극에 함몰되기 마련이다.  시간을 측정하고 거리를 측정하고 무게를 측정하고 크기를 측정하고..

측정의 결과인 숫자는 다양한 측정의 대상들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게 하는 우격다짐의 힘을 갖고 있다. 70킬로그램의 돌과 70킬로그램의 인간은 무게 관점에선 동일한 수치로 측정되는 것이다.  비교가 어려운 대상들을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다는 것..

측정을 한다는 건 대상을 인지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측정을 통해 산출된 숫자는 대상을 해석하는 하나의 관점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숫자들은 인지와 해석을 넘어 대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인간에게 제공하게 된다.

그런데..
측정을 통해 뭔가를 통제한다고 생각하고 그 통제의 맛에 길들여지는 순간, 측정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하게 된다. 측정을 대상 인지를 위한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측정을 통한 해석을 맹신하고 측정을 통해 산출되는 숫자들에 기반해서 대상을 온전히 통제하려는 행동을 반복하게 되면 숫자는 서서히 역습을 감행하게 된다.  측정과 숫자가 더 이상 하나의 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도구 사용자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도구와 도구 사용자 간의 관계는 '의존도'의 높낮이에 의해 천차만별의 양상이 펼쳐지게 된다. 도구 사용자가 도구를 적절한 수준으로만 활용하는 쿨함을 유지하면 도구는 그저 도구에 머무르게 된다. 하지만, 도구 사용자가 도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도구가 없이는 생각과 판단 자체가 어려워지게 되면 도구는 도구를 넘어서는 도구 혁명을 일으키게 되고 도구와 도구 사용자 간의 관계는 역전되어 버린다. 도구 사용자가 도구에 종속되고 도구가 도구 사용자를 활용하여 자체적인 성장과 번영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측정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측정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측정하지 않고 대상을 인지하고 측정하지 않고 대상을 이해하고 측정하지 않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능력을 잃어가면 잃어갈 수록 측정 의존도가 올라가게 된다. 측정 의존도를 낮게 유지할 수 있으려면 숫자를 대하는 태도를 가다듬어야 한다. '숫자'는 대상을 설명하는 수만 가지 관점 중의 단지 하나일 뿐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숫자 이외에도 대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시적,암묵적 방법들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고 그런 방법들을 다양한 사고 훈련을 통해 계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앞으로,
인간은 도구를 발전시키고 도구는 그런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도구의 역습' 현상은 점점 더 거세질 것이다. 도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거대한 도구 권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인간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일 수 밖에 없다.

측정이란 강력한 도구와 잘 지내려면 측정의 가공할 환원력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갖고 놀 줄 알아야 한다. 측정은 세상만물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해 버리는 강력한 수치 환원력을 갖고 있다. 때에 따라선  그렇게 동일선상에 다양한 대상을 올려놓고 비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놀이를 하고 나서는 반드시 수치환원 게임을 통해 오염되어 버린 뇌를 세척해줘야 한다. 수치로 치환된 대상은 영혼을 잠시 잃어버린 상태에 놓여 있다. 그 상태를 그대로 놔두지 말고 살짝 수치로 치환되기 이전의 상태로 원복시켜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측정에 의해 파악한 숫자로만 대상을 인지하게 되고 그렇게 숫자 위주로만 인지,해석,통제를 하려고만 하는 흐름 속에서 대상의 실체와 인간은 서서히 단절되어 가게 된다.

측정에 의해 교란되고 영혼거세된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버린 측정의 대상들을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려 주는 역측정 놀이. 그걸 잘 할 수 있어야 측정이 지배하는 이 거대한 도구 플랫폼 세상에서 도구에게 지나친 권력을 제공하지 않고 도구와 대등하게 어우러지며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숫자, 알고리즘
측정, 알고리즘
디자인 씽킹을 읽고 습관을 디자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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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tore

    Tracked from toms store | 2013/06/13 10:55 | DEL

    What's up colleagues, I am for a second time here, and reading this article Read & Lead - related to Web optimization, its also a nice article, therefore keep it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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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과 감정 :: 2012/02/27 00:07

이메일이나 문자를 보낼 때
딱딱한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과 같은 이모티콘을 사용할 때가 많다.

이모티콘을 사용하다 보면,
기분 좋아서 ^^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기분이 꿀꿀해도 ^^을 사용하다 보면 기분이 UP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감정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문자의 탄생.
감정을 표현하는 텍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동안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은 표정, 몸짓, 음성 등이었다.
아니, 감정이 표정을 지배하고 몸짓을 통제하고 음성을 조절해 왔다고 봐야 한다.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이 인간의 성숙도(?)와 연관성이 높다고 볼 때,
감정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기존의 감정을 퍼블리쉬하는 매체는 (표정,몸짓,음성) 감정을 표현하는데 급급했던 경향이 있다.
반면, 이모티콘은 다소 다른 상황이 가능할 것 같다.

기분이 좋아서 경쾌한 이모티콘을 사용하고, 기분이 안 좋을 때 우울한 이모티콘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거꾸로 밝은 느낌의 이모티콘을 사용해서 기분이 좋아질 수 있고,
기분이 안 좋을 때 상큼한 이모티콘을 사용하면서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모티콘을 단순한 문자 커뮤니케이션의 윤활유로만 여기면 이모티콘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이모티콘은 감정 컨트롤 기능을 보유하고 있고 이모티콘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에 따라 인간 성숙도(?)까지 좌우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문자나 이메일에 ^^을 적는데 그치지 않고 내 마음 속에 ^^을 새겨 보자. ^^은 생각보다 강력한 감정 통제 능력을 갖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비용 효율적으로 표현하고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비용 효율적으로 통제한다.
알고 보니, 이모티콘은 감정 마법사였던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감정, 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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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데굴대굴 | 2012/02/27 10:4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심리학에 선택이론이라는 학문(?)에 보면 '전행동 자동차'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동차 바퀴4개를 활동하기, 생각하기, 느끼기, 신체반응으로 두고 이를 굴려보는거죠. 각기 따로 움직이지 않으며, 다 함께 연동되어 있다는 내용인데... 이모티콘을 사용해서 기분이 업되는 것도 비슷한 원리라고 보여집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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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루한가? :: 2011/11/28 00:08

필립 짐바르도는 TED 강연에서 재미있는 말을 한다. 남자 학생이 여자 학생보다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가 인터넷 야동의 범람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나도 1990년대 후반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해 온 인터넷 야동 산업의 범람이 남자 학생의 학습능력 저하와 아마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란 가설을 농담 삼아 떠올려본 적은 있다. ^^




뇌에 가해지는 자극이 뇌를 더욱 자극지향적으로 만들어 뇌가 자극추구의 무한 루프에 빠진다는 것.

지루함에 대해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지루함은 자극을 필요로 한다. 자극은 지루함을 달래주긴 하지만, 결국 다시 지루함이 찾아오고 새로운 자극을 추구게 된다. 뇌가 원하는 자극. 그게 과연 내가 원하는 자극인 건가? 나와 뇌는 어떤 관계인가? 나는 뇌가 자극을 원하면 계속 그 자극을 뇌에 공급해 줘야 하는 것이고 그러다가 나라는 존재 자체가 망가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

뇌와 깊은 역사를 갖고 있다. 뇌는 결코 나의 온전한 소유물이 아닌 것이라고 봐야 한다. 뇌에서 일어나는 메커니즘은 나의 고유한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래된 뇌 속성 형성의 역사에 기반한 것이다. 원시시대 생명의 위협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던 시절, 뇌는 다양한 형태의 자극에 대한 빠른 반응을 본능적으로 익혀왔던 것이고 생명의 위협이 사라진 지금에도 뇌는 자극 놀이를 무작정 하고 있는 것이다. 뇌가 가는 길이 내가 가는 길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뇌는 자극을 먹고 사는 기관이고 나는 자극만 맹목적으로 먹고 사면 망가지는 존재인 것이다. ^^

뇌와 나와의 관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지루하다는 것은 뇌가 새로운 자극,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는 신호다. 그 신호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면서 새로운 자극, 강한 자극을 찾아 나서는 행동의 주체가 누군지에 대해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끊임없이 자극을 소비하고 싶어하는 뇌가 지루해 하는 것인가? 자본주의와 시장은 인간을 자극의 무한루프에 빠져 사는 멍청한 소비자(뇌)가 되는 것을 원할 지라도 인간은 멍청한 뇌와 주체로서의 자신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누가 지루한 건가?
내가 지루한 건가? 뇌가 지루한 건가?
나는 기꺼이 나의 뇌와 함께 자극의 무한 루프에 빠질 것인가? ^^



PS. 관련 포스트
스토리텔링은 뇌 현혹이다.
앵커, 알고리즘
비교, 알고리즘
결정, 알고리즘
제값, 알고리즘
속뇌,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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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석원 | 2011/12/03 08:3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자극을 찾고 그러한 자극이 없으면 무기력해지는 증상과도 연관이 있겠군요
    많이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1/12/03 13:34 | PERMALINK | EDIT/DEL

      자극을 응시하고, 자극을 찾는 나를 응시하면 자극의 맹목적 추구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

  • BlogIcon 고구마77 | 2011/12/06 13: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버트랜드 러셀이 쓴 Conquest of Happiness 라는 책에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로 Boredom(권태)를 꼽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절이 나오죠. "A certain power of enduring boredom is therefore essential to a happy life". 이런걸 보면 권태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의 큰 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Scott McCloud는 '만화의 이해'라는 책에서 생존의 욕구, 생식의 욕구를 제외한 모든 활동을 예술로 규정하는 의견을 피력하는데, 그 가운데 예술활동은 권태를 극복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권태를 '생산적으로' 극복한 행위양식이 예술이 아닐까 싶네요.

    '재미'에 대해 파다보니 '권태'에 까지 가더군요. 아직 갈길이 멉니다만. 아무튼 인간은 참 재밌는 동물이고 어려운 동물입니다 ㅎㅎ

    ps. 스캇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라는 책은 벅샷님께서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네요.
    엄청난 책입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1/12/06 22:25 | PERMALINK | EDIT/DEL

      예, 권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화두인 것 같습니다. 블로깅을 하면 권태를 느낄 겨를이 없는 것 같습니다. ^^ 추천해 주신 책을 꼭 읽어봐야 할 것 같네요. 원래 알고 있던 책인데 이렇게 멋지게 권유해 주시니까 정말 읽고싶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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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충의 시대 :: 2010/11/29 00:09

공감의 시대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경남 옮김/민음사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를 보며 드는 생각.
책을 전혀 읽지 않고 쓰는 글이므로 완전 봉창이 될 우려가 높지만
책 표지를 보며 떠오른 생각을 가볍고 단순무식하게 적어본다.

저자의 '엔트로피' 기반 방향성 전개는 자가당착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공감 확산을 위해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엔트로피가 급증하므로 말이다.
사실상 인간의 모든 행위는 엔트로피 증가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증가하는 엔트로피를 유지/감소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은
마치 흘러가는 시간을 정지시키거나 감속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엔트로피 증가가 두렵다면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무위(無爲) 밖엔 답이 없다.
근데 인간은 태어나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이 숨을  쉬는 것 자체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행위인 것이다.
'엔트로피 증가에 대한 우려'라는 설정 자체가 매우 우울한 것이다.

설정 자체가 음울한 상황에선 돌파구를 찾기가 어렵다.
시간의 흐름을 부정적 현상으로 규정하고 그걸 해결하려 노력한다면 어떤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까?
엔트로피. 매우 답답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자고로 통제하기 불가능한 대상은 섣불리 공격하는 게 아니다. ^^

제레미 리프킨의 신간 '공감의 시대'가 내겐 '자충의 시대'로 읽힌다.
제레미 리프킨은 넘 강력한 상대를 골랐다.
엔트로피. 그리 쉽게 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엔트로피 증가를 통제하려 하지 말고 엔트로피 증가를 통제하고 싶어하는 헛된 욕망을 통제해야 한다.
헛된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면 자충수를 두게 된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자충수를 두고 있는지. 우린 자충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


PS. 관련 포스트
무위, 알고리즘
쓰렉, 알고리즘
질서와 무질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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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의 환상 :: 2010/11/17 00:07

근무시간, 인터넷/메신저 사용량, 휴식시간 등을 통제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직원의 attention(주목/관심)은 점점 통제되기 어려운 신기루가 되어간다. 저차원적 통제 마인드에서 벗어날 때 경영혁신은 시작된다.

아래는 2008년 10월에 올렸던 포스트인데 지금도 여전히 같은 생각이다. ^^



Follower's Attention - 야근에서 주목으로 (2008. 10.8)

전 직장에서 '업무 몰입도 향상 켐페인'을 계획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야근이 직원의 자기계발,건강관리를 방해하고 창의력/역량 발전을 가로막기 때문에 근무시간 중 업무 몰입도 향상을 위한 켐페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인위적인 켐페인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문제의식 자체엔 큰 공감을 표명하고 싶다.

살다 보면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직장생활에서 나타나는 대표적 주객전도 케이스 중 하나가 야근에 대한 암묵적 압박과 마지못한 수용이 아닐까 싶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아무리 정교하게 업무계획을 수립하고 기간별로 균등하게 배분한다고 해도 여러 가지 돌발적인 상황 등의 발생으로 초과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날 해야 할 일을 모두 완수했는데도 부서장이 퇴근하지 않아서, 남들이 다 늦게까지 남아 있으니까, 일찍 퇴근하기 눈치 보여서 등의 이유로 야근을 한다면 그건 분명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공식적인 퇴근시간과 암묵적인 퇴근시간 간의 gap이 존재할 경우, 초과근무로 인한 업무 퍼포먼스 제고보다는 초과근무에 기반한 느슨한 시간관리, 몰입도 부족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의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건 야근 자체가 아니라 업무 몰입도라고 생각한다. 조직원의 업무 몰입을 위해서는 야근 압박보다는 조직의 비전에 근거한 명확한 업무목표 부여와 그에 기반한 시의적절한 피드백이 필수적이다. 업무에 몰입하다 보면 더 나은 성과를 위해 야근도 할 수 있고 전문성 제고를 위해 퇴근 후 자기계발을 할 수도 있고 취미생활을 통해 창의력을 증진시킬 수도 있다. 자율적인 개인 시간 컨트롤에 의해 체력관리, 가정관리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모든 산업이 지식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조직의 리더는 follower의 근무시간을 관리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19세기 산업혁명 시절에나 통할 법한 테일러식 관리 마인드가 아직도 횡행하고 있다는 건 분명 넌센스다. 리더는 follower의 주목(attention)을 조직의 방향성과 업무 목표와 정렬시키고 고무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원의 주목은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리더가 통제하기 가장 힘든 조직의 자산이다. 리더는 주목을 끌어내기 위한 맥락을 만들어 내고 자발적인 행동을 끌어내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직장을 기계로, 직원을 생산의 수동적 단위로 규정하고 경영자를 기계 관리자로 바라보는 프레드릭 테일러식 마인드는 이제 극복되어야 한다.  그런 기계적인 경영 모델 속에서 창의적인 혁신이 창발하기 어렵다. 리더는 기계를 관리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고용하는 경영자여야 한다.

맹목적인 야근으로 소비되는 시간은 실험과 혁신을 위한 기회의 상실을 의미한다.  지속성 있는 object가 없는 social network service가 공허하듯이, 명확한 목표가 없는 초과 근무도 공허할 수 밖에 없다.  근무시간의 길고 짧음 보다는 follower's attention이 어디에 얼마만큼의 집중도로 향해지고 있는가에 더 주목하는 것이 타당하다.  바야흐로 주목 경제의 시대인 것이다. ^^



PS. 언젠가 아색기가에서 야근의 악순환에 대한 만화를 본 적이 있다.  악순환 플로우차트는 아래와 같이 전개된다. 과장된 면이 있긴 하지만 나름 핵심을 찌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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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Playing | 2010/11/23 14: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결국.. 가진 자들은 돈과 시간이 풍요로워지고,
    못 가진 자들은 돈과 시간이 너무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 같아요

    이 상황에서 헤어나올 수 있겠죠~?!
    가진 자들의 강요에 의해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게 아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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