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자'에 해당되는 글 7건

존재부재 :: 2017/02/03 00:03

존재를 부재하다고 생각하는 것
존재와 부재는 백지 한 장 차이

부재를 존재라 생각하는 것
부재에서 존재로, 존재에서 부재로의 흐름은 파동과도 같은 것

존재라는 허상
부재라는 환상

존재와 부재는 서로를 보완하는 상호 의존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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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2016/06/06 00:06

흥미로운 내용의 책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책을 사려고 도서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는데 그 책은 품절이었다.
허탈한 마음에 책 소개 내용을 자세히 읽어본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 옳았다는 생각이 진해지면서
책을 향한 갈망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책이 만약 품절이 아니었다면 그 책을 구입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품절이란 걸 알게 되니까 없던 결핍감마저 생겨나는 지경이다.

만약 그 책이 품절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았다면..
내게 있어 그 책은 수많은 책들 중 하나 정도에 불과한 그런 밋밋한 존재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품절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존재감.
부재는 존재만큼이나 강력한 이벤트이다.
존재는 부재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존재들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애처로울 정도의 몸짓을 지속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을 알리기 위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그런 무리수들이 겹겹이 남루한 층위를 이루면서 존재는 더 이상 존재답지 않은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냥 살아가는 것.
그냥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결로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
티를 내려고 하지 않고,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과정 속에서 죽어가는 게 아니라 존재를 굳이 증명하지 않으려 하는 태연함.
그 속에서 존재감을 스스로 느끼는 것.

존재라면, 이 세상을 존재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런 자세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존재가 존재를 알림으로 인해, 존재를 돋보이게 함으로 인해 증명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하면 할수록 존재감은 희미해진다는 것.
존재는.. 표현하려고 애쓰는 허무한 몸짓들을 제하고 남은.. 표현하지 않아도 저절로 표현되는.. 그런 자연스러운..
밖을 향하지 않는.. 그런 것들로 구성되는 듯 하다.

품절된 책을 접하게 되면서,
굳이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아도 그 책을 존재로 인지하는
나 자신이 존재임을 인식하는 시간들.
책 한 권의 품절을 통해 존재를 어렴풋이 배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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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자 :: 2016/05/13 00:03

입자가 만물을 구성한다면
입자는 물질이기만 한 것일까

생각은 입자가 아닌지
생각이 입자라면,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인지

형태를 물질적으로만 규정하지 않는다면
나의 생각은 어떤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나의 생각을 구성하는 입자들은
나의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의 생각 흐름이 하나의 소설이라면
내 몸의 흐름이 또 하나의 소설이라면
그 두 소설을 연작소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작가적 관점은 어떤 색깔을 지니고 있는지

그렇다면
내 생각의 건강과
내 몸의 건강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내 마음의 병과
내 몸의 질환 사이엔 어떤 긴장이 존재하는지

나를 구성하는 형태적, 비형태적 입자들을
모두 망라하고 포괄하는 메커니즘은 무엇인지

나의 의식은 어디까지로 규정될 수 있는지
내 의식이 흘러갈 때 내 몸은 어떻게 공명하는지

이런 질문들이 내 안에서 생성될 때
내 안에선 어떤 변화가 시작되는 건지

이 모든 것이 궁금하고
이것들은 모두 답변되기 어려운 미지의 비밀과도 같은 신비함으로
오늘 이 순간에도
내일 어떤 순간에도
과거의 어떤 시점에도
우아하게 스며든 채
그렇게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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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만화다. :: 2012/06/18 00:08

신의탑을 읽다가 느낀 점.

만화는 '칸'과 '사이'로 이뤄진다.

만화를 읽는 독자는 만화를 구성하는 수많은 '칸'들을 본다. 칸은 정지된 '상'이다. 정지된 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면서 flow를 표출하게 된다. 독자는 칸과 칸으로 이어지는 토막그림들을 보면서 칸과 칸 사이의 빈 공간을 스스로 메우면서 만화를 소비한다. 정지된 그림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상그림을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창출하면서 연속된 영상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나름 심대하다. 어디 만화만 그럴까.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만화의 '칸'과 '사이'처럼 작동한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텍스트도 만화와 같다. 독자는 글자와 글자로 이어지는 토막 텍스트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가상의 텍스트를 생성한다. 저자의 토막 글들과 독자가 생성하는 가상의 토막 글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연속된 스트림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독서다.

세상은 텍스트다. 세상을 구성하는 만물은 모두 텍스트이다. 사람은 칸과 칸 사이를 호흡하고 칸과 칸 사이를 걸어가면서 칸과 칸 사이에 숨겨진 코드들을 의식/무의식적으로 해석하고 반응한다. 사이는 일종의 진공이다. 진공은 텅 빈 공간으로 일축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진공은 우리 인지체계로 파악이 되지 않을 뿐 분명 뭔가를 함유하고 있고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다. 만물의 기본은 원자도 아니고 소립자도 아니다. 만물의 기본은 진공이다. 거대한 진공 속을 유동하는 칸들. 칸과 칸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진공은 만화 속에도, 텍스트 속에도 세상 속에도 존재한다. 진공의 색깔, 진공의 냄새, 진공의 소리를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은 끊임없이 진공과 대화하고 교감할 수 밖에 없다.

만화를 읽으면서 '사이'에 집중하는 경험. 사이를 보면서 칸을 지워나가는 경험. 사이를 들으면서 칸에 둔감해지는 경험. 사이를 관찰하면서 사이의 존재감을 느낄 때 칸은 파동이 되고 사이는 입자가 된다. 입자를 파동으로 보고 파동을 입자로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만화는 칸의 구성체가 아니라 칸,사이가 모두 가시화된 구성체가 되고 칸,사이가 모두 흐릿한 구성체가 된다.

만화를 보다가 별 생각을 다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만화는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매체임이 분명하다. 제약은 한계를 낳고 한계는 내공을 낳고 내공은 세계관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나 보다. 만화에 내재한 한계가 만화에 본질이 착상되는 것을 용이하게 했을 것이다. '사이'를 인지하게 해준 만화에게 감사를 느낀다. ^^




PS. 관련 포스트
신의 탑을 정주행하다
공간 지각력 = 공간 창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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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tore

    Tracked from toms store | 2013/06/13 10:56 | DEL

    Remarkable! Its really remarkable Read & Lead - 세상은 만화다., I have got much clear idea concerning from this article.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0:56 | DEL

    Hi there I am from Australia, this time I am watching this cooking related video at this %title%, I am in fact delighted and learning more from it. Thanks for 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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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 2011/08/24 00:04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역시
리처드 도킨스의 '무지개를 풀며 (Unweaving the rainbow)'를 읽지는 않는다.

그리고 올해도 역시 단지 책 제목만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2011.8.24)

비밀 코드를 해독할 때, 세상의 이치를 밝혀내기만 하는 건 아니다.
밝혀낸 만큼 비밀 코드 속으로 숨는 뭔가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진공은 무엇일까? 정말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진공은 우리 인지체계로 파악이 되지 않을 뿐 분명 뭔가를 함유하고 있고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다. 만물의 기본은 원자도 아니고 소립자도 아니다. 만물의 기본은 진공이다.

원자 이하 레벨로 아무리 내려가봐야 얄미운(?) 소립자와의 기약 없는 숨바꼭질만 반복하게 될 지도 모른다. 만물의 본질은 입자를 통해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만물의 본질을 파헤치려면 진공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그건 과학의 영역이 아닐 수도.

글로 뭔가를 표현할 때는 표현되지 못한 뭔가가 표현된 글의 이면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건 마치 입자와 진공과의 관계와도 같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체만 실재로 판단할 뿐, 그 물체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나누는 진공의 존재를 항상 잊고 살아간다. ^^


PS. 이윤하님의 트윗 멘션

가능성이 아직 원자도 현상도 되지 않은, 슈뢰딩거의 1/2 고양이의 공간, 빛이 탄생하지 않은, 아원자의 세계. 무한하고 영원한, 없지만 있는 세계. 경계이전의 공간.

빛이 있으면 꼭 그림자가 있죠. 빛 이전의 무엇이 바로 그 '진공'의 세계겠죠? 아이슈타인이 빛보다 빨리 뛰어 빛 앞에 서면 무엇이 보일까 궁금해했다는데, 리드리드님도 비슷한 생각중이시군요 ^^



해독과 신념. 그리고 종교.  (2010.11.5)

무지개를 풀며
리처드 도킨스 지음, 최재천.김산하 옮김/바다출판사


서점에서 우연히 리처드 도킨스의 '무지개를 풀며 (Unweaving the rainbow)'를 접하게 되었다.

Unweaving이란 단어에 눈길이 간다. 예전에 읽은 '다윈의 식탁'이란 책이 떠오른다. 위대한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 박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생물학계의 최고 지성들이 진화론에 대해 한바탕 대 설전을 펼치게 된다는 '가상 논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생물학계의 거성들은 진화론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를 중심으로 양쪽 진영으로 나뉘어져 1주일 간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게 된다. "강간도 적응인가?",  "이기적 유전자로 테레사 수녀를 설명할 수 있나?",  "유전자에 관한 진실을 찾아서",  "진화는 1백미터 경주인가, 넓이뛰기인가?",  "박테리아에서 아인슈타인까지"  등의 주제를 놓고 리처드 도킨스 진영과 스티븐 제이 굴드 진영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그 동안 쌓아왔던 자신들의 이론과 자존심을 걸고 팽팽한 의견 대립을 선보인다.

'다윈'이란 코드를 각자의 생각과 방식으로 unweaving하기 때문에 그 결과물은 저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 다른 결과물들에 자신만의 신념과 열정, 그리고 자존심을 듬뿍 실어 결정적인 이견이 발생할 때 격렬한 사상(?) 논쟁을 하고 있는 모습. 생물학자들은 다윈이란 성전(聖典)을 해독하고 다윈에 대한 각자의 신념을 저작하고 있으며 서로 사상이 맞지 않을 땐 격한 자존심 전쟁을 불사한다. 다윈은 가장 핫한 현대 종교다.


비밀스런 코드를 해독한다는 것.
비밀을 하나 둘 파헤쳐 가는 과정 속에서 가설과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발전하게 되고 그것을 코드 해독에 결부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신념은 형성되게 마련이다. 신념은 자가증식의 경향이 있어서 계속 그것을 강화시키고 확장시키려는 노력을 수반하게 된다.

비밀코드와 신념은 공생 관계다. 바로 이 기반 위에서 종교계의 교리 싸움이 작동하고, 과학이란 또 다른 종교계의 교리 싸움이 동작한다.

해독은 신념과 만나 교리를 낳는 메커니즘이 과학에서 매우 왕성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관전 포인트들이 앞으로 마구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다고나 할까. ^^


PS. 관련 포스트
해독과 신념. 그리고 종교.
다윈,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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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기와 담기기 :: 2011/06/15 00:05

관찰은 담기이다.
나만의 생각 프레임(컨테이너) 안에 관찰 대상을 담는 것이다.

관찰이 담기이기 때문에,
관찰은 대상과 거리를 두고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라기 보단
대상을 컨테이너 안에 끌어들여 대상을 변화시키는 것에 더 가깝다.

언제부턴가 세상 전체가 나에게 책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컨텐츠가 더 이상 컨테이너 속에 박제된 형태로 존재하기 보다는 컨테이너라는 '막'을 끊임없이 투과하고 유동하는 동적 평형 상태에 놓이게 됨을 의미한다.

컨테이너는 컨텐츠를 견고하게 가두면서 가치를 발현한다. 컨텐츠는 컨테이너를 자유롭게 투과할 수 있는 '막'으로 정의하는 순간 강력한 가치를 획득한다. 컨텐츠와 컨테이너의 관계가 atom적이면 컨테이너가 돋보이고, quantum적이면 컨텐츠가 돋보인다.

언어도 일종의 컨테이너다. 안개와도 같이 뇌리를 맴돌며 말로 잘 표현이 되지 않는 그 무엇. 그건 언어라는 컨테이너 안에 담기 어려운 양자(quantum)적 컨텐츠를 의미한다.

'나'는 무엇을 담을 수 있는 컨테이너인 동시에 무엇에 담길 수 있는 컨텐츠이기도 하다.
내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나는 무엇 안에 담길 것인가를 정의하고 그것을 관리해 나가는 것.

내 안에 무엇을 담지 않고 그저 무엇 안에 담기기만 한다면 '나'는 입자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담기는 동시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 널린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기는 안습을 면할 수 있다.

구글이란 '검색 네트'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 페이스북이란 '소셜 네트'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 기술/미디어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 자본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 Quantum-Self. ^^

관찰은 담기이다.
나만의 생각 프레임(컨테이너) 안에 관찰 대상을 담는 것이다.



관찰과 상상 (2011.5.6)

관찰력은 상상력과 맞닿아 있다.
관찰을 잘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역동적 상상력을 가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관찰은 상상과 재구성(일종의 창조)의 영역이다.

관찰은 현상을 사진 찍듯이 내 머리 속으로 입력시키는 것이 아니다.
현상에 대한 나만의 해석을 내 머리 속에서 구성해 내는 것이다.
관찰은 입력 보다는 생성에 가까운 개념이다.


무엇인가를 관찰할 때,
관찰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나만의 해석 간에는 반드시 간극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 간극의 유형이 관찰자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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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 알고리즘 :: 2008/11/19 00:09

부제: 모든 생성은 분자적이다. 2 - 인간 플랫폼


천 개의 고원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천 개의 고원에 나오는 아래 문구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분자적 생성의 예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사람의 피부,손톱,모발은 끊임없이 생성되면서 옛 것을 밀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표층 뿐만 아니라 신체의 다른 장기/조직에서도 역동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얼핏 고정적인 구조처럼 보이는 뼈/치아에서조차 내부에선 끊임없는 분해와 합성이 반복되고 있다. 무수히 많은 원자들이 생명체 내부로 흘러 들어왔다 생명체 내부를 빠른 속도로 흘러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6개월 만에 만난 친구는 6개월 전에 보았던 그 친구와는 분자적 차원에선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생명은 끊임없는 분자의 생성과 소멸의 반복적 동적 흐름 그 자체이며 그 동적 흐름의 평형 상태가 너무도 잘 알아서 유지되고 있어서 생명체는 그 흐름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관념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 있는 사람의 기억/믿음/욕구도 뇌 신경세포들과의 상호 연산작용을 통해 생물학적으로 생성된 물질로써 에너지와 정보의 형태로 몸 안을 타고 흐르고 몸 밖으로 나가서 어떤 대상과 통하는 메커니즘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선 안에서 통할 수 있고 밖으로 통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신체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흐름과 연결이 인간의 핵심인 것이다. (Birth & Death에서 입자 추출하였음)

물질은 그것과 연결된 수많은 다른 물질들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수많은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는 확률적 존재이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물질과 접속하고 만나는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된다.  '입'이 성대와 접속하여 소리의 흐름을 절단,채취하는 경우엔 '말하는 기계'가 되고 식도와 접속하여 영양소의 흐름을 절단,채취하는 경우엔 '먹는 기계'가 되듯이 욕망/의지/접속항이 달라짐에 따라 전혀 다른 기계로 작동한다는 것은 모든 물질들은 네트워크 상에서 접속과 관계에 의해 다양한 실체로 확률적 생성과 변이를 거듭하는 흐름을 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에서 입자 추출하였음)

세상만물이 분자적으로 생성되는 흐름 속에 존재한다면,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Everything Flows가 결국 대세라면,  내가 관심 갖고 있는 '마음'이란 주제에도 비슷한 프레임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마음은 내 안과 타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무엇 사이에 유영하는 흐름 자체인지도 모른다. 물과 정보가 흘러갈 때에만 가치가 있는 것처럼 마음도 무엇과 무엇 사이에서 끊임없이 흐를 때 의미가 있는 것일 수 있다. 마음은 계속 흐르는 것이고 그 흐름을 인식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괴로움/결핍에서 벗어나고 신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이 신과 접속되어 있음을 상기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르틴 부버 - 나와 너에서 입자 추출하였음)

마음에 비해 뇌의 경우 과학적 탐구가 상대적으로 많이 진전된 상황이다. 뇌는 컴퓨터처럼 생명 없이 뻣뻣하고 건조한 기관이 아니라 축축/출렁거리는 살아 있는 기관이다. 피와 물은 차치하고라도 60종에 달하는 호르몬들이 뇌 안에서 회전하고 있다. 이 호르몬들은 우리가 행동하고 느끼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뇌는 흐른다. 약간의 화학물질이 뇌에 작용할 경우, 우리의 정서와 행동을 바꿀 정도로 우리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평소에 별로 말이 없던 사람이 와인을 원샷하고 갑자기 달변으로 돌변하는 경우는 알코올이 흐르는 뇌에 영향을 주고 있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흐르는 뇌에서 입자 추출하였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 실은 호르몬 화학반응의 결과이고 이 메커니즘만 정확히 인지하면 인위적인 조작을 통한 정교한 재현이 가능하다면.. 행복이란 감정도 결국 화학반응의 결과이고 이 반응에 대한 이해/통제가 가능하다면.. 인간만이 느낄지도 모르는 고도의 의식이 결국 물질에서 창발한 놀라운 생물학적 현상이라면 인간이야말로 최고의 복잡계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고도의 컴퓨팅 기능을 수행하는 인간이 게놈 속 유전자 개수 관점에선 지렁이와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매우 재미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같은 개수의 문자를 포함하는 전화번호부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결국, 정보의 핵심은 단순히 비트의 개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트 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정보의 핵심에서 입자 추출하였음)

사람이 수행하는 육체적/정신적, 미시적/거시적인 활동을 모두 분자적인 생성 흐름이라고 볼 수 있고 그 흐름을 통해 사람은 정보를 생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정보들은 사람 안에서 비트 간의 관계를 형성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물리적/관념적 정보는 사람 안에서 정교한 동적평형 흐름을 유지하면서 빠른 속도로 유입/유출되고 있는 것이라면 사람은 일종의 정보 유통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흐르고 시공간 속을 흘러 다닐 때, 사람은 정보를 생성하고 정보는 시공간을 변형시키고 시공간은 사람 속에 존재하게 된다. 결국 인간 개개인의 마음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된 컴퓨터 터미널과도 같다. 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는 인류의 의식 자체이고, 우리 자신의 의식은 단지 모든 인류의 공통된 의식에 뿌리를 둔 데이터베이스의 개인적인 표현일 뿐이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실로 비범한 데가 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 데이터베이스에 참여한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이 천재적인 데이터베이스를 열람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그 데이터베이스에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곤 했다. 우리 어른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렸을 뿐이다.  (마음은 데이터베이스에 접속된 컴퓨터 터미널과 같다에서 입자 추출하였음)

상호작용을 통해 분자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대표적인 케이스로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를 들 수 있다. 발의 확장인 자동차와 귀/입의 확장인 핸드폰은 이미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을 고도로 자동차화, 핸드폰화 시켜가고 있다. 도구로 사용하면 결국 도구에 의해 사용 당하게 된다. 측정을 하면 측정 당하고 지배를 하면 지배 당한다. 측정과 지배라는 상황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그 상황 속에 매몰될 때 일어나는 역작용은 이제 예사로운 현상이 되어 버렸다. 생명의 본질이 유입/유출, 삶/죽음의 끊임없는 동적평형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생명 플랫폼 상에서 생명체를 지배하는 알고리즘의 작동을 관찰하고 이해하고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확장 2에서 입자 추출하였음)

인간 뇌의 발달과 궤를 같이 하는 현대문명의 발달은 과거를 '오래된 미래'로 규정하고 그리워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류 진화의 방향은 어쩌면 고도화를 가장한 삑사리일지도 모른다.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명체는 뇌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뇌를 쓸 일도 없다는 거... 최고의 개체수를 자랑하는 박테리아는 단세포 생물로서, 다세포의 신호체계나 복잡한 행동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도 당당하게 생존하고 있다. 무능력하게 보이는 외관과는 정반대로 박테리아는 북극의 툰드라에서 부글거리는 유황 온천까지 생태학적으로 적합한 모든 장소에서 적응해왔다. 뇌는 단지 자신의 생존을 위한 고도화만 거듭해 온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관점에선 무수히 많은 삑사리를 범하고 있는 게 뇌가 아닐까?  (나는 운동한다. 고로 나의 뇌는 존재한다 에서 입자 추출하였음)

지구상에서 가장 고도화된 생명체인 인간.. 플랫폼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아직 너무 부족하고 글재주가 부족하여 오늘은 여기까지만 적어야 할 것 같다. 완전 잡문이다.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한 생각을 계속 발전시켜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



PS. 관련 포스트
모든 생성은 분자적이다. 1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2 - Compilation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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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008/11/19 08:0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생성과 관련없는 내용도 많이 있네요 -_-;;;;

    • BlogIcon buckshot | 2008/11/19 08:51 | PERMALINK | EDIT/DEL

      각 단락 끝에 흐릿한 글씨로 씌어져 있는 부분을 보시면,
      모두 어디선가 입자를 추출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제 블로그 포스트들을 보면, 이런 식의 입자추출(생성)이 굉장히 많다고 느껴서 생성을 주제로 한 금번 포스트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

  • BlogIcon idea | 2008/11/20 10:0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정말 고도의 포스팅을 하시네요.. ^^
    저는 마지막 단락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되는데요.. ;;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고도화되었다고 인간은 생각하고, 주장하지만, 사실 지구에서 인간은 박테리아(바이러스)가 살기 가장 좋은 플랫폼으로서만 존재할 뿐인건 아닐지.. 상상해 봅니다.
    실제 지구의 주인은 박테리아님들이고.. 인간은 그 삶의 터전에 불과한데.. 인간이라는 박테리아 생존 플랫폼이 너무 요상하게 진화해서 지능이 발달함에 따라 과학과 산업이 발달하고 .. 결국엔 지구의 환경자체를 변화시키게 된 것은 아닌지... 하지만.. 인간과 달리 박테리아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다는..
    박테리아는 또 적응하면 되니까..

    • BlogIcon buckshot | 2008/11/21 00:04 | PERMALINK | EDIT/DEL

      idea님.. 인상적인 가설이십니다..
      인간 자체가 박테리아의 생존 플랫폼이다.
      그런 인간의 뇌의 발달이 자연에 적응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서투르게 자연을 변화시키는 모습.. 그것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박테리아의 자연 적응력..

      비교 자체가 의미없을 수도 있겠지만..
      누가 더 나은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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