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에 해당되는 글 16건

시차 :: 2017/11/15 00:05

호주 시드니에 갔다. 2시간 시차다.

1시간의 시차였다면 거의 무시할 수도 있는 수준이겠으나 2시간의 시차니까 살짝 의식이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선 오전 8시인데 호주에선 오전 6시다.  한국이었다면 하루를 시작하고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간 시점인데 반해 호주에선 아직 하루가 시작되지 않은 시점이다. 내게 있어선..

한국에선 오후 1시인데 호주에선 오전 11시이다. 느낌이 완전 다르다. ㅋㅋ

단 2시간의 시차 만으로도 이렇게 느낌이 달라지고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서 색다른 결이 만들어진다는 게 새삼 흥미로워진다.

시각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면서 얻어지는 변곡감이 꼭 국경을 넘어선 이동 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닐 게다.

시각에 대한 정의는 시간 속을 살아가는 누구나에게 열려 있는 놀이의 대상일 게다.

내가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가, 그 지점에 부여하는 時刻(시각)은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게 전부가 아니라, 각 개인들이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의도로 어떤 의미를 새겨 넣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의 양태를 보이게 되는 것 아닐까.

時刻(시각)은 때를 새기는 행위이다.
시각은 내가 새겨내는, 내가 생성하는 시간 정보다.

시드니에서 경험한 2시간의 시차.
거기서 파생될 수 있는 수많은 변주의 기회.
그걸 보았다. 내가 스스로 나를 위한 때를 새길 수 있음을 배웠다.  ㅋㅋ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2226
NAME PASSWORD HOMEPAGE

묵음영상 :: 2017/04/14 00:04

시청(시&청)을 전제로 하는 컨텐츠를
시로만 감상한다는 것

사운드 오프 상태로
영화를 보는 것
드라마를 보는 것

결국 시청각 소비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컨텐츠라 해도
소비자가 임의로 감각채널을 단절시키면
감각수용 채널이 재편되면서
컨텐츠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묵음으로 동영상 감상하는 것
은근 재미있는 행위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2134
NAME PASSWORD HOMEPAGE

경계선을 보고자 하는 의도 :: 2017/02/24 00:04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들이 많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힘을 갖게 되는 경계선들.

그것을 보게 될 때
경계선은 힘을 잃어간다.

경계선은 곳곳에 산재해 있고
그것을 보려는 의도는 희박하다.

희소가치가 높은 곳에 시선을 집중시키면
경계선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

경계선을 보면
경계선을 보게 되면
경계선은 힘을 잃고
경계선에 의해 나눠진 두 영역은 하나가 된다.

공간을 재편성하게 된다는 거다.
경계선을 보게 되면.

경계선을 보고자 하는 의도
그 희소한 의도

그 의도가 지속된다면
결국 세상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경계선들은 스러져 갈 것이다.

블로깅을 하면서
경계선을 보려는 의도가 생겨나고
그렇게 의도를 작동시키다가 문득 바라보게 되는 경계선들..

나의 삶은 내가 응시하는 경계선들의 합이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2113
NAME PASSWORD HOMEPAGE

e북 삭제 :: 2016/11/30 00:00

스마트폰으로 e북을 즐겨본다.
폰의 용량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구입한 e북을 무작정 보관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어쩔 수 없이 자주 읽지 않는 e북은 삭제를 하게 된다.

그런데..
e북에 하이라이트 해놓은 부분을 나중에 읽어 보는 맛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삭제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을 해보게 된다.
e북을 삭제한다는 건 e북의 하이라이트를 삭제한다는 건데..

흑..
예전에 애써 하이라이트 해놓은 것들이 다 날라갔구나란 허탈감..


하이라이트를 보존할 수 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드는 동시에
그렇게 하이라이트를 삭제하는 게 진짜 삭제한 건가?란 질문도 생긴다.

내가 했던 하이라이트는 삭제된 것이 아니라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 같다.
시공간 상을 부유하는 마이 하이라이트..

e북을 삭제하면서 하이라이트가 날라간 것을 보면서,
삭제를 통한 부재를 체감하면서,
오히려 존재를 느끼게 된다
내가 하이라이트를 했다는 기억.
희미해지는 하이라이트의 지점들.
그것들이 지금 당장 내 눈 앞에선 사라졌지만
사라졌기 때문에 결국 존재한다는 것을 내게 증명하고 있는 역설적 존재감으로 인해
나는 e북 삭제를 통해 오히려 보이지 않는 하이라이팅을 지속하게 되었다는..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2076
NAME PASSWORD HOMEPAGE

들리지 않는 대화 :: 2016/04/29 00:09

카페에서 사람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들리지 않는 대화 속에서 읽혀지는 뭔가가 있다.

대화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사람 간 대화의 모습만이 유일한 단서가 될 뿐
나머지는 모두 내가 채워야 하는 여백 많은 캔버스인 것이다.

모든 정황이 포착될 수 있다면 그걸 묘사하면 된다.
묘사의 깊이를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제한된 상황만이 나에게 재료로 주어진다면
나는 밑바닥부터 플롯을 짜야 하고 캐릭터를 내 의도대로 정의해야 하는 소설가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그 어떤 대화도 소설의 한 장면이 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결정적인 scene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긴장감을 견지한 채,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를 관찰한다.

명품을 자꾸 쳐다봐야 명품에 대한 감각과 취향이 생성되듯이
대화를 자꾸 쳐다보면 대화에 대한 감각과 취향이 만들어진다.

대화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대화를 보면 대화가 읽혀진다.
들렸다면 읽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묘사를 위한 정보만 많아졌을 듯.

하지만 대화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감각기관이 본격 작동하게 된다.
대화를 그저 보게 되는 것이고, 보다 보면 대화를 읽게 될 수 밖에 없다.

대화를 읽는다는 건
대화를 작성하는 것이다.
읽기와 쓰기는 표면적으로만 다르게 보일 뿐
본질적으로 유사한 결을 띠고 있는 행위다.

대화를 읽는다.
대화가 더욱 들리지 않는다.
그 속에서 시각과 독각은 더욱 첨예해진다.
캐릭터는 스스로 살아움직이는, 대화를 둘러 싼 공기가 자연스럽게 플롯이 되는..

대화가 들리지 않을 때
나의 소박한 창작은 시작된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984
NAME PASSWORD HOMEPAGE

그림자 :: 2014/01/06 00:06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살아있는 사람은 계속 심장이 뛴다. 심장이 뛰는 것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심장이 뛰는 것을 알고 있고 심장이 뛰고 있어서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는 것을 인지할 때 건강한 심장이란 것을 간접적으로 전달받게 된다. 직접적으로 실체를 지각하지 않아도 실체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신호를 통해 실체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일종의 그림자 효과라고나 할까.

'시각'은 보이는 것만을 감지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하고 지각하는 것도 시각의 역할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시각 기관이다. 시각 기관을 올바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선 보이는 것에만 시각 기관이 경도되지 말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 기관은 느끼고 있다. 문제는 시각 기관으로 접수되는 보이는 것에 대한 신호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신호를 차별대우하려고 하는 인간 본능을 컨트롤할 수 있는가이다. 마치 달콤한 것만 받아 먹으려고 하는 미각 본능과 마찬가지로 보이는 것만 접수하려고 하는 시각 본능과의 긴장 관계를 형성할 줄 알아야 한다.

MRI, CTI 영상은 실체는 아니다. 영상에 대한 해독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문가의 해독이어서 그걸 마치 실체와도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일 뿐 영상과 해독 사이엔 분명한 거리가 존재한다. 그림자를 보면서 실체를 추정하는 놀이를 뇌가 넘 즐기다 보니 뇌의 농간 때문에 실체와 해독을 구분 못하는 상황은 인간의 삶 전체에 걸쳐서 자행되기 마련이다.

결국 감각 기관은 해석을 하는 것이고 실체는 별도로 인식 너머에 존재한다. 실체를 보면서 살아간다는 생각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인간은 항상 그림자를 보면서 실체를 매우 부정확하게 추정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그런 불안하기 이를 데 없는 추정의 중첩 속에서 판타지는 확대 재생산을 거듭한다.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 암호와 해독.  인간은?

암호가 난무하고 해독이 뒤따라 횡행한다. 세상은 온통 암호들로 뒤덮여 있고 해석의 메세지로 자욱하다. 암호는 원천 메세지이고 해독은 2차 메세지이다. 우린 1차 메세지와 2차 메세지 간의 관계 속을 살아간다.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은 암호와 해독인데 그것은 서로 완전 잘못 연결되기도 하고 축소 또는 확대적 왜곡으로 점철되기도 한다. 암호와 해독이 존재할 때, 인간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일까? 인간은 그저 암호와 해독이 꾸고 있는 '꿈'에 불과한 것 아닐까? ^^

그림자를 보면서 실체를 추정하는 작업은 사지선다형 문제를 풀면서 모르는 문제를 때려 맞추는 것보다 훨씬 난해하다. 그래서 아예 해독이라 생각하지 않고 실체 자체라고 오인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이다. 그게 실체일 수는 없다.  난해한 암호 문장을 접하면서 그 암호 속에 담겨진 메세지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고 해독의 실마리를 찾아 떠나는 인지 여행. 그건 그림자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또한, 그림자를 실체가 아닌 암호문으로 바르게 응시하는 지혜로운 시선도 인간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겠다.  그걸 잘 하는 인간은 '존재'가 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이겠고, 그게 잘 안되는 인간은 존재라기 보다는 암호와 해독 사이를 부유하는 한낱 '꿈'에 불과한 무엇일 수 있겠다. ^^




PS. 관련 포스트
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해독과 신념. 그리고 종교.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567
NAME PASSWORD HOMEPAGE

허간 :: 2013/02/06 00:06

생각은 공간에서 나온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인 것 같지만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유동하고 있으며
그것 중에 나와 맞는, 나를 향해 운동하고 있는, 내가 다가가는 것들을 캡쳐(?)할 때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빈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결코 비어있지 않다.
보이는 것은 모두 보이지 않는 것에서 생겨났다.
보이는 것은 모두 보이지 않는 것이 된다.
상황이 이러한데, 보이는 것만 보고 그것이 전부인양 살아가는 삶이 과연 온전한 삶일까?

허간을 살아가면서 허간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반쪽 짜리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나머지 반쪽은 계속 블랙박스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하루에 단 5분이라도 '허'를 대할 수 있다면, 응시할 수 있다면
허간을 사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를 갖추게 되는 셈인데.

생각은 공간에서 나온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나오는 생각.
그 생각 탄생의 순간.
'허'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투영한다.
그 순간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다면 허간은 인간과 연결된다. ^^



PS. 관련 포스트
허의 경계
허력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467
  • Wendy | 2013/02/07 09: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하루 중 '허'를 반드시 스스로에게 허용해야겠습니다. 그 순간 무궁무진할 아이디어와 그 진심은 분명 제 삶에 에너지이자 깨알재미가 되어주겠지요? ^^ 지난 번 스파클링 워터에 이어, buckshot님과 buckshot님의 블로그는 제 삶에 curator라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후훗. 다양한 분야와 영역을 초월하고 넘나드는 주옥같은 포스팅들이 제 삶을 흥미롭게 curation 해주고 있습니다. 'social curator'로 모바일 명함하나 만드셔요 헤헤 ^^

    • BlogIcon buckshot | 2013/02/07 20:42 | PERMALINK | EDIT/DEL

      진짜 스파클링 워터, 진짜 curator는 Wendy님입니다. 예능에서만 리액션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세상은 결국 리액션의 힘으로 작동되는가 봅니다. 제게 커다란 배움을 주셨어요. 그래서 내일 포스트는 Wendy님께서 제목에 등장하시게 됩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

귀로 기억하기 :: 2013/01/21 00:01

브랜드는 눈이 아니라 귀로 먼저 기억시켜라

재미있는 내용의 포스트이다.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것 못지 않게 청각적 인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귀로 기억한다는 것.
시각적 자극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청각의 소중함을 지켜나감을 의미한다.

눈으로 기억하기
귀로 기억하기
손으로 기억하기
발로 기억하기
배로 기억하기

기억의 수단은 참으로 많다.
진동을 느끼고 울림을 감지하며 촉감을 소환하면서
기억은 감각기관 속으로 체화된다.

감각기관은 기억을 담는 컨테이너이다.
기억은 감각기관에 담기는 컨텐츠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내가 어떻게 기억되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은 필연적으로 감각재귀 메커니즘을 타게 되어 있다.

새까만 공간 속에서 보이는 것들.
소음 가득한 공간 속에서 들리는 것들.
닿지 않는 것을 촉으로 느끼는 것.
밟히지 않는 것을 발로 느끼는 것.

기억을 감각하고
감각을 기억한다.

감각기억 vs. 기억감각

감각과 기억 사이에 내가 존재한다. ^^




PS. 관련 포스트
감각재귀
찜질방, 온도와 소음
무음, 알고리즘
문자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464
  • wendy | 2013/01/21 09: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출근길에 커피로 인하여 시각 및 후각적 컨텐츠만 담았는데, '청각적 인지'를 통한 기억이라...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새롭네요! ^^ 아침 출근길에 흥얼거렸던 음악은 청각적 컨텐츠이겠지요? 늘 새롭고 재미난 관점과 주제로 포스팅을 해주시니, 저의 잠들어 있는 감각기관들이 깨어나는 것 같아요. 너무 감사드려요! 한 주간도 승리하시길! ㅎㅎ

    • BlogIcon buckshot | 2013/01/21 20:06 | PERMALINK | EDIT/DEL

      wendy님의 댓글은 언제나 제 생각을 일깨워주시곤 합니다. 댓글 보내주시는 만큼 제가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 BlogIcon Playing | 2013/01/23 23:0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글을 보면 제가 조금 이상해진 거 같아요
    느껴집니다... 무언가 제가 놓치고 있는 그것이 '기억'이라는 보금자리에 안주하려고만 하는 제 반쪽임을 ...;;

    어쩌면 지금의 반쪽과 놓치고 있는 반쪽이라는 느낌도 또다른 내 편한세상속 이야기같지만 그래도 느껴집니다 크하하 ;;

    • BlogIcon buckshot | 2013/01/24 20:55 | PERMALINK | EDIT/DEL

      제가 너무 횡설수설하면서 혼란을 드린 것 같네요. 저도 잘 모르면서 적은 내용이라서 그냥 가볍게 흘리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

펜로즈 계단 :: 2012/12/05 00:05

영화 인셉션을 보면 펜로즈 계단을 이용해서 적을 물리치는 장면이 나온다.  3차원 세계에서는 구현이 불가능하지만 2차원의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시각의 허점에 의해 생성되는 허상이 어디 펜로즈 계단 뿐이겠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허상을 생산하고 소비하며 살아간다. 

허상이 존재한다는 건, 인간이 대상을 보는 각도에 현저한 제약이 있음을 의미한다. 대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각도가 존재한다는 건 대상에 대한 제한된 view만 갖고 대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이 대량 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한된 시야로 인해 대상의 일면만을 보고 대상을 안다고 착각해야 정보의 과부하로 인한 인지체계의 마비를 방지할 수 있긴 하지만, 정보 수용 능력의 한계로 인해 감각기관이 쏟아내는 착각의 상들 속을 살아가는 인간 입장에선 수시로 생성되는 펜로즈 계단이 제공해 주는 무한 뫼비우스 트랙을 맴도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 만은 아닐 것이다. ^^

펜로즈 계단의 뫼비우스 트랙에서 벗어나려면 차원을 확장하고 공간을 비틀 수 있어야 한다. 차원을 확장한다는 것은 펜로즈 계단의 뫼비우스 트랙 안에서 다람쥐 쳇바퀴를 돌다 어느 순간 뫼비우스 트랙을 균열시켜 펜로즈 계단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틈을 발견하는 것이다. 생각을 전개하지만 뫼비우스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 때가 많은데 생각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가만히 되새김질 해보면 어떤 요소에서 생각의 쳇바퀴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단서가 발견될 수가 있고 그 단서를 파헤쳐 나가다 보면 어느새 뫼비우스의 띠는 해체되고 무한히 연결된 줄로만 알았던 라인이 붕괴되면서 그 붕괴된 지점에서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균열점을 찾고 차원을 확장할 수 있으려면 대상에 대한 360도 viewpoint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대상의 겉모습에 대한 360도 뷰 뿐만 아니라 대상의 속모습과 겉모습을 아우르는 본질에 대한 이해도 갖춰야 한다. 내가 갖고 있는 인지체계가 만들어내는 상에서 균열을 찾고 거기서 차원 확장을 일으키는 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혁명과도 같다. 펜로즈 계단은 인셉션에서나 가능한 SF적 장면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구현 가능한 '인지 & 사고' 놀이인 것이다.

사고의 계단을 걸어가다 왠지 무한 루프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들 땐 펜로즈 계단 놀이를 할 시점이 도래했다고 생각하자. 펜로즈 계단 놀이를 통해 2차원적으로 이어진 계단을 3차원적으로 붕괴시키는 경험을 축적하면 할수록 세상과 나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점, 선, 면, 입체, 그리고..
충돌과 차원확장
비교, 분해를 통한 허상 소비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409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1:19 | DEL

    Wow, this article Read & Lead - 펜로즈 계단 is pleasant, my younger sister is analyzing such things, therefore I am going to inform her.

  • toms store

    Tracked from toms store | 2013/06/13 11:20 | DEL

    It awesome designed for me to have a web site %title%, which is beneficial designed for my know-how. thanks admin

NAME PASSWORD HOMEPAGE

3루타 :: 2012/07/04 00:04

야구경기를 가끔 본다.

한 타자가 장쾌한 3루타를 쳤다.

속이 후련해지는 장타에 기뻐하다가
문득 3루로 돌진하는 타자주자 말고 급하게 3루 뒤로 백업 수비를 들어가는 투수의 표정을 보게 되었다.
중견수가 3루로 던진 공이 뒤로 빠졌을 때를 대비해서 백업을 들어가는 모습인데.

백업을 들어가는 투수의 표정을 보면서 느꼈다.
인생은 3루타를 맞고 3루로 백업수비를 하러 달려가는 투수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구나라고..

눈에 보이는 화려한 3루타의 이면엔 묵묵히 3루의 뒤를 받쳐주기 위해 달려가는 투수의 얼굴이 있었다.

그 얼굴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얼굴이 아닐까?

보이는 것. 화려함.
그 뒤에서 묵묵히 보이지 않는 작업을 수행하는 화려하지 않은 몸짓들.

보이지 않는 백업 수비.
거기서 가치를 느낄 수 있고 그것을 직시할 수 있다면
인생은 훨씬 더 의미 가득한 풍요로움으로 충만할 수 있을 것이다.

3루타는 타자의 작품인 동시에 투수의 작품이다.
3루타를 친 타자의 화려한 플레이에 관중들은 환호하지만
3루타를 맞은 투수가 묵묵히 수행하는 백업 플레이도 훌륭한 작품이다.

시각은 피상적인 것에 치중하기 쉬운 감각이다.
시각이 화려함에 속아 넘어가는 만큼 보이지 않는 것,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의 소중함에서 점점 멀어진다.

화려함을 볼 때는 항상 그 이면에 존재하는 현혹 메커니즘을 직시해야 한다.
화려함에 취하고 화려함만을 지향하며 살아가기 쉬운 시각적 술독에서 가끔은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한다.

시각적 술독에 절어 있다가
문득 3루타 백업수비를 하는 투수의 모습을 보며 살짝 술기운이 가시는 느낌이 참 좋다. ^^




PS. 관련 포스트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368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1:20 | DEL

    Thanks for sharing such a pleasant thinking, piece of writingRead & Lead - 3루타 is pleasant, thats why i have read it completely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1:21 | DEL

    Hi there everybody, I know YouTube video includes less bytes of memory due to that its quality is poor, except this YouTube video has impressive picture features %title%.

NAME PASSWORD HOMEPAGE

문자 :: 2012/06/27 00:07

문자. 

문자는 시각매체인 동시에 음성 치환자이다.

문자를 눈으로 읽을 때, 마치 그 문자를 읽을 때의 발음이 귓가를 맴도는 것처럼 느껴진다.
문자엔 음성이 내재하고 있다. 음성이 내재하다 보니 문자는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자극하곤 한다.

인간의 감각 중에서 시각이 제일 강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간을 은연 중에 좌지우지하는 감각은 청각이다. 시각은 다분히 표피적이고 그 표피적인 현혹성으로 인해 시각에 많이 휘둘리는 우를 범하기 때문에 시각이 강력해 보이는 것이지, 시각의 덧없음을 간파하고 시각에 지나치게 많은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기로 마음 먹고 행동하는 순간 시각의 파워는 사그라지기 십상이다.

시각을 우습게(?) 보기 시작하면서 청각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된다.
청각이란 무엇인가? 듣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청각으로 보게 된다면? 
시각이 아닌 청각으로 '응시'한다면?

시각이 청각을 삼킬 때
청각이 시각을 삼킬 때

시간. 
우리가 느끼는 시간은 다분히 공간으로 치환된 정체 불명의 무엇이다.

시간이 공간을 삼킬 때
공간이 시간을 삼킬 때

표피적 시각에 속고 치환된 시간에 넘어가는 게 인간인 것 같다.

'표피적 시각'이 청각을 삼키고
'공간으로 치환된 시간'이 오리지널 공간을 삼킬 때 인간은 시각/시간에 휘둘리고 기만당한다.

하지만,
청각이 본연의 가치를 되찾고 공간이 중심을 잡게 되면
'표피적 시각'은 청각의 보조재로, '치환된 시간'은 공간의 서포터로 기능하면서
청각과 공간은 자신의 심연과도 같은 본질로의 여행 루트를 공개하게 된다.

문자를 보면서 청각의 제자리 찾아주기가 필요함을 느끼고
시각에 삼켜진 청각을 보면서 공간의 제자리 찾기가 필요함을 느낀다.

문자.
문자를 들어보자.
눈으로 사물의 소리를 들어보자.
시간의 흐름을 살면서 치환된 시간을 치환되기 전의 원래 모습으로 돌려 놓아 보자.
사물의 소리, 시간의 원래 모습. 그 속엔 인간이 잊고 사는, 인간이 잃어버린 뭔가가 있을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무감각
감각재귀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362
NAME PASSWORD HOMEPAGE

비교 & 역분해 :: 2012/05/25 00:05

비교 가능한 프레임 속에서 비교우위를 추구하고 비교우위를 점하면 기뻐하고 비교열위에 놓이면 슬퍼하는 모습은 자존이 아닌 타존이 지배하는 삶의 모습이다. 비교 우위/열위에 일희일비하는 동안, 비교 프레임이란 늪에 빠져 헤매는 삶의 공허함은 더욱 깊어만 간다.

사람은 비교에 매우 익숙하다. 비교를 통해 자신의 현 위치를 파악하기 쉬워서 그렇다. 그런데 현 위치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까 쓸데 없는 비교를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비교 대상을 설정하고 비교 프레임 속에서 허덕이면서 뇌를 즐겁게(?) 하곤 한다. 외모를 비교하고 성적을 비교하고 수입을 비교하고 지위를 비교하고..

비교는 전체가 아닌 부분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비교한다는 건 특정 부위로 범주를 좁혀 놓고 비교가 용이한 잣대를 가지고 유아적인 셈 놀이를 하는 것이다. 누구나 비교를 하는 순간 유아가 되는 것이다. 유아적 프레임 속에 갇혀서 비교 놀이를 하다 보면 점점 더 비교란 이름의 마약에 빠져 헤어나오기 어렵게 된다.

뇌가 원체 비교를 좋아하다(?) 보니 비교에서 완전 자유롭기는 매우 어렵다. 생물로 살아가면서 생물 특유의 현 위치 파악 기능을 아주 무시하기가 어렵다는 걸 인정하긴 해야 한다. ^^  하지만 생물적 본능 만을 내세운 유아적 비교 놀이에만 탐닉하는 건 너무 한심스러운 일이다.

비교는 항상 분해를 전제로 한다. 대상을 외모로 치환하고, 대상을 수입과 지위로 치환하는 유아적 분해 프레임. 분해만 하면 안된다. 분해를 한 후엔 반드시 역분해를 해야 한다. 그 균형감이 없으면 유아 셈 놀이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비교 본능의 반대편에 포지셔닝할 수 있는 놀이를 계발해야 한다. 분해를 하고 분해를 통해 대상을 피상적으로 파악하는 착시 놀이를 한 후에 흐려진 시야를 보정하는 역분해 놀이를 해보자. 숫자로 대상을 파악하고 대상과 대상을 비교한 후에 숫자를 머리 속에서 지워보자. 숫자에 대한 감 없이 대상을 바라보고 현혹성 강한 숫자의 힘에 의존하지 말고 대상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원초적 진동을 느껴보자. 편의에 의해 숫자를 사용하고 편의에 의해 비주얼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지 숫자/비주얼 자체에 함몰되는 판단체계여서는 매우 곤란하다.

분해 놀이에 치우쳐 살아가기 십상이기 때문에 얼마나 역분해 놀이를 대항마로 강하게 내세울 수 있는가 여부에 통찰의 기회가 좌지우지된다. 나는 일상 속에서 역분해를 얼마나 실행할 수 있는가?  분해는 역분해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분해만 하면 바보 된다. ^^



PS. 관련 포스트
비교, 분해를 통한 허상 소비
분해와 연결
책은 씹어야 맛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365
NAME PASSWORD HOMEPAGE

바깥, 알고리즘 :: 2012/04/25 00:05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뭔가에 주목한다는 것은 다른 뭔가에는 주목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심'이란 자원은 분명 제한되어 있어서 모든 것에 관심을 골고루 배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關心이 시각적 요소에 의해서만 좌우될 경우 관심은 觀心이 된다. 마음엔 관계가 좋은 양식인데, 마음은 자꾸 시각적 요소에 미혹을 당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關心은 희소자원이고, 觀心은 잉여자원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주기란 매우 어렵다. 관심은 보이지 않는 대상 입장에선 획득 불가의 자원인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관심은 보이는 것에 크게 편향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스크린이 일상 속으로 깊숙이 침투하면 할수록 관심의 시각 집중화 현상은 더욱 심도를 더해갈 것이다. TV, PC, 스마트디바이스.. 스크린의 힘이 세질수록, 스크린 바깥에 대한 관심은 희소한 자원이 되어갈 것이다. 스크린에 노출되는 것들의 흐름 속에 시각과 관심이 매몰되어 가는 현상의 바깥에선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내가 관심을 주는 영역이 나의 관점을 규정하고, 내가 관심을 주지 않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의 관점을 규정한다. 알게 모르게 내가 설정해버린 나의 관심영역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의식 바깥으로 밀려나버린 나의 비관심영역. 중요한 건 비관심영역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비관심 영역과 나 사이의 거리가 핵심이다. 거리가 계속 멀어지고 있는지 가까워지고 있는지, 비관심영역에 대한 의식적 접근을 하는 시간이 1%라도 되는지 아니면 그 희미한 가능성마저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지.. 바깥에 대한 관심과 바깥을 관찰하고자 하는 태도.

내가 '주목'이란 단어에 주목해서 얻은 수확은, 주목하지 않았던 것에 주목해야 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라는 책 제목.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한 자극과 영감을 받는다. 책을 읽지 않기 위해 책을 읽듯이, 주목하지 않기 위해 주목하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기 위한 자양분을 책에서 얻는다. 그렇게 자양분을 책을 통해 얻다 보면 어느 날 책 없이도 다양한 사고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다. 주목도 마찬가지다. 특정 영역에 관심을 갖다 보면, 그 영역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결국 관심은 관심의 대상 자체에 몰입하기 보다는 시각의 범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고 시각의 범주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하는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시각.
그건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주어진 감각이 아니다.
보이는 것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시각의 모습인 것이다.

관심은 결코 편향이 아니다.
모든 감각을 기울여 안과 바깥을 모두 통찰하는 것. 그것이 關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주목,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347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4/25 21: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정말 buckshot님표 Concept-Context 브랜드 중 요즘 가장 팬이 된 것이 이 "관심"의 개념입니다. ^^ 관심이란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즉 단순히 자기 흥미를 좇는 감정 작용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큰 자아의 기초를 세우는 경이로운 작업이란 사실을 buckshot님의 최근작들을 통해 일상 속에서 계속 깨우치게 됩니다. 모든 것(Every-Thing)과 함께 하는 나, 그 꿈의 실현은 곧 관심이라는 작고도 위대한 발걸음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4/25 22:24 | PERMALINK | EDIT/DEL

      작은 관심 속에 우주가 담길 수도 있다는 생각. 그 생각 만으로도 가슴 벅찬 설레임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끝없이 작은 관심들을 생성해 내고 그 관심의 흐름 속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게 얼마나 결정적인 삶의 단서이고 그것 자체로 얼마나 충분한 건지.. 저는 요즘 그걸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

유머의 힘 :: 2007/04/10 00:03



Mobile mind를 갖기 위해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각과 다양한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고
어린아이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하지만 절대 빠져선 안되는 mobile mind의 중요한 레버가 있다.
바로
유머이다.

'Mobile'은 경쾌함을 의미한다.  우린 모두 자신을 구속하는 중력장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유머는 중력장 속에서의 무게감 속에서 가벼운 스텝을 밟을 수 있게 해준다.  주체와 객체의 분리, 내부와 외부의 분리라는 무거운 설정 속에서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기 위한 엔진의 역할을 바로 유머가 해줄 수 있는 것이다.

웃음은 혈관이 굳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혈액 순환을 돕고 면역 체계를 활성화시킨다고 한다.  유머는 에너지의 흐름과 세포들의 정보교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Mobility engine이다.

계속 '
Fluid'로써 존재하기 위해 난 유머를 생활화하는 노력을 계속 지속할 것이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 지음/그린비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89
  • BlogIcon 그린비 | 2008/08/18 15:4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buckshot님~ 그린비 출판사입니다.
    이번에 열하일기 관련 강의 동영상을 서비스하게 되서 이렇게 트랙백을 남겨 봅니다. 관심있으시면 들러서 봐주세요^-^

    • BlogIcon buckshot | 2008/08/18 20:35 | PERMALINK | EDIT/DEL

      귀한 글과 강의 동영상을 소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삶에 귀한 양식이 될 수 있을거라 기대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내용을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 2007/03/17 00:29



결국 모든 것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단지 그걸 바라보는 내 눈이, 내 마음이 바뀔 뿐이다. 

The real voyage of discovery consists not in seeking new landscapes, but in having new eyes.   - Marcel Proust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45
  • BlogIcon kelvin | 2008/10/21 06: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마이갓, 이란 탄성이 절로 나오는 순간입니다. buckshot님 책임지세요.. 저 오늘 포스팅 읽느라 날 샙니다..^^ 한 글 한글이 주옥같고 큰 발견입니다. 블로그에 올리신 글들을 트랙백, 댓글까지 모두 프린트해서 제본해서 두고두고 머리맡에 두고 보고싶은 심정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10/21 06:46 | PERMALINK | EDIT/DEL

      작년에 인상적인 글이라 생각하고 올렸던 것인데, 지금 보아도 그 느낌은 여전하네요. ^^

      kelvin님께서 이렇게 제 블로그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해주시니 송구스럴 따름입니다. 넘 과찬이시구요..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kelvin님의 멋진 포스트를 통해서 많이 배울거구요~

NAME PASSWORD HOMEPAGE
< PREV #1 #2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