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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대화 :: 2019/01/11 00:01

스벅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노트북질을 하다 보면
옆 테이블의 대화가 귀에 들어올 때가 있다.

일종의 백그라운드 뮤직인 셈인데...

그냥 음악으로 대화가 깔리다가
어느 순간 대화 속 멜로디가, 리듬이 포착되어
내 귀속으로 제대로 들어오는 순간이 생기면
그냥 하던 일을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전환시키고
옆 테이블 대화를 메인으로 올린다.

원래 하던 메인 잡이 사이드로 빠지면서
메인으로 올라오는 옆 테이블 대화..

그 대화 속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DNA가 어쩔 수 없이 스며들어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 태도, 의도가 드러날 수 밖에 없고
삶을 살아가는 전략과 전술의 일면도 배어 나온다.

그런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
잠시 방문자로 난입되는 느낌도 생겨서 재미있고 좋다. ㅎㅎ

대화 뿐만 아니고
살아가면서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깔리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그런 BGM 중에서 어떤 것들은 나의 뇌 속 메인 컨텐츠로 급부상하는 것들이 생기고
그런 것들은 분명 내 생활의 활력소일 수 밖에 없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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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을 대하는 태도 :: 2017/03/08 00:08

스타벅스에서 블로깅을 할 때
예전엔 주변에서 소음이 들려오면 좀 민감해지는 편이었다.
옆 테이블에서 대화가 좀 시끄럽게 전개되는 느낌이 들면 귀가 자꾸 그 쪽으로 당겨지면서 예민해지는 흐름을 막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어폰을 꺼내서 음악을 듣곤 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음악을 별도로 듣는다는 게 그리 즐거운 경험은 아닌 것이고.

그래서 스타벅스에서 소음을 만나면 나름 당황하게 되는 흐름이 계속 이어져 왔던 것 같다.

그런데
스타벅스에서의 공간감이란 경험을 하게 되면서
소음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도 조그만 균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주 기분 좋은 균열.

스타벅스에서 공간감을 느끼며
결핍감 없이 온전히 스타벅스에서의 시간에 집중하게 되자
예전과는 달리 소음에 대한 나의 태도가 굉장히 편안해지고 부드러워진다.

소음이 들려도 그것에 귀가 감각을 곤두세우지 않는다.
그냥 소음이려니 하게 된다.
스타벅스에 흐르는 음악과 유형이 좀 다를 뿐 앰비언트 사운드라는 차원에서 수용 가능한 정도의 소리라 인정하게 된다. 그냥 스타벅스에서 흘러나올 수 있는 소리라고 인정하게 되자 소음 민감도는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결핍감이 덜한 공간에서
소음을 전보다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되니
스타벅스는 더욱 더 나에게 있어 흐뭇한 공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공간감을 다른 공간에 어떻게 하면 전이시킬 수 있을까란 생각도 하게 된다.
결국 핵심은 나의 뇌가 무엇을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라면
이런 공간감은 충분히 스타벅스 밖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스타벅스에서 이런 느낌을 계속 만끽해 나가다가
나중에 확장성의 기회를 차근차근 엿보아야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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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 2017/01/27 00:07

있는 그대로
억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가리거나 포장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를 표현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에 당당해 한다는 것

예전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있는 그대로]란 말이 매우 선명한 이미지로 나에게 다가오는 듯 하다.

진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느끼고 말하는 것

그게 지금까지 잘 되지 않았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가끔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볼 때
[있는 그래도] 정신을 요행스럽게 잘 실행했을 때가 언제였는지 알게 될 때
이 뻔한 표현이 뻔하지 않고 평생을 가다듬어야 할 나의 자세가 되겠구나란 느낌이..

정말 대단한 자세다. 이건..
실행하기 어려운 태도. 그래서 실행하고 나면 뿌듯해지는..

있는 그대로.
이 말을 하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구나.  후..

그래도 다행이다.
블로깅 10년 만에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되었으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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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2015/11/13 00:03

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
변지영 지음/비즈니스북스


이 책에서 매우 맘에 드는 문장이 있다.

'삶은 자신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만난 보람이 있다.

벗어나기 힘든 것을 직시하는 순간

그런 시간을 만나게 해준 이 책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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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 :: 2015/03/25 00:05

인간 현실을, 인간 문제를 다룬 소설을 읽다 보면 먹먹함과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뭔가를 직시하면서 그것을 글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고 독자가 되어 그것을 읽는다는 건 분명 맘 한 구석에 편치 않은 상을 심어나가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그런 불편함은..
딱 그만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 같다.

불편함의 크기 = 외면하려는 노력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건 좋은 데
그 노력의 지향점이 '외면'이라면 좀 그렇다.

인간 현실을 자꾸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
그걸 외면하는 사람들은 많다.

외면은 수동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단어이지만
실상은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내포하는 것 같다.

뭔가를 외면한다는 것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시공간을 선호한다는 얘기니까.

여전히 소설을 읽으면 나는 불편하다.
그 불편함이 외면의 동력이자 근원임을 알기에 더욱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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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와 충격 :: 2014/05/02 00:02

현대인은 스트레스를 수시로 받고 산다.  신문기사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인 '충격'도 종종 받으며 살아간다. 스트레스와 충격. 현대인의 절친이다. 현대인은 스트레스, 충격을 핵심 키워드로 지속적 RSS 피드를 충실하고 온전하게 받아보기로 작정하고 살아가는 듯 하다.

스트레스가 축적되면 만만치 않은 피로가 쌓이게 되고 그것이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충격이 누적되면 더욱 부정적인 임팩트가 몸과 마음에 가해지게 된다.

스트레스와 충격.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것일까?

스트레스의 강도와 부정적 임팩트는 철저히 수용자의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자가 스트레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스트레스는 수용자의 기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스트레스 수용자가 스트레스를 매우 부담스러워 하고 그것을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하게 되면 스트레스는 서서히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스탠스를 잡아가게 된다.  충격도 마찬가지다. 충격을 받게 되는 자가 그것을 별 거 아니라는 태도를 형성하면 충격은 미풍에 불과한 뭔가로 격하된다.

스트레스의 임팩트는 스트레스 자체에 내재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건 철저히 수용자의 태도에 의해 수위가 정해진다.  재미가 재미를 제공하는 자가 아닌 재미를 제공받는 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과 유사한 원리이다. 충격은 흡수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는 당당한 태도가 충격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시킨다. 수용자가 맘을 단단히 먹고 있으면 스트레스/충격 무력화 메커니즘을 타는 것이고 수용자가 어리버리 상태로 넋 놓고 있으면 멘붕 메커니즘을 타게 된다.

스트레스를 수용하는 자세.
충격을 수용하는 태도.

철저히 수용자의 역량에 의해 스트레스/충격의 강도와 효과가 정해지는 게임.

스트레스,충격의 주체가 누구인가?
누가 그걸 결정하는가?

바로 '나'라는 걸 망각하고 있어서 스트레스가 괴로운 거고 충격이 충격적인 거다. ^^



PS. 관련 포스트
재미와 착함
주체와 객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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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착함 :: 2014/01/29 00:09

왜 재미를 느끼는가?
재미있는 사람의 말을 들어서?
재미있는 경험을 해서?

재미의 주체는 누구인가?

재미를 결정하는 것은 재미있는 사람, 재미있는 현상이 아니다. 재미를 결정하는 것은 재미있어 하는 자이다. 재미있다고 느끼는 자가 재미를 결정하는 것이다. 재미는 주는 자보다는 받는 자 쪽에서 레버를 쥐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음과 재미없음의 경계를 결정하는 것. 재미의 허들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의 양상을 보인다. 누구에겐 배꼽잡고 자빠져야 할 재미가 누구에겐 아무런 의미 없는 소음에 불과할 수 있다. 재미는 철저히 수용자의 몫에 가까운 양상으로 매우 개인화된 수용 프로세스로 전개되기 마련이다.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재미있어질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훨씬 더 재미있어질 것이다.
'
재미'는 주는 능력보다 받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재미있다는 건 객체의 속성이 아니라 주체의 판단이다.

'
착함'도 재미와 유사하다.
착하다는 건 객체의 특질이 아니라 주체가 받는 인상이다.
재미의 탄생은 주체의 마음 안에서 일어난다.
'
착하다'보다는 '착하게 봐준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재미, 착함.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
주체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객체에게 전가하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객체에게 전가하고 있던 뭔가를 주체로 이관하는 과정 속에서 성찰은 깊어질 수 있는 것 같다.

어제는 재미를 이관하고
오늘은 착함을 이관하고
내일은 무엇을 이관해 볼까? ^^



PS.
관련 포스트
재미주기 vs. 재미받기
재미,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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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사시옹 :: 2014/01/27 00:07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의 '벡사시옹(Vexations)은 좀 황당하다. 악보는 달랑 한 페이지인데, '이 악보를 840번 반복하시오'란 지시가 악보에 적혀 있다. 지시대로 악보를 연주하려고 하면 무려 13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13시간 이상이 걸린다니. 그런 음악을 듣고 있다고 상상만 해도 짜증이 난다. 난 음악에 대한 조예가 없어서 이 음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그냥 작곡가가 장난을 친 것 아닌가?란 개인적 의혹을 지울 길이 없다. ^^

그러나..
음악을 잘 모르는 나이지만, '벡사시옹'을 접하게 되면서 느끼는 바가 있긴 하다. 그냥 나의 관점에서 내 멋대로 적어보는 소감이라고나 할까..

'반복'은 사람을 짜증나게 하고 성가시게 하며 무기력하게 만든다. 뭔가를 무한에 가깝게 반복하는 것은 분명 정해진 틀 내에서 쳇바퀴를 도는 에너지 소모적 행위로 여겨진다. 그런데, '반복'이란 단어 자체에 함정이 있긴 하다. 같은 일을 되풀이 한다는 것. 우린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같은 일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되풀이 한다는 것. 그게 인간에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반복'이란 단어 자체가 '버그' 아닐까? 불가능한 개념이 단어로 만들어져서 편의상 널리 유통되고, 그저 사용하기 편리한 단어라서 실상 그 단어가 허상에 가까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단어에 속고 또 속으면서 '반복'이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을 짝퉁처럼 체화시키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그건 환상일 것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아니라 어제와 같은 오늘일 거라고 착각하는, 어제와 그닥 달라지지 않은 오늘의 나일 것이라고 오해하는 어설픈 관성이 '반복'이란 환상을 낳고 스스로 만들어낸 '반복' 환상 속에 갇혀 지내면서 스스로 지루함을 생성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지루함의 굴레를 답답해 하며 '반복'이란 환상을 기어이 실체로 만들어 버리고야 마는 의도치 않은 집요함.

벡사시옹 악보에 적혀진 가이드대로 13시간을 넘게 연주하는 동안 연주자는 어떤 연주를 하게 될까? 그건 연주자의 태도에 달려 있는 것 아닐까? 마찬가지로 벡사시옹과도 같은 악보를 반복하듯 연주하는 모습이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악보엔 벡사시옹보다 훨씬 더 잔혹한(?^^) 가이드가 적혀 있는 것이고 그 가이드를 어떤 자세로 수용하고 어떤 모습으로 연주할 것인지는 각 개인의 역량에 의해 퀄리티가 좌우되지 않을까?

벡사시옹 악보를 보면서 나에게 주어진 벡사시옹 악보를 마음 속에서 형상화시켜 본다. 난 나만의 벡사시옹 악보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으이그. 이 지겨운 연주를 어떻게 해야 하나?란 멍한 눈빛일까? 아님 오늘은 이 악보를 어떤 색깔로 연주할까를 기대하는 초롱초롱한 눈빛일까?

난 지금 벡사시옹을 연주하고 있다. ^^



PS. 관련 포스트
무음,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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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 2013/09/02 00:02

매사에 거만하지 않고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살짝 거만해도 될 것 같은데도 항상 겸손의 자세를 견지한다. 왜 그럴까? 착해서? 자신이 없어서?

심성이 고와서 겸손한 경우도 있겠지만 겸손은 다분히 의도된 태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매사에 겸손하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사람은 흔히 나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타인의 흠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판단하길 좋아한다. 사실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는 사람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관계의 양태에서 발생하는 문제인 것이고 관계 이슈의 일정 지분은 반드시 나에게 존재하기 마련임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그것을 반성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겸손의 스탠스를 취한다는 것. 그건 매너가 좋음도 아니고 자신 없음의 표현도 아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 아직 성장할 room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성장을 향한 의지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성장에 도움이 되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 그것이 '겸손'에 내재된 태도이자 전략이다.

위장된 겸손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겸손. 맘 속 깊이 성장을 바라고 꿈꾸며 더 나은 모습으로의 발전을 위해 현재 내 모습을 끊임없이 낮추고
성찰하면서 미래를 향한 전진 스텝을 묵묵히 밟아나가는 모습. 겸손을 잃어버리는 순간, 성장은 정체되기 마련이다. 성장이 정체되면 불안해지고 불안은 자신을 합리화해야 하는 강박을 낳게 되고 나 자신의 부족함을 덮기 위해 타인을 향한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타인보다 나를 상위에 포지셔닝하기 위한 교만과 허세가 강화되는 모습.  겸손이 희소자원이 되어갈 때 성장정체-불안-교만의 악순환 고리가 번성하기 시작한다.

성장하고 싶다면 겸손해지자. 진심을 다한 겸손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겸손의 렌즈로 바라보는 세상은 나에게 성장이란 열매를 선물로 안겨줄 것이다. 겸손. 그것은 성장을 지향하는 자들의 지극히 스마트한 삶의 전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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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 알고리즘 :: 2013/06/24 00:04

시간은 변화를 낳는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변화는 흘러간다.

시간은 관성을 낳는다.
관성은 시간을 경화시킨다.

관성을 대하는 태도를 바라본다.
관성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면 관성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관성은 매우 효율적인 기제이다.
매번 계산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의성은 관성이 준 선물이다.

하지만 관성은 혜택만 제공하지 않는다.
관성의 틀 안에 갇혀 있다면 관성은 혜택보다 더 큰 폐해를 안겨준다.

관성에 갇혀 있는 만큼 성장은 정체된다.
관성을 이겨낸 딱 그만큼만 성장이 이뤄진다.

관성은 중력이다.
중력을 이겨낸 자가 날아갈 수 있듯
관성을 컨트롤하는 자는 성장의 flight를 즐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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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에 대한 태도 :: 2013/03/29 00:09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시간이 흘러가면 그 누구도 늙어가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런데 사람은 마치 자신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을 것처럼 사고/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젊어 보이기 위해, 젊어지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늙어 보이면 크게 손해 본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젊어 보이면 은근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결국 늙어간다. 어떻게든 늙어 보이지 않으려 애를 빠득빠득 쓰는 건, 자신이 늙어감을 부정적으로 여긴다는 것인데. 젊음에 대한 의식적/무의식적 긍정과 늙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굳어져 있다면 그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볼 필요가 있겠다. 

늙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자신의 생이 흘러가는 방향성에 대해 안티란 것이고 그런 안티 태도는 결코 자신에게 이로울 수가 없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든 막아보겠다고, 지연시키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은 좀 안쓰럽다.

피할 수 없는 것.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태도는 다분히 유연할 필요가 있다. 늙는 것이 순리이고 늙어가는 걸 피할 수 없다면 젊음과 늙음에 대한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빤히 늙어갈 것이 보이는데 젊어 보이려고 애를 쓰는 건 유아적 발상이고 일종의 떼쓰기이다. 젊음과 늙음을 차별하지 말고 젊음은 젊음대로, 늙음은 늙음 대로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노화는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생의 흐름 자체일 뿐이다.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보듯,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보듯. 편안하게 감상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젊음을 갈구하는 것은 stock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젊음과 늙음은 고정형이 아니라 유동형이다. flow에서 stock을 붙잡고 늘어지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끊임 없이 늙어가고 있다. 늙어가고 있는 것이 나라는 사실을 긍정하고 늙어가는 나를 즐거워하는 태도를 가져보자. 노화에 대한 태도는 삶에 대한 태도이다. 노화를 피하고 싶어하는 건 삶을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노화는 삶이다. 삶은 노화이다.
난 노화(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



PS. 관련 포스트
운빨과 수용
우리는 모두 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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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 알고리즘 :: 2013/02/25 00:05

생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짜투리 시간이 생긴다. 심지어는 모바일 시대를 맞아 소비자들의 짜투리 시간을 자신의 비즈니스에 득이 되는 쪽으로 유린하려는 사업적 움직임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보니 짜투리 시간은 계속 증가 추세에 놓여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은 짜투리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맘 편하게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먹듯 써버린다. 그런데.. 짜투리 시간의 주체는 누구인가? 스마트폰인가? 나인가?  정신줄 놓고 있으면 나의 짜투리 시간은 그걸 삼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모바일 비즈니스 등에게 속절없이 강탈당하고 만다. 짜투리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 비즈니스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는 삶의 질을 가늠할 중요한 갈림길이다.

갈림길에선, 스탠스를 명확하게 잡아야 한다.
스탠스를 분명하게 취하지 않으면 나를 향한 외부의 의도에 무작정 휘말릴 수 밖에 없다.

짜투리 시간에 대한 나의 태도를 선명하게 정의해보자. 짜투리 시간의 주체를 나로 삼아보자. 내가 짜투리 시간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짜투리 시간을 온전히 나의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비즈니스적 의도에 의해 나의 짜투리 시간이 유린당하지 않으려면 짜투리 시간 활용을 통해 누가 유익해지는가를 가늠해봐야 한다. 애니팡과 같은 모바일 게임에 짜투리 시간을 투입하는 것은 순간적인 뇌의 즐거움을 위해 모바일 사업자에게 나의 짜투리 시간을 갖다 바치는 행위이다. 그건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를 위하는 행동이다. 나의 짜투리 시간이 모바일 게임 비즈니스를 살찌우고 있단 얘기다. 그럼 나를 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시시각각 뇌에서 일어나는 각종 화학 반응들에 의해 휘둘리기 십상이다. 뭔가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을 때 나는 그것에 수시로 지배와 제어를 당하고 불안이 인도하는 기계적 삶의 패턴을 로봇처럼 답습하며 무기력한 몸짓을 반복하게 된다. 불안이 나를 제어하는 삶. 그 상황에 짜투리 시간을 투입해보자. 짜투리 시간이 나에게 허락될 때 그 시간을 애니팡하는데 사용하지 말고 나의 불안을 직시하는데 활용해 보자. 짜투리 시간의 힘은 은근 강해서 단 1분의 시간이라도 불안 직시에 투입될 경우, 불안은 움찔하면서 특유의 위용에 흠집이 생기고 그런 틈을 제대로 노리고 들어가면 불안은 주도권을 유지하지 못하고 어느덧 나의 자존에 위축당하는 수세에 놓이게 된다.

짜투리 시간의 힘은 의외의 맥락에서 나온다. 짜투리 시간은 연속성이 담보되지 않는 시간이어서 단절의 맥락에서 작동된다. 어떤 무거운 존재라도 짜투리 시간의 프레임에서는 가벼움 가득한 시선으로 응시당하게 된다. 나에게 위풍당당하게 군림해왔던 '불안'이란 존재를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낯선 시선으로 바로보면 불안은 예전처럼 나를 쉽게 대하지 못하고 나를 공략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게 된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수시로 기억을 휘발시키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 불안을 바라보자. 낯설어하는 눈빛에 편안함으로 대응하긴 무척 어렵다. 짜투리 시간의 힘은 '낯설어하기'에서 나온다.

무거운 것을 낯설게 바라보자.
나에게 주어진 짜투리 시간으로 무거운 것을 낯설게 대할 수 있다면
짜투리 시간은 더 이상 짜잘한 시간이 아니라 나름 짧고 파워풀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생소하지 않은 것을 생소하게 바라보는 것. 억지로 그렇게 하긴 어렵다. 하지만,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짜투리 시간이 허용될 때마다 메멘토의 남주인공이 되어서 무거움에 가벼움으로 대응해보자. 무거움이 가벼움이 되고 가벼움이 무거움이 되는 짜투리 시간의 매력에 아마 흠뻑 빠지게 될 것이고, 그런 시간들이 축적될수록 짜투리 시간은 나의 풍요를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기억과 자아 사이
짜투리와 메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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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 생산 :: 2012/10/05 00:05

사람은 누구나 존중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존중을 받고 있지 못한 처지에 머무를 때가 많다. 그렇다면 존중은 나름 희소한 자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

존중, 어떻게 주고 어떻게 받을 것인가?

존중은 일종의 재미인 것 같다.
재미를 결정하는 것은 재미있는 사람, 재미있는 현상이 아니다. 재미를 결정하는 것은 재미있어 하는 자이다. 재미있다고 느끼는 자가 재미를 결정한다. 재미는 주는 자보다는 받는 자 쪽에서 레버를 쥐고 있는 것이다. 재미가 유통되기 위해선 재미를 인지하고 느끼는 자가 많아야 한다. 재미를 생산하는 메인 주체는 재미있는 사람들이 아닌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이다. 존중도 마찬가지다. 존중이 유통되기 위해선 타인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 많아야 한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좀처럼 존중을 생성하지 못하는 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선 존중은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존중 받고 싶다면 먼저 존중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존중은 일종의 선물인 것 같다.
타인에게 선물을 주고 나서 대가를 바란다면 이미 선물의 취지는 자취를 감춘 뒤라고 봐야 한다. 대가를 바라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다. 선물은 대가를 망각할 때 빛을 발한다. 주고 나서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존중도 마찬가지다. 타인을 존중하려는 마음 자세를 갖추고 존중할 타이밍이 도래할 때 용감하게 존중을 해야 한다. 재미를 느끼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고 선물을 주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듯 존중도 용기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타인의 향기를 느끼려고 촉각을 곤두세우는 자세에서 존중이 나온다.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타인을 존중하려고 자세를 가다듬고 존중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존중의 에너지를 발산했는가에 좌우된다.  

존중 받기, 행복해지기.. 모든 사람들이 의식적이든 암묵적이든 바라고 바라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거울의 법칙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에 거울의 법칙을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한 존중과 행복을 가까이 하기란 매우 어렵다. 존중을 하는 만큼 나의 클래스가 격상하고 행복을 전파하는 만큼 나의 자존이 강화된다.

존중 받고자 하는 마음. 치기 가득한 마음이다. 그 유치함을 잘 어르고 달래주면서 성숙한 인간의 향취를 뿜어내기 위해선 존중의 방향키를 반대 방향으로 확 돌려줘야 한다.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을 세상에 더해 보자. 존중의 소비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존중의 생산자가 되려고 노력해 보자. 재미의 생산자가 되려고 노력하면 세상은 재미로 가득한 곳이 되고 존중의 생산자가 되려고 노력하면 세상은 존중으로 가득한 곳이 된다. 내 주위를 재미와 존중과 선물로 가득 채우면 세상은 그렇게 된다. 

결국 핵심은 "내 주위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란 질문에 잘 대답하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재미주기 vs. 재미받기
망각, 알고리즘
자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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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를 쓴다는 것 :: 2011/10/12 00:02

에고이즘님의 생각의 목요일들_은희경 포스트에서 기가 막힌 표현을 발견했다.



5년 가까이 해오고 있는 블로깅.
나는 블로깅을 통해 나의 잠재적 태도를 적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내가 Read & Lead 블로그에 적고 있는 글들은
은연 중에 나의 태도를 규정해 오고 있는 것 같다.

태도를 쓴다는 것.
가슴 설레고 책임감을 수반하는 일이다. ^^




PS. 관련 포스트
태도,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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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도, 알고리즘 :: 2010/02/03 00:03

실도(失道)를 통한 구도(求道): 길을 잃어야 길을 찾을 수 있다.



리스타트 핑
스튜어트 에이버리 골드 지음, 유영만 옮김/웅진윙스


작년에 에고이즘님으로부터 책을 5권이나 선물 받았다. (마이크로 소사이어티, 딜리셔스 샌드위치, 더 링크, 협상의 10계명, 내 머리 사용법)

5권의 귀한 선물도 벅차고 황송한데, 최근에 또 1권의 책을 선물로 받았다. 

'리스타트 핑'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우화형 자기계발서이다.  책이 얇고 쉽게 읽히면서도, 진중하게 다가오는 문장들이 마음에 묵직한 여운을 주는 그런 책이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란 말도 마음에 와닿고, 태도(Attitude)가 성취(Altitude)를 결정한다는 말도 좋은 느낌을 준다. 무언가 되기(be) 위해서는 무언가 해야만(do) 하는거야라는 말, 손을 비울 때 마음을 비울 수 있고 마음을 비워야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최근에 Richboy님의 '질문을 던져라 책이 답한다'를 읽고 트윗에 아래와 같은 글을 적은 적이 있다.
게임 중독이든 트위터 중독이든 아이폰 중독이든, 중독은 '나'와의 단절, 삶의 '지향' 결핍을 의미한다. 중독과 삶의 지향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중독을 직시하면 나를 직시할 수 있다. 중독은 나를 찾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그리고, '리스타트 핑'에서 아래 문장을 읽게 된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 길을 잃는 것이다. 나의 길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길을 잃는 것이다. 길을 잃어야 등대를 발견할 수 있다.


길을 잃는다는 것과 길을 찾는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길을 찾기 위한 강력한 준비 과정인 것이다.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길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서 길을 잃어버리는 과정 속에서 결국 '나'를 찾게 되는 과정이 삶의 여행이고 그 과정 속에 행복이 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사물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변해야 사물이 변하는 것이고, 나의 태도가 나의 성취를 결정한다는 단순한 진리는 말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과 태도가 얼마나 미천한 것인지를 '길을 잃는' 행동을 통해서 하나 하나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수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실도(失道)를 해야 구도(求道)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에고이즘님의 귀한 책 선물을 통해 중요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실도(失道)는 결코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스러운 과정이란 것을 말이다. 세상에 자기가 가야 할 길의 정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직접 실도(失道)하며 헤매고 나서야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길을 잃는 인생 여정 속에 삶의 의미와 행복이 잠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신 에고이즘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  





PS. 관련 포스트
말걸, 알고리즘
욕구, 알고리즘
관계, 알고리즘
나눔, 알고리즘
무언가 되기(Be) 위해서는 반드시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해야만(Do) 한다.
[장자] 소통의 철학 (망각+연결=소통 → 도행지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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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바 | 2010/02/03 00:43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근데, 에고이즘이 어떤 분인가요?
    살짝 블로그를 가보니 내공이 장난이 아는 듯^^

    • BlogIcon buckshot | 2010/02/03 09:22 | PERMALINK | EDIT/DEL

      저에게는 은인과도 같은 분이십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는지 모릅니다. 에고이즘님을 통해서. ^^

  • BlogIcon 토댁 | 2010/02/03 08:4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음~~~~
    탐나는 도다!! ㅋ
    마구마구 읽고 싶다능...

    에고이즘님도 멋지공, 울 buckshot님도 멋지공.
    멋진 분들 아는 토댁인 즐겁공..히히

    오늘도 짱 !! 멋진 날 되셈~~~

    • BlogIcon buckshot | 2010/02/03 09:24 | PERMALINK | EDIT/DEL

      토댁님! 오늘 날씨가 좀 춥네요. 아바타 잼있게 보셨나요? 전 아바타를 보면서 그야말로 실도(失道)를 했습니다. 무아지경에 빠졌었죠. 참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실도가 대센가봐요~ ^^

  • BlogIcon 박재욱.VC. | 2010/02/03 09: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요새 벅샷님의 블로그와 트위터를 오가며 글을 받아보는데, 각 미디어의 속성에 맞는 글들을 참 맛깔나게 쓰시는 것 같습니다. 트위터에서는 내공이 담긴 짧은 문장들을, 블로그에서는 그 것을 좀 더 알아듣기 쉽도록 풀어쓰시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저도 이런걸 빨리 배워야 할텐데 ^^;;

    '사물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변해야 사물이 변하는 것이고, 나의 태도가 나의 성취를 결정한다'라는 말 가슴에 새기고 갑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0/02/03 10:03 | PERMALINK | EDIT/DEL

      헉..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트위터는 참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블로그도 그윽한 매력이 여전하구요. 둘 다 저에겐 청량스러운 생활의 활력소인 것 같습니다. ^^

  • 친절한시선 | 2010/02/03 22:23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길을 잃어야 등대를 찾을 수 있다." - 리스타트 핑, 스튜어트 에이버리 - 요렇게 인용하면 되겠군요. 실도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이유는, 결국 등대를 찾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인데 만약 어떤 어리석은 자가 오늘 벅샷님 포스트 '실도'를 읽고 '득도'했다면 곧장 '실도'작업에 들어가겠군요. 벅샷님, read-lead.com 은 이렇듯 실도의 묘를 깨달아야 하는 자들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운영하시고, 새로 doTObe.com 같은 사이트를 만드셔서 득도한자들과의 커뮤니티를 새로 하나 여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하하하. 현재, 대한민국 조선산업이 득도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실도라고 해도 딱 맞아 떨어지겠습니다. 실도하지 않으면 금융위기 이후의 길을 밝혀 줄 등대를 못찾고 암흑기로 빠져 들겠죠. 등대는 보간이 아닌 외삽에 있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참 신나게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ego2sm 님 네이버 블로그도 RSS 리더에 등록하려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02/04 09:21 | PERMALINK | EDIT/DEL

      실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등대를 찾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 있다.. 너무나 와닿는 말씀이십니다. 깊이 새기겠습니다. ^^ 저의 등대를 찾기 위한 외삽을 힘차게 시작해 보려 합니다~ ^^

  • BlogIcon 엘민 | 2010/02/05 19:48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길을 잃어야 길을 찾는다는 말이 제게 큰 용기가 됩니다. 금과옥조와도 같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0/02/06 10:37 | PERMALINK | EDIT/DEL

      길을 잃는다는 것을 길을 찾는 중요한 과정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잃는다는 것'은 '얻는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인가 봅니다. ^^

  • BlogIcon ego2sm | 2010/02/05 23:5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니, 아니 이렇게 멋진 리뷰를 이제야 보다니요..ㅠ
    제가 요새 책 만드느라 정신을 놓고 있었더니 역시 벅샷님은
    이리도 멋진 핑의 길을 보여주고 계셨네요.
    "태도(Attitude)가 성취(Altitude)를 결정한다."에서 저도 밑줄 쫙~
    원서로 다시 한번 읽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저도 늘 감사하고 있어요! 제 오픈캐스트에 담아갑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02/06 11:49 | PERMALINK | EDIT/DEL

      진작 트랙백을 걸었어야 했는데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보내주신 책을 통해 큰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길을 잃는다는 것과 찾는다는 것을 분리하지 않고 그 둘이 하나라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저를 생각하게 해주시고 일깨워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 http://blog.naver.com/ddinne/98854292

  • BlogIcon Richboy | 2010/02/12 16: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벅샷님. 리치보이 입니다. 진즉 봤는데 이제야 글을 올립니다.
    우선 멋진 포스팅에 감사드립니다. 게다가 고견을 함께 더해주셔서 부족한 책이 빛을 발하는 듯 합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직장인들이 보다 많은 책을 접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만든 책인데, 많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중쇄되어 널리 읽히고 있는 듯 합니다. 모두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즐겁고 풍요로운 설연휴보내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시고요.^^
    자주 왕래하겠습니다. 곧 뵙기를 희망하며 줄입니다. 리치보이 올립니다.^_______^

    • BlogIcon buckshot | 2010/02/14 17:25 | PERMALINK | EDIT/DEL

      리치보이님의 선물로 인해 '문독'이란 소중한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싶구요. ^^ 즐거운 설 연휴 보내십시오. 앞으로도 문독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리치보이님의 통찰을 계속 배워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http://www.read-lead.com/blog/entry/문독-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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