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에 해당되는 글 10건

:: 2017/06/09 00:09

난 시를 읽지 않는다

소설은 읽어도 시는 읽지 않는다
그냥 소설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시를 보면 잘 읽히지 않는 듯 했다
왠지 나와 맞지 않는 무언가로 생각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시집 한 권을 주문했다.
종이책이 도착했다.
그 종이책을 가만히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갔다.

계속 흘러갔다

책상 위에 놓인 시집을 본다
여전히 나로부터 먼 위치에 그것은 놓여져 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지만
여전히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손을 뻗을 수가 없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다
여전히 먼 존재였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시간이 흐르면 공간에 변화가 생긴다

나와 시집을 둘러 싼 공간 속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다

나는 시집에 시선을 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시집을 손에 쥔다

책을 펼친다
시 한 편을 읽는다

거의 처음으로 읽는 시의 문장들
그렇게 나는 시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

우주 속 멀리 떨어진 수백억 광년과도 같은
멀고 먼 어딘가에서 시집 한 권이 나에게 다가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거리가 좁혀졌다

사물은 움직인다

내 마음도 움직인다

결국 만나게 될 것은
만나게 된다

오늘 나는 시를 만났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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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레이블 :: 2017/04/28 00:08

시간과 관련된 레이블이 붙어 있는 것들에 시선이 간다.
월간지, 계간지, 주간지, 일간지..
모두 시간을 머금고 있는 간행물들이다.
그렇게 시간을 머금고 있다 보니
시간 속에 갇혀 있게 되는 동시에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근거를 갖게도 된다.

시간의 일부를 이름으로 갖게 된 것들

그걸 보면서
그것에 대해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이름처럼 적혀진 그 시간대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이동된 시간의 트랙을 따라서 특정 시간으로의 랜딩을 하면서
그 시간 속으로 이동한 시간여행자의 풍모를 띠어 본다.

특정 시간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면
그 시간대는 결코 흘러간 과거의 시간으로만 머물진 않게 된다.
현재로부터 과거를 소환할 때, 과거는 현재로 소환되면서 현재를 변화시킨다.
과거로부터 현재가 영향을 받을 때, 현재는 찰나처럼 흘러가는 시간 구름이 아닌
과거로 이어지는 선을 형성하면서 그 선을 따라 어떤 생각 흐름이 나오게 될 지 예측 불허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시간의 레이블이 붙어 있는 것들은
그렇게 마법과도 같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런 것들이 책장에 많이 위치해 있다. 책장에 문학 계간지들이 많이 보여서 좋다.
나의 책장은 특정 시간대의 집합체로 어느새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런 공간 속에서
다양한 시간대들은 계속 나를 향해 자신을 호출해 달라고 조용히 묵묵히 기다림을 지속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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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감 :: 2016/12/21 00:01

물리적 관점에서
나의 삶은 내가 위치했던 좌표와 내가 이동했던 좌표 간 거리로 규정된다.

내가 생성하는 물리적 이동.
좌표와 경로
노드와 링크

그런데..
내가 어떤 좌표에 위치했다는 건
내가 그 좌표를 제외한 나머지 수많은 좌표들을 배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내가 좌표와 좌표 간 이동을 했다는 건
내가 그 이동경로를 제외한 나머지 수많은 이동경로의 가능성들을 선택 선상에서 제외했다는 것을 내포한다.

존재로 삶의 궤적을 형성한다는 건
삶의 궤적을 제외한 다른 영역에 대해서 부재를 태깅하는 것이다.

존재로 살아간다는 건
부재로 비워 두는 곳을 규정하고 그 곳을 부재감으로 채워 나가는 일이다.

존재감은 부재감으로 규정된다.

부재란 무엇일까.
왜 부재하는 것일까.
왜 편재의 틀 속에서 수많은 부재를 생성하게 되는 것일까.

표현과 은닉 사이에서
선택과 배제 속에서
존재와 부재 간을 끊임없이 오가는 것

그게 또 하나의 삶의 궤적일 듯 싶다.

존재와 부재..
그것들은 노드들이고
노드들 간의 보이지 않는 이동경로.

물리적 경로가 아닌
또 다른 차원의 링크

그 링크가 뭔지 알아가는 과정
그것도 또 하나의 이동경로

나의 현재 위치
나의 현재 동선
그것들의 흐름 속에서 나의 부재가 서사로 펼쳐진다.

그리고
그걸 어렴풋이 느끼는 것
그게 부재감이다. ㅋㅋ



PS. 관련 포스트
좌표와 이동
망각과 복원
숨겨진 비밀
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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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와 이동 :: 2016/12/19 00:09

시간이 흐르는 삶 속에서 물리적 동선이 형성된다.

자주 가는 장소와
자주 이동하는 경로는
좌표와 좌표 사이를 이동하는 선의 궤적처럼
시간이 흐르는 삶 속에서의 물리적 이동으로 축적된다.

각각의 좌표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고
이동하는 경로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으니
좌표와 좌표 간의 물리적 이동은 일종의 반복처럼 느껴지고
그렇게 쌓여가는 반복감 속에서 일상은 더욱 강화된 삶의 궤적처럼 패인 홈을 구성하게 된다.

동일한 것처럼 보이는 일상
그런 일상 속에서 쌓여가는 감정
삶은 그렇게 구성되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좌표와 좌표 간 이동으로 규정되는 삶의 궤적
그런 궤적 속에서 생성되는 사고와 행동
궤적이란 맥락 속에서 국한되고
패인 홈이란 프레임 속에서 형성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가 위치했던  물리적 좌표와 내가 이동했던 물리적 경로만 쭉 나열해 보면
나의 지나온 시공간들이 물리적으로 리스트업되는 것인데.

그렇게 흘러온 나의 물리적 삶.
그것들만 잘 돌이켜 보아도 내 삶이 잘 보일 듯 싶다.

하나의 좌표가 품고 있는 의미와
하나의 이동경로가 품어 내는 서사가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말을 걸어올 거라서 말이다. :)

좌표와 이동..
나도 모르게 형성되어 왔던, 수많은 좌표와 이동경로 속에서의 나.
분명 흘러온 시간이고 지나온 공간인데 왜 이렇게 궁금한 것인지.
왜 이리도 설레이는 것인지..

그리고 이런 소박한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블로그 포스트 입력창이 왜 이렇게 고마운지.

놀라운 감정의 연속.
오늘도 내가 위치한 좌표와 내가 움직이는 이동 경로는
그렇게 소박하게 형성되고 수줍게 의미를 감춰낸다.

의미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의미는 숨어들어간다.
그렇게 감춰지는 비밀과
어설프게 표현해낸 텍스트 속에서
노드와 링크는 오늘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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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 :: 2016/09/09 00:09

돈을 쓰고
비행기나 차를 타고 멀리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 여행이라면
여행은 너무 협소하게 정의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여행 중이다.

한 자리에 앉아서 여행을 한다.
공간은 고정되어 있다.
여행의 기본 전제 조건인 공간 이동이란 개념을 일단 허물어 놓고 여행을 시작한다.

공간 이동이 아니라
시간 이동을 한다. 나는 지금 여기서.

공간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나는 시간을 이동한다.

시간 이동은 타임머신 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간이동은 타인이 정의해 놓은 프레임 속에서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내가 시간이동의 요건과 양태를 정의하면 된다.
시간은 그런 것이다. 누가 정의해 주는 것이 아닌
바로 내가 느끼고 내가 살아나가는 흐름이 시간이다.

내가 정의한 시간이라면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움직일 수 있다.

나는 지금 2016년을 살고 있고
시간적 위치를 옮겨 본다. 2016년에서 2006년으로..

내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까 말까 망설이던 그 지점으로..
2006년 9월의 나.  블로깅을 시작하기 전의 나.

그 시절의 나를 찾아가서 말을 걸어본다.
지금의, 2016년의 나를 어떻게 예상하고 있냐고..

2006년으로 이동해서 2016년의 나를 예상해 본다.
과연 나는 10년 후의 나를 어떻게 그려내고 있었을까.

2006년의 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섣불리 하지 못한다.
여러가지 변수가 있다 보니 예측을 쉽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잠깐 생각을 해보겠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2006년의 나는 지금 시간 이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10년 후인 2016년으로 날아가서 그 지점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2006년의 나를 바라보면서
2016년의 나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2006년의 나는, 그 시절의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었는지
2006년의 내가 내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2016년의 내가 2006년의 마음을 먼저 맞춰보고 싶어졌다.

분명한 건..
난 이런 식의 여행을 20년 전에 꿈꾸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20년이 지난 2016년의 나는, 10년이 지난 2006년의 나는
알지 못할 설레임에 빠져 뭔가를 적고 싶은 기운을 끊임없이 느끼고 있었고
그 기운은  결국 우리 둘을 서로 만나게 했고
둘은 대화를 하게 되었고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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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 2016/06/20 00:00

자전거는 페달을 밟은 만큼 움직인다.
페달 밟기를 멈추면 자전거의 속도는 줄어든다.
어김없이 페달을 다시 밟아야 한다.
자전거를 오래 탄다는 것은 페달 밟기를 오래 했다는 의미다.

나는 운전을 못한다.
차를 운전해본 경험은 없지만, 자전거를 타다 보면 자동차가 어떤 존재라는 것에 대해 약간 감이 온다.

문명의 이기 관점에서 자동차가 자전거보다 훨씬 더 우월한 존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 자전거를 타면서 드는 생각은..

하체 운동을 한 만큼 자전거는 움직인다는 것이고
자동차는 하체운동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스스로의 동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동차는 인간 신체의 확장이라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신체의 확장이 아니라 신체를 실어나르는 기구일 뿐이다. 자동차를 타고 아무리 많이 이동을 해봐야 신체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신체와 자동차는 분리. 따로 노는 두 존재. 신체는 자동차를 신체로부터 소외시키고, 자동차는 신체를 운동으로부터 소외시킨다. 자동차는 운동을 하고, 신체는 자동차에 올라타 있을 뿐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자동차를 운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운다.

확장성이라는 것.
손을 안대고 코를 푼다는 것.
알아서 뭔가를 해준다는 것.

그런 것들은 다 인간을 소외시키는 속성을 띠고 있다.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인간에게 가치를 준다는 지향점을 갖고 있으나 실상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들이 세상엔 참 많다.

자전거를 탈 때 기분이 좋아지는 건, 수많은 인간 소외의 현장에서 쌓인 소외감을 자전거 타기를 통해 살짝 해소할 수 있어서인 듯 하다.

페달을 밟은 만큼 움직일 수 있도록 고안된 자전거. 그 어떤 테크놀로지의 향연보다 더 화려한 메커니즘이다. 신체 운동의 입력에 비례해서 얻어지는 출력. 그 매력을 느끼면서 타는 자전거. 경제적이고 건강에 좋은 무해 이동 기구. 멋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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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6/06/21 04: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여전히 탁월한 통찰이세요. 맑스가 이야기했던 "자본가의 생산수단의 독점에 의한 노동자 소외"도 그때의 언어로 그렇게 재미없게 설명되서 그렇지, 사실은 궁극적으로 오늘날과 같이 테크놀로지가 점점 인간을 대체해가는 상황을 가리킨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언젠가는 결국 허물어지게 될거라고 믿지만, 말씀하신 소외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동시에 그만큼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네요.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개인적으로 감명깊게 보았던 이 TED 토크도 생각나구요. https://www.ted.com/talks/susan_blackmore_on_memes_and_temes?language=en (못보셨다면 buckshot님이 분명히 좋아하실 내용일 거라고 적극추천드려요 ㅎㅎ)

    자전거 타실때 꼭 미세먼지 조심하세요 ^^

    • BlogIcon buckshot | 2016/06/24 11:25 | PERMALINK | EDIT/DEL

      추천해 주신 TED 토크. 넘 좋은데요.
      계속 보고 있어요.
      이걸 기반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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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서 :: 2016/02/05 00:05

택시에서
난 좌표가 된다.
스스로 좌표가 되어 궤적을 그리면서 나아간다.
내가 형성하는 동선 상에서 난 선형 유기체로 작동한다.

택시와 내가 함께 만들어가는 선형 곡선은
삶의 궤적을 축소해 놓은 모습일 것이다.

택시에서 내려도
난 여전히 택시에 타고 있다.
나도 모르는 택시에 탄 채 좌표가 되어 궤적을 따라 어디론가 떠난다.

인생은 좌표의 합, 궤적이다.
그 궤적을 가능케 하는 택시.

난 오늘 하루 몇 대의 택시를 탔을까,.
그 택시들은 나를 어디까지 인도했을까.

내가 그려낸 궤적의 의미는 무엇일까.

택시에서
난 좌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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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 2016/02/03 00:03

버스에서
난 내 맘 속 버스를 탄다.

내 맘 속 버스가 정류장을 출발하여 다음 정류장을 향하여 움직일 때
난 나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버스라는 컨테이너 안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내 맘 속에 컨테이너를 두고 있는 건데.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 걸까.

정류장은 일종의 학습소.
난 배움터에서 배움터로 이동한다.
각 배움터는 나를 위한 커리큘럼을 준비하고 있고
내가 그걸 인지하는 한, 난 거기서 배울 수 있다.
배울 수 있는 역량이 배움의 범위를 결정한다.

버스에서
난 내 맘 속 버스를 탄다.
버스 속에서 작동하는 버스
그건 일종의 교육 플랫폼이다.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난 진짜 학교를 다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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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과 엔드 :: 2015/09/11 00:01

웹사이트는 대개 목록 페이지와 엔드 페이지로 구성된다.

그래서 목록과 엔드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원하는 정보를 탐색하고 소비하는 흐름을 타게 된다.

그러다 어떤 엔드에서 한참 머물러 있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내가 어떻게 여기로 오게 된 걸까?"

사용자가 이동하는 페이지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특정 페이지에 도달하게 될 때는 반드시 그 페이지로 시선을 이동하도록 만든 동인이 있다.

웹 상의 이동을 기계적으로 분석하면 그 페이지로 이동하기 이전의 경로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심층적인 레벨에서 파헤쳐 보면 특정 페이지로 오기까지의 수많은 맥락의 연쇄 고리가 알게 모르게 생성되고 소멸되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목록에서
엔드에서
목록과 엔드를 오가면서
'기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구성하는 인과 사슬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

그 모든 것들이 목록과 엔드를 오가는 웹 상의 행동 구조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느낌.

목록과 엔드.
끝없이 반복하게 될 이동 경로 상의 움직임.

오늘도 난 특정 목록에서 엔드로의 진입을 모색하고
엔드에서 뭔가를 찾고 소비하고
다시 목록으로 나와서 또 다른 엔드로의 진입을 계획한다.

목록과 엔드 사이에서 이동하는 흐름.
그 자체가 '나'인 듯 싶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
그 흐름이
그 흔적이
목록과 엔드 사이에서
오늘도 쉴 새 없이 로깅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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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배달 :: 2014/05/12 00:02

배달부는 박스를 배달한다
배달부는 자신이 무엇을 배달하는지 굳이 알 필요가 없다. 배송이 되어야 하는 지점까지 정확히 박스를 옮기면 된다. 박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는 순간 배달의 본분에 대한 망각이 시작된다. 배달은 이행되어야 한다.

인간은 배달부이다
어딘가로부터 어딘가를 향해 무엇을 계속 운송하고 있다. 박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잘 알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뭔가를 운반하고 있다. 일평생을 단 한 번도 상자 안을 궁금해 하지 않고 배달을 할 수도 있을 만큼 배달 본능은 극강의 수준을 자랑한다. 인간의 몸과 마음 속에 뿌리 깊게 입력된 배달 프로그램은 인간을 강력하게 휘몰아 간다. "나는 무엇을 배달하는가"?란 질문도 둔중하기 그지 없지만, 더욱 난해한 질문이 도사리고 있다. "나는 왜 배달하는가?"란 질문.

왜 배달해야 하는 것일까
왜 나는 특정 형질의 유전자를 타고 났으며, 그것을 왜 보존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작동시키며 그것을 후대로 전달하려는 본능을 왜 견지하고 있는 것일까왜 그래야 하는 것일까왜 나는 상자 안을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만큼 나를 규정하고 그것만큼 나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요소도 딱히 없을 텐데, 난 상자 안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무기력한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가 운반하고 있는 그것을 왜 난 알려고 마음을 먹어도 쉽게 알 수가 없는 것일까? 정말 나는 철저하게 통제된 배달 프로그램 속의 코드 몇 줄에 불과한 것일까?

그저 배달만 하면 되는 것일까?
배달부라서, 상자 안을 열어보도록 규정되지 않았으므로, 배달부로 프로그래밍된 인간은 상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고 배달에만 집중하면 잘하는 것일까? 배달의 에너지가 소진되고 난 후의 인간은 무엇을 얻게 되는 걸까? 상자 안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인간은 평생 운반을 하게 되는 것일까?

상자 속에 인간이 있다.
배달하는 자와 배달되는 것. 뒤집어 볼 수 있다. 상자 안의 뭔가가 인간을 배달하는 것이다. 상자 안의 뭔가가 이동하는 경로가 인간의 경로이다그 무엇은 상자 안에서 상자 밖의 인간을 붙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누가 누굴 운반시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상은 배달이고 배달의 주체와 객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 보일 수 있다.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언제 어디로
잘 모르겠으나 배달은 이 순간도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배달은 작동된다인간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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