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에 해당되는 글 16건

PC매거진 :: 2017/08/04 00:04

조인스 프라임을 이용한다.
조인스에서 제공하는 각종 매거진 컨텐츠를 PC로 볼 수 있다.
물론 아이패드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이패드로 보는 게 더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은근 PC로 보는 조인스 e컨텐츠의 맛이 괜찮다.

마우스로 책장을 넘기는 흐름이 제법 부드럽다.

나름 팬시한 컨텐츠 소비 방법이 탄생한 느낌..
컨텐츠 읽을 때 눈에도 잘 들어오는 편이고.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매거진은 PC로도 제법 소화해낼 수 있게 될 듯.

PC가 구시대적인 디바이스임엔 분명하나
그래도 빠르게 변해가는 컨텐츠 소비 흐름 속에서도
나름의 포지션은 계속 확보해 나가는 듯 하다.

PC매거진. 꽤 괜찮은 컨테이너이다.
올드하지만 나름 쓸만한 컨테이너.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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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컨테이너 :: 2016/06/24 00:04

의외로 개인 컨테이너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적절한 서비스가 눈에 띠지 않는다.

페이스북을 그런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소셜 타임라인이란 콘셉트가 있다 보니 개인적인 담기 공간으로만 활용하기엔 한계를 느끼게 된다. 뭐. 그래도 여전히 페이스북은 '소셜 & 개인' 관점에서 각종 정보의 집합 타임라인으로서 잘 활용 중이긴 하다.

요새는 밴드에 손이 좀 가는 편이다.
'폐쇄형 그룹' 공간이란 콘셉트를 갖고 있는 밴드.
그룹을 개인으로만 치환하면 재미가 있어지는 느낌이

개인적인 단상을 적을 수도 있고,
웹을 누비면서 새롭게 획득한 정보를 스크랩할 수도 있고
단순 URL을 담아둘 수도 있고
길을 가다가 인상적인 풍경이 있으면 카메라로 찍어서 이미지를 보관할 수도 있고
e북을 읽다가 맘에 드는 문장이 나오면 캡처해서 올릴 수도 있고
이 모든 활동을 '개인' 전용으로 폐쇄적으로 수행하면
내가 원하는 기능에 가장 근접한 '개인 컨테이너'가 되어주는 셈이다.

더군다나 밴드를 여러 개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취향별, 주제별로 밴드를 복수로 운영할 수도 있다 보니
이젠 자연스럽게 밴드를 퍼스털 컨테이너 공간으로 바라보고 그런 관점에서 서비스를 대하게 된다.

컨테이너 관점에선 크게 기대를 안했었는데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 우발적으로 밴드를 그렇게 바라보게 되었고
지금은 아주 만족하며 잘 사용 중이다.

서비스는 결국 개인의 결에 맞게 커스터마이징되는 듯.
서비스를 개인의 취향에 맞게 정의하고 사용하는 재미는 서비스가 제공하는 흥미로운 부산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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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북이 있었으면.. :: 2016/01/20 00:00

읽고 싶은 책이 있다.
그런데 그 책은 종이책으로만 제공된다. 전자책이 없다
정말 아쉬운 마음. 꼭 e북으로 읽고 싶은데.

그런 아쉬움을 애써 누르며 종이책을 구입한다.
그런데 종이책이 오면 그 책은 그냥 어느 곳에 방치된다. 잘 읽혀지지 않는다.
종이책이 너무 무겁다. 책장을 넘기는 게 불편하다.
그냥 이북으로 책을 소비하고 싶어진다.

경험이 쌓인 듯 하다.
이북으로 편하게 책을 보는 경험.

종이책의 경험은 점점 더 구시대의 유물처럼 내 몸에서 인식되고 있는 듯 하다.

이북의 속성이 종이책의 속성보다 더 친근해진 지금.

나는 이제 종이책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까.
종이책과 점점 더 멀어지는 게 순리일까.
결국 대세를 거스르긴 어려운 것일까.

모바일 디바이스가 책으로 기능하기 시작하면서 계속 종이책 너머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애를 쓰는 상황 속에서 종이책은 현재 어디에 있는 것일까. 종이책의 가치를 독자들이 인지하고 그것을 스스로 일깨워가지 않는 이상, 종이책은 결국 급격하게 힘을 잃어갈 것 같다.

"이북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일어날 때,
"종이책은 내게 무엇일까?"란 질문과 바람이 같이 생성된다.

종이책에 관한 질문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내겐 활력인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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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기는 :: 2015/12/25 00:05

컨테이너에 컨텐츠를 담는다는 것

어떻게 보면 사용자가 주체가 되어 컨테이너에 컨텐츠를 담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실은
사용자가 주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용자의 욕망은 컨테이너와 컨텐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수도..

결국
컨테이너의 담고 싶어하는 욕망과
컨텐츠의 담기고 싶어하는 욕망이
사용자에게 투영되면서 사용자는 컨테이너/컨텐츠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이제 나의 욕망이 뭔지에 대해 깊게 살펴봐야 할 듯 싶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완전 농락당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라. ^^



PS. 관련 포스트
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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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는 :: 2015/12/23 00:03

내 노트북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내 폰에도, 내 태블릿에도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그거

내가 담은 거다.

그거

뭔가가 나를 조종해서 거기에 담겨진 것이다.

내 디바이스에 담긴 정보
누구의 의지로 담긴 것일까?

나는 담는다고 담는데
담는 행의의 주체는 과연 무엇일까?

나일까?
나를 조종하는 누군가인가? 

컨테이너 안에 컨텐츠를 담는 구조
결국 그 중간에 사람이 끼여 있는 구조인가

컨테이너는 담고 싶어하는
컨텐츠는 담기고 싶어하는

사람은 컨테이너와 컨텐츠의 욕망에 의해 조종당하는 객체일 수도.

오늘도 나는 컨텐츠와 컨테이너의 욕망에 휘둘린 채
뭔가를 끊임없이 담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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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되갚기 :: 2015/01/26 00:06

버스를 타면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쳐다 보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은 과연 뭘 보는 걸까?

동영상을 보는 걸까?
동영상에 심어진 자막을 보는 걸까?

폰으로 보는 영상과 자막.

활자로 건조하게 나열한 글의 묶음이 답답할 때
멋지게 형상화된 구조를 보면 속이 시원해지기도 하지만,

멋들어진 형상이나 영상에 문득 지루함을 느낄 때
단단하게 적혀진 활자를 보면 막혔던 속이 펑 뚫리는 느낌을 맛보기도 한다.

활자를 보면서 이미지가 자신을 부각시킬 기회를 모색하고
이미지를 보면서 영상이 자신을 돋보이게 할 맥락을 극대화시키고
활자가 이미지/영상을 보면서 결국 그 모두를 머금을 수 있는 티핑 포인트를 생성하고

뭔가를 담고 있는 것들은
그렇게 저마다 자신의 특장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그릇으로서의 존재감을 갈고 닦는다.

뭔가로부터 혁신을 당한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는 듯.
오히려 그로 인해 혁신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되는 듯.
혁신을 한다는 건 혁신을 당할 뒷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니 그 뒷문을 열고 들어가면 혁신 되갚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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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마 샤인으로 독서하기 :: 2013/09/27 00:07

9월17일에 크레마 샤인을 구입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전자책을 충분히 읽을 수는 있지만 왠지 종이책을 읽는 느낌과는 거리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크레마로 e북을 읽어보니 확실히 스마트폰,태블릿으로 전자책을 읽는 경험과는 차이가 있었다. 확실히 종이책을 읽는 느낌을 흉내 내는 차원에선 크레마가 폰/태블릿을 앞서는 것 같다. 그리고 흑백의 정갈한 화면이 화려한 이미지가 난무하는 폰/태블릿에 비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는 듯 하다.

그런데,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책장을 넘길 때 화면이 너무 깜박거려서 눈이 좀 아프다. 화면을 넘길 때 눈을 감아야 할 정도로 상당한 부담을 준다. 그래서 폰/태블릿으로 책을 읽을 때보다 훨씬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려지는 경향이 있다. 책장 넘김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고나 할까. 폰/태블릿으로 독서할 때는 웹페이지를 빠르게 서핑하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모습이라면 크레마로 독서할 때는 하나의 페이지에 대한 집중도, 머무름의 미학이 확실히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근데 그런 모드가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심한 깜박임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는 게 좀 서글프긴 하다. ㅠ.ㅠ ^^

어쨌든 크레마는 폰/태블릿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하지만 폰/태블릿 독서도 나름의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크레마로만 책을 읽을 생각은 없다. 집에 널려 있는 종이책도 앞으로 계속 읽을 것이고, 폰/태블릿으로도 책 읽기를 즐길 것이다. 종이책, 폰/태블릿 e북, 크레마 e북을 두루두루 즐기면서 다양한 모드로 책과 대화를 나누는 것. 컨테이너의 DNA에 따라 독서의 양태를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것.

크레마 샤인이란 디바이스와 친해지다 보니 폰/태블릿으로 읽는 책과 종이로 읽는 책에 대한 가치 인식이 보다 정교해 지는 느낌이다. 보다 깊어지고 더욱 진해진다고나 할까. ^^



PS. 관련 포스트
전자책과 주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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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ndle | 2013/09/28 19:26 | PERMALINK | EDIT/DEL | REPLY

    RSS로 받아보다가 처음 댓글 남깁니다 ^^
    e-ink 단말기의 화면 깜박임 문제는 단말기마다 차이가 꽤 큰 것 같습니다.
    과거 아마존의 킨들3 같은 단말기들은 크레마처럼 페이지 전환시 깜박임이
    존재했는데, 지난해 나온 페이퍼 화이트나 2세대 제품군들은 깜박임 문제가
    전혀 없더군요. 제가 사용하는 킨들4는 4~5p마다 잠깐 깜박임이 있는 정도
    입니다. 단말기의 기술력 차이만 놓고 본다면 아마존이나 반즈 앤 노블의 기
    기들이 우리나라 제품군보다 한두세대 이상은 앞서 있는 듯한데 아무래도 한
    글 컨텐츠 문제가 있어서 선택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 국내 한글 컨텐츠가 충분하지 않아서 컨텐츠보다 기술력을 선택한
    케이스입니다만...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국내에서 킨들만큼의 완성도를 지닌
    제품을 내놓거나 아마존이 국내에 들어오는 것이겠지요. ㅎㅎ

    • BlogIcon buckshot | 2013/09/28 22:05 | PERMALINK | EDIT/DEL

      깜박임으로 인해 눈이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크레마 샤인은 눈을 따뜻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는 듯 합니다. 햇살이 눈부신 거리에서도,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크레마 샤인은 존재감을 뿜어내는 느낌이구요. 나름 텍스트를 읽는 맛이 있어서 앞으로도 곁에 가까이 두고 크레마를 애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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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기억하기 :: 2013/01/21 00:01

브랜드는 눈이 아니라 귀로 먼저 기억시켜라

재미있는 내용의 포스트이다.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것 못지 않게 청각적 인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귀로 기억한다는 것.
시각적 자극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청각의 소중함을 지켜나감을 의미한다.

눈으로 기억하기
귀로 기억하기
손으로 기억하기
발로 기억하기
배로 기억하기

기억의 수단은 참으로 많다.
진동을 느끼고 울림을 감지하며 촉감을 소환하면서
기억은 감각기관 속으로 체화된다.

감각기관은 기억을 담는 컨테이너이다.
기억은 감각기관에 담기는 컨텐츠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내가 어떻게 기억되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은 필연적으로 감각재귀 메커니즘을 타게 되어 있다.

새까만 공간 속에서 보이는 것들.
소음 가득한 공간 속에서 들리는 것들.
닿지 않는 것을 촉으로 느끼는 것.
밟히지 않는 것을 발로 느끼는 것.

기억을 감각하고
감각을 기억한다.

감각기억 vs. 기억감각

감각과 기억 사이에 내가 존재한다. ^^




PS. 관련 포스트
감각재귀
찜질방, 온도와 소음
무음, 알고리즘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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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ndy | 2013/01/21 09: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출근길에 커피로 인하여 시각 및 후각적 컨텐츠만 담았는데, '청각적 인지'를 통한 기억이라...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새롭네요! ^^ 아침 출근길에 흥얼거렸던 음악은 청각적 컨텐츠이겠지요? 늘 새롭고 재미난 관점과 주제로 포스팅을 해주시니, 저의 잠들어 있는 감각기관들이 깨어나는 것 같아요. 너무 감사드려요! 한 주간도 승리하시길! ㅎㅎ

    • BlogIcon buckshot | 2013/01/21 20:06 | PERMALINK | EDIT/DEL

      wendy님의 댓글은 언제나 제 생각을 일깨워주시곤 합니다. 댓글 보내주시는 만큼 제가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 BlogIcon Playing | 2013/01/23 23:0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글을 보면 제가 조금 이상해진 거 같아요
    느껴집니다... 무언가 제가 놓치고 있는 그것이 '기억'이라는 보금자리에 안주하려고만 하는 제 반쪽임을 ...;;

    어쩌면 지금의 반쪽과 놓치고 있는 반쪽이라는 느낌도 또다른 내 편한세상속 이야기같지만 그래도 느껴집니다 크하하 ;;

    • BlogIcon buckshot | 2013/01/24 20:55 | PERMALINK | EDIT/DEL

      제가 너무 횡설수설하면서 혼란을 드린 것 같네요. 저도 잘 모르면서 적은 내용이라서 그냥 가볍게 흘리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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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 :: 2012/05/18 00:08

왜곡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하기란 어렵다. 이해의 주체인 인간 자체가 컨텍스트 덩어리라서 그렇다. 이해했다는 건 왜곡했다는 것이다. 이해는 대상을 '나'만의 컨텍스트로 구성된 '나' 프레임 위에 투영시키는 행위이다. '이해'란 단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뭔가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인지 오류를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해. 나를 둘러 싼 모든 것은 결국 '나'의 투영에 불과한 것이다. '나'의 투영에서의 핵심은 '나'의 인지/통찰력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이겠고, 그 수준이 본질에 맞닿아 있지 않는 한 이해했다는 생각과 안도 속에는 항상 오류 작동의 가능성이 잠재한다. 이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곡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
기억한다는 건, 거대한 시간 프레임 상을 흘러가는 수많은 이벤트 조각들 중에 뇌 입장에서 돌출요소로 판명될만한 것들만 추려서 컴팩트하게 저장하는 행위다. 여기서 거대한 왜곡이 발생하는데 이건 사실 자기기만에 가깝다.
기억이 표피적인 돌출/자극 요소에 의해서만 쌓여가고 그런 메커니즘에 인간이 함몰된다면, 인간이 돌출/자극적 기억 창출 이벤트에만 몰입하게 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기억이 경험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기억에 의해 지배당하는 경험은 길을 잃은 것이다. 기억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낚시성 컨텐츠로만 기억 창고가 채워지기 쉬워서 그렇다. 기억 컨테이너 안에 무엇을 담을 건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저장되는 것만 저장되게 내버려두면 창고엔 기만 더미가 가득 찬다. 기억되는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

왜곡하지 않으면 표현할 수 없다.
표현한다는 건, 대상의 수많은 사실관계 중에서 표현하는 자의 인지 체계로 접수된 극히 일부 정보만 표현하는 자의 컨텍스트 체계 안에서 충분히 왜곡된 후에 밖으로 표출됨을 의미한다. 표현은 형식지와 암묵지를 동시에 생성한다. 표현하는 자는 명쾌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표현자의 착각일 뿐, 실제 표현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정보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기 마련이다. 표현으로 인해 심연 속을 떠다니는 모호한 암호 체계는 더욱 활성화되는 것이다. 표현은 풀어헤치는 행위가 아니다. 조금 풀어헤치고 많이 감추는 행위다. 많은 것을 감추고 적은 것을 표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왜곡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PS. 관련 포스트
기억, 알고리즘
컨테이너, 알고리즘
담기와 담기기
투영,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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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날기분좋은밤 | 2012/05/18 23:35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항상 buckshot님의 글을 읽으면 뭔가 한글 적고싶은데 다 읽고나면 글의 깊이때문에 운만띄고맙니다~
    매번 주옥같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뭔가 창조하는일을 십수년하다보니 하늘아래 새것이 없다는것을 매번느끼고
    왜곡을 하면서 먼저 만든것이 이렇게 고민했구나도 새삼느끼면서 나중엔 어떻게 기우고 붙이느냐가 관건인것 같습니다~ 오늘은 술한잔하고 벅샷님 블로그보다가 새 포스팅읽고 일등기념으로 올립니다!^^ 편한한 주말되십시오!

    • BlogIcon buckshot | 2012/05/19 08:53 | PERMALINK | EDIT/DEL

      많이 모자란 글에 격려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먼저 만들어진 것의 고민을 이해한 만큼 창조의 깊이가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귀한 댓글 주신 것을 보면서 생각의 열쇠를 찾은 느낌입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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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 플랫폼, 페이스북 :: 2012/04/06 00:06

페이스북은 거대한 관음 플랫폼이다.
'관음'이란 인간의 본원적 욕망에 기대서 만들어진 플랫폼이기 때문에 이렇게 거대해진 것이다.
대형 플랫폼들은 대개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먹고 성장하기 마련이다.

관음의 욕구는 매우 뿌리깊다.
서로 격리된 공간에 a와 b가 존재하는데 a는 b를 관찰할 수 있고 b는 a를 응시할 수 없다.
TV,영화는 대표적 관음 플랫폼으로 기능해왔다.
일종의 인간 동물원을 수시로 소비하고 끊임없이 탐닉하는 인간본능.

사람들은 페이스북 내 자신 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 안에 타인의 삶을 담고 관음한다.
컨테이너는 컨텐츠를 격리된 공간에 담으며 가치를 발현한다.

사람들은 페이스북 내에 마련된 수많은 공간 안에 담기고 관음 당한다.
컨테이너는 컨텐츠들의 관계망 속에서 수시로 교환되는 관음의 시선을 에너지 삼아 계속 성장한다.

페이스북이란 이름의 소셜 컨테이너.
인간 욕망을 실현시키면서 오늘 이 순간도 지속 성장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관음 플랫폼이 새롭게 정의하는 웹.

어쩌면 인간의 뇌도 그런 메커니즘인지 모른다.
뉴런과 뉴런이 관계를 맺으며 서로 관음하도록 설계되어 있는지도. ^^



PS. 관련 포스트
공간 지각력 = 공간 창출력
담기와 담기기
관찰과 상상
The Soft-Wired G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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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4/06 18:44 | PERMALINK | EDIT/DEL | REPLY

    5주 간의 훈련소 생활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상근), 매우 오랜만에 buckshot 선생님을 다시 찾아뵙니다. 군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회야말로 관음 웹 경험의 표본인 것 같아요. 변함 없이 그 자리에 계셔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2/04/07 16:19 | PERMALINK | EDIT/DEL

      고생하셨습니다. 한결같은 격려를 보내주셔서 무한 에너지를 얻고 있답니다. ^^

  • BlogIcon 쏭군 | 2012/04/14 22: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글 잘 읽었습니다.
    관음증의 반대쪽에 있는 '자기 드러내기' 또한 싸이월드나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실제 생활은 가난하고 비참하지만, 페이스북에서는 부유하고 여유 있는 사람인 것 처럼 자기를 드러내고, 자신의 학력이나 지식을 내세우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4/15 16:30 | PERMALINK | EDIT/DEL

      자신을 완전히 가리는 것과 일부만 가리는 것은 동일선상에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본다'라는 행위에 깃들어 있는 메세지가 자신을 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음을 블로깅을 하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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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ct Economy :: 2011/07/22 00:02

컨텐츠는 절대로 소비자를 직접 만날 수가 없다.
반드시 컨테이너를 통해서만 소비자를 만날 수가 있다.

접촉은 결코 본질적인 관계 맺기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본질보다 표피가 훨씬 더 중요한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컨테이너는 컨텐츠를 제쳐두고 소비자와 직접 Contact한다.
컨테이너는 소비자와의 Contact를 통해 컨텐츠를 통제한다.

소비자는 '컨텐츠-컨테이너-소비자'로 이어지는 밸류 체인을 통찰하지 못하기 쉽다.
소비자는 직접 Contact하는 컨테이너와 일종의 상호 교감을 형성하면서 컨테이너화 되기 때문에
컨텐츠-소비자는 본질적이면서도 표피적인 관계에 그치게 된다.

소비자와 컨테이너가 맺는 표피적이지만 강력한 Relationship은,
사실 상의 공생 관계이자 공진화 관계를 의미한다.

촉수와 촉수가 만나는 Contact Relationship.
소비자는 Contact Economy란 이름의 바다를 살아가고 있는 해면 동물인 것이다. ^^



나는 Container Economy를 살아가고 있다.

LP/CD 시대를 떠나 보내고 MP3 시대를 맞이하고 나서야
난 음악 컨텐츠보다 음악 컨테이너에 더 몰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패드란 신 컨테이너를 접하게 되면서 아이패드 친화적인 컨텐츠를 찾는 버릇이 생겼다.
아이패드에 킨들을 설치하고 예스24/알라딘 앱을 설치하면서부터 종이책보다 e북을 즐겨 찾게 되었다.

만물이 정보라서 컨텐츠는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문제는 컨텐츠를 어디에 담을 것인가이다.
컨텐츠보다 컨테이너가 더 직접적인 소비자 접점이다.

컨테이너는 비단 스마트폰, 스마트패드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페이스북/트위터는 Streamed Content들을 담는 거대한 컨테이너이다.
무심코 스마트폰/스마트패드에 터치하듯이, 무심코 페북/트위터에 접속한다.
컨테이너는 소비자의 주목을 무의식적으로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Container Economy를 살아가고 있다. ^^




PS. 관련 포스트
나는 Container Economy를 살아가고 있다.
Stream Economy가 도래하다.
페이스북 LIKE, 트위터 RT
Facebook, Storyvertizing Platform
페이스북, 지불 플랫폼
페이스북, 감염 플랫폼
페이스북의 광고 플랫폼
폐쇄 플랫폼 (페이스북)
페이스북 Like(좋아요)는 통화이다.
프로슈밍 플랫폼 = 트위터/페이스북
피드 플랫폼 (트위터/페이스북, 인간)
경험 속에 녹아 들어간 용어
페이스북이란 이름의 블랙박스
사이, 알고리즘
페플, 알고리즘
네트,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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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Container Economy를 살아가고 있다. :: 2011/07/20 00:00

LP/CD 시대를 떠나 보내고 MP3 시대를 맞이하고 나서야
난 음악 컨텐츠보다 음악 컨테이너에 더 몰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패드란 신 컨테이너를 접하게 되면서 아이패드 친화적인 컨텐츠를 찾는 버릇이 생겼다.
아이패드에 킨들을 설치하고 예스24/알라딘 앱을 설치하면서부터 종이책보다 e북을 즐겨 찾게 되었다.

만물이 정보라서 컨텐츠는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문제는 컨텐츠를 어디에 담을 것인가이다.
컨텐츠보다 컨테이너가 더 직접적인 소비자 접점이다.

컨테이너는 비단 스마트폰, 스마트패드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페이스북/트위터는 Streamed Content들을 담는 거대한 컨테이너이다.
무심코 스마트폰/스마트패드에 터치하듯이, 무심코 페북/트위터에 접속한다.
컨테이너는 소비자의 주목을 무의식적으로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Container Economy를 살아가고 있다. ^^


Stream Economy가 도래하다.

음악에 이어 정보도 소비자와 컨텐츠 간의 관계 양식이 소유에서 접속으로 바뀌고 있는 모습이다. 소유에서 접속으로의 관계 양식 변화와 '접속-friendly' 관점의 저자 컨텍스트 해체 현상은 매우 큰 변화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변화는 음반과 책을 수없이 사 모으던 사람들에겐 꽤 서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LP/CD로 음악을 소비하던 시절엔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 모으며 음반을 사재기 했었다. 그게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고 생각했었다. MP3가 뜨자, 음악에 대한 열정이 급속도로 식었다.

결국 난 음악 컨텐츠 보단 음악을 담는 컨테이너에 열광했던 것이다.

LP/CD는 완성된 스토리를 담는 스토리 컨테이너였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지금도 앨범 단위로 음악을 소비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파편화된 싱글 단위로 음악을 소비하고 있다. 스토리 보단 컨테이너에 더 집착했던 나였다. '컨텐츠'란 본질 보단 '컨테이너'란 표피에 집착을 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어찌 보면 컨텐츠보다 컨테이너가 더 본질적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해보게 된다. 만물은 정보다. 결국 세상 어디서나 정보는 흐른다. 그걸 어디에 담을 것인가가 관건인 것이다. MP3가 'LP/CD' 컨테이너를 무력화시켰듯이 e북도 '종이책'이란 컨테이너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무력화시킬 것이다. 나 개인적으론 예스24가 아이패드 전용 앱을 내놓고 예스24에 충분한 규모의 e북이 올라온다면 난 종이책을 LP/CD처럼 대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컨테이너는 이렇게 진화되어 가는 것인가?

결국, 저자의 컨텍스트를 극대화시킨 LP/CD 컨테이너를 통해 뮤직 사업자들은 장사를 해왔던 것이고, 저자 컨텍스트가 해체되고 독자 컨텍스트의 주도성이 커지는 요즘엔 신 흐름에 부합하는 스마트폰/스마트패드와 같은 신 컨테이너가 득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

페이스북/트위터도 streamed content를 효과적으로 담는 신 컨테이너로 볼 수 있겠다.




PS. 관련 포스트
Stream Economy가 도래하다.
페이스북 LIKE, 트위터 RT
Facebook, Storyvertizing Platform
페이스북, 지불 플랫폼
페이스북, 감염 플랫폼
페이스북의 광고 플랫폼
폐쇄 플랫폼 (페이스북)
페이스북 Like(좋아요)는 통화이다.
프로슈밍 플랫폼 = 트위터/페이스북
피드 플랫폼 (트위터/페이스북, 인간)
경험 속에 녹아 들어간 용어
페이스북이란 이름의 블랙박스
사이, 알고리즘
페플, 알고리즘
네트,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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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Playing | 2011/08/22 22: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에고 바로 글을 써주셨군요
    RSS 구독기로 보고 댓글을 달고 있었는데
    이번에 조금 바뻤더니 많이 밀려서(대략 천 여개 쯤) 하나씩 보고 있네욤
    이전 글의 제 댓글은 너무 이상한 사족임을 알겠습니다 크크 ㅡ _ㅡ;;

    • BlogIcon buckshot | 2011/08/22 23:34 | PERMALINK | EDIT/DEL

      밀리다니요. 그냥 가볍게 건너 뛰시고 편하신 대로 읽어주셔도 전 너무 황송할 따름입니다. 읽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자체가 제가 블로깅을 지속할 수 있는 근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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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 Economy가 도래하다. :: 2011/07/18 00:08

파편화된 토막 토크의 범람. 끝나지 않는 이야기.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 플랫폼이다. 시작과 끝이 없다는 것. Never beginning 이어서 Never ending인 Story. 앨범 단위가 아닌 파편화된 싱글 단위로 음악을 소화하기. 파편화된 정보들의 스트리밍 기반 소비. 페북/트위터는 일종의 정보 스트리밍 서비스이다. 트위터/페북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stream 기반의 소비 시대를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정보가 streaming된다는 것은, 뮤직 앨범과 같이 완성된 스토리가 시작과 끝, 스토리라인이 거세된 체 파편화된 정보들로 해체되어 속절없이 스트리밍 미디어 상을 흘러감을 의미한다. 시작과 끝이 제거되고 스토리라인이 해체된다는 것은 저자의 자존심이 분해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저자의 context가 해체된 파편화된 정보들이 스트리밍 미디어 속에 편입되는 것. 스트리밍 기반의 음악 소비는 스트리밍 기반의 정보 소비의 예고편이었다. 이제 저자의 스토리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투입할 수 있는 소비자의 pool은 점점 엷어져 가고 있다. 저자의 스토리 전체는 소비자에게 중요하지 않다. 소비자는 자신의 관심에 부합하는 파편화된 정보들에 주목할 뿐이다.

Stream Economy가 도래했다. 시작과 끝이 없이 어디론가 속절없이 정보는 흘러만 간다. Streaming Media에 편입하기 위해선 저자는 자신의 스토리라인을 해체해야 한다. 스트리밍 뮤직 서비스에 앨범을 온전히 탑재하기 어려운 것처럼.

음악에 이어 정보도 소비자와 컨텐츠 간의 관계 양식이 소유에서 접속으로 바뀌고 있는 모습이다. 소유에서 접속으로의 관계 양식 변화와 '접속-friendly' 관점의 저자 컨텍스트 해체 현상은 매우 큰 변화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변화는 음반과 책을 수없이 사 모으던 사람들에겐 꽤 서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LP/CD로 음악을 소비하던 시절엔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 모으며 음반을 사재기 했었다. 그게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고 생각했었다. MP3가 뜨자, 음악에 대한 열정이 급속도로 식었다. 결국 난 음악 보단 음악 컨테이너에 열광했던 것이다. LP/CD는 완성된 스토리를 담는 스토리 컨테이너였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지금도 앨범 단위로 음악을 소비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파편화된 싱글 단위로 음악을 소비하고 있다. 스토리 보단 컨테이너에 더 집착했던 나였다. '컨텐츠'란 본질 보단 '컨테이너'란 표피에 집착을 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어찌 보면 컨텐츠보다 컨테이너가 더 본질적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해보게 된다. 만물은 정보다. 결국 세상 어디서나 정보는 흐른다. 그걸 어디에 담을 것인가가 관건인 것이다. MP3가 'LP/CD' 컨테이너를 무력화시켰듯이 e북도 '종이책'이란 컨테이너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무력화시킬 것이다. 나 개인적으론 예스24가 아이패드 전용 앱을 내놓고 예스24에 충분한 규모의 e북이 올라온다면 난 종이책을 LP/CD처럼 대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컨테이너는 이렇게 진화되어 가는 것인가? ^^

결국, 저자의 컨텍스트를 극대화시킨 LP/CD 컨테이너를 통해 뮤직 사업자들은 장사를 해왔던 것이고, 저자 컨텍스트가 해체되고 독자 컨텍스트의 주도성이 커지는 요즘엔 신 흐름에 부합하는 스마트폰/스마트패드와 같은 신 컨테이너가 득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 페이스북/트위터도 streamed content를 효과적으로 담는 신 컨테이너로 볼 수 있겠다. 주체적 정보 소비 시대는 모두를 '독저자(독자이면서 저자인 자)'로 만들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Everything Flows.라고 말했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 만물은 정보임이 분명해졌고
정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과 같이 행동하고 있다. Everything Stream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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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광고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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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Like(좋아요)는 통화이다.
프로슈밍 플랫폼 = 트위터/페이스북
피드 플랫폼 (트위터/페이스북, 인간)
경험 속에 녹아 들어간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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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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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Playing | 2011/08/21 16:1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욤!
    조금 늦었나요? 하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이전 글들도 너무 잘 보고 있었는데... 과연! 이 글로 이전 글들이 어느정도 분류되어지는 거 같아요

    세상의 모든 것을 정보와 한 권의 책으로 보는 것도 그렇고,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본래 의도와 그것을 담는 물질(형식)으로 보는 것도 그렇구요~!

    P.S 하늘이 노하신 듯한 여름이 지나고 있는데 가을맞이 잘 준비하세욤!

    • BlogIcon buckshot | 2011/08/21 21:05 | PERMALINK | EDIT/DEL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시죠? ^^

      아,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 듭니다.
      역시 의미를 부여해 주시니 의미가 살아나네요. ^^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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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창조 :: 2011/06/20 00:00

슬픔, 불안, 공포.. 긍정적 감정보단 부정적 감정 유형이 훨씬 더 많다.
그건 인간이 현대를 살면서도 원시시대를 버텨내던 생존 본능 유전자의 지배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은 느린 생물적 진화와 빠른 문명 발전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긍정적 감정보다 부정적 감정에 휘둘린다는 것은
원시시대 생존 본능 발휘를 위해 헉헉대던 원시유전자에 휘둘린다는 것이다.
지금은 현대이다. 진화 속도가 늦어서 여전히 부정적 감정 따위에 휘둘리는 것보단
스스로 긍정적 감정 유형을 계발하는 것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생명을 위협하는 맹수들이 주변에 깔려 있지 않은데도 (물론 아직 그런 곳이 있긴 함)
여전히 생존 본능에 의한 감정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것.
생존위협이 없는데도 생존위협에 준하는 환상을 만들고 그것에 반응한다는 것.
그건 그저 감정을 위한 감정일 뿐이다.


인간은 감정에 좌지우지되기 쉽다.
부정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 중의 하나는 감정을 해석하는 것이다.
어떤 부정적 감정이 솟아오를 때, 그것을 분노, 짜증, 공포 등으로 해석을 하다 보면
감정은 자연스레 가라앉기 마련이다.


이제 감정을 대하는 방법을 계발할 때이다.
감정은 더 이상 내 몸/맘 어딘가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올라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그 감정을 내가 해석해서 컨트롤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감정 자체를 내가 새롭게 창조한 뒤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감정을 해석한다는 것.
감정을 창조한다는 것.

감정 자체에 관찰의 시선을 보내는 순간
감정은 나의 프레임(컨테이너) 속에서 변형된다.
나에게 유리한 긍정적 감정을 계발해야 한다.

새로운 감정을 창조하는 능력은 곧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능력이다.
나만의 감정을 창조해낼수록 나는 더욱 '나'다워질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감정의 파도를 서핑한다
감아, 알고리즘
강약,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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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알고리즘
창의, 알고리즘
감정, 알고리즘
강약의 링 - 강즉시약 약즉시강 (强卽是弱 弱卽是强)
흐르는 뇌: 인간은 미리 설계된 프로그램에 의해 통제되는 호르몬 생성/유영 플랫폼인가?
강점 vs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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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공략을 통해 경험의 변화를 이끌어 내라 - 커뮤니케이션 전략
[앤서니 라빈스의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성공을 이끌어 내는 말 - 상호 인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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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기와 담기기 :: 2011/06/15 00:05

관찰은 담기이다.
나만의 생각 프레임(컨테이너) 안에 관찰 대상을 담는 것이다.

관찰이 담기이기 때문에,
관찰은 대상과 거리를 두고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라기 보단
대상을 컨테이너 안에 끌어들여 대상을 변화시키는 것에 더 가깝다.

언제부턴가 세상 전체가 나에게 책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컨텐츠가 더 이상 컨테이너 속에 박제된 형태로 존재하기 보다는 컨테이너라는 '막'을 끊임없이 투과하고 유동하는 동적 평형 상태에 놓이게 됨을 의미한다.

컨테이너는 컨텐츠를 견고하게 가두면서 가치를 발현한다. 컨텐츠는 컨테이너를 자유롭게 투과할 수 있는 '막'으로 정의하는 순간 강력한 가치를 획득한다. 컨텐츠와 컨테이너의 관계가 atom적이면 컨테이너가 돋보이고, quantum적이면 컨텐츠가 돋보인다.

언어도 일종의 컨테이너다. 안개와도 같이 뇌리를 맴돌며 말로 잘 표현이 되지 않는 그 무엇. 그건 언어라는 컨테이너 안에 담기 어려운 양자(quantum)적 컨텐츠를 의미한다.

'나'는 무엇을 담을 수 있는 컨테이너인 동시에 무엇에 담길 수 있는 컨텐츠이기도 하다.
내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나는 무엇 안에 담길 것인가를 정의하고 그것을 관리해 나가는 것.

내 안에 무엇을 담지 않고 그저 무엇 안에 담기기만 한다면 '나'는 입자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담기는 동시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 널린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기는 안습을 면할 수 있다.

구글이란 '검색 네트'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 페이스북이란 '소셜 네트'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 기술/미디어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 자본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 Quantum-Self. ^^

관찰은 담기이다.
나만의 생각 프레임(컨테이너) 안에 관찰 대상을 담는 것이다.



관찰과 상상 (2011.5.6)

관찰력은 상상력과 맞닿아 있다.
관찰을 잘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역동적 상상력을 가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관찰은 상상과 재구성(일종의 창조)의 영역이다.

관찰은 현상을 사진 찍듯이 내 머리 속으로 입력시키는 것이 아니다.
현상에 대한 나만의 해석을 내 머리 속에서 구성해 내는 것이다.
관찰은 입력 보다는 생성에 가까운 개념이다.


무엇인가를 관찰할 때,
관찰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나만의 해석 간에는 반드시 간극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 간극의 유형이 관찰자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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