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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진동 :: 2017/05/15 00:05

과거는 지나간 시간들로 치부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듯 하다.
과거라고 정의를 내려버리는 순간, 이미 붙잡을 수 없는 아득함이 느껴지고
변할 수 없는 예전의 무엇이라고 생각되지만
과거는 지금 이 순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로부터의 과거 회상에 의해 과거는 변한다.
그냥 고정된 형태의 화석이 아니라
현재로부터의 회상, 반추, 복기를 통해 계속적으로 진동하면서 현재와 대화하면서 자신의 형태를 바꿔나간다.

과거를 바라보기 전과
과거를 바라본 후의
그것이 다르다.

과거를 응시하면 과거는 어떤 식으로든 응시에 응대를 한다.
그건 갑작스런 촉발이고 그에 의해 과거에 다시 호흡이 주입된다.
과거가 숨을 쉬게 되면 더 이상 시선을 받기 전의 과거가 아닌 뭔가가 된다.

과거가 현재로부터의 시선에 의해서 이렇게 변해버린다면
광활한 시공간 상의 모든 좌표가 과거의 한 시점, 공점을 응시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응시는 일종의 연결이 되고 트리거가 되어 연결되기 전 대비 달라진 뭔가를 지향하게 된다.

과거는 계속 변한다. 나의 시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특정 시점으로부터의 시선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무수히 많은 시선으로부터의 응시가 과거를 향하고 있어서 과거는 수많은 신호를 계속 받아내면서 진동한다.

우리 몸도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 마음도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 몸이 과거 아닌가..
우리 마음이 과거 아닌가..

현재는 수많은 과거의 합이자
수많은 과거를 진동시키는 에너지원이다.

과거는 진동한다.
나는 그런 과거를 응시할 뿐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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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북의 편리함. 그리고 종이책 :: 2016/08/17 00:07

e북을 본다는 건 대단한 편리함의 향유이다.
가벼운 스마트폰을 들고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다.
길을 가면서도 읽을 수 있고, 버스에서 한 손을 손잡이에 맡긴 채 책을 읽을 수도 있고, 만원 지하철에서도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거의 전천후 독서가 가능하다.

그렇게 e북의 세계에 빠져서 독서를 하다가도..
종이책을 집어들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e북보다 훨씬 빠르게 페이지를 후루룩 넘길 수 있다.
이건 현재의 e북이 결코 넘볼 수 없는 종이책 만의 극강 경험이다.

그리고 랜덤하게 휙휙 페이지 간을 이동하면서 느낌을 보는 작업도 종이책 만의 강렬한 경험이다.

그리고 책장을 접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e북은 책장에 마킹을 할 뿐 종이를 접는 느낌을 촉각에 전달하진 못한다.

그리고 책을 펴 놓은 채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자태..  그건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우아함이다.

이렇게
e북의 편리함과 종이책의 강렬함을 오가면서 독서를 하다 보면
e북은 e북대로 매력이 배가되고
종이책은 종이책 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정립하게 된다.

이렇게 둘 사이를 오가다 보면
독서는 한층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스스로 선언하게 된다.

한 포맷에서 다른 포맷으로 이동할 때
정보를 소비하는 뇌는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되고
그 자극이 계속 포맷 간 이동에서 우러 나오는 쾌감과 연결된다.

e북은 편리하고 종이책은 강렬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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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내 밖에서 :: 2016/08/12 00:02

내가 블로깅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것.

그걸 블로깅을 하면서 알게 된다.
지금도 잘 모르지만.

블로깅을 한다는 건
내 안을 응시한다는 것이다.
내 밖을 응시한다는 것이다.

응시를 하면
그 곳에서 잠자고 있던 내가 깨어난다.

참 신기하다.
바라보지 않았을 때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조용히 잠자고 있던 내가
바라봄을 통해 잠에서 깨어난다.

그건 탄생이다.

내 안을 응시할 때마다
내 밖을 응시할 때마다
내 안과 밖에 존재하고 있던 내가 숨을 쉬기 시작한다.

숨을 멈추고 있는 상태가 죽음이 아닌 것처럼
숨을 쉬고 있는 상태가 삶은 아니다.

그저 삶과도 같은, 죽음과도 같은 상태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진동하면서 생사(生死)가 흘러가는 것이다.
삶이 아닌, 죽음이 아닌.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생사 말이다.

생사는 살아있는 것도 죽어있는 것도 아니다.
그 중간이다.

인간은 생사의 존재다.

안과 밖의 경계는
경계가 있다는 개념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허상을 제거하면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내 안을, 내 밖을 응시하면서
나는 나를 알아간다.
지금 이 순간도 말이다. :)



PS. 관련 포스트

진화와 죽음, 일각과 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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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2016/06/06 00:06

흥미로운 내용의 책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책을 사려고 도서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는데 그 책은 품절이었다.
허탈한 마음에 책 소개 내용을 자세히 읽어본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 옳았다는 생각이 진해지면서
책을 향한 갈망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책이 만약 품절이 아니었다면 그 책을 구입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품절이란 걸 알게 되니까 없던 결핍감마저 생겨나는 지경이다.

만약 그 책이 품절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았다면..
내게 있어 그 책은 수많은 책들 중 하나 정도에 불과한 그런 밋밋한 존재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품절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존재감.
부재는 존재만큼이나 강력한 이벤트이다.
존재는 부재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존재들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애처로울 정도의 몸짓을 지속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을 알리기 위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그런 무리수들이 겹겹이 남루한 층위를 이루면서 존재는 더 이상 존재답지 않은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냥 살아가는 것.
그냥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결로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
티를 내려고 하지 않고,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과정 속에서 죽어가는 게 아니라 존재를 굳이 증명하지 않으려 하는 태연함.
그 속에서 존재감을 스스로 느끼는 것.

존재라면, 이 세상을 존재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런 자세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존재가 존재를 알림으로 인해, 존재를 돋보이게 함으로 인해 증명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하면 할수록 존재감은 희미해진다는 것.
존재는.. 표현하려고 애쓰는 허무한 몸짓들을 제하고 남은.. 표현하지 않아도 저절로 표현되는.. 그런 자연스러운..
밖을 향하지 않는.. 그런 것들로 구성되는 듯 하다.

품절된 책을 접하게 되면서,
굳이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아도 그 책을 존재로 인지하는
나 자신이 존재임을 인식하는 시간들.
책 한 권의 품절을 통해 존재를 어렴풋이 배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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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ell :: 2014/03/26 00:06

스냅
매튜 헤르텐슈타인 지음, 강혜정 옮김/비즈니스북스


만물은 흘러간다.
흘러간다는 것은 뭔가를 향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뇌는 흘러간다.
뇌에 접수되는 무수한 정보 신호들은 뇌 속에서 조합되어 의미 있는 가공 정보를 만들어낸다.
나는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해도 무의식 레벨에서 나는 끊임없이 뭔가를 예측하고 대응하려고 한다.

이 책의 원제가 'The Tell'인데 참 맘에 든다.
만물은 스토리텔링의 주체이다. 무엇이든 자신 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가는 감각기관이 얼마나 열려 있는가에 달려 있다.

무엇보다도 나로부터 발산되는 '이야기'부터 들어야 한다.  나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걸 전혀 못 알아들을 수 있다. 나의 이야기를 듣는 게 의외로 난해하다.  스토리텔링은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반해 스토리청취는 희소한 상황.  스토리에 관한 한 수요와 공급은 철저한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다.

만물은 진동한다
만물은 존재한다.
존재는 진동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존재 자체가 이야기다 .
존재로 살아가면서 존재로부터 발산되는 이야기를 스스로 감지해야 한다.

편의상 협소하게 정의된 '이야기', '감각'의 범주를 나만의 스타일로 얼마나 넓힐 수 있는가?

세상 자체가 THE TELL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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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 2014/02/07 00:07

영화 '그랑블루'에 나오는 대사다.
잠수해서 가장 힘든 시간은 맨바닥에 있을 때야.
왜냐하면 다시 올라올 이유를 찾아야 하거든.
항상 그걸 찾는 게 어려워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다는 것. 내면 평화의 시간.

표면에선 시간이 흐른다.  뭔가가 분주하고 빠르게 흘러간다.
하지만 심연에선 대략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정지한 듯 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살이 속에서 촘촘히 짜여진 시간 스케쥴에 의해 로봇처럼 속절없이 휘둘리다가 문득 거기서 벗어나 심연과도 같은 평화의 침잠 속에서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을 맛보는 것.

소설을 읽을 때, 영화를 볼 때, 명상에 잠길 때
나는 시간이 멈춘 듯한 또 하나의 상황 속에 돌입한다.

표면에서만 지내면 로봇이 되고
심연에서만 지내면 광물이 된다.

인간은 표면과 심연을 오가며 질주하는 시간과 멈춰진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세를 호흡하는 존재.
인간은 표면에서 흘러간 시간의 총합인 동시에 심연에서 멈춰진 시간의 총합이다. 

표면에서의 빠른 유동과 심연에서의 정지는 동전의 양면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정신 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심연에서 멈춰진 시간은 한가지 현상의 다른 모습이다.


'그랑블루'에 나오는 대사를 아래와 같이 리믹스해서 맘에 새겨본다. ^^
난 심연 속에서 잠긴 듯 정지하면서 표면과의 거리감을 즐겨.
난 표면 위에서 분주히 약동하면서 심연과의 거리감을 즐겨.

똑같은 시간이 심연 속에선 멈춘 듯, 표면 위에선 질주하는 듯
저마다의 향기를 발산하거든.

심연에선 심연이 평안하고 표면이 그리워.
표면에선 표면이 흥겹고 심연이 그리워.

그래서 난 항상 심연과 표면 사이를 오갈 수 밖에 없어.
난 표면과 심연을 끊임없이 진동하는 존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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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UL | 2014/03/08 01: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너무 가슴에 와닿는 말들이네요.
    빠른시간들속에 멈춰진듯한 느낌이 들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몰랐는데...
    buckshot님의 블로그에있는 모든 글들이 저에게 어떠한 파동을주네요.
    이런 생각을 잘 표현하셔서 부럽기도 합니다..
    자주와서 보고갈께요^^ 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4/03/08 09:44 | PERMALINK | EDIT/DEL

      억지로 표현하려 하지 않고 표현하기 어려운 그대로의 느낌을 즐기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표현하기 시작하면 있는 그대로의 느낌이 휘발되는 것 같기도 해서요. 표현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여전히 표현되지 않는 그 무엇이 저를 더욱 설레게 하는 것 같습니다. 모자란 글을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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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 역분해 :: 2012/05/25 00:05

비교 가능한 프레임 속에서 비교우위를 추구하고 비교우위를 점하면 기뻐하고 비교열위에 놓이면 슬퍼하는 모습은 자존이 아닌 타존이 지배하는 삶의 모습이다. 비교 우위/열위에 일희일비하는 동안, 비교 프레임이란 늪에 빠져 헤매는 삶의 공허함은 더욱 깊어만 간다.

사람은 비교에 매우 익숙하다. 비교를 통해 자신의 현 위치를 파악하기 쉬워서 그렇다. 그런데 현 위치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까 쓸데 없는 비교를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비교 대상을 설정하고 비교 프레임 속에서 허덕이면서 뇌를 즐겁게(?) 하곤 한다. 외모를 비교하고 성적을 비교하고 수입을 비교하고 지위를 비교하고..

비교는 전체가 아닌 부분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비교한다는 건 특정 부위로 범주를 좁혀 놓고 비교가 용이한 잣대를 가지고 유아적인 셈 놀이를 하는 것이다. 누구나 비교를 하는 순간 유아가 되는 것이다. 유아적 프레임 속에 갇혀서 비교 놀이를 하다 보면 점점 더 비교란 이름의 마약에 빠져 헤어나오기 어렵게 된다.

뇌가 원체 비교를 좋아하다(?) 보니 비교에서 완전 자유롭기는 매우 어렵다. 생물로 살아가면서 생물 특유의 현 위치 파악 기능을 아주 무시하기가 어렵다는 걸 인정하긴 해야 한다. ^^  하지만 생물적 본능 만을 내세운 유아적 비교 놀이에만 탐닉하는 건 너무 한심스러운 일이다.

비교는 항상 분해를 전제로 한다. 대상을 외모로 치환하고, 대상을 수입과 지위로 치환하는 유아적 분해 프레임. 분해만 하면 안된다. 분해를 한 후엔 반드시 역분해를 해야 한다. 그 균형감이 없으면 유아 셈 놀이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비교 본능의 반대편에 포지셔닝할 수 있는 놀이를 계발해야 한다. 분해를 하고 분해를 통해 대상을 피상적으로 파악하는 착시 놀이를 한 후에 흐려진 시야를 보정하는 역분해 놀이를 해보자. 숫자로 대상을 파악하고 대상과 대상을 비교한 후에 숫자를 머리 속에서 지워보자. 숫자에 대한 감 없이 대상을 바라보고 현혹성 강한 숫자의 힘에 의존하지 말고 대상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원초적 진동을 느껴보자. 편의에 의해 숫자를 사용하고 편의에 의해 비주얼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지 숫자/비주얼 자체에 함몰되는 판단체계여서는 매우 곤란하다.

분해 놀이에 치우쳐 살아가기 십상이기 때문에 얼마나 역분해 놀이를 대항마로 강하게 내세울 수 있는가 여부에 통찰의 기회가 좌지우지된다. 나는 일상 속에서 역분해를 얼마나 실행할 수 있는가?  분해는 역분해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분해만 하면 바보 된다. ^^



PS. 관련 포스트
비교, 분해를 통한 허상 소비
분해와 연결
책은 씹어야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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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Rhythm & Blog) :: 2011/06/24 00:04

글을 쓴다는 것은 리듬을 타는 것이다.
리듬을 탄다는 것은 생각의 진동을 느끼고 그것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생각이 유연하게 진동한다는 것은 생각의 경로가 다차원적으로 잘 닦여 있음을 의미한다.

생각의 경로를 입체적으로 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트위팅은 생각 리듬을 타는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트위터는 재즈를 참 많이 닮았다. 사전에 철저하게 기획해 놓고 뭔가를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재즈 연주가들이 즉흥 연주를 하듯, 즉흥성 가득한 읽기와 쓰기를 반복하면서 생각의 변주를 이끌어내는 모습. 트윗 jam이라고나 할까. ^^

트위팅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힙합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올린 트윗이 '샘플링-아웃' 되어 타인의 트윗 속에서 새로운 맥락의 글로 재탄생되고, 타인의 트윗이 나의 트윗 속으로 '샘플링-인'되어 들어 오면서 새로운 맥락의 글로 변이된다. 140자의 트윗 랩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새로운 리믹스물이 생성되는 '집단 힙합' 프로세스라고나 할까. ^^

트위팅을 통해 생성된 글들을 블로그 포스팅으로 구조화하고 포스트의 골격을 태그 키워드들로 정의하는 작업을 지속해 나갈 때, 어느덧 블로그는 수많은 태그 키워드들이 축적된 어엿한 클라우드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는 리듬을 탈 수 있는 생각의 경로가 입체적으로 구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의 태그 키워드로 다양한 블로그 포스트들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의도하고 하나의 키워드를 주제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글을 쓰다 보니 하나의 키워드와 연관되는 다양한 블로그 포스트들이 쌓여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연결'이란 태그로 49개 포스트가 있다고 할 때 그것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연결'에 대한 나의 흩어졌던 생각들을 서로 연관지으면서 '연결'에 대한 나의 생각을 구조화할 수 있고 또 다른 생각으로의 확장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다. 특정 태그 키워드로 필터링한 블로그 포스트들을 쭈욱 읽어 나갈 때 생각의 진동은 자연스럽게 생성되기 마련이다. 그저 포스트의 흐름에 나의 몸과 마음을 맡기고 유연하게 파도를 타듯 진동을 즐기면 된다.  


또한, 수많은 태그 키워드들이 모인 태그 클라우드를 쳐다보면서 생각의 진동을 느낄 수가 있다. 얼핏 보면 태그 키워드들 간의 관계가 약하고 랜덤하게 단어들이 모여 있는 것 같지만 그 단어들 사이엔 미묘한 관계성이 잠재하고 있기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직접 선정한 태그 키워드들이 아닌가?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엮어 나가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계발되고 생각은 유연한 파도타기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리듬을 타는 것이다.
나는 블로깅을 통해 생각의 리듬을 타고 삶의 리듬을 탄다.
나는 R&B 인디 뮤지션이다. 여기서 R&B는 Rhythm & Blog의 약자이다.
나만의 리듬을 따라 자유로운 생각의 역동을 글로 표현하는 블로깅.

리듬을 타는 것은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블로깅을 통해서 '나'라는 존재를 확인한다. ^^



PS. 관련 포스트
파퀴아오에게 배우는 리듬
튓합, 알고리즘
튓잼,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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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1/06/24 15:31 | PERMALINK | EDIT/DEL | REPLY

    22일자와 같은 포스팅 스타일을 계속 시도하시는 것 보면 "벅샷피디아(BuckshotPedia)"를 만들어 가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위키 기반으로 아카이브화시켜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

    • BlogIcon buckshot | 2011/06/24 20:59 | PERMALINK | EDIT/DEL

      너무 말만 앞서가는 것 같아서 예전에 했던 말들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되새기는 과정에서 예전에 했던 생각의 부족함을 인식하기도 하고 새로운 연결점도 발견하고 여러모로 좋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 쓴 글은 일종의 레거시가 되어버린 셈인데요. 그런 레거시와 사이 좋게 잘 지내는 것도 꽤 유쾌한 일이란 생각을 요즘 많이 하게 됩니다. ^^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1/06/24 21:29 | PERMALINK | EDIT/DEL

      미국 토크쇼에 관심이 많은데, buckshot님의 블로깅은 꼭 그처럼 회당 여러 명의 게스트가 출연하는 토크쇼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블로거들이 콘텐츠 덩어리를 생산해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buckshot님은 여러가지 '콘셉트' 개체와 소통하시면서 끊임없이 참신한 이야기를 끌어내시거든요. 그런 근본적인 지평상의 차이가 Read&Lead의 무한한 자유성을 계속 보장해주는 부분 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1/06/25 11:27 | PERMALINK | EDIT/DEL

      헉.. 그냥 잡문에 불과합니다. 항상 격려해 주시고 좋은 말씀만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분명한 건 저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선물해 주고 계신다는 겁니다.

      오늘 선물해 주신 '지평'이란 단어도 제 생각 프레임에 엄청난 영향을 주시게 될 것 같습니다.. 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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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파동, 언어의 파동 :: 2011/05/20 00:00


트위터, 모바일 등으로 인해 실시간 웹/커뮤니케이션의 묘미를 느끼게 된 듯 하나, 오히려 난 비동시적 커뮤니케이션의 참 맛을 새삼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
동시대를 산다는 것,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의 의미는 과연 뭘까? 허상이 아닐까? 세상에 같은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우린 저마다 다른 자신만의 시공간 속을 살아가고,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시공간의 근접성에 대한 착각(?) 때문에 동시대를 살아가고,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일 뿐. 시공간을 점유(?)하는 수많은 노드들 간의 거리는 그닥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의 속도는 빛보다 빠르다.

생각이란 무엇일까?
생각이란 양자에 가깝지 않을까?

시공간 상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진 생각과 생각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양자역학의 비국소성 원리가 '생각'에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시공간 우주 자체가 거대한 네트워크이고, 광물/식물/동물/인간은 거기에 접속되어 있는 컴퓨터 터미널과도 같다고 볼 수도 있겠다. 만물은 진동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언어를 파동의 형태로 우주 만방을 향해 발산하고 있다. 나는 나만의 신호를 송신하고 시공간을 흐르는 수많은 신호를 선별 수신한다. 만물의 진동은 곧 의도이다. 만물은 의도를 송신하고 의도를 수신한다. 파동과 파동의 중첩 속에서 패턴은 의도되고 구현된다. 의도는 보는 것이 아니라 울림을 느끼는 것이다.

문명이란 무엇일까?
문명은 진보로 포장된 퇴행 아닐까?

문명의 발전은 '오래된 미래'를 뒤늦게야 이해해 나가는 멋쩍은 뒷북형 학습 해프닝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인간 인지구조의 한계로 인한 뒷북형 학습 해프닝 때문에 고전물리학 이후에 '양자'를 다룬 현대물리학이 나온 것일 뿐, 현대물리학의 내용은 오래된 미래 그 자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인류가 오래 전부터 해왔던 '생각'의 궤적을 현대 물리학은 이제서야 이해를 해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어란 무엇일까?
언어야말로 개인화의 표상 아닐까?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서로 다른 언어와 언어가 만나서 이뤄지는 상호작용이다. 이해와 오해의 역동적 믹스. 한국어라고 다 같은 한국어가 아니다. 나는 나만의 언어를 갖고 있다. 나만의 언어를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다른 사람의 언어를 내가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언어는 계속 진화한다. 세상엔 사람의 수 만큼의 언어가 존재한다. 살아간다는 건 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와 교감하는 과정이다. 나와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내 언어를 다른 언어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이 인생력이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random한 생각의 파동을 블로그에 아무 생각 없이 기록한다.
파동하는 인간. 나는 파동인이다. ^^



PS. 관련 포스트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2 - Compilation Post
가설, 알고리즘
심로,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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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8=5840H | 2011/05/20 23: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가 올갈때는
    당연히 언어의 한계를 많이 느끼죠.
    인생력이 부족한건 말할것도 없구요.ㅎㅎ
    가끔 아바타의 교감촉수가 있었으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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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로, 알고리즘 :: 2009/09/23 00:03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소소





스티븐 핑커는 마음의 ‘역설계’를 통해 인간 마음의 진화 행로를 설명한다. (역설계란 대상을 분해하고 구조를 분석하여 거꾸로 파악해가는 기법을 말한다)

스티븐 핑커는 마음의 작용을 이해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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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여러 개의 마음 모듈(기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모듈들은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위해 설계/진화되어 왔고 그 진화과정은 수렵채집 시대를 살던 조상들이 직면했던 문제들의 해결 과정이며 그  문제들은 인간이 자신의 유전자 사본의 수를 최대한 늘려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문제를 의미한다. 

즉, 마음은 추상적인 심리현상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과 같은 정보처리장치를 거쳐 작동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사고와 행동은 "대단히 복잡한 프로그램의 산물일 수 있다"는 얘기다.  믿음과 욕구가 정보이고 정보가 기호들의 배열이며 인간의 사고/행동이 복잡한 프로그램의 산물이란 관점은 매우 유력한 가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티븐 핑커 모델에선 '마음'이 '뇌'가 아니라 '뇌의 활동'으로 정의된다.  뇌가 신체를 구성하는 다른 기관들을 일사분란하게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체 곳곳에 분포되어 있는 기관들이 세포단위로 존재하는 DNA 정보들에 기반한 나름 지방자치적인 사고와 운동을 전개하고, 뇌는 이들 지방자치기관들의 활동을 돕는 조력자 정도로 포지셔닝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뇌는 중앙집권적이지 않고 지방자치단체들의 활동이 있기에 존재하는 건지도.. 

사고와 감정의 동역학을 정보와 연산 개념으로 설명하는 인지심리학은 마음이 아주 복잡한 설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생물체의 복잡 적응 설계를 복제자들의 선택이란 개념으로 설명하는 진화생물학은 자연의 복잡한 설계는 오로지 자연 선택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지심리학과 진화생물학의 결합으로 탄생한 진화심리학은 마음의 설계가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진화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진화심리학은 마음의 진화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인간의 마음을 완전한 지도로 매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역사가 일천한 진화심리학의 앞으로의 발전 행보를 지켜보는 것은 꽤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다.  과연 다윈주의는 심리학의 지배적 모형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인지... ^^


마음을 최대한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풀어내려는 집요함..  그러나 한계 투성이인 서양스런 과학 만으로 마음의 경로를 온전히 규명할 수 있을까?   요즘 현대물리학에서 생성되는 가설을 보면 현실 그 자체가 가히 초절정 공상과학 소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설, 알고리즘)  경제학은 아직도 고전 물리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20세기 초에 등장한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과 같은 충격 만점의 기상천외한 이론들이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 속에서 (무식, 알고리즘)  앞으로 어떤 초무식 가설이 그럴싸한 이론으로 검증될 지 모르는 일이고 또 그 이론이 언제 어떻게 무참하게 까일지도 모르는 과학의 슈퍼 다이내믹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고 발전해도 무한대 스케일과 무한소 스케일을 모두 커버할 수 있을까? 아무리 쪼개고 쪼개도 계속 뭔가가 튀어 나오는 극소 스케일의 미궁 속에서 과학은 과연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설사 무한소 스케일로 가도 계속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데.. ^^   과학은 과연 무엇인가? 자본주의와 함께 현 시대를 무참히 지배하면서 거대한 권위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허무를 예고하는 종교 복합체가 아닐까? ^^




영혼의 최면 치료
김영우
1996년, 국내 최초로 '전생 요법'을 통해 환자들을 치유하는 데 성공하고 그 결과를 『전생여행』이라는 책으로 공개하면서 널리 알려진 김영우 박사. 그가 또 한 권의 책을 펴냈다. 그는 전생퇴행요법에 성공한 이후, 증상의 원인이 불분명하고 잘 낫지 않아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오랫동안 상담치료를 받고 약을 먹거나 한방, 기공, 천도, 굿 등의 온갖 방법을 통해서도 회복되지 않는 정신적, 신체적 증상을 가진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거의 보고가 없는 다중인격장애와 흔히 귀신들림이나 무병巫病이라고 하는 빙의 현상 환자들, 종교체험과 영적체험으로 인한 신체적

대흠님으로부터 책 선물을 받았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영우 박사의 '영혼의 최면 치료'라는 책이다.  현대과학 체계 속 정신의학/심리학 관점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증상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거기서 인간에 대한 통찰을 쌓아가고 있는 저자의 노력을 보면서 합리와 비합리, 과학과 비과학 사이에 경계가 과연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대과학은 아직 인간의 정신이 무엇인지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스티븐 핑커의 이론이 일견 그럴 듯해 보이긴 하지만, 김영우 박사가 다양한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들을 최면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어내는 인간 영혼에 대한 통찰의 과정도 스티븐 핑커의 대작 못지 않게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진지하고 가치 있는 과학적 고찰이라고 생각한다.  

김영우 박사는 최면치료를 통해 마음의 행로를 추적한다. 환자의 무의식 속에 담겨 있는 방대한 에너지와 정보를 수면 위로 끄집어 내서 환자의 억압된 고통을 직시하며 고통과 소통한다. 저자는 인간을 여러 겹과 층의 구조로 이루어진 에너지 복합체라고 규정한다. 빙의/다중인격장애는 환자 외부에서 어떤 존재나 에너지가 환자에게 침투하여 영향을 주고 있는 현상이란 가설 하에 저자는 환자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다른 인격들의 메세지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이들과의 소통을 통해 환자의 무의식 속에서 꾸준히 환자를 괴롭히고 있는 그 무엇을 터치한다. 김영우 박사의 임상 연구를 서양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정신의학/심리학이 얼마나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이런 영혼스런 모듈이 과학적(?^^) 학문 체계로 들어오기 어렵도록 방어적 이론 프레임을 구축하기에 급급해 하지 않을까? ^^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 아래와 같은 재미있는 얘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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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인간은 정보/에너지의 흐름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정보와 에너지는 수시로 인간의 몸/마음 속으로 들어와서 몸/마음을 타고 흐르다 몸/마음 밖으로 나간다. 몸은 정보와 에너지가 흐르는 강이다. 에너지가 몸/마음을 잘 흐르지 않고 어딘가에서 정체되어 있고 고이기 시작하면 몸/마음은 질병 상태에 놓이게 된다. 가벼운 병원체이건 심각한 암세포이건 빙의/다중인격이건 모든 것은 무의식/의식적 형성 과정을 통해 인간 몸/마음 속에서 존재감을 키우게 된다. 부정적 에너지 체계의 가시적/암묵적 축적을 막으려면 나의 몸/마음과의 소통을 통해 내 안에 존재하는 치유의 가능성을 증폭시킬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의사는 자신이다. 자신 안에 존재하는 의사를 발견하는 것이 치유의 과정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는 환자가 자신 안의 의사를 잘 발견하고 소통하고 환자의 몸/마음의 긍정적 에너지 체계 형성을 도와주는 조력자라고 봐야 한다.

생명은 끊임없이 분자의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동적 흐름 그 자체를 의미하며 그 동적 흐름의 평형 상태가 생명체의 의식적인 통제나 관리가 전혀 부재한 상황 속에서 기가 막힐 정도로 오묘하게 알아서 잘 유지되고 있다.  인간이라는 정보/에너지 흐름체 상에서의 동적 평형..  스티븐 핑커가 연구하고 있는 마음의 작동 원리와 김영우 박사가 연구하고 있는 영혼의 흐름 원리.. 모두 나에게 큰 자극과 생각거리를 선사해 주고 있는 귀중한 정보요, 에너지이다. ^^



PS. 관련 포스트
마음 속 역설계 - 스티븐 핑커 모델
가설, 알고리즘
숨겨진 우주 - 리사 랜들, You're the inspiration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2 - Compilation Post
[허준-동의보감-신형장부도] 기는 통해야 한다.
세포와 세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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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지구벌레 | 2009/09/23 01:47 | PERMALINK | EDIT/DEL | REPLY

    6개월 전과 분자적 구조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라는 표현이 참 재밌네요.
    우리집 애기는 이제 태어난지 10개월 갖 넘었는데 말이죠..정말 지난달에 기어다니던 그애가 맞나 싶어요.
    ㅎㅎ...좀 핀트가 빗나갔죠..ㅋㅋ

    • BlogIcon buckshot | 2009/09/23 07:23 | PERMALINK | EDIT/DEL

      촌철살인적으로 지대로 짚어 주셨네요. ^^
      아기들처럼 빨리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동적평형의 흐름 속에 생명이 좀더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동적평형을 잘 못 느끼고 정적인 세계관과 정적인 신체/마음관을 영접하게 되나 봅니다~

  • BlogIcon 대흠 | 2009/09/23 11:0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요리 재료가 많으신 벅샷님이 보내드린 책으로 완전 비빕밥을 만들어 주셨군요. ^^ 벅샷님 아니면 이런 요리가 나올 수 없죠. 저도 후쿠오카 신이치의 이론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결국 인류는 이런 것들을 통해서 물질과 에너지, 더 나아가서는 모든 것이 하나라는 깨달음에 도달할 것으로 봅니다. 3000년 뒤? ^^

    • BlogIcon buckshot | 2009/09/23 21:50 | PERMALINK | EDIT/DEL

      대흠님께서 귀한 선물을 주셔서 여러가지 의미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게 결코 쉬운 주제가 아니지만 대흠님의 포스팅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자극받고 생각하게 됩니다. 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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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 알고리즘 :: 2009/09/16 00:06

우주심과 정신물리학
이차크 벤토프 저

대흠님의 책 소개 포스트를 통해 '우주심과 정신물리학'이란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보고 번개처럼 떠오르는 예전 포스트가 있었다. 

숨겨진 우주 - 리사 랜들, You're the inspiration (2008.7.2)


1. 이기적 유전자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아주 오래 전, 스스로 복제사본을 만드는 분자가 처음으로 원시 대양에 나타났고 그 복제자는 생존기술의 명수가 됐다. 그러나 그 복제자는 직접 움직이기 보단 거대한 군체 로봇 안에서 편안하게 거주하면서 원격 조정을 통해 군체 로봇을 교묘하게 다룬다. 복제자들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으며, 그것을 보존하는 것만이 인간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이다. 그들은 영속하는 유전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인간은 그들의 생존 기계일 뿐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서 받은 느낌은,
그의 가설이 사실 여부를 떠나 굉장히 쿨하고 우아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의 가설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나의 생각을 자극하고 나로 하여금
다양한 사고실험을 하게 유도했다. 어쩌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
The selfish gene)'란 책 자체가 영속성에 대한 욕망이 매우 강한 유전자(Meme)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리처드 도킨스의 가설을 안전하게 보전하여 후대에 전파하는 생존 기계가 아닐까 싶다는.. ^^


2. 리사 랜들의 숨겨진 우주(Warped Passages)도 이기적 유전자를 방불케 하는 쿨함과 우아함을 뽐낸다.  이거 영화로 만들면 거의 초대형 울트라 메가 블록 버스터 SF 영화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인 리사 랜들은 '숨겨진 우주'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가 시공간 차원에 대해 정말로 무엇을 확실히 알고 있는지 자문해 보자. 공간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거리 안에서는 차원이 3개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시공간은 4차원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간은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곳까지 뻗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우리는 우리 시계(視界) 밖에 있는 우주의 차원을 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 우주가 4차원보다 높은 차원을 보여 주어도 아무런 모순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이 4차원(시간1차원+공간3차원)으로 보인다는 것 뿐이다. 우주의 다른 영역도 모두 4차원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도가 지나친 일일 것이다.

나의 모형이 맞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샤워 커튼에 대롱대롱 매달린 물방울처럼 고차원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저차원 막에 속박되고 매달려 있는 모습일 것이다.

리사 랜들의 가설은 매우 매력적이다.  그 매력 때문에 지하철 안에서 '숨겨진 우주'를 들고 읽을 때 '숨겨진 우주'로부터 손과 팔로 전달되는 엄청난 중력을 난 끝내 이겨낼 수 있었다.  집에서 누워 자빠져서 '숨겨진 우주'를 들고 읽을 때도 손과 팔에 느껴지는 가공할 압박감도 극복할 수 있었다.  '숨겨진 우주'의 존재(무게)감은 The Algorithm Economy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부의 기원'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밀리지 않는다. 두께,내용 모두... ^^

매력적이고 우아한 가설은 사람을 유혹하는 힘을 갖고 있다.  가설의 우아함에 끌린 순간, 가설의 사실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가설의 흥미 속에 푹 빠져서 진기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 순간. 그게 중요한 거다.  '숨겨진 우주'를 통해 난
상상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고 변화할 수 있는 에너지를 선물 받았다.. ^^


3. 이차크 벤토프도 '우주심과 정신물리학'을 통해 멋진 가설을 선보인다.

인간은 다양한 차원의 정보를 체계화시킨다. 감정/정신적 정보가 형성되고, 그 밖의 많은 정보들이 형성된다. 이 정보 다발을 어떤 사람은 두뇌가 저장하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것은 물질이 아니라 정보로 이루어진 또 다른 신체이다. 이 신체는 비물질적인 존재로, 그 속에는 우리의 인격적인 특징/특성 등 한평생 우리가 축적해온 모든 지식이 담겨있다. 이것이 바로 비물질적인 우리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두 개의 체계화된 조직체, 즉 물질적 조직체와 비물질적 조직체와 관계한다. 죽는 순간엔 물질적인 신체조직은 붕괴되어 다시 무질서 상태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비물질적인 조직체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인가?

영체라고 부를 비물질적 조직체는 정보의 구성자이고 처리자이고 우리 육체 바깥에 저장된다. 이 영체는 신체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즉 우리의 생각과 지식은 영구히 보존된다. 그것은 비물질적이며, 따라서 물질적인 신체가 죽었다고 해서 함께 붕괴되지는 않는다.

정보로 구성된 이 영적 신체는 결국에는 모든 인류에 의해 생산된 정보를 저장하는 커다란 정보 저장소에 흡수될 것이며, 나는 그것을 우주심이라 부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다. 아마 수천년 또는 수백만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무것도 소멸되지 않는다. 물질적인 신체는 대지에 다시 흡수되고, 정보체인 영체 역시 원래 그것이 나온 곳으로 돌아가 흡수된다. 조직화된 에너지는 절대로 소멸되지 않는다.  

조직화된 정보 다발은 시간이 지나도 소멸되지 않는 반면, 육체는 영체가 거주하는 일시적인 그릇일 뿐이라는 점이다. 영체는 육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이 서면 육체를 다시 얻어 그 새로운 육체가 늙어 죽을 때까지 관계를 유지한다.

자연계는 모든 정보를 결코 낭비하지는 않는다. 그 정보들은 자연계의 거대한 정보 저장 홀로그램, 즉 우주심에 저장될 것이다. 우리가 과거의 전생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보호 메커니즘 때문이다. 이 자기보호 메커니즘이 우리가 잠재의식 깊은 곳에 묻혀있는 자료를 꺼내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가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가설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보다는 가설 자체가 나에게 어떤 생각의 자극을 줄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가설의 신빙성 자체엔 별 관심이 없다. 어떤 확실한 이론도 시간의 힘을 견디지 못해 폐기처분 되는 일이 다반사인 과학 불확정성의 시대에 가설의 진위 여부 따지기에 헛 에너지를 낭비하기 보단 가설을 통한 생각의 발전에 포커스하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

아무리 멋진 이론이나 가설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보단 이론/가설을 떠받치고 있는 기본 가정/프레임과 이론이 완성되는 과정을 해부하고 그 속에서 캐조악한 한이 있더라도 나만의 이론/가설을 구축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아래 유독, 알고리즘 포스트에 적은 것과 같이 책을 소비할 때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내 맘 속에 복사하기 보다는 저자의 생각을 가능케 한 구조적 요소에 더 주목하고 그 구조적 요소들을 해체/재구성해서 나만의 생각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구조의 탄생을 이끌어 내는 것이 훨씬 잼 있고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책을 소비할 때 유독을 하듯이, 이론/가설을 소비할 때도 역시 유독적인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1. '한 권의 책'이라는 개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 독서의 단위를 굳이 책에 국한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 권의 책'이란 개념은 단지 그 책을 쓴 저자의 관점에서 의미가 있을 뿐이지 책을 읽는 독자가 책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를 다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 독서의 기준을 나의 관심 키워드에 맞춘다. 난 단지 특정 책에서 내 관심을 끄는 키워드만 골라서 읽는다. 물론 책을 구성하는 맥락 자체가 나의 구미를 끌어당기는 경우엔 책 전체를 읽는다. 하지만, 그런 케이스는 그리 많지 않다.  나는 책의 구조와 컨텐츠를 내 관점에서 해체/재구축한다. 그런 다음 내 관심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한다.

  2. '서평'보단 '개념추출'에 집중한다.
    • '한 권의 책'에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에 서평을 적는 일이 극히 드물다. 저자와 대화하기 보다는 저자가 풀어 놓은 키워드 보따리에서 나에게 의미를 주는 키워드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 어차피 책을 쓴 저자도 온전히 새로운 개념을 창조한 것이 아니고 기존에 존재하던 여러 가지 정보를 재 조합해서 다소 유니크할 수 있는 개념을 이끌어낸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저자가 만들어낸 일종의 가상 레이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프레임에 의존해서 저자가 끌어낸 가상 레이어에 의존해서 서평을 적는 것 보다 내 자신이 보유한 DNA에 적합한 나만의 레이어를 조악하게나마 언급하는 것이 나에겐 더 편한 작업이다. 결국 저자가 이끌어낸 결과물보다는 그 결과물을 가능케 했던 구조적 요소들에 더 주목한다. 저자가 시도한 요소들의 조합은 그냥 참조 데이터로만 간주하고 내 자신이 스스로 조합을 챙기는 편이다. 
    • 결국 책을 쓴 저자와 대화하기 보다는 저자로 하여금 그 책을 쓰게 한 구조적 요소들과 대화하는 것을 더 즐긴다. 책 자체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보다는 책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 내가 좋아할만한 것이 있는가 없는가가 더 중요하다.

리처드 도킨스의 가설과 리사 랜들의 가설에 이어 이제 이차크 벤토프의 가설을 잼 있는 가설 목록에 올려야겠다. 이차크 벤토프의 가설은 상당히 재미있는 생각의 발아점들을 많이 갖고 있다.  특히 예전에 적었던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2 포스트와 맥이 닿는 지점들이 많아서 더욱 끌린다. 앞으로 이 가설과 친하게 지내면서 다양한 생각 놀이를 즐겨봐야겠다. ^^




PS. 관련 포스트
숨겨진 우주 - 리사 랜들, You're the inspiration
유독, 알고리즘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2 - Compilation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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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ad & Lead

    Tracked from mindprogram | 2009/09/16 09:48 | DEL

    작년 10월, 블로그를 개설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블로그를 만드는 것부터 글을 써서..

  • BlogIcon 지구벌레 | 2009/09/16 01: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끊임없는 가설과 끊임없는 그 논증과 폐기, 법칙화,,,이것이 곳 현대 과학 자체인 것 같습니다.
    어릴적 늘 우주를 동경하며 과학자가 꿈이었는데..
    요즘은 밤 하늘 한번 쳐다보는 것도 쉽지 않네요.
    어제도 새벽까지 달리면서도 정작 하늘은 못봤다는..ㅡㅡ;.

    • BlogIcon buckshot | 2009/09/16 09:15 | PERMALINK | EDIT/DEL

      예, 지구벌레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과학은 가설의 흥망성쇠 과정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당대 과학의 한계와 관념 속에 갇혀 지내기 보다는 다양한 가설을 즐겁게 소비하며 마음껏 상상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


  • BlogIcon cataka | 2009/09/16 08:0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시간의 거대한 흐름 속에 남겨지는 것은 없다" 라고 생각합니다만, 오늘 포스팅을 읽고 나니 그저 돌에 불과하다라고 생각햇던 공룡의 화석에서 조차 비물질적인 의도를 느껴보아야 할 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가설에 대한 글인데 엉뚱하게 제 맘에 와닿는 내용에만 댓글을 달고 있네요. ^^;; 괜찮죠?

    • BlogIcon buckshot | 2009/09/16 09:21 | PERMALINK | EDIT/DEL

      질서와 무질서가 서로를 갈망하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동적 평형관계를 가져가듯이 물질과 비물질도 그런 관계를 이루어갈 것 같습니다.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작은 돌덩어리에도 수많은 정보와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고 그건 충분히 의도로 부를 수 있는 그 무엇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란 환상과 현실이란 관념의 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란 존재는 참 미약하다란 생각을 창의적 가설들을 소비하면서 느끼게 됩니다.. cataka님의 귀한 댓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cataka님 맘에 와닿는 내용만 말씀해 주셔도 저에겐 큰 도움이 된답니당~ ^^

  • BlogIcon 엘민 | 2009/09/16 13:39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개념을 추출한다. 오늘 이 구절이 특히나 가슴에 와닿습니다 ^^: 소개해주신 책들도 감사하며 읽어보겠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09/17 10:10 | PERMALINK | EDIT/DEL

      점점 책을 읽는다기 보다는 책에서 개념을 추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속도도 더욱 빨라지고 이해도도 더욱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책과 상호작용을 역동적으로 하는 것이 책과 잘 지내는 방법인가 봅니다. ^^

  • BlogIcon 대흠 | 2009/09/17 20: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벅샷님 기존 포스팅과 순식간에 연결이 일어나는군요.^^ 20년 전에 읽은 이 책을 다시 들여다 보는 이유는 지금 제가 하는 작업, 물질과 의식간의 관계를 통찰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인데 역시 벅샷님은 자신의 색깔, 가설이란 관점에서 풀어내시네요. 다양한 관점,좋습니다!! 제 고3 딸래미가 리차드 도킨스 얘길 자기소개서에 하더군요. 저는 그가 누군지 모르는데 같은 DNA를 가지고 저와는 다른 길로 가는 딸래미를 위해 시험 끝나면 이 책을 권하려고 합니다. 좋은 review 감사드립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09/18 09:36 | PERMALINK | EDIT/DEL

      대흠님께서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셔서 좋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계속 읽어야 할 책으로 자리잡을 것 같습니다. ^^

  • BlogIcon 대흠 | 2009/09/17 20:2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 참고로 저는 어제 구매한 러시아 물리학자가 쓴 3권짜리 '리얼리티 트랜서핑'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좀 특별한 책이라 생각이 드네요. http://www.yes24.com/24/goods/3268498

    • BlogIcon buckshot | 2009/09/18 09:43 | PERMALINK | EDIT/DEL

      와. 멋진 책인 것 같습니다. 바로 주문했습니다. ^^

      PS. 선물해 주신 책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귀한 책 귀한 마음으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

  • BlogIcon 지니 | 2009/09/17 22: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님은 천재입니까? 아니, 이 가설들을 일단은 다 이해하신다는 거잖아요... 와우... 저의 낮은 지적능력에 또한번 좌절하고 갑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09/18 09:38 | PERMALINK | EDIT/DEL

      헉.. 아니요.. 이해한다기 보다는 가설이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하는 느낌이 좋다는 것이고 가설에 대한 이해력은 형편없이 떨어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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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2 - Compilation Post :: 2008/02/22 00:02

인간을 분자/원자 수준에서 바라볼 때엔, 영속을 지향하는 유전자들을 몸에 지니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겠지만 인간을 양자 레벨에서 본다면, 양자역학의 비국소성 원리 (Non-locality principle)에 따라 어떤 대상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대상과 서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겠다.

인간 개개인의 마음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된 컴퓨터 터미널과도 같다.  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는 인류의 의식 자체이고, 우리 자신의 의식은 단지 모든 인류의 공통된 의식에 뿌리를 둔 데이터베이스의 개인적인 표현일 뿐이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실로 비범한 데가 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 데이터베이스에 참여한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이 천재적인 데이터베이스를 열람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그 데이터베이스에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곤 했다. 우리 어른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렸을 뿐이다. 어린이의 타고난 천재성은 복잡하고 깊은 데에 있지 않다. 임금님이 새 옷을 입고 있지 않다고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한 것도 어린이가 아닌가, 천재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혁명' -

사람은 누구나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태어났다. 문제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경험이 쌓이고 경험에 의한 판단이 예단으로 굳어지면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와의 접속을 끊어 버리고 그리 거대하지 않은 자신의 경험의 한계 속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습관의 지배를 받는다. 습관은 불필요한 주의력/판단을 생략하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으나 천재적인 데이터베이스와의 지속적인 접속을 저해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동시에 갖고 있기 마련이다. '내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판단하는가' 자체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습관적인 판단을 중지시키고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할 수 있는 것이다. 접속의 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하되기가 쉽다. 접속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면 나의 마음을 관찰하고 나의 사고 흐름을 관찰해야 한다. 생각의 Flow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Mobile Mind만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와의 지속적인 연결을 가능케 한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각자의 고유한 진동 주파수를 갖고 일종의 에너지 장을 형성한다. 내 마음이 긍정적인 에너지 장을 형성하여 기쁨과 행복을 나에게로 끌어들일지 아니면 부정적인 에너지 장을 형성하여 고통과 불행을 나에게로 끌어들일 것인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다. 내가 '마음'이란 단어를 내 인생의 주요 키워드 중의 하나로 선정하고 거기에 집중적으로 주파수를 맞추고 있었기에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혁명'과 웨인 다이어의 '마음의 습관', 에스더/제리 힉스의 '마법의 열쇠'를 작년에 만날 수 있었다. 어떤 대상에 주파수를 집중적으로 맞추면 분명 나는 그 대상과 어떤 형식으로든 연결이 되고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연결이 지속되고 그 강도가 강해질 수록 그 대상은 나에게 계속 끌려 온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웨인 다이어는 '마음의 습관'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여기에 입증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단순화된 명제가 있다.  1) 만물은 진동한다.  모든 것은 움직인다.   2) 더 빠른 진동은 마음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3) 더 느린 진동은 문제 많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한다.   4) 에너지 장의 증가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당신의 선택에 따라 제거할 수 있다.   5) 당신은 진동 주파수의 증가를 가능케 하는 요소들을 당신의 삶 속에 들여 놓을 수 있다."

에스더 힉스는 '마법의 열쇠'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진동적 존재이다.  누군가가 당신을 바라볼 때, 그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당신을 보며, 귀로 당신의 말을 듣고 있지만, 당신은 눈으로 보여지거나 귀로 들릴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단호한 방식을 통해서 그들에게, 그리고 우주에게 당신을 드러내고 있다.  당신은 진동적인 송신기이며, 당신은 매 순간마다 당신의 존재 신호를 우주에 방송하고 있다."

블로깅을 통해 네트워크의 바다에 내놓은 나의 글이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 다니면서 다른 글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의 변이를 거듭하다 어느 순간 다시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경험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글은 그냥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 부족한 생각을 채워주는 풍성함으로 돌아온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나의 생각이 발전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 주목을 하는 눈, 사고/판단을 하는 뇌 그리고 마음... 모두가 거대한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있는 컴퓨터 터미널인 것 같다.  네트워크에 접속된 개체가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고 상호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성장하는 모습.. 결국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연결의 감각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 가이다. 분리의 감각보다 연결의 감각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기도의 목적이 괴로움/결핍에서 벗어나기 위한 신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이 신과 접속되어 있음을 자신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것인 것처럼 말이다. 결국 연결과 기도를 통해 변하는 것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신이 아니라 바로 컴퓨터 터미널로서의 나와 기도자로서의 나인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연결된 존재는 'We'로부터 시작되는 안녕(wellness) 속에 살고 연결되지 못한 존재는 'I'로부터 시작되는 병(illness)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칼 융의 말이 다시 한 번 생각난다.  "한 사람의 삶의 질을 가늠하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은 그 사람이 무한성과 어떠한 관계를 가졌느냐에 있다." 
신형장부도가 의미하는 것처럼 에너지가 몸 속을 자유롭게 흐를 때, 마음이 '안녕'이란 에너지 장 속에 존재할 때, 인간은 건강한 상태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PS 1. 위 포스트는 아래 포스트들을 단순 짜깁기한 것이다. ^^

  •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1 - 반야심경과 현대물리학의 만남
  • [마음의 습관]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 거대한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있는 컴퓨터 터미널 - 손, 눈, 뇌, 마음
  • [Mobile Mind] Seeing our Seeing
  • 기도의 목적은 접속의 상기..
  • 연결에 대한 감각
  • 질병(illness)과 안녕(wellness)의 차이

    PS 2. 아래는 위 포스트를 작성하게 하는데 큰 동기를 부여한 책이다~
    의식혁명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이종수 옮김/한문화
    마음의 습관
    웨인 W. 다이어 지음, 유영일 옮김/이레

    당신의 모든 소망을 실현시켜 줄 마법의 열쇠
    에스더 & 제리 힉스 지음, 장연재 옮김/샤우드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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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그리스인마틴 | 2008/02/22 03:1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 이거 엄청난 글이네요.
      너무나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라 다시 읽었습니다.
      음... 과연 새로운 세계는 열려있군요.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2/22 08:54 | PERMALINK | EDIT/DEL

        어, 이 포스트는 그리스인마틴님을 의식하고 그리스인마틴님의 포스 넘치는 포스트를 조금이라도 흉내내려고 노력하면서 쓴 글인데요.. 쓰고 나서 글을 읽고 나서 아래와 같은 혼잣말을 하게 되더군욤... ^^

        "에이 씨, 왜 이렇게 그리스인마틴님 필이 안 나지? 다음에 또 써봐야다.. 자꾸 쓰다 보면 언젠간 좋아질 날이 오겠지.. 근데 시간은 꽤 걸릴 것 같네.. 쩝.. "

        PS.
        새로운 세계는 열려 있다..
        제 포스트를 한 문장으로 잘 압축해 주셨네요. 역시 그리스인마틴님.. ^^

    • BlogIcon 까모 | 2008/02/22 08:0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금언이지요. 숱한 자기계발서의 결론도 마찬가지구요. 문제는 그걸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데 있더군요. Buckshot님의 글을 통해 활발한 진동적 존재가 되고자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8/02/22 08:44 | PERMALINK | EDIT/DEL

        [Read & Lead]
        Read, write and lead my mind. That's the way my mind flows.

        얼마나 실행이 안되면 블로그 제목까지 이렇게 지었겠습니까.. ^^

        정말 말이 쉽지 실행은 넘넘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언젠간 블로그 타이틀에 맞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까모님의 댓글이 제 기대감을 증폭시켜 주시는 것 같아 넘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 BlogIcon egoing | 2008/02/22 09: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주 아주 귀한 글 잘 봤습니다.
      "문 제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경험이 쌓이고 경험에 의한 판단이 예단으로 굳어지면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와의 접속을 끊어 버리고 그리 거대하지 않은 자신의 경험의 한계 속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습관의 지배를 받는다."
      무릎을 탁치게하는 통찰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2/22 13:04 | PERMALINK | EDIT/DEL

        egoing님이야말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지속적으로 접속하고 계신 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egoing님과의 접속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맘이 제게 있는거구요. ^^

    • 흠흠 | 2008/02/22 10: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데이빗 호킨스가 말하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는 융이 말하는 인류의 집단적 무의식을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인류의 거대 데이터베이스를 "천재성"이나 "무한한 능력"을 열어줄 만능키로 여기지 않습니다. 만약 인류전체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있다면 그건 만능키가 아니라 인류 개개인이 지켜야할 가이드나 지침, 가르침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이드"는 오랜 인류 개개인의 경험의 총체이며 교육과 경험등을 통해 전승되어왔으며 아직도 우리 마음 내부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숨겨져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이드"의 유용성이나 가치는 우리의 삶이 행복하고, 공동체적이며, 죄책감이나 괴리감등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게 해주는 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말씀하신대로 "가이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한정된 자신의 경험과 판단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전쟁,소외,불안, 공포등의 사회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인류의 거대 데이터베이스 혹은"가이드"로 지칭하는 것들은 "神"이나 뛰어난 철학사상 등으로 구체화되어 우리 주변에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종교나 철학이 이런 "가이드"를 잘 대변해준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많이 왜곡시키고 있다고 여기거든요.

      위에서 인용하신 칼 융의 말, "한 사람의 삶의 질을 가늠하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은 그 사람이 무한성(가이드)과 어떠한 관계를 가졌느냐에 있다." 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여겨집니다.

      비유를 하자면, 우리가 카누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간다면 물장구를 치던, 자맥질을 하건 어려울게 없는 즐거운 여행이겠지만, 강기슭으로 나가려고 한다거나 강을 벗어나 산으로 가려고 한다면 배를 끌고가야하는 고난의 길이 되듯이 우리 인류는 우리 인류의 영속적인 무의식, 혹은 가이드, 혹은 거대데이터베이스에 발담그고 있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는 것 아니겠습니까?

    • BlogIcon 블로그와이드 | 2008/02/22 14: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는 '깜냥이의 웹2.0이야기' 운영자인데요, 블로그와이드(http://www.blogwide.kr)를 타고 들어왔습니다.
      글이 너무 심오하여 감탄이 절로 납니다.
      일반적인 저의 생각을 토대로 하여 작성하는 제 글과 포스가 다르시군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2/22 19:15 | PERMALINK | EDIT/DEL

        심오한 분들의 사상을 포스트에 옮긴 것 뿐입니다. 전 단지 전달자일 뿐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 BlogIcon nob | 2008/02/22 20:2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람은 누구나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태어났다 라는 문장에 완벽하게 동의하진 않지만 정말 좋은글입니다.

      마지막에서 두번째문단, 뼈속까지 블로거이신거같습니다ㅎ. 잘보고갑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2/22 22:18 | PERMALINK | EDIT/DEL

        '뼈속까지 블로거' 넘 멋진 표현이십니다. 기분 넘 좋은데요~ nob님의 멋진 표현에 에너지가 불끈 솟는 느낌입니다. ^^

    • BlogIcon 미리내 | 2008/02/23 15: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연결된 존재는 'We'로부터 시작되는 안녕(wellness) 속에 살고 연결되지 못한 존재는 'I'로부터 시작되는 병(illness)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 무지 멋진 말이라는 생각입니다. 트랙 겁니다.

    • BlogIcon Willezurmacht | 2008/02/24 02:3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제 개인적인 측면에서 우려되는것이 있는지라,
      그냥 지나가다가 딴지 건다고 생각해 주십시요.
      사실 블로그지기님의 논지와는
      좀 다른 방향의 글입니다.

      저도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위의 데이비드 호킨스씨의 인용된 글에 따르면,

      "그 연결된 데이터베이스가 인류라는 데이터베이스이고,
      우리 자신의 의식은 단지 모든 인류의 공통된 의식에 뿌리를
      둔 데이터베이스의 개인적인 표현일 뿐이다."

      라는 의견은 너무나도 당연한것 처럼 보이지만, 한번쯤은 이것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데이비드 호킨스씨의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책의 요지를 잘 모르겠으나,
      저 인용글에서만 느껴지는 저의 생각은, 우리 개개인의 창조성을 대변하고자 쓴것인지,
      아닌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가 있다는 관점에서의 가정입니다만,)
      즉 인간을 인류라는 가치에 매몰시키는 것이 아닌지가 우려됩니다.

      모든 것이 데이터베이스의 개인적인 표현이라면,
      과연 그것은 개인의 새로이 조합된 창조물인가 아니면,
      아니면 단지 지루한 되풀이 밖에 되지 않는 것인가?

      만약 그것이 새로운 창조물이라면,
      데이터베이스를 인간이 이용하는 것인가?
      인간을 데이터베이스가 이용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인류라는 데이터베이스와
      인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기는 한 것일까?
      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면,
      왜 하필 인간으로 태어나면
      인간의 데이터베이스에 연결해야 할까?
      악마나 사탄의 데이터베이스도 있을터.

      개인적인 생각으론 우리 개개인이 인류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 데이터베이스는 우주의 데이터베이스이지, 인류의 데이터 베이스는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 이유를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는 모든 것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라는 틀안에서만 연결된 것이 아니지요.

      왜 이것을, 별 중요해하지도 않는 것을 문제삼는 이유는,
      인간들의 윤리나 도덕에 의해서 우리의 생각이나 창조성이
      매몰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때문입니다.

      인류의 데이터베이스의 내용들이 옛날 성현들의 철학과 종교, 그리고 지혜라면
      그것을 거부하고 새로이 선택하는 자는
      극단적으로 가정하자면, 그 자는 연쇄 살인마라고 가정 한다면
      자신만의 경험을 굳게 믿고, 데이터베이스의 접속을 끊을 채,
      자신의 불우했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헛된 판단을 한 것일까요?

      만약 그 사람도 마찬가지로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인류라는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되어 있다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 사람은
      그 데이터 베이스에 연결될 자격조차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살인마는 연결되어있는 존재가 아니라 단절된 존재라고,
      그 살인마가 아니라 우리들이 결론을 내리게 되는 거 아닐까요?
      그렇다면, 살인마는 단절되있다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명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비유 자체를 살인마에 드는 것이,
      일말의 거부감 또한 살인마를 옹호하고 있다는 느낌이
      글을 쓰는 저마저도 느껴집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까닭은 우리들이 윤리와 도덕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기 떄문이지요.

      저는 인류라는, 인간이라는 가치를 옹호하지만,
      윤리나 도덕의 틀안에서 제 생각이 매몰되는 것도
      상당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윤리나 도덕의 틀에서 벗어나서 생각하게 된다면,
      살인마의 삶의 목적과 성인의 삶의 목적 둘 중
      우선순위를 정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저는 성인의 삶을 선택하는 제 선택이 있습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인류라는
      강을 따라 흘러간다면,
      즐거운 여행이 될수도 있겠지만,
      인류라는 강을 유유히 따라만간다면,
      우리들은 무엇인지요?
      인류라는 강을 즐기며 흘러가는 존재인가요?
      아니면 그냥 강인지요?
      인류라는 강을 벗어나
      산으로 간다면 고난의 길이 되겠지만,
      새로운 무엇이 되겠지요.
      비로소 우리가 우리가 되는것입니다.

      윤리와 도덕 너머의 세계에서,
      선악의 저편에서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야,
      세상이 좀더 새롭고, 창조적이 되지 않을까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조와 발전을 이룩해야 하지 않을까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우리들은 We라는 테두리안에 존재한다면,
      인간은 사실 인간이 아니게 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가 되고 우주입니다.
      인류가 아니고 우주입니다.

      ps. 갑자기 살인마의 극단적 비유를 든 이유는 요즘에 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2/24 14:19 | PERMALINK | EDIT/DEL

        Willezurmacht님, 제 포스트보다 훨씬 긴 댓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제 부족한 포스트를 넘치도록 채울 수 있는 멋진 반론을 제기해 주셨구요.

        제가 제 생각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Willezurmacht님의 댓글을 만나게 된 기쁨이 매우 큽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연결은 확률적 성격을 띠고 있구요. 그 확률은 관찰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마음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연결은 천차만별의 양상을 보이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인류라는 강을 따라 흘러갈 때 마음이 얼마나 유연하게 흐를 수 있는가에 따라 새로운 무엇이 될 수도 있고 지루한 존재로 머무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생활 속에서 수시로 연결과 단절을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동성 속에서 내 마음이 어떤 상태를 지향하는가가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인간이 연결과 단절을 반복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인 동시에 곧 우주임을 의미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개인이 의식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됨과 동시에 거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개인의 의식 속에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 아직 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생각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인데 Willezurmacht님의 댓글이 빈곤한 제 사유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켜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화창한 주말에 예기치 않게 받은 귀중한 선물이었습니다. ^^

      • BlogIcon egoing | 2008/02/26 09:58 | PERMALINK | EDIT/DEL

        사회란 인간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지만, 이 사회라는 녀석은 개별적인 인간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자아라고 생각합니다. 선과 악, 열정과 게으름과 같은 가치판단을 포함하고 있는 언어들은 사회의 필요에 의한 구분일 뿐, 우주의 어떠한 현상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구요. 인간에 의해서 규정되는 선과악의 구분은 초월적인 존재의 입장에서는 우주의 일상적인 현상의 단편에 불과하다고 생각해봤습니다.또 우리가 말하는 열정이라는 것도, 사회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구성원들의 행동양식을 규정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인간이 평생에 걸쳐 사용하는 에너지의 총량은 열정적인 사람과 열정적이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써 선과 악도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인류의 구성원으로써, 인류를 규정하는 여러가지 전제(도덕, 과학, 종교 등등)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레이어를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자신의 존재의 독특함을 지키고,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죽인 시인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인간을 자유사색가라고 표현하더군요.

        앞선 성취에 약간의 창의를 보태 광활한 네트워크로 돌려보내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유한성을 영속성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분의 귀한 토론 구경 잘했습니다.
        좀 두서가 없는데 기회가 되면 포스팅해봐야겠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2/26 21:37 | PERMALINK | EDIT/DEL

        인간이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존재의 독특함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성취에 창의를 보태 광활한 네트워크로 돌려보냄으로 인간의 유한성을 영속성으로 승화시킨다....

        egoing님, 제게 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 흠흠 | 2008/02/25 09: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가볍게 쓴 댓글에 너무 과찬을 해주셨네요. 저는 주인장님의 블로그를 즐겨찾기 해놓고 자주 들락날락 하는 사람입니다. 따로 블로그는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인장의 여러 분야에 대한 깊은 사고와 지식에 늘 감탄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대화나 토론의 장도 좋구요. 인터넷의 궁극적 역할이 블로그같은것 아닐까 하고 요즘 생각도 합니다. 계속 좋은 글들 많이 올려주세요 ^^

      • BlogIcon buckshot | 2008/02/25 19:35 | PERMALINK | EDIT/DEL

        제 블로그를 즐겨찾기 해놓으시다니.. 감격입니다..

        완성도 낮은 제 글을 좋게 보아 주셔서 감사하구요.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블로그를 통한 소통의 매력은 점점 깊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

    • BlogIcon 쉐아르 | 2008/02/27 02:2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어려운 ^^ 글이라 댓글을 다는데 좀 오래걸렸습니다. 우선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댓글을 통한 귀한 토론을 보니까 저도 그 논의에 동참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군요.

      제가 전에 올렸던 '시크릿에 대한 비판' 포스팅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인간 사이의 관계를 양자역학과 연관시키는 것에 약간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진동의 원리가 있고, 비슷한 현상이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파동에서도 발견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상이 비슷해서이지 같은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인간 사이의 교류를 뇌파간의 상호작용이라는 '물리적'인 것으로 이해를 하려는 것이 지나친 비약 아닐까요? 한가지를 들어 다른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둘이 결국 같은 것이다'는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논의를 제쳐둔다면 인류 전체의 데이타베이스에 개인이 접속한다는 생각은 참 탁월한 통찰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배우고 습득하는 모든 것이 인류전체가 쌓아놓은 지적재산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그런 큰 흐름을 깨닫고 고마워할 줄 아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그 현상을 '물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개인적으로 반대합니다만... ^^)

      아무래도 제 가치관과 세계관이 신을 중심으로 한 절대선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위에서 여러분이 말씀하신 해석과는 다른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겠지요 ^^

      • BlogIcon buckshot | 2008/02/27 23:34 | PERMALINK | EDIT/DEL

        인간 사이의 교류를 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는 쉐아르님의 말씀.. 날카로운 반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도 마음 속으로 그 부분을 인지하면서 포스팅을 올렸거든요.. 아직 이 주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가설 기반으로 사고를 하고 있는터라 많이 부족합니다. 쉐아르님의 반박이 제 사고의 깊이를 키워주고 계십니다. 넘 감사해요~ ^^

      • BlogIcon 대흠 | 2008/09/04 18:59 | PERMALINK | EDIT/DEL

        이것도 가설의 하나이겠지만... 인간이 하는 모든 사고나 말은 가설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한계죠.

      • BlogIcon buckshot | 2008/09/04 23:05 | PERMALINK | EDIT/DEL

        예, 대흠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인간의 사고가 모든 영역을 포괄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설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계가 분명히 있는 것이고 그 한계를 즐길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 BlogIcon 대흠 | 2008/09/04 19: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만만치 않은 포스팅으로 왕성한 블로그 활동하시는 벅샷님에 찬사를 보냅니다. ^^
      데이빗 호킨스 박사의 의식혁명은 모 기수련 단체에서 수련할 때 읽은 적이 있는데 제대로 읽었는지 다시 보니 새롭네요. 이 포스트와 댓글의 관심도를 볼 때 아날로그(영성)와 디지털(인터넷/기술)의 양극 사이에 교류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멀더란 분의 블로그에 소개된 데이빗 호킨스 박사 관련 글을 링크합니다.
      http://www.occultist.co.kr/tt/occult/116

      • BlogIcon buckshot | 2008/09/04 23:12 | PERMALINK | EDIT/DEL

        대흠님, 과찬이십니다.. 아직 갈 길이 먼 블로그입니다..

        좋은 글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식 수준이라는 측면에서 아직 너무나 낮은 단계에 있는 저이지만 아주 극미한 수준의 발전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식 수준의 절대 높낮이보다는 의식 수준이 계속 상승 패턴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에 크게 만족하고 싶습니다. 귀한 댓글 주시고 좋은 글 소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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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1 - 반야심경과 현대물리학의 만남 :: 2007/05/25 00:01



    1963년에 신경세포의 흥분과 억제 이온 메커니즘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존 에클리스 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뇌는 마음 속에 존재하는 일련의 에너지 패턴을 받아들이는 수신기에 지나지 않고, 이 에너지 패턴은 의식이 생각의 형태로 표현되는 것처럼 존재한다"

    발레리 헌트는 '무한한 마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육체라는 것을 더 이상 유기적인 조직체나 세포 조직으로 볼 수 없다.  건강한 몸은 일종의 흐름을 갖는, 상호작용하는 전자역학적 에너지 장이다.  생명에 있어서는 움직이는 것이 움직이지 않는 것 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다.  흐름을 유지한다는 것은 본래 좋은 것이다.  반면 흐름을 방해하는 것은 유해한 결과를 가져온다."

    웨인 다이어는 '마음의 습관'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여기에 입증할 수 있는 다섯가지 단순화된 명제가 있다.  1) 만물은 진동한다.  모든 것은 움직인다.   2) 더 빠른 진동은 마음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3) 더 느린 진동은 문제 많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한다.   4) 에너지 장의 증가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당신의 선택에 따라 제거할 수 있다.   5) 당신은 진동 주파수의 증가를 가능케 하는 요소들을 당신의 삶 속에 들여 놓을 수 있다."

    에스더 힉스는 '마법의 열쇠'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진동적 존재이다.  누군가가 당신을 바라볼 때, 그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당신을 보며, 귀로 당신의 말을 듣고 있지만, 당신은 눈으로 보여지거나 귀로 들릴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단호한 방식을 통해서 그들에게, 그리고 우주에게 당신을 드러내고 있다.  당신은 진동적인 송신기이며, 당신은 매 순간마다 당신의 존재 신호를 우주에 방송하고 있다."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주파수..  에너지 장...  송신과 수신..  우주..  연결...
    최근 독서를 통해 새롭게 얻은 나의 키워드들이다. 

    반야심경이 현대 물리학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많이 갖고 있는데 위 인물들은 반야심경과 현대 물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결시키려는 작업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



    마음의 습관
    웨인 W. 다이어 지음, 유영일 옮김/이레

    당신의 모든 소망을 실현시켜 줄 마법의 열쇠
    에스더 & 제리 힉스 지음, 장연재 옮김/샤우드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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