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에 해당되는 글 26건

나 예능 :: 2017/11/08 00:08

나를 향한 리얼예능을 스스로 기획하고 시뮬레이션해보면 어떨까?

나의 24시간을 촬영하고 (가상 몰래 카메라 기반으로)

나도 몰랐던 나의 표정, 행동을 발견하고

어떤 것이 나올지 전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무작정 나에 대한 촬영을 지속하고

그렇게 생성된 수많은 밑재료 필름들을 직접 리뷰하면서

그 중에서 튀거나 재미있는 것들을 끄집어내고

그것들을 잘 조합해서 편집본을 만들어내면

그제서야 내가 누군지 알 수 있게 되는 건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내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내 모습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이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창발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고 난 그게 뭔기 잘 모를 뿐..

내가 모르는 내 모습.

그걸 알아가는 과정과 그것이 계속 은폐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텐션. 그걸 즐기는 것이 삶?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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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09 00:09

난 시를 읽지 않는다

소설은 읽어도 시는 읽지 않는다
그냥 소설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시를 보면 잘 읽히지 않는 듯 했다
왠지 나와 맞지 않는 무언가로 생각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시집 한 권을 주문했다.
종이책이 도착했다.
그 종이책을 가만히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갔다.

계속 흘러갔다

책상 위에 놓인 시집을 본다
여전히 나로부터 먼 위치에 그것은 놓여져 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지만
여전히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손을 뻗을 수가 없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다
여전히 먼 존재였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시간이 흐르면 공간에 변화가 생긴다

나와 시집을 둘러 싼 공간 속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다

나는 시집에 시선을 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시집을 손에 쥔다

책을 펼친다
시 한 편을 읽는다

거의 처음으로 읽는 시의 문장들
그렇게 나는 시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

우주 속 멀리 떨어진 수백억 광년과도 같은
멀고 먼 어딘가에서 시집 한 권이 나에게 다가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거리가 좁혀졌다

사물은 움직인다

내 마음도 움직인다

결국 만나게 될 것은
만나게 된다

오늘 나는 시를 만났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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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를 바라보기 :: 2017/06/02 00:02

프로야구 보는 것을 즐긴다.
좋아하는 팀도 있다.  그 팀만 35년 간 응원해왔다.
그런데 한 팀만을 좋아하다 보니 그 팀의 승패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기분이 좋고
지면 기분이 안 좋다

감정의 기복이 생기는 것이다.

35년 간 동일한 감정 기복의 패턴이 이어지다 보니
이제는 그것에 대해 리뷰해볼 때도 된 것 같다.

이제는 다른 패턴으로 야구를 관람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특정 팀의 승패에 감정이 출렁거리는 상황이 아니라
특정 팀을 응원하는 동시에 상대 팀에 대해서도 감정이입을 해보면 어떨까
상대 팀의 키 플레이어를 응원하고, 상대 팀에서 의외의 활약을 보이는 선수가 보이면 그것에 대해 기뻐하고, 상대 팀 전략의 뛰어난 점을 인상적이라 평가하고, 상대 팀의 패배로부터 다음 경기에서의 개선 가능성을 엿보고..

특정 팀을 응원하면서, 전체 판을 조망하는 시선을 갖게 되면
야구 경기 관람이 더욱 흥미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왜 이제서야 떠오르는걸까
프로야구를 보기 시작한지 3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너무 늦은 것 같기도 하고
이제부터 시작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좀 묘하다. :)



PS. 관련 포스트
프로야구의 승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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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진동 :: 2017/05/15 00:05

과거는 지나간 시간들로 치부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듯 하다.
과거라고 정의를 내려버리는 순간, 이미 붙잡을 수 없는 아득함이 느껴지고
변할 수 없는 예전의 무엇이라고 생각되지만
과거는 지금 이 순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로부터의 과거 회상에 의해 과거는 변한다.
그냥 고정된 형태의 화석이 아니라
현재로부터의 회상, 반추, 복기를 통해 계속적으로 진동하면서 현재와 대화하면서 자신의 형태를 바꿔나간다.

과거를 바라보기 전과
과거를 바라본 후의
그것이 다르다.

과거를 응시하면 과거는 어떤 식으로든 응시에 응대를 한다.
그건 갑작스런 촉발이고 그에 의해 과거에 다시 호흡이 주입된다.
과거가 숨을 쉬게 되면 더 이상 시선을 받기 전의 과거가 아닌 뭔가가 된다.

과거가 현재로부터의 시선에 의해서 이렇게 변해버린다면
광활한 시공간 상의 모든 좌표가 과거의 한 시점, 공점을 응시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응시는 일종의 연결이 되고 트리거가 되어 연결되기 전 대비 달라진 뭔가를 지향하게 된다.

과거는 계속 변한다. 나의 시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특정 시점으로부터의 시선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무수히 많은 시선으로부터의 응시가 과거를 향하고 있어서 과거는 수많은 신호를 계속 받아내면서 진동한다.

우리 몸도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 마음도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 몸이 과거 아닌가..
우리 마음이 과거 아닌가..

현재는 수많은 과거의 합이자
수많은 과거를 진동시키는 에너지원이다.

과거는 진동한다.
나는 그런 과거를 응시할 뿐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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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을 보고자 하는 의도 :: 2017/02/24 00:04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들이 많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힘을 갖게 되는 경계선들.

그것을 보게 될 때
경계선은 힘을 잃어간다.

경계선은 곳곳에 산재해 있고
그것을 보려는 의도는 희박하다.

희소가치가 높은 곳에 시선을 집중시키면
경계선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

경계선을 보면
경계선을 보게 되면
경계선은 힘을 잃고
경계선에 의해 나눠진 두 영역은 하나가 된다.

공간을 재편성하게 된다는 거다.
경계선을 보게 되면.

경계선을 보고자 하는 의도
그 희소한 의도

그 의도가 지속된다면
결국 세상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경계선들은 스러져 갈 것이다.

블로깅을 하면서
경계선을 보려는 의도가 생겨나고
그렇게 의도를 작동시키다가 문득 바라보게 되는 경계선들..

나의 삶은 내가 응시하는 경계선들의 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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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관찰 :: 2016/09/26 00:06

사물을 관찰하다 보면
나의 관찰이 나만의 행위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뭔가를 관찰한다는 건
내가 관찰하려고 하는 그것이 나의 시선을 잡아 당겼다고도 볼 수 있어서이다.

시선은 던지는 것인 동시에
잡아당겨지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시선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인 동시에
나의 외부로부터 나를 향해 인입되는 인력이기도 하다.

관찰이 쌍방향성을 띤다면
결국 관찰은 피관찰과 동일한 개념이 될 수도 있을 듯 하다.

내가 무엇을 관찰하고 있다면
나는 동시에 무엇으로부터 관찰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나의 주의력이 미치는 범위가 넓지 않다 보니
나는 관찰을 하기 보다는 받는 빈도가 훨씬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나를 향하는 시선은 무한대에 가깝고
나의 시선이 미치는 범위는 유한하다.

무한과 유한의 만남
무한의 유입과 유한의 유출

그런 연결 관계 속에서 나는 관찰을 하고 있는 것이고
나의 시선은 그런 극적인 관계망 속에서 뭔가 영역을 형성하게 되고 흐름을 낳게 된다.

관찰이란 무엇인가?

어떤 단어나 개념에 대해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것의 사전적 의미가 대단히 피상적인 기술에 그치고 말뿐
사실상 그것의 의미는 대단히 깊은 곳에 비밀스러운 코드로 겹을 형성하며 숨겨져 있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남는 것은 질문 뿐이다. 아주 단순하고 무식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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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과 엔드 :: 2015/09/11 00:01

웹사이트는 대개 목록 페이지와 엔드 페이지로 구성된다.

그래서 목록과 엔드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원하는 정보를 탐색하고 소비하는 흐름을 타게 된다.

그러다 어떤 엔드에서 한참 머물러 있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내가 어떻게 여기로 오게 된 걸까?"

사용자가 이동하는 페이지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특정 페이지에 도달하게 될 때는 반드시 그 페이지로 시선을 이동하도록 만든 동인이 있다.

웹 상의 이동을 기계적으로 분석하면 그 페이지로 이동하기 이전의 경로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심층적인 레벨에서 파헤쳐 보면 특정 페이지로 오기까지의 수많은 맥락의 연쇄 고리가 알게 모르게 생성되고 소멸되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목록에서
엔드에서
목록과 엔드를 오가면서
'기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구성하는 인과 사슬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

그 모든 것들이 목록과 엔드를 오가는 웹 상의 행동 구조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느낌.

목록과 엔드.
끝없이 반복하게 될 이동 경로 상의 움직임.

오늘도 난 특정 목록에서 엔드로의 진입을 모색하고
엔드에서 뭔가를 찾고 소비하고
다시 목록으로 나와서 또 다른 엔드로의 진입을 계획한다.

목록과 엔드 사이에서 이동하는 흐름.
그 자체가 '나'인 듯 싶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
그 흐름이
그 흔적이
목록과 엔드 사이에서
오늘도 쉴 새 없이 로깅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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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사진 :: 2015/03/16 00:06

포토샵으로 합성한 사진은 사진일까?

포토샵으로 합성한 사진은 단순한 현실 캡쳐를 넘어선, 현실에 덧붙여진 환상인 것일까?

포토샵은 이미지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해오고 있는 걸까.

표현의 자유가 생기면서 이미지는 현실의 구속에서 벗어난 환상 놀이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 환상은 과연 환상일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가 새로운 현실일 것이고, 현실과 거리감을 형성하는 환상의 형체가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그것은 오히려 현실을 새로운 환상으로 포지셔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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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붙잡기 :: 2015/02/13 00:03

나와 마주서는 용기
로버트 스티븐 캐플런 지음, 이은경 옮김/비즈니스북스


이 책 중에서
버려지는 시간들을 헤아려 보기란 대목에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항상 흘러간다.
그래서 시간 앞에선 어쩔 수 없이 무력해진다.
시간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겐 없다.

하지만 시간을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본다면,
그런 착각 속에서 시간과 마주선 나 자신을 대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시간을 붙잡는다는 건 흘러가는 시간을 나름의 단위로 끊어서 대하는 것이다.
1년이 흐른 시점에서 지난 1년을 돌이켜보는 것.
1개월이 흐른 시점에서 지난 1개월을 돌아보는 것.
1일이 경과한 시점에서 지난 하루에 시선을 보내주는 것.

내 자신이 스스로 간절한 마음을 품고
지나간 시간의 단위를 치열하게 돌아본 적이 과연 있었던가?

시간은 흘러가기만 하진 않는다.
충분히 붙잡힐 수 있는 대상이다.

붙잡으려는 마음만 존재하면 된다.

이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일 수도 있고
새로운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여튼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시선을 보내는 행위이고
그 시선을 통해 시간은 내 안에서 새롭게 정의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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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 :: 2014/09/19 00:09

아무런 맥락 없이 나를 향해 무분별하게 인입되는 메세지.
물론 보내는 입장에선 이유와 맥락이 있겠으나
내 입장에선 전혀 아니다.

그건 스팸이다.

하지만
스팸을 컨텐츠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의 전환이 생긴다면?

기존에 가치 있다고 생각해 오던 것을 스팸이라 간주하고
누가 봐도 스팸인 것을 귀중한 컨텐츠라 여기는 의도적인 시선을 생성하게 되면
스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리게 된다.

스팸을 바라보면서 스팸이 만들어지게 된 맥락을 생각해 본다.
모든 스팸은 공급자 관점에선 분명한 맥락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것에 어떻게든 소비자 관점의 맥락을 넣어보려 애를 쓰면 스팸은 나름의 존재 이유를 갖게 된다.

스팸의 저자를 블로그 이웃이라 생각하고 따뜻한 조언의 한 마디를 작성해 보면
내 자신이 스팸의 저자와 그닥 다를 것 없는 포지션에 처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맥락 없음에서 맥락 충만으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만끽할 수 있다. 스팸을 갖고 놀다 보면.

나를 향해 인입되는 스팸 메세지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예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스팸을 소비하면서 스팸 속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가치를 탐사해 본다.
그러면서 스팸 메세지 안에 투영된 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들이 제법 의미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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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 2014/05/30 00:00

4월19일에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간 김에 책장을 바라보며 책상에 앉는 구조로 바꾸어 보았다.
허구한 날 책장을 바라보며 앉아 있게 되었다.
구도에 변화가 일어나자 책장 자체를 꾸미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예전의 책장은 단지 책을 꽂아 놓는 보관소에 불과했다.
그런데 책장을 수시로 바라보는 상황으로 진입하다 보니 책장에 변화를 주고  싶어졌다.
마치 오프라인 서점에서 많이 팔고 싶은 상품을 전진배치하는 것과 유사한 심경이라고나 할까.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 다시 읽어볼까 말까 하는 책을 빼서 앞면 배치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을 쉽사리 읽지는 않고 단지 책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놀이를 즐기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책 내용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고
책 내용에서 이탈하여 나만의 레일을 닦아나가는 상상력 자극 놀이도 하게 된다.

단지 책장을 바라보는 빈도가 늘어났을 뿐인데.
책에 대한 시각적 접근성이 제고됨에 따라
책장을 일종의 프론트 페이지로 규정하게 되고
그것을 관리하는 리소스를 탄생시키고 만 셈이다.
그렇게 된 상황의 흐름에 재미를 느낀다.
바라본다는 것은 그런 거다.
바라보면 바라봄의 대상은 살아 움직이게 되는 거다.
내가 움직여 놓은 게 아니라 그것이 움직인 거다.
그것이 움직이고 싶어진 거고 난 그것의 욕망에 의해 조종된 거다.

나는 책장을 바라보았고
책장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움직이게 되었다.

이사를 갔고
책장을 봤고
이제 책장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책장의 시선이 따사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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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로그인하고 있는가? :: 2014/01/31 00:01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회원가입을 종종 하게 된다. 아이디, 비밀번호를 정하고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회원가입이 완료된다. 그리고 나서 그 서비스를 반복적으로 이용하면서 그 서비스에 engaging이 되고 그 서비스와 일상을 함께 하게 된다. 나는 네이버, 다음,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밴드, 인스타페이퍼 등의 서비스에 아이디/비번을 등록하고 그 서비스에 회원자격으로 로그인해서 서비스와의 관계를 심화시켜 나간다. 여기서 아이디는 해당 서비스와 나와의 관계를 생성하는 중요한 key 값으로 기능한다. 서비스가 나를 인식하는 값이자, 내가 서비스에 회원자격으로 진입하기 위한 key이다. 아이디는 정체성(identity)의 약자이다. 정체성. 참 무거운 단어이지만 웹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참으로 스스럼 없이 마구 사용하는 개념이자 도구이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마구 사용하는 '아이디'란 개념을 이제는 함 진지하게 다뤄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간다. 인생은 거대한 서비스이다. 인생에 회원 자격으로 가입하고 인생이 제공하는 각양각색의 서비스 경험에 직면하게 된다. 나는 어떤 아이디(정체성)으로 가입했는가? 인생을 향한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세상은 나를 어떤 key 값으로 인지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명확할 수록 나는 인생이란 서비스에서 겉돌지 않고 나만의 색깔을 발산하며 활동할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 사고 싶은데 회원이 아니라고 가정해 보라. 매번 구매할 때마다 이것저것 정보를 입력해야 하고 물건을 구매해도 회원에게 제공하는 혜택을 비회원은 받지 못하게 된다.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개나소나' 급으로 푸대접을 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사고나 행동을 하게 될 때, 인생은 나에게 아이디를 물어본다. 비밀번호를 요구한다. 아이디는 내가 세상을 향해 "나는 타인과 이렇게 다릅니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핵심 문장이다. 비밀번호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눈이다. 그 눈이 없으면 나는 세상에 로그인할 수 없다. 만약, 내가 타인의 시선만을 의식하며 타인의 기대치나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나는 세상이란 서비스를 아이디 없이 이용해야 하는 비회원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고, 세상은 비회원인 나에게 이렇다 할 대접도 혜택도 제공하지 않은 채 나를 온전히 겉돌게만 할 것이다. 타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좋아하고, 타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노력만으로 일관하고, 타인의 시선에 들기 위해 안타까운 몸짓을 지속하고.. 이런 흐름 속에선 나만의 아이디가 생성되기 어렵다. 평생을 살았는데 아이디 없이 비회원 활동만 지속했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을까?

온라인 서비스에서만 로그인하지 말고 인생에 로그인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어떤 아이디로 인생에 로그인하고 있는가? 혹시 로그인도 하지 못한 채 비회원처럼 인생 주위를 병신처럼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디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밀번호를 까먹고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결국 인간은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제 맛을 보는 것이다. 타존의 삶을 사는 자들은 정체성 없음의 대가를 언젠가는 반드시 치르게 되어 있다.

인생에서..
나는 회원인가?
비회원인가?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보자. 여기서 답을 섣불리 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면 타존의 삶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타인과 무엇이 다른가? 남들 다 하는 것 말고 나만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는가? 설마 남들보다 공부 잘하는 것을, 남들보다 외모가 뛰어난 것을, 남들보다 돈 많은 것을,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것 등과 같이 타존의 삶 속에서나 빛을 발하는 비회원적 가치에 집착하느라 정작 나만의 아이디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어여 인생 회원가입 신청서를 작성해야 할 것이다.  근데.. 아이디를 뭐라고 적을 것인가? ^^  




PS. 관련 포스트
나, 시공간, 해체
깨어나는 좀비
아킬레스건
만물은 태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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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탄생 :: 2013/12/13 00:03

단 3개의 포스트에 불과하지만, '시선'이란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포스트를 3개 갖고 있다는 것이 내가 2013년의 나를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 같다.

시선과 거리
시선과 시선
시간과 시선


특히 시선과 시선이란 포스트를 올해 1월16일에 적을 수 있었던 건 내게 큰 행운인 듯 하다.

나의 생각 여정은 시선과 시선 포스트를 올리기 전과 올린 후로 나뉜다.  이 포스트를 적은 후로 다양한 시선을 접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고 그런 노력들이 당장 가시적인 결과로 나타나진 않았지만 내 안에 차곡차곡 축적되는 모습으로 나의 생각은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얼마나 편협한 시선의 굴레에 갇혀 있었는지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내가 갇혀 있던 시선의 프레임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얼마나 값진 경험인지 알게 되었고 그런 배움을 통해 다른 시선을 알고자 하는 시선 시뮬레이션 여행을 다채로운 모습으로 떠날 수 있는 기회를 극적으로 획득하게 된 것에 감사했다.

돌이켜 보면 2013년 1월16일에 적은 아래 포스트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꽤 오래 전에 적은 것 같은데 불과 올해 초였다니. ^^

시선과 시선

물고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광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독수리의 시선은? 치타의 시선은? 개미의 시선은? 시선 놀이만큼 재미 있는 게 세상에 또 있을까?  본다는 것은 나를 규정하고 나를 규정하는 프레임을 설정하고 나를 규정하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특정 시선을 갖고 객체를 바라보는 주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규정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규정되는 '나'에 의해 시선은 형체를 띠는 것이고, 규정된 나에 의해 형성되는 시선은 지속적으로 규정된 '나'를 강화시킨다. 뭔가를 보는 것은 대단히 후행적인 사건이다. 이미 그전에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세팅되어 버리는 것이고 그렇게 일사천리로 정해진 규격이 이후에 전개되는 대부분의 프로세스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주체는 뭔가를 보면서 시선이 생성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은 시선은 지극히 전면적인 전처리 과정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유형의 시선이 존재한다. 또한 특정 유형의 시선들도 저마다의 독특한 시선 특성을 지닌다. 특정 유형의 시선을 탑재하는 건 세상을 향해 오롯한 선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넓디 넓은 세상을 선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매우 과감하고 무모하고 어이없는 치기 어린 행위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수많은 유형의 시선에게 부여된 냉정한 현실인 것이고, 시선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가공할만한 한계성을 그닥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에게 부여된 가냘픈 '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게 된다.하지만, 부여된 툴이 너무 빈약하기만 하진 않다. 선은 홀로 존재하면 너무도 취약한 상태에 불과하지만 선과 선이 교차하는 순간 선은 면의 가능성을 지니게 되고 선과 선과 선이 만날 때 입체의 잠재성을 발할 수 있다. 문제는 '선'의 한계성이 아니라, 자신에게 부여된 '선'에만 갇히는가 아니면 다른 선과의 만남을 즐길 수 있는가이다. 물고기의 시선이 독수리의 시선과 만날 때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날까?  광물의 시선과 인간의 시선이 만나면 어떤 면이 탄생하는가? 치타의 시선과 개미의 시선과 박테리아의 시선이 만나면 어떤 입체가 만들어질까? 하나의 시선이 만들어지기 위한 무수한 전처리 과정은 특정 시선을 매우 협소한 궁지로 몰아넣는 경향이 있으나 시선과 시선이 만나서 이뤄내는 무수한 가능성은 거대한 후처리 과정을 낳게 된다. 그리고 난 후에 발생하는 전처리 과정과 후처리 과정의 연결. 여기서 시선은 거대한 도약을 하게 된다. 시선과 시선. 그 거대한 매치메이킹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시선을 지닌 자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물고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광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독수리의 시선은? 치타의 시선은? 개미의 시선은? 시선 놀이만큼 재미 있는 게 세상에 또 있을까? ^^


그리고 위 포스트는 2011년 12월7일에 적었던 아래 포스트와 궤를 같이 한다.

점, 선, 면, 입체, 그리고..

A는 점에 머무는 자였다. A는 점이 항상 답답했다. 항상 한 자리에 멍하니 머물러 있는 자신이 바보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유를 꿈꿨다. 어디로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움직이고 싶었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보고 싶었다. A는 점을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했고 점이 자신을 구속하는 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A를 둘러 싼 공간은 점에서 선이 되었다. A는 너무나 기뻤다. A는 선 상에서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예전 점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자유감을 맛 볼 수 있었다. A는 선이 새롭게 열어준 진보된 세상 속에서 사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어느 날 A를 둘러 싼 공간은 선에서 면이 되었다. A는 이전의 '선' 시절을 까맣게 잊고 면이 선사하는 꿈같은 신천지를 마음껏 누비고 다녔다. 면에서 생활하다 보니 과거의 선 생활을 돌이켜 보면 너무 끔찍하단 생각이 들기조차 했다. 도대체 선에서의 생활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젠 예전 선 생활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느 날 A를 둘러 싼 공간은 면에서 입체가 되었다. A는 이제 모든 것을 얻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나의 세상은 완성이 되었구나. 이제 나는 이 놀라운 세상 속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구나. 예전의 면, 선, 점에서의 생활은 이제 나에겐 흐릿하게 잊혀져만 가는 원시적 과거에 불과하겠구나. A는 입체 속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꿈만 같았다. A는 입체에 머무는 자가 되었다. 그런데.. A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A가 머물고 있는 입체는 아주 오래 전에 A가 머물던 점 속에 잠재하던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결국 점은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빅뱅 이전의 공(空)과도 같은 상태였다는 것을.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고 면이 입체가 되는 과정은 발전이 아닌 단지 점이 추는 가벼운 춤에 불과했다는 것을. 결국 A가 머물고 있고 A가 너무도 자랑스러워 하는 '입체'는 점을 너무도 그리워하고 있고 언젠간 꼭 점이 되고 말리란 꿈을 단 한시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난 행복하다.
2011년의 점, 선, 면, 입체, 그리고.. 포스트가 있어서.
2013년의 시선과 시선 포스트가 있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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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시선 :: 2013/11/11 00:01

시간
과거는 집착이나 후회의 대상이기 쉽다. 미래는 불안과 걱정의 대상이기 쉽다. 하지만, 과거나 미래는 그렇게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건 아닐 것 같다. 과거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하다. 미래는 현재를 가늠하기 위해 필요하다. 모든 것을 현재에 맞추어 보자. 모든 것이 현재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현재 중심적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면 과거는 쓸데 없는 집착과 후회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현재를 반추하기 위해 존재하는 현재 서포터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미래는 영양가 없는 불안과 걱정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현재를 다각적으로 읽어내기 위한 흥미진진한 만화경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에 집착하기 위해 현재를 소모하고 미래를 걱정하기 위해 현재를 낭비한다면 현재를 심하게 오용하는 것이다. 포커스를 현재에 맞추고 과거나 미래를 현재를 위한 도구의 포지션을 부여하자.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스치듯 지나 미래로 향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현재에 의해 역설계된 과거와 현재에 의해 축조되는 미래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경쾌하게 흘러가는 한 판의 춤인 것이다.

시선
시선은 나로부터 타인을 향하고 타인으로부터 나를 향한다. 그럼 나의 시선과 타인의 시선을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의 질문이 생겨나게 되고 시선과 시선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각양각색의 어우러짐은 시선을 살아 숨쉬게 한다. 하지만, 나의 시선과 타인의 시선이 서로 대등한 관계를 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타인의 시선에만 관심과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면 시선은 인간과 함께 호흡하기 보다는 인간을 압박하고 지배하는 포지션을 취하게 된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나의 모습을 가다듬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면 나의 시선은 존재감을 잃어가게 되고 그런 시선의 불균형 속에서 타인의 시선은 온전히 나를 삼키게 될 것이다. 나의 시선에 얼마만큼의 관심과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는가? 나의 시선을 보듬어 줄 수 있도록 타인의 시선에 대응하는 나의 시선을 강화시켜보자. 타인의 시선에 좋게 비쳐지기 위해 살아가지 말고 타인의 시선을 나의 시선을 가다듬기 위한 단순 참조 데이터로만 활용해 보자. 타인의 시선을 응시하고 그 시선에 깃들어 있는 타존의 몸짓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자. 타인의 시선은 나를 조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선을 나다운 것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서포터로 존재하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걸맞은 포지션을 부여할 수 있다면 시선은 타인으로부터 나를 향해서만 흘러가는 일방향성 통제에서 나를 중심으로 여기고 나를 풍요롭게 하는 촉매제 작용에 만족하게 될 것이다.

시간과 시선
시간은 시선을 형성하고 시선은 시간이 되어간다. 현재로부터 과거를 향한 시선, 현재로부터 미래를 향한 시선, 과거와 미래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타인의 시선이 나에게 전해주는 시간의 메세지, 나의 시선이 타인에게 전달하는 시간의 음성. 시간과 시선은 그렇게 서로 연결되고 교차하고 투과되면서 서로에게 깊이 투영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PS. 관련 포스트
시선과 시선
현재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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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근중 | 2013/11/16 09:2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늘 아침 입을 옷을 고르면서 시선에 대한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이렇게 또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흥미호운 포스트를 보게 되니 참 신기하군요. 항상 즐겨보고 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11/18 20:58 | PERMALINK | EDIT/DEL

      시선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생각이 성장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하루 시선에 대한 생각 없이 시간이 흘러왔는데 중요한 시점에 다시 리마인드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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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간을 의식하다. :: 2013/08/12 00:02

3초간
데이비드 폴레이 지음, 신예경 옮김/알키

책 제목이 매우 인상적이다. 책 제목 만으로도 뭔가를 전달 받는 느낌이다.

감정의 파도가 밀려올 때 초기 3초를 잘 보내면 전체적인 감정 선을 관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초기 3초를 감정의 파도에 훅 쓸리듯이 보내버리면 그 이후의 시간들은 보나마나 감정의 노예 상태에 불과할 것이다. 감정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은 감정이 발생하는 초기 3초 간의 짧은 시간이다.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결정적인 프레임 설정이 이뤄지는 시간이고 한 번 프레임이 정해지면 인간은 온전히 그 프레임의 가이드를 충실히 따르는 순응적 봇으로 기능하게 된다.

사실상 초반에 많은 것이 결정되는 상황. 그럴 때는 시작점에 주의력을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작점에서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면 이미 게임이 끝나버린 상황에서 게임을 시작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끝나는 게임. 육상 100미터 부문에 출전하는 스프린터의 마음가짐으로 감정 파도에 대처해야 한다.

시작점에서 게임이 끝나는 대표적 상황이 있다. 바로 '비교'이다. 세상에 태어나 유니크한 향취를 풍기며 살아가야 마땅한 인간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신의 복제본으로서의 가치를 드높이고자 애처로운 몸짓을 지속하는 상황. 비교를 시작하자마자 인간 존재 관점에서 loser가 되어버리는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시작점 관리를 잘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때 시작점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는 것.
'3초간'이란 책 제목에서 내가 되새겨야 할 교훈의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책 제목 만으로도 이렇게 나름의 생각을 펼칠 수 있어서 참 좋다.
나에게 나름의 생각 시간을 부여해 준 책 제목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



PS. 관련 포스트
초기조건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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