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 해당되는 글 17건

자본 지향 :: 2018/03/02 00:02

자본주의 사회에선
대부분의 사고와 행동이 자본을 지향하게 된다.
자본이 없으면 살아가기도 힘드니까.

한 편으론
그렇게 사는 건
자본이 사는 거지 인간이 사는 건 아니란 생각도 든다.

자본을 지향하며
자본에 의해 사는 삶
그건 인간의 삶이 아닌 자본의 삶

그래서 자본을 혐오하며
자본과 반대편 길을 가는 흐름에 동경이 생긴다.

자본이 많은, 자본 중심의 삶은 화려해 보여도
난 거기에 매력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자본지향의 흐름 속에서
꿈은 명확해 진다.
탈자본, 비자본, 자본과의 거리감

그런 것들이 내 꿈을 구성하는 개념들로 형성이 되는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해나가는 게 내 인생이라면
나는 어느정도 키워드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자본지향의 흐름 속을 살면서
어떻게 하면 인간과 자본 간의 거리를 잘 유지할 수 있을지.
거리감을 잘 가져갈 수록 인간 존재의 의미를 살릴 수 있겠지.

자본에 의해 유린당하는 삶이 난무하는 걸 보면서
더욱 더 거리감의 중요성을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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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전문점에서의 노트북 타이핑 :: 2017/03/15 00:05

커피전문점에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타이핑을 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커피향이 흐르고
음악이 흐르고
커피가 있는 공간에서
테이블이 있고
테이블 위에 노트북이 올려지고
노트북이 열려지고
노트북의 키보드를 타이핑하고

이건 완벽한 플로우이다.

커피향을 따라 생각이 흐르고
음악을 따라 단상이 스쳐 오르고
커피를 머금은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서
테이블 위의 노트북
노트북 위의 키보드 위에서
나의 손가락은 뇌의 행복한 운동을 대변하듯이
어디론가 타이핑의 궤적을 이동시킨다.

그 궤적을 따라
커피향이 흐르고
음악이 지나가면서
커피향 가득한 눈가, 귓가, 입가를 따라
나의 생각은 작은 행복감으로 가득한 춤을 춘다.

이런 시간들
이런 공간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비가격, 무가격의 경지이다. :)

자본의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비자본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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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인간 :: 2015/03/11 00:01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을 돈으로 환산하려는 지향성을 보인다.

지금 이 순간도 나의 시간들은 치열하게 돈으로 환산되고 있다.

인간은 그냥 인간일 텐데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숫자로 환원 당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인간은 숫자가 아니고,
인간은 돈으로 간단하게 설명될 수는 없는 존재인데
너무도 거칠게 환원을 당하다 보면
스트레스의 축적은 엔트로피와도 같은 추진력을 갖고 진행되어 간다.

인간소외란 표현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었는데
이제 자본에 의한 인간소외 현상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인간의 삶을 잠식해 나가는 모습이다.

자본의 욕망을, 열정을 누가 당해낼 수 있을까?
자본은 이제 거대한 욕망과 열정을 바탕으로 영속의 꿈을 꾸기 시작한 듯 하다.
자본 영속의 꿈을 묵묵히 바닥에서 서포트하고 있는 인간들.
인간은 자본에 의해 소외되면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이제 그냥 '인간'이란 표현은 좀 어색하다.
자본인간. 이렇게 불러야 하지 않을까?



PS. 관련 포스트
암호화된 세상
소비재와 소비노
속도
주체와 객체
나를 찾아온 기적을 알아보기

경쟁 노예: 이기고 웃는 노예, 지고 우는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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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과 시간 :: 2015/02/27 00:07

경쟁을 할 때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간다.
온전히 뭔가에 홀린 듯이 시간을 내어주고 공회전을 한다.

경쟁을 하지 않을 때는 시간이 밀도 있게 흘러간다.
1분 1초의 의미를 새기며 시간과 대화를 한다.

존재의 극히 일부분을 걸고 경쟁을 하는 것이 활력 부여 차원에선 의미가 있겠으나
경쟁에 몰입된 삶을 살아가다 보면 존재의 극히 일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에서 소외현상이 발생한다.

존재 전체를 생각하다 보면
경쟁으로 인해 소외된 존재 대부분의 영역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런 안타까움을 느끼는 시간이 희소하다.

경쟁과 시간
존재와 소외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을 만큼
자본주의 사회는 단단하게 직조되어 있다.

하지만,
경쟁하지 않는 시간의 소중함을 잊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희망은 있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경쟁력
소비와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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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아크몬드 | 2015/02/27 12: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첫 부분에 크게 공감합니다. 남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생산성이 극도로 하락하는 느낌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5/03/01 11:59 | PERMALINK | EDIT/DEL

      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아주 가볍게 남을 참조만 하면 되는데 남을 적지 않게 의식하고 그 흐름 속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은 듯 해요. 균형을 잘 잡는 게 중요한 듯 합닌다. ^^

  • rodge | 2015/03/03 08: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직장생활에 찌들어있는중에 이번 포스트는 시 처럼 느껴지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ㅠㅠ

    • BlogIcon buckshot | 2015/03/08 16:36 | PERMALINK | EDIT/DEL

      내 자신이 소외되지 않는, 소박하지만 소중한 그런 시간들을 내밀하게 느낄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한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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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 :: 2014/10/24 00:04


자본주의가 총괄하는 쩐신의 체계 속에서 돈이 명하는 바에 의거하여 부가가치를 산출하는데 어떤 식으로든 착취를 당하는 인생. 그래서 스트레스가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 것 아닐까.  나도 모르는 원인에 의하여 병들어가는 시대.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과업.

과업. 그건 자본을 살찌우기 위한 도구이지 결코 사람을 위해 작동하는 개념이 아니다. 사람은 과연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 걸까? 자본을 위해 살아가면서 정작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법을 잃어버린 건데. 그걸 찾을 수 있기는 한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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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화 :: 2013/05/01 00:01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는 강력한 중력이다.  세상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이 상품화의 물결 속에 휩쓸려 간다. 예전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돈 한 푼 안들이고 맘껏 뛰어 놀았던 기억인데 요즘 아이들은 뭔가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돈을 요구하고 있고 우린 지갑을 어리버리 열리면서 수시로 새어나가는 돈의 흐름 속에서 쩐봇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상품화란 이름의 중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동하는 가장 강력한 힘 중의 하나다.

어떤 개념이나 단어가 상품화되면 기존의 의미는 희석되고 상품화를 중심으로 의미의 재구성이 일어나면서 단어는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단어에 상품화된 욕망이 집결하면서 단어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고 사람들을 상품화 알고리즘 속으로 휘몰고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상품화 개념 중의 하나가 공부이다. 공부는 상품화 차원에서 철저히 재단한 개념 중의 하나다. 공부라는 멋진 단어가 출세와 성공을 위한 학창 시절의 고된 훈련 과정으로 변질되면서 공부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고 강력한 성공 수단인 공부의 주위엔 쩐을 챙기기 위한 거대한 비즈니스 모델이 난립하게 되었다. 평생을 두고 실행해도 가슴 설레기에 충분한 완소 개념 하나가 상품화의 표적이 되는 순간 기괴한 형체로 변신한 채 자본과 손을 굳게 잡고 상품화의 길을 거침 없이 달려 왔고 욕망과 BM의 찰떡 궁합 속에 상품화 개념의 베스트 성공 사례로 자리잡았다.


운동도 상당히 상품화된 상황에 놓여 있다.  그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모습으로 운동할 수 있으면 되는 건데 운동이 자본과 결합하면서 "운동은 이런 모습으로 이런 곳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에 대한 팬시한 상이 형성되었고 그 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운동하지 않으면 운동한 것 같지 않은 이상한 느낌마저 생기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명백히 운동했는데 운동한 것 같지 않고 자본이 규정한 운동 방식을 따라야 운동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면 과연 진정한 운동은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가 운동이란 단어를 언급할 때 머리 속에 떠오르는 정형화된 상이 존재하는 것. 그 상이 철저히 외부로부터 주입된 것이고 그 상을 만들어내고 그 상을 통해 돈을 버는 비즈니스가 존재하는 것. 운동은 제대로 상품화된 개념이라 할 수 있겠다.

웰빙에 이어 힐링도 상품화의 경로에 들어선 것 같다. 힐링이 필요한 상황을 규정하고 그런 상황에 놓이면 힐링을 받아야 한다는 개념이 생겨났다. 마치 증상이 규정되면서 시장에 약이 등장하듯 말이다. (약이 등장하면서 증상이 가시화된다고 볼 수도 있다. ^^)  문제나 병을 자극적인 상으로 구현하고 사람들의 뇌 속에 주입시킨 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과 약을 팔면서 그것을 복용했을 때 얻게 될 모습을 화려한 상으로 그려서 사람들의 뇌 속에 밀어 넣고 증폭시키는 것.

우리가 접하는 개념과 단어들은 상품화에 의해 잠식되어 있거나 서서히 잠식되어 가고 있다. 우린 순박하고 날 것에 가까운 개념을 접하기 보다는 철저히 돈스럽게 포장된 개념에 경도되고 유린된다. 돈 냄새를 발라내고 당초의 개념을 복원하는 복원사의 면모를 우린 획득해야 한다.  미술 복원사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상품화로 오염된 개념의 원형을 복구하는 과정이야말로 지상 최고의 예술이 아닐까? ^^



PS. 관련 포스트
가격결정
가격 제거
샌지와 빵집주인
동기, 알고리즘
가격,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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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

    Tracked from toms s | 2013/06/13 10:49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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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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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신이 되다. :: 2013/04/05 00:05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의 하나가 고객일 것이다.

고객은 나에게 돈을 주는 자, 내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자이다.
회사원은 회사, 상사가 고객이다.
자영업자는 나의 상품을 사주는 회사나 개인이 고객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사주는 자가 고객이다.
연예인은 자신을 상품으로 소비해 주는 자가 고객이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며 살아가는 자는 '나'라는 상품, 내가 파는 상품을 사는 자를 고객으로 모시며 살아가게 된다. 고객 없으면 내가 존립하기 어렵고 고객이 나에게 지속적으로 지갑을 열 수 있게 해야 하는 상황 속을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사업을 하든, 남의 사업을 하든, 나를 상품으로 하든 내가 상품을 팔든, 고객은 반드시 존재하게 되어 있고 고객을 어떻게 섬기는가에 따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나의 입지가 결정된다.

이 정도 상황이면 고객은 가히 신의 위치에 있다고 봐도 좋겠다.
돈을 벌고자 하는 자는 모두 '고객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고객신을 섬기며 살아가는 사회.  고객신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 속에서 상품화된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상품화된 나를 어떻게든 잘 셀링하려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나는 흐릿해지거나 지워져 가고 있을 텐데.  고객신을 아무리 잘 섬겨봐야 고객신에게 나의 삶 전체를 맡길 수는 없지 않을까?  세상은 온통 고객신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채색되어간다. 고객신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영역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세상 전체가 고객신의 관할 구역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고객신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시공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나의 고객을 '나'로 생각해 보자. 고객을 섬기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10분의 1이라도 나를 위해 사용해 보자. 쩐신이 지배하고 고객신이 통제하는 세상 속에서 쩐신/고객신만 섬기다간 나중에 '나'를 잃어버린 세월이 부메랑이 되어 나의 뒤통수를 강타하게 될 것이다. 쩐신/고객신만 섬기는 삶. 공허한 삶이다. 쩐신/고객신 말고 '나'를 위한 시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말이다. 나를 고객으로 정의하고 '나'라는 고객을 어떻게 모실 것인지에 대해 골똘한 고민을 해보자.  

그러기 위해선 내가 쩐신을 어떻게 섬기는지, 내가 고객신에게 얼마나 지배를 당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이미 나에겐 쩐신 섬기기 행동강령이 있고, 고객신 모시기 매뉴얼이 두꺼운 책자로 존재한다. 그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엄연히 있고 그것에 의한 사고와 행동을 날마다 밥 먹듯이 일삼고 있는 게 인간이다. 우린 모두 쩐신교의 교인이고 고객신을 섬기는 신도들이다. 내가 쩐신교, 고객신교의 신도로서 남발하고 있는 신도 행위를 차분히 리스트업 한 후에 그것의 일부를 '나'라는 고객을 아껴주기 위해 할애해 보자. 그래야 나중에 쩐신/고객신이 나를 버릴 때 나는 '나'라는 고객과 함께 쩐신/고객신이 없는 즐거움 가득한 세상을 화려하진 않지만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쩐신, 고객신은 언제간 나를 버린다. 버림 받을 것이 이미 예고되어 있는데 쩐신/고객신만 믿고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부터라도 나를 위한 '나' 고객 아껴주기를 개시해야 한다. ^^



PS. 관련 포스트
쩐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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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0:50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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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0:51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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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생산인간 :: 2012/12/07 00:07

Factory Girls: Cultural technology and the making of K-pop

K-pop이 공장생산 기반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하고 있다면, 그런 생산 메커니즘이 제시하는 컨텐츠 흐름 속에 푹 젖어있는 채 살아가는 뮤직 소비자들은 과연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 걸까?

소비자의 즉각적인, 중독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것에 천착하며 청취자의 귀를 지배하는 방식은 나날이 고도화되어 간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자신의 귀를 지배하려는 집요한 전략적 시도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긴 어렵다. 그저 귀에 듣기 좋은 음악이 들려오면 그것을 선호하고 귀맛에 좋지 않은 음악은 관심을 두지 않기 마련이다. 산업은 소비자의 귀를 철저히 분석하고 그 귀를 장악하기 위한 갖은 시도를 전개하고 소비자의 귀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그 시도에 오픈되어 있는 상황.

산업이 소비자를 해부하고 소비자의 빈틈을 예리하게 헤집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소비자는 산업을 향해 현재와 같은 무방비 상태를 계속 유지해도 괜찮을까? ^^

산업은 항상 소비자를 관찰하고 또 관찰한다.
소비자도 산업을 관찰하고 또 관찰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시선에서 많은 것이 결정된다. 시선을 갖고 있는 자와 시선을 갖고 있지 않은 자 간의 간극은 매우 크다. 시선을 가진 자와 시선이 없는 자가 만나면 관계는 시선에 의해 철저히 규정될 수 밖에 없다. 시선을 가진 자가 시선이 없는 자를 지배하는 구조로 말이다.

공장생산 기반의 컨텐츠가 소비자의 귀를 예리하게 공격해 오는 상황에 자신의 귀를 수동적으로 내맡기고 있다면 이미 소비자도 공장생산 메커니즘에 함몰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공장생산되는 컨텐츠를 소비하는 자는 또 하나의 공장생산 컨텐츠에 불과하다. 소비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상품을 선택하는 의사결정 주체의 입장이 아닌 산업의 의도대로 철저히 기획된 상품의 제한된 선택 범주 내에서 선택 아닌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삥 뜯김 당하는 자의 입장에서 소비를 강요 당함을 의미한다. 소비를 하는 것은 능동적 행위가 아니라 기획된 소비 설계도 안에서 주어진 역할을 맹목적으로 수행하는 로봇의 행위에 불과하다.

컨텐츠, 상품만 기획 당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도 기획을 당하는 시대. 철저히 기획된 것만 소비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대량 생산하는 소비 로봇. 그게 소비자의 모습 아닐까?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 소비자를 생산하는 거대한 공장.
그 속엔 정말 나의 것이 있을까?

소비자는 소비하는 자가 아니라 생산당하는 자이다.
우린 지금 이 순간도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서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



PS. 관련 포스트
결정, 알고리즘
개인 경영 시대
깨어나는 좀비
초단절 시대
K-POP/걸그룹에 대한 농담반 진담반 생각
강박과 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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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12/08 13: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혀를 내두를만큼 예리한 글이네요 ^^ 인간생산공장 vs. 공장생산인간, 소비당하는 생산 vs. 생산당하는 소비. 마치 이 떠들썩한 시기에 '선택받는 사람들' 뿐 아니라 '선택하는 사람들'까지 미리 기획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 뼛속까지 내재된 대량통제체제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깨어서 우리 자신을 찾아가느냐가 관건일 듯 싶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12/08 22:09 | PERMALINK | EDIT/DEL

      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선택한다는 건 기획된 선택의 한계 안에서 객관식 문제의 정답을 고르듯 기계적 대응을 하는 것인가 봅니다. '선택', '소비'란 단어 속에서 작동하는 함정 메커니즘을 잘 인지할 수 있도록 깨어있음의 상태를 잘 유지해야 하겠습니다. ^^

  • BlogIcon Playing | 2012/12/25 17: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여러가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생각도... 그리고 행동도 이미 정해진 방식중에서 고르는 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음을 아주 조금 느꼈습니다

    민주주의의 선거제도도 다르지 않을 꺼 같은 씁쓸함이 더욱 강렬해지네요! 조금 지났지만 너무 잘 봤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12/25 18:52 | PERMALINK | EDIT/DEL

      '소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소비만큼 무기력한 행위도 없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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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 :: 2012/11/14 00:04

'접수'라는 개념은 직장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에서 주인의식을 강렬하게 견지하긴 어렵다. 하지만 누가 시킨 일이라도 그 일에 나의 혼을 불어넣으면 그 일은 어느새 내가 접수한, 내 주인의식 기반으로 작동하는 일이 된다.

'
누가 시킨 일'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일'로 변주한다는 것은 자신을 경영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자신을 특정 기업체의 부속품으로 기능하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사고/행동의 주체로 정의하고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담아낸 뭔가를 산출한다는 것.

거대한 기업경영의 장 속에서 자신을 경영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기업은 결코 한 개인의 성장을 걱정하고 케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기업 특유의 생존 본능에 입각해서 기업의 영속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기업 영속성을 제고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밖에 없다. 기업의 영속성을 지키기 위해 개인은 자신의 영속성을 소비하는 것이고 그런 과정 속에서 개인경영의 존재감은 더욱 흐릿해질 수 밖에 없다.

나 자신을 단지 소모품으로만 정의하지 않고 나 자신 만을 위한 개인경영의 행보를 전개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무의식/의식적으로 소모품으로 정의되는 삶을 살아가는 한 무기력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고 뭔가를 이뤄간다기 보다는 뭔가를 향해 지쳐간다는 느낌 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한, 자본의 소모품 입지를 완전히 회피하긴 어렵다. 쩐신이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한 쩐교의 교리 체계를 온전히 거부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규정/지배하는 알고리즘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원시시대는 약육강식의 알고리즘이, 봉건시대는 주종의 알고리즘이, 현대는 자본의 알고리즘이 세상을 재단하고 통치한다. 어느 시대를 살아가더라도 개인의 입지는 별도로 마련되어지지 않고 항상 도전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시대를 직조하는 알고리즘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그 시대의 알고리즘에 철저히 유린당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있는 반면, 알고리즘을 직시하고 그것과 견줄 수 있는 개인경영의 체계를 구축하고 그것을 운용하면서 살아가는 삶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접수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이다. 남이 시킨 과제라도, 남이 주입한 개념이라도 그것을 나의 것으로 전환할 수 있는 변주 역량을 견지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실 딱히 주인이 존재하지 않는 중립성을 갖고 있다.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니 남의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고 남의 것인지 아닌지 어리버리 대하니까 나의 것이 되지 않는 것이다. 접수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것으로 접수할 수 있어야 한다. 외부로부터 나를 향해 돌진하는 수많은 것들 중에 나에게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나의 것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규정하고 재단할 수 있어야 한다.

'
접수'라는 개념은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어리버리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주인의식을 강렬하게 유지하긴 어렵다. 하지만 제아무리 어리버리한 일상이라도 그 일상에 나의 혼을 불어넣으면 그 일상은 어느새 내가 접수한, 내 주인의식 기반으로 작동하는 역동적이고 흐뭇감 가득한 일상이 된다. ^^



PS. 관련 포스트
쩐간
개인 경영 시대
웹혁, 알고리즘
로봇, 알고리즘
리더, 알고리즘
경혁, 알고리즘
경영,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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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emica | 2012/11/16 04: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따금 oo현장접수 란 말을 사용하는데 .. 제대로 정의해 주신 것 같네요 .. ^^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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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수동태이다. :: 2012/03/19 00:09

나는 무엇을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갖고 싶어 하고 무엇을 누리고자 하는가?
욕망의 근원은 무엇일까? 결핍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의 욕망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욕망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온전한 나의 결핍감이 아닌 것 같다. 결핍감은 나의 외부에서 내게로 주입된 일종의 강박인 것 같다. 나로 하여금 결핍을 강하게 느끼고 그로 인해 욕망을 자가생산하며 그 욕망에 의거해서 행동하고 그 행동이 뭔가에 의욕과 시간과 돈을 투입하게 만드는 누군가가 나의 욕망을 조정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욕망은 인간 스스로가 생산하기 보다는 외부로부터 주입 받는 경우가 많다. 주입된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욕망 BM'이 굳건히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욕망 BM의 서식처이자 번식처이다. 내 안에서 욕망 BM의 서식/번식이 활발할 수록 나의 욕망은 더욱 요동을 치며 욕망과 결핍감의 뫼비우스 띠는 증폭에 증폭을 더해간다. 거대한 욕망 BM의 쓰나미적 물결이 인간 무리를 덮치면 덮칠 수록 욕망은 인간 관점에선 철저히 수동태적 양태를 띤다.  


욕망은 수동태이다.

욕망이 수동태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걸 인정할 때
질문은 아래와 같이 바뀌게 된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욕망은 누가 주입한 것일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결핍감은 누가 입력한 정보일까?
나의 욕망과 결핍감은 무엇을 향해 디자인되고 있는 것일까?

온전한 나만의 욕망과 결핍이 존재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내가 얼마나 속절없이 의도된 욕망/결핍감을 주입 받고 있는지를 아는 것.
그것이 수동태적 욕망 메커니즘에서 빠져 나와 진정한 나만의 욕망을 생산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


PS. 관련 포스트
허위욕구와 백야
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BM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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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지의 귀환 :: 2012/03/12 00:02

부메랑
마이클 루이스 지음, 김정수 옮김/비즈니스북스



비즈니스북스의 이혜경님께서 보내주신 책이다.  

이 책을 읽고

현재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금융위기는 마치 "폰지의 귀환"과도 같은 양상이란 느낌을 받았다
.

1925
년 미국 플로리다에 Charles Ponzi (찰스 폰지)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찰스 폰지는 "90일만에 원금의 2배 수익을 보장한다"는 매력적인 투자 제안으로 8개월 만에 4만명으로부터 1500만불을 끌어 모은다하지만 찰스 폰지는 가치를 창출하는 어떤 사업도 벌이지 않았다. 단지, 투자 받은 돈의 일부를 떼어 먼저 투자한 사람들에게 수익금으로 제공했을 뿐이다수익발생을 믿는 투자자가 계속 늘어나는 한 찰스 폰지의 사기행각은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이것이 폰지 게임이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찰스 폰지가 벌인 초대형 금융 사기극..  투자자들이 버블 메커니즘을 직시하지 못하고 버블이 주는 짜릿함에만 몰입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다양한 형태로 반복될 것 같다. 상품에 메타를 먹이고 그 메타에 메타를 더하고.. 메타가 메타를 낳는 흐름 속에 원래 분명한 모습으로 존재하던 위험이 흐릿한 확률적 존재로 파동하고 사람들은 위험을 망각하게 된다. 금융산업에서 일어난 버블과 메타의 극적인 만남은 폰지게임과 확실히 차별화된 합법성,세련됨,울트라 복잡도를 무기로 결국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초강력 알고리즘으로 자리잡고 말았다..

욕망은 자연스러운 인간 현상이다. 하지만, 관찰/통제되지 않고 무분별하게 증폭되는 욕망은 거대한 재앙의 부메랑이 되어 인간을 다시 찾아온다는 평범한 교훈.  폰지는 욕망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 찾아간다. 2012년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폰지 입장에선 너무도 좋은 먹잇감이란 생각이 든다. 

'부메랑'이란 책 제목.. 참 마음에 든다. ^^


PS.
관련 포스트
버블,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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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BM :: 2011/12/23 00:03

우리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말에 쉽게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전 세계가 쓰나미, 블랙스완을 연상케 하는 극단적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한다는 식의 겁주기 메시지에 나름 순응적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세상은 불확실성 급증의 도가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불확실성이 커지는 이유를 외부 환경의 격변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고, 불확실성이 커진다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알기 쉬울 수는 있겠으나, 실상은 불확실성이 급증한다기 보다는 불확실성을 급속하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겠다. 즉, 극적인 변화는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의 수위 보다는 그것을 인식하는 인간의 마음 속 불안감의 수위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확실성은 예측용이성/통제용이성의 반대 의미를 가진다. 인간은 항상 뭔가를 더 예측하고 싶어하고 통제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커지는 쪽으로 시간을 보내왔다. 문명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외부 환경에 대한 예측력과 통제력은 비약적인 고도화를 거듭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거대한 착각일 수 있다. 자고로 문명이 발전되는 동안 인간이 정말 질적 성장을 기록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쉽게 대답이 잘 되지 않는다. 원시시대 대비 생명 위협이 현저히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닥 위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양산하며 두려움의 총량을 유지하고 있다. 원시시대나 현대나 인간은 두려울 것이 있어야 안심한다. 인간 뇌는 두려움을 먹고 사는 기관이다. 인간 뇌는 마치 두려움이 유통되지 않으면 심심해서 미쳐버릴 수도 있다는 듯 끊임없이 두려움을 생성하고 소비한다. 문명 발전이 산출한 최대의 성과는 '원시시대의 원초적 두려움을 현대의 세련된 두려움으로 치환시킨 것'이 아닐까. 인간 뇌 속에 똑같은 두려움이 유통되면 인간 뇌가 지루해할까 봐 끊임없이 새로운 두려움을 인간 뇌 속에 주입시킨 것이 문명의 주요 과업이 아니었을까. ^^

예측용이성, 통제용이성을 높여간다는 착각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불안을 생산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소비했다. 그리고 그런 생산-소비의 순환 고리 속에서 불안 BM은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어느 시대나 인간 마음 속에 잠재한 불안을 자극하고 증폭된 불안에게서 돈을 뜯는 불안 BM이 존재했다.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것. 불안감이 커진다는 것. 두려움과 끝없는 숨바꼭질을 하고 싶어하는 인간 뇌를 자극하는 불안 BM의 존재. 불확실성, 불안감, 불안 BM은 매우 견고한 삼각편대 체제를 구성한다. 그 강력한 삼각 압박에 너무 많이 농락당하면 세상은 정말 불확실성의 소용돌이로 보일 것이다. 불안 BM을 직시하면 불안 BM에게 주입을 강요 받았던 내 마음 속 불안감은 실체성 여부를 검증 받게 것이다. 그리고 불확실성이란 단어에서 불필요한 강박은 필터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불확실성이란 단어를 당연한 느낌으로 어리버리 수용해선 안 된다. 확실한 것 하나만 견지해도 불확실성이란 단어는 충분히 무력화시킬 수 있다. 확실한 것 하나는, 실체 없는 불확실성과 뜬금 없는 불안감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극단, 알고리즘
예측, 알고리즘
[변화관리] 두려움 vs.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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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욕구와 백야 :: 2011/10/17 00:07

밤이여, 나뉘어라
정미경 외 지음/문학사상사


정미경의 단편소설 '밤이여 나뉘어라'에 아래와 같은 말이 나온다.

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지? 백야가 계속되는 동안은, 덧창 없이는 잠들 수가 없어. 밤이 없으면, 잠들지 않고 일하면 썩 훌륭한 인간이 되어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더라. 저 사람에겐, 자기 인생이 끝없는 하얀 밤처럼 느껴졌나 봐. 기억과 욕망이란, 신의 영역이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선택했겠지. 저 사람은, 그림자를 찾고 싶어 하는 거라고 생각해.


사람의 욕구는 무엇인가?
비즈니스는 소비자의 욕구를 이해하고 그것에 부합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런데, 그 욕구는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인간에 내재한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을 둘러싼 거대한 소비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소비자의 욕구는 인간의 안과 밖에서 생성되는 것 같다. DNA와 환경의 공진화라고나 할까. 소비자의 욕구는 온전히 소비자의 것도, 온전히 사업자의 것도 아닌 공동 창작물인 것이다.

사람의 욕구는 디자인되고 있다.
비즈니스는 소비를 먹고 산다. 소비 없이는 지탱될 수 없는 것이 비즈니스이기에 비즈니스는 끊임없이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하고 또 자극한다. 순수한 욕구가 존재하기 어려운 이유다. 사람의 욕구는 비즈니스에 의해 철저히 분절화되어 비즈니스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된다. 그건 일종의 가상 욕구이다. 소비자가 자신의 욕구라고 믿기 쉬운 욕구의 메뉴화.

허위 욕구가 범람하는 백야의 밤
비즈니스에 의해 재단되는 소비자 욕구는 더 이상 소비자를 숙면하게 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가공된 불안과 욕구라는 상품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 들인다. 희박해지는 자존감 속에서 소비자들은 자신의 것이라 믿는 허위 불안을 최소화하고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는 허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백야 행군을 지속한다. 분명 밤인데도 주위는 환하다. 환하니까 온전히 잠들 수가 없고 깨어서 뭔가를 걱정하고 뭔가를 충족시켜야 한다. 정미경의 단편소설 '밤이여 나뉘어라'에 나오는 천재 의사의 불면과 고뇌는 우리 모두의 일상일 수 있다.

허위욕구 직시와 불면 해소
내가 갖고 있는 허위 욕구의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정말 그것이 나의 욕구인지, 아니면 내가 그 욕구에 의해 지배를 당할 때 이익을 향유하는 자가 만들어낸 가공의 욕구인지. 나의 욕구를 직시할 때 백야는 흑야로 복원된다. 비즈니스는 세상이 온통 백야로 환해지기를 바란다. 백야는 허상이다. 허상은 직시될 때 허상임이 분명해진다는 속성을 갖고 있다. ^^




PS. 관련 포스트
좀비, 알고리즘
접속감과 세(勢)
real-time web의 늪
휴식감과 세(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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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 :: 2011/02/18 00:08

컨셉의 연금술사란 책에 아래와 같은 말이 나온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의도와 함께 시작된다. 자신의 의도를 갖고 의도대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컨셉이 선다. 개념, 즉 컨셉은 남이 해놓은 것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로 설정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확실히 증명된 바가 없지만 만물의 본질은 정보일 가능성이 높다.

모든 정보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광물도 모두 의도를 갖고 살아간다.
만물의 본질은 의도이다. 의도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의도는 우주만물을 작동시키는 에너지이다.
에너지는 물질이 되고 물질은 정보를 내포하고 정보는 에너지를 발산하고.

에너지, 물질, 정보.
세상은 에너지-물질-정보가 복잡다단하게 중첩하고 얽혀 들어가는 과정 자체이다.

에너지-물질-정보 간의 관계가 흘러가는 것. 그게 우주만물이다.

우주만물 속에서 나는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는 어떤 의도를 띠고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어떤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가?
정보로서의 나는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가?

나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하는 것.
그것은 정체성의 시작이자 끝일 수 밖에 없다.

'나'라는 에너지, '나'라는 물질, '나'라는 정보 간의 관계를 느끼고
그것을 어렴풋이 알아가는 흐름. 그것이 나의 인생이다. ^^



PS 1.
블로깅은 그 과정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블로깅은 '나'의 의도 그 자체이다. ^^

PS 2. 관련 포스트
혼자, 알고리즘
원격, 알고리즘
강박과 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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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

    Tracked from toms s | 2013/06/13 10:47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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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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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권 | 2011/02/18 09: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글을 읽고 이세상에 내가있어야 하는 목적성?을 되찾은거 같습니다~^^ 저도 제가가진 정보를 최선을다해 발산해 보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1/02/19 11:26 | PERMALINK | EDIT/DEL

      나의 의도를 파헤칠 때 나를 좀더 알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 BlogIcon 토댁 | 2011/02/20 20:3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우주 만물 속의 토댁!!
    은 어떤 컨셉을 가지고 있을까요?^^

    질문입니당..ㅋㅋ

  • jargon | 2011/02/24 12:0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의도와 함께 시작된다라고 생각한다면 이 우주와 이 우주가 운행하는 삼라만상의 법칙들이 지적설계론자들의 주장처럼 어떤 절대자의 의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라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스티븐호킹의 최근저서 Grand design을 읽어 보셨다면 혹시 그 관점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1/02/24 23:54 | PERMALINK | EDIT/DEL

      의도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양한 관점들을 관통하는 무엇인가를 계속 찾고 있나 봅니다. ^^

  • BlogIcon hahn | 2011/04/03 02: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몇년 전부터 벅샷님의 글 계속해서 읽어오고 있습니다. 글들이 일상적인 주제, 독서로부터 시작하지만 굉장히 심오한 통찰을 이끌어내는 것을 보며 지금껏 계속 감탄하고 읽어 오고 있었습니다. 너무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저는 웬지 "울림" 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60년대 영국 리버풀 어디엔가에서 녹음된 비틀즈의 "let it be"를 듣는데.. 히야.. 이게 무슨 놀라운 체험인가. 50년 전 영국 어딘가에서 레코드판에 자기적으로 기록된 소리 정보가 0과 1의 비트로 바뀌어 앱스토어에 실려있다가 인터넷의 망을타고 내 아이폰에 싱크되었다가 다시 이어폰의 소리판을 때려 공기에 울림을 만들어 내 귀에 들어오는 과정.. 50년의 시간과 영국과 한국 사이라는 공간을 가로질러 let it be라는 메시지가 나한테 오기까지..... 이 과정을 실감하자니.. 드는 생각은 딱 하나더군요. 아.. 이게 비틀즈가 나한테 말을 거는 방식이구나.. 메시지는 "울리는 것"이구나. 정보는 어쩌면 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웬지 울린다고 하니.. 송맹동야서도 떠오르네요. 첨부해 봅니다. ^^ http://osj1952.com.ne.kr/interpretation/bgomunjinbohojip/dl/037.htm

    • BlogIcon buckshot | 2011/04/04 21:48 | PERMALINK | EDIT/DEL

      조악한 포스트를 올리고 귀한 댓글을 받는 심정.. 죄송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만물은 진동하나 봅니다. hahn님의 댓글이 계속 제 안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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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과 BM :: 2011/02/11 00:01

자본의 의도가 몸에 깊숙이 개입된 지금, 몸에 대한 미학적(?) 관심은 점점 그 열기를 더해간다. 분명 우린 몸보다 몸매가 훨씬 더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

알게 모르게 우린 정량화된 수치로 이상적 바디를 규정하고 그 바디라인에 들어가고 싶은 갈망과 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슬림하고 매력적인 바디를 가꾸고 싶어 하는 강박.

근데 슬림하고 매력적인 바디라인을 가꿔야 한다는 강박의 최대 수혜자는 몸매의 소유자라기 보단 그 강박을 통해 돈을 버는 슬림바디 관련 BM이라고 봐야 한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인간의 꿈과 욕망 속엔 시장이 주입한 시장 이기주의적 논리들이 너무도 깊숙히 침투해 있다.

BM은 인간의 꿈과 욕망을 디자인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꿈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아마 대부분은 우리 자신 속에서 자라나는 꿈이기 보단 비즈니스/시장의 니즈에 의해 인위적으로 정교하게 구성된 가상 꿈일 가능성이 높다.  그건 꿈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강박인 것이다. BM은 봉(소비자)에게 강박을 주입하고 자본주의적 꿈을 주입한다. 그 꿈에 알게 모르게 주입된 자는 그 꿈이 자신의 꿈인 줄 착각하고 그것을 소중하게 가꿔 나가고 그것을 실현시킬 날만을 학수고대한다.


원격, 알고리즘 (2009.2.11)
유전자는 영속성을 추구한다. 유전자가 시간적 제약 때문에 인간의 몸 속에서 수동적인 존재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그 수동성이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인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능동적으로 모든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착각을 갖게 하는 것이지 사실 인간을 통제하는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프로그램적 입력은 이미 뇌 속에 심어졌고 그것을 통제하는 강력한 사령관이 유전자일 수 있다.
유전자가 영속성을 강력하게 추구하듯, 비즈니스도 영속성을 강력하게 추구한다. 유전자가 인간을 리모콘 조종하듯 유린(?)하듯이, 비즈니스도 인간을 요리(?)한다. 

인간은 살아 가면서 자신이 대부분 주요한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유전자가, 실은 BM이 막후에서 인간의 의사결정을 유도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 현실을 직시하고 실질적인 주도권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 속에 인생의 맛이 있지 않을까 싶다. 강박과 BM은 찰떡궁합이다. 내가 갖고 있는 강박 속에는 어떤 BM이 내재하고 있는가? ^^


PS. 관련 포스트
뚱섹,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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