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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 2017/11/15 00:05

호주 시드니에 갔다. 2시간 시차다.

1시간의 시차였다면 거의 무시할 수도 있는 수준이겠으나 2시간의 시차니까 살짝 의식이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선 오전 8시인데 호주에선 오전 6시다.  한국이었다면 하루를 시작하고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간 시점인데 반해 호주에선 아직 하루가 시작되지 않은 시점이다. 내게 있어선..

한국에선 오후 1시인데 호주에선 오전 11시이다. 느낌이 완전 다르다. ㅋㅋ

단 2시간의 시차 만으로도 이렇게 느낌이 달라지고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서 색다른 결이 만들어진다는 게 새삼 흥미로워진다.

시각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면서 얻어지는 변곡감이 꼭 국경을 넘어선 이동 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닐 게다.

시각에 대한 정의는 시간 속을 살아가는 누구나에게 열려 있는 놀이의 대상일 게다.

내가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가, 그 지점에 부여하는 時刻(시각)은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게 전부가 아니라, 각 개인들이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의도로 어떤 의미를 새겨 넣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의 양태를 보이게 되는 것 아닐까.

時刻(시각)은 때를 새기는 행위이다.
시각은 내가 새겨내는, 내가 생성하는 시간 정보다.

시드니에서 경험한 2시간의 시차.
거기서 파생될 수 있는 수많은 변주의 기회.
그걸 보았다. 내가 스스로 나를 위한 때를 새길 수 있음을 배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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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 :: 2017/07/19 00:09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
다장쥔궈 지음, 오수현 옮김/비즈니스북스


취약하면 상처가 발생할 확률이 올라간다.
취약하다는 건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영접할 준비가 잘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격에 저항하지 않고 영접 모드로 응대하는 건, 공격에 의해 취약해지는 지점을 자신의 정체성과 연관짓기(?) 떄문인데..

정체성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어서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어도 그 정체성과 연결될 수 있는 취약 지점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취약한 영역이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어떤 태도를 보이냐인데..

상처를 받는다는 건
취약한 지점을 다양한 양태로 해석하지 않고
본래 주어진(?) 속성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하는 올드한 태도를 취한다는 얘기.

그렇게 올드하다면
어떤 공격도 올드함을 공격하기에 충분한 강도를 갖게 되고
올드하게 정의된 취약 지점은 언제나 공격을 영접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태에 놓이게 된다.

취약함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다.
취약함은 360도 관점에서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하나의 취약함은 수만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므로
취약을 어떻게 정의하고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어떤 스탠스로 임할 것인가에 대한 작전이 잘 세워진다면
상처받기에 관한 한 새로운 국면이 열리게 된다.  ㅎㅎ

취약함을 올드하게 정의하면 취약 상태를 강화시켜 공격 영접모드로 진입하는 것이고
취약함을 프레쉬하게 정의하면 취약함과 견고함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신 국면으로의 진입이 수월해지는 것이고.

결국 취약함은 걱정의 대상도, 불안의 동력도 아니고
그저 해석 놀이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모두가 소설가이다. 자신의 취약함을 자신 만의 신선한 플롯으로 구성해야 하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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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있는 무기력 :: 2016/11/07 00:07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문학동네

단편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양희.
첨에 읽었을 땐 양희라는 사람은 왜 이리 삶에 무기력한 태도로 초지일관하는가?란 질문이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내려 놓은 듯한, 삶에 아무런 의욕도 바람도 갖고 있지 않은 무미건조한 시선.
저렇게 산다는 건 도대체 뭘까란 의문이 지속되면서 소설을 읽었다.

다 읽고 난 후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양희라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유니크한 태도가 계속 기억에 남는다.

왜 기억에 남는 것일까.

왜 소설 속 그 사람에 주목하게 되는 걸까.

가공의 인물일 뿐인데.

다시 한 번 소설을 읽는다.

앞으로도 종종 이 소설을 또 읽을 것 같은 예감.

양희의 초연한 듯한 시선 속에서, 무기력한 몸짓을 보면서
난 자신에게 되묻게 된다.
그럼 양희처럼 하는 것 말고 삶에 대한 태도로 더 좋은 게 있기는 한걸까?

대놓고 무기력의 포지션을 취해버리니까 그게 멋져 보이는 것 같다.
그건 이미 무기력이 아닌 상태.
힘있게 무기력의 스탠스를 취하는 것.
나약함을 인정할 때 강함이 배어나오는 역설.

게다가 그렇게 무기력을 연기하는(?) 소설 속 인물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가 힘을 얻기까지 한다면.
그건 무기력의 힘.

기력과 무기력의 경계는 모호한 것이고
그 경계선에서 끊임없이 기력과 무기력을 오가는 동적 평형감.

소설에서 느껴지는 매력.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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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 문예 :: 2016/10/31 00:01

아이패드로 창작과 비평을 읽는다.
아이패드로 문학과 동네를 읽는다.

종이책을 읽는 것과
e북으로 읽는 것 사이의 차이

문예지를 e북으로 읽는 것이 주는 경험
아이패드로 문예지를 읽는 흐름..




한동안 아이패드로 화려한 비주얼을 펼쳐내는 매거진을 주로 읽었다.
그렇게 경험이 쌓이다 보니 아이패드를 비주얼 매거진과 동격으로 놓기에 이르렀다.
내 손과 눈이 그렇게 경험을 정의하니까 더 이상 그 틀 밖으로 나오기 힘들었다.
그래서 눈과 손이 짜놓은 프레임 속에서 아이패드를 오랫동안 소비했다.
의당 아이패드는 비주얼 리더기였고, 비주얼이 아닌 것에 대해선 주의력을 소진시키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름은 바뀐다.
어느 날 아이패드를 다른 결로 다루고 싶어졌다.

아이패드로 창작과 비평을 읽는다.
아이패드로 문학과 동네를 읽는다.

아주 오랜만에 문예지를 아이패드로 열어보니 느낌이 새삼스럽다.
그야말로 아이패드는 문예지 리더기로 제격이란 내 안의 외침.

넘기지 않고 오랫동안 한 페이지 위에서 머무르는 시선.
한 페이지도 아닌 한 문장 위에 고정된 호흡.
그렇게 오랜 시간이 경과되는 태블릿 디바이스 상의 한 화면.
정지화면으로서의 태블릿.

난 그런 태블릿을 원했던 것 같다. 휙휙 넘기지 않는, 화려하지 않은,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래서 안정감이 느껴지는, 그런 안정감 속에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태블릿 디바이스는 내게 사색의 도구이고 싶었던 듯..

그래서 나는 아이패드로 문예지를 읽는다.
읽고 나서 읽고 싶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역시 난 생각하고 움직이기 보단, 움직이고 난 후에 생각을 하는 스타일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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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 2016/10/12 00:02

고무보트를 타고 상어 잡는 법
모르텐 스트뢰크스네스 지음, 배명자 옮김/북라이프


이 책의 첫 문장이 대단히 흥미롭다.

바다에 최초의 원시 생물이 생겨난 뒤로 족히 35억년이 흐른 어느 7월의 토요일 늦은 저녁,..





그렇다.
오늘은 그냥 오늘이 아니다.
과거의 어느 날로부터 **의 시간이 흐른 그런 날이다.

시간 좌표 상의 한 점.
그 점에 위치한다는 것.

시간의 흐름 속을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을 수식할 수 있는 문장은 무한대가 될 것이다.

지금은 1392년 조선 건국으로부터 624년이 지난 10월의 어느 수요일 새벽이다.
이 날은 1392년으로부터 어떻게 흘러 흘러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나는 1392년엔 어떤 존재였고, 지금까지 어떤 시간의 흐름을 살아왔을까.
오늘은 624년 전의 어떤 변수의 영향을 받고 있을까. 또 오늘은 624년 전의 어느 상황을 투영하고 있을까. 오늘이 624년 전의 어느 상황에 영향을 주고 있을까.

오늘이 얼마나 많은 수식어로 규정될수 있는지 뜬금없이 인식하게 되는 지금 이 순간.
오늘의 의미가, 오늘에 이르게 했던 과거 시간의 흐름이, 오늘로부터 시작될 미래 시간의 흐름이..

오늘이, 지금이, 시간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지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걸 눈치채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이 감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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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서 넘어지다. :: 2016/07/13 00:03

공용 자전거를 즐겨 타다가
결국 자전거를 구입해서 타게 되었다.

그런데, 비가 올지도 모르는 날에 자전거를 타려고 하니 개인용 자전거를 타긴 부담이 되어서 공용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비가 오면 가까운 자전거 스테이션에 놓아둘 생각을 하고 공용 자전거를 타려고 하는데..

오랜 만에 타는 공용 자전거다 보니 몸에 익숙하지가 않았다.  타고 가다가 살짝 가파른 길을 만났는데 너무 방심을 했는지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땅으로 넘어지면서 왼쪽 손으로 땅바닥을 받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팔목에 무리가 온 듯 하다. 일어서 보니 다른 곳은 문제가 없는데 왼쪽 팔목이 많이 아프다.

이젠 예전과 같은 자유로운 왼쪽 손놀림이 어려워졌다. 조금만 팔을 흔들거나 비틀어도 통증이 전해진다.

예전엔 당연했던 왼손 놀림이었는데.
불편해진 지금을 아쉬워하기 보단
편했던(?) 예전이 감미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불편한 지금을 당연시 하게 된다.
지금의 불편함이 당연하다면 이 손이 낫게 되면 나는 엄청난 행복감을 누리게 되겠다.

행복이란 그런 것 아닐까.
지금을 어떻게 볼 것인가. 단지 그거 하나로 귀결되는 거 아닐까.

지금을 최상의 수준으로 정의하는 순간
지금보다 낮아져도 그리 나쁘지 않고
지금보다 좋아지기라도 하면 행복감은 고조될 것이다.

자전거에서 넘어진 날.
내겐 나만의 행복감이 시작된 날로 기억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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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 :: 2015/07/27 00:07

인생에 가장 중요한 7인을 만나라
리웨이원 지음, 허유영 옮김/비즈니스북스


이 책에서 인상적인 숫자를 발견했다.

721
하루 중 70퍼센트는 그날 해야 하는 일에 쓰고
나머지 20퍼센트와 10퍼센트는 다른 일을 하는데 쓴다.



누구에게나 시간이 동일한 듯, 동등하게 주어지는 듯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

시간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배분하고 활용하는지에 따라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누구나 각자의 스타일이 있으니 자신의 취향에 맞게 721로 하든 532로 하든
시간을 몇 가지 덩어리로 나눠서 갖고 노는 건 상당한 의미가 있을 듯 싶다.

70퍼센트는 현재를 살아가고
20퍼센트는 미래를 계획하고
10퍼센트는 과거를 재구성하고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현재,과거,미래를 모두 보듬으면서 갈 수도 있지 않을까? :)

시간은 정의하기 나름이라는 것.
어떤 식으로든 시간에 나만의 색깔을 담아서 흘러가게 한다면
시간은 어떤 식으로든 나의 플레이에 반응을 할 것이고
나는 그런 반응을 읽으면서 또 다른 나만의 색채를 더할 것이고
이렇게 나와 시간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내는 뫼비우스의 띠는 매우 아름다울 듯 하다.

721
이렇게 단순한 숫자가
나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게 매우 흐뭇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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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붙잡기 :: 2015/02/13 00:03

나와 마주서는 용기
로버트 스티븐 캐플런 지음, 이은경 옮김/비즈니스북스


이 책 중에서
버려지는 시간들을 헤아려 보기란 대목에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항상 흘러간다.
그래서 시간 앞에선 어쩔 수 없이 무력해진다.
시간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겐 없다.

하지만 시간을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본다면,
그런 착각 속에서 시간과 마주선 나 자신을 대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시간을 붙잡는다는 건 흘러가는 시간을 나름의 단위로 끊어서 대하는 것이다.
1년이 흐른 시점에서 지난 1년을 돌이켜보는 것.
1개월이 흐른 시점에서 지난 1개월을 돌아보는 것.
1일이 경과한 시점에서 지난 하루에 시선을 보내주는 것.

내 자신이 스스로 간절한 마음을 품고
지나간 시간의 단위를 치열하게 돌아본 적이 과연 있었던가?

시간은 흘러가기만 하진 않는다.
충분히 붙잡힐 수 있는 대상이다.

붙잡으려는 마음만 존재하면 된다.

이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일 수도 있고
새로운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여튼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시선을 보내는 행위이고
그 시선을 통해 시간은 내 안에서 새롭게 정의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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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감 :: 2014/05/26 00:06

TED의 어떤 동영상 강연에서 양치질을 할 때 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는 황당한 얘길 들은 적 있다. 김중혁의 '상황과 비율'이란 소설에선 비닐봉지를 터뜨릴 때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등장한다.

쾌감엔 보편적 쾌감과 개인적 쾌감이 존재하는 것 같다. 보편적 쾌감의 경우, 굳이 이 포스트에서 언급할 필요도 없이 자명하게 이해가 되겠으나,  개인적 쾌감은 그야말로 개인별 편차가 극심하게 날 것으로 보인다.

나의 경우엔, 블로깅을 할 때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블로깅을 즐기고, 블로깅을 즐기다 보니 쾌감을 이끌어내는 경험을 들여다 보게 된다. 쾌감의 메커니즘에 대해 돌이켜 보는 혜택도 얻게 된다. 단순한 소모적 쾌감과 구분되는 쾌감이 있다. 

성장의 쾌감. 

나의 모자람을 인지하면서 느끼게 되는 쾌감. 성장은 '잘난 나'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못난 나'를 인지하는 과정인 것 같다.

나의 모자람을 하나 둘 알아가는 즐거움.
잘난 내가 되지 못할 때 불안해지는 이 사회의 메커니즘과 선을 긋는 쾌감.

모두가 이 순간 쾌감을 추구하고 그것을 얻어간다. 모두가 저마다의 쾌감을 무의식적으로 정의하고 그 프레임 속에서 일상을 고착화시킨다. 블로깅은 고착화된 일상이다.  그런데, 고착화된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상이라서 고착화되어도 경화의 이슈가 그닥 크지 않다.

블로깅의 쾌감. 만만치 않은 쾌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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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과거이다. :: 2013/08/19 00:09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영화,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어느 결정적 순간에 변화를 가하고 그 변화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종종 볼 수 있다. 참 현실성이 떨어지는 설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참 매력적 환상이 아닐 수 없다. 결코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되는 지점으로 돌아가서 그 곳의 결을 바꾼다니 말이다.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또한,
과거로 돌아가 과거 상황을 변형시키는 기적과도 같은 행위를
현실적인 방법으로 소화해 보면 얼마나 신선하고 재미있을까?

음..
이렇게 가정을 해보자.
현재를 과거(A)라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미래의 어느 시점을 현재(B)라고 설정해 보자. 그리고 A 시점에서 갈림길을 맞이하게 될 때, 그것이 B 시점의 내 모습을 일정 부분 형성하게 될 것임을 잘 인지하고 A 시점에서의 내 행동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으로 이끌어 보자. 현재를 살아가면서 미래로부터 과거를 찾아온 시간여행자의 태도를 습득해 보자.  

이건 단순한 가정이 아니다. 어쩌면 이게 보다 유효한 현실인지도 모른다. 현재에 모든 의미가 숨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를 그냥 흘러가는 가벼운 시간 정도로 치부하고 그것을 어리버리 흘려 보내는 모습으로 살아가다 보면 현재에 부여한 의미의 희박함으로 인해 결국 시간의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는 안타까운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현재란 단어에는 수만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과거'이다. 현재는 과거이다. 현재를 과거로 규정하는 순간, 나는 현재라는 급류 속을 휘말리며 살아가는 무기력한 로봇이 아닌 미래의 어느 순간에서 괴력을 발휘하며 과거로 사뿐 내려 앉은 시간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현재를 과거로 규정한다는 것은 미래 어느 시점의 나의 모습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내가 경험해 온 시간의 궤적을 통찰하면서 향후의 내 모습을 프로젝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를 과거로 정의하는 순간, 나는 전혀 다른 맥락 속을 살아가는 존재로 심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여행이란,
'현재'를 얼마나 의미 있게 바라보고 '현재'에 어느 정도까지의 기적을 부여할 수 있는가에 의해 경험의 깊이가 좌우되는 놀이인 것 같다. '현재'를 다루는 능력이 시간여행의 양상을 정의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세상은 나눠지는 것이겠고.

현재를 과거로 간주하고 미래로부터의 과거 여행을 즐겨보자. 이렇게 설레는 여행이 또 어디 있을까? 이런 여행을 수시로 즐길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를 그저 화살처럼 빠르게 질주하는 시간의 흐름 정도로 간주하고 현재를 대하는 무기력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얼마나 서글픈 것일까?

현재는 과거이다.
미래는 현재이다.
그리고 나는 미래로부터 과거로 훅 날아온 시간여행자이다.
이건 상상도 설정도 아닌 마법과도 같은 '사실' 그 자체이다. ^^



PS. 관련 포스트
현재는 행복이다.
시간 속의 나
역주행을 통한 시간놀이
쓰기, 잊기, 읽기,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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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이현석 | 2013/08/19 01: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현재를 살아가면서 미래로부터 과거를 찾아온 시간여행자의 태도. 미래의 자서전이나 미래의 이력서를 오늘 쓰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 볼 수 있겠지요? 예전에 생각은 해봤지만 실천은 못했었는데, buckshot님 덕분에 다시 실천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8/19 09:37 | PERMALINK | EDIT/DEL

      기억 뿐만 아니라 시간도 끊임없는 편집의 대상인 것 같습니다. 기억편집, 시간편집은 인간의 평생 놀이감인 것 같아요. ^^

  • BlogIcon 아크몬드 | 2013/08/19 09: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최근 많네요. 1,2년 전만 하더라도 매사에 시간이 아까워 발을 동동 구르고 머리속과 뱃속을 터질듯이 채우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요즘은 또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시간을 아깝게 날려 보낼 때가 많은데요, 이러한 시간 소비의 균형을 맞추는 마음가짐에 대해 한번 언급해 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8/19 09:52 | PERMALINK | EDIT/DEL

      일상 속 시간, 일상을 벗어난 시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균형점을 지속적으로 튜닝해나가는 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 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고 양 쪽의 균형이 잘 잡힐 수도 있고 다양한 양태를 보이게 될 것 같은데요.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시간은 의미있게 흘러가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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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행복이다. :: 2013/03/01 00:01

인생의 끝에서 다시 만난 것들
레지너 브릿 지음, 문수민 옮김/비즈니스북스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 중의 하나는 '행복'이다.

행복을 저 멀리 희미하게 존재하는 환상으로 뿌옇게 정의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끊임없이 비어 있는 것을 정의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한 헛된 몸짓을 지속하는 것은 '뇌'의 장난에 놀아나는 것이다. 지금의 의미에 대해서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은 단지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한 순간이 아니다.  지금은 과거의 모든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 모든 시간이 총체적으로 집약되어 표출되는 섬광과도 같은 영원이다. 나의 온 인생이 고도로 압축된 현재가 지금 내 앞에 있는데 그런 현재를 직시하지 않고 도대체 무엇을 바라본단 말인가?

"나는 지금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은가?"라고 질문하지 않고
"나는 지금 어떤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즉,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떤 행복으로 얼마나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란 얘기다. 누굴 칭찬할 때 구체적으로 칭찬해야 칭찬의 진정성이 살아나듯, 행복도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행복의 진정성이 생성된다. 나의 현실을 어떤 행복으로 실감나게 정의할 수 있는가?

행복은 일확천금과도 같은 복권 당첨이거나 지루한 마라톤을 필사적으로 펼친 끝에 받는 포상이 아니다. 행복은 미래 어느 순간을 기약하고 언젠가 도래할 지도 모를 불확실한 혜택이 아닌 현재의 나를 긍정하고 작동시키는데 필요한 일상의 에너지이다.

건강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니까 건강한 것이다.
성공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니까 성공한 것이다.

먼저 정할 것은 나만의 행복 현재의 모습이다.
그걸 정의하면 나만의 행복을 중심으로 나의 모든 일상이 '나만의 행복' 체계로 재구성된다.

행복에 관한 그 동안의 흐름을 바꾸는 순간
행복 현재의 신세계가 발현된다. ^^



PS. 관련 포스트
나는 Wendy님의 팬이다.
행복의 의식
나만의 핵심가치
행복, 그리고 졸업
행복, 내 마음의 초상화
정보의 분열, 행복과 욕심의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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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0:48 | DEL

    I have read so many Read & Lead - concerning the blogger lovers except this post is genuinely a good post, keep it up.

  • JamesMoon | 2013/04/07 08:18 | PERMALINK | EDIT/DEL | REPLY

    현재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4/07 09:42 | PERMALINK | EDIT/DEL

      "현재를 알아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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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 :: 2012/11/14 00:04

'접수'라는 개념은 직장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에서 주인의식을 강렬하게 견지하긴 어렵다. 하지만 누가 시킨 일이라도 그 일에 나의 혼을 불어넣으면 그 일은 어느새 내가 접수한, 내 주인의식 기반으로 작동하는 일이 된다.

'
누가 시킨 일'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일'로 변주한다는 것은 자신을 경영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자신을 특정 기업체의 부속품으로 기능하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사고/행동의 주체로 정의하고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담아낸 뭔가를 산출한다는 것.

거대한 기업경영의 장 속에서 자신을 경영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기업은 결코 한 개인의 성장을 걱정하고 케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기업 특유의 생존 본능에 입각해서 기업의 영속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기업 영속성을 제고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밖에 없다. 기업의 영속성을 지키기 위해 개인은 자신의 영속성을 소비하는 것이고 그런 과정 속에서 개인경영의 존재감은 더욱 흐릿해질 수 밖에 없다.

나 자신을 단지 소모품으로만 정의하지 않고 나 자신 만을 위한 개인경영의 행보를 전개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무의식/의식적으로 소모품으로 정의되는 삶을 살아가는 한 무기력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고 뭔가를 이뤄간다기 보다는 뭔가를 향해 지쳐간다는 느낌 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한, 자본의 소모품 입지를 완전히 회피하긴 어렵다. 쩐신이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한 쩐교의 교리 체계를 온전히 거부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규정/지배하는 알고리즘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원시시대는 약육강식의 알고리즘이, 봉건시대는 주종의 알고리즘이, 현대는 자본의 알고리즘이 세상을 재단하고 통치한다. 어느 시대를 살아가더라도 개인의 입지는 별도로 마련되어지지 않고 항상 도전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시대를 직조하는 알고리즘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그 시대의 알고리즘에 철저히 유린당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있는 반면, 알고리즘을 직시하고 그것과 견줄 수 있는 개인경영의 체계를 구축하고 그것을 운용하면서 살아가는 삶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접수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이다. 남이 시킨 과제라도, 남이 주입한 개념이라도 그것을 나의 것으로 전환할 수 있는 변주 역량을 견지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실 딱히 주인이 존재하지 않는 중립성을 갖고 있다.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니 남의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고 남의 것인지 아닌지 어리버리 대하니까 나의 것이 되지 않는 것이다. 접수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것으로 접수할 수 있어야 한다. 외부로부터 나를 향해 돌진하는 수많은 것들 중에 나에게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나의 것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규정하고 재단할 수 있어야 한다.

'
접수'라는 개념은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어리버리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주인의식을 강렬하게 유지하긴 어렵다. 하지만 제아무리 어리버리한 일상이라도 그 일상에 나의 혼을 불어넣으면 그 일상은 어느새 내가 접수한, 내 주인의식 기반으로 작동하는 역동적이고 흐뭇감 가득한 일상이 된다. ^^



PS. 관련 포스트
쩐간
개인 경영 시대
웹혁, 알고리즘
로봇, 알고리즘
리더, 알고리즘
경혁, 알고리즘
경영,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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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emica | 2012/11/16 04: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따금 oo현장접수 란 말을 사용하는데 .. 제대로 정의해 주신 것 같네요 .. ^^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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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네이밍 :: 2012/08/06 00:06

네이밍의 사전적 정의는 아래와 같다.
'명명・이름을 붙이다'라는 뜻. 특히 새로운 상품의 브랜드명을 고안한다든지, 새로운 회사나 그룹 등의 명칭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CI(기업의 통합적 이미지 전략, corporate identity)나 BI(브랜드의 통합적 이미지 전략, brand identity)를 집행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작업의 하나로, 이와 같이 붙여진 회사명이나 상표 등에는 둥록에 의해 상표권이 발생한다.

살아가면서 네이밍을 할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특정 업에 종사하지 않는 이상 네이밍을 자주 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네이밍은 현재까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하는 작업이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감정에 빠지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숱하고 다양한 감정에 빠져 지내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기쁘고 슬프고 유쾌하고 우울하고 차분하고 흥분하고 평안하고 불안하고 화나고 두렵고.. 너무도 다양한 감정선들이 인간 심리선상에 존재한다.

감정을 네이밍해보면 어떨까?
무의식적으로 어떤 감정 상태에 빠져 있기 보단,
내가 처한 감정에 이름을 붙여 주고 그것과 대화를 해보면 어떨까? 

감정을 직시하고
감정을 응시하고
감정의 이름을 불러주고
감정을 정의하면,
감정에 대한 컨트롤이 시작된다.

감정에 그대로 빠져 있는 것 vs. 감정을 규정하는 것.

뭔가를 컨트롤한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건 역으로 뒤통수를 맞을 수 있는 리스크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라서 말이다.  하지만, '감정'은 컨트롤을 다각도로 시도할 필요성이 충분히 있는 녀석이다. 나는 내가 표출한 감정의 합으로 규정된다.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나의 감정을 변화시켜야 한다. 나의 감정을 네이밍하고 정의하고 그것과 대화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감정을 규정할 수 있게 된다. 컨트롤을 위한 컨트롤이 아니라 대화를 위한 컨트롤이고 나를 알기 위한 컨트롤이다. 감정을 컨트롤하면서 나를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나를 보다 더 나은 존재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앞으론 감정 네이밍 아티스트가 되어 보자.
나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감정은 '더 나은 나'와 함께 나를 찾아 온다.
감정 네이밍은 충분히 ROI가 나오는 게임인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감정의 창조
이모티콘과 감정
감정의 파도를 서핑한다
감아,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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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막.. :: 2012/07/13 00:03

뭔가를 분류한다는 것은 새로운 뭔가가 탄생하기 힘든 프레임을 만들어냄을 의미한다.
뭔가에 분류적 의미와 이름을 부여하는 순간 뭔가는 박제가 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분류는 기존의 것들에 속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새로운 것의 탄생을 저지하기 마련이다.

기존 가득한 세상에서 새로운 걸 만들려면,
기존 분류체계가 외면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예리하게 채취해야 한다.

그런데..
기존 분류체계는 기존 범주 안에서 편하게 머물게 하는 안주 도우미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범주의 탄생을 끊임없이 암시하기도 한다.

분류는 박제화 공장인 동시에 새로운 범주 생성 발전소이다.

뭔가를 분류할 때, 분류되어 있는 뭔가를 관찰할 때 분류에 내포된 2가지 상반된 속성을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박제화 되어 가는 분류 체계 속의 고정관념을 충분히 음미하면서 고정관념이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내막을 잘 이해해 주는 동시에 분류에 내포된 새로운 범주 탄생 욕망의 꿈틀거림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박제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사물이 아니다. 박제는 움직이고 싶은 욕망, 뭔가 생성해 내고 싶은 욕망을 간직한 채 제자리에 멈춰 있으면서 거대한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박제의 세월이 길면 길수록 축적된 에너지는 가히 폭발적인 수준일 것이다.  

컨텐츠는 컨테이너 속에 박제된 형태로 존재하기 보다는
컨테이너라는 '막'을 끊임없이 투과하고 유동하는 동적 평형 상태에 놓이게 되고 싶어한다.
분류체계라는 컨테이너를 딱딱한 금속 상자로 볼 것인가, 아니면 유연한 막으로 볼 것인가?

모든 것은 컨텐츠이다.
모든 것은 컨테이너이다.

우리는 컨테이너가 되어 컨텐츠를 우리 안에 담기도 하지만
우리는 컨텐츠가 되어 컨테이너 안에 담기기도 한다.

나를 어떤 컨테이너로 규정할 것인가?
나를 어떤 컨텐츠로 규정할 것인가?

'막' 컨텐츠, '막' 컨테이너.. ^^






PS. 관련 포스트
세포와 세포 사이
막, 도구, 의도, 양자
태그,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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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나, 그리고 스토리. :: 2010/12/24 00:04

세상엔 수많은 성공 스토리가 있다.  성공 스토리 속엔 성공하기 위한 비결이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 결과론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성공의 이유는 형식지로 구체화되지 않고 암묵지로 숨어 있기가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엔 수많은 성공 비결이 형식지의 형태로 난무하고 있다.

'성공'이란 결과에 억지로 끼워 맞춰진 성공 방정식만 쳐다 보다간 성공에 대한 감 자체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성공 스토리를 억지로 외면하고 자신만의 방식을 찾는 노력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는 것이다. 

아예, 성공이란 단어 자체를 나 자신만의 의미로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gap'을 먹고 살기 마련이다. 항상 욕망을 설정하고 그 욕망에 미달되는 사람들의 애타는 마음을 강타하는 상품을 유통시키고 시장을 키워간다.  현재와 이상적인 모습과의 gap에서 발생되는 tension이 자본주의와 시장을 작동시키는 원동력이다.

현재와 목표/이상 간의 갭을 인식하고 그 갭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현재 자체를 목표/이상으로 정의하고 현재에 이르기 위해 경험했던 모든 것들에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나름 감미로운 일이다.  'gap'을 설정하고 그것을 메우는 과정 속에서 일궈내는 자아 실현의 의미 못지 않게 gap 자체를 생까고 '나'의 현재를 규정하는 암묵지적인 의미들을 잘 인식하고 그 속에서 나의 현재를 나만의 성공 방정식으로 정의할 수 있는 프레임을 창출할 수 있다면 그건 더욱 보람된 것일 수도 있다.

시장이 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해 쏟아내는 겉만 번지르르한 성공 모델을 쿨하게 무시하고 나의 현재 자체를 하나의 스토리로 자신 있게 직조할 수 있다는 생각의 힘을 키워 나가야 한다. 나의 현재는 나만이 써나가는 'me' story 그 자체인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정체성은 복제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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