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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뮤직에만 있는.. :: 2016/12/14 00:04

유튜브에서 음악을 즐겨 듣는다.
다른 뮤직 서비스에서 들을 수 없는 것들이 유튜브엔 널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음악을 듣는 경험은 아무래도 좀 아쉬운 느낌이..

유튜브에서 희귀한(?) 음악을 듣다가 아쉬움이 진해지면
애플뮤직을 찾게 된다. 거기엔 유튜브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희귀한(?) 노래들이 많이 있어서..

그렇게 애플뮤직을 뒤지다가 내가 듣고 싶었던, 내가 잊고 있었던 음악을 발견할 때의 기쁨이란.
그렇게 애플뮤직에서 찾은 노래가 다른 뮤직 서비스에선 존재하지 않음을 재차 확인할 때의 보람이란.

수많은 서비스들이 있지만
유독 뮤직 서비스를 사용할 때
존재와 부재에 대해서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다.

들을 수 있는 노래
들을 수 없는 노래

존재하는 노래
존재하지만 들을 수 없는 노래

접근성의 정도에 따라 존재와 비존재 간의 위치가 일종의 확률적 높낮이로 정해진다.

실제로 존재하는가의 여부보다
존재로의 접근성, 존재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 존재를 찾게 도와주는 서비스 흐름의 친화도..
이런 것들이 존재도, 부재도를 규정짓게 되는 흐름이 이제 보편화된 상황..

뮤직 서비스들, 유튜브, 애플뮤직을 오갈 때
존재감과 부재감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경우가 많다면
뮤직은 내게 단순한 서비스가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이 되어주고 있는 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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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 :: 2016/12/07 00:07

집에 자전거 운동기구가 있다.
전에는 종종 이용하곤 했는데 요즘엔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이유는
접근성 때문이다.

자전거 운동기구 위에 빨래가 놓여 있는데
그걸 치우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그냥 손을 뻗어 빨래를 걷어내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게 하기가 싫다.
하기 싫은 건 어려운 것이나 다름 없는..

엄청난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느낌.
별 거 아닌 것인데 내겐 실질적이고 강력한 장애물인 셈.

접근성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생각도 사실상 접근성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
별 거 아닌 지점에서 생각이 막히고 별 거 아닌 지점에서 어이없게 생각의 경로가 뚫리고..
그런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하던가.



한 편으론
접근성의 장벽에서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민감하게 캐치하고 그 지점에서 변화를 시도하면 크게 바뀔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겠다.

또한, 접근성이 너무 좋아서 마구 생각하고 행동하는, 막 지르는 그런 지점에 하나의 장애물을 슬쩍 놓아보면 거기서 막혀서 허우적대는 내 모습에서 혁신의 기운을 감지할 수도 있는 것이고.

막히지 않는 지점에서 강렬하게 막혀 보고 싶다.
막히는 지점에서 후련히 돌파를 해보고 싶다.

결국 접근성은 이중적인 개념이다.
이중성 앞에선 이중적으로 대응하면 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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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에코 :: 2016/05/25 00:05

아마존에코를 사용해 보니 이게 은근 매력이 있다.

"알렉사"라고 부르면 아마존 에코가 다음 명령어를 기다린다.
"음악을 연주해줘"라고 말하면 음악을 랜덤하게 들려준다.

재즈를 부탁하면 재즈를 들려주고
특정 아티스트를 언급하면 그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려준다.

직접 뮤직 서비스에 접속해서 번거롭게 원하는 음악으로 좁혀들어가지 않고
한 번에 원하는 걸 말하면 그걸 플레이 시켜주는 흐름.

접근성 측면에서 현저히 변화된 경험이다.
아마존 에코를 경험하게 된 후로 음악 서비스 접속이 어려워짐을 느낀다.

알렉사만 부르면 음악에 바로 접근할 수 있다 보니
컴퓨터를 켜고, 폰 속의 뮤직 앱을 열고..  원하는 음악을 입력하고 하는 일들이 매우 번거롭게 느껴진다.

그런 흐름들이 이전엔 괜찮았던 경험이었는데..
아마존 에코가 그것이 괜찮지 않다고 나에게 체감을 시켜주다 보니
나도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특히 아마존에코가 좋을 때는..
누워서 음악을 감상할 때다.
누운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눈을 뜨지 않고
손을 사용하지 않고
말 한마디로 뮤직 플레이를 가능하게 하는 경험.

예전에 사용하던 감각기관을 멍때리게 하고
예전에 사용하지 않던 방식으로 서비스를 작동시키다 보니
음악 자체가 새로워진 느낌마저 든다.
음악과 만나는, 음악과 대화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아마존 에코를 알기 전과
아마존 에코를 알게 된 후의
나는 살짝 다른 것 같다.

그 달라진 지점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면서
나는 음악과 새로운 방식으로 교감하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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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호흡 :: 2016/04/27 00:07

소설을 읽는 걸 좋아한다.
요즘 소설 읽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난 그냥 소설 읽는 게 좋다.

이유가 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사람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묘사해 내는 느낌이 그 안에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사람의 삶을 묘사한다는 것.
예전엔 그게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그런데
시대가 점점 빠른 호흡 속에서 정신없이 흘러가는 양태를 취하게 되면서
느린 호흡으로 한 사람을, 한 장면을 집요하게 묘사해 내는 소설작법의 의미가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을 1분 안에 판단해 버리고
사안을 10초 안에 스캐닝하고 빠르게 댓글을 다는 시대.

한 사람에 대해 충분한 호흡을 갖고 이해해 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한 사안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깊게 통찰해 보려 하지 않는
그런 흐름이 만연하고 있는 시대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소설은 더욱 나에게 매력으로 다가온다.

짧은 호흡만 존재하는
어텐션 결핍의 시대에 소설은 충만한 주의력으로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니까.
그런 소설가의 시선이 좋아서 소설을 계속 집어들게 되는 것 같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너무나 좋아진 테크놀로지의 토양 위에서
정작 통찰을 향한 접근성은 현저히 떨어진 상황이 아닐까 싶다.
피상적 접근성은 날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는 반면
사물과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는 갈수록 희소한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면

비즈니스와 기술이 가져다 주는 편리한 일상의 흐름은 과연 어떤 의미인 것일까.
소비자들을 정신 못 차리게 짧은 호흡의 세상 속에 밀어넣고 비즈니스와 기술은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것 아닐지.
그런 흐름 속에서 소비자들은 인간으로 살아갈 시간들을 모조리 빼앗긴 채 시장이 정의하는, 시장에서 의미있는 로봇 소비자로만 기능하고 작동하는 기계적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그런 흐름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심화될 수록
소설은 더욱 더 읽어야만 하는 삶의 필수적 자양분이 아닐까.

그런 소설의 위치와 역할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소설을 내 옆에 두고 그것과 친해지려고 계속 눈길을 주는 것인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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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과 서사 :: 2016/04/25 00:05

포털 뉴스 기사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서 드는 생각.
쉽게 온라인에 접근해서 어떤 사안에 대한 생각을 댓글로 적는 행위란 과연 무엇일까.

온라인, 모바일은 사용자에게 접근성이란 축복을 선사했지만..
너무나도 쉬운 접근성 때문에 정보를 쉽게 얻게 된 대신에
너무나도 쉽게 얻게 된 정보에 대해서 너무 쉽고 빠른 판단을 내리게 되고
그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했고, 그런 부작용이 접근성과 상호 증폭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나 쉽게 판단한다는 건
사람과 사안에 내재한 서사를 외면한다는 것이겠고
그렇게 사람과 사안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를 무시하면서
쉽게 사람을 판단하고 사안에 대한 입장을 정하게 되는 것인 듯.

사람을 그 사람이 흘러왔던 긴 시간의 흐름과 그 사람을 둘러싼 360도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순간적, 제한적 관점으로 순식간에 훑어내리고 빠르게 스캐닝해낸 단편적 정보로 쉽게 댓글을 뱉어내는 모습.

과연 그 사람과 사안을 충분히 들여다 보고 충분히 생각했다면 그렇게 쉽게 댓글이 써질 수 있을까.
댓글을 쉽게 배설하고픈 욕망 하나. 그것에만 충실한 플레이. 그 속에서 서사와 이야기는 침잠하게 되는데.

함몰된 서사와 만연하는 댓글.
그 속에서 사람이란 존재는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타임라인 상의 조각난 파편적 스트림 속에 갇혀버리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이제 짧은 시간 안에 파악되지 않고 읽혀지지 않고 보여지지 않으면 의미를 갖기가 어려워지는 세상. 어떻게든 파편 속에 들어가야, 파편적으로 빠르게 스캐닝될 수 있어야 의미를 띨 수가 있는 상황이라면.

나에게 주어진 놀라운 접근성의 축복은 이제 저주라 칭해도 마땅한 것이 아닐까.
접근성이 혁신적으로 증폭된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과연 어떤 것인지.
접근성의 수혜를 누리고 있는 나는 과연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접근성이 공기와도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가는 시대.
그 공기의 의미에 대한 깊은 고민은 점점 희박해져 가는 시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하는 이 시간은 점점 소중해져만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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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북이 있었으면.. :: 2016/01/20 00:00

읽고 싶은 책이 있다.
그런데 그 책은 종이책으로만 제공된다. 전자책이 없다
정말 아쉬운 마음. 꼭 e북으로 읽고 싶은데.

그런 아쉬움을 애써 누르며 종이책을 구입한다.
그런데 종이책이 오면 그 책은 그냥 어느 곳에 방치된다. 잘 읽혀지지 않는다.
종이책이 너무 무겁다. 책장을 넘기는 게 불편하다.
그냥 이북으로 책을 소비하고 싶어진다.

경험이 쌓인 듯 하다.
이북으로 편하게 책을 보는 경험.

종이책의 경험은 점점 더 구시대의 유물처럼 내 몸에서 인식되고 있는 듯 하다.

이북의 속성이 종이책의 속성보다 더 친근해진 지금.

나는 이제 종이책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까.
종이책과 점점 더 멀어지는 게 순리일까.
결국 대세를 거스르긴 어려운 것일까.

모바일 디바이스가 책으로 기능하기 시작하면서 계속 종이책 너머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애를 쓰는 상황 속에서 종이책은 현재 어디에 있는 것일까. 종이책의 가치를 독자들이 인지하고 그것을 스스로 일깨워가지 않는 이상, 종이책은 결국 급격하게 힘을 잃어갈 것 같다.

"이북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일어날 때,
"종이책은 내게 무엇일까?"란 질문과 바람이 같이 생성된다.

종이책에 관한 질문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내겐 활력인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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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의 객체, 빼앗기는 시간 :: 2013/01/14 00:04

웹은 접근성이란 선물을 우리에게 선사했고 스마트폰은 증폭된 접근성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근데 접근성의 주체와 객체에 대해선 사실 정해진 바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웹,스마트폰을 대할 경우, 의미 있는 뭔가에 접근하기 보단 쓰레기정보에 온통 잠식당한다. 웹, 스마트폰에 의해 증폭된 접근성의 최대 수혜자는 웹,스마트폰의 유저가 아니라 정보 자체다. 유저는 정보에 의해 무차별 접근,접속을 당하는 정보의 객체 내지는 봉에 가깝다.

소비자의 관심,주목,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 포착된 이후, 소비자의 시간은 유린,침탈의 대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경쟁자로부터 소비자의 시간을 빼앗아오기 위해서는 소비자 자신으로부터도 시간을 빼앗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전쟁이 심화되면서 전쟁터는 소비자의 시간이 되어간다. 소비자의 time share를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는가가 화두가 되는 순간, 소비자의 시간은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의 시간의 의미와 함께 경쟁자를 누르고 성장을 지속하길 염원하는 사업 욕망의 대상이 된다.

나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의 시간은 끊임없는 탈취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의 시간을 빼앗아야 사업이 영위되고 나의 시간을 빼앗아야 자본이 유통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 속을 살아가는 사람의 시간은 이미 그 사람 개인의 시간이 아닌 것이다. 끊임없이 나를 향한 접속의 시도가 도처에 분포되어 있는 상황에서 나의 시간은 그야말로 vulnerable 그 자체라고 봐야 한다. ^^

시간을 흘러가는 것,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면 이제 그 생각을 조금 바꿔보도록 하자. 시간은 빼앗기는 것이다.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은 자본이 유통되는 세상 속을 고스란히 노출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고 나의 시간은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유린되고 침탈될 수 있다.

소비자는 결국 시간을 빼앗긴다.

얼마나 많이 빼앗기는지, 얼마나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소비자는 결국 시간을 빼앗긴다. 소비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계속 뭔가에 의해 빨린다는 것이고 그런 시간 빼앗김 현상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거세질 것이다.

소비자는 결국 시간을 빼앗긴다.

뭔가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졌다고 섣불리 좋아하진 말자. 접근성의 개선은 피접근성의 증폭이라서 결국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문명의 발전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뭔가가 좋아졌다고 웃고 떠드는 와중에 뒷단에선 뭔가가 계속 새어나가는 찜찜함. 그 찜찜함의 정체는 계속 불투명의 심도를 더해가는 상황.

앞으로도 문명은 계속 진보(?)에 진보(^^)를 거듭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보이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접근성도 계속 증대될 것이다. 접근성이 좋아질수록 소비자는 접근성의 주체가 아닌 접근성의 객체로 대활약을 지속하게 될 것이고 소비자가 접근성의 봉으로 우뚝 서면 설수록 소비자의 시간은 너무도 투명하게 위험(? ^^)에 노출된 채 끊임없는 침략의 대상이 될 것이다.

소비자는 결국 시간을 빼앗긴다.



PS. 관련 포스트
real-time web의 늪
방해
접속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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