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에 해당되는 글 19건

종이책에 접속 :: 2016/06/13 00:03

잡지 'MONOCLE'을 읽는다.
빼곡하게 들어찬 영어 문장과 이미지.
영어로 적혀있는 헤비한 문장을 읽는 게 너무 힘들다.
그래서 이미지만 살펴 보았다. 이미지만 보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눈 앞에 보여지는 이미지 만으로 정보를 소비하려고 하니 빽
하게 채워진 텍스트 정보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에 대해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런 상상은 이미지 정보를 대하는 자세를 달라지게 한다.

보조 정보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주 정보로서의 이미지. 버젓이 존재하는 텍스트를 제끼고 이미지 만으로 정보를 소비하려고 마음을 먹으니까 이미지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이미지에 의존하려고 작정을 하니 이미지와 나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는 느낌이다.

그건 마치 이미지가 아닌 웹을 대하는 경험과도 유사한 것 같다.
종이책에 담겨진 이미지를 훑어내리듯 스킵해 나가는 게 아니라 이미지 자체에 몰입하게 되는 효과가 생겨난다. 이미지에 접속해서 이미지와의 연결을 시작한다. 이미지에 담겨진 형체들, 색깔들, 구조, 메세지를 가늠하려는 의도가 생겨난다. 이미지에 담겨진 것을 통해 이미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읽어내고 이미지에 담겨있지 않은 것을 통해 이미지가 은닉하고자 하는 것을 발굴하기도 한다.

종이책에 담겨진 이미지일 뿐인데, 오프라인 상의 정보일 뿐인데 난 그걸 마치 온라인 대하듯 하고 있다.

온라인이란 무엇인가?
통상적으로 정의되는 것 말고. 내게 있어 온라인이란 무엇인가?
연결 아니었던가?
연결은 무엇인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연결'에 관한 거라면
종이책은 더 이상 오프라인 매체는 아닌 것 같다.
종이책도 얼마든지 온라인 접속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종이책도 웹사이트이고, 종이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모바일 도상에서 수시로 소비할 수 있다면 종이책은 모바일 앱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본다면 종이책만 웹사이트/모바일앱은 아닐 것이다.

내가 사용 중인 컴퓨터를 지탱하고 있는 책상도 웹인 것이고
내가 신고 다니는 신발은 모바일앱일 것이다.

세상 만물이 웹이고, 세상의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모바일앱인 것이다.

웹은 프리퀄.
웹 이전의 세상은 그 자체가 웹이었다.
그걸 협의의 '웹'의 탄생을 통해 비로소 인지하게 되었을 뿐.

항상 이런 식이다.
뭔가 팬시하고 멋진 신세계가 펼쳐지는 듯 하지만 정작 따지고 보면 그건 전혀 새로운 게 아니고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걸 우리가 애써 외면하듯 모르고 있었을 뿐.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2003
NAME PASSWORD HOMEPAGE

크레마의 묘미, 오프라인 :: 2013/10/04 00:04

크레마는 와이파이를 켜놓으면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는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외부에서 크레마로 독서를 할 때는 와이파이를 꺼놓는 습관이 생겼다.

휴대용 디바이스를 사용하면서 와이파이를 꺼놓는다..

이거 참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폰/태블릿의 경우, 온라인 접속이 끊어지는 것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상황인데 반해 크레마는 와이파이 오프 상태가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깜박임이 심해서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는 것도 모자라서 와이파이를 꺼놓지 않으면 배터리 조기 방전의 압박까지 받는 상황에 화가 나기 보다는 그저 그런 제약 조건들을 포근하게 받아들이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게 살짝 재미가 있다.

크레마를 사용하면서 Always OFF의 미학을 배운다.

온라인에 수시로 접속하면서 나의 존재를 접속감을 통해 확인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자세를 크레마를 통해 몸에 붙이게 된다. 새로운 e북을 다운로드 받을 때에만 온라인에 접속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OFF 모드에서 차분하게 책을 감상하는 모드. 그야말로 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 할 수 있겠고, 섣불리 온라인 접속을 시도하지 않는 안정적인 심리상태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오프라인 상태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디바이스를 몸에 붙이고 살아간다.

새로운 디바이스는 그것에 내재한 DNA가 자연스럽게 디바이스 사용자의 몸과 마음에 이식되기 마련이다. 나는 크레마를 사용하면서 크레마가 갖고 있는 속성을 일상으로 초대하게 되고 그런 과정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크레마에 내재한 태도를 읽게 된다. 크레마는 나에게 접속으로부터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접속으로의 도약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나는 크레마로 책을 읽는다.  
그리고 크레마를 읽는다. ^^



PS. 관련 포스트
크레마 샤인으로 독서하기
전자책과 주의력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626
NAME PASSWORD HOMEPAGE

접근성의 객체, 빼앗기는 시간 :: 2013/01/14 00:04

웹은 접근성이란 선물을 우리에게 선사했고 스마트폰은 증폭된 접근성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근데 접근성의 주체와 객체에 대해선 사실 정해진 바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웹,스마트폰을 대할 경우, 의미 있는 뭔가에 접근하기 보단 쓰레기정보에 온통 잠식당한다. 웹, 스마트폰에 의해 증폭된 접근성의 최대 수혜자는 웹,스마트폰의 유저가 아니라 정보 자체다. 유저는 정보에 의해 무차별 접근,접속을 당하는 정보의 객체 내지는 봉에 가깝다.

소비자의 관심,주목,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 포착된 이후, 소비자의 시간은 유린,침탈의 대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경쟁자로부터 소비자의 시간을 빼앗아오기 위해서는 소비자 자신으로부터도 시간을 빼앗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전쟁이 심화되면서 전쟁터는 소비자의 시간이 되어간다. 소비자의 time share를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는가가 화두가 되는 순간, 소비자의 시간은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의 시간의 의미와 함께 경쟁자를 누르고 성장을 지속하길 염원하는 사업 욕망의 대상이 된다.

나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의 시간은 끊임없는 탈취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의 시간을 빼앗아야 사업이 영위되고 나의 시간을 빼앗아야 자본이 유통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 속을 살아가는 사람의 시간은 이미 그 사람 개인의 시간이 아닌 것이다. 끊임없이 나를 향한 접속의 시도가 도처에 분포되어 있는 상황에서 나의 시간은 그야말로 vulnerable 그 자체라고 봐야 한다. ^^

시간을 흘러가는 것,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면 이제 그 생각을 조금 바꿔보도록 하자. 시간은 빼앗기는 것이다.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은 자본이 유통되는 세상 속을 고스란히 노출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고 나의 시간은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유린되고 침탈될 수 있다.

소비자는 결국 시간을 빼앗긴다.

얼마나 많이 빼앗기는지, 얼마나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소비자는 결국 시간을 빼앗긴다. 소비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계속 뭔가에 의해 빨린다는 것이고 그런 시간 빼앗김 현상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거세질 것이다.

소비자는 결국 시간을 빼앗긴다.

뭔가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졌다고 섣불리 좋아하진 말자. 접근성의 개선은 피접근성의 증폭이라서 결국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문명의 발전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뭔가가 좋아졌다고 웃고 떠드는 와중에 뒷단에선 뭔가가 계속 새어나가는 찜찜함. 그 찜찜함의 정체는 계속 불투명의 심도를 더해가는 상황.

앞으로도 문명은 계속 진보(?)에 진보(^^)를 거듭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보이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접근성도 계속 증대될 것이다. 접근성이 좋아질수록 소비자는 접근성의 주체가 아닌 접근성의 객체로 대활약을 지속하게 될 것이고 소비자가 접근성의 봉으로 우뚝 서면 설수록 소비자의 시간은 너무도 투명하게 위험(? ^^)에 노출된 채 끊임없는 침략의 대상이 될 것이다.

소비자는 결국 시간을 빼앗긴다.



PS. 관련 포스트
real-time web의 늪
방해
접속한다는 것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461
NAME PASSWORD HOMEPAGE

접속한다는 것 :: 2012/10/19 00:09

웹을 통해 우리는 사이트에 접속을 한다.  URL이 살아 숨쉬고 있는 사이트의 경우, 우리는 언제든지 그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  우리는 웹을 통해 접속을 한다. 웹은 우리의 감각기관에 접속감을 심어 주었고 우리는 접속이 없던 시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접속이 일상화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존재하는 어떤 사이트에도 우리는 접속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접속은 웹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하고 있는 접속이란 행위는 과연 웹에만 특화된 행위일까? 

접속을 웹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웹으로부터 1차원적인 교육만 받은 것이다. 웹이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는 총체적인 메시지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접속은 세상 모든 만물, 세상 모든 개념에 적용 가능하다.  우리는 길을 지나가다가 바닥에 깔린 보도 블록에 접속을 하고, 무심코 앉은 의자에도 접속을 하며 친구와 메신저로 대화하기 위해 두드리는 컴퓨터 자판과도 접속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흡입하는 음식과도 접속을 하며 집에 가기 위해 탄 지하철의 손잡이와도 접속을 한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 싼 모든 사물들과 접속을 한다. 우리는 감정에 접속을 한다. 기쁨에 접속하기도 하며 슬픔에 접속하기도 하며 때론 두려움에 접속하며 때론 유쾌함에 접속하기도 하고 때론 답답함에 때론 속시원함에 접속한다. 우리는 감사에 접속하기도 하며 우리는 원망에 접속하기도 하며 비방에 접속하기도 하며 존경에 접속하기도 하며 공감에 접속하기도 하며 호감에 접속하기도 한다.

웹은 우리에게 '접속'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는 웹을 통해 접속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접속이 웹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란 것도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모든 것에 접속할 수 있다. 우리가 의도를 가지고 웹사이트에 접속하듯이 우리는 사물에 의도적으로 접속할 수 있고 사람에 의도적으로 접속할 수 있고 개념과 생각과 감정에도 의도적으로 접속할 수 있다.  웹은 끊임 없이 우리에게 접속에 대해 메시지를 보내고 있고 접속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우리는 웹이 전달해 주는 메시지의 단 1%도 이해를 못하고 있고 있는 실정이다. 우린 접속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



PS. 관련 포스트

접속감과 세(勢)

방해
복사기 vs. 재즈뮤지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421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1:03 | DEL

    As the YouTube video tutorials are posted at this place same like I also embed YouTube video code at my own web site Read & Lead - 접속한다는 것, since it is simple to obtain embedded code.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1:03 | DEL

    Amazing video, in fact a fastidious %title% quality, this YouTube video touched me a lot in terms of features.

NAME PASSWORD HOMEPAGE

방해 :: 2012/09/24 00:04

접속의 시대. 언제 어디서나 많은 것들에 접속할 수 있는 시대. 접속의 편의성이 놀랍도록 현신되었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많은 것들로부터 접속을 당하는 시대. 피접속의 쓰나미 역시 놀랍도록 진보하였다. 어떤 시대가 도래하든 철저한 Give & Take 법칙이 작동하게 된다.

피접속은 방해다. 수시로 방해를 받는 것은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접속인의 숙명이다. 접속할 권리와 방해받을 의무가 동전의 양면을 형성하게 되면서 "어떻게 방해에 대응할 것인가?"는 접속인의 최대 화두가 되었다. 방해는 주의력을 분산시키고 집중도를 저하시킨다. 충분히 방해를 받다 보면 하루가 짜투리 시간들의 의미 없는 모음들로 전락하기 일쑤이다. 관심이 분절화되면 관심의 대상도 분절화된다. 그건 인간이 짜투리들의 집합소가 된다는 의미이고 세상이 짜투리들이 총집합한 난지도가 되어간다는 얘기다.  

접속인은 수많은 접점들로 구성된다. 하나의 인간을 구성하는 수많은 접점들로 무수히 많은 신호들이 인입되고 그 신호들에 대항하는 체계는 갈수록 고도화되어 간다. 나를 구성하는 접점들은 방해를 초청하는 게이트이다. 방해 게이트들의 끊임없는 개폐 동작 속에서 정보는 동적 평형 흐름을 지속한다. 나는 세포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 정보들의 흐름과 그것이 창출하는 동적 평형 체계로만 규정되지 않고 방해 게이트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방해 정보들의 흐름과 그것이 창출하는 동적 평형 체계로도 규정된다.

방해를 받는 것.
히스테리의 원인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
그만큼 방해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런데.. 방해를 무엇으로 규정해야 할까?  

'방해'는 우리가 얼핏 인지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지능적인 기제이다.  방해를 받을 때 짜증만 내지 말고 방해의 의미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방해를 받는다는 것은 방해 받으면 안되는 뭔가를 내가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뭘까? 정말 중요한 것일까? 정말 급한 것일까? 정말 중요하고 급한 것이라고 해도 지금 들어온 방해 신호를 그냥 외면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방해는 나의 쓸데없는 조급함을, 나의 부질없는 관심을 일깨워주는 조언자가 혹시 아닐까? 방해 신호가 접수되었을 때 무작정 방해에 민감한 앤티 반응을 보이기 보다는 차분히 방해 신호를 되새기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하려고 애쓰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과연 내 안에서 일어나는 1차원적인 반감이 과연 정답일까?  방해에 임하는 나의 태도에 꽤 냉정해져 보면 내가 방해라고 생각했던 것들 중의 상당수는 방해가 아닌 조력자의 손길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접속한다는 것은 뭔가를 건드리는 것이고 그로 인해 그 무엇은 일종의 방해를 받게 되는 것이다. 방해를 제공한다는 것은 방해를 받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접속의 권한을 누린 만큼 피접속의 의무를 수용하게 된다. 방해에 반감을 드러내기 전에 내가 제공했던 방해와 내가 시도했던 접속의 의미부터 다시 헤아려 보자. 인생의 품질은 내가 일으킨 Give & Take의 동적 평형 체계가 얼마나 조화로운 가에 달려 있는 것 아니겠는가? 방해를 받아서 분절화된 것처럼 보이는 나의 관심이 사실은 그 방해로 인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 받은 것은 아닐지. 분절화를 가장한 대통합의 잠재성 가시화가 아닐지. ^^





PS. 관련 포스트
경계
분류, 막..
세포와 세포 사이
막, 도구, 의도, 양자
접속감과 세(勢)
극세관심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405
NAME PASSWORD HOMEPAGE

복사기 vs. 재즈뮤지션 :: 2011/12/21 00:01

예전엔 뛰어난 암기력은 곧 명석한 두뇌를 의미했다. 많은 양의 복잡한 정보를 통째로 암기하고 출력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대단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컴퓨터가 점점 인간의 생활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고, 인터넷이 인간의 일상이 되어가고, 스마트 디바이스가 인간의 삶을 리드하고 있는 상황이 되자 암기력은 그 의미와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기계가 인간의 영역 속으로 침투하면 할수록 기계는 인간의 암기 능력을 무용화(?)시켜 나간다. 이제는 전화번호를 예전처럼 달달 외우지 않아도 되고 정보를 시시콜콜 외우고 있지 않아도 검색만 하면 필요한 정보가 체계적으로 쏟아져 나온다. '암기력'이란 단어는 점점 구시대적인 느낌을 주는 고색창연함을 띠어가고 있다.  

이제는 암기능력보다는 즉흥변주 능력의 가치가 훨씬 더 돋보인다. 암기한 내용을 출력하는 것보단 다양한 정보를 엮어 즉흥변주 형태로 출력하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이제 인간의 지적 능력의 지향점은 복사기(암기능력)에서 재즈뮤지션(즉흥변주능력)으로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복사기의 가치는 여전하다. 즉흥변주의 능력이 복사능력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해도 모든 즉흥변주는 복사를 전제로 하기 마련이다. 즉흥변주 출력이 모사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한, 복사 능력은 즉흥변주가의 기본 소양일 수 밖에 없다. 단, 순발력 측면에선 예전 복사기와 최신 복사기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고 봐야 한다. 복사를 위한 복사가 아니라 즉흥변주를 위한 복사이니까. 새로운 창조를 위한 복사는 기존의 복사와는 다른 태도를 지닌다. 저장형 복사에서 접속형 복사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지점에서 즉흥변주는 시작된다.

오늘 포스트는 아래 TED 강연을 보고 느낀 소감을 적은 것이.  나중에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다시 보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것만 같아서 나중에 다시 함 꺼내서 볼 생각이다. ^^




PS. 관련 포스트
Jam Reading
튓잼, 알고리즘
재밍, 알고리즘
생성, 알고리즘
Charles Limb: Your brain on improv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91
  • BlogIcon 토댁 | 2011/12/22 23: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와우~~~^^
    먼저 본문은 댓글 달고 읽겠삼!~~~^^

    inuit님게서 2012년 지향에 대한 릴레이 바통을 덥석
    토댁에게 넘겨주신바
    토댁은 낼름 바통 받아
    다시 우리 buckshot님께로 쓩~~~(초금은 조심스럽게)
    보냅니다.!!^^

    2012년 우리 buckshot님의 지향은 뭘까요?^^
    헤헤

    • BlogIcon buckshot | 2011/12/23 20:29 | PERMALINK | EDIT/DEL

      아, 그렇지 않아도 담주 월요일 예약 포스트가 바로 2012년의 지향입니다. 저는 2009년도 2010년도 2011년도 2012년도 기정을 지향할 계획입니다. ^^

    • BlogIcon 토댁 | 2011/12/25 14:09 | PERMALINK | EDIT/DEL

      호호호!!
      빨리 월욜이 왓으면 좋겠어요^^

      건강조심하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1/12/25 16:01 | PERMALINK | EDIT/DEL

      4년 연속으로 동일한 문구를 지향점으로 삼다 보니 보시기엔 많이 지겨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

NAME PASSWORD HOMEPAGE

접속감과 세(勢) :: 2011/10/10 00:00

접속은 무엇인가에 연결되는 것이다. 접속을 통해 연결감을 느낄 수 있으려면, 무엇인가로부터 단절되어 있어야 한다. 접속은 단절을 전제할 수 밖에 없다. 접속을 통한 기쁨과 단절을 통한 기쁨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접속하고 싶어서 접속을 했는데 그 접속을 통해 기쁨이 충만하지 않다면 그건 단절의 결핍으로 인한 접속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단절이 없는 접속은 불면의 밤을 끝없이 헤매는 것과 같다. 확실한 단절이 있어야 접속감은 극대화된다. 깊은 잠과도 같은 단절이 충만할 때 접속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접속을 즐길 수 있으려면 단절의 감미로움을 맛볼 줄 알아야 한다.

손자병법 兵勢(병세)편의 말미에 아래와 같은 말이 나온다.
故善戰人之勢, 轉圓石於千之山者, 也.   고선전인지세, 여전원석어천인지산자, 세야.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사람의 싸움의 세는 마치 둥근 돌을 천 길이 되는 급경사의 산에서 굴러 내려가게 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곧 세다.

접속감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일종의 勢(세) 형성이다. 세상엔 수많은 세가 존재한다. 접속과 단절은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흘러 다니기 마련이다. 접속을 즐기면서 단절을 살짝 그리워하고 단절을 즐기면서 접속을 살짝 그리워하는 자는 접속-단절의 勢(세)를 향유하는 자이다. 접속과 단절은 결국 하나라는 것. ^^




PS. 관련 포스트
좀비, 알고리즘
real-time web의 늪
휴식감과 세(勢)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55
NAME PASSWORD HOMEPAGE

real-time web의 늪 :: 2011/09/28 00:08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51
NAME PASSWORD HOMEPAGE

기억의 소환 :: 2011/08/26 00:06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을 듣던 시공간을 소환(recall)하게 된다. 음악에 얽힌 추억은 그 추억이 약동하던 시공간과 맞닿아 있기 마련이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음악과 시공간을 매핑하는 과정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36
NAME PASSWORD HOMEPAGE

Contact Economy :: 2011/07/22 00:02

컨텐츠는 절대로 소비자를 직접 만날 수가 없다.
반드시 컨테이너를 통해서만 소비자를 만날 수가 있다.

접촉은 결코 본질적인 관계 맺기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본질보다 표피가 훨씬 더 중요한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컨테이너는 컨텐츠를 제쳐두고 소비자와 직접 Contact한다.
컨테이너는 소비자와의 Contact를 통해 컨텐츠를 통제한다.

소비자는 '컨텐츠-컨테이너-소비자'로 이어지는 밸류 체인을 통찰하지 못하기 쉽다.
소비자는 직접 Contact하는 컨테이너와 일종의 상호 교감을 형성하면서 컨테이너화 되기 때문에
컨텐츠-소비자는 본질적이면서도 표피적인 관계에 그치게 된다.

소비자와 컨테이너가 맺는 표피적이지만 강력한 Relationship은,
사실 상의 공생 관계이자 공진화 관계를 의미한다.

촉수와 촉수가 만나는 Contact Relationship.
소비자는 Contact Economy란 이름의 바다를 살아가고 있는 해면 동물인 것이다. ^^



나는 Container Economy를 살아가고 있다.

LP/CD 시대를 떠나 보내고 MP3 시대를 맞이하고 나서야
난 음악 컨텐츠보다 음악 컨테이너에 더 몰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패드란 신 컨테이너를 접하게 되면서 아이패드 친화적인 컨텐츠를 찾는 버릇이 생겼다.
아이패드에 킨들을 설치하고 예스24/알라딘 앱을 설치하면서부터 종이책보다 e북을 즐겨 찾게 되었다.

만물이 정보라서 컨텐츠는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문제는 컨텐츠를 어디에 담을 것인가이다.
컨텐츠보다 컨테이너가 더 직접적인 소비자 접점이다.

컨테이너는 비단 스마트폰, 스마트패드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페이스북/트위터는 Streamed Content들을 담는 거대한 컨테이너이다.
무심코 스마트폰/스마트패드에 터치하듯이, 무심코 페북/트위터에 접속한다.
컨테이너는 소비자의 주목을 무의식적으로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Container Economy를 살아가고 있다. ^^




PS. 관련 포스트
나는 Container Economy를 살아가고 있다.
Stream Economy가 도래하다.
페이스북 LIKE, 트위터 RT
Facebook, Storyvertizing Platform
페이스북, 지불 플랫폼
페이스북, 감염 플랫폼
페이스북의 광고 플랫폼
폐쇄 플랫폼 (페이스북)
페이스북 Like(좋아요)는 통화이다.
프로슈밍 플랫폼 = 트위터/페이스북
피드 플랫폼 (트위터/페이스북, 인간)
경험 속에 녹아 들어간 용어
페이스북이란 이름의 블랙박스
사이, 알고리즘
페플, 알고리즘
네트,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26
NAME PASSWORD HOMEPAGE

Stream Economy가 도래하다. :: 2011/07/18 00:08

파편화된 토막 토크의 범람. 끝나지 않는 이야기.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 플랫폼이다. 시작과 끝이 없다는 것. Never beginning 이어서 Never ending인 Story. 앨범 단위가 아닌 파편화된 싱글 단위로 음악을 소화하기. 파편화된 정보들의 스트리밍 기반 소비. 페북/트위터는 일종의 정보 스트리밍 서비스이다. 트위터/페북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stream 기반의 소비 시대를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정보가 streaming된다는 것은, 뮤직 앨범과 같이 완성된 스토리가 시작과 끝, 스토리라인이 거세된 체 파편화된 정보들로 해체되어 속절없이 스트리밍 미디어 상을 흘러감을 의미한다. 시작과 끝이 제거되고 스토리라인이 해체된다는 것은 저자의 자존심이 분해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저자의 context가 해체된 파편화된 정보들이 스트리밍 미디어 속에 편입되는 것. 스트리밍 기반의 음악 소비는 스트리밍 기반의 정보 소비의 예고편이었다. 이제 저자의 스토리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투입할 수 있는 소비자의 pool은 점점 엷어져 가고 있다. 저자의 스토리 전체는 소비자에게 중요하지 않다. 소비자는 자신의 관심에 부합하는 파편화된 정보들에 주목할 뿐이다.

Stream Economy가 도래했다. 시작과 끝이 없이 어디론가 속절없이 정보는 흘러만 간다. Streaming Media에 편입하기 위해선 저자는 자신의 스토리라인을 해체해야 한다. 스트리밍 뮤직 서비스에 앨범을 온전히 탑재하기 어려운 것처럼.

음악에 이어 정보도 소비자와 컨텐츠 간의 관계 양식이 소유에서 접속으로 바뀌고 있는 모습이다. 소유에서 접속으로의 관계 양식 변화와 '접속-friendly' 관점의 저자 컨텍스트 해체 현상은 매우 큰 변화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변화는 음반과 책을 수없이 사 모으던 사람들에겐 꽤 서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LP/CD로 음악을 소비하던 시절엔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 모으며 음반을 사재기 했었다. 그게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고 생각했었다. MP3가 뜨자, 음악에 대한 열정이 급속도로 식었다. 결국 난 음악 보단 음악 컨테이너에 열광했던 것이다. LP/CD는 완성된 스토리를 담는 스토리 컨테이너였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지금도 앨범 단위로 음악을 소비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파편화된 싱글 단위로 음악을 소비하고 있다. 스토리 보단 컨테이너에 더 집착했던 나였다. '컨텐츠'란 본질 보단 '컨테이너'란 표피에 집착을 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어찌 보면 컨텐츠보다 컨테이너가 더 본질적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해보게 된다. 만물은 정보다. 결국 세상 어디서나 정보는 흐른다. 그걸 어디에 담을 것인가가 관건인 것이다. MP3가 'LP/CD' 컨테이너를 무력화시켰듯이 e북도 '종이책'이란 컨테이너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무력화시킬 것이다. 나 개인적으론 예스24가 아이패드 전용 앱을 내놓고 예스24에 충분한 규모의 e북이 올라온다면 난 종이책을 LP/CD처럼 대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컨테이너는 이렇게 진화되어 가는 것인가? ^^

결국, 저자의 컨텍스트를 극대화시킨 LP/CD 컨테이너를 통해 뮤직 사업자들은 장사를 해왔던 것이고, 저자 컨텍스트가 해체되고 독자 컨텍스트의 주도성이 커지는 요즘엔 신 흐름에 부합하는 스마트폰/스마트패드와 같은 신 컨테이너가 득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 페이스북/트위터도 streamed content를 효과적으로 담는 신 컨테이너로 볼 수 있겠다. 주체적 정보 소비 시대는 모두를 '독저자(독자이면서 저자인 자)'로 만들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Everything Flows.라고 말했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 만물은 정보임이 분명해졌고
정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과 같이 행동하고 있다. Everything Streams. ^^




PS. 관련 포스트
페이스북 LIKE, 트위터 RT
Facebook, Storyvertizing Platform
페이스북, 지불 플랫폼
페이스북, 감염 플랫폼
페이스북의 광고 플랫폼
폐쇄 플랫폼 (페이스북)
페이스북 Like(좋아요)는 통화이다.
프로슈밍 플랫폼 = 트위터/페이스북
피드 플랫폼 (트위터/페이스북, 인간)
경험 속에 녹아 들어간 용어
페이스북이란 이름의 블랙박스
사이, 알고리즘
페플, 알고리즘
네트,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24
  • BlogIcon Playing | 2011/08/21 16:1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욤!
    조금 늦었나요? 하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이전 글들도 너무 잘 보고 있었는데... 과연! 이 글로 이전 글들이 어느정도 분류되어지는 거 같아요

    세상의 모든 것을 정보와 한 권의 책으로 보는 것도 그렇고,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본래 의도와 그것을 담는 물질(형식)으로 보는 것도 그렇구요~!

    P.S 하늘이 노하신 듯한 여름이 지나고 있는데 가을맞이 잘 준비하세욤!

    • BlogIcon buckshot | 2011/08/21 21:05 | PERMALINK | EDIT/DEL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시죠? ^^

      아,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 듭니다.
      역시 의미를 부여해 주시니 의미가 살아나네요. ^^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NAME PASSWORD HOMEPAGE

저장의 환상, 강연과 약연 :: 2011/07/15 00:05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휘발에 대한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세상 전체가 휘발 플랫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휘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휘발은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직접적인 연결이 끊어졌을 뿐이다. 만물은 그저 존재할 뿐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존재와 존재 사이의 연결 고리의 강도만 세졌다 약해졌다 하는 진동의 양태만 달라질 뿐이다.

휘발은 올바른 표현이 아닐 수 있다.
휘발보다는 약연(약한 연결)이 올바른 표현일 수 있다.  나의 의식적 기억이 휘발되었다고 느끼는 정보는 나와의 연결이 약해졌을 뿐 휘발된 것이 아니다. 그 정보와 나를 잇는 연결 고리가 다소 약화된 것 뿐이다. 약화된 연결고리는 어떤 기회를 통해 다시 강한 연결이 촉발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연결이다.
나와 나를 둘러 싼 외부(?)가 나와 어떤 연결을 맺고 있는지에 포커스해야 한다.  나를 대상과 이어주는 강연(강한연결)과 약연(약한연결)이 나를 형성하고 나를 만들어 간다. 나를 계발하는 것은 나의 강연과 약연을 계발하는 것이다.

휘발(?)은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온다.
휘발되었다고 서운해 할 필요가 없다. 약연은 때가 되면 강연이 되기 마련이다. 무수한 약연들은 의식 관점에선 휘발이지만 무의식 관점에선 거대한 잠복을 의미한다. 거대한 빙산과도 같은 약연 덩어리들에 적절한 자극을 가할 수 있는가가 관건일 뿐이다. 적절한 자극이 가해지면 거대한 잠복의 빙산 속에서 강연은 재생되기 시작한다.

저장에 대한 환상을 버릴 필요가 있다.
저장한다는 개념 자체에 오류가 숨어 있다. 정보는 저장이 아닌 접속의 대상이다. 저장하려고 애쓰는 것은 근원적 엔트로피에 대한 헛된 저항이다.  저장이란 무리한 개념보다는 연결 포트폴리오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약연'이란 이름의 거대한 빙산은 우아한 성장을 지속한다. 약연은 언젠가 강연이 되고 강연은 약연이 된다. 강연은 강연대로 가치가 있고 약연은 약연대로 매력이 있다. 세상 전체가 연결 플랫폼인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언제 밥 한 번 같이 먹자.
휘발, 알고리즘
거잠, 알고리즘
딜리셔스, 아카이빙, 엔트로피
휘발의 흐름, 흐름의 연결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23
  • toms store

    Tracked from toms store | 2013/06/13 11:07 | DEL

    Appreciation to my father who stated to me regarding this web site, this web site Read & Lead - 저장의 환상, 강연과 약연 is really awesome.

NAME PASSWORD HOMEPAGE

Flow, 정보의 동적평형 :: 2011/06/10 00:00

경계는 생성되고 허물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경계를 만들기만 하고 허물지 않으면 경계는 썩어간다. 끊임없는 동적평형의 중심에 경계는 위치해야만 한다.

Bookmark는 덧없는 저장이다. 매번 "다음에 봐야지"하면서 북막해 두지만 나중에 그걸 다시 꺼내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북막의 진정한 의미는 "저장해서 나중에 보기"가 아니라 "접속한 정보의 인덱싱" 정도인 것 같다.
Bookmark는 stock과 flow 간 절묘한 중간 지점에 포지셔닝하고 있다. 부질 없는 저장에 대한 욕망과 다이내믹한 접속에 대한 욕망의 중간 지점에 북막은 위치한다.

Bookmark 기능을 흐르는(flow) 정보를 저장(stock)하는데 사용할 것인가? 저장(stock)된 정보를 흐르게(flow) 하는데 사용할 것인가? 흐르는 정보를 저장하는 행위보다, 저장된 정보를 흐르게 하는 행위가 훨씬 순리적이다. 정보의 속성은 'stock'보단 'flow'에 훨씬 더 가깝다.

경쟁적 성격의 재화는 '저장'의 의미가 분명 있다. 하지만 정보는 태생이 비경쟁적이다. '저장'한다는 개념 자체가 정보의 속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정보는 flow의 속성을 갖고 있다. 정보를 억지로 저장(stock)하려고 하면 정보는 가치를 잃어간다. 가만히 있느니 차라리 단순 복제라도 하는 게 훨씬 낫다. 정보는 흐른다. 사람도 일종의 정보다. 사람이란 이름의 정보는 끊임없이 시공간 좌표 상을 흘러간다. 정보도 흐르고 사람도 흐른다. 모든 시공간은 맥락을 갖고 있다. 정보는 시공간을 흐르면서 맥락과 접속하는 것이다. 정보가 흐른다는 것은 다른 정보와 접속/연결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접속은 경계와 경계가 만나서 새로운 코어가 생성됨을 의미한다.

내가 어떤 정보에 접속한다는 건, 내가 그 정보를 관찰/해석하고 그 정보는 나에 의해 관찰/해석당하는 것이다. 관찰/해석하든, 관찰/해석당하든, 접속은 양 쪽 모두를 변이시킨다. 접속/연결은 단절된 것들의 만남이 아니다. 애초부터 나눠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분리' 환상을 깨는 작업이다. '분리'는 인간 인식/역량의 한계가 낳은 엄연한 착시효과다. ^^




PS. 관련 포스트
나, 시공간, 해체
정보 배설
만물은 고갈한다. ^^
무엇이 희소한가?
휘발의 흐름, 흐름의 연결
유동, 알고리즘
[지식] Stock vs Flow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05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1/06/11 15: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정보와 존재(Information And Being)는 앞으로도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둘 다 동일성(identity)을 바탕으로 하는 개념이고, 그 심연에는 언제나 '해석하는 주체'가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6일자 포스팅과 오묘하게 통하는 이번 내용도 어김없이 신기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1/06/11 17:59 | PERMALINK | EDIT/DEL

      예, 정보와 존재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생각을 해보고 싶습니다. 역시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군요. 넘 감사합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2 - Compilation Post :: 2008/02/22 00:02

인간을 분자/원자 수준에서 바라볼 때엔, 영속을 지향하는 유전자들을 몸에 지니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겠지만 인간을 양자 레벨에서 본다면, 양자역학의 비국소성 원리 (Non-locality principle)에 따라 어떤 대상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대상과 서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겠다.

인간 개개인의 마음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된 컴퓨터 터미널과도 같다.  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는 인류의 의식 자체이고, 우리 자신의 의식은 단지 모든 인류의 공통된 의식에 뿌리를 둔 데이터베이스의 개인적인 표현일 뿐이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실로 비범한 데가 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 데이터베이스에 참여한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이 천재적인 데이터베이스를 열람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그 데이터베이스에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곤 했다. 우리 어른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렸을 뿐이다. 어린이의 타고난 천재성은 복잡하고 깊은 데에 있지 않다. 임금님이 새 옷을 입고 있지 않다고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한 것도 어린이가 아닌가, 천재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혁명' -

사람은 누구나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태어났다. 문제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경험이 쌓이고 경험에 의한 판단이 예단으로 굳어지면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와의 접속을 끊어 버리고 그리 거대하지 않은 자신의 경험의 한계 속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습관의 지배를 받는다. 습관은 불필요한 주의력/판단을 생략하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으나 천재적인 데이터베이스와의 지속적인 접속을 저해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동시에 갖고 있기 마련이다. '내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판단하는가' 자체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습관적인 판단을 중지시키고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할 수 있는 것이다. 접속의 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하되기가 쉽다. 접속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면 나의 마음을 관찰하고 나의 사고 흐름을 관찰해야 한다. 생각의 Flow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Mobile Mind만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와의 지속적인 연결을 가능케 한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각자의 고유한 진동 주파수를 갖고 일종의 에너지 장을 형성한다. 내 마음이 긍정적인 에너지 장을 형성하여 기쁨과 행복을 나에게로 끌어들일지 아니면 부정적인 에너지 장을 형성하여 고통과 불행을 나에게로 끌어들일 것인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다. 내가 '마음'이란 단어를 내 인생의 주요 키워드 중의 하나로 선정하고 거기에 집중적으로 주파수를 맞추고 있었기에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혁명'과 웨인 다이어의 '마음의 습관', 에스더/제리 힉스의 '마법의 열쇠'를 작년에 만날 수 있었다. 어떤 대상에 주파수를 집중적으로 맞추면 분명 나는 그 대상과 어떤 형식으로든 연결이 되고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연결이 지속되고 그 강도가 강해질 수록 그 대상은 나에게 계속 끌려 온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웨인 다이어는 '마음의 습관'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여기에 입증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단순화된 명제가 있다.  1) 만물은 진동한다.  모든 것은 움직인다.   2) 더 빠른 진동은 마음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3) 더 느린 진동은 문제 많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한다.   4) 에너지 장의 증가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당신의 선택에 따라 제거할 수 있다.   5) 당신은 진동 주파수의 증가를 가능케 하는 요소들을 당신의 삶 속에 들여 놓을 수 있다."

에스더 힉스는 '마법의 열쇠'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진동적 존재이다.  누군가가 당신을 바라볼 때, 그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당신을 보며, 귀로 당신의 말을 듣고 있지만, 당신은 눈으로 보여지거나 귀로 들릴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단호한 방식을 통해서 그들에게, 그리고 우주에게 당신을 드러내고 있다.  당신은 진동적인 송신기이며, 당신은 매 순간마다 당신의 존재 신호를 우주에 방송하고 있다."

블로깅을 통해 네트워크의 바다에 내놓은 나의 글이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 다니면서 다른 글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의 변이를 거듭하다 어느 순간 다시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경험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글은 그냥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 부족한 생각을 채워주는 풍성함으로 돌아온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나의 생각이 발전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 주목을 하는 눈, 사고/판단을 하는 뇌 그리고 마음... 모두가 거대한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있는 컴퓨터 터미널인 것 같다.  네트워크에 접속된 개체가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고 상호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성장하는 모습.. 결국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연결의 감각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 가이다. 분리의 감각보다 연결의 감각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기도의 목적이 괴로움/결핍에서 벗어나기 위한 신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이 신과 접속되어 있음을 자신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것인 것처럼 말이다. 결국 연결과 기도를 통해 변하는 것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신이 아니라 바로 컴퓨터 터미널로서의 나와 기도자로서의 나인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연결된 존재는 'We'로부터 시작되는 안녕(wellness) 속에 살고 연결되지 못한 존재는 'I'로부터 시작되는 병(illness)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칼 융의 말이 다시 한 번 생각난다.  "한 사람의 삶의 질을 가늠하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은 그 사람이 무한성과 어떠한 관계를 가졌느냐에 있다." 
신형장부도가 의미하는 것처럼 에너지가 몸 속을 자유롭게 흐를 때, 마음이 '안녕'이란 에너지 장 속에 존재할 때, 인간은 건강한 상태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PS 1. 위 포스트는 아래 포스트들을 단순 짜깁기한 것이다. ^^

  •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1 - 반야심경과 현대물리학의 만남
  • [마음의 습관]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 거대한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있는 컴퓨터 터미널 - 손, 눈, 뇌, 마음
  • [Mobile Mind] Seeing our Seeing
  • 기도의 목적은 접속의 상기..
  • 연결에 대한 감각
  • 질병(illness)과 안녕(wellness)의 차이

    PS 2. 아래는 위 포스트를 작성하게 하는데 큰 동기를 부여한 책이다~
    의식혁명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이종수 옮김/한문화
    마음의 습관
    웨인 W. 다이어 지음, 유영일 옮김/이레

    당신의 모든 소망을 실현시켜 줄 마법의 열쇠
    에스더 & 제리 힉스 지음, 장연재 옮김/샤우드미디어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538
    • BlogIcon 그리스인마틴 | 2008/02/22 03:1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 이거 엄청난 글이네요.
      너무나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라 다시 읽었습니다.
      음... 과연 새로운 세계는 열려있군요.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2/22 08:54 | PERMALINK | EDIT/DEL

        어, 이 포스트는 그리스인마틴님을 의식하고 그리스인마틴님의 포스 넘치는 포스트를 조금이라도 흉내내려고 노력하면서 쓴 글인데요.. 쓰고 나서 글을 읽고 나서 아래와 같은 혼잣말을 하게 되더군욤... ^^

        "에이 씨, 왜 이렇게 그리스인마틴님 필이 안 나지? 다음에 또 써봐야다.. 자꾸 쓰다 보면 언젠간 좋아질 날이 오겠지.. 근데 시간은 꽤 걸릴 것 같네.. 쩝.. "

        PS.
        새로운 세계는 열려 있다..
        제 포스트를 한 문장으로 잘 압축해 주셨네요. 역시 그리스인마틴님.. ^^

    • BlogIcon 까모 | 2008/02/22 08:0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금언이지요. 숱한 자기계발서의 결론도 마찬가지구요. 문제는 그걸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데 있더군요. Buckshot님의 글을 통해 활발한 진동적 존재가 되고자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8/02/22 08:44 | PERMALINK | EDIT/DEL

        [Read & Lead]
        Read, write and lead my mind. That's the way my mind flows.

        얼마나 실행이 안되면 블로그 제목까지 이렇게 지었겠습니까.. ^^

        정말 말이 쉽지 실행은 넘넘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언젠간 블로그 타이틀에 맞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까모님의 댓글이 제 기대감을 증폭시켜 주시는 것 같아 넘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 BlogIcon egoing | 2008/02/22 09: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주 아주 귀한 글 잘 봤습니다.
      "문 제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경험이 쌓이고 경험에 의한 판단이 예단으로 굳어지면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와의 접속을 끊어 버리고 그리 거대하지 않은 자신의 경험의 한계 속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습관의 지배를 받는다."
      무릎을 탁치게하는 통찰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2/22 13:04 | PERMALINK | EDIT/DEL

        egoing님이야말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지속적으로 접속하고 계신 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egoing님과의 접속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맘이 제게 있는거구요. ^^

    • 흠흠 | 2008/02/22 10: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데이빗 호킨스가 말하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는 융이 말하는 인류의 집단적 무의식을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인류의 거대 데이터베이스를 "천재성"이나 "무한한 능력"을 열어줄 만능키로 여기지 않습니다. 만약 인류전체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있다면 그건 만능키가 아니라 인류 개개인이 지켜야할 가이드나 지침, 가르침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이드"는 오랜 인류 개개인의 경험의 총체이며 교육과 경험등을 통해 전승되어왔으며 아직도 우리 마음 내부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숨겨져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이드"의 유용성이나 가치는 우리의 삶이 행복하고, 공동체적이며, 죄책감이나 괴리감등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게 해주는 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말씀하신대로 "가이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한정된 자신의 경험과 판단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전쟁,소외,불안, 공포등의 사회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인류의 거대 데이터베이스 혹은"가이드"로 지칭하는 것들은 "神"이나 뛰어난 철학사상 등으로 구체화되어 우리 주변에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종교나 철학이 이런 "가이드"를 잘 대변해준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많이 왜곡시키고 있다고 여기거든요.

      위에서 인용하신 칼 융의 말, "한 사람의 삶의 질을 가늠하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은 그 사람이 무한성(가이드)과 어떠한 관계를 가졌느냐에 있다." 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여겨집니다.

      비유를 하자면, 우리가 카누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간다면 물장구를 치던, 자맥질을 하건 어려울게 없는 즐거운 여행이겠지만, 강기슭으로 나가려고 한다거나 강을 벗어나 산으로 가려고 한다면 배를 끌고가야하는 고난의 길이 되듯이 우리 인류는 우리 인류의 영속적인 무의식, 혹은 가이드, 혹은 거대데이터베이스에 발담그고 있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는 것 아니겠습니까?

    • BlogIcon 블로그와이드 | 2008/02/22 14: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는 '깜냥이의 웹2.0이야기' 운영자인데요, 블로그와이드(http://www.blogwide.kr)를 타고 들어왔습니다.
      글이 너무 심오하여 감탄이 절로 납니다.
      일반적인 저의 생각을 토대로 하여 작성하는 제 글과 포스가 다르시군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2/22 19:15 | PERMALINK | EDIT/DEL

        심오한 분들의 사상을 포스트에 옮긴 것 뿐입니다. 전 단지 전달자일 뿐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 BlogIcon nob | 2008/02/22 20:2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람은 누구나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태어났다 라는 문장에 완벽하게 동의하진 않지만 정말 좋은글입니다.

      마지막에서 두번째문단, 뼈속까지 블로거이신거같습니다ㅎ. 잘보고갑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2/22 22:18 | PERMALINK | EDIT/DEL

        '뼈속까지 블로거' 넘 멋진 표현이십니다. 기분 넘 좋은데요~ nob님의 멋진 표현에 에너지가 불끈 솟는 느낌입니다. ^^

    • BlogIcon 미리내 | 2008/02/23 15: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연결된 존재는 'We'로부터 시작되는 안녕(wellness) 속에 살고 연결되지 못한 존재는 'I'로부터 시작되는 병(illness)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 무지 멋진 말이라는 생각입니다. 트랙 겁니다.

    • BlogIcon Willezurmacht | 2008/02/24 02:3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제 개인적인 측면에서 우려되는것이 있는지라,
      그냥 지나가다가 딴지 건다고 생각해 주십시요.
      사실 블로그지기님의 논지와는
      좀 다른 방향의 글입니다.

      저도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위의 데이비드 호킨스씨의 인용된 글에 따르면,

      "그 연결된 데이터베이스가 인류라는 데이터베이스이고,
      우리 자신의 의식은 단지 모든 인류의 공통된 의식에 뿌리를
      둔 데이터베이스의 개인적인 표현일 뿐이다."

      라는 의견은 너무나도 당연한것 처럼 보이지만, 한번쯤은 이것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데이비드 호킨스씨의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책의 요지를 잘 모르겠으나,
      저 인용글에서만 느껴지는 저의 생각은, 우리 개개인의 창조성을 대변하고자 쓴것인지,
      아닌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가 있다는 관점에서의 가정입니다만,)
      즉 인간을 인류라는 가치에 매몰시키는 것이 아닌지가 우려됩니다.

      모든 것이 데이터베이스의 개인적인 표현이라면,
      과연 그것은 개인의 새로이 조합된 창조물인가 아니면,
      아니면 단지 지루한 되풀이 밖에 되지 않는 것인가?

      만약 그것이 새로운 창조물이라면,
      데이터베이스를 인간이 이용하는 것인가?
      인간을 데이터베이스가 이용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인류라는 데이터베이스와
      인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기는 한 것일까?
      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면,
      왜 하필 인간으로 태어나면
      인간의 데이터베이스에 연결해야 할까?
      악마나 사탄의 데이터베이스도 있을터.

      개인적인 생각으론 우리 개개인이 인류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 데이터베이스는 우주의 데이터베이스이지, 인류의 데이터 베이스는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 이유를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는 모든 것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라는 틀안에서만 연결된 것이 아니지요.

      왜 이것을, 별 중요해하지도 않는 것을 문제삼는 이유는,
      인간들의 윤리나 도덕에 의해서 우리의 생각이나 창조성이
      매몰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때문입니다.

      인류의 데이터베이스의 내용들이 옛날 성현들의 철학과 종교, 그리고 지혜라면
      그것을 거부하고 새로이 선택하는 자는
      극단적으로 가정하자면, 그 자는 연쇄 살인마라고 가정 한다면
      자신만의 경험을 굳게 믿고, 데이터베이스의 접속을 끊을 채,
      자신의 불우했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헛된 판단을 한 것일까요?

      만약 그 사람도 마찬가지로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인류라는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되어 있다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 사람은
      그 데이터 베이스에 연결될 자격조차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살인마는 연결되어있는 존재가 아니라 단절된 존재라고,
      그 살인마가 아니라 우리들이 결론을 내리게 되는 거 아닐까요?
      그렇다면, 살인마는 단절되있다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명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비유 자체를 살인마에 드는 것이,
      일말의 거부감 또한 살인마를 옹호하고 있다는 느낌이
      글을 쓰는 저마저도 느껴집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까닭은 우리들이 윤리와 도덕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기 떄문이지요.

      저는 인류라는, 인간이라는 가치를 옹호하지만,
      윤리나 도덕의 틀안에서 제 생각이 매몰되는 것도
      상당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윤리나 도덕의 틀에서 벗어나서 생각하게 된다면,
      살인마의 삶의 목적과 성인의 삶의 목적 둘 중
      우선순위를 정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저는 성인의 삶을 선택하는 제 선택이 있습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인류라는
      강을 따라 흘러간다면,
      즐거운 여행이 될수도 있겠지만,
      인류라는 강을 유유히 따라만간다면,
      우리들은 무엇인지요?
      인류라는 강을 즐기며 흘러가는 존재인가요?
      아니면 그냥 강인지요?
      인류라는 강을 벗어나
      산으로 간다면 고난의 길이 되겠지만,
      새로운 무엇이 되겠지요.
      비로소 우리가 우리가 되는것입니다.

      윤리와 도덕 너머의 세계에서,
      선악의 저편에서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야,
      세상이 좀더 새롭고, 창조적이 되지 않을까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조와 발전을 이룩해야 하지 않을까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우리들은 We라는 테두리안에 존재한다면,
      인간은 사실 인간이 아니게 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가 되고 우주입니다.
      인류가 아니고 우주입니다.

      ps. 갑자기 살인마의 극단적 비유를 든 이유는 요즘에 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2/24 14:19 | PERMALINK | EDIT/DEL

        Willezurmacht님, 제 포스트보다 훨씬 긴 댓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제 부족한 포스트를 넘치도록 채울 수 있는 멋진 반론을 제기해 주셨구요.

        제가 제 생각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Willezurmacht님의 댓글을 만나게 된 기쁨이 매우 큽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연결은 확률적 성격을 띠고 있구요. 그 확률은 관찰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마음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연결은 천차만별의 양상을 보이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인류라는 강을 따라 흘러갈 때 마음이 얼마나 유연하게 흐를 수 있는가에 따라 새로운 무엇이 될 수도 있고 지루한 존재로 머무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생활 속에서 수시로 연결과 단절을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동성 속에서 내 마음이 어떤 상태를 지향하는가가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인간이 연결과 단절을 반복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인 동시에 곧 우주임을 의미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개인이 의식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됨과 동시에 거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개인의 의식 속에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 아직 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생각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인데 Willezurmacht님의 댓글이 빈곤한 제 사유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켜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화창한 주말에 예기치 않게 받은 귀중한 선물이었습니다. ^^

      • BlogIcon egoing | 2008/02/26 09:58 | PERMALINK | EDIT/DEL

        사회란 인간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지만, 이 사회라는 녀석은 개별적인 인간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자아라고 생각합니다. 선과 악, 열정과 게으름과 같은 가치판단을 포함하고 있는 언어들은 사회의 필요에 의한 구분일 뿐, 우주의 어떠한 현상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구요. 인간에 의해서 규정되는 선과악의 구분은 초월적인 존재의 입장에서는 우주의 일상적인 현상의 단편에 불과하다고 생각해봤습니다.또 우리가 말하는 열정이라는 것도, 사회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구성원들의 행동양식을 규정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인간이 평생에 걸쳐 사용하는 에너지의 총량은 열정적인 사람과 열정적이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써 선과 악도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인류의 구성원으로써, 인류를 규정하는 여러가지 전제(도덕, 과학, 종교 등등)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레이어를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자신의 존재의 독특함을 지키고,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죽인 시인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인간을 자유사색가라고 표현하더군요.

        앞선 성취에 약간의 창의를 보태 광활한 네트워크로 돌려보내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유한성을 영속성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분의 귀한 토론 구경 잘했습니다.
        좀 두서가 없는데 기회가 되면 포스팅해봐야겠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2/26 21:37 | PERMALINK | EDIT/DEL

        인간이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존재의 독특함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성취에 창의를 보태 광활한 네트워크로 돌려보냄으로 인간의 유한성을 영속성으로 승화시킨다....

        egoing님, 제게 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 흠흠 | 2008/02/25 09: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가볍게 쓴 댓글에 너무 과찬을 해주셨네요. 저는 주인장님의 블로그를 즐겨찾기 해놓고 자주 들락날락 하는 사람입니다. 따로 블로그는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인장의 여러 분야에 대한 깊은 사고와 지식에 늘 감탄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대화나 토론의 장도 좋구요. 인터넷의 궁극적 역할이 블로그같은것 아닐까 하고 요즘 생각도 합니다. 계속 좋은 글들 많이 올려주세요 ^^

      • BlogIcon buckshot | 2008/02/25 19:35 | PERMALINK | EDIT/DEL

        제 블로그를 즐겨찾기 해놓으시다니.. 감격입니다..

        완성도 낮은 제 글을 좋게 보아 주셔서 감사하구요.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블로그를 통한 소통의 매력은 점점 깊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

    • BlogIcon 쉐아르 | 2008/02/27 02:2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어려운 ^^ 글이라 댓글을 다는데 좀 오래걸렸습니다. 우선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댓글을 통한 귀한 토론을 보니까 저도 그 논의에 동참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군요.

      제가 전에 올렸던 '시크릿에 대한 비판' 포스팅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인간 사이의 관계를 양자역학과 연관시키는 것에 약간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진동의 원리가 있고, 비슷한 현상이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파동에서도 발견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상이 비슷해서이지 같은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인간 사이의 교류를 뇌파간의 상호작용이라는 '물리적'인 것으로 이해를 하려는 것이 지나친 비약 아닐까요? 한가지를 들어 다른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둘이 결국 같은 것이다'는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논의를 제쳐둔다면 인류 전체의 데이타베이스에 개인이 접속한다는 생각은 참 탁월한 통찰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배우고 습득하는 모든 것이 인류전체가 쌓아놓은 지적재산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그런 큰 흐름을 깨닫고 고마워할 줄 아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그 현상을 '물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개인적으로 반대합니다만... ^^)

      아무래도 제 가치관과 세계관이 신을 중심으로 한 절대선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위에서 여러분이 말씀하신 해석과는 다른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겠지요 ^^

      • BlogIcon buckshot | 2008/02/27 23:34 | PERMALINK | EDIT/DEL

        인간 사이의 교류를 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는 쉐아르님의 말씀.. 날카로운 반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도 마음 속으로 그 부분을 인지하면서 포스팅을 올렸거든요.. 아직 이 주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가설 기반으로 사고를 하고 있는터라 많이 부족합니다. 쉐아르님의 반박이 제 사고의 깊이를 키워주고 계십니다. 넘 감사해요~ ^^

      • BlogIcon 대흠 | 2008/09/04 18:59 | PERMALINK | EDIT/DEL

        이것도 가설의 하나이겠지만... 인간이 하는 모든 사고나 말은 가설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한계죠.

      • BlogIcon buckshot | 2008/09/04 23:05 | PERMALINK | EDIT/DEL

        예, 대흠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인간의 사고가 모든 영역을 포괄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설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계가 분명히 있는 것이고 그 한계를 즐길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 BlogIcon 대흠 | 2008/09/04 19: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만만치 않은 포스팅으로 왕성한 블로그 활동하시는 벅샷님에 찬사를 보냅니다. ^^
      데이빗 호킨스 박사의 의식혁명은 모 기수련 단체에서 수련할 때 읽은 적이 있는데 제대로 읽었는지 다시 보니 새롭네요. 이 포스트와 댓글의 관심도를 볼 때 아날로그(영성)와 디지털(인터넷/기술)의 양극 사이에 교류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멀더란 분의 블로그에 소개된 데이빗 호킨스 박사 관련 글을 링크합니다.
      http://www.occultist.co.kr/tt/occult/116

      • BlogIcon buckshot | 2008/09/04 23:12 | PERMALINK | EDIT/DEL

        대흠님, 과찬이십니다.. 아직 갈 길이 먼 블로그입니다..

        좋은 글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식 수준이라는 측면에서 아직 너무나 낮은 단계에 있는 저이지만 아주 극미한 수준의 발전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식 수준의 절대 높낮이보다는 의식 수준이 계속 상승 패턴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에 크게 만족하고 싶습니다. 귀한 댓글 주시고 좋은 글 소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

    거대한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있는 컴퓨터 터미널 - 손, 눈, 뇌, 마음 :: 2007/09/20 00:01



    태터툴즈 관리자 화면에서 내 블로그로 들어오는 검색 리퍼러를 둘러 보다 문득 '컴퓨터 터미널'이란 키워드를 발견했다.  클릭해 보니 아래 포스팅이었다. 

    마음은 데이터베이스에 접속된 컴퓨터 터미널과 같다. 2007.05.13

    ... 얼마나 잘 인식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지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된 컴퓨터 터미널과도 같다. 그 데이터베이스는 인간의 의식 자체로서 모든 인류의 공통된 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 자신의...
     

    위 포스팅은 5월에 올렸던 글이다.

    7월에 snowall님의 트랙백덧글을 통해 리마인드를 하게 되었고
    8월에 낙타님의
    트랙백덧글을 통해 두번째 리마인드를 하게 되었으며
    9월에
    검색 리퍼러를 통해 세번째 리마인드를 하게 되었다.

    "이 포스팅은 잊을만 하면 리마인드가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자주 찾는 블로그 투어를 시작했다. 전설의에로팬더님 블로그를 방문했다. 거의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읽어 보는 블로그인데 이상하게도 하나 읽지 않은 포스팅이 최근 올라온 글 리스트에 보였다.  
    당신은 서버에 저장된 디지털 데이터이다.   바로 클릭해서 읽어 보니 너무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내가 네트워크의 바다에 놓은 글이 네트워크를 통해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경험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글은 그냥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 부족한 생각을 채워주는 풍성함으로 돌아온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나의 생각이 발전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
    주목을 하는 eyeball
    사고/판단을 하는 뇌
    그리고 마음...

    모두가 거대한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있는 컴퓨터 터미널인 것 같다. 

    네트워크에 접속된 개체가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고 상호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웹의 본질인가..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416
    • BlogIcon 전설의에로팬더 | 2007/09/20 02:2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부족한 저의 블로그를 자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Read

      • BlogIcon buckshot | 2007/09/20 05:58 | PERMALINK | EDIT/DEL

        방문할 때마다 한수 배워가는 재미가 쌓여가다 보니 이젠 거의 습관적으로 방문하게 되더군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리겠습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
    < PREV #1 #2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