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에 해당되는 글 15건

새롭게 태어나는 힘 :: 2018/01/12 00:02

산다는 것은
매일 태어나는 것이다.

생생하다는 건
어제와 같은 오늘이 아니라
오늘 내가 새로 태어났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
탄생일로부터 어제까지의 시간 연속체로 만들어져 있는 나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고
오늘 깨어나는 그 순간을 탄생일로 당연하게 정의하는 것이다.

일생에 태어나는 순간은 단 한 번이 아니라
잠들어 있다가 깨어나는 매 순간이 탄생의 의미를 지닌다는 비밀을 깨닫는 것이다.

계속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건 탄생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거고
그런 힘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그건 탄생력의 탄생이다. 

탄생할 수 있는 역량이 없으면
매일 매일의 시간들은 죽어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태..

매일 태어날 수 있어야
매일 죽어갈 수도 있는 것

죽음과 삶은 하나
그게 하나라는 걸 부정하려고 하니까
매일 태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게 되는 것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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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탄생 :: 2016/10/21 00:01

2016년 10월21일
당연히 존재하는 날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이 날을 상상하고
이 날을 소환하고
이 날을 기대하고
이 날을 준비하면

2016년 10월21일은 가슴 벅찬 현재로 탄생하게 된다.

현재는 그냥 지금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현재. 그건 놀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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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하기 :: 2015/10/23 00:03

지속을 한다는 것
버틴다는 것

엔트로피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다

엔트로피를 거스르고자 하는 노력
그 노력이 하루 하루 축적되면
지속의 맛을 알아가게 된다.

시간은 강하다
인간은 시간 앞에 나약하다

인간은 태어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이후에 잘 발생하기 힘들다
그만큼 탄생은 강력한 이벤트이다

지속하면
버티면
인간은 세상에 태어난 것과 맞먹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셈이 된다

객체로 세상에 태어나서
주체로 세상에 뭔가를 태어나게 할 때
비로소 인간은 인간이 된다

지속한다는 것
버틴다는 것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를 선언하고 실행하는 것

지속하기를 통해
삶을 배운다
살아있다는 건 지속하기를 위한 기본 전제 조건이다

나는 무엇을 지속하는가
나는 왜 지속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모두 같은 질문이고
그것들의 뿌리는 모두 한 곳이다

지속
그 단어 하나 만으로도 나는 설렌다




PS. 관련 포스트
지속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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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dge | 2015/10/28 07: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무엇을 지속하느가를 곰곰히 생각하다.
    왜 지속하는가란 질문에 생각이 많아지네요...ㅎㅎ
    잠시 생각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5/10/30 23:24 | PERMALINK | EDIT/DEL

      요즘 '지속'에 대해서 생각을 계속 하게 되네요.
      지속의 의미를 새기다 보면 지속하는 것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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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찾기 :: 2015/09/30 00:00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맘에 들 것 같은 사이트를 발견하면 즐겨찾기를 한다.
그리고 웬만하면 재방문을 안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의 즐겨찾기는 내겐 슬로건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하는 기능인 셈이다.
말만 즐겨찾기이지 실제로는 즐겨찾고 싶지만 좀처럼 그렇게 되기 어려운 명목 상의 즐겨찾기.

게다가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나의 관심은 점점 특정 사이트에 맘을 주기가 어려워지면서
즐겨찾기는 그야말로 희소한 행위가 되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즐겨찾기의 대상이 좀처럼 나타나주지 않는 요즘.
정말 희소한 가치를 뿜어내며 내 눈 앞에 홀연히 나타나는 사이트가 생겨나면
그건 정말 발견의 순간, 아니 창조의 섬광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느낌이다.
경건한 손 떨림으로 즐겨찾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사이트에 다음 날 재방문한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도 당연히 그 사이트를 찾아간다.

즐겨찾기라는 슬로건을
명목 상의 기능에서 실재하는 기능으로 격상시켜 주는
그런 사이트를 만난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마치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았을 때의 감격과 비견할 수 있는
위대한 이벤트.

즐겨찾기.
그건 정말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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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놀이 :: 2015/07/29 00:09

한가지 자아만 내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복수의 자아, 복수의 개성이 내 안에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복수의 자아/개성을 억지로 단수로 봉합하지 말고
복수의 미학을 즐길 필요도 있을 듯 싶다.

나의 개성과 자아를 3명으로 나눈 후
예를 들어 회사원, 독서가, 온라인서퍼로 나눈 후
셋이 토론을 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면 어떨까?

그래서 서로 대화를 하게 하고
서로 논쟁을 하게 하고
서로 각자의 구상을 얘기하도록 하면 어떨까?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복수의 관점을 어설프게 단수인 듯 뭉개면서 생각을 정리하려 하지 말고
내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관점을 그대로 다 인정하고 그것들이 각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주면 어떨까?

그들이 서로 대화하면서 논쟁하면서
뭔가 공감대를 찾아가도록 판을 깔아준다면
내 안의 개성, 자아들은 거대한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까.

결국 많은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어 있는 것이고
난 그것을 깨우는데 너무 둔감했던 듯.

그것들을 깨울 수 있다면.
뭔가가 깨어날 수 있는 맥락을 내가 감지하고 촉발시킬 수 있다면. :)




PS. 관련 포스트

거잠,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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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 2014/05/30 00:00

4월19일에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간 김에 책장을 바라보며 책상에 앉는 구조로 바꾸어 보았다.
허구한 날 책장을 바라보며 앉아 있게 되었다.
구도에 변화가 일어나자 책장 자체를 꾸미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예전의 책장은 단지 책을 꽂아 놓는 보관소에 불과했다.
그런데 책장을 수시로 바라보는 상황으로 진입하다 보니 책장에 변화를 주고  싶어졌다.
마치 오프라인 서점에서 많이 팔고 싶은 상품을 전진배치하는 것과 유사한 심경이라고나 할까.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 다시 읽어볼까 말까 하는 책을 빼서 앞면 배치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을 쉽사리 읽지는 않고 단지 책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놀이를 즐기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책 내용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고
책 내용에서 이탈하여 나만의 레일을 닦아나가는 상상력 자극 놀이도 하게 된다.

단지 책장을 바라보는 빈도가 늘어났을 뿐인데.
책에 대한 시각적 접근성이 제고됨에 따라
책장을 일종의 프론트 페이지로 규정하게 되고
그것을 관리하는 리소스를 탄생시키고 만 셈이다.
그렇게 된 상황의 흐름에 재미를 느낀다.
바라본다는 것은 그런 거다.
바라보면 바라봄의 대상은 살아 움직이게 되는 거다.
내가 움직여 놓은 게 아니라 그것이 움직인 거다.
그것이 움직이고 싶어진 거고 난 그것의 욕망에 의해 조종된 거다.

나는 책장을 바라보았고
책장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움직이게 되었다.

이사를 갔고
책장을 봤고
이제 책장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책장의 시선이 따사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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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ete, Position :: 2014/04/23 00:03

디지털 세상에선 수시로 삭제를 하곤 한다.  필요 없는 파일을 지우고 텍스트와 이미지를 지운다. 1과 0 사이에서 OnOff를 오가는 디지털 모드에선 삭제는 매우 일상적인 행위이다. 삭제를 하면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없어지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고 어렴풋이 추측한다.

삭제란 무엇일까?

삭제는 뭔가를 없애면서 뭔가를 생겨나게 하는 행위이다.  무엇을 지우면 무엇에 연관된 다른 무엇이 변형되거나 생겨난다. 지우는 건 소멸시키는 게 아니라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뭔가를 이동시키는 것이다.  만물은 정보이다. 정보는 완전 소멸되진 않는다. 형태를 바꾸거나 구성이 재편되면서 시공간 상의 좌표 점유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지 완전 없어지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이사를 하면서 책 정리를 할 때, 필요 없을 거라 판단한 책을 내버리는 행위. 그 때 그 책은 정말 나로부터 완전히 사라지는 것일까? 아무리 나로부터 멀어진다고 해도 그 책과 나와의 관계는 분명 존재하는 것일 텐데. 그 책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어느 특정한 계기가 주어지면서 문득 그 책 제목이, 책 내용이 떠오른다면 그 책은 결국 소멸되지 않았음이 입증되는 것 아닐까?

삭제를 하면서 삭제 대상으로부터의 거리를 스스로 컨트롤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실은 삭제하면서 오히려 그 대상과의 거리가 가까워질 수도 있다. 물론 멀어질 수도 있기도 하겠고, 거리가 새로운 양상으로 재구성될 수도 있다. 거리의 차원이 멀고 가까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대상 사이에 놓인 길의 결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고 여러 가지 차원이 형성되면서 어떤 차원에선 거리가 가깝고, 어떤 차원에선 거리가 멀게 형성되는 등의 다채로운 상호작용의 장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삭제는 나름 고도화된 창조 행위이다.
무로부터 뭔가를 만드는 게 어렵듯이, 뭔가를 삭제하는 것도 무가 아닌 유로부터 시작되기 마련이다. 

뭔가를 삭제하면서 뭔가가 있던 공간의 기운을 바꾸는 것.
삭제를 단순하게 생각하면 삭제의 본질로부터 멀어진다.

삭제는 1을 0으로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1을 N으로 만드는 행위다.
디지털은 1과 0을 오가는 선형적 진자 놀이가 아니라, N과 N을 오가는 다차원 네트워킹 게임이다.

삭제되면서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그것이 소멸된 게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여 새로운 포지션을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내가 삭제한 수많은 대상들.
그것이 현재 어느 시공간에 어떤 모습으로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지.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그것을 알게 해주는 좋은 도구가 블로그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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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탄생 :: 2013/12/13 00:03

단 3개의 포스트에 불과하지만, '시선'이란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포스트를 3개 갖고 있다는 것이 내가 2013년의 나를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 같다.

시선과 거리
시선과 시선
시간과 시선


특히 시선과 시선이란 포스트를 올해 1월16일에 적을 수 있었던 건 내게 큰 행운인 듯 하다.

나의 생각 여정은 시선과 시선 포스트를 올리기 전과 올린 후로 나뉜다.  이 포스트를 적은 후로 다양한 시선을 접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고 그런 노력들이 당장 가시적인 결과로 나타나진 않았지만 내 안에 차곡차곡 축적되는 모습으로 나의 생각은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얼마나 편협한 시선의 굴레에 갇혀 있었는지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내가 갇혀 있던 시선의 프레임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얼마나 값진 경험인지 알게 되었고 그런 배움을 통해 다른 시선을 알고자 하는 시선 시뮬레이션 여행을 다채로운 모습으로 떠날 수 있는 기회를 극적으로 획득하게 된 것에 감사했다.

돌이켜 보면 2013년 1월16일에 적은 아래 포스트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꽤 오래 전에 적은 것 같은데 불과 올해 초였다니. ^^

시선과 시선

물고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광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독수리의 시선은? 치타의 시선은? 개미의 시선은? 시선 놀이만큼 재미 있는 게 세상에 또 있을까?  본다는 것은 나를 규정하고 나를 규정하는 프레임을 설정하고 나를 규정하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특정 시선을 갖고 객체를 바라보는 주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규정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규정되는 '나'에 의해 시선은 형체를 띠는 것이고, 규정된 나에 의해 형성되는 시선은 지속적으로 규정된 '나'를 강화시킨다. 뭔가를 보는 것은 대단히 후행적인 사건이다. 이미 그전에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세팅되어 버리는 것이고 그렇게 일사천리로 정해진 규격이 이후에 전개되는 대부분의 프로세스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주체는 뭔가를 보면서 시선이 생성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은 시선은 지극히 전면적인 전처리 과정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유형의 시선이 존재한다. 또한 특정 유형의 시선들도 저마다의 독특한 시선 특성을 지닌다. 특정 유형의 시선을 탑재하는 건 세상을 향해 오롯한 선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넓디 넓은 세상을 선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매우 과감하고 무모하고 어이없는 치기 어린 행위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수많은 유형의 시선에게 부여된 냉정한 현실인 것이고, 시선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가공할만한 한계성을 그닥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에게 부여된 가냘픈 '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게 된다.하지만, 부여된 툴이 너무 빈약하기만 하진 않다. 선은 홀로 존재하면 너무도 취약한 상태에 불과하지만 선과 선이 교차하는 순간 선은 면의 가능성을 지니게 되고 선과 선과 선이 만날 때 입체의 잠재성을 발할 수 있다. 문제는 '선'의 한계성이 아니라, 자신에게 부여된 '선'에만 갇히는가 아니면 다른 선과의 만남을 즐길 수 있는가이다. 물고기의 시선이 독수리의 시선과 만날 때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날까?  광물의 시선과 인간의 시선이 만나면 어떤 면이 탄생하는가? 치타의 시선과 개미의 시선과 박테리아의 시선이 만나면 어떤 입체가 만들어질까? 하나의 시선이 만들어지기 위한 무수한 전처리 과정은 특정 시선을 매우 협소한 궁지로 몰아넣는 경향이 있으나 시선과 시선이 만나서 이뤄내는 무수한 가능성은 거대한 후처리 과정을 낳게 된다. 그리고 난 후에 발생하는 전처리 과정과 후처리 과정의 연결. 여기서 시선은 거대한 도약을 하게 된다. 시선과 시선. 그 거대한 매치메이킹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시선을 지닌 자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물고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광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독수리의 시선은? 치타의 시선은? 개미의 시선은? 시선 놀이만큼 재미 있는 게 세상에 또 있을까? ^^


그리고 위 포스트는 2011년 12월7일에 적었던 아래 포스트와 궤를 같이 한다.

점, 선, 면, 입체, 그리고..

A는 점에 머무는 자였다. A는 점이 항상 답답했다. 항상 한 자리에 멍하니 머물러 있는 자신이 바보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유를 꿈꿨다. 어디로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움직이고 싶었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보고 싶었다. A는 점을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했고 점이 자신을 구속하는 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A를 둘러 싼 공간은 점에서 선이 되었다. A는 너무나 기뻤다. A는 선 상에서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예전 점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자유감을 맛 볼 수 있었다. A는 선이 새롭게 열어준 진보된 세상 속에서 사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어느 날 A를 둘러 싼 공간은 선에서 면이 되었다. A는 이전의 '선' 시절을 까맣게 잊고 면이 선사하는 꿈같은 신천지를 마음껏 누비고 다녔다. 면에서 생활하다 보니 과거의 선 생활을 돌이켜 보면 너무 끔찍하단 생각이 들기조차 했다. 도대체 선에서의 생활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젠 예전 선 생활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느 날 A를 둘러 싼 공간은 면에서 입체가 되었다. A는 이제 모든 것을 얻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나의 세상은 완성이 되었구나. 이제 나는 이 놀라운 세상 속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구나. 예전의 면, 선, 점에서의 생활은 이제 나에겐 흐릿하게 잊혀져만 가는 원시적 과거에 불과하겠구나. A는 입체 속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꿈만 같았다. A는 입체에 머무는 자가 되었다. 그런데.. A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A가 머물고 있는 입체는 아주 오래 전에 A가 머물던 점 속에 잠재하던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결국 점은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빅뱅 이전의 공(空)과도 같은 상태였다는 것을.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고 면이 입체가 되는 과정은 발전이 아닌 단지 점이 추는 가벼운 춤에 불과했다는 것을. 결국 A가 머물고 있고 A가 너무도 자랑스러워 하는 '입체'는 점을 너무도 그리워하고 있고 언젠간 꼭 점이 되고 말리란 꿈을 단 한시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난 행복하다.
2011년의 점, 선, 면, 입체, 그리고.. 포스트가 있어서.
2013년의 시선과 시선 포스트가 있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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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 2013/09/04 00:04

소설을 읽다 보면
소설가들이 '첫 문장'에 공을 많이 들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첫 문장.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함축하고 있으며
소설가로 하여금 끝까지 소설을 쓰게 만들고야 마는 텍스트 생명활동의 동력.

전체 스토리라인을 구상한 후에 첫 문장부터 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매력적인 첫 문장이 머리 속에 불현듯 떠오르고 그 첫 문장의 매력에 사로잡힌 채
어떻게든 그 첫 문장의 매혹을 지속하면서 스토리라인을 잡아나가는 것.
첫 문장이 이끄는 스토리라인. 스토리라인이 지속적으로 바라보는 첫 문장이란 이름의 로망.

첫 문장을 낳게 하는 이미지.
우연히 보게 된 어떤 장면, 문득 떠오른 어떤 생각이 마음 속에 이미지를 품게 하고
그 스냅샷이 첫 문장을 탄생시킨다.

단 한 장의 이미지가 마음 속에서 생성되고 그 이미지가 거대한 스토리라인을 산출하는 과정.
소설을 쓴다는 것은 참 매력적인 과업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블로깅에서도 첫 문장의 힘이 작동하는 것 같다. 무심코 머리 속에 떠오른 'Read & Lead'라는 타이틀로 블로그를 개설했는데, 'Read & Lead'라는 첫 문장의 매력에 나 스스로 매혹된 채 그 매력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 블로깅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만약 어리버리한 이름으로 블로그 타이틀을 삼았다면 과연 지금까지 블로깅을 할 수 있었을까? ^^

매력적인 첫 문장의 탄생.
그리고 첫 문장의 매력을 집요하게 유지하면서 소설이란 삶을, 블로깅이란 삶을 영위하는 것.
첫 문장이 이끄는 삶. 첫 문장이 매력적이면 삶 자체가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에게 드리는 질문,
"당신의 마음 속 '첫 문장'은 무엇인가요?"



PS. 관련 포스트
첫 문장부터 매력적인 소설들
대본과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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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확인의 압박 :: 2011/08/17 00:07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중혁 외 지음/문학동네

배명훈의 단편소설 '안녕, 인공존재!'에는 아래와 같은 기이한 제품 설명서가 등장한다.

본 제품은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 공법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데카르트는 Cogito ergo sum이라는 특정 형태의 존재를 최초로 추출해낸 프랑스 학자입니다. 물론 존재를 추출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 데카르트가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중요한 이유는 존재를 추출해내는 데 사용한 방법을 근대적인 형태의 기록으로 남겼을 뿐만 아니라, 추출해낸 존재를 응용하는 방식까지 구현해냈기 때문입니다. 방법론적 회의 공법은 감각기관의 정확성을 하나씩 의심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빛, 소리, 촉감 등 세상으로부터 개체를 향해 유입되는 신호를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기관은 그 자체가 오류를 범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감각정보 하나하나로부터, 결코 실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통합적인 공간을 재구성하여 인간의 머리 속에 재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짜 존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각기관을 확장시키기 위해 고안된 모든 디바이스를 차단해야 합니다. (전원을 연결했을 때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기기 고장이 아닙니다) 본 제품은 Dubito 회로라는 회의 회로를 통해 데카르트의 존재 추출법을 반복 시행하여 순도 높은 결정 형태의 존재, Cogito를 추출해냅니다. 회의회로 동작 결과, 모든 외부 자극과 그로 인해 제품 내부에 가상으로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완전히 부정되며, 이 같은 무한 의심이 반복되면서 오로지 의심만 하는 가상자아 하나만이 남게 됩니다. 곧이어 의심하는 자아가 의심하는 자아 스스로를 의심하는 논리 순환에 이르는 순간 Cogito가 발생합니다. (전원 연결 후 오 분에서 육 분 사이에 이루어지며 이후 지속됩니다)


소설을 읽고 난 후,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확인하곤 한다. 회사에서 이메일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은 자신이 회사에 연결되어 있음을 자신이 사회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스마트폰을 매만지는 것은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와 연결되고 자신 만의 관계망에서 소외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운동을 하는 것은 삶을 건강하게 영위할 수 있는 건강한 체력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존재를 무의식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하지만,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존재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은 존재를 의심한다는 것이고 존재를 의심하는 과정 자체가 존재력을 약화시키는 메커니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존재가 강력한 존재력을 과시하는 순간은 존재를 의심하며 끊임없이 존재를 확인하는 행위를 자신감 있게 중단하는 순간이 아닐까?  존재확인의 압박을 놓을 때 존재는 탄생하는 것이다.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존재다.

존재 자체를 믿어 버릴 필요가 있다. 끊임없이 뭔가를 수행하며 존재를 무의식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중단하고 그 중단 상태를 즐기는 훈련을 몸에 익힐 필요가 있다.  존재를 의심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무의식적 행위는 사실 매우 유아적인 행위라 볼 수 있다. 그런 치기 가득한 행위를 직시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사고/행위 프레임을 익혀나갈 때 존재는 더욱 강해진다.

통상적으로 인간이 불안에 빠지는 '무위'의 상태가 사실은 존재감이 충만한 상태라는 것.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는 n명의 독자에게 n개의 생각을 가능케 하는 소설이다. 아니 n명의 독자가 n번을 읽을 때 (n X n)개의 생각을 가능케 하는 소설이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후에 또 한 번 읽어볼 생각이다. ^^




PS.  관련 포스트
의심, 알고리즘
시공간을 빛의 속도로 이동한다는 것.
나, 시공간, 해체
휘발, 알고리즘
시간,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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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도구, 의도, 양자 :: 2011/05/27 00:07


경계는 가상으로 설정한 막(membrane)이지 실체가 아니다. 근데 살다 보면 경계를 '막'이 아닌 하나의 견고한 '벽'으로 믿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막'으로 구성된 존재다. 인간 '막'은 수많은 물질적/비물질적 정보들이 빠른 속도로 투과되는 다이내믹한 공간이다. 인간의 '안'과 '밖'을 과연 명확히 규정할 수 있을까? 인간의 '안'과 '밖'을 명확히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인간을 완전 독립된 개체로 규정하고 생존을 위해 경쟁의 몸부림을 지속하는 존재로 살아가게 해야 이익을 보는 구조가 만연되어 있어서 그런 환상이 Fact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도구
인간은 편하게(?) 살기 위해 도구를 발전시킨다 도구가 진화하면 할수록 인간의 삶은 간접화/가상화의 물결 속에 휩쓸려가게 된다. 도구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인간은 '섬'이 되어간다. 도구는 인간과 인간을 매개한다. 매개 당하는 존재는 소외를 당하는 경향이 있다. 도구는 인간을 소외시킨다. 자본, 기술, 미디어는 모두 경지에 이른 거대한 도구들이다. 도구를 통한 커뮤니케이션도 분명 의도를 담은 메세지를 발신/수신하는 과정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도구에 의존하는 커뮤니케이션이란 설정 자체에 함정이 있다. 도구가 규정하는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매개 당하는 과정에서 의도의 감도는 저하되기 마련이다. 도구를 통해 나의 의도를 발신한다고 생각해도 실상은 도구의 의도를 대신 발신하는 의도 에이전트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도구가 advanced 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의도
만물은 저마다 의도를 갖고 있다. 하물며 인간이 고생고생해서(?^^) 축조한 자본/기술/미디어와 같은 거대 도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자본은, 기술은, 미디어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하여 시시각각 우리에게 의도된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만물은 저마다 자신만의 메세지를 발신한다. 인간을 향한 거대 도구의 메세지 발신은 증폭의 양상을 띠고 있다. 그에 비해 도구를 향한 인간의 메세지 발신은 미약하기 그지 없다. 인간-도구 간 메세지 flow의 비대칭 현상. 고유한 나만의 '의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나만의 정체성에 기반한 unique한 의도를 견지할 수 있다면, 어떤 도구를 사용한다 해도 그 도구의 의도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의도를 제대로 발산할 수 있다.

양자
광물, 식물, 동물, 인간은 모두 양자(quantum)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인간이 발전시킨 문명은 인간에게 원자(atom)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도구를 선사했다. 가시적 원자가 암묵적 양자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구 문명은 인간을 자꾸 원자(atom)적 존재로 환원시키려 한다. 하지만 인간은 원자(atom)적 존재로만 환원시키기엔 너무나 양자(quantum)적이다. 바로 여기에 서구 문명의 비극이 존재한다. 나와 타인이 대화할 때, 타인은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바라보고 느끼고 대화하는 게 아니다. 타인은 자신의 인식체계 안에 별도로 '가상의 나'를 새롭게 구축하고 그것을 인지하는 거다. 그건 '실재하는 나'와 다른 별개의 존재다. 수시로 탄생하는 '나'



PS. 관련 포스트
생각의 파동, 언어의 파동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2 - Compilation Post
가설, 알고리즘
심로,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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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 필터와 1인 미디어의 탄생 :: 2010/06/14 00:04

'웹'이라는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정보'의 개념은 패러다임 쉬프트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엔 정보가 생산되었을 때, 정보가 탄생했다고 간주해도 무방했다. 이젠 아니다. 웹 미디어 상의 정보는 생산 시점에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 의해 소비되는 시점에 탄생한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보 접근성이 현저하게 증가하고 정보를 선별해서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필터의 등장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웹'은 거대한 개인화 미디어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웹 유저는 자신만의 정보 소비패턴에 의해 웹 상의 정보를 소비한다. 포털에서 검색하고 메일링하고 네이트온으로 채팅하고 블로그 포스팅하고 트위팅하고 뉴스나 게시판 사이트에서 댓글링하고 유튜브/판도라에서 동영상 보고 자신이 즐겨 찾는 웹 사이트들을 찾아 다니며 단순 스캐닝하고..  이렇게 다양한 웹 상의 정보 소비 패턴은 유저가 자신에 입맛에 맞는 정보를 필터링하는 행위이다. 유저 개개인에 커스터마이징된 개인화 웹 소비 필터를 정보가 통과하면서 정보는 유저에 의해 소비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정보는 비로소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트래픽/구독자/팔로워 많은 블로거,트위터유저가 1인 미디어인가?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구독자/팔로워가 100만명이 넘든, 1명이든 웹 상에선 일개 먼지와도 같은 롱테일에 불과하다. 롱테일에겐 미디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리 구독자/팔로워가 많아도 웹 상에 존재하는 일개 CP 정도로 포지셔닝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즉, 개개의 블로그/트윗은 웹 유저의 niche스런 니즈에 부합하는 작은 컨텐츠에 불과한 것이지 미디어라 보긴 민망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러면, 1인 미디어는 무엇인가?

1인 미디어는 '수많은 유저들의 개인화된 웹 소비 공간' 그 자체이다.

특정 블로거, 트위터 유저가 1인 미디어가 아니라, 수많은 웹 유저들이 각자의 의도/습관에 따라 웹을 필터하고 소비해 나가는 개인화된 흐름 자체가 1인 미디어인 것이다. 10명의 아이폰 유저가 아이폰을 사용하는 패턴이 10인 10색이듯이, 웹을 소비하는 유저의 웹 사용 패턴도 철저히 개인화되어 있는 것이다. 예전엔 전통 매체가 퍼블리싱하는 정보를 획일화된 유통 채널에 의해 획일적인 포맷으로 전달받는 소비자들이었지만, 이젠 다변화된 유통채널에 의해 다변화된 포맷으로 정보를 손수 필터링하고 그 필터링된 정보를 역동적으로 소비하는 1인 미디어 시대가 이미 도래한 것이다.

웹 유저들은 자신만의 정보 필터를 통해 웹을 1인 미디어로 동적 생성/활용하고 있다. 아이폰만 개인화 공간이 아니라 PC 웹에서 펼쳐지는 '유저 주목의 흐름'도 일종의 개인화 공간 차원에서 전개된다. 1인 미디어 상에선 수많은 컨텐츠/컨텍스트가 역동적으로 명멸한다. 그 역동적 흐름을 어떻게 탈 것인지가 미디어 패러다임 전환 시대의 새로운 어젠더이다. 이제 개인화 필터에 의해 역동적 탄생을 지속하고 있는 1인 미디어에 대한 본격적인 이해가 시작되어야 할 타이밍이 된 것 같다.
(전통 미디어의 정적인 정보 생산 vs. 1인 미디어 상의 동적인 정보 소비 ^^)



PS. 관련 포스트
범용, 알고리즘
넷헙, 알고리즘

PS. 관련 트윗
공급과잉 시대엔 생산보다 소비에 주도권이 실린다. 웹미디어의 부상은 '정보생산' 민주화 보단 '정보소비' 민주화 쪽에 의미를 부여한다. 공급자는 "어떻게 소비될까?"를 사용자는 "어떻게 소비할까?"를 고민하는 시대.
소비자의 마음이 포털/검색엔진이고, 소비자의 마음이 소셜 네트웍이고, 소비자의 마음이 디바이스이다. 바야흐로 '소비'가 모든 것의 중심인 시대가 왔다. 소비는 산업/시장을 넘나들며 산업/시장을 범용화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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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 알고리즘 :: 2009/12/16 00:06

2007년 4월17일에
창의력 계발 = 나 자신을 알아가는 끝없는 과정이란 제목의 포스트를 올렸다. 


그리고
2년 7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2009년 12월 5일에
오픈캐스트에 2년 7개월 전의 그 포스트를 무심코 우연히 올렸다.  ('창의력 계발이란?')




2009년 12월5일에
일이관지님께서 오픈캐스트를 통해 창의력 계발 = 나 자신을 알아가는 끝없는 과정 포스트를 보시고 아래와 같이 댓글을 주셨다.
일이관지 | 2009/12/05 00:45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예전에 교육심리세미나에서 창의성에 대해서 배운 것이 생각나는 군요..  Plucker의 정의를 외웠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안 납니다. 여러 정의들이 공통적으로 내포하고 있는게 가치,독특성이었던 것같네요. 제게 있어서도 창의성이란 자신의 경험(독특)을 조직이나 사회에 목적에 맞게 통합(가치)해 내는 것이라고 수업 때 제 맘대로 정의를 했던 것만 기억나네요..;;;


2009년 12월5일에
일이관지님의 댓글에 자극을 받고 아래와 같이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2009년 12월5일에
아거님께서 나의 트윗을 보시고 아래와 같이 댓글을 주셨다.
아거 | 2009/12/05 11:57

자기계발과는 좀 거리가 떨어진 이야기겠지만, 인용해 주신 원문에서 11번 " Don't try to stand out from the crowd; avoid crowds altogether." 라는 말에 꽂혔습니다. 분주한 곳에서 창의력이 나올 수 없고, 전염적으로 퍼지는 뭔가에 휘말려서는 창의력이 나올 수 없는 것이겠죠.

며칠 전에 팀 버튼 인터뷰를 읽었는데요. 그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은 이겁니다: 팀 버튼은 어려서 만화를 읽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너무나 글자가 많아서. 디즈니 장학금을 받고 디즈니스튜디오에서 일했지만 '사카린 스토리 라인'을 받아들일 수 없어, 혼자서 그리고 싶었던 것, 기존에 없었던 그림들에 몰두했다고 한다. http://online.wsj.com/article/SB10001424052748704888404574547711948377276.html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내고 싶었던 열정이 있었던, 그리고 기존 패러다임에 순응하기를 거부했던 팀 버튼은 buckshot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가장 창의적이며 독특한 세계를 그려낸 대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겠죠.

물론 은둔형 reclusive가 되는 길이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찾는데 유일하고 가장 이상적인 방법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위대한 작품이나 발명은 모두 단순하고 고독한 환경에서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문득 키웨스트에 있던 헤밍웨이 집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전 그 안에는 안 들어갔습니다... ^^)



2009년 12월9일에
아거님 댓글을 떠올리며
'혼자, 알고리즘'이란 포스팅을 하게 된다.





2년 7개월 전 포스트가
오픈캐스트와 트위터를 통해
일이관지님과 아거님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고,
그 피드백을 통해 블로그 아카이브 속에 잠들어 있던 포스트가 잠에서 극적으로 깨어났고,
그 포스트는 2년 7개월 간의 잠에서 깨어나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포스팅으로 이어졌다.

재생의 기쁨은 탄생 못지 않게 값지다. 
오픈캐스트/트위터를 통한 두 분의 귀한 피드백이
잠자고 있던 조악한 포스트 하나를 살며시 깨웠다.

피드백은 잠자고 있는 포스트를 재생시키기도 하고,
잠자고 있던 잠재력/열정을 재생시키기도 한다. 
피드백은 재생의 마법사인가 보다. ^^




PS. 관련 포스트
거잠, 알고리즘
회상,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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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토댁 | 2009/12/16 09: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서로서로가 이어이어 엮어져 가는 웹의 세계가 놀랍습니다.
    아주 아주 옛날처럼 얼굴보며 쌓는 정은 아니질라도
    그에 못지 않은 웹의 정이 쌓이는 것 같습니다.

    이 토댁은 창의력은 없는 듯 하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은 있는듯..ㅋ

    아직 끝없이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나 봅니다.
    올해의 이루어싶었던 자아찾기가 아직 끝을 매지 못하는군요.
    그래도 작년 이 맘때보다 "나"가 보이는 것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날 되세욤~~

    • BlogIcon buckshot | 2009/12/16 09:27 | PERMALINK | EDIT/DEL

      자아를 찾는 과정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평생 찾는 과정 속에서 펼쳐지는 여러가지 경험들이 자아가 아닐까 싶어요. 토댁님의 댓글로 인해 힘차게 아침을 열어제낍니다. 감사해요~ ^^

  • 취백당 | 2009/12/17 13:26 | PERMALINK | EDIT/DEL | REPLY

    문명의 발전 자체가 먹고 사는데서 해방되면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12/18 09:39 | PERMALINK | EDIT/DEL

      마음의 여유가 허락하는 만큼 자신을 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유연성을 계속 길러가고 싶어요~ ^^

  • BlogIcon 박재욱.VC. | 2009/12/22 13:3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역시 이런 맛에 블로그를 하는게 아닌가 싶군요. 좋은 피드백은 블로거의 마음을 살찌우는 양식이 되는 것 같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9/12/23 09:35 | PERMALINK | EDIT/DEL

      오래 전 포스트가 잠에서 깨어나고,
      예전 포스트에 대한 귀한 피드백을 통해 제가 깨어나고.
      참 귀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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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 & Death - 생명은 동적 평형의 흐름 그 자체이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읽고) :: 2008/07/11 00:01

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은행나무

모 서점 과학 코너를 두리번거리다 이 책을 발견했을 때 그냥 필이 꽂혀서 집어 들었고 내용 좀 훑어 본 후에 바로 구매했다.  읽는 내내 흥미롭다는 느낌이었고 읽고 난 후에 충만한 포만감이 몰려 드는 그런 책이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결코 무겁지 않고 아기자기한 특유의 니폰필로 풀어나가는 스토리 텔링 기법도 무난하게 다가온다.  생명의 비밀을 풀어가고자 하는 선대 생물학자들의 치열한 고민과 암투(?), 그들의 평생을 건 연구들이 생명의 열쇠를 푸는 단초가 되고 그것들이 쌓여서 지금의 지식으로 형상화 되는 과정이 매우 경이적이다.

또한, 생명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갖고 있었던 생물학계의 숨겨진 고수(루돌프 쇤하이머)를 발견하고 그의 포스 넘치는 유산을 물려 받아 '생물과 무생물 사이'란 책의 핵심 사상을 탄생시키는 과정도 매우 인상적이다.  작년 10월부터 Read & Lead 블로그는 3W 체제로 가고 있는데 (3W = 3 posts per Week, 주 3회 월수금 포스팅) 만약 Read & Lead가 4W 체제였다면 이 포스트는 지난주 '숨겨진'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 자리매김했을 가능성이 높다. 포스트 제목도 Birth & Death가 아니라 '숨겨진 생명의 비밀..  어쩌구 저쩌구' 로 정했을 것 같다.. ^^


저자의 핵심 컨셉은 제9장 "동적평형이란 무엇인가"에서 드러난다.
바닷가 모래성 안에는 며칠 전에 이 성의 형태를 만들었던 모래들은 단 한 톨도 남아있지 않다. 전에 그곳에 쌓여 있던 모래는 모두 파도와 바람이 앗아가 바다와 육지로 되돌려 놓았고, 지금 이 성을 이루고 있는 모래는 이곳에 새로 온 녀석들이다. 즉 모래는 완전히 바뀐 상태다.  그리고 모래의 흐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즉, 그냥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래성은 실체로서의 성이 아니라 흐름이 만들어낸 효과에 의해 거기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인 동적인 그 무엇이다.

이 모래성은 생명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비유가 된다. 생명이란 요소가 모여 생긴 구성물이 아니라 요소의 흐름이 유발하는 효과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표층, 즉 피부나 손톱이나 모발이 끊임없이 생성되면서 옛 것을 밀어내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표층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신체의 모든 부위, 장기나 조직에서뿐 아니라 언뜻 보기에는 고정적인 구조처럼 보이는 뼈나 치아에서조차 그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분해와 합성이 반복되고 있다.  수많은 원자는 생명체 내부로 흘러 들어왔다가 생명체 내부를 흐르며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6개월 만에 만난 친구는 6개월 전에 보았던 그 친구와는 분자적 차원에선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해변에 서있는 모래성이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이 만들어낸 효과로서 그곳에 있는 동적인 무엇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루돌프 쇤하이머의 통찰을 빌어 저자는 생명에 대한 정의를 아래와 같이 내린다.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다."


결국 생명은 끊임없이 분자의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동적 흐름 그 자체를 의미하며 그 동적 흐름의 평형 상태가 생명체의 의식적인 통제나 관리가 전혀 부재한 상황 속에서 기가 막힐 정도로 오묘하게 알아서 잘 유지되고 있다는건데..  생성과 소멸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역동적 흐름이 얼마나 정교하게 유지되길래 우리 인간은 이런 사실을 잘 인지조차 못하고 사는 것인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받은 가장 큰 느낌은 내가 정말 신비롭기 그지 없는 나 자신인 생명체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은 유전한다(Everything Flows)'란 말을 기계적으로 되뇌고 있었을 뿐 가장 Flow가 강하게 일어나는 동적 평형 흐름인 생명에 대해선 너무 정적인 사고모델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저자는 생명에 대한 탐구를 지금도 지속하고 있는 분자생물학 교수이다.  저자의 마지막 커멘트가 매우 울림 강하게 다가온다.  현재 수준의 인간 지력이 닿기에는 생명이 너무 복잡다단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의 몸에서 기적 같은 일들이 순 간 순 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놀랍기 그지없다...  인간 자체가 충격과 경이로 가득한 공상과학 소설인 것이다.

우리는 동적 평형이 갖는 유연한 적응력과 자연스러운 복원력에 감탄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을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PS.
포스트 제목을 Birth & Death로 적고 나서 내가 왜 이런 제목을 적었나 생각해 보니 아득한 옛 기억이 되살아난다. 에반게리온..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에 대한 깊은 인상이 잠재 의식 속에 존재하고 있다가 금번 기회에 다시 Rebirth 되어 포스트 제목이 되어 버렸다..  Death & Rebirth.. ^^


그리고 End of Evangelion에 나오는 Thanatos도 참 조아라 하는 노래다.. ^^
[End of Evangelion] THANATOS - if I can't be yours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DNA가 이중나선 구조라는
너무도 아름답고 간단한 사실을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왓슨과 크릭은 짤막한 논문 마지막 부분에서 담담하게 이렇게 말한다.
"이 대칭 구조가 바로 자기 복제 기구를 시사한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게 아니다"라고...  
엔딩 크레딧의 나선구조가 멋있기도 하고 노래가 원체 좋기도 하여 동영상을 임베딩 시킨다. ^^

Eros & Thanatos
삶의 본능과(Eros)과 죽음의 본능이(Thanatos)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생명의 본질..
질서는 유지되기 위해 끊임 없이 파괴되어야 한다.
생명 유지를 위한 탄생-죽음의 역동적 흐름.

작년 4월에 올렸던 Thanatos - Evangelion 포스팅의
짤막 커멘트에 대한 구체화를 금번에 대충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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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mepay | 2008/07/11 00: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도 이런류의 책을 좋아하는데 사서 봐야겠네요.^^
    흥미로울것 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7/11 00:16 | PERMALINK | EDIT/DEL

      제가 언급한 내용 말고도 이 책엔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참 많습니다. mepay님께서 이 책 읽으시면 멋진 포스트들이 탄생하게 될 것 같습니다. ^^

  • ww | 2009/03/28 17:02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간과하고 있는게 있네.
    생명체의 유기적인 대사활동에
    '의지'가 개입되는건 어느정도 인정받고 있는게
    학계에서의 흐름이다.
    (아직 비공식적인 논문으로 존재하지만)
    책한권보고 시부리지 말길...

  • jjooon | 2009/07/19 00:2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제가 기억하고 있는건 DNA 논쟁 밖에 기억이 않나는 군요 ㅜㅜ 다시 한번 읽어 봐야 할 듯

    • BlogIcon buckshot | 2009/07/19 00:32 | PERMALINK | EDIT/DEL

      저도 내용이 많이 흐릿해지면 다시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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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대칭비비불] B와 D 사이에 C가 있다. - 인생은 선택이다. :: 2007/06/21 00:03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죽어간다.  삶에 몰입하다 보면 자신에게 태생적으로 부여된 한계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마치 삶이 영원하다는 듯이 살아갈 때가 많다.  하지만 아래 글 처럼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갖고 있는 시간, 에너지가 너무나 유한하기 때문에 그것을 절대로 낭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무엇도 아닌 나의 선택에 의해...

여러 가지 인생에 대한 정의 중
인생은 B to D라는 말이 가슴에 다가온다.
B는 Birth(태어남)이고, D는 Death(죽음)이다.
즉 인생은 태어났다가 죽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 B와 D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C가 있다. C는 무엇인가?
바로 Choice(선택)이다.
즉 인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선택하는 대로 되는 것이다.

- 최염순의 ‘미인대칭비비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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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5throck | 2007/06/21 21: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인생은 선택이라는 문구가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7/06/21 22:52 | PERMALINK | EDIT/DEL

      예, 인생은 무의식적인 선택과 의식적인 선택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선택을 많이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

  • BlogIcon 이현석 | 2007/06/21 23: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처세, 성공학 강사 혹은 전문가 들은 정말 이니셜에 의미부여하는 능력이 탁월한것 같아요. 깜짝깜짝 놀랄때가 많습니다. 항상 사람들에게 동기부여 시킬 방법을 찾기 때문에 그런 걸까요?
    이번에도 트랙백이 안되서 링크로 ^^; http://smartbos.tistory.com/88

    • BlogIcon buckshot | 2007/06/21 23:50 | PERMALINK | EDIT/DEL

      그런 것 같습니다. 인생 자체를 자기계발/동기부여 등의 키워드에 주파수를 정교하게 맞추고 사시는 분들이니 그런 기가막힌 컨셉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 BlogIcon snowall | 2007/06/22 02: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B앞에는 A가 있죠. A는 Aim인데, 목표라는 뜻입니다. 태어나는 것은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D 다음에는 E가 있습니다. E는 Eternal. 죽은 뒤에도 영원히 남는 것이 A에서 시작되는 목적이겠죠.
    이것으로,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 설명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7/06/22 08:18 | PERMALINK | EDIT/DEL

      정말 대단하십니다. A,B,C,D,E로 인간의 모든 것을 정리해 주셨네요. 깊은 감동 받았습니다.

    • ㅋㅋㅋ | 2007/06/22 15:05 | PERMALINK | EDIT/DEL

      E는 Eat 즉, 먹는게 남는거다...이런말이죠..

    • BlogIcon buckshot | 2007/06/22 15:07 | PERMALINK | EDIT/DEL

      먹는 것도 중요한 선택이죠~ ^^

  • ㅋㅋㅋ | 2007/06/22 15:02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한국식으로 하자면 삶과 죽음 사이, ㅅ 과 ㅈ 사이에 ㅇ 이 있지요...
    어영부영 살다가란 말이죠.

  • BlogIcon snowall | 2007/06/23 00:2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실, 저런 멋진 말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스스로가 얼마나 실천하는가, 다른 사람의 좌절을 얼마나 보듬어 주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7/06/23 09:01 | PERMALINK | EDIT/DEL

      snowall님께서 이 포스팅에 대한 결론을 내려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BlogIcon snowall | 2007/06/24 01:31 | PERMALINK | EDIT/DEL | REPLY

    http://snowall.tistory.com/113
    수동 트랙백 겁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7/06/24 09:42 | PERMALINK | EDIT/DEL

      계속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글' 포스팅 정말 잘 보았습니다. 성공스토리가 결국 그 사람만의 이야기라는 말씀에 100% 동감합니다. 결국 성공스토리의 방법론을 차용하는 것 보다는 자신의 멘탈을 강화시키기 위한 자극제로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제 경험으론 멘탈은 항상 약해지려는 쪽으로의 방향성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요..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많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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