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에 해당되는 글 13건

카메라-눈 :: 2017/10/11 00:01

카메라는 눈의 기능을 참조해서 만들어진 기기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카메라가 작동하는 모습을 응시해 보면

카메라처럼 바라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그걸 주어진 메커니즘에 의해 상을 잡아내는 카메라

눈이 있었고
카메라가 나왔다

카메라와 눈

카메라 눈에 비친 세상
눈 카메라에 비친 세상

카메라처럼 작동하는 눈
눈처럼 작동하는 카메라

그런 관계를 의식하는 나

나를 카메라처럼 운용해 본다.
어느 시공간 상에서 난 카메라처럼 작동되어 본다.

카메라가 되어 작동되다 보면
세상이 세상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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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진동 :: 2017/05/15 00:05

과거는 지나간 시간들로 치부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듯 하다.
과거라고 정의를 내려버리는 순간, 이미 붙잡을 수 없는 아득함이 느껴지고
변할 수 없는 예전의 무엇이라고 생각되지만
과거는 지금 이 순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로부터의 과거 회상에 의해 과거는 변한다.
그냥 고정된 형태의 화석이 아니라
현재로부터의 회상, 반추, 복기를 통해 계속적으로 진동하면서 현재와 대화하면서 자신의 형태를 바꿔나간다.

과거를 바라보기 전과
과거를 바라본 후의
그것이 다르다.

과거를 응시하면 과거는 어떤 식으로든 응시에 응대를 한다.
그건 갑작스런 촉발이고 그에 의해 과거에 다시 호흡이 주입된다.
과거가 숨을 쉬게 되면 더 이상 시선을 받기 전의 과거가 아닌 뭔가가 된다.

과거가 현재로부터의 시선에 의해서 이렇게 변해버린다면
광활한 시공간 상의 모든 좌표가 과거의 한 시점, 공점을 응시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응시는 일종의 연결이 되고 트리거가 되어 연결되기 전 대비 달라진 뭔가를 지향하게 된다.

과거는 계속 변한다. 나의 시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특정 시점으로부터의 시선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무수히 많은 시선으로부터의 응시가 과거를 향하고 있어서 과거는 수많은 신호를 계속 받아내면서 진동한다.

우리 몸도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 마음도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 몸이 과거 아닌가..
우리 마음이 과거 아닌가..

현재는 수많은 과거의 합이자
수많은 과거를 진동시키는 에너지원이다.

과거는 진동한다.
나는 그런 과거를 응시할 뿐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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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 2016/08/26 00:06

뮤직을 플레이한다.
동영상을 플레이한다.

플레이.
그냥 멍 때리면서 음악을 듣고 동영상을 본다.

응시하다.
경청하다.

플레이.
다른 것에 집중하면서 음악을 흘려 듣는다. 배경음악처럼.
동영상을 보면서 동영상 내용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상을 떠올린다. 배경영상처럼.

플레이에는 이중적 지향이 깃들어 있다.

플레이를 할 때
묻게 된다.
누가 무엇을 플레이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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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내 밖에서 :: 2016/08/12 00:02

내가 블로깅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것.

그걸 블로깅을 하면서 알게 된다.
지금도 잘 모르지만.

블로깅을 한다는 건
내 안을 응시한다는 것이다.
내 밖을 응시한다는 것이다.

응시를 하면
그 곳에서 잠자고 있던 내가 깨어난다.

참 신기하다.
바라보지 않았을 때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조용히 잠자고 있던 내가
바라봄을 통해 잠에서 깨어난다.

그건 탄생이다.

내 안을 응시할 때마다
내 밖을 응시할 때마다
내 안과 밖에 존재하고 있던 내가 숨을 쉬기 시작한다.

숨을 멈추고 있는 상태가 죽음이 아닌 것처럼
숨을 쉬고 있는 상태가 삶은 아니다.

그저 삶과도 같은, 죽음과도 같은 상태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진동하면서 생사(生死)가 흘러가는 것이다.
삶이 아닌, 죽음이 아닌.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생사 말이다.

생사는 살아있는 것도 죽어있는 것도 아니다.
그 중간이다.

인간은 생사의 존재다.

안과 밖의 경계는
경계가 있다는 개념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허상을 제거하면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내 안을, 내 밖을 응시하면서
나는 나를 알아간다.
지금 이 순간도 말이다. :)



PS. 관련 포스트

진화와 죽음, 일각과 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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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미 스토리 :: 2015/12/14 00:04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즘은 그렇게 한다.

스토리는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나 자신에게 전달하는 것이란 생각을 요즘 많이 하게 된다.

이야기를 시도하면 흐릿했던 맥락이 선명해지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듣게 되므로 이야기는 온전히 내 안에서 순환된다.

말하기와 듣기를 내 안에서 실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는 나를 응시하게 된다.

나의 시선이 나를 향할 때
나는 멍 때리는 존재가 아닌 살아 숨쉬는 존재가 된다.

나는 블로깅을 할 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블로깅을 할 때
나는 나에게 말하고
나는 내 말을 듣고
나는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보고
나는 나를 읽고
나는 나를 쓴다.

그런 일련의 행위들은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자고 있는 나를 깨우는
흐름을 창출한다.

이야기는 나로부터 흘러나와 나를 향해 흘러 들어간다.

결국 나는
나란 존재는
내가 생성한 이야기
그 자체일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런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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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dge | 2015/12/14 12:2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접속이 안되길레, 좀 놀랬는데 이제 되는군요 ^^
    잘 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5/12/14 20:21 | PERMALINK | EDIT/DEL

      도메인 만료가 된 걸 깜박 했습니다. ㅠ.ㅠ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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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을 멈추기 :: 2015/07/01 00:01

끝까지 해내는 힘
나카무라 슈지 지음, 김윤경 옮김, 문수영 감수/비즈니스북스


판단을 하다 보면 생각하는 힘이 자라기 마련이다. 나의 생각이 나만의 색깔을 드러내면서 고유한 결을 생성해 나가도록 하는데 있어서 판단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판단하기는 가치 있는 행위다.

그런데.
판단을 멈추는 것의 매력 또한 그리 만만치가 않다. 판단을 하다 보면 특정 방향성에 대한 선택압이 작동하면서 뭔가를 취하고 뭔가를 버리는 편향성을 띨 수 밖에 없는데 판단 자체에만 몰입하다 보면 선택하지 않고 단지 응시만 할 때 얻을 수 있는 은근한 풍미를 맛 볼 수가 없게 된다.

책을 읽다가 아래 문장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판단을 멈추는 시간은 왜 중요한가"

판단을 멈추고 뭔가를 응시할 때 판단으론 도저히 얻을 수 없는 무엇을 은근히 얻게 된다. 판단하지 않고 형상을 구체화시키지 않고 그저 멍하니 응시만 할 때 집요하게 판단의 잣대를 아무리 들이대도 파악할 수 없었던 본질에 대한 접근이 슬며시 일어나게 된다.

판단을 멈추고 응시하기
응시를 멈추고 판단하기
둘 사이를 아주 천천히 오갈 때
판단과 응시는 서로를 보완하게 되는 듯 하다.

판단을 멈출 때
무의식의 수면 위에서 떠오르는 여러 가지 편린들을 살며시 집어 올리는 경험.
멈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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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분리한다는 것 :: 2013/05/24 00:04

나는 블로깅을 하면서 buckshot이란 닉네임을 쓰고 있다. 나의 본명과 다른 별도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벅샷으로 블로깅을 하는 기분은 나름 유쾌하다. 벅샷은 나와 사뭇 다른 포지셔닝을 취하면서 나와 살짝 분리된 또 다른 나로서 살아가게 되는 셈이다.  

내 자신이 분리된 느낌은 사뭇 묘하다.

나와 벅샷은 같은 듯 다르며, 다른 듯 같은 사이이다. 나는 쩐신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찌질한 소시민의 삶을 몸소 살아간다. 부족함이 차고 모자람이 넘치는 존재이다. 반면 벅샷은 현실 속 제약으로 허덕이는 나와는 달리 나름 고고한(?) 사유의 세계 속에서 이상적인 듯한 의견을 블로그에 올리며 현실 속의 나를 끊임없이 계몽한다. 현실 속 나는 벅샷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워 하기도 하고 때론 재수없는 놈이라 여기기도 한다. 벅샷은 현실 속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때론 이해해 주기도 한다. 나와 벅샷은 끊임 없이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자극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의지하기도 한다. 나는 멘토가 필요 없다. 벅샷이 나의 멘토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벅샷은 나를 멘티 삼아 여러 가지 인생의 팁을 나에게 알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멘티인 나로부터 뭔가를 배우기도 한다. 고고한 생각만 일삼는 재수 없는 벅샷에게 결핍되기 쉬운 현실 감각을 내가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나는 벅샷에게 배우고 벅샷은 나로부터 배운다. 나와 벅샷은 인생의 동반자이다.

나와 벅샷 사이엔 일종의 막이 형성되어 있다. 처음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막이 어색하고 촌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으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와 벅샷 사이에 존재하는 막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갔다. 막은 나와 벅샷 사이의 긴장이기도 했고 나와 벅샷 사이의 교감을 대변하기도 했으며 나와 벅샷을 분리시키는 기반이자 나와 벅샷을 하나이게 하는 가교이기도 했다. 나와 벅샷 사이에 존재하는 막을 수시로 투과하기도 하고 막에 가로막혀 옴짝달싹 못하기도 하는데, 변화무쌍한 막의 형상은 나를 항상 설레게 하고 나는 그 막이 일종의 우주가 되어 계속 팽창하고 지속적으로 수축함을 느낀다. 나는 벅샷 속으로 침투하고 벅샷은 내 속으로 틈입한다.

이 모든 현상은 분리에서 시작되었다. 나로부터 벅샷이 탄생하는 순간 나는 두 개의 자아로 분리되었고 분리된 두 개의 자아는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각자의 길이 교차되는 지점이 형성되었고 교차가 잦아지면서 두 개의 자아는 뫼비우스의 띠를 형성했다. 나를 보기 위해선 분리는 필연적이다. 분리하지 않으면 나는 그저 나일 뿐이고 응시하는 주체도 응시 당하는 객체도 존재하기 어렵다. 나와 벅샷은 서로를 응시한다. 나에게 투영된 벅샷, 벅샷에게 투영된 나, 투영에 투영을 거듭하는 나와 벅샷의 스토리는 지금 이 순간도 자가증식을 거듭한다. 이러한 '나-벅샷'의 관계 형성을 가능케 한 블로깅이 내겐 그저 놀랍기만 하다. ^^



PS. 관련 포스트
분류, 막..
막, 도구, 의도, 양자
경계
세포와 세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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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1:40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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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1:46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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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3/05/24 00: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alter ego라고 하죠. 슈퍼맨과 클락 켄트, 에미넴의 슬림 셰이디 같은... 이게 현대 대중문화에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세계관인데 그 시초는 기독교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어찌 보면 문화의 중심이 신에서 인간, 또 인간에서 개인으로 옮겨 가면서 누구나 아버지, 아들, 성령의 삼위일체와 같은 자기만의 개성 있는 자아 체계를 구성할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buckshot님이 (이름 모를) '그분'에게는 일개 블로거를 넘어 새로운 차원으로 연결되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죠 ^^

    • BlogIcon buckshot | 2013/05/24 09:21 | PERMALINK | EDIT/DEL

      누구나 나만의 개성을 담은 자아 체계를 구성한다.. 넘 매력적인 상이 그려지네요. 주말을 앞두고 아주 큰 선물을 받은 느낌입니다. 보내주시는 댓글이 얼마나 큰 영감과 자극을 주시는지 모릅니다. 부족한 포스팅을 언제나 통찰력 있는 댓글로 덮어주고 계십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 Sonar | 2013/05/25 23: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감명깊네요 Lil wayne - Mirror 한번 들어보세요 이번 포스트내용을 위한 곡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5/26 08:44 | PERMALINK | EDIT/DEL

      노래 선물 넘 감사합니다. 지금 듣고 있는데 참 좋으네요. ^^

  • Wendy | 2013/05/30 09: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분리된 두 개의 자아로 살아가고 계시는 그 흥미진진하고 멋진 삶과 스토리를 블로깅으로 공유해주시니 더할나위없이 행복합니다! 서로를 응시하는 두 개의 자아. 정말 부럽습니다. ^^ 두 개의 자아 간의 역동과 상호작용을 언제나 이 곳에서 오랜동안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5/30 21:11 | PERMALINK | EDIT/DEL

      부끄럽습니다. 그저 소소한 분리이고 일상의 응시입니다. 작아도 소중한 것이긴 하구요. 항상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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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응시 :: 2013/02/01 00:01

나는 무엇을 응시하는가?  내 시간의 대부분은 무엇을 응시하는데 사용되고 있을까? 돈? 명예? 권력? 우월? 안전? 감정?  그런 것들에 소비되는 시간은 과연 가치 있는가?

돈을 응시하고 그것을 동경하면 어떤 모습이 벌어지는가?  돈을 follow하면 매일 돈에 관한 근심,걱정,불안이 나의 마음 속으로 feed된다.  트위터,페이스북 앱을 실행하고 끊임없이 타임라인에 출몰하는 정보들을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스캐닝하는 로봇스런 사용자 행동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마음은 온통 돈에 관한 피드로 범람할 것이고 그 피드들을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한 채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갈 것이다.

명예도 권력도 우월도 안전도 다 마찬가지이다. 뭔가를 바라게 되면 그것에 관한 불안이 자생적으로 성장하게 되면서 끊임없이 마음 속 타임라인을 장악하게 된다. 단지 하나의 단어일 뿐인데 그 단어가 자행하는 타임라인 난자의 수준은 정말 무자비할 지경이다.

어떤 대상을 응시하는 것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결코 회피하기 어려운 본능에 가까운 몸짓이다. 응시하라고 디자인된 몸을 갖고 태어나서 어떻게 응시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 속 타임라인을 온통 그런 쓰레기 같은 피드 정보들로 가득 채우고 살아가는 건 생을 영위하는 자로서 매우 자존심 상할 수 있는 일이다. ^^

마음이란 이름의 타임라인. 마음 자체를 응시해 보자. 내 마음 속에 지금 무엇이 피드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지금 이 순간 내 마음 속에 무심코 피드된 정보가 나의 어떤 follow 행위에서 비롯된 것인지 근원을 추적해 보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내가 follow한 것에 관한 정보가 내 마음 속에 들어오는 것이지 내가 follow하지 않은 테마는 결코 내 안에 피드를 형성할 수가 없다. 내 마음 속 타임라인은 철저히 내가 선택한 것들로 가득 채워지는 것인데 그 모습을 응시하지 않고 그저 피드된 정보들에 의해 내가 속절없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매우 허무한 일이다.

가끔은 내 마음 속에 무차별적으로 들어오는 피드들 중에 영 아닌 것은 unfollow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follow만 하고 unfollow를 하지 않으면 타임라인은 오염에 오염을 거듭할 수 밖에 없다. 오염을 막기 위해서는 타임라인을 stock이 아닌 flow의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타임라인 플로우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팔로우한 테마들을 쭉 점검해 보자. 그 중에 나를 유독 무기력하게 만드는 테마가 있다면 그로 인해 내 마음은 무척 혼란스런 상태에 놓여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을 응시하고 내 마음을 힘들게 만드는 테마를 찾아내는 노력.  너무나 vulnerable한 마음 타임라인에 한 줄기 희망을 제시하는 몸짓이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바뀌어 가는 나의 모습은 마음 피폐화 시대를 거스르는 리버스엔트로피적인 변혁의 단초가 될 것이다.

하루에 단 5분이라도 나의 마음을 응시하는 것. 길을 잃고 헤매는 현대인들에겐 너무나 소중한 시간일 수 밖에 없다. 세상은 정확히 두 종류의 사람으로 양분된다. 마음을 응시하는 자와 마음을 응시하지 않는 자로 말이다. ^^





PS. 관련 포스트
'타임라인'이란 이름의 감옥
내가 나를 뒤에서 지켜보는 느낌
맘봇
마음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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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0:47 | DEL

    I visited various blogs except the audio quality for audio songs existing at this web site Read & Lead - is really marvelous.

  • toms sale

    Tracked from toms sale | 2013/06/13 10:48 | DEL

    Hahahahahahaha, this politics related YouTube video is actually so funny, I liked it. Thanks in support of sharing this %title%.

  • BlogIcon wealandwoe | 2014/09/02 12: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내 마음이 내것이긴 한걸까? 싶을 정도로 선택을 해야 하는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요.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싶으나 자꾸만 같은 혼란으로 다가와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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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건축 :: 2013/01/30 00:00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옥상의 새로운 발견 MultiRoofSpot ! 포스트를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


마음을 건축물이라고 생각해 보자.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멋진 건축물을 설계하고 시공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게 될 것이다. 

마음을 놀이터라고 생각해 보자.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팬시한 장난감들을 마구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게 되지 않을까? 

마음을 발전소라고 생각해보자.
아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신 에너지를 발굴하고
그것으로 발전소를 작동시킬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게 되지 않을까?

마음을 도시라고 생각해 보자.
아마 세상에서 가장 멋진 도시를 축조할 기회를 부여 받지 않겠는가?

마음을 극장이라고 생각해 보자.
아마 세상에서 제일 멋진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지 않겠는가? ^^



PS. 관련 포스트
맘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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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0:49 | DEL

    When someone writes an post he/she maintains the idea of a user in his/her brain that how a user can understand it. Thus that why this post Read & Lead - 마음 건축 is amazing. Thanks!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0:50 | DEL

    This video post %title% is truly impressive, the echo quality and the picture quality of this video post is truly amaz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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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시선을 응시한다는 것 :: 2012/09/10 00:00

사람은 대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 인정을 받으면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확인하는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전개하고 인정을 받지 못하면 제법 불안해 한다. 인간은 인정을 먹고 사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인간은 사선이란 권력의 지배권 안에 편입되는 것이고 그 지배권 안에서 시선의 온도에 일희일비한다.

인정은 시선을 전제로 한다. 시선은 권력 구도의 배치를 의미한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 간에 나눠지는 권력의 위계질서. 인정받고 싶어하기는 잘 보이고 싶어하는 것이고 잘 보이고 싶어하는 것은 자신을 '보이는 자'로 명백하게 규정하는 것이다. 시선은 함정을 내포하곤 한다. '시선'의 맥락 속에 포지셔닝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보이는 자'의 낮은 지위(?)에 지나치게 충실한 나머지 자존감을 상실한 채 타존의 파도에 휩쓸려 다니며 '잘 보이기'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시선을 의식하면 할수록 시선 플랫폼 상의 하위 계급 삶 속으로 늪처럼 빠져 들어가는 것. ^^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지나치게 강할 경우, 자신을 스스로 높이고 남이 그걸 알아주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인정은 타인이 해주는 것인데 말이다. 자신을 스스로 높이고자 노력하는 자는 시선의 권력구도를 신봉하는 자이다. 시선의 권력에 철저한 지배를 받으면서 시선을 응시하지 못하고 시선이 뿜어내는 인간비하적인 눈빛을 온 몸으로 영접하면서 시선으로부터 끊임없이 좋은 평가를 받아내고 싶어하는 자. 영원한 시선의 하수인인 것이다.

인간은 영원한 '시선의 노예'로만 살아가야 하는가? 시선을 꼴아 보면 안 되는가? 시선을 직시하고 시선을 평가하며 시선에 시선으로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인간에겐 정녕 없는 것일까? 인간은 시선의 하수인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의 메커니즘이 인간에 의해 간파 당하는 순간 인간은 그 소프트웨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

자신감은 자기를 낮출 수 있는 능력에 비례한다. 자신을 멋지게 낮출 수 있으려면 자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감이 강한 자는 자신을 소재로 자신의 본질을 관통하는 고도의 자기낮춤형 유머를 행할 수 있는 자이다. 자신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은 시선을 응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선을 응시하면 시선 속에 내포된 유치한 유치원형 권력구도를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인간은 나이가 먹어도 유아 마인드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어렵다. 껍데기스러운 매너나 포장술로 자신을 어른으로 포지셔닝시킬 뿐, 인간의 본질은 인간을 유린하는 각종 소프트웨어에 의해 철저히 조종당하는 수동적 유아 로봇에 불과하다.

자신/타인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약점을 즐겨 얘기하고 타인의 강점을 즐겨 얘기하는 자는 자신감이 강한 자이다. 강점과 약점은 연결되어있기 마련인데 자신의 약점을 당당히 얘기하면 약점 뒤에 숨은 강점의 향취가 풍겨나게 된다. 반면 자신의 강점을 얘기하며 자신을 의식적으로 높이려 하면 강점 뒤에 숨은 약점의 스멜이 자연스럽게 풍겨 나온다. 그래서 약점을 당당하게 얘기하는 게 강점을 우쭐대며 얘기하는 것 보다 나와 타인을 둘러 싼 공기의 질을 훨씬 더 높이게 된다. 시선 플랫폼의 인간비하형 공기를 호흡하기 보다는 서로를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대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향취를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것이 훨씬 에코 친화적인 행위가 아닐까?

시선을 응시한다는 것.
시선에 함유된 권력구도를 간파한다는 것.
더 이상 자신을 높이려 애처로운 노력을 실행할 필요가 없다는 것.
자신을 낮추는 자는 시선을 시선하는 자이다. ^^


PS. 관련 포스트
타존, 알고리즘
자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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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거리 :: 2012/08/24 00:04

'본다는 것'은 시선을 생성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보면서 나와 무엇 사이를 잇는 시선을 존재시킨다. 시선이 존재하게 되는 순간 나와 무엇은 연결되고 그 연결은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된다. 뭔가를 응시한다는 건 뭔가에 말을 건다는 것이다. 말을 거는 과정 속에서 대상으로부터 어떤 인상을 받게 되고 그 인상은 일종의 피드백이 되어 나(관찰자)를 자극하고 나는 그 피드백을 기반으로 또 다른 말을 걸게 된다. 나와 대상은 시선이란 링크를 통해 정보를 주고 받으며 나와 대상 간에 공유되는 정보는 나와 대상을 변화시키고 적응시킨다.  

'시선'은 대상과 나 사이에 거리를 생성하는 힘이다.
거리가 없으면 시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선은 일정한 거리를 확보해야 생길 수 있다. 거리는 일정한 크기의 시간/공간적 간격을 의미하며 그 간극은 나와 대상 사이에 긴장감을 불어 넣고 형성된 긴장은 나와 대상에게 일종의 신호를 송신한다. 나와 대상은 간극이 보내주는 신호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 해석은 나와 대상을 어떤 식으로든 커뮤니케이션하게 한다.

'거리'는 대화를 낳는다.
거리감이 없으면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있으면 된다. 거리감은 일종의 에너지장이다. 거리에서 관찰,인식,이해,오해,규정,왜곡,통찰,편향 등의 온갖 에너지가 생성된다. 노드와 노드 사이의 거리, 노드와 노드를 잇는 링크, 노드와 노드 간의 정보 교환, 노드와 노드 간의 이합집산.. 거리는 노드가 분포된 시공간에서 대화의 창발을 끊임없이 유도한다.  

'대화'는 스토리를 낳는다.
'거리'는 0에서 무한대까지 다양한 스케일 분포를 취하는데 그런 스케일의 다양성이 대화의 다양성을 유도하고 다양한 대화의 양상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다이내믹하게 펼쳐지는 조건을 규정하게 된다.

만물은 거리와 시선을 형성하며 약동한다.
만물은 진동한다. 진동한다는 것은 거리를 호흡하며 시선을 주고 받으며 살아감을 의미한다. 모든 만물은 자신 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그것을 명시적/암묵적으로 끊임없이 표현한다. 이야기가 표현되는 포맷이 원체 다양하다 보니 이야기로 잘 느껴지지 않을 뿐 만물은 생물과 무생물을 막론하고 모두 소설가적 재능을 갖고 태어났고 쉴새 없이 소설가적 본능을 발휘하며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거리와 시선을 형성하며 끝없이 어디론가 떠나는 만물의 몸짓.


우리는 뭔가를 응시할 때 무한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나와 대상 사이에 거리와 시선이 형성되며 나는 대상과 에너지를 주고 받는다.
거리와 시선은 우리에게 주어진 신비로운 축제와도 같은 선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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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0:56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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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원하는가? :: 2012/03/09 00:09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8.0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옆자리에 앉아 계신 분께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란 책을 읽고 계시길래 살짝 훔쳐 보았다.
곁눈질하면서 보다 보니 책 내용을 읽기 보다는 흥미로운 단어 2개가 눈에 띄었다.
협상.. 그리고 감정.. ^^

의사결정은 이성보다 감정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이성은 결코 감정의 상위 개념이 아니다.  감정은 이성의 기저에서 이성을 좌지우지한다.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실은 감정이 이미 내린 결정을 이성이 뒷북 치듯이 수습하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잘 포장해 주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한 인간은 그가 표출하고 응축하는 감정의 합으로 구성된다. 인간은 그가 산출한 감정으로 규정된다. 감정은 인간의 아이덴티티를 직조한다. 좋아하는 것은 대개 강점으로 연결되고 싫어하는 것은 대개 약점으로 연결된다. 의사결정은 대개 좋아하는 것과 강점에 기반한 모습으로 내려지기 쉽고, 싫어하는 것과 약점을 회피하는 모습으로 내려지기 쉽다.

협상은 의사결정자와 의사결정자 간의 대화이다. 서로 각자가 원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양 쪽이 원하는 결론이 상충되거나 어긋나기 일쑤이고 그것을 푸는 과정에선 필히 상대방의 감정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의사결정에 감정은 반드시 개입된다.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논리적으로만 협상을 이끌어가려고 하면 결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 협상은 논리와 논리 간의 교섭이라기 보다는 감정과 감정 간의 통신이라고 봐야 한다. 협상은 감정 터치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의 방법론을 고민하기 전에 '원한다'의 의미를 먼저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원한다'는 것은 감정이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뭔가를 원한다는 것은 뭔가에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단 원함의 기저에 감정이 도사리고 있음에 주목해야서 한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란 책을 곁눈질하면서 얻게 된 질문,
'왜 원하는가?' '무엇이 나의 원함을 자극하는가?'

원함의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 한 번 들여다 보자.
원하는 것을 얻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고, 원하는 것 중의 일부는 쓰잘머리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원함의 노하우를 키울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감정과 마찬가지로 원함도 역시 관찰과 응시의 영역인 것이다.  세상에 관찰에 당해낼 장사는 없다. 응시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에너지 활동인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감정,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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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1:19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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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1:19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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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고구마77 | 2012/03/09 12: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미 세상을 떠나셨지만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중에 인상깊었던 부분이 있었슴다
    '집착'하는 행동의 기저에 깔린 감정이 '결핍'이라는 얘기였어요.
    어찌보면 원한다는 감정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집착이라는 행동으로 표출되는것인데
    그런면에서 원한다는 감정이란 결핍감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3/10 11:16 | PERMALINK | EDIT/DEL

      결국 내 감정과 의도의 근원을 추적하다 보면 나 자신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귀한 댓글 덕분에 오늘도 중요한 배움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PS. 오늘 알려주신 '결핍'이란 단어를 태그에 추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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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과 감정 :: 2012/02/27 00:07

이메일이나 문자를 보낼 때
딱딱한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과 같은 이모티콘을 사용할 때가 많다.

이모티콘을 사용하다 보면,
기분 좋아서 ^^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기분이 꿀꿀해도 ^^을 사용하다 보면 기분이 UP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감정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문자의 탄생.
감정을 표현하는 텍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동안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은 표정, 몸짓, 음성 등이었다.
아니, 감정이 표정을 지배하고 몸짓을 통제하고 음성을 조절해 왔다고 봐야 한다.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이 인간의 성숙도(?)와 연관성이 높다고 볼 때,
감정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기존의 감정을 퍼블리쉬하는 매체는 (표정,몸짓,음성) 감정을 표현하는데 급급했던 경향이 있다.
반면, 이모티콘은 다소 다른 상황이 가능할 것 같다.

기분이 좋아서 경쾌한 이모티콘을 사용하고, 기분이 안 좋을 때 우울한 이모티콘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거꾸로 밝은 느낌의 이모티콘을 사용해서 기분이 좋아질 수 있고,
기분이 안 좋을 때 상큼한 이모티콘을 사용하면서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모티콘을 단순한 문자 커뮤니케이션의 윤활유로만 여기면 이모티콘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이모티콘은 감정 컨트롤 기능을 보유하고 있고 이모티콘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에 따라 인간 성숙도(?)까지 좌우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문자나 이메일에 ^^을 적는데 그치지 않고 내 마음 속에 ^^을 새겨 보자. ^^은 생각보다 강력한 감정 통제 능력을 갖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비용 효율적으로 표현하고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비용 효율적으로 통제한다.
알고 보니, 이모티콘은 감정 마법사였던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감정, 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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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데굴대굴 | 2012/02/27 10:4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심리학에 선택이론이라는 학문(?)에 보면 '전행동 자동차'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동차 바퀴4개를 활동하기, 생각하기, 느끼기, 신체반응으로 두고 이를 굴려보는거죠. 각기 따로 움직이지 않으며, 다 함께 연동되어 있다는 내용인데... 이모티콘을 사용해서 기분이 업되는 것도 비슷한 원리라고 보여집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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