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고원'에 해당되는 글 4건

생성, 알고리즘 :: 2008/11/19 00:09

부제: 모든 생성은 분자적이다. 2 - 인간 플랫폼


천 개의 고원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천 개의 고원에 나오는 아래 문구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분자적 생성의 예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사람의 피부,손톱,모발은 끊임없이 생성되면서 옛 것을 밀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표층 뿐만 아니라 신체의 다른 장기/조직에서도 역동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얼핏 고정적인 구조처럼 보이는 뼈/치아에서조차 내부에선 끊임없는 분해와 합성이 반복되고 있다. 무수히 많은 원자들이 생명체 내부로 흘러 들어왔다 생명체 내부를 빠른 속도로 흘러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6개월 만에 만난 친구는 6개월 전에 보았던 그 친구와는 분자적 차원에선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생명은 끊임없는 분자의 생성과 소멸의 반복적 동적 흐름 그 자체이며 그 동적 흐름의 평형 상태가 너무도 잘 알아서 유지되고 있어서 생명체는 그 흐름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관념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 있는 사람의 기억/믿음/욕구도 뇌 신경세포들과의 상호 연산작용을 통해 생물학적으로 생성된 물질로써 에너지와 정보의 형태로 몸 안을 타고 흐르고 몸 밖으로 나가서 어떤 대상과 통하는 메커니즘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선 안에서 통할 수 있고 밖으로 통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신체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흐름과 연결이 인간의 핵심인 것이다. (Birth & Death에서 입자 추출하였음)

물질은 그것과 연결된 수많은 다른 물질들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수많은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는 확률적 존재이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물질과 접속하고 만나는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된다.  '입'이 성대와 접속하여 소리의 흐름을 절단,채취하는 경우엔 '말하는 기계'가 되고 식도와 접속하여 영양소의 흐름을 절단,채취하는 경우엔 '먹는 기계'가 되듯이 욕망/의지/접속항이 달라짐에 따라 전혀 다른 기계로 작동한다는 것은 모든 물질들은 네트워크 상에서 접속과 관계에 의해 다양한 실체로 확률적 생성과 변이를 거듭하는 흐름을 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에서 입자 추출하였음)

세상만물이 분자적으로 생성되는 흐름 속에 존재한다면,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Everything Flows가 결국 대세라면,  내가 관심 갖고 있는 '마음'이란 주제에도 비슷한 프레임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마음은 내 안과 타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무엇 사이에 유영하는 흐름 자체인지도 모른다. 물과 정보가 흘러갈 때에만 가치가 있는 것처럼 마음도 무엇과 무엇 사이에서 끊임없이 흐를 때 의미가 있는 것일 수 있다. 마음은 계속 흐르는 것이고 그 흐름을 인식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괴로움/결핍에서 벗어나고 신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이 신과 접속되어 있음을 상기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르틴 부버 - 나와 너에서 입자 추출하였음)

마음에 비해 뇌의 경우 과학적 탐구가 상대적으로 많이 진전된 상황이다. 뇌는 컴퓨터처럼 생명 없이 뻣뻣하고 건조한 기관이 아니라 축축/출렁거리는 살아 있는 기관이다. 피와 물은 차치하고라도 60종에 달하는 호르몬들이 뇌 안에서 회전하고 있다. 이 호르몬들은 우리가 행동하고 느끼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뇌는 흐른다. 약간의 화학물질이 뇌에 작용할 경우, 우리의 정서와 행동을 바꿀 정도로 우리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평소에 별로 말이 없던 사람이 와인을 원샷하고 갑자기 달변으로 돌변하는 경우는 알코올이 흐르는 뇌에 영향을 주고 있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흐르는 뇌에서 입자 추출하였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 실은 호르몬 화학반응의 결과이고 이 메커니즘만 정확히 인지하면 인위적인 조작을 통한 정교한 재현이 가능하다면.. 행복이란 감정도 결국 화학반응의 결과이고 이 반응에 대한 이해/통제가 가능하다면.. 인간만이 느낄지도 모르는 고도의 의식이 결국 물질에서 창발한 놀라운 생물학적 현상이라면 인간이야말로 최고의 복잡계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고도의 컴퓨팅 기능을 수행하는 인간이 게놈 속 유전자 개수 관점에선 지렁이와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매우 재미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같은 개수의 문자를 포함하는 전화번호부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결국, 정보의 핵심은 단순히 비트의 개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트 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정보의 핵심에서 입자 추출하였음)

사람이 수행하는 육체적/정신적, 미시적/거시적인 활동을 모두 분자적인 생성 흐름이라고 볼 수 있고 그 흐름을 통해 사람은 정보를 생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정보들은 사람 안에서 비트 간의 관계를 형성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물리적/관념적 정보는 사람 안에서 정교한 동적평형 흐름을 유지하면서 빠른 속도로 유입/유출되고 있는 것이라면 사람은 일종의 정보 유통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흐르고 시공간 속을 흘러 다닐 때, 사람은 정보를 생성하고 정보는 시공간을 변형시키고 시공간은 사람 속에 존재하게 된다. 결국 인간 개개인의 마음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된 컴퓨터 터미널과도 같다. 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는 인류의 의식 자체이고, 우리 자신의 의식은 단지 모든 인류의 공통된 의식에 뿌리를 둔 데이터베이스의 개인적인 표현일 뿐이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실로 비범한 데가 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 데이터베이스에 참여한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이 천재적인 데이터베이스를 열람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그 데이터베이스에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곤 했다. 우리 어른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렸을 뿐이다.  (마음은 데이터베이스에 접속된 컴퓨터 터미널과 같다에서 입자 추출하였음)

상호작용을 통해 분자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대표적인 케이스로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를 들 수 있다. 발의 확장인 자동차와 귀/입의 확장인 핸드폰은 이미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을 고도로 자동차화, 핸드폰화 시켜가고 있다. 도구로 사용하면 결국 도구에 의해 사용 당하게 된다. 측정을 하면 측정 당하고 지배를 하면 지배 당한다. 측정과 지배라는 상황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그 상황 속에 매몰될 때 일어나는 역작용은 이제 예사로운 현상이 되어 버렸다. 생명의 본질이 유입/유출, 삶/죽음의 끊임없는 동적평형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생명 플랫폼 상에서 생명체를 지배하는 알고리즘의 작동을 관찰하고 이해하고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확장 2에서 입자 추출하였음)

인간 뇌의 발달과 궤를 같이 하는 현대문명의 발달은 과거를 '오래된 미래'로 규정하고 그리워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류 진화의 방향은 어쩌면 고도화를 가장한 삑사리일지도 모른다.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명체는 뇌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뇌를 쓸 일도 없다는 거... 최고의 개체수를 자랑하는 박테리아는 단세포 생물로서, 다세포의 신호체계나 복잡한 행동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도 당당하게 생존하고 있다. 무능력하게 보이는 외관과는 정반대로 박테리아는 북극의 툰드라에서 부글거리는 유황 온천까지 생태학적으로 적합한 모든 장소에서 적응해왔다. 뇌는 단지 자신의 생존을 위한 고도화만 거듭해 온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관점에선 무수히 많은 삑사리를 범하고 있는 게 뇌가 아닐까?  (나는 운동한다. 고로 나의 뇌는 존재한다 에서 입자 추출하였음)

지구상에서 가장 고도화된 생명체인 인간.. 플랫폼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아직 너무 부족하고 글재주가 부족하여 오늘은 여기까지만 적어야 할 것 같다. 완전 잡문이다.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한 생각을 계속 발전시켜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



PS. 관련 포스트
모든 생성은 분자적이다. 1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2 - Compilation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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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008/11/19 08:0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생성과 관련없는 내용도 많이 있네요 -_-;;;;

    • BlogIcon buckshot | 2008/11/19 08:51 | PERMALINK | EDIT/DEL

      각 단락 끝에 흐릿한 글씨로 씌어져 있는 부분을 보시면,
      모두 어디선가 입자를 추출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제 블로그 포스트들을 보면, 이런 식의 입자추출(생성)이 굉장히 많다고 느껴서 생성을 주제로 한 금번 포스트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

  • BlogIcon idea | 2008/11/20 10:0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정말 고도의 포스팅을 하시네요.. ^^
    저는 마지막 단락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되는데요.. ;;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고도화되었다고 인간은 생각하고, 주장하지만, 사실 지구에서 인간은 박테리아(바이러스)가 살기 가장 좋은 플랫폼으로서만 존재할 뿐인건 아닐지.. 상상해 봅니다.
    실제 지구의 주인은 박테리아님들이고.. 인간은 그 삶의 터전에 불과한데.. 인간이라는 박테리아 생존 플랫폼이 너무 요상하게 진화해서 지능이 발달함에 따라 과학과 산업이 발달하고 .. 결국엔 지구의 환경자체를 변화시키게 된 것은 아닌지... 하지만.. 인간과 달리 박테리아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다는..
    박테리아는 또 적응하면 되니까..

    • BlogIcon buckshot | 2008/11/21 00:04 | PERMALINK | EDIT/DEL

      idea님.. 인상적인 가설이십니다..
      인간 자체가 박테리아의 생존 플랫폼이다.
      그런 인간의 뇌의 발달이 자연에 적응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서투르게 자연을 변화시키는 모습.. 그것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박테리아의 자연 적응력..

      비교 자체가 의미없을 수도 있겠지만..
      누가 더 나은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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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 공즉시색] 반야심경, 천개의 고원, 노마디즘 :: 2007/09/22 01:24


色不異空 (색불이공)
空不異色 (공불이색)
色卽是空 (색즉시공)
空卽是色 (공즉시색)


빅뱅이론에 따르면 200억년 전에 우주는 점과 같은 상태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팽창을 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는 설을 주장한다.  '크기가 0이고 밀도와 온도는 무한대'인 특이점 상태에서 우주가 생성되었고 계속 팽창을 거듭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팽창을 멈추고 수축이 전개되면서 결국 하나의 점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현대물리학의 가설은 반야심경에서 주장하는 :"색(물질)이 공에서 나오고 공은 색에서 나온다.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라는 컨셉에 상당히 부합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색'은 무엇을 나누거나 단편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이고  무엇을 나누는 것이 인간의 단편적 사고의 한계에서 파생된 행위이니 결국 인간의 시각은 본질을 볼 수는 없는 것이고 '물질의 실재'와 '관찰을 통한 물질의 인식' 간에는 gap이 존재한다는...

양자론은, 전자의 위치는 일정한 궤도를 돌지 않고 언제 어디서 튀어 나올지 모르는 전자로 실재한다는 것..  질량을 측정하기 위해 관찰하면 위치를 측정할 수 없고, 위치를 측정하려면 질량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전자라는 물질은 확률적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관찰자의 마음먹기에 따라 관측의 결과가 달라지는 전자의 행태..   관측이 물질에 영향을 준다..  마음이 물질에 영향을 준다..  현대물리학과 반야심경은 너무도 닮아 있는 모습이다.

또한 질 들뢰즈가 '천개의 고원'에서 말하고 있는 '리좀'이란 개념도 나름 유사한 컨셉을 지향하고 있는 것 같다.  '리좀'이란, 이런저런 줄기들이 어떤 중심뿌리 없이 분기되고 접속되는 모양을 의미한다.  질 들뢰즈는 펠릭스 가타리와 함께 쓴 '천개의 고원'이란 책을 단 2명의 저자에 귀속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천 개의 고원'이란 책이 들뢰즈, 가타리라는 두 사람의 저작으로 간주되지만 그 안에서 그들이 인용한 내용들은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발언했던 것이고 인용이 아닌 내용도 결국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읽고 듣고 경험한 수많은 저자들의 발언을 대신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천개의 고원'은 그런 수많은 타인들의 발언들이 중첩된 연쇄로 이뤄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혼자 스스로의 생각으로 말하는 경우에도 이미 다른 많은 사람들의 말을 하는 것이고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배치 안에서 나름의 집합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책'은 대상도 주체도 갖지 않는다는 개념이 나오게 된다.  "책을 하나의 주체에 귀속시키는 순간, 질료의 가공과 그것의 관계가 갖는 외부성을 무시하게 된다"는 들뢰즈의 말은 반야심경의 컨셉과 매우 닮아 있다고 보여진다.

결국 물질은 그것과 연결된 수많은 다른 물질들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수많은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는 확률적 존재이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물질과 접속하고 만나는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되는 것이다.  '입'이 성대와 접속하여 소리의 흐름을 절단,채취하는 경우엔 '말하는 기계'가 되고 식도와 접속하여 영양소의 흐름을 절단,채취하는 경우엔 '먹는 기계'가 되듯이 욕망/의지에 따라 접속하는 항이 달라짐에 따라 전혀 다른 기계로 작동한다는 것은 양자론의 미시세계나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거시세계 모두 긴밀하게 연결된 물질 네트워크 세계에서 접속과 관계에 의해 다양한 실체로 확률적 생성/변이를 거듭하면서 색즉시공/공즉시색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반야심경, 천개의 고원/노마디즘은 책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플랫폼이란 생각이 든다.  접속할 때마다 읽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기계가 되게 해주는 책이기 땜에... 

솔직히 반야심경을 계속 읽어도 '공(空)'이 뭔지에 대해선 아직도 명쾌한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다.  하지만 딱히 말로 규정하진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만 한계투성이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뭔가가 내 마음 속에서 구체화되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히 어떤 확률적 분포로 존재하는 것 같다.  ^^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 10점
성법 지음/민족사

천 개의 고원 - 10점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지음, 김재인 옮김/새물결

노마디즘 1 - 10점
이진경 지음/휴머니스트

노마디즘 2 - 10점
이진경 지음/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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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텍스트는 외부의 주름이다.

    Tracked from 맑은독백 | 2009/06/11 10:32 | DEL

    텍스트는 외부의 주름이다. 몇 일전 inuit님으로 부터 시작한 독서에 관한 릴레이가 블로그 스피어 여러곳에서 만개하고 있습니다. 바톤을 받아 이어진 연을 쫓아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즐겁습..

  • BlogIcon 풍림화산 | 2007/09/22 02: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네요. ^^
    여기서 말하는 공(空)은 다른 데서도 쓰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크기가 0이고 밀도와 온도는 무한대'인 특이점 상태" 이게 空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7/09/22 12:09 | PERMALINK | EDIT/DEL

      공(空)의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특이점'상태를 공과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앞으로도 계속 공에 대해 생각을 해볼 계획입니다. 한가지 관점이나 양상으로 한정 짓지 않고 다이내믹하게 공을 바라보는 것이 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덧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풍림화산 | 2007/09/22 13:20 | PERMALINK | EDIT/DEL

      제가 많은 책을 읽어본 바는 아니지만 공의 개념에 대해서 다른 책을 통해서 이해하기는 그렇습니다.
      空은 無와 달리 0 또는 무한대의 빈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죠.
      결국 공이라는 것은 근원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로 인해 생긴 색, 다시 근원으로의 회귀.
      이러한 순환 고리에서 공을 바라본다면 여기서 색과 대조되는 공은 시초가 되는 특이점의 상태로 해석이 됩니다.
      buckshot님이 말씀하신 동양 사상으로의 귀착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 덧글에서도 말씀드렸다 시피 서양 사상은 그 근원 자체가 색입니다. 단편적 시각에서의 접근이지요.
      그러나 동양 사상은 근원적인 본질적인 부분에서의 접근이기에 결국 동양 사상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7/09/22 14:16 | PERMALINK | EDIT/DEL

      예, 空을 무한대의 빈 상태, 근원으로 보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모든 물질이 空이란 근원성을 갖고 여러가지 色의 모습으로 다이내믹한 생성/변이의 흐름을 탄다고 판단합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서양사상은 色에 가깝고 동양사상은 상대적으로 空에 가까운데 서양과 동양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초기엔 서양의 환원주의에 기반한 色 기반의 어프로치가 동양을 압도하고 동양을 서양화시켜 나가지만 色이 차면 자연스럽게 空으로의 이동이 가속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거시적인 우주 관점에선 空↔色 순환이 아주 느린 속도로 흘러가지만 미시적인 양자 관점에선 空↔色 순환이 아주 빠른 속도로 이뤄질 것 같습니다. 거시와 미시의 중간에 해당하는 인간세계는 평균적으로는 중간의 속도가 나타나면서 케이스바이케이스로 고속순환과 저속순환이 공존하는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풍림화산님께서 관심 가져주시고 수차례 덧글을 주신 덕분에 제가 제 생각을 발전적으로 다듬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 BlogIcon 풍림화산 | 2007/09/22 21:26 | PERMALINK | EDIT/DEL

      예... 동의합니다. 잘 정리해주셨네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했듯이 어떤 것이 먼저이고 우선이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다만 지금의 흐름은 동양 사상으로 회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서양 사상의 영향을 받은 방법론등이 이제는 다시 그 근원적인 사람에서 찾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도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buckshot님이 잘 정리해주셔서 저도 덧글 잘 읽고 갑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7/09/22 21:48 | PERMALINK | EDIT/DEL

      대충 꾸역꾸역 글 적어서 포스팅 올려놓고 풍림화산님의 통찰력있는 피드백 받아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느낌이 정말 좋습니다.^^

  • BlogIcon hyleidos | 2007/09/22 05: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우주는 점과 같은 상태* 여기에서 출발 하고 종착을 하건 순환을 한다면 모든 것이 그 속에 녹아 있어야
    가능 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사고, 영혼이라 부르는 것들 모든 인식 너머의 것들이 그 한 점에 있겠지요.
    공은 즉 색이고, 색은 곧 공한 것이다.
    아무리 나누어 대상을 만들어 보아도 공 할것이고, 그냥 뭉뚱그려 생각해도 마야는 실재하겠지요.

    인간이 우주를 바라보는 것이 그가 그 속에 포함된 존재임을 알면 고통도 조금씩 녹아 들겠지요.

    • BlogIcon buckshot | 2007/09/22 12:18 | PERMALINK | EDIT/DEL

      점에서 출발해서 무한팽창을 하고 다시 점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순환.. 결국 헤라클레이토스가 얘기한 '만물은 유전한다(everything flows)' 컨셉과도 맥이 닿는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유전하기 때문에 대상을 아무리 기가 막히게 잘 나누어도 모든 것은 결국 설명하기 어려운 '공'일 수 밖에 없고 '공'이라고 생각한 순간 다시 '색'이 발현되는 과정의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의 관찰/사고/표현의 한계를 얼마나 유연하게 극복할 수 있는가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에 있기 마련인데 그 마음이 얼마나 flow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보구요. 제가 블로깅을 하는 이유는 블로깅이 다양한 mind들과의 리좀적인 접속을 통해 mind fluidity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의미있는 방법론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블로깅한지 얼마 안되어 성과는 보잘 것 없지만 그래도 나름 progress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mobile mind 제고를 위해 블로깅을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 덧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BlogIcon hyleidos | 2007/09/23 01:21 | PERMALINK | EDIT/DEL

      저도 감사하고 또 반갑습니다.

      문제인지 답인지 모르겠지만, 공과 색이 서로 다르지 않다.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생각이 미칩니다.
      우주가 대상이 아님(굳이 설명하자면 포함관계의 상위에 있음)을 직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화이트 헤드가 유물론적 과학적 사고를 비판하며 유기론적 관.... 을 가설하고 이끌어 낸 것도 어찌보면 너무나도 우스운 것으로 보이지만. 대상이 없는 사고의 방식이 너무 어려운, 오로지 대상만이 존재하고 대상만을 사유할 수 있는 세계에서는 그 오랜 시간이 당연한 것도 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7/09/23 16:32 | PERMALINK | EDIT/DEL

      플라톤이 이데아를 논했을 때부터 서양은 오랜기간 동안 초월성을 꿈꿔 왔던 것 같습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란 명제를 통해 시도했던 주체와 객체의 이원화는 결국 서양 사상/문명의 딜레마가 되어왔던 것 같구요. 대상을 분리시키고 철저히 분해하여 지배하고 안다고 생각하는 서양 특유의 사고체계가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봅니다. 사실 주체와 객체를 나누는 건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기 편한 툴로써의 의미만 존재하는건데 그 이원화 툴을 진리로 착각하는 오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젠 그 오류의 늪에서 빨리 벗어나와야겠습니다. 근데 동양은 나름 훌륭한 사상적 토대가 있었고 이를 지금까지 꾸준히 발전시켜왔으면 좋았을텐데 서양 문명이 우월하다고 착각하고 이를 너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 BlogIcon snowall | 2007/09/23 00:4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실 천개의 고원이라는 단어에서 "원"을 "환"으로 읽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_-;

    • BlogIcon buckshot | 2007/09/23 00:59 | PERMALINK | EDIT/DEL

      어쩌면 정확히 보신건지도 모르겠네욤.. 사실 천개의 고원은 '환'자와 관련이 높은 책입니다.^^ 서양에서 번성해 온 '환'원주의의 대안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어서요. 그러다보니 반야심경과 유사한 개념들이 자주 나옵니다~ 반야심경과 함께 읽으면 아주 좋을 책입니다. :)

  • BlogIcon soulart | 2009/05/14 20: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空이란..실재하는 것과 실재 하지 않는 사이의 시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철학서를 뒤진다 해도 실제 그 세계를 경험하지 않고선 어떠한 표현의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나타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 이겠지요..^^
    밀도와 무한대...의 표현들을 위에서 봤는데..자연처럼 있는 그대로의 상태..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를 떠난 그냥 그 상태가 공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지금 것 느껴온 것은 여기 까지네요..^^
    언어로 표현 하는 사람이 못 되지만요..실천이 최고겠지요.^^
    특히 인간 관계에서 오는 여러 부딪힘과 나와의 한계에서 벗어 날 수 있는 힘은 이 공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수양 하는 마음을 갖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앗!!다시 시작하는 마음이 0이겠네요..ㅎㅎ)새롭게 세상을 보려하고 더 넓은 마음을 가지려고 할 때.그 마음으로 인해 삶은 아름다워지겠지요..이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닐까 합니다. 완벽할 순 없겠지만 이러한 마음의 노력이 변함없이 지속될 때 空이 무엇인지, 무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 같습니다. 그게 영원함이고 본질아닐까 합니다.
    결국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행복한 삶과 자아가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여러 철학서들과. 종교.예술이 반복 되는 것이기에..

    • BlogIcon buckshot | 2009/05/14 22:52 | PERMALINK | EDIT/DEL

      사람들은 모두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듯 못 느끼듯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자신만의 정의가 있을 것 같은데요.

      soulart님은
      통찰력이 가득한 정의를 갖고 계시네요.

      soulart님의 정의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충만해지는 느낌입니다.

      실재와 비실재 사이
      존재와 비존재를 떠난 상태

      사이와 일탈

      그리고, 마음의 수양

      깨달음에 대한 저의 욕망을 강렬하게 자극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BlogIcon 맑은독백 | 2009/06/11 11:0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 정말 감동적입니다...
    개인적으로 노마디즘, 천개의 고원을 읽으려 맘 잡던 중이라..
    더욱 이글이 귀하게 다가옵니다.

    연구공간 수유 너머를 통해
    불교에 대한 관심과 들뢰즈의 관심이 일던 차에
    이 글을 봤습니다.

    조금은 시간이 지나야 될 듯합니다만,
    언젠간 읽고 흔적을 남기는 시간이 오길 기대해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06/11 19:54 | PERMALINK | EDIT/DEL

      제가 노마디즘, 천개의 고원을 제대로 읽지 않은터라 아쉬움이 남는 차에 맑은독백님 포스트를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다시 노마디즘과 천개의고원을 집어들어야 겠습니다. 맑은독백님의 리뷰도 기다릴거구여~ ^^

  • 전라도사나이 | 2011/07/15 23:0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것은 주역에서 무극이란 무에서 에너지화 된 태극이 되어 음과 양으로 분리되고 이것이 다시 물질계에서 6개의 변수에 의해서 2^6개 즉 64가지 경우의 수를 만드는데..........즉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 무의 세계에서 유의 세계로 변화된 세계이지요 ...무의 세계는 에너지 세계인데 그 에너지의 세계 이전의 무는 에너지 이전단계입니다.....이것을 반야심경에서는 공이라고 하고.....유대의 카발라에서는 아인소프 주역에서는 바로 무극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물질로 현현한 세계는 하나이지요 즉 우리나라에서 천부경에서는 음과 양 모두 하나라고 본것입니다...그래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되는것이구요

  • 전라도사나이 | 2011/07/15 23:05 | PERMALINK | EDIT/DEL | REPLY

    無는 energy 의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주역에서는 陰에 해당하고
    有 즉 있음의세계 물질계는 보이는 陽의 세계이지요.
    E=mc^2
    즉 에너지와 물질의 등가 법칙이 성립하는 식인데 우변의 물질의 특성인 질량이 있고 좌변은 에너지인데 이것은 파동이 아주 짧아서 형태가 없는 기체나 불처럼 불완전한 상태이지요 그러나 이것이 핵자 즉 양성자나 중성자에 잡혀서 안정화 된것이 물질입니다.....

  • 전라도사나이 | 2011/07/15 23: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우주는 특이성 즉 에너지 상태에서 빅뱅으로 물질로 현현한것이지요.....이것이......허블의 법칙인데.....이것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한것이고 불교철학이나 기독교에서도 있음의 세계 이전을 무로 상정합니다
    무라고 해서 진짜 무가 아닌 에너지 상태를 의미하지요....

  • 전라도사나이 | 2011/07/15 23:08 | PERMALINK | EDIT/DEL | REPLY

    끝으로 특이성 상태는 에너지 상태를 의미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1/07/15 23:23 | PERMALINK | EDIT/DEL

      포스팅한지 4년 만에 선물받는 댓글이 왜 이리도 기쁜지요. 그리고 너무도 귀한 피드백에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낍니다. 이 주제에 대한 생각을 4년간 쉬었네요. 이제 다시 생각놀이를 전개해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귀한 선물 너무 감사합니다. ^^
      http://twitter.com/#!/ReadLead/status/91874846216171520

  • BlogIcon 명언 | 2012/01/23 04:3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색즉시공 공즉시색. Nothing is Form, Form is Nothing. 드디어 그의미가 가르키는 바를 이해 했네요. 그의미를 이해 한것이 아니라.. 저도 님처럼 생각 했으나, 그건 다.. 달을 가르 키는 손가락을 여전히 붙잡고 그 손가락에대한 논문을 쓰는것이랑 다름 없더군요. 달은 단지 가르켜 질수만 있음으로.. http://advait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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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디즘을 읽다가 떠오른 예전 2개의 포스팅 :: 2007/09/07 00:02



노마디즘의 아래 문구를 읽다가

화폐가 지배하는 상품세계에서는 기발하게 만들어진 어떤 새로운 상품이라도 얼마짜리 상품에 불과하다.  화폐라는 단일한 척도에 의해, 단지 양적 차이만 갖는 상품으로 동질화되고 만다.  전에 알지 못했던 아주 이질적인 것이 나타났을 때도 통상 우리가 아는 문명은 이를 다양성을 확장시키는 계기로 삼기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는 것 안에 갖다 놓음으로써 동질화하고 동일화하는 과정에 끌어들인다.  아메리카 인디언,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이질적인 삶의 방식을 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의 문명 안에 들어올 일종의 과거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문명이란 이름으로 동질화하고 동일화하여 지상에서 제거해야 할 무엇으로 만들었다


예전에 쓴 아래 두 개 포스팅이 생각났다.  앞으론 들뢰즈의 리좀적 사유를 많이 시도해야 할 것 같다.  은연 중에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에 너무 많이 젖어 버린 것 같다..   환원주의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중요한 걸 잃어버리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언 미래를 과거로 착각하기 까지 하니 나원참...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선생을 파괴하면서 배우는 학생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녹색평론사


라다크 개방/개발 전의 라다크 주민들의 서방세계에 대한 반응은 이랬다.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단 말입니까?" 
"여긴 가난 같은 건 없어요."

하지만 1975년부터 마을에 대한 서구화가 시작되면서 반응은 이렇게 바뀐다.
"당신들이 우리 라다크 사람들을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우린 너무 가난해요."

더 편리하고 문명화된 생활을 하기 위해 자연을 개발했을 뿐인데 왜 라다크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서구 문명에 비춰 열등한 문화로 정의되는 순간부터 일이 꼬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다크는 미개한 마을이 아니라 병들어가고 있는 서구적 기술 문명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오래된 미래 교과서였던 것이다.   결국 저자인 노르베리-호지는 서구적 개발에 반대하는 라다크 프로젝트를 발족 시켜 라다크가 잃어버린 예전의 지혜를 되찾도록 지원한다.  결국 라다크는 서구 문명의 어설픈 수입을 통해 자신 스스로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된 셈이다.  

우린 그동안 누구에게 배움을 얻고 실행해 왔는지.  우리도 라다크처럼 자신 스스로에게서 배움을 얻어야 할 때가 아닌지...

아무리 생각해도 서양은 동양을 파괴하면서 엄청 배우고 있는 혜택 받은 학생인 것 같다.





[The Wind is My Mother]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 자연은 인간을 용서하고 있다.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
베어 하트 지음, 형선호 옮김/황금가지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인디언은 지상의 어떤 종족보다 동물에 가까웠다.  바람의 냄새를 맡고 새 소리를 듣고 나무를 만지고 냇물의 맛을 보며 불을 지피고 이상한 주문을 외우는 인디언들은 분명 자연과 대화를 나눌 줄 아는 마지막 종족이었는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은 그런 인디언들에게서 자연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현대인들은 자연을 이용하고 파괴할 줄만 알지 자신의 삶을 지켜주는 자연의 가치와 자연의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인간을 자연은 계속 용서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계속 우리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선물들을 인간에게 제공하고 있다.  자연은 인간과 연결되어 있고 인간에게 지속적인 메세지를 보내고 있다.  인간은 그런 자연의 마음을 이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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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snowall | 2007/09/07 10:2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각에 관한 글을 하나 엮어둡니다.
    적어도, 현대인들은 인류가 자연을 어떻게든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죠.
    사실 어딘가의 나라에서 시작된다는 생명창조 프로젝트(DNA염기 인공 염기 생명체)가 생태계를 위협할 것이라든가, 인간-비인간 교잡 배아의 연구가 인류의 존엄성을 위협할 것이라든가 하는 말들이 많고, 언젠가 자연의 복수를 받을 것이라는 예언(?)도 있죠. 하지만 어차피 인간이 걱정하는 일들입니다. 자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요. 차라리 솔직하게 "죽고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면 되는 것을 말이죠.

  • BlogIcon 至柔제니 | 2007/09/07 12: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선생을 파괴하면서 배우는 학생. 서양 문명의 잣대로 동양을 보면 두리뭉실한 것 투성이겠지만, 그 안에 입증되지 못한 진리와 지혜가 가득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디언의 지혜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계량화 되거나 입증되지 못한 지혜. 보이지 않는 진리. 자연이 더 아프기 전에 우리가 배우고, 앎으로 그치지 말고 실천해 냈으면 좋겠습니다.

  • BlogIcon 크레아티 | 2007/09/07 22: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도 몇 일전에 읽었던 공상과학 소설 넥스트를 읽고 썼던 포스팅을 하나 엮어봅니다.
    자연물에 광고를 붙이겠다는 발상이 나오는 대목이 있었거든요.
    이런 것들이 실현화된다면 우리는 맥도날드라고 몸에 새겨진 물고기가 마이크로소프트라고 새겨진 물고기와 싸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인디언 하니까 어렸을 적에 읽었던 인디언 설화모음집이 생각나네요. ^^

    • BlogIcon buckshot | 2007/09/08 00:12 | PERMALINK | EDIT/DEL

      크레아티님, 덧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넥스트'의 설정이 정말 대단하네요. 광고가 유전자와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 인간의 자연 이용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라는 한숨이 나옴과 동시에 시장 확장의 한계는 없다란 생각도 드네요~

  • BlogIcon sepial | 2007/09/25 03: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라다크.......정말 그래요. 이곳 남아공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원조가 많이 들어가는 마을과 그렇지 않은 곳......다녀 보면 반응이 정말 저렇습니다...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읽으면.....그 답이 나올까요?

    • BlogIcon buckshot | 2007/09/25 20:05 | PERMALINK | EDIT/DEL

      '오래된 미래'가 주는 교훈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sepial님 블로그를 방문해 보니 너무나 소중한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부럽습니다. 저도 남에게 뭔가를 베풀 수 있는 일을 언젠가는 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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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성은 분자적이다. :: 2007/08/31 01:45



난 질 들뢰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천개의 고원...  사놓고 전혀 읽어 보지 않은 책이다.  고로 무엇에 관한 책인지 모른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을 펼쳐 들었고 무심코 책장을 넘기다 아래와 같은 문구를 발견했는데 뭔가 그동안 적어 왔던 포스팅들과 맥이 닿는 듯한 느낌이 든다..  ^^

모든 생성은 이미 분자적이다.  생성은 무엇인가를 또는 누군가를 모방하거나 그것들과 동일해지는 것이 아니다.    

생성은 누군가가 가진 형식들, 누군가가 속해 있는 주체, 누군가가 소유하고 있는 기관들, 또 누군가가 수행하고 있는 기능들에서 시작해서 입자들을 추출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입자들 사이에 운동과 정지, 빠름과 느림의 관계들을, 누군가가 지금 되려고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우며 그것들을 통해 누군가가 생성하는 그런 관계들을 새로이 만들어낸다. 

세상 모든 사람 되기는 세계 만들기이며, 하나의 세계 만들기이다. 없애버림의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의 추상적인 선, 그 자체로 추상적인 퍼즐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다른 선들, 다른 조각들과 접합접속하고 연결하면서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져서, 투명함 속에서 먼저번 세계를 완전히 뒤덮을 수 있게 된다.


들뢰즈의 글을 읽고나니 아래 포스팅들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게 된다.  쭈욱~ 엮어서 생각을 해봐야 겠다...

양자레벨에서 인간을 바라볼 때... - 비국소성의 원칙 (Non-locality)

[Web 2.0] 정보, 사람, 연결 - We are the Web. The Machine is Us/ing Us. Web 2.0 ... Beyond E-text

[흐름과 연결] 믿음,기억,욕구는 생물학적 생성물질이다. 통할 수 있는 능력이 신체의 능력이다. 흐름과 연결이 인간의 핵심이다.

[마르틴 부버 - 나와 너] 마음의 흐름과 관계

정보의 핵심

마음과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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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그린비 | 2008/08/11 19: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들뢰즈 책을 정말 들뢰즈적으로 읽고계시는군요! 들뢰즈도 언젠가 말하길, 『천의 고원』이 사람들에게 '연장통'처럼 쓰이길 바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들 하나하나가 퍼즐이 되고, 다른 퍼즐을 만들어 가길 바랬달까요. buckshot님께서 읽으신 그 방식대로 말입니다. ㅎㅎ

    위의 링크의 3번째 글 '흐름과 연결'은 들뢰즈가 많은 부분에서 빚지고 있는 철학자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을 연상시키는군요! ^^*

    • BlogIcon buckshot | 2008/08/11 23:46 | PERMALINK | EDIT/DEL

      아이고,, 들뢰즈 책을 들뢰즈적으로 읽고 싶고 들뢰즈적으로 살고 싶은 사람일 뿐입니다. 아직 들뢰즈적이란 표현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입니다... 그래도 말씀해주신 들뢰즈적인 독서, 들뢰즈적 쓰임새를 다시 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포스팅한지 1년 만에 받는 댓글이 이렇게 귀한 의미로 다가오는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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