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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의 순간 :: 2014/08/13 00:03

사람은 매일 잠을 잔다.

사람은 매일 잠에서 깨어난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잠드는 것과 깨어나는 것에 대한 특별한 감이 없다.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

참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수면을 통해 복잡했던 정보의 망이 의미 있는 리셋의 과정을 거친 후

전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 왔다는 의미.

가장 극적인 리셋을 매일 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잘 인식하지 못하는 건

대단한 기회가 잠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엄청난 것들이 우리 일상 속에 얼마나 많이 숨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일상을 지루한 것으로만 선입견으로 단정해 버려서 그렇지

제대로 일상을 바라보면, 날카로운 눈으로 일상을 직시하면

일상은 거대한 신비와 엄청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면서 우리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나는 매일 잠을 잔다.

나는 매일 잠에서 깨어난다.

눈을 감고 눈을 뜨고.

수시로 눈을 감고 눈을 뜨고.  그게 다 작은 리셋의 흐름 아닐까?

수시로 리셋을 하고 있었다. 나는.

리셋의 순간을 인지한 순간, 나는 나를 리셋한다. 의식적 리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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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 2014/07/11 00:01

창의력은 노가다에서 나온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무수히 많은 평범함을 거부하는 과정 속에서 파생된다. 셀 수도 없이 많은 평범한 생각의 단초들이 뒷다리를 잡아대며 생각의 진전에 브레이크를 거는 집요한 방해 공작을 모두 뿌리치며 얻어낸 결실.

그건 엄청난 노가다 그 자체다.
노가다를 얼마나 처절하게 수행하는가?

천재적인 두뇌에서 한 방에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창의적인 생각은 노가다에 준하는 ritual과 단련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그런 과정을 겪는 것 자체를 즐거움이라 생각하기에 노가다임에도 불구하고 노가다인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결국 어느 순간 아이디어가 수면 위로 사뿐하게 떠오르는 것 뿐이다.

내가 투입한 시간이 일상적인 수치 범주를 크게 벗어난 케이스가 있는가?
그게 없다면 생각은 창의적이지 못한 평범의 쳇바퀴를 분주하게 돌고만 있을 것이다.

투입은 정직하다. 소요 시간이 대답한다.
노가다 알고리즘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창의의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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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三分之讀 :: 2014/01/15 00:05

장편 소설을 읽을 때,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초반만 읽기
하나의 장편소설을 들고 그 책을 처음부터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3분의 1 정도 읽은 후에 그 책을 덮고 책장 깊숙이 집어 넣는다. 그리고 그 책의 중반,후반부 읽기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 마치 장편소설이 연재되다가 급작스럽게 중단되어버린 상황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편소설이었고 총 50회 분량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15회 정도를 연재하고 소설가가 돌연 잠적을 해버린 거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그 소설을 미완의 스토리라고 생각하고 그 소설에 대한 생각을 중단할 수도 있겠으나 내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이고 그 소설의 1회~15회의 초반 스토리에 충분히 몰입을 했다면 그 스토리의 이후 진행을 내가 이어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의 첫 문장, 주제, 플롯, 인물의 캐릭터, 갈등이 어느 정도 초반부에 형성이 되어 있을 것이니 나는 그걸 기반으로 이후의 스토리라인을 전개해볼 수 있다. 사실 소설의 초반부를 읽으면서 가졌던 나만의 심상이 소설 중후반으로 이어지면서 살짝 스크래치가 나는 경험을 무수히 해본 터라 소설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은 타이밍이 온다면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 이어가기' 놀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반만 읽기
오프라인서점에서 손이 가는 장편소설 한 권을 집어 들고 자리에 앉아서 무턱대고 3분의 1 지점을 펼치고 읽기 시작한다. 살짝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이미 소설은 틀을 갖추고 본격적인 이야기 진도를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맥락 없이 불쑥 소설 흐름 속에 침입한 느낌이 분명 들 것이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이야기를 대하는 매력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 처음부터 친절하게 소설의 컨텍스트를 안내 받지 않고 중반부의 흐름에 거칠게 나를 던져 놓고 내가 이야기를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체계적인 안내를 받은 독자보다 오히려 더 창의적인 읽기를 할 수 있다. 익숙함은 나른함을 낳게 마련이다. 낯섦은 새로운 시각을 수반하기 쉽다. 잘 모르고 소설 속으로 던져지는 상황에 직면한 채  '낯설게 읽기'를 즐기다 보면 작가와 독자가 모두 매너리즘에 빠져들기 쉬운 소설 중반부에서 홀연히 톡톡 튀는 감각을 견지하며 소설을 리드할 수 있는 쉬크한 이방인 독자의 통찰을 뿜어낼 수 있을 것이다.


후반만 읽기
장편소설의 3분의 2 지점에서 읽기 시작한다. 이제 이야기는 마무리로 향하는 분주한 단계이다. 소설 속 이야기는 너무도 어려운(?^^) 타이밍에 거칠게 던져진 나를 그닥 반겨주지 않는다. 아니 매우 황당한 눈초리로 나를 흘겨본다.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후반부를 읽어 나간다. 그 무엇도 나에겐 냉담하게 반응한다. 갈피를 잡기가 힘들다. 인물들은 마구 튀어나와 제멋대로 대사를 읊어대기 일쑤이고 플롯에 대한 감도 없고 갈등의 맥락도 뭐가 뭔지 잘 모른다. 나의 읽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야기는 질주를 거듭한다. 이 느낌은 마치 10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간 듯한, 100년 후의 미래에 불시착한 듯한 파격 그 자체다. 그런 상황 속에선 '태연함' 만이 살 길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에 몸을 맡긴다. 그저 읽고 읽는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극적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나에게 주어지는 정보는 빈약하기 그지 없지만 그런 희박한 정보가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소설을 처음부터 읽은 독자에겐 소설 한 페이지가 별 것 아니겠지만 나에겐 한 페이지가 엄청난 정보의 보고이고 한 문장 조차도 소중하다. 아니 한 단어 조차도 나에겐 세상 전부이다. 난 절박하다. 너무 절박하다 보니 처절하게 상상을 할 수 밖에 없고 그런 상상을 통해 어느덧 소설의 초중반을 설계해 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장편 소설을 읽을 때,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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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 크래프팅 :: 2013/11/25 00:05

잡 크래프팅이란 표현이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스스로 변화시켜 일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활동을 의미하는데 일하는 자가 돈 때문에 마지 못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일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능동적인 업무 수행의 동기를 스스로 부여한다는 차원에서 일종의 개인경영의 방법론으로 볼 수 있겠다.

"
왜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내가 원하는 일이니까"란 대답 보다는 "돈 때문에"란 답변을 하기가 쉽다. 그런데 그런 답변을 하는 순간, 일을 하는 자로서의 자존감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일이 자존을 강화시키기 보다는 타존의 고착화로 귀결되는 모습이라면 ''에 대한 자부심, 열정이 생겨날 리는 만무하다.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일을 재미있고 의욕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자신 만의 방법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일에 대한 자세는 초기의 신선함을 잃고 일상의 축적 속에서 지루함의 단계로 진입하기 마련이다. 시간의 공격 앞에 창의는 루틴이 되고 루틴이 지속되다 보면 어느덧 매너리즘이 일을 리드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바로 그 '루틴'속에 지루함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가 숨겨져 있다. 유는 무에서 나온다. 뭔가 대단한 것을 생각해 내고 만들어 내는 것은 거대한 ''가 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하다. 뭔가 지루한 듯 하고 티도 안나는 것 같은 반복적 루틴. 그건 일종의 거대한 ''일 것이다.

반복을 지루함이라 간주하지 말고 창의를 생성할 수 있는 세라고 생각해 보자. 반복이 지속되면 창의의 세가 강력하게 형성되는 것이라고 규정해 보자. 반복이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는 건 거대한 에너지가 축적되고 있음을 의미하고 그 에너지는 혁신의 동력으로 사용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잡 크래프팅은 결국 지루함의 이면에 창의가 도사리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단순해 보이는 일에 깊은 의미를 심을 수 있으려면 지루함의 이면을 직시할 수 있는 ''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 눈은 일상 속의 지루함을 '지루함+알파'로 인식할 수 있는 제3자적 시각을 의미한다. 일을 하면서 그저 일을 수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을 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메타적 관찰에서 루틴의 창의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프레임 속을 살아간다. 일도 일종의 프레임이다. ‘이란 프레임 속에 온전히 빠져들지 않고 수시로 그 프레임 속을 빠져 나와 프레임 안에 있는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나에게 있는가? 그게 없다면 그 눈을 갖기 위한 또 다른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2개의 프레임을 구축해 놓고 프레임과 프레임을 오가면서 프레임 속의 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블로깅을 하면서 블로깅을 하지 않는 나를 바라본다. 또한, 블로깅을 하지 않으면서 블로깅을 하는 나를 바라본다. 2가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일종의 를 형성하는 것이고 그 세에서 나의 루틴은 지루함이 아닌 약동하는 삶의 시공간으로 포지셔닝한다.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가 실은 동전의 양면인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생각/행동으로 명쾌하게 통찰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프레임을 넘나들면서 를 메타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면, 세를 형성할 수 있다면 세상에 널려 있는 동전의 양면메커니즘을 유유히 관조하며 경쾌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블로깅을 하면 된다. ^^


PS.
관련 포스트
루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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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예술적 재능의 복원 :: 2013/08/09 00:09

블로그는 예술이다 포스트를 요즘 다시 되새기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창의력과 예술가적 자질을 갖고 세상에 태어난다. 아기 시절에 인간이 보여주는 창의력, 예술가적 자질은 어른들의 환호 속에 힘을 받는다. 하지만 아기가 나이를 먹어 어린이가 되고 또 나이를 먹어 청소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자신에게 부여된 창의력, 예술가적 자질을 마음 편하게 펼치기엔 세상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주위의 정량화/표준화된 시선에 자신을 순응시키고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나, 남들과 비교해서 뒤떨어지지 않는 나를 유지하기 위해 속물적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결국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그렇게 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의 색깔과 향기를 잃어간다. 자본주의 시장 체제에서 일종의 범용품과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예술가적 재능을 타고 났지만 그것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자존이 아닌 타존의 삶을 살아가기 쉬운 세상에서 The Black Ager님의 블로그는 예술이다 포스트는 나에게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나'만의 생각과 경험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블로그 포스팅. 그건 나이를 먹으면서 잃어갔던 예술가적 재능을 복원시키는 활동인 것이다. 나를 읽고 표현하고 리드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더욱 나다워지고 그것이 나로 하여금 나를 더욱 읽고 표현하고 리드하게 하고. 이렇게 절묘한 예술의 무한 루프가 어디 있단 말인가.

문명이 발전할 수록 인간은 거대한 문명의 부품이 되어간다. 도구가 발전할 수록 도구는 인간의 몸과 마음 속에 침투하여 인간을 도구화시킨다. 부품으로 작동하고 도구로 기능하는 시간의 축적에 대항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 중의 하나가 예술을 수행하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순간, 인간은 부품에서 완전체로 변신하고 도구에서 목적으로 격상한다. 예술하는 자는 문명을 부품화시키고 도구의 역습을 봉쇄한다.

모두가 이미 예술가이다. 다만 자신에게 내재한 예술가적 자질을 인지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뉠 뿐이다. 또한, 나이를 먹으면서 예술가적 재능을 속절없이 잃어가는 자와 그것을 복원/증폭시키는 자로 구별될 뿐이다.
타인의 시선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경쟁우위와 같은 헛된 환영에 눈이 멀고 속물적 스펙에 휘말리는 공장 통조림 같은 삶으로 일관하면 예술가적 면모의 복원은 요원해진다.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최근에 내가 산출한 나만의 작품은 무엇인가?  

나는 예술가이다. 내가 예술가라는 사실이 내겐 너무도 가슴 벅찬 설레임이고 그 충만한 기쁨은
쩐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쩐봇으로의 전락을 강요 받는 나에게 강력한 돌파구가 되어주고 있다. 블로그는 예술이다. 블로그는 예술 수행 플랫폼이다.  인간은 예술이다. 인간은 모두 예술가이다. ^^



PS. 관련 포스트
블로깅, 경영과 예술
질문 아끼기, 행동으로 답하기

Jam Reading
모두가 예술가다.
상품화
미켈란젤로의 조각에 대한 정의 - 창조주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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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3/08/22 20: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제야 봤어요 ㅠㅠ 언제나 감사하고 황송합니다... 요즘엔 예술가들"만"을 위한 소셜 플랫폼이 생기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해요. 인간의 본성과 기술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시대적 발명품인 소셜 네트워크의 다음 단계는 '컬처럴' 네트워크가 아닐까요 ^^

    • BlogIcon buckshot | 2013/08/22 22:12 | PERMALINK | EDIT/DEL

      저의 블로그 라이프는 '블로그는 예술이다' 포스트를 읽기 전과 읽은 후로 나뉩니다. 너무나 감사드리고 싶은 포스트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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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독무 :: 2012/12/24 00:04

오프라인 상의 브레인스토밍은 다른 생각을 조합할 수 있다는 군무(群舞)의 장점은 있으나 나만의 생각을 깊이 있게 당당하게 표출할 수 있는 독무(獨舞)의 환경조성 능력은 떨어진다.

군무와 독무를 겸비한 군독무에서 창의와 혁신이 나오기 마련이다. 군독무를 즐긴다는 건 왁자지껄한 군무의 광장도 아닌, 고요하기 그지없는 골방도 아닌 광장이면서도 골방인 묘한 지점에서 생각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고요한 것처럼 보여서 얼마든지 혼자만의 생각을 전개하다가도 마음만 먹으면 자연스럽게 타인의 사고에 접속할 수 있는 군독무의 공간. 타인의 생각에 얼마든지 연결될 수 있는 상황에서 나만의 생각에 몰두할 수 있는 곳. 연결감을 견지한 채 고립의 향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 바로 그곳에서 창의/혁신이 생성된다.

온라인 상의 브레인스토밍은 창의/혁신의 효과적 방법이다. 혼자 사고하면서 나의 생각과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생각과 스스럼 없이 대화하는 것. 우린 웹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그때마다 우린 의식하든 못하든 온라인 브레인스토밍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무심코 웹을 서핑하면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정보들은 모두 나에게 암묵적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고 그 신호에 대한 의식적 응답 여부에 상관 없이 나는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웹 자체가 연결의 장이기 때문에 웹을 유영하는 시간은 온라인 브레인스토밍이 작동되는 공간이 될 수 밖에 없다.  

웹이 세상을 덮어갈수록, 창의와 혁신은 일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내가 하는 웹 상의 모든 행위 속에 창의가 잠재하고 있음을 인지 못할 뿐이지 창의와 혁신은 항상 군독무 환경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고 그것을 인지하고 그것에 의식적 반응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의식이 무의식을 인지하고 무의식이 인식과 융합되는 과정 속에서 군독무는 본격 작동하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행해지는 브레인스토밍 속에서 의식을 서서히 ON 상태로 바꿔보자. 의식 ON 상태에 진입한 상황에서의 온라인 환경은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이 아닌 심도 있는 군독무의 장인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소셜 네트워크와 창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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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0:59 | DEL

    It amazing in support of me to have a website Read & Lead - 군독무, which is beneficial in support of my know-how. thanks admin

  • Tracked from toms sal | 2013/06/13 11:00 | DEL

    When I saw this web page %title% having amazing featured YouTube video clips, I decided to watch out these all video clips.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12/24 00:21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맞아요. 어느 곳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힘. 어찌보면 그것은 뇌도, 웹도 아닌 '데이터들의 네트워크'에 속함으로서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시공간성이라고 할 수 있겠죠. 벅 선생님, 메리 크리스마스 ^^

    • BlogIcon buckshot | 2012/12/24 07:09 | PERMALINK | EDIT/DEL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보내주시는 댓글이 저의 또 다른 생각의 원천 소스가 되어주시는 느낌입니다. 즐거운 클스마스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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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티브 :: 2012/11/26 00:06

태어나면서 스마트폰을 만지게 되는 아기는 자라면서 스마트폰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간주하고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갖고 놀게 된다. 하지만 어렸을 때 도스 컴퓨터를 갖고 놀면서 성장한 40대 성인은 스마트폰을 접할 때 엄청난 편의성을 제공하는 문명의 이기로 생각한다. 스마트폰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스마트폰을 예전에 사용하던 디바이스 대비 급격하게 변화/발전한 첨단기기로 인식하는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 현대라는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어떤 사람은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보는 반면, 어떤 사람은 현재를 과거의 프레임으로 해석하고 번역한다. 사물과 개념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과 그것을 예전 틀에 맞춰서 억지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사람.

사람은 가장 창의적인 시절에 보고 느꼈던 '상'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40대 남성이 2012년을 살아간다는 것은 1970~80년대에 형성되었던 프레임에 2012년을 끼워 넣고 어거지로 2012년을 이해하려 노력함을 의미한다. 2012년을 살아가고 있지만 결코 2012 네이티브는 아니란 얘기다. 1970년대 네이티브, 1980년대 네이티브로 70~80년대 앵글을 통해 바라보는 2012년의 상. 그건 직시가 아니라 왜곡에 가까운 상일 것이다.

특정 시대를 살아갈 때 그 시대에 네이티브가 되어 살아가는 게 제일 편하고 좋은 것이다. 미국에 사는 사람이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닐 때 겪게 될 어려움을 생각해 보자. 사실상 이방인의 느낌을 갖게 될 수 밖에 없고 항상 머리 속에서는 항상 영어를 다른 언어로 전환시키느라 CPU가 팽팽 돌면서 뇌는 수시로 과부하 모드에 놓이게 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네이티브와 디지털 외계인이 공존한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자본 네이티브와 자본 외계인이 공존한다.
특정 트렌드가 대세일 때는 해당 트렌드의 네이티브와 외계인이 공존한다.

세상은 '** 네이티브'와 '** 외계인'이 공존하는 곳이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엇'이 있다면, 자신이 그것에 있어서 네이티브인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네이티브와 외계인을 구분하는 것은 그 '무엇'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가 여부에 의해 좌우된다.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다른 매개체를 동원해서 그것을 해석하지 않고 아무런 도구와 프레임이 없이 그것을 바라보고 인지하고 정의를 내리고 개념 확장을 시키는 것이다.

아무런 기존 도구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보도록 하자. 그랬을 때 그것에 대한 상이 즉자적으로 형성되고 그것에 대한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네이티브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사람은 어린 시절에 보고 느꼈던 것을 기반으로 프레임을 형성하고 그 고정된 프레임으로 이후에 접하게 되는 것들을 해석하게 되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재미가 없다. 나는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새롭게 접하게 되는 물질과 개념을 어린아이와 같은 유연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옴니 네이티브가 되고 싶다. 2012년을 살아가지만 사실상 70~80년대를 살아가는 2012 외계인이 되는 건 내겐 그닥 재미가 없다. 난 2012 네이티브가 되고 싶다. 어느 시공간을 접하더라도 그 시공간의 네이티브가 되고 싶다. ^^


PS. 관련 포스트
소외, 알고리즘
Mobile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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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1:46 | DEL

    For the reason that the admin of this website is working, no uncertainty very soon it will be famous Read & Lead - 네이티브, due to its feature contents.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11/27 00: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바로 이런 마인드가 벅샷님이 늘 신선한 사고방식을 유지하시는 비결인 거겠죠 ^^ 자기 시스템, 자기 제도권 안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칼바람이 부는 시간의 숲에 겁없이 뛰어드는 야생동물 같은 문화의 여정. 외롭지만 항상 매력 있는 것 같아요.

    • BlogIcon buckshot | 2012/11/27 09:43 | PERMALINK | EDIT/DEL

      시간의 숲에 뛰어든 야생동물.. 너무 멋진 비유이십니다. 정말 제가 야생동물이 되어 시간의 벌판을 달리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설레이는데요. ^^

      하나의 문장으로 저의 오전을 화사하게 만들어주시니 넘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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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와 효율 :: 2012/10/10 00:00

창의와 효율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다.

효율이 결핍될 때 창의는 결실을 맺기가 어렵고
창의가 결핍될 때 효율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

창의의 이면에 효율이 있고 효율의 이면에 창의가 있다.

둘은 원래 하나였다.

하나였는데 여러 가지 의도와 목적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분열이 되었고
분열된 불완전한 상태가 되어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이다.

분열이 되면서 창의에 대한 오해가 깊어지고 효율에 대한 착각이 만연하게 되었다.

원래 하나였던 창의와 효율을
서로 다른 상반된 존재가 아닌
서로가 서로의 이면이자 돌파구인 합체 구조로 이해할 때
창의와 효율의 실체를 직시할 수 있게 된다.

시각의 한계, 인지의 한계로 인해 사물과 대상을 전체로 보지 못하고 쪼개서 보게 되는데
합체형 대상을 분할하고 분할된 각각의 객체들을 개별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은
인지감각 차원에선 정보의 과부하를 경감시켜주나
과부하를 줄인 만큼 loss로 인한 본질로부터의 괴리 현상도 심각해 진다.

창의와 효율이 하나라는 것을 잊지 않을 때
창의에 대한 왜곡된 관점, 효율에 대한 왜곡된 접근을 방지할 수 있다.

분할 인식을 통한 인지의 왜곡을 보정할 수 있는 통합의 렌즈를 장착하고 세상을 바라보는가,
아니면 조각조각 분할된 토막 개념들을 아무 보정 없이 그대로 수용한 채
본질로부터 격리된 박제된 허상 속을 살아갈 것인가? ^^



PS. 관련 포스트
정보의 분열, 행복과 욕심의 분리
창의력과 시공간 인지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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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막.. :: 2012/07/13 00:03

뭔가를 분류한다는 것은 새로운 뭔가가 탄생하기 힘든 프레임을 만들어냄을 의미한다.
뭔가에 분류적 의미와 이름을 부여하는 순간 뭔가는 박제가 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분류는 기존의 것들에 속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새로운 것의 탄생을 저지하기 마련이다.

기존 가득한 세상에서 새로운 걸 만들려면,
기존 분류체계가 외면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예리하게 채취해야 한다.

그런데..
기존 분류체계는 기존 범주 안에서 편하게 머물게 하는 안주 도우미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범주의 탄생을 끊임없이 암시하기도 한다.

분류는 박제화 공장인 동시에 새로운 범주 생성 발전소이다.

뭔가를 분류할 때, 분류되어 있는 뭔가를 관찰할 때 분류에 내포된 2가지 상반된 속성을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박제화 되어 가는 분류 체계 속의 고정관념을 충분히 음미하면서 고정관념이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내막을 잘 이해해 주는 동시에 분류에 내포된 새로운 범주 탄생 욕망의 꿈틀거림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박제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사물이 아니다. 박제는 움직이고 싶은 욕망, 뭔가 생성해 내고 싶은 욕망을 간직한 채 제자리에 멈춰 있으면서 거대한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박제의 세월이 길면 길수록 축적된 에너지는 가히 폭발적인 수준일 것이다.  

컨텐츠는 컨테이너 속에 박제된 형태로 존재하기 보다는
컨테이너라는 '막'을 끊임없이 투과하고 유동하는 동적 평형 상태에 놓이게 되고 싶어한다.
분류체계라는 컨테이너를 딱딱한 금속 상자로 볼 것인가, 아니면 유연한 막으로 볼 것인가?

모든 것은 컨텐츠이다.
모든 것은 컨테이너이다.

우리는 컨테이너가 되어 컨텐츠를 우리 안에 담기도 하지만
우리는 컨텐츠가 되어 컨테이너 안에 담기기도 한다.

나를 어떤 컨테이너로 규정할 것인가?
나를 어떤 컨텐츠로 규정할 것인가?

'막' 컨텐츠, '막' 컨테이너.. ^^






PS. 관련 포스트
세포와 세포 사이
막, 도구, 의도, 양자
태그,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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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와 망각, 그리고 기억 :: 2012/02/03 00:03

학창시절엔 암기력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원리를 몰라도 암기만 잘하면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릴 수 있으니 수많은 학생들이 암기에 집착하는 것이 당연할 수 밖에 없었다. 학창시절에 멋모르고 했던 암기 행위의 영향력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것 같다. 암기는 정보를 대하는 하나의 태도라서 그렇다. 정보의 의미를 깊게 파헤치지 않고 기계적으로 명기했다가 재생하는 암기 행위.

암기는 매우 치명적인 창의력 파괴활동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스런 정보의 유출입과 정보 간 연결이 창의력 작동의 토대인데 억지로 정보를 어딘가에 붙들어 맨다는 것은 정보 자체의 유연성과 정보의 유동성을 모두 구속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암기를 위한 노력이 가열차게 전개될수록 창의력을 유지하기 위한 반작용도 치열하게 일어나게 된다. 망각은 정보 유연성/유동성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적 플로우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대부분의 시간이 화폐화된다. 화폐화된 시간은 망각보다는 암기를 선호한다. 돈의 흐름을 끊임없이 이어가기 위한 치밀한 계획과 실행만이 화폐화된 시간의 무의미한 낭비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화폐화 되어가는 만큼 망각에 대한 거부감은 커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망각은 새로운 정보가 유입되었거나 기존 정보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그걸 억지로 막기 위해 메모를 하거나 얼럿으로 리마인드하는 것은 기계적인 반응 메커니즘에 스스로를 붙들어 매는 행위이다. 화폐화된 시간이 지배하는 곳에서 살기 위해 메모/리마인드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부정하긴 어렵지만 기계적 반응 메커니즘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에 푹 젖어 사는 태도에 대해선 반성을 해볼 필요가 있다.

기억과 암기를 분리해야 한다. 
그리고, 기억과 망각을 연결시켜야 한다.

기억은 정보의 끊임없는 편집을 의미한다. 동일한 과거의 사건이라도 그것을 다시 호출하는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기억의 내용은 끊임없이 달라진다. 동일한 정보가 박제된 상태로 계속 유지되는 것은 사고 흐름을 방해하는 암초와 같은 작용을 하게 된다. 그래서 기억은 저장이라기 보다는 동적 편집에 가까운 개념이다 . 그래서 기억은 암기와는 다른 DNA를 갖고 있는 것이고 오히려 망각과 밀접한 포지셔닝을 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화폐화된 시간 속에서 불가피한 암기를 하면서도 나의 기억과 창의력이 맹목적인 암기로 인해 교란을 당한다는 사실은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그것을 분명히 인지하면 할수록 암기와 망각 간의 절묘한 균형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그 균형 속에서 나의 기억, 정체성, 창의력은 선명한 존재감을 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 디바이스가 창궐하면서 암기 에이전트 기능이 발전해 나갈수록, 망각 관리 능력은 점점 더 희소성과 소중함을 더해갈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복사기 vs. 재즈뮤지션
기억, 알고리즘
망각,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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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 Reading :: 2011/11/30 00:00

인터넷은 우리에게 하이퍼링크라는 새로운 유형의 경로를 터주었다. 글을 읽다가 링크가 걸려 있고 관심이 가면 그걸 클릭하고 해당 페이지로 이동하게 된다. 하나의 글을 온전히 읽기 어렵고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함이란 네거티브한 습관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하이퍼링크는 산만함으로만 이해할 성질의 개념은 아니다.

하이퍼링크는 깊은 사고를 방해하는 훼방꾼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이퍼링크는 재밍과 깊은 연관이 있는 개념이다. (재밍: 가변적이고 자율적인 변주)
책을 저자가 깔아 놓은 생각 도로를 따라 쭉 읽기만 하면 결국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는 수동적 행위에 그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책을 읽으면서 재밍을 한다고 생각을 해보자. 책에 나와 있는 수많은 저자의 개념들 중에서 내 시선을 끄는, 내 마음을 울리는 키워드 하나가 눈에 띌 경우, 더 이상 책에 깔려 있는 저자의 생각 도로를 따라서 마음을 이동시킬 필요는 없다. 내 주목을 잡아채는 키워드를 갖고 일종의 하이퍼링크질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해당 키워드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전개하고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장되면서 결국 커다란 나의 생각 덩어리를 생성할 수 있다면 그건 jam reading을 통해 나만의 변주곡을 연주한 것이고 그 연주는 책의 저자가 산출한 결과물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나의 저작이 된 것이다.

세상 전체가 책이 되어 가고 있다. 이제, 책은 저자가 쓰고 독자가 읽는 구조가 아니다. 책의 재료는 세상에 널려 있는 것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세상에 널린 재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합하여 자신만의 책을 계속 써나가고 있는 것이다. 종이책을 읽으면서 나만의 하이퍼링크질을 통해 나의 책을 만들 수 있는 것이고, 음악을 들으면서 나만의 하이퍼링크질을 통해 나의 노래를 만들 수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길을 걷다가 건물을 보면서, 지하철에서 사람과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어떤 키워드에 착안해서 나만의 생각 경로를 열어나갈 수 있다. 세상을 읽으면서 세상 속에서 키워드를 추출해서 나만의 하이퍼링크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란 책을 읽으면서 세상이란 책에 씌어 있는 글귀들을 수동적으로 따라 읽지 않고, 나만의 생각 글감에 하이퍼링크를 걸고 그 하이퍼링크를 클릭하면 나만의 생각 직조물이 멋지게 펼쳐지는 것. 세상을 읽고, 세상을 jamming하는 것. 우리는 모두 세상을 읽고 세상을 연주하는 재밍 뮤지션들인 것이다. 우주에서 유일한 나만의 뮤직을 연주하는 재밍 아티스트. 인터넷은 우리에게 하이퍼링크라는 멋진 재밍 툴을 선물한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세상과 책
유독, 알고리즘
튓잼, 알고리즘
재밍,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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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tore

    Tracked from toms store | 2013/06/13 10:50 | DEL

    It my first go to see to this website Read & Lead - Jam Reading, and I am in fact surprised to see such a nice feature YouTube video posted here.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1:01 | DEL

    What's up, everything %title% is going perfectly here and ofcourse every one is sharing data, that truly excellent, keep up writing.

  • Wendy | 2011/12/16 16: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키워드를 가지고 노는 '하이퍼링크질' _ 산만함의 네거티브적 측면으로만 스스로 생각하여 '찔림'을 감출 방도가 없었는데, 아! 위안을 백만배 얻고 갑니다!! 하이퍼링크질 멈추지 않겠습니다. ㅋㅅㅋ 재즈 아티스트들이 재밍을 할 때도 참으로 멋지고 전율도 배가되는데 말이에요. 캬, 정말 너무나도 탁월하고 멋진 비유이십니다! 저에게 조금만 그 능력을 버려주실 순 없으실까요? ^^ 즐겁습니다. 언제나처럼요.

    • BlogIcon buckshot | 2011/12/17 15:08 | PERMALINK | EDIT/DEL

      이미 Wendy님은 멋지게 재밍하고 계신걸요~ ^^ 제가 오히려 배워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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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과 시공간 인지능력 :: 2011/07/04 00:04

창의력은 제자리에 앉아서 골똘히 뭔가를 짜내는 것이라기 보단,

창의력이 샘솟을 가능성이 높은 시공간으로 슬며시 가서 기다리는 것에 더 가깝다.

창의력의 핵심 요소 중의 하나가 '연결'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창의력은 시공간 인지 능력이다. ^^


시공간을 빛의 속도로 이동한다는 것. (2010.10.13)

우주에서 제일 빨리 움직이는 것은 빛이다. 광속은 속도의 최고봉이다. 근데 그건 공간 차원에서나 그런 것이고 시간과 공간을 합친 시공간에서는 모든 물체가 광속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모두 시공간을 광속으로 움직인다. 공간차원에서의 움직임은 거의 없고 시간차원에서의 움직임은 열라 빠른 것이다. 빛은 거꾸로이고. 공간차원에선 빛이 빠르기의 지존이고 우린 꼬래비지만, 시간차원에선 우리가 빠르기의 지존이고 빛은 꼬래비이다. 우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 못하고 산다. 우린 정말 빠르다.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갖게 되는 이유는 시간을 전혀 점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시간 축을 빛의 속도로 날아간다. 그 속도는 가히 충격적인 수준이다. 반면 공간 상에서는 사실상 정지상태나 다름이 없는 존재다. 만약 인간이 시간 축에서만 열라 빠른 것이 아니라 시간 축, 공간 축 모두에서 비슷한 속도로 움직이는 존재였다면 점유에 대한 환상은 애초부터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시공간 상을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시간 축에서의 속도와 공간 축에서의 속도 간의 심한 비대칭이 인간에게 어처구니 없는 착시 현상을 제공한 셈. 뭔가를, 어딘가를 점유한다는 생각. 꿈이다. 개꿈..


PS. 관련 포스트
창의, 알고리즘
창색, 알고리즘
시공,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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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과 상상 :: 2011/05/06 00:06


관찰력은 상상력과 맞닿아 있다.

관찰을 잘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역동적 상상력을 가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관찰은 상상과 재구성(일종의 창조)의 영역이다.

관찰은 현상을 사진 찍듯이 내 머리 속으로 입력시키는 것이 아니다.

현상에 대한 나만의 해석을 내 머리 속에서 구성해 내는 것이다.

관찰은 입력 보다는 생성에 가까운 개념이다.


무엇인가를 관찰할 때,

관찰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나만의 해석 간에는 반드시 간극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 간극의 유형이 관찰자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PS.관련 포스트
[생각의 탄생] 프로페셔널의 열정 > 생각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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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ndy | 2011/05/10 23: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상상력의 안테나를 곧추 세우고 대상을 바라보는 관찰 본연의 관찰을 해야겠군요.^^
    buckshot님의 발견, 성찰, 정리 그리고 '공유'...너무 멋지십니다. 부럽습니다.
    이 곳은 언제나처럼 즐겁고 사유깊은 '관찰의 대상'이 되는 곳.
    아아아, 다 훔쳐가버리렵니다! ㅎㅎ

    • BlogIcon buckshot | 2011/05/11 09:48 | PERMALINK | EDIT/DEL

      관찰하고 관찰당하기. 담기와 담기기. 주체와 객체에 대한 생각놀이는 언제나 즐겁습니다. Wendy님 댓글에 힘입어 오늘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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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와 빈곤은 상호 백신 관계이다. :: 2010/08/09 00:09

제약과 빈곤이 창의와 혁신을 낳기 마련이다. 아쉬울 게 없다면 창의를 발휘할 이유도 혁신을 시도할 이유도 없다. 창의력과 혁신력은 제약을 창출하고 그 제약을 풀어나가는 능력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가장 창의적이고 시간에 따라 창의력이 감퇴한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평생 유지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인간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경험이 쌓이고 경험에 의한 판단이 예단으로 굳어지면서 점점 자유로운 사고를 저해하게 된다.

회사는 태어날 때 가장 혁신적이다. 어떻게든 사업을 일으켜 세우고 전쟁터와 같은 시장에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사고/행동이 혁신을 지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업이 성장하고 안정궤도에 진입하게 되면, 지킬 것에 대한 미련이 새로운 혁신을 준비하는데 커다란 장애요인이 된다.

사람과 회사는 태어날 때 가장 창의/혁신적이고, 시간에 따라 창의력/혁신력이 감퇴한다. 그래서 정작 창의/혁신이 필요할 때에는 발휘하지 못한다. 창의/혁신은 그닥 필요 없을 땐 풍부하고 너무나도 필요할 땐 부족한 경우가 많다. 

생각도 비슷하다. 생각이 풍성할 땐 책을 읽지 않아도 블로그/트위터에 글이 잘 써진다. 생각이 빈곤할 땐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어 보지만, 생각이 빈곤하니 책이 잘 읽히지 않는다. 결국 생각이 풍요롭고 글이 잘 써질 때 책을 읽어야 한다.

잘 나가는 회사가 집요하게 혁신을 추구하고 생각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책을 읽는 건, 도래할 빈곤에 대비한 저축이 아니다. 풍요할 때 사업/생각 혁신을 추진하면, 빈곤의 도래 자체를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빈곤할 때 하게 되는 생각/행동을 풍요로울 때 하게 되면 빈곤 자체를 봉쇄할 수 있다.
풍요로울 때 하게 되는 생각/행동을 빈곤할 때 하게 되면 풍요 자체를 봉쇄할 수 있다.

풍요와 빈곤은 상호 백신 관계다. ^^




PS. 관련 포스트
고갈, 알고리즘
희소,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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튓잼, 알고리즘 :: 2010/05/12 00:02

'읽기'는 '쓰기'를 자극하고, '쓰기'는 '읽기'를 자극한다. 읽기만 하면 쓰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르고, 쓰기만 하다 보면 읽고 싶은 욕구가 치민다. 읽기와 쓰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렇게 한데 얽혀 흘러간다.
트위터는 그야말로 '읽기 & 쓰기'의 장이다. 트윗을 읽다 보면 트윗을 쓰고 싶어진다. 트윗을 쓰다 보면 트윗을 읽고 싶어진다. 뭘 읽게 될 지 알 수 없고, 뭘 쓰게 될 지 알 순 없지만 계속 읽고 쓰게 된다. 읽기-쓰기가 한데 어우러지는 창발의 공간.


트위터는 재즈를 참 많이 닮았다. 사전에 철저하게 기획해 놓고 뭔가를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재즈 연주가들이 즉흥 연주를 하듯, 즉흥성 가득한 읽기와 쓰기를 반복하면서 생각의 변주를 이끌어내는 모습. 트윗 jam이라고나 할까?

트위터를 열심히 하다가, 책을 읽으려고 하니 기분이 묘하다. 역동적인 jam (재즈 즉흥연주) 세션을 마친 후에 차분히 자리에 앉아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기분이 든다. 음.. 뭐, 재즈도 좋고 클래식도 좋다~

문득, 2009년 1월21일에 썼던  재밍, 알고리즘 포스트가 생각난다. 그 포스트를 쓰면서 재즈 연주가들의 재즈 연주 모습을 많이 부러워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이미 왕성한 jamming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트윗을 통해서 말이다. 트윗은 재즈에 대한 나의 열망을 실현시켜 주는 즉흥연주 플랫폼인 것이다. ^^


재밍, 알고리즘

요즘은 거의 음악을 듣지 못하지만, 약 16년 전엔 정말 음악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여러가지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 당시엔 재즈를 참 많이 들었다. 

Thelonious Monk - 'Round Midnight


Jazz.
Improvisation(즉흥연주).
Jam Session.

미리 정해진 악보나 프로그램 없이 구속에 얽매이지 않고 연주자끼리 호흡을 맞추면서 잘 알려진 테마를 자유롭게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Jamming(재밍)'..

재즈 자체의 매력에 푹 빠져 지냈던 1993년에서 16년이 지난 지금,  음악을 듣는 절대 시간이 부족한 편이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어 음악을 들으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생각의 탄생'에 대한 포스트를 올리면서 과학 공부와 음악/미술 리뷰에 대한 시간 투자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새 들어와선 재즈를 듣는 시간이 서서히 많아지고 있다.  재즈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재즈가 비즈니스/자기계발적인 측면의 메타포(은유)를 분명 갖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음의 선율과 리듬을 연주할 때 뿐만 아니라 사고의 선율과 리듬을 연주할 때도 재밍은 멋진 방법론이 될 수 있다.  작곡과 연주를 동시에 전개한다는 것. 작곡하면서 연주하고, 연주하면서 작곡하는 것.

재밍을 대표적인 자기계발 방법 중의 하나인 독서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작가는 책을 쓰고 독자는 책을 읽는 이원론적 구분이 이해하기 쉬운 것이겠으나, 재밍을 독서에 접목하게 되면 독자는 작가가 쓴 책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책을 써내려 갈 수 있다. 즉, 읽으면서 창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작가도 책을 써놓고 독자가 읽어주기만 바랄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자신의 책을 읽고 자신의 책에 기반해 새로운 이야기를 창출해 내는 과정을 피드백으로 수용할 수 있다. 즉 창작하면서 읽는 것이다. 쓰면서 읽기, 읽으면서 쓰기. 모두 재밍으로 간주할 수 있다.  여기서 커다란 레버리지 효과를 얻는 쪽은 독자 쪽일 수 있다. 아무래도 책을 쓰기보단 책을 읽기가 쉽다. 여기서 수동적인 독서 습관을 넘어 능동적으로 작가의 생각을 자신만의 유니크한 사고 프레임 속에 끌어들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책을 한 권 읽으면서 책을 한 권 쓸 수가 있는 것이다. 아니 책을 한 권 읽으면서 100권의 책을 쓸 수도 있다.  

비즈니스/경영 관점에서는 자기계발의 경우보다 조심스러운 어프로치가 요구되긴 하나 재밍 스타일의 접목을 통해 파워풀한 Creative Destruction, Destructive Creation이 가능하다. 테일러식 효율지상주의에 입각한 표준화/기계화된 경영 방식의 횡행을 넘어 딱딱한 규정/매뉴얼의 구속을 효과적으로 넘나드는 창의적 과업 수행은 혁신적 퍼포먼스를 낳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플레이는 유연하고 자율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고도의 능력을 요구한다.  문득 HBR 2005년 7-8월호에 실렸던 Virtuoso Teams란 아티클이 생각난다.

  • Traditional teams
    • Choose members for availability
    • Emphasize the collective
    • Focus on tasks
    • Work individuality and remotely
    • Address the average customer
  • Virtuoso teams
    • Choose members for skills
    • Emphasize the individual
    • Focus on ideas
    • Work together and intensively
    • Address the sophisticated customer

자기계발과 비즈니스 음악을 연주하는 기분으로 하면서 다양한 음악 장르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은유/접목시키는 건 매우 재미있는 놀이가 될 것이다. 재즈의 재밍을 은유하면서 자기계발과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매우 흥미진진한 시도이다. 음악 알고리즘은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와의 연결을 통해 창의와 혁신의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Jamming: The Art and Discipline of Business Creativity by John Kao (Paperback - Mar 28, 1997)




PS. 관련 포스트
재밍,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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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전민우 | 2010/05/12 12:04 | PERMALINK | EDIT/DEL | REPLY

    트윗jam, 인사이트가 풍부한 재밌는 말이네요. :) 오늘도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0/05/13 08:54 | PERMALINK | EDIT/DEL

      단순한 말장난을 재미있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

  • BlogIcon 고구마77 | 2010/05/12 17:43 | PERMALINK | EDIT/DEL | REPLY

    iTunes U보시면 Georgia State Univ. Dr.Gordon Vernick의
    History of Jazz 강의가 무료로 올라와 있습니다.
    100강이 넘는 대작인데 시간나실 때 함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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