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에 해당되는 글 12건

캐릭터 창조 :: 2018/02/16 00:06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작가에 의해 저마다 각자의 캐릭터를 타고 태어나듯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가공의 actor들은 저마다 각자의 캐릭터를 갖고 있다.

검색랭킹에 상위 노출되기 위해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서
그 캐릭터 기반으로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간헐적으로 광고 포스팅을 해서 돈을 버는 케이스가 있다고 가정해 보면..

그 어뷰징 블로거가 만들어낸 가상의 캐릭터는
드라마 작가가 만들어낸 캐릭터와 하등 다를 게 없는
가공의 인물이고, 가공의 공간에서 가공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살아 숨쉬는 인조 인간이다.

특히 블로그 포스트를 보는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매우 섬세하게 직조된 생생한 멘트들을 내뱉게 된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진짜 인간의 글이라 오해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그런 사람들의 오해가 강해지면 강해질 수록
가공의 인물은 더욱 더 실체에 가깝게 된다.

생생한 허구가
밋밋한 실재를
능가하는 상황

그게 현실이다.
그렇게 허구에 실재가 밀리는 상황이 늘어날 수록
허구에 의해 가리워지는 실재가 많아질 수록

창조된 캐릭터들이 세상의 주인 행세를 해나가면서
실제 캐릭터(?)들은 허구 캐릭터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게 된다.

창조한다는 건
기존의 존재를 위협하는 뭔가가 생겨난다는 것이고
창조된 캐릭터가 성장할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에 대해선
밋밋한 실재들은, 실제로 살아있는 캐릭터(?)들은 이렇다 할 인지나 각성 없이
시간은 지금 이 순간도 생생한 허구들에 의해 직조되고 재단되고 유린되고 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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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 :: 2017/09/29 00:09

마음 속에서 뭔가를 생생하게 그려내면
그건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가상현실은 IT로만 구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미래는 과거의 프리퀄

VR이 가상현실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생생하게 묘사해내면 그게 가상현실이다.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뇌에 인상을 줄 수 있으면
가상이 극에 달해 현실과 맞닿게 되고
현실을 넘어선 현실이 된다.

어떤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으면
그 상황을 창조한 것과 대동소이한 뇌 속 느낌이 생성된다.

생생하게 그려낸다는 건
플롯을 짜고 개연성의 구조를 설계하고 액터를 살아숨쉬게 만드는 것

끝까지 생생함을 추구하면
생생해져 가는 과정을 사랑한다면..

VR은 최신의 과거
마음 속 생생한 묘사는 오래된 미래

과연 무엇이 기술이고 무엇이 혁신이란 말인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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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 :: 2017/09/27 00:07

소설을 읽다 보면
기가 막힌 묘사를 목도할 때가 있다.

정말 생생하다 못해
내가 소설 속에 들어가서 소설 속 인물의 생각과 행동을 따르는 삶을 산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의 묘사

소설 속 인물이 여행을 가는 장면이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된 문장들 속에서 허우적 대면서
나는 질문을 던진다.
"여행은 무엇일까?"

실제 여행을 간 것보다도 더 생생한 감흥을 느꼈다면
실제로 경험하는 여행과, 소설 속 여행은 어떤 차이를 지니는 걸까?

실재와 환상

현실과 가상

그 사이엔 뭐가 존재하는가..

엄청난 묘사를 접할 땐
VR도 이런 VR이 없겠구나란..

결국 VR도 묘사를 하고 있는 걸텐데..
VR보다 더 강렬한 묘사를 소설이 하고 있다면

VR과 소설 사이엔 어떤 경계선이 그어져 있는 걸까

경계는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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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25 00:05

해결과 미해결
이해와 오해
해를 규정하려는 양 진영

해결 속 미해결
미해결 속 해결

이해 속 오해
오해 속 이해

解(해)

해결감 속에서 미결감을 살려내고
미결감 속에서 해결감을 만끽하고

이해감 속에서 오해감을 적시하고
오해감 속에서 이해감을 생성하는

解(해)를 통해 익혀야 하는 스킬은 이런 것이지 않을까. ㅋㅋ

解(해)는
해결(미해결)의 확률적 포지션을
이해와 오해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 좌표값

그리고 어김없이 뇌를 교란 시키는
오해(이해), 미해결(해결)되었다는 환상

해의 실재와
해를 향한 환상
사이에 나의 뇌가 위치하고 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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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 :: 2016/10/05 00:05

평행우주.
수많은 가능성.
확률우주.

그런 수많은 가능성과 확률을 뇌 속에서 시뮬레이션한다면
그게 AR이고 그개 VR 아닐까.

AR, VR은 원래부터 존재해왔던 거고
진짜 강력한 AR, VR은 이미 나의 뇌 속에서 얼마든지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걸 사용하면 할수록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더욱 진하게 느껴지고 또한 더욱 흐릿해 진다는 것..

지루할 틈도
아쉬워할 틈도
결핍을 느낄 틈도
없는 것이다.

가능성, 확률을 끌어안는 순간
나는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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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2016/06/06 00:06

흥미로운 내용의 책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책을 사려고 도서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는데 그 책은 품절이었다.
허탈한 마음에 책 소개 내용을 자세히 읽어본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 옳았다는 생각이 진해지면서
책을 향한 갈망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책이 만약 품절이 아니었다면 그 책을 구입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품절이란 걸 알게 되니까 없던 결핍감마저 생겨나는 지경이다.

만약 그 책이 품절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았다면..
내게 있어 그 책은 수많은 책들 중 하나 정도에 불과한 그런 밋밋한 존재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품절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존재감.
부재는 존재만큼이나 강력한 이벤트이다.
존재는 부재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존재들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애처로울 정도의 몸짓을 지속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을 알리기 위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그런 무리수들이 겹겹이 남루한 층위를 이루면서 존재는 더 이상 존재답지 않은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냥 살아가는 것.
그냥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결로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
티를 내려고 하지 않고,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과정 속에서 죽어가는 게 아니라 존재를 굳이 증명하지 않으려 하는 태연함.
그 속에서 존재감을 스스로 느끼는 것.

존재라면, 이 세상을 존재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런 자세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존재가 존재를 알림으로 인해, 존재를 돋보이게 함으로 인해 증명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하면 할수록 존재감은 희미해진다는 것.
존재는.. 표현하려고 애쓰는 허무한 몸짓들을 제하고 남은.. 표현하지 않아도 저절로 표현되는.. 그런 자연스러운..
밖을 향하지 않는.. 그런 것들로 구성되는 듯 하다.

품절된 책을 접하게 되면서,
굳이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아도 그 책을 존재로 인지하는
나 자신이 존재임을 인식하는 시간들.
책 한 권의 품절을 통해 존재를 어렴풋이 배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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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사진 :: 2015/03/16 00:06

포토샵으로 합성한 사진은 사진일까?

포토샵으로 합성한 사진은 단순한 현실 캡쳐를 넘어선, 현실에 덧붙여진 환상인 것일까?

포토샵은 이미지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해오고 있는 걸까.

표현의 자유가 생기면서 이미지는 현실의 구속에서 벗어난 환상 놀이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 환상은 과연 환상일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가 새로운 현실일 것이고, 현실과 거리감을 형성하는 환상의 형체가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그것은 오히려 현실을 새로운 환상으로 포지셔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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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 2014/10/22 00:02

영화 her를 보면,

우린 이미 OS와 대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페이스북으로 대화하는 것, 그게 사람과의 대화 맞나?

사람의 탈을 쓴 기계와 또 다른 기계가 하는 대화 아닐까?

기계의 포맷에 맞춰진 사람의 언어. 그건 사람의 언어일까? 기계의 언어일까?


참 재미 있다.

황당무계한 설정이라 생각하며 보는 영화 내용이 실은 우리네 현실 그 자체라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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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진심 :: 2013/09/30 00:00

가끔 커피전문점에 가서 책을 읽거나 블로깅을 할 때가 있다.  가벼운 소음과 감미로운 커피향이 적당히 뇌를 자극해 주면서 테이블 위에 올려진 책이나 노트북은 나만의 시공간이 되어버린 채 온전히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에 몰입하기 위한 최상의 환경이 조성된다. 커피전문점에 가는 것을 귀찮아 하는 나의 습성만 아니면 될 수 있는 한 그 곳에 가서 이런저런 것들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런데,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허구헌날 그 곳에 갈 수는 없다.
그래서 대안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그 곳의 경험을 비용효율적으로 재현할 수 있을까?

커피전문점에 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편안한 옷차림, 책과 노트북이 담겨진 가방, 그리고 모자.  

어?
모자 빼고는 이미 집에서도 충분히 구현이 가능한 것들이다. 
모자 빼고는 비슷하다?
그럼 모자?

집에서 극도로 편안한 옷차림을 하고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 놓고 모자를 써보았다. 헉. 단지 모자 하나 썼을 뿐인데 나의 뇌가 커피전문점에 앉아 있을 때와 비슷한 모드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모자를 쓰고 노트북질을 하니까 뇌가 커피전문점에 앉아 있는 것이라고 착각을 하는 것인가? 이상하게도 커피전문점에서의 집중력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신기한 느낌을 만끽하면서 계속 노트북질을 지속한다. 거기에 커피 한 잔을 곁들이니 이건 뭐. ^^

결국 중요한 건 뇌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이다. 뇌는 완벽한 설정을 제공해야만 만족하는 까다로미가 아니다. 뇌는 유사한 느낌이 제공되면 대충 만족하고 조아라 한다. 뇌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한다. 실재와 환상을 항상 혼동하고 헷갈려 하면서 그저 매 순간 제공되는 느낌을 유일한 실재라 여긴다. '가상현실'이란 단어는 결코 스펙타클 무비나 초절정 과학기술에서만 구현 가능한 넘사벽 경험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뇌에게 얼마든지 제공해 줄 수 있는 일상적 스킬에 불과한 것이다.

뇌의 진심은 아마 아래와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진짜,가짜? 그런 건 원래 없는 거야. 그저 나에게 어떤 느낌을 줄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아있을 뿐이라구. 자, 이제 나한테 어떤 느낌을 줄 건데? 넌 나를 어떻게 속일 거야?  스마트하고 교활하게 날 속여봐. 얼마든지 난 너에게 넘어가 줄 준비가 되어 있어.


뇌는 정보를 유연하게 처리하는 기관이다. 뇌 상을 유유히 유영하는 정보. 그것은 실재를 반영한 현실적 정보일 수도 있고, 실재를 가장한 가상적 정보일 수도 있다. 아니, 애당초 실재와 가상은 구분이 확실치 않은 허상적 개념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뇌는 정보를 필요로 하고 그것을 탐식하면서 살아간다. 뇌로 흘러 들어가는 정보를 전량 방관할 것인가, 아님 그 중의 일부를 내 입맛에 맞게 튜닝할 것인가? 뇌의 진심이 드러나면 날수록, 뇌에 대한 나의 자세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



PS. 관련 포스트
뇌멘토
뇌 속여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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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러운곰 | 2013/10/30 16: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ㅋㅋㅋㅋ 제가 이상한걸까요? 난 너에게 넘어가 줄 준비가 되어 있어.
    시험공부 하다가 집중이 안되서 고민하던 차에 좋은 해법을 찾은거 같네욤
    또 놀러올게요~

    • BlogIcon buckshot | 2013/11/01 09:59 | PERMALINK | EDIT/DEL

      뇌의 진심을 알아가면서 일상은 더욱 스마트해지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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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과 자각 :: 2013/03/13 00:03

인생은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고 한다.
인생은 한 권의 책과도 같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실제로 그렇다면 어떨까?
만약 내가 누군가가 써놓은, 써내려 가는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내 인생이 누군가가 구성한, 구성해 나가는 한 권의 책이라면? 

나는 시나리오 작가가 부여하는 스토리라인에 자로 잰 듯 맞춰서 살아가야 할까?

내가 나를 규정하는 시나리오를 자각하게 되면 나에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물며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도 작가의 대본을 분석하고 캐릭터를 구상하고 연기하면서 자신이 생각한 컨셉에 맞지 않는 캐릭터 묘사가 있을 경우 작가에게 그것을 수정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실제 인생에서는 나에게 주어진 대본을 기계적으로 모사하기만 해선 안 되는 것 아닐까? ^^

나는 수많은 대상에 대해 상상을 한다. 나의 상상 속에 등장하는 인물, 환경, 상황은 정말 가공의 것에 불과한 걸까? 나의 상상 속에 등장한 인물은 가공의 것이고 나는 실재하는 것이라고 정말 단언할 수 있을까? 상상 속에서 사고/행동하는 인물과 실재 속에서 사고/행동하는 인물 간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저 모두가 자신의 몸 속 깊숙히 장착된 대본에 맞춰서 움직이는 로봇들에 불과한 것 아닐까? 결국 상상 속의 인물이든 실재 속의 인물이든 스스로 자각하는 자만이 자신을 규정하는 대본과 대화하고 대본에 씌어진 내용에 대해 협상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대본이 주어진다는 것. 상상 속이든 현실 속이든.
대본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 상상 속이든 현실 속이든.

나는 상상한다.
나는 상상을 당한다.

나를 매개로 현실과 상상이 만나고
나를 통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것이 나로부터의 이야기이든 나를 향한 이야기이든.

평행우주는 물리학 용어가 아니다. 일상 속에서 활발하게 생성될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의 이야기이다. 나의 상상 속에서 수백 개, 수천 개의 평행우주가 생성되고 운영될 수 있는 것이고 나를 상상하는 누군가에 의해 나에 관한 수백 개, 수천 개의 평행우주가 생성/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상상은 대본을 낳고 대본은 자각을 낳고 자각은 상상을 확장시킨다. 초보 연기자는 대본을 기계적으로 모사하지만 중견 연기자는 대본을 분석하고 자신의 캐릭터를 정립하기 위한 커스터마이징을 할 줄 안다. 연기의 고수는 작가를 컨트롤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작가로 하여금 자신에게 특화된 대본을 작성하도록 무언으로 압박한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연기자가 작가의 대본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자의 행동을 보고 작가가 대본을 작성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된다.

처음엔 대본을 읽고 대본을 이해하는 '대본 따라가기' 수준에 머물지만, 자각의 성장이 궤도에 이르면 어느덧 '대본이 나를 따라오게 됨'을 목도하게 된다. 대본을 자각하고 통찰하게 되면 대본이 나에게 끌려오게 되는 것이다.

대본과 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자각' 놀이를 얼마나 즐길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자, TV 드라마가 제공하는 스토리라인에 빠져서 허우적대지 말고 이 세상 어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나' 드라마를 시청하도록 하자. 그리고 나를 규정하고 있는 대본을 통찰하고 내가 대본을 규정하는 경지를 향한 작은 발걸음을 이제 시작해 보도록 하자. ^^





PS. 관련 포스트
연기, 알고리즘
대본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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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여먹기 :: 2012/10/22 00:02

뇌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뇌는 항상 현실과 가상이 믹스된 가상 현실 속을 살아가기 쉽다. 뇌의 가상현실 소비 메커니즘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면 뇌에게,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디자인해 줄 수 있게 된다.

뇌에게 쪼임 & 보챔만 당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뇌를 자주 속여줘야 한다. 뇌를 속이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나를 살찌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뇌에 깊숙이 뿌리 박힌 생존본능 메커니즘은 아주 가끔 도움이 될 뿐 일상 속에서 수시로 발현되기엔 너무 낭비적 요소가 많다. 결국 인간 삶의 질은 뇌의 맹목적 전투모드 돌입을 적시에 제어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우아한 평화모드 상태에서 보낼 수 있는가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걸 이미 이뤘다고 뇌를 속여보자. 어차피 뇌는 실재와 가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게다가 막상 간절히 원하는 걸 이뤄도 뇌는 이윽고 그것에 싫증을 내고 잽싸게 새로운 결핍을 제시한다. 언제까지 뇌에게 당하고만(^^) 살 것인가? 나에게 꼭 필요한 게 뭔지도 잘 모르고 원시시대에서나 작동할 법한 생존 최우선 메커니즘에 틈만 나면 빠져들어가는 단순무식한(^^) 뇌의 전투 모드 돌입을 언제까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인가?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려고 할 때, 그것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긍정적 영상을 머리 속에서 상영해 보자. 감정은 매우 사소한 일로 발생하고 사라진다. 그래서 매우 사소한 방법으로도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뇌는 뭔가를 상상하고 특정한 감정 상태를 발현시킨다. 뇌가 제멋대로 상상하고 띄운 감정 상태이니 나도 내 멋대로 상상하고 그것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감정 상태를 창출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뇌를 속여먹을 궁리를 하는가?  어쩌면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뇌가 이끄는 전투모드에 수시로 접속해서 전투모드가 선사하는 찌질한 퀄리티의 일상 속에 푹 쩔어 있는 것은 아닌가? ^^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도 있고 몇 번씩이나 찌질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나는 나의 모습을 수시로 정의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나의 모습을 정의하지 않으면 나의 몸과 마음 속 깊은 곳에 새겨져 있는 생존 본능 지향의 전투모드가 나를 지배하게 되고 뇌는 감정과 손을 잡고 나를 제멋대로 규정해 버리고 뇌 내키는 대로 나를 어디론가 보내버린다.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뭔가를 상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뭔가를 상상은 자신 만의 고유한 가상현실 플랫폼을 운영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놀이이다. 어려운 물리학 용어로 평행우주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복잡한 얘기에 귀 기울일 것 없이 일상 속에서 평행 우주 놀이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약간의 상상력과 그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가상현실의 힘을 믿고 그것을 부릴 수 있는 의도가 중요할 뿐이다.

얼마나 뇌에 당하고 사는지, 얼마나 뇌를 속여먹고 사는지.
인생은 뇌하기 나름이다. ^^




PS. 관련 포스트
휴식감과 숨
가상현실
가상, 알고리즘
제허, 알고리즘
아주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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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과 욕망 :: 2012/09/26 00:06

초단절 시대 포스트에 uminsem님께서 아래와 같은 댓글을 주셨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파생실제가 실제를 대체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도가 영토를 대체하고 통장에 찍히는 수치가 실제 돈을 대체하듯 인간관계도 소셜미디어라는 파생실제로 대체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언뜻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현실에서 맺는 관계는 파생실제가 아닌가? 오프라인에서도 학교와 같은 조직을 통해 에이전트가 요구하는 인간상을 길러내고,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나 학교에서의 추억이란 것도 어쩌면 게임의 룰 안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는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초연결은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의 파생실제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초단절은 실존적 사유와 경험의 순간으로 나누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상은 특유의 증폭력을 갖고 있어서 물리적 한계를 갖고 있는 실재를 쓰나미와도 같이 뒤덮으며 증식해 나간다. 파생이 소스를 대체하는 현상. 소스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사람의 뇌 속에 기생하는 파생 인자들. 실재가 개념적 추상으로 대체되고 추상이 지향점이 되어가고 지향의 대상으로서의 추상이 더욱 거대해져 가면 갈수록 인간 소외 현상은 심화된다. 인간의 욕망과 추상은 공생 관계를 유지해 나가며 서로를 증폭시키고 각자 거대화의 경로를 밟아 나간다. 추상의 거대화 프로세스 속에서 인간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추상의 거대화가 가속되면서 인간 소외의 양상도 더욱 고도화 되어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은 추상을 어떻게 직시해야 할까?

추상 자체만 놓고 보면 무리가 없다. 문제는 추상이 증폭된다는 것이다. 추상이 증폭되면서 소스를 덮치고 소스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거대해진 추상만 홀연히 남아 추상 자체의 생존 게임이 전개되고 추상이 소스를 지배하는 구조 속에서 인간은 추상의 노예가 되어가는 현상이 일상화되는 모습. 추상의 증폭과 인간 욕망 간의 교접이 증폭의 도화선이었으므로 인간 소외에 대한 대응은 욕망과 추상의 연결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나의 욕망은 어떤 추상 증폭 기제를 드리블하고 있는가?  내가 갖고 있는 욕망이 증폭시키고 있는 추상 기제의 거품은 무엇인가? 거기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의 빈틈은 무엇인가?  증폭된 추상을 현실적인 사이즈로 축소시키기 위해선 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수면 아래로 내려야 하는가?

금융에만 거품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각 개인의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거품이 자본주의가 생성한 거품의 총합보다 결코 왜소하지 않다. 내 안의 거품, 내 안의 거품 생성 기제를 영화 감상하듯 플레이 시키고 나의 욕망 스토리라인 상의 어설픈 연결점을 찾아내는 영화 평론가의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나의 몸과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상영되는 초 스펙타클 SF 영화의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시나리오에 지나치게 토핑된 추상의 거품을 드러내고 날 것의 향이 가득한 '나' 소스(source)를 음미해야 한다. 드레싱이 너무 강하면 진정한 미각을 잃어버리게 되니까. 

추상과 실재 간의 균형, 욕망과 나 사이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평형 감각을 간직하도록 하자. 실재를 압도하는 추상, 나를 소외시키는 욕망의 작동을 컨트롤하고 실재를 서포트하는 추상, 나를 건강하게 만드는 욕망을 양육해야 한다. 추상과 욕망을 그냥 냅두면 그들은 항상 제멋대로 안드로메다를 향해 고속 비행을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 나를 둘러싼 추상의 크기는?
나를 규정하는 욕망의 실체는?

추상과 욕망은 항상 관찰하고 규정해 줘야 한다. ^^




PS. 관련 포스트
역측정
초단절 시대
몸과 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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