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로봇 :: 2012/03/02 00:02애플과 삼성을 보고 있노라면,
혁신을 하는 것도 예술이지만 남의 혁신을 맹렬히 복사하는 것도 예술로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혁신의 본질이 복사이기 때문에 그렇다. 혁신이란 단어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이미지를 연상하기 쉽지만, 혁신은 결국 남의 것을 내 방식으로 베끼는 과정에서 발생하기 마련이다. 내 방식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나만의 세계관, 나만의 역량, 나만의 집요한 베끼기 내공 등 여러 가지 유형의 "나만의 베끼는 방식"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혁신은 어디선가 아이디어를 차용하면서 촉발된다. 다른 분야의 아이디어를 차용한다는 것은 눈에 잘 띠지 않게 베낀다는 것이다. 대놓고 베끼는 것과 티 안내면서 베끼는 것. 표절과 창작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혁신은 끊임없이 복사되면서 진화한다. 기업은 '혁신'이란 DNA를 실어 나르는 운반자에 불과할 뿐이고 '혁신'은 끊임없이 복사에 복사를 거듭하면서 세대를 넘고 넘어 계속 흘러만 가는 것이다. 애플도 혁신 운반자이고 삼성도 혁신 운반자이다. 누가 운반하든 혁신은 계속 복사된다. 기업을 혁신의 주체로 생각하지 말고 혁신의 운반자로 바라보는 순간, 혁신 운반에 최적화 되어 있는가란 질문이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 혁신복사기의 임무는 혁신 DNA를 안전하게 다음 세대로 이관해 주는 것이다. 자신만의 프레임이 있고 복제력이 뛰어나고 내구성이 좋으면 혁신운반자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애플과 삼성을 보고 있노라면, 기업은 강력한 생존본능을 갖고 혁신 DNA를 묵묵히 실어 나르는 운반자에 불과하단 생각이 명확해진다. 혁신의 주체는 기업이 아니라 혁신 DNA 자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애플의 몸짓도 삼성의 몸짓도 혁신 DNA가 주도하는 게임 판 위에서 조종되는 로봇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 PS. 관련 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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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 연결과 스토리 :: 2012/02/08 00:08
아래 트윗 대화는 암기의 함정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좋은 솔루션에 대한 팁을 예시하고 있다.
단순무식 암기를 해도 그것이 수많은 정보들과 연결될 수 있다면, 단순무식 암기를 해도 그것을 이야기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암기는 더 이상 암기 특유의 저급한 상태에 머물지 않고 한 차원 높은 정보 편집의 세계로 점프할 수 있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암기와 망각, 그리고 기억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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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안다는 것 (知道) :: 2012/02/06 00:06
길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리스타트 핑에서 아래와 같은 말이 나온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 길을 잃는 것이다. 나의 길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길을 잃는 것이다. 길을 잃어야 등대를 발견할 수 있다. 길을 잃는다는 것과 길을 찾는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길을 찾기 위한 강력한 준비 과정인 것이다.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길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서 길을 잃어버리는 과정 속에서 결국 '나'를 찾게 되는 과정이 삶의 여행이고 그 과정 속에 행복이 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길을 알고 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냥 알려진 길, 정해진 길을 기계적으로 묵묵히 따라간다는 의미 아닐까? 길을 안다는 것은 불확실성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은 인간에겐 안도감을 의미한다. 하지만 안도감에 취한 나머지 기계적으로 짜여진 경로나 계획표를 무미건조하게 답습하는 것이 길을 안다는 생각 아니 착각의 본질이 아닐까? 그렇다면 길을 안다는 것은 창의력과 혁신의 반대편의 개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길을 잃은 상태에서 나만의 길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발견한 길을 가면서도 끊임없이 나만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길은 만들어진 그 순간부터 부식되기 시작한다. 발견된 그 순간에만 찬란한 의미가 있을 뿐 반복적 이동 경로로 굳어져 가는 과정 속에서 길은 안내자/나침반의 역할을 하기 보다는 길가는 자의 창의력을 고갈시키고 혁신의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강력한 방해자로서 기능하게 된다. 길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진부의 늪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길은 앎의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는 발굴의 대상인 것이다. 知道(길을 안다)란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아니 될 말이다. 知道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빠져 나와서 길 잃은 자의 마인드를 갖고 살아가야 한다. 길 잃은 자의 마인드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知道의 함정에 깊이 빠지지 않는 자세다. ^^ PS. 관련 포스트 실도,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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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와 망각, 그리고 기억 :: 2012/02/03 00:03
학창시절엔 암기력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원리를 몰라도 암기만 잘하면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릴 수 있으니 수많은 학생들이 암기에 집착하는 것이 당연할 수 밖에 없었다. 학창시절에 멋모르고 했던 암기 행위의 영향력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것 같다. 암기는 정보를 대하는 하나의 태도라서 그렇다. 정보의 의미를 깊게 파헤치지 않고 기계적으로 명기했다가 재생하는 암기 행위.
암기는 매우 치명적인 창의력 파괴활동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스런 정보의 유출입과 정보 간 연결이 창의력 작동의 토대인데 억지로 정보를 어딘가에 붙들어 맨다는 것은 정보 자체의 유연성과 정보의 유동성을 모두 구속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암기를 위한 노력이 가열차게 전개될수록 창의력을 유지하기 위한 반작용도 치열하게 일어나게 된다. 망각은 정보 유연성/유동성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적 플로우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대부분의 시간이 화폐화된다. 화폐화된 시간은 망각보다는 암기를 선호한다. 돈의 흐름을 끊임없이 이어가기 위한 치밀한 계획과 실행만이 화폐화된 시간의 무의미한 낭비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화폐화 되어가는 만큼 망각에 대한 거부감은 커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망각은 새로운 정보가 유입되었거나 기존 정보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그걸 억지로 막기 위해 메모를 하거나 얼럿으로 리마인드하는 것은 기계적인 반응 메커니즘에 스스로를 붙들어 매는 행위이다. 화폐화된 시간이 지배하는 곳에서 살기 위해 메모/리마인드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부정하긴 어렵지만 기계적 반응 메커니즘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에 푹 젖어 사는 태도에 대해선 반성을 해볼 필요가 있다. 기억과 암기를 분리해야 한다. 그리고, 기억과 망각을 연결시켜야 한다. 기억은 정보의 끊임없는 편집을 의미한다. 동일한 과거의 사건이라도 그것을 다시 호출하는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기억의 내용은 끊임없이 달라진다. 동일한 정보가 박제된 상태로 계속 유지되는 것은 사고 흐름을 방해하는 암초와 같은 작용을 하게 된다. 그래서 기억은 저장이라기 보다는 동적 편집에 가까운 개념이다 . 그래서 기억은 암기와는 다른 DNA를 갖고 있는 것이고 오히려 망각과 밀접한 포지셔닝을 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화폐화된 시간 속에서 불가피한 암기를 하면서도 나의 기억과 창의력이 맹목적인 암기로 인해 교란을 당한다는 사실은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그것을 분명히 인지하면 할수록 암기와 망각 간의 절묘한 균형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그 균형 속에서 나의 기억, 정체성, 창의력은 선명한 존재감을 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 디바이스가 창궐하면서 암기 에이전트 기능이 발전해 나갈수록, 망각 관리 능력은 점점 더 희소성과 소중함을 더해갈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복사기 vs. 재즈뮤지션 기억, 알고리즘 망각,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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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라인'이란 이름의 감옥 :: 2011/11/07 00:07페이스북, 트위터는 피드 기반의 정보 소비를 본격화시켰다. Feed는 나의 취향에 부합하는 정보 위주로만 소비하게 하는 명확한 이점을 갖고 있는 반면에 '나'라는 상자 속에 갇혀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정보 편식의 문제점도 분명히 내포하고 있다. 나의 관심사에 부합하는 정보를 편리한 방식으로 소비한다는 취지가 오히려 관심사에 부합하는 유사 정보로만 구성된 편협한 관점들로 스트리밍되는 타임라인 구성 상의 한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Relevance의 역습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피드 기반의 정보 소비를 하다 보면 점점 내 입맛에 맞는 정보만 입수하게 되기 쉽다. 훌륭한 정보 필터링 에이전트를 곁에 두고 정보 에이전트가 걸러서 가져다 주는 정보들만 소비하는 모습은 간신들에 둘러 쌓인 왕의 신세와 그닥 다를 바가 없는 것인지도. ^^ 정보 필터링 에이전트는 쓰나미와도 같은 정보 홍수 속에서 효율적인 정보 소비를 도와주는 편리한 툴인가? 아니면 나의 관점을 특정 영역으로만 한정시키고 틀을 깨는 사고의 기회를 사전에 차단하는 정보 편식 툴인가? 창의력은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대상과 대상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창의력의 핵심은 연관성을 창조하는 힘이다. 연관성을 창조하려면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야 한다. 다양한 생각을 접하고 내 생각과 반대되는 관점과의 긴장관계를 통해서 창의적 사고력을 길러나갈 수 있는 것인데, 피드 위주로만 정보를 소비하고 나의 취향과 맞지 않는 관점을 사전에 차단하면 편협한 사고의 틀 안에 갇힐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나의 정보소비 패턴을 면밀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나'라는 상자 속에 갇히는 방식의 수렴형 정보소비를 하고 있는지, '나'와 다른 생각을 접하고 그것과의 대립/긴장 관계를 통해서 나의 생각을 변주/확장시켜 나가는 정보소비를 하고 있는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는 접속과 단절이 결코 반대의 개념이 아니란 사실을 잘 보여준다. 온라인 상에서 관계를 맺고 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두 자신만의 '타임라인' 안에 갇혀 사는 온라인 코쿤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타임라인'에 갇혀 사는 코쿤들을 양산하는 모습은 인간 삶을 극명하게 투영하고 있다. 사람은 넓은 세상을 한껏 느끼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을 향해 입수되는 정보를 제멋대로 가공하고 있는 뇌 속에 갇혀 사는 존재다. 뇌/타임라인 속에 갇혀서 뇌와 타임라인이 필터링해 주는 가상의 모습을 실제 세상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타임라인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필터링 정보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연관성을 창조하면서 세상의 진짜(?) 모습을 파악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지점에 위치할 수 있으려면 내가 정보를 소비하면서 어떤 방식의 필터링을 하고 있는지, 내가 어떤 정보를 filter-out하고 있는지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내가 배제시키고 있는 정보들 중에 나를 창의적으로 자극하고 나를 혁신시킬 수 있는 열쇠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창의력을 극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단, 사전 필터링을 통해 그 기회를 차단하고 있을 뿐이다. 개인화 타임라인의 등장은 정보 소비의 편리성 극대화와 정보 편식의 문제점을 동시에 의미한다. 타임라인의 편리함에 안주하며 안 된다. 필터링과 사고의 확장 간에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는 날카로운 정보 균형감각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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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과 시공간 인지능력 :: 2011/07/04 00:04
창의력은 제자리에 앉아서 골똘히 뭔가를 짜내는 것이라기 보단,
창의력이 샘솟을 가능성이 높은 시공간으로 슬며시 가서 기다리는 것에 더 가깝다. 창의력의 핵심 요소 중의 하나가 '연결'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창의력은 시공간 인지 능력이다. ^^ 시공간을 빛의 속도로 이동한다는 것. (2010.10.13) 우주에서 제일 빨리 움직이는 것은 빛이다. 광속은 속도의 최고봉이다. 근데 그건 공간 차원에서나 그런 것이고 시간과 공간을 합친 시공간에서는 모든 물체가 광속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모두 시공간을 광속으로 움직인다. 공간차원에서의 움직임은 거의 없고 시간차원에서의 움직임은 열라 빠른 것이다. 빛은 거꾸로이고. 공간차원에선 빛이 빠르기의 지존이고 우린 꼬래비지만, 시간차원에선 우리가 빠르기의 지존이고 빛은 꼬래비이다. 우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 못하고 산다. 우린 정말 빠르다.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갖게 되는 이유는 시간을 전혀 점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시간 축을 빛의 속도로 날아간다. 그 속도는 가히 충격적인 수준이다. 반면 공간 상에서는 사실상 정지상태나 다름이 없는 존재다. 만약 인간이 시간 축에서만 열라 빠른 것이 아니라 시간 축, 공간 축 모두에서 비슷한 속도로 움직이는 존재였다면 점유에 대한 환상은 애초부터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시공간 상을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시간 축에서의 속도와 공간 축에서의 속도 간의 심한 비대칭이 인간에게 어처구니 없는 착시 현상을 제공한 셈. 뭔가를, 어딘가를 점유한다는 생각. 꿈이다. 개꿈.. PS. 관련 포스트 창의, 알고리즘 창색, 알고리즘 시공, 알고리즘 우발, 알고리즘 혼자, 알고리즘 응문, 알고리즘 모호, 알고리즘 아마, 알고리즘 태도, 알고리즘 모순, 알고리즘 욕구, 알고리즘 관찰과 상상 풍요와 빈곤은 상호 백신 관계이다. 튓잼, 알고리즘 루틴, 알고리즘 My Attention에 대한 Attention - 미탄님께 배운다. 정보 복제: Information Remix의 미학 Attention의 탄생 - 知의 편집공학을 읽고 르네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 - 상상력 복원의 촉매제 창의적 의사결정 Algorithm = Opposable Mind (생각이 차이를 만든다) [생각의 탄생] 프로페셔널의 열정 > 생각의 기술 [Mobile Mind] Seeing our Seeing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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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와 창의력 :: 2011/03/11 00:01
문득, 창의력 계발 = 나 자신을 알아가는 끝없는 과정 포스트에 남겨주신 아거님의 댓글이 떠오른다.
창의력은 혼자가 되는 힘이다. 그럼 군중/집단 속에 파묻혀 있으면 창의력이 쇠약해지는가? 아니다. 오히려 더 강해질 수 있다. 군중/집단은 외로움의 역설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군중/집단 속에서, 관계 속에서 인간은 항상 고립을 회피하고자 한다. 고립만큼 인간을 두렵게 하는 것은 없다.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확인하면서 자신은 고립되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인간의 사회성이다. 어쩌면, 창의력은 은둔이 아닌 군중/집단 속에서 보다 강력하게 발현될 수가 있다. 내가 타인들과 어떻게 다른 지를 민감하게 감지하며 나의 유니크한 특성들을 보다 날카롭게 계발시켜 나가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요즘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는 거대한 창의력 극대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리적 한계를 극복한 군중/집단 네트워크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블랙홀과도 같은 시공간. 그 속에서 활동하면서 '나'를 망각하지만 않는다면,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나와의 극명한 차이가 뭔지를 명확히 알아갈 수만 있다면 한 개인의 창의력은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극적으로 창발할 수 있을 것이다. 군중(群衆) 속의 고독(孤獨). 군독(群獨). 인간의 본질은 군독(群獨)이다. 창의력은 관계와 고독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자아의 동적 평형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자 우주에서 가장 역동적인 춤인 것이다. 오늘도 나는 '웹'이란 이름의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나만의 춤을 춘다. 그 춤의 이름은 '군독무(群獨舞)'이다. ^^ PS. 관련 포스트 혼자,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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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그늘, 나 자신이 되는 힘 :: 2010/12/06 00:06
비즈니스북스의 이혜경님께서 보내주신 책이다. 스티브 잡스의 혁신 알고리즘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흥미롭게 정리되어 있어서 술술 잘 읽히는 편이다. 창의/혁신에 관한 한 스티브잡스는 국내에서 아이콘의 반열에 올라선 지 오래다. 많은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를 닮고 싶어 하고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이 우리나라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고 싶어 한다. 창의/혁신에 관한 한 우린 스티브 잡스의 그늘 속을 살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아래는 책의 목차이다. 최근의 혁신 관련 서적들에서 빈번하고 친근하게 언급되는 혁신의 핵심 요인들이 목차를 교과서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 원칙 1. 좋아하는 일을 하라 원칙 2. 세상을 바꿔라 원칙 3. 창의성을 일깨워라 원칙 4. 제품이 아닌 꿈을 팔아라 원칙 5. No라고 1000번 외쳐라 원칙 6.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라 원칙 7. 스토리텔링의 대가가 되어라 이 책을 보면서 든 생각. 혁신은 '나 자신'이 되는 과정이다. 스티브 잡스의 결과론적 성공 모델을 의식하는 순간, 이미 혁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혁신은 자신만의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나 자신을 바꿔 나가는 것이다. 나 자신을 온전히 바꿀 수 있을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 혁신은 박제된 성공 방정식에 현혹되지 않고 나만의 성공 방정식을 정의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에너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맘에 드는 문구를 인용해 본다. 왜 포커스 그룹 인터뷰와 같은 마케팅 조사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답변이다.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느냐입니다. 저는 우리와 소비자의 욕망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헨리 포드는 이런 말을 남겼죠. "내가 소비자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았다면 그들은 '더 빨리 달리는 말'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되는 힘, 그것이 창의력이고 혁신력이다. 최고의 혁신은 내가 아닌 것을 모두 버리고 철저한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혼자, 알고리즘 정체성은 복제 대상이 아니다.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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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의 양극화 :: 2010/08/20 00:00
특허제도는 모두의 창의력을 구속하는 결과를 낳을까? 저작권도 그러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허제도는 창의력 우수한 자의 창의력을 키워 주고 창의력 딸리는 자의 창의력을 고갈시키는 효과가 있다. 저작권도 마찬가지다. 창의력의 결과물에 법적 보호망을 두르면 기존에 존재하던 창의력의 편차는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즉, 창의력의 양극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대중음악에서 항상 핫 이슈가 되곤 하는 '표절'. 표절의 범람은 창의력 양극화와 동전의 양면 관계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음악을 생산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 음악에 의존한 파생음악을 생산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창의력이란 것이 하루 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복제를 통한 수련의 시간이 있어야 독자적인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데, 베끼는 것에 대한 엄격한 법적 잣대를 들이댈 경우, 창의력이 싹틀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이는 G마켓 상품 리스팅이 판매가 많이 된 인기 상품 위주로 소팅될 때, 새롭게 뜨길 원하는 수많은 신규 상품들이 구매자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과도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사무실 근무환경이 좋으면 모두의 창의력이 좋아질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근무환경은 대다수 직원의 창의력을 제고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창의력 제고를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소수의 사고활동에 도움을 줄 뿐이다. 창의적이지 못한 사람은 좋아진 근무환경에 집중하느라 창의력이 더욱 고갈된다. 핵심은 내 안에 창의성이 넘치는가이지 외부 규제나 겉멋이 아닌 것이다. 창의력은 결국 내가 될 수 있는 힘이다. 나의 정체성을 잘 인식하고 나만의 정체성이 잘 녹아 있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 가치를 더할 수 있는 나만의 창의를 발휘하는 과정이 창의력의 성장 프로세스이다. 핵심을 놓치면 외부 규제에 휩쓸리고, 겉멋에 휘둘리게 된다. 다양한 부문에서 양극화 알고리즘이 세를 키워가고 있다. 평균치에 머무르는 자들이 대부분인 종형곡선(bell curve)이 아닌 power law 분포의 양극화 현상이 창의력 필드를 지배해 나갈 것이다. 창의력에 있어 중간은 없다. 오로지 극과 극이 있을 뿐이다. 어느 극이 될 것인가? ^^ ![]() PS. 관련 포스트 파레토 경제 - Super Head, Fat Tail 창발의 기반 (승자독식, 롱테일은 모두 파레토 경제 안에 있다) 재생,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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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알고리즘 :: 2010/03/01 00:01'대상/문제와의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해야 객관적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취지로 위의 글을 트위터에 올렸었는데, 변지석님의 아래 포스트를 보고 다시 한 번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문제와 너무 밀착되어 문제를 감싸는 상황과 맥락 속에 갇혀 버릴 때, 사고의 정체 현상이 발생한다. 문제와 너무 긴밀하게 엮이거나 문제 속에 함몰되지 않고 문제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창의적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올라갈 것이다. 위장취업자가 직원보다 회사의 구조를 더 잘 볼 수 있는 것에서 한가지 착안이 가능할 것 같다. 위장취업자는 회사에서 일을 하지만 일반 직원과는 다른 view를 갖고 있다. 즉, 회사 속에 함몰되지 않고 회사에서 일을 하는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거리 감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문제와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문제를 대하는 나 자신과 거리를 두는 것을 의미한다. 즉, 문제를 다루는 나 자신의 사고회로를 스스로 점검/튜닝/개선/혁신시켜 나가는 것이다. 거리(distance) 창출력은 자신 밖에 또 하나의 자신을 만들 수 있는 자기 관찰력이다. '내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판단하는가' 자체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습관적인 판단을 중지시키고 상상력과 창의력의 엔진을 가동시킬 수 있다. 어린 시절의 무한에 가깝던 창의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체감할 수 밖에 없다. 어린아이의 마음과도 같은 창의력을 유지하려면, 나를 관찰하고 나의 마음을 관찰하고 나의 사고 흐름을 관찰하는 노력을 유지해야 한다. Seeing our seeing을 할 줄 알아야 창의적 사고가 가능하다. Seeing our seeing을 한다는 건, 또 하나의 나를 창조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나를 창조한다는 건, 나를 분리하는 것이다. - 행동하는 나와 관찰하는 나. - 연기하는 나와 모니터하는 나. PS. 관련 포스트 Creativity를 위해서는 문제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져라 기획의 기본, 자기 반성 능력 [Mobile Mind] Seeing our See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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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툴, 알고리즘 :: 2010/02/19 00:09
블로깅을 하다보면 수많은 짜투리 생각들이 떠오르게 된다.
문제는, 그 생각이 어느 정도 크기 이상으로 자라지 않으면 할 수 없이 그걸 버리게 된다는 거다. 단발/파편적이지 않고 어느 정도 크기 이상의 의미를 형성해야 블로그에 올리게 되는 습관 때문에, 툭툭 떠오르는 생각들을 단지 뜬금 없단 이유로 뇌 속 휴지통에 쳐박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짧은 생각이 떠올라도, 잠깐 동안의 기회를 준 뒤 생각이 성장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kill시키는 모습이 지금까지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2009년 5월부터 트위터를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새로운 트위터 사용 방법이 창발하기 시작했다. 트위터의 140자 제약 조건이 긴 생각을 적기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지만, 짤막짤막 떠오르는 짜투리 생각을 적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란 것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폰과 트위터의 만남을 통해,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트위터에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짜투리 생각을 놓치지 않고 트위터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은, 블로깅의 패턴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트위터에 올린 글들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포스팅 주제로 발전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제 트위터는 나의 짜투리 생각들이 모여 있는 창고가 되어가고 있다. 작고 조악한 생각일지라도 그것을 kill하지 않고 하나의 아이디어로 인정해 주고 그것을 발전시킬 기회를 제공하는 자를 보통 훌륭한 리더라 칭한다. 트위터는 나의 leader이다. 내가 제기한 볼품없고 초라한 생각들을 사심없이 받아주고 차곡차곡 저장해 준다. 그리고 그 의견에 대한 다른 트위터 유저 분들의 피드백도 나에게 전송해 준다. 난 트위터를 follow하고 트위터는 날 lead한다. 개인이 갖고 있는 Detail을 리믹스해서 퍼블리시하면 Retailing이 되는데 개인들의 리테일링이 모이고 모여서 소통을 하게 되면 결국 Collective Tail이 창출된다. 내 짜투리 생각들을 흡수하고 다른 짜투리 생각들과 연결하여 나에게 발전된 생각 덩어리를 부메랑처럼 안겨주는 트위터. 트위터는 나에게 있어 소중한 생각 발전소이다. ^^ PS 1. 관련 포스트 Wetail = Remix Retail (Detail은 Retail을 낳고, Retail은 Wetail을 낳고..) 트윗, 알고리즘 모호, 알고리즘 최근엔 트위터가 스푸마토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트위터엔 아무런 가이드가 없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짧은 글을 올릴 뿐이다. 트위터는 정보 북마크가 되기도 하고, 지인 간의 커뮤니케이션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유명인 또는 관심 가는 사람에게 말 걸기로 기능하기도 하고, 심각한 얘기 적기나 가벼운 독백 늘어 놓기로도 무난하다. 커뮤니케이션이 브로드캐스팅이 되고, 정보가 흘러가고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공간.. 트위터는 앞으로도 갈 길이 매우 멀다. 왜? 스푸마토스러우니까.. ^^ PS 2. 관련 트윗 시간이 없어서 사놓은 책을 읽지 못하는 경우엔, 짜투리 시간에 잠깐 그 책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전개하는 놀이를 즐겨본다. 가끔 그러다 좋은 생각이 툭 떠오를 때가 있다. 책을 꼭 읽어야 제 맛은 아닌가 보다.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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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 알고리즘 :: 2009/12/23 00:03노는 만큼 성공한다에 연역법, 귀납법, 가추법에 대한 소개가 아주 말랑말랑하게 나온다. ^^
연역법, 귀납법을 넘어서는 창의적 사유를 가능케 하는 제3의 추론방식인 가추법(abduction)은 '아마도(may be)'라는 추측에 기초하는 창의적 추론 방식이다. 혁신은 기획에서 나오지 않는다. 회사에서 '기획'이라 하면 보통 '운영'보다 왠지 수준이 높은 업무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획에서 많이 쓰는 로직은 연역법, 귀납법에 근거한 논리적 추론 과정이다. 이거.. 겉만 번드르르하고 멋있게만 보이지 사실상 1+1은 2이고 2-1은 1이다와 같은 단순한 수학 연산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역법/귀납법적으로 사고하면 대개 뻔하디 뻔한 흐름으로 논리가 전개되기 일쑤이다. 그걸 억지로 멋있게 포장하려고 화려한 프레임들이 동원되는 것일 테고.. 연역/귀납 논리 기반의 '기획'.. 운영보다 밸류 있다고 보기 어렵다. 혁신은 연역/귀납적 '기획'에서 나오지 않는다. 빤하디 빤한 연역/귀납 프레임에서 으찌 혁신이 나올 수 있겠는가? ^^ 연역/귀납적 논리 프레임은 새로움을 창출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이렇다 할 일탈 없이 정해진 수순만 밟아야 하는 순환적 틀을 벗어날 수 없기에 새로운 인식이 불가능하다. 혁신은 우발에서 나온다. 혁신은 분명 '우연'이란 DNA를 갖고 있다. 우연이 아닌 것은 어쩌면 모두 평범하고 지루한 것들에 불과할 수 있다. 우연을 감지하고 우연에 필연으로 대응하는 자세로부터 혁신의 가능성이 태동한다. 창조적인 과학자들은 연역/귀납에 기반한 수학적 사고에 의존하지 않았던 '아마도'의 예술가였다. 세상의 모든 창의적 사유는 '아마도'로부터 시작한다. 창의력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힘이다. 조합을 통한 새로움 창출은 기존 것들에서 뭔가를 버렸다는 걸 의미한다. 기존과 기존의 우연한 만남 속에서 '아마도'라는 호기심/상상력을 갖고 뭔가를 과감히 버리는 진화적 실험을 수행하고 그 버림을 통해 기존과 기존이 새로운 맥락을 띠면서 창발적으로 조합되는 것. 혁신은 우발(우연+창발)에서 나온다. 혁신은 '기획'하지 않은 우발이다. 기획하지 말아야 혁신할 수 있다. 창의력은 기존과 기존의 우연한 만남에서 새로움을 창발적으로 이끌어 내는 힘이다. 우연한 만남, 우연한 만남 속 버림, 버림을 통한 창발적 새로움 발견.. 여기엔 연역/귀납적 사고가 개입될 틈이 별로 없다. 혁신은 기획하지 않은 우발이다. ^^ 혁신하고 싶으면 기획을 때려 쳐야 한다. 기획에 경도된 사고 프레임을 확 뒤집어야 한다. ^^ PS. 관련 포스트 아마, 알고리즘 창의적 의사결정 Algorithm = Opposable Mind (생각이 차이를 만든다) What's Thwarting American Innovation? Too Much Science, Says Roger Martin 역산, 알고리즘 응문,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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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알고리즘 :: 2009/12/09 00:09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컨셉의 연금술사'란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C선생이 여러 가지 생각을 적어 놓은 C선생의 노트에 나오는 말들이 인상 깊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의도와 함께 시작된다. 자신의 의도를 갖고 의도대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컨셉이 선다. 개념, 즉 컨셉은 남이 해놓은 것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로 설정하는 것이다. 비즈니스의 컨셉, 상품/서비스의 컨셉, 광고/마케팅의 컨셉.. 세상엔 '컨셉'이란 용어가 범람한다. 어느덧 흔하게 사용하고 흔하게 내뱉는 단어가 되어버린 '컨셉'.. 컨셉화는 대상에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이다. 컨셉은 사람을 무의식에 지배받는 유전자 조합체에서 벗어나게 하고 비즈니스/상품/서비스를 범용화(commoditization)의 늪에서 건져 올린다. 저자의 말처럼, 컨셉은 마케팅/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삶의 패러다임' 그 자체인 것이다. 설사 삶의 99%를, 비즈니스의 99%를 우연이 지배할 지라도 1%의 필연에겐 충분한 가치가 있다. 1%의 필연을 지향하는 의도 속에 99%의 우연을 뒤흔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으니까. 우연으로 가득 찬 세상에 필연의 향기를 불어넣는 것은 강력한 의도이다. 의도는 유니크한 컨셉을 잉태한다. 유니크한 컨셉은 외롭다. 컨셉은 외로움을 의도적/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이다. 문득, 창의력 계발 = 나 자신을 알아가는 끝없는 과정 포스트에 남겨주신 아거님의 댓글이 떠오른다.
창의력/컨셉을 계발하고 열정을 분출하는 것. 모두 '나 자신'을 알아가는 끝없는 과정이다. 창의력/컨셉/열정이 없다는 건 나 자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Don't try to stand out from the crowd, Avoid crowds altogether. 그렇다. 범용적 환경에선 창의력이 안 나온다. 창의력은 혼자가 될 수 있는 힘이다. 외로움을 심하게 타는 자는 결코 창의적 인간이 될 수 없당. ^^ PS. 관련 포스트 의식적 선택 vs 무의식적 선택 [창의력에 대한 나의 정의] 창의력을 계발해 나가는 것 = 나 자신을 알아가는 끝없는 과정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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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문, 알고리즘 :: 2009/11/18 00:08응문(應問): 답에 응하여 질문함 vs. 응답(應答): 물음에 응하여 답함 일상생활 속에서나,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나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인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 동안 당연히 인과관계인 것으로 알고 살아왔던 다양한 케이스들을 상관관계로 역산하는 놀이를 즐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Reverse Engineering(역설계)를 하다 보면 편협한 사고의 굴레에서 벗어나 전체적인 구조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돼지고기, 소고기만 뒤집지 말고 생각을 가끔씩 뒤집어 줘야 생각이 잘 익을 수 있다.
정보와 자본이 빛의 속도로 이동하고 어디서 어떤 이벤트가 돌발할지 감을 잡기 어려운 불확실성 가득한 혼돈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정숙한 클래식 모형에 의한 미래 예측이 엄청난 오차를 양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 전반과 주가, 유가, 부동산 등에서의 예측 정확도가 낮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의 예측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누구나 예측만 할 뿐, 예측의 정확성에 대해 사후 책임을 지지 않는 시대.. 이제 예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예측하고 누구나 예측을 평가/비판할 수 있다. 예측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닌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나의 영역이 되었다. 특정 전문가보다 차라리 일반인들의 관점이 집약된 집단지성적인 관측이 훨씬 더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 (예측, 알고리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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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알고리즘 :: 2009/11/09 00:09
생각이 차이를 만든다 포스트에서 창의적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사고 도구인 '가추법(abduction)'에 대한 내용을 아래와 같이 인용한 바 있다. 좀 설명이 딱딱하다. ^^
저자는 통합적 사고와 전통적 사고 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Thinking 도구로 생성추론(Generative Reasoning)을 들고 있다. 생성추론은 연역법,귀납법,가추법을 사용하는데 연역법,귀납법은 전통적 사고에서도 즐겨 쓰는 방법론인데 반해 생성추론의 한 요소인 가추법은 매우 생소한 논리 형식이다. 가추법은 현실의 작은 단서를 갖고 법칙이나 새로운 지식을 추론하는 과학자나 탐정의 추론방식을 의미한다. 연역법,귀납법이 이미 존재하는 현실모델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기능에 그치는데 반해 가추법은 현존하지 않는 모델을 새롭게 창조하는데 쓰이는 사고도구이다. 의사결정을 위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매우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로운 모델을 생성하고 그 명제의 개연성을 탐구하는 추론과정인 가추법은 통합적 사고를 위한 핵심 사고 툴이라 할 수 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에 가추법(유추법)에 대한 소개가 아주 말랑말랑하게 나온다. ^^ 연역법, 귀납법을 넘어서는 창의적 사유를 가능케 하는 제3의 추론방식인 유추법(abduction)은 '아마도(may be)'라는 추측에 기초하는 창의적 추론 방식이다. 유추법은 연역법을 뒤집음으로써 가능해진다. 연역법은 법칙→사례→결과로 사고의 흐름이 진행된다. 최초 시작 포인트가 법칙이다. 즉, '닥치고 법칙 사수'에 기반해서 논리가 전개되므로 '사례에 따른 예상 결과'를 법칙에 어거지로 끼워 맞춰 도출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고 프레임에선 새로운 것이 나오기 어렵다. 귀납법은 사례→결과→법칙으로 사고의 흐름이 진행된다. 이미 경험한 사례와 결과를 통해 법칙을 끌어내는 것이므로 현상에 대한 해석 능력만 배양될 뿐,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고력은 기를 수가 없다. 그저 '사례와 결과 사이에 존재하는 인과관계'를 기계적으로 기술할 뿐이다. 반면, 가추법은 결과→법칙→사례로 사고의 흐름이 진행된다. 연역법과 귀납법의 사고 흐름과 큰 차이를 보인다. 연역법,귀납법은 모두 '사례→결과'의 사고 흐름이 존재한다. 연역법은 건조한 법칙에 따라 '사례→결과'의 인과 고리를 꿰어 맞추고, 귀납법은 '사례→결과'의 해석에 의해 법칙을 건조하게 도출한다. 가추법은 다르다. 결과를 놓고 법칙과 사례를 상상한다. 상상하기 위해선 아마도?, 혹시?와 같은 천진난만하고 역동적이고 유연하고 엉뚱스런 가능성 탐구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사고의 흐름을 잡아주는 구조(법칙/가설 or 인과관계)가 없는 상황 속에서 결과만을 놓고 법칙(가설)과 원인을 상상하는 사고방식을 몸에 붙이기 위해서는 논리위계적인 선형적 사고가 아닌 비선형적/방사적/입체적 사고가 필요하다. 마인드맵을 그리듯이 정보와 정보 간의 연관구도를 다차원 네트워킹 구조로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가추법 사고가 인과관계를 거꾸로 뒤집는 순서로 전개된다는 점은 예전에 쓴 '역산, 알고리즘' 포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나,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나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인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 동안 당연히 인과관계인 것으로 알고 살아왔던 다양한 케이스들을 상관관계로 역산하는 놀이를 즐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Reverse Engineering(역설계)를 하다 보면 편협한 사고의 굴레에서 벗어나 전체적인 구조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돼지고기, 소고기만 뒤집지 말고 생각을 가끔씩 뒤집어 줘야 생각이 잘 익을 수 있다. 연역법/귀납법에 익숙한 '원인→결과' 순서의 사고 흐름을 역류시키는 가추법 사고는 창의력 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돌이켜 보니, 난 평상시에 '아마도'란 말을 자주 하지 않고 사는 것 같다. 선형적/순차적 사고 방식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탓일 것이다. 앞으론 연역/귀납법적 사고의 한계를 벗어나 가추법 사고를 통한 생각의 역류를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 생각 뒤집기를 잘하려면 '아마도'란 주문을 달달 외워야 하겠고. ^^ PS 1. 관련 포스트 창의적 의사결정 Algorithm = Opposable Mind (생각이 차이를 만든다) 역산, 알고리즘 PS 2. 위에서 인용한 연역법, 귀납법, 유추법(가추법) 자체에 대한 더 구체적이고 프로페셔널한 설명은 inuit님의 가장 듣고 싶은 한 마디 yes!의 155~161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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