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해당되는 글 26건

걷기 폰 :: 2016/09/19 00:09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는다.

그 안에 뭐가 있길래 걸어가면서까지 폰 속을 들여다 보고 있는 걸까.

그게 나침반인가.  그걸 따라 가고 있는 건가.
아님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너무 기계적이라서 그걸 외면하기 위해 폰을 쳐다보고 있는 건가.

폰 밖 세상을 걸어가면서
폰 속 세상을 응시한다면
그건 어떤 세상을 살아가는 자의 자세일까.

난 어느 세상에 속해 있는 걸까.
폰 밖과 폰 안의 경계선 상을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두 세상 간의 경계가 없다면
두 세상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면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 위를 내가 걷고 있는 거라면

폰 걷기란 행동은
걷기 폰이란 디바이스는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기계적인 이동 경로만 명확할 뿐
진짜 내가 흘러가고 있는 동선은 너무나 불투명해진 것 같다.

걷기 폰은 계속 나에게 뭔가 메세지를 던져주는 것 같은데
정작 난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니
폰 걷기를 얼만큼 더 해야 그걸 알아챌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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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 2016/02/15 00:05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면 어떨까?

많이 불편해질까?

그것이 없던 그 시점을 떠올려 보면 지금이 어떤 시기인지 어렴풋이 인지가 되는 것 같다.

내가 당연한 듯이 누리는, 사용하는 디바이스 하나만 갖고도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고, 공간의 궤적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에 나는 지금과 무엇이 달랐을까?
나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무엇이 달라졌을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스마트폰이 나를 변화시킨 것은 무엇인가
내가 스마트폰을 변화시킨 것은 무엇인가

스마트폰과 나는 합쳐진 채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스마트폰이 없는 나
내가 없는 스마트폰
스마트폰과 나

스마트폰 하나가 생겨난 후 나는 달라졌다

뭐가 달라졌는지 생각하게 된 것
그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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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케이스 박살 :: 2013/12/18 00:08

평소에 핸드폰을 느슨하게 잡는 편이다.

어느 날 실수로 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폰을 견고하게 감싸고 있던 폰 케이스가 박살 났다.

폰 케이스 안에 있던 폰이 밖으로 튀어 나왔다.

폰 케이스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폰을 주워들었다.

폰을 구입한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폰 케이스 속에 숨어 있던 폰을 바라보니 참 생소하다.

내 핸드폰이 이렇게 얇고 팬시한 것이었나?

박살 난 후에 케이스 속에 숨어있다가 불쑥 튀어나온 폰이 꽤 새롭게 느껴진다.  

그 동안 폰이 아닌 폰케이스를 만지고 있었구나.

잊고 있었던 날 것의 느낌.

케이스 속에서 폰이 참 답답했을 것 같다. ^^



PS. 관련 포스트
폰 신선도 감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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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신선도 감퇴 :: 2013/12/16 00:06

갤럭시 S3를 산지 1년이 경과했다. 

1년 전에 갤럭시 S3를 처음 접했을 때는 기존에 사용하던 아이폰보다 화면이 큼지막한 것이 시원시원하고 참 좋았었다. 그래서 폰을 사고 나서 3개월 정도는 폰을 들고 다니는 것이 매우 경쾌하고 신선했다. 폰을 꺼내서 보는 행위 자체에 깔려 있는 흐뭇함이라고나 할까. 새로운 폰의 생소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신규 폰이 제공해 주는 다양한 개선 경험을 만끽하는 3개월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갤럭시 S3에 대한 지루함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어느덧 폰의 경험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고 슬슬 신규 폰들이 시장에 출시되기 시작하면서 내가 갖고 있는 폰의 상대적 진부함이 점차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예전엔 꺼내서 보는 것 자체가 흥겨웠는데 지금은 꺼내서 보는 경험 자체가 빛이 바랬다는 느낌이 들었고 지하철 등에서 새로운 폰을 꺼내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나의 폰의 노쇠함(?)은 증폭되어 가고 있었다.

폰의 신선도가 감퇴하면서 폰으로 뭔가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감도가 밋밋해져 가는 느낌이다.  핸드폰은 의도적 진부화 알고리즘이 참으로 선명하게 작동하는 시장인 것 같다. 핸드폰의 세계에선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 것 같다. 1년이 지난 내 폰이 사뭇 올드하게 보여야 하는 시간의 강박. 상품의 라이프사이클은 시간이란 급물살 앞에 너무도 무력하다.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시간의 위력을 실감한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이토록 무서운 거구나. 불과 1년 전에 신선미 넘치던 외관을 자랑하던 나의 폰에서 낙엽이 되려 하는 힘없는 잎사귀의 스멜이 발생하다니.

갤럭시 S3를 산 후로 경과한 1년.

그 1년의 힘을 난 수시로 손 위에서 느낀다. 

시간 흐름의 따른 폰 신선도의 급격한 쇠락.

나의 폰은 아직 충분히 멀쩡하다.

그리고 나의 폰은 지나치게 진부화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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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러운곰 | 2013/12/31 18: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는 2년전에 구매한 옵티머스LTE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 구매한 순간에는 어떤이의 핸드폰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1년이 될쯤, 선생님 말씀처럼 신선도가 급격하게 쇠락했고, 새로운 휴대폰을 구매할까도 했지만 약정 덕분에(?)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도 최근에 휴대폰을 떨어뜨려서 액정을 깨먹었는데,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구요. 2년 동안 내 곁을 지켜준 고마운 존재랄까... 이 친구를 보내기는 아쉽지만 또 다른 친구를 맞이할때가 오니, 설레는 맘도 감출수가 없네요

    • BlogIcon buckshot | 2013/12/31 22:53 | PERMALINK | EDIT/DEL

      폰을 통해 시간의 힘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신선도가 떨어져가는 폰에 대한 지루함, 새로운 폰에 대한 기대감. 모든 건 시간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는 듯 합니다. 시간. 참으로 강적인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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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마 샤인으로 독서하기 :: 2013/09/27 00:07

9월17일에 크레마 샤인을 구입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전자책을 충분히 읽을 수는 있지만 왠지 종이책을 읽는 느낌과는 거리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크레마로 e북을 읽어보니 확실히 스마트폰,태블릿으로 전자책을 읽는 경험과는 차이가 있었다. 확실히 종이책을 읽는 느낌을 흉내 내는 차원에선 크레마가 폰/태블릿을 앞서는 것 같다. 그리고 흑백의 정갈한 화면이 화려한 이미지가 난무하는 폰/태블릿에 비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는 듯 하다.

그런데,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책장을 넘길 때 화면이 너무 깜박거려서 눈이 좀 아프다. 화면을 넘길 때 눈을 감아야 할 정도로 상당한 부담을 준다. 그래서 폰/태블릿으로 책을 읽을 때보다 훨씬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려지는 경향이 있다. 책장 넘김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고나 할까. 폰/태블릿으로 독서할 때는 웹페이지를 빠르게 서핑하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모습이라면 크레마로 독서할 때는 하나의 페이지에 대한 집중도, 머무름의 미학이 확실히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근데 그런 모드가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심한 깜박임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는 게 좀 서글프긴 하다. ㅠ.ㅠ ^^

어쨌든 크레마는 폰/태블릿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하지만 폰/태블릿 독서도 나름의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크레마로만 책을 읽을 생각은 없다. 집에 널려 있는 종이책도 앞으로 계속 읽을 것이고, 폰/태블릿으로도 책 읽기를 즐길 것이다. 종이책, 폰/태블릿 e북, 크레마 e북을 두루두루 즐기면서 다양한 모드로 책과 대화를 나누는 것. 컨테이너의 DNA에 따라 독서의 양태를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것.

크레마 샤인이란 디바이스와 친해지다 보니 폰/태블릿으로 읽는 책과 종이로 읽는 책에 대한 가치 인식이 보다 정교해 지는 느낌이다. 보다 깊어지고 더욱 진해진다고나 할까. ^^



PS. 관련 포스트
전자책과 주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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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ndle | 2013/09/28 19:26 | PERMALINK | EDIT/DEL | REPLY

    RSS로 받아보다가 처음 댓글 남깁니다 ^^
    e-ink 단말기의 화면 깜박임 문제는 단말기마다 차이가 꽤 큰 것 같습니다.
    과거 아마존의 킨들3 같은 단말기들은 크레마처럼 페이지 전환시 깜박임이
    존재했는데, 지난해 나온 페이퍼 화이트나 2세대 제품군들은 깜박임 문제가
    전혀 없더군요. 제가 사용하는 킨들4는 4~5p마다 잠깐 깜박임이 있는 정도
    입니다. 단말기의 기술력 차이만 놓고 본다면 아마존이나 반즈 앤 노블의 기
    기들이 우리나라 제품군보다 한두세대 이상은 앞서 있는 듯한데 아무래도 한
    글 컨텐츠 문제가 있어서 선택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 국내 한글 컨텐츠가 충분하지 않아서 컨텐츠보다 기술력을 선택한
    케이스입니다만...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국내에서 킨들만큼의 완성도를 지닌
    제품을 내놓거나 아마존이 국내에 들어오는 것이겠지요. ㅎㅎ

    • BlogIcon buckshot | 2013/09/28 22:05 | PERMALINK | EDIT/DEL

      깜박임으로 인해 눈이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크레마 샤인은 눈을 따뜻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는 듯 합니다. 햇살이 눈부신 거리에서도,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크레마 샤인은 존재감을 뿜어내는 느낌이구요. 나름 텍스트를 읽는 맛이 있어서 앞으로도 곁에 가까이 두고 크레마를 애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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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과 주의력 :: 2013/09/20 00:00

스마트폰은 정보 수용 관점의 주의력을 상당히 분산시키는 경향이 있다.

스마트폰을 보다 보면 집중력을 발휘하기 보단
이리저리 손가락이 가는 대로 흘러 다니는 정보를 눈으로 스캐닝하는 정도로 정보를 대하게 된다.

가벼운 정보를 주로 취급하게 되고 무거운 정보는 일단 멀리하게 된다.

스마트폰에 어울리는 가벼운 정보들이 대량 유통되고 있고
스마트폰의 리듬에 최적화된 텍스트들은 가볍게 읽히고 가볍게 잊혀진다.
빠르게 솟아올랐다가 신속하게 사라지는 정보의 라이프사이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주의력의 내구성을 테스트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
전자책을 구입한 후,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꿋꿋이 읽을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면 된다.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온전히 읽어낼 수 있다면 자신의 주의력을 효과적으로 컨트롤하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폰에선 전자책, 블로그 포스트, 신문기사, 동영상 등이 TV 채널 돌아가듯이 소비된다.
다양한 텍스트,이미지, 영상 정보들이 스마트폰 상에서 사용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경쟁을 벌인다.

전자책을 읽다 보면 텍스트의 무게감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다.
휘발성 정보로 스쳐 지나가는 텍스트와 의미를 새기고 싶은 텍스트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스마트폰.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내구성 있는 주의력을 확보했다면,
주의력은 자연스럽게 텍스트에 대한 필터링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전자책을 읽다 보면 수명이 짧은 텍스트에 소모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텍스트의 내구성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진다.

반면, 스마트폰으로 휘발성 컨텐츠만 소비하다 보면
주의력이 쇠약해지면서 내구성 약한 텍스트로 둘러 쌓일 수 밖에 없다.

취약한 주의력과 가벼운 텍스트가 서로를 자극하는 악순환 구조.
내구성 있는 주의력과 내구성 있는 텍스트가 서로를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

스마트폰에서 전자책 읽기를 즐기면서 텍스트 소비의 균형감을 얻게 된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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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과 기생 사이 :: 2013/04/01 00:01

정신기생체
콜린 윌슨 지음, 김상훈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나는 과연 온전히 하나인가?  내 안에서 상반되는 2가지 생각이 서로 다투고 갈등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에 홀린 듯이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고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을 일삼고.  굳이 소설가적, SF적 상상력이 없어도 정신기생체란 말은 그닥 황당한 개념은 아닌 것 같다. 정말 내 안에 뭔가가 기생하면서 나를 끊임 없이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가끔 드는 것이 사실이니까.

만약 내 정신 속에 뭔가가 정말 기생체의 형태로 존재한다면, 그건 나를 공격하는 적의 면모와 나 자신이란 자아의 면모를 모두 갖고 있는 것이다. 완전히 외부에서 내 안으로 유입된 유해하기만 한 존재라면 어떻게든 박멸하는 것이 답이겠으나 정신 기생체는 그렇게 무작정 적대적 대응을 하기만 해선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힐 때, 부정적인 감정에 함몰되어 무기력해질 때.. 기생체에 의해 유린당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론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메세지가 나에게 전해지는 것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겠다. 즉, 모든 감정을 일종의 자아 분열로 볼 수 있고 다양한 감정을 다양한 자아의 분열로 여기고 각각의 분열된 자아가 나에게 주는 느낌을 특정한 지향을 지닌 메세지라고 해석한다면 방향성은 자명해질 수 있다. 불안이란 감정이 생긴다면, 나는 나로부터 분열된 '불안' 자아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를 해석하고 불안 자아와 대화하면서 나로부터 분열된 자아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겠다. 그건 기생체라기 보다는 공생체에 가깝다고 봐야겠고, 나에게 공생적 메세지를 자신 만의 언어와 암호 형태로 나에게 발신하는 것이고 메세지를 수신한 나는 그 메세지에 적절하게 대응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메세지가 나에게 도달했는데 그 메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갈팡지팡, 좌충우돌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분열된 자아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생의 의도로 보낸 메세지를 기생으로 오인하는 것이고 공생체를 기생체로 대우하거나 존재 자체를 인지 못하고 자아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면 나에게 보내진 메세지는 공중에 붕 뜬 채 갈 곳을 몰라 방황하게 되고 메세지를 받지 못한 나는 그로 인한 불이익을 어떤 형태로든 받게 된다.  

만물은 메세지이다.
나는 분열을 거듭하는 역동적 자아이고,
분열된 자아는 끊임 없이 메세지를 나에게 발신한다.

나는 메세지이자,
메세지 발신자이면서
메세지 수신자이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분열된 자아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데만 평생이 소요된다.
분열된 자아와 어떻게 효과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친밀하게 소통할 것인가?

우연히 제목을 접하게 된 '정신기생체'란 책.
그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 책의 제목 하나를 갖고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어서 즐겁다. ^^



PS. 관련 포스트
만물은 메시지다.
폰봇
맘봇
고수,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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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1:15 | DEL

    If any one desires to be a successful blogger, then he/she must look at this paragraph Read & Lead - 공생과 기생 사이, as it contains al} methods related to that.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1:15 | DEL

    I was gone to convey my little brother, that he should also visit this webpage on regular basis to take updated from latest gossip Read & Lead - 공생과 기생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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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과 스마트폰 :: 2013/02/20 00:00

나는 44세 직장인이다.

44세 직장인으로서 성찰을 할 수 있는 시공간은 아래와 같다.
  - 아침에 일어나서
  - 화장실에서
  - 밥 먹으면서
  - 회사 가는 출근길에
  - 집에 가는 퇴근 길에
  - 걸어가는 도중에
  - 마루에서
  - 각종 짜투리 시간 났을 때
  - 밤에 자기 전에

근데, 이거.. 전부 스마트폰이 활개를 치는 시공간이다. 

음..
성찰과 스마트폰은 숙명의 라이벌 관계일 수 밖에 없다.

성찰과 스마트폰은 위의 시공간에서 항상 맞붙고 있는 것이고, 그 사이엔 항상 내가 존재한다. 나는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가. 나는 성찰에게 하루에 단 1분이라도 시간을 내어주고 있는가. 내 주머니엔 스마트폰이 항상 존재한다. 스마트폰은 명확한 실체가 존재하고 손에 잘 잡히고 손 안에서 온갖 귀요미짓을 하니까 손에 매우 달다. 하지만, 내 주머니 속엔 성찰도 있다. 성찰은 실체가 없고 손에 안 잡히고 내게 귀요미짓도 하지 않아서 나름 쓰다. 이제부턴 나의 시간은 나의 결단에 의해 운용됨을 인정해야 한다. 무심코 꺼내는 스마트폰. 하지만 내 손에 쥐어지는 스마트폰이 단지 폰질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소중한 성찰의 시간을 외면하는 명백한 행위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 내 손위에 폰이 올라왔을 때 나는 나에게 분명히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게 있어 소중한 성찰의 시간을 스마트폰으로 날려먹고 있다!"

폰봇이 될 것인가?  성찰하는 자가 될 것인가?
나는 매 순간 판단하고 매 순간 결단하며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짜투리와 메멘토
맘봇
접근성의 객체, 빼앗기는 시간
폰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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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투리와 메멘토 :: 2013/02/04 00:04

스마트폰은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좋은 도구이다. 길을 가면서 잠깐 볼 수도 있고,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잠깐 볼 수도 있고, 화장실에서 볼 수도 있고, 거의 어디서든지 스마트폰을 꺼내 토막 시간을 활용하여 뭔가를 보고 즐기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짜투리 시간과 스마트폰과 인간 간의 관계에 대해 함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스마트폰이란 도구를 통해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비즈니스가 스마트폰이란 도구를 앞세워 인간의 시간을 온통 짜투리 시간의 집합체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일까?

물론 짜투리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내 옆에서 항상 나의 손길을 기다려 주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유저의 짜투리 시간을 공략하여 비즈니스적인 성취를 열망하는 사업자들이 득실거린다는 건 유저에게 그닥 기분 좋은 상황만은 아니다.

나의 시간이 짜투리 단위로 토막화되고 그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짜투리 시간들과 합쳐져서 거대한 공룡의 입으로 던져지는 상황. 만약 나의 시간 중에 스마트폰에 의해서 짜투리 유린을 당하는 시간의 비중이 늘고 있다면 그렇게 유린된 짜투리 시간은 나의 시간이 아니라 사업자에 의해 몰개성화된 시간인 것이고 그렇게 몰개성화된 시간이 거대하게 축적되어 비즈니스적 가치만 드높이고 정작 그 시간을 투입한 각 개인의 상황은 피폐해져 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메멘토'를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전직 보험 수사관인 주인공이, 아내를 잃은 충격으로 인해 10분 이상 기억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 상실증 환자가 되어 자신의 이름, 아내를 잃은 사실, 범인의 이름만을 기억한 채 범인을 추적한다는 얘기다. 주인공은 기억을 지속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항상 메모를 하면서 파편화된 기억의 조각들을 힘겹게 이어가게 된다. 자신이 묵은 호텔, 방문한 장소, 만난 사람과 그에 대한 정보 등을 항상 메모하게 되고 심지어 몸에 문신까지 하게 된다. 주인공은 휘발성 메모리를 복구하고 구조화하기 위해 항상 퍼즐게임의 늪에 빠져 있고 그의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은 어느 사람 하나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억은 변조되고 도대체 무슨 기억이 진짜인지 가물가물해지면서 당초 확실하다고 믿었던 기억마저도 흔들리는 총체적 자아 위기를 맞게 된다.

스마트폰이 열어가는 모바일 세상. 그 세상 속에서 짜투리 시간을 유린당하는 유저들은 적어도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만큼은 어엿한 메멘토 상황에 깔끔하게 갇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모바일 비즈니스는 집요하게 유저의 짜투리 시간을 자신의 비즈니스에 유리한 쪽으로 전용하기 위해 총체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런 거대한 공격 앞에서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자신의 시간이 어떻게 잠식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인지력을 갖추지 않고 무심코 자신의 짜투리 시간을 휘발시키다간 꼼짝없이 메멘토 모드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짜투리 시간. 별 것 아닌 듯하여 막 써버리고 그 의미조차 인지되지 않는 시간. 그 시간 속에 깃들어 있는 묵직한 의미를 우린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짜투리 시간이 나면 짜투리화되어 가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짜투리 시간의 전부를 스마트폰 매만지는데 바치면 나는 더욱 짜투리화되어 갈 뿐이다. 짜투리화된 시간들. 그건 내가 아니라 휘발된 나에 불과하다. 뭐 휘발을 사랑한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




PS. 관련 포스트
접근성의 객체, 빼앗기는 시간
극세관심
기억과 자아 사이
방해
누가 지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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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3/02/04 01:3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짜투리 시간 만큼이나 짜투리 관계도 문제라고 말하고 싶어요. SNS와 모바일 메신저로 극파편화된 사람 사귐 패턴, 심지어 사랑까지 좌우하게 되어 있는 이 시스템이 진짜 인간에게 안전하고 유익한 것인지, 벅샷님처럼 전 요즘 너무 의심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2/04 09:46 | PERMALINK | EDIT/DEL

      새로운 도구의 성장은 도구 예속화의 우려와 함께 도구 응시를 통한 자아 성찰이란 기회를 함께 제공해 주는 것 같습니다. 도구와 한데 엉켜 짜투리 인간이 되기 보단 도구를 도구로 바라보면서 도구에 비친 나의 모습을 응시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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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의 객체, 빼앗기는 시간 :: 2013/01/14 00:04

웹은 접근성이란 선물을 우리에게 선사했고 스마트폰은 증폭된 접근성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근데 접근성의 주체와 객체에 대해선 사실 정해진 바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웹,스마트폰을 대할 경우, 의미 있는 뭔가에 접근하기 보단 쓰레기정보에 온통 잠식당한다. 웹, 스마트폰에 의해 증폭된 접근성의 최대 수혜자는 웹,스마트폰의 유저가 아니라 정보 자체다. 유저는 정보에 의해 무차별 접근,접속을 당하는 정보의 객체 내지는 봉에 가깝다.

소비자의 관심,주목,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 포착된 이후, 소비자의 시간은 유린,침탈의 대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경쟁자로부터 소비자의 시간을 빼앗아오기 위해서는 소비자 자신으로부터도 시간을 빼앗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전쟁이 심화되면서 전쟁터는 소비자의 시간이 되어간다. 소비자의 time share를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는가가 화두가 되는 순간, 소비자의 시간은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의 시간의 의미와 함께 경쟁자를 누르고 성장을 지속하길 염원하는 사업 욕망의 대상이 된다.

나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의 시간은 끊임없는 탈취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의 시간을 빼앗아야 사업이 영위되고 나의 시간을 빼앗아야 자본이 유통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 속을 살아가는 사람의 시간은 이미 그 사람 개인의 시간이 아닌 것이다. 끊임없이 나를 향한 접속의 시도가 도처에 분포되어 있는 상황에서 나의 시간은 그야말로 vulnerable 그 자체라고 봐야 한다. ^^

시간을 흘러가는 것,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면 이제 그 생각을 조금 바꿔보도록 하자. 시간은 빼앗기는 것이다.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은 자본이 유통되는 세상 속을 고스란히 노출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고 나의 시간은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유린되고 침탈될 수 있다.

소비자는 결국 시간을 빼앗긴다.

얼마나 많이 빼앗기는지, 얼마나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소비자는 결국 시간을 빼앗긴다. 소비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계속 뭔가에 의해 빨린다는 것이고 그런 시간 빼앗김 현상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거세질 것이다.

소비자는 결국 시간을 빼앗긴다.

뭔가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졌다고 섣불리 좋아하진 말자. 접근성의 개선은 피접근성의 증폭이라서 결국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문명의 발전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뭔가가 좋아졌다고 웃고 떠드는 와중에 뒷단에선 뭔가가 계속 새어나가는 찜찜함. 그 찜찜함의 정체는 계속 불투명의 심도를 더해가는 상황.

앞으로도 문명은 계속 진보(?)에 진보(^^)를 거듭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보이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접근성도 계속 증대될 것이다. 접근성이 좋아질수록 소비자는 접근성의 주체가 아닌 접근성의 객체로 대활약을 지속하게 될 것이고 소비자가 접근성의 봉으로 우뚝 서면 설수록 소비자의 시간은 너무도 투명하게 위험(? ^^)에 노출된 채 끊임없는 침략의 대상이 될 것이다.

소비자는 결국 시간을 빼앗긴다.



PS. 관련 포스트
real-time web의 늪
방해
접속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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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봇 :: 2012/12/21 00:01

상품과 서비스의 대히트는 그것을 소비하는 자를 봇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상품/서비스의 거대한 흥함과 소비자의 거대한 봇화. 소비자를 봇으로 만드는 상품/서비스의 힘이 거세질수록 소비자들은 봇으로의 생활에 푹 젖어만 간다. 봇화 공격에 취약해져만 가는 소비자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주위에서 너도 나도 없이 저마다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 보며 뭔가에 열중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카톡,게임,동영상 등을 하면서 눈이 빠져라 스마트폰에 주의력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지하철 전체가 거대한 폰봇의 집합공간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카카오톡,게임,동영상은 스마트폰에게 피쳐폰에게 우월감을 과시할 수 있는 '스마트폰 만의 존재 이유'를 부여했고 스마트폰은 소비자들을 폰봇의 세계로 인도했다. 스마트폰을 손에 넣는 순간, 폰 유저는 폰을 사용하는 폰 유저의 우아함을 잃어버린 채 폰에 기계적으로 몰입하고 폰과 기계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폰봇이 되어 버린다. 나도 모르게 폰에  손이 가고 나도 모르게 폰에 열중하는 폰봇.

폰으로 카카오톡을 하는 톡봇
폰으로 게임을 하는 겜봇
폰으로 동영상을 감상하는 영상봇
폰으로 뉴스를 보는 뉴스봇
폰으로 페이스북,트위터를 하는 페북봇/트윗봇

스마트폰은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다. 수많은 스마트폰 유저를 폰봇으로 만들어 간다는 것은 대단한 업적임에 틀림없다. 멀쩡한(?) 사람을, 소비자를 일개 봇으로 전락시키고 수많은 봇들로부터 수익을 향유하는 것. 비즈니스 입장에선 최고의 판타지 아닌가? ^^

스마트폰이 사람 사는 인간 공간을 봇화시켜 나가는 광경은 매우 인상적이다.  결국 전 국민의 폰봇화가 최종 destination인 것인가?  오늘도 나는 폰봇들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 속에서 폰봇들의 기계적인 폰질을 경이적인 자세로 바라보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을 닮은, 인간을 능가하는 사이보그가 탄생하는 미래가 도래하기 전에 인간이 스스로 기계가 되어가고 있다. 공간을 가득 메워 나가는 폰봇들의 기계적 몸짓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광경인 듯 싶다. 이런 놀라운 장관을 목격하게 해주는 스마트폰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




PS. 관련 포스트
소셜 네트워크와 창의력
떼소비와 머나먼 C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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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 격리, 박제 :: 2012/09/12 00:02

기술과 디지털의 심화는 기술단절과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TV,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일상 지배 플랫폼의 성장. 뭔가 예전의 삶에 비해 도구에 예속 당하는 경향이 심화된 것 같고 예전의 생활이 더 인간적인 것 같고. 하지만, 그렇다고 날 잡아서 기술단절과 아날로그 데이를 수행하는 건 다소 나이브한 행위이다. 뭐 한 번 정도 유니크한 체험 놀이를 한다는 차원이면 모르겠으나 공기와도 같아지는 기술 도구로부터 무작정 도피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Work & Life의 밸런스. 말이 쉽지 사실상 성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Always ON 시대가 도래하면서 일과 생활의 균형이 아니라 일과 생활이 서로 융합되어 가고 있다. 일은 일상 속으로 침투하고 일상은 일 속으로 침투한다. 일과 생활에 투입하는 시간을 5:5로 배분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아니 5:5로 배분하기도 이젠 어렵게 되었다. ^^

휴가를 생각해 보자. 일정 기간 휴가를 잡아서 떠나면 일과 단절되는가? 맘 속으론 일을 잊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 자체가 고속 & 타이트의 속성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휴가를 떠나서 일과 격리가 된다고 해서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휴가는 점점 왜곡되어 가고 있다. 리프레쉬가 아니라 '리프레쉬'란 환상을 갖고 떠나지만 결코 리프레쉬되지 않는 것. 그게 휴가 왜곡의 본질이다.

기술 도구가 일상 속으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지금,
일상은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가? 휴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휴가는 더 이상 격리된 공간 기반의 간헐적 실행에 의해 생성되지 않는다. 휴가는 일상 기반의 수시 기획에 의해 생성된다. 격리된 공간은 박제에 불과하다. 격리된 시공간으로 도피해 봤자 결국 다시 돌아와야 한다.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면 그걸 일상 속에서 더욱 빈번하게 행할 수도 있는 것아닐까?  휴식감은 실제로 휴가를 가는 행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휴가를 기획하고 휴가를 기대할 때 휴식감이 발생한다. 사람은 기대를 먹고 산다. 휴식감은 철저히 기대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기대감을 기획한다는 개념을 발전시켜볼 필요가 있다. 굳이 남들 보기에 그럴싸한 휴가 여행을 떠나는 것의 허상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철저히 나를 위한 맞춤형 휴가를 정의해야 한다. 휴식감은 수시로  맛볼 수 있다. 일을 하다가 잠깐 쉬면서 맛보는 휴식감이 화려한 해외여행의 시공간 대비 결코 열세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읽는 e북 속의 문구 속에서 동유럽의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니는 것 이상의 풍요감을 맛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일과 생활 간의 융합, 질주와 휴가의 혼합은 우리에게 새로운 형태의 휴식감 생성을 요구한다. 디지털로 꽉 짜여진 일상의 직물 속에 아날로그 염을 흩뿌릴 때 '디지털 치우침' 속 균형감을 유지할 수 있다. 휴가에 필요한 시공간은 일과 질주로부터의 도피에서 얻는 게 아니다. 수시로 내 마음 속에서 내가 주체적으로 생성하는 것이다. 나는 수시로 휴식감을 맛본다. ^^




PS. 관련 포스트
"인터넷은 우리를 바보로 만드는가?"란 질문 자체가 바보 ^^
휴식감과 숨
기대감을 기획하라
휴식감과 세(勢)
설정 자체가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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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9/12 18:4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진짜 아름다운 글 ㅜㅜ 방구석에서 보는 이 짤막한 포스트가 국립도서관에서 인문 고전 읽는 것 대비 결코 열세가 아닌데요? ㅎㅎ 저 또한 수시로 휴식감을 맛보는 사람이라고 자부함에도 불구하고, 벅샷님의 그 고백을 들으면서 감탄하며 부럽다고 느끼게 되네요. 저도 기대(expectations)라는 방법을 통해 일상을 심층적으로 휴가화하고 있거든요. 시간에 대한 신뢰야말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초인처럼 평화로울 수 있는 비결인 셈이죠.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을 알고 있다는 게 새삼스레 더욱 감사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2/09/12 22:25 | PERMALINK | EDIT/DEL

      시간에 대한 신뢰.. 저의 생각을 또 한 번 일깨워 주시는 피드백이십니다. 항상 격려해 주시고 가르침을 주시니 그저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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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세관심 :: 2012/05/11 00:01

스마트폰은 관심을 분절화시키고 커스터마이징시킨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나의 관심을 극도로 세분화시키고 세분화된 관심을 철저히 나의 취향에 맞게 최적화시키게 된다. 예전엔 1시간~2시간을 진득하니 투입하던 관심이 이젠 1분 단위로 쪼개져서 운용된다.

극세화된 관심은 매우 쉬크한 태도를 취한다. 사람과 같이 있어도 사람에 관심을 그닥 많이 주지 않고 철저히 나의 관심을 끄는 정보에만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회의를 해도 자신에게 관심가는 정보에만 귀를 기울이고 나머지 정보는 모두 스킵한다.

스마트폰은 수많은 연결을 가능케 한 동시에 심도 깊은 단절을 리드하고 있다. 연결은 증식에 증식을 거듭하고 있으나 각각의 연결점들의 농도는 매우 희박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끊어짐 상태로 지내면서 간헐적인 연결이 일어날 뿐이다. 연결 심화 & 단절 심화.

극세화/이기주의적 관심이 심화될 수록, 문자의 힘은 드세져만 간다. 면대면 회의 대신 이메일로 일을 하고 면대면 대화, 음성통화 대신 메신저 대화가 일상을 점유한다. 그게 극세화된 나의 관심의 이기주의적 스탠스에 적합한 툴이기 때문이다.

심이 분절화될 수록, 관심의 대상인 인간도 분절화된다. 나는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가? 사람? 아니다. 나는 극도로 세분화되고 나의 순간적 관심 취향에 부합하는 세포 레벨의 극세화된 존재와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결코 사람이라 볼 수는 없다.

내가 보는 드라마, 내가 읽는 책, 내가 먹는 음식에서 나의 취향에 부합하는 것만 취한다면 드라마,책,음식은 해체 후 재조립되어야 한다. 관심/취향은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관심은 드라마,책,음식 뿐만 아니라 사람마저도 재단하고 있다.

관심 기반의 연결은 관심 기반의 단절의 이면이다. 관심을 따라 연결되고 관심을 따라 단절된다. 단절 기반의 조건부 연결. 그게 연결의 본질이다. 연결성이 좋아진 게 아니라 on-off의 자유도가 높아진 것이다. 사람도 관심 앞에선 철저히 해체된다.

나는 누구인가? 
극세관심의 총합인가? 

그럼 나는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가?
나의 극세관심에 적합한 분절화된 극세모듈들인가?

관심이 세분화되고 세분화된 관심의 이기주의가 창궐하게 되고 있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인간은 과연 무엇이 되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



PS. 관련 포스트
바깥, 알고리즘
감정과 관심을 지불하다
가치 에너지 준위차에 의한 '관심'의 이동
주목,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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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5/12 00: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단절 기반의 조건부 연결" 진짜 어렵고 오묘한 용어네요 ㅎㅎ 이런 스타일의 철학 세계를 여기 말고 어디서 또 경험해볼 수 있을까요? (군대 땜에) 심신이 지대로 지쳐가는 와중에도 뚫어져라 집중하게 만드는 흡입력, 정말 닮고 싶습니다. ^^ 주말이라 정말 다행인 것 같은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2/05/12 15:44 | PERMALINK | EDIT/DEL

      저도 잘 모르고 적는 글입니다. 잘 몰라서 적는 것이고 적다 보면 좀더 잘 이해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 항상 응원해 주시는 것이 제겐 무한의 에너지 공급처럼 느껴지구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 더러운곰 | 2013/09/01 11: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심심하면 이곳에 들러 포스팅을 읽곤 합니다. 이렇게 댓글을 달기는 첨인대... buckshot님의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포스팅들이 자꾸 저를 이끄는거 같네요. 연결성이 아닌 on-off의 자유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9/01 16:38 | PERMALINK | EDIT/DEL

      댓글 주신 덕분에 저도 다시금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 포스트는 제가 나름 아끼는 포스트인데 댓글 주셔서 너무 기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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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탑을 정주행하다 :: 2012/05/02 00:02

개인적으로 만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2000년 이후에 만화를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랬던 나인데.

최근에 우연히 '
신의 탑'이란 웹툰을 알게 되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예전 같으면 호기심이 생겼다는 이유 만으론 만화를 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스마트폰이 존재하기 때문에 별도의 시간을 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만화를 볼 수 있는 시공간이 허락된다.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만화를 봤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면서 만화를 봤다.
내 일상에 전혀 부하를 주지 않으면서 만화를 봤다.

결국 정주행을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다 봐버렸다.
그리곤 생각했다. 1~2년 후에 정주행을 시작해도 좋았을 걸.

신의 탑을 정주행하는 만화 주인공의 행보.
전철,화장실,짜투리시공간에서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정주행하는 나의 행보.
뭔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정주행한다는 것.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트위터/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스트리밍형 컨텐츠를 짧게 짧게 소비하는 행태에 젖어 있다 보니 정주행이란 단어는 그동안 내게 너무나 어색한 개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금번 신의 탑 정주행을 통해 컨텐츠 아카이빙의 창고를 처음부터 쭉 훑어 나가는 재미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트위터/페이스북 타임라인의 짧은 글들을 소비하다 보니 정주행 방식의 컨텐츠 소비의 맛이 더욱 깊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신의 탑으로 인해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정주행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사실 e-book도 대표적인 정주행 대상이긴 하지만, 책을 원체 잘 읽지 않다 보니 이북을 가까이할 기회는 그닥 많지가 않았는데 신의 탑을 통해 '정주행'이란 단어를 제대로 의식하게 된 셈이다. 분절화된 컨텐츠의 속절없는 생성과 휘발로 범람하는 타임라인 속을 살아가면서, 느긋하고 차분하게 뭔가를 정주행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희소가치가 있는 행위이다. 타임라인 속에서 조각조각 흩어지기 쉬운 사고 패턴도 정주행스럽게 가다듬어야 하겠구나란 반성도 같이 해보게 된다. 신의 탑을 정주행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신의 탑을 정주행하게 되었고 앞으로 정주행 모드를 내 일상 속에 더 많이 확산시킬 수 있겠다는 희망을 얻게 되어 나름 기쁘다.

최근 2~3년 동안 수동적으로 피드 기반의 타임라인을 소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권태를 느끼게 된다. 이젠 나만의 타임라인을 좀더 능동적으로 구성해 나가야겠다.  최신 업데이트 기반의 타임라인이 아닌 시간의 흐름을 내가 직접 정의하고 내가 구성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만의 순서로 정보를 소비하고 나만의 플로우로 생각을 전개해 나가는 것. 신의 탑에서 배운 행동지침이다.

타임라인이란 이름의 감옥.
타임라인이란 이름의 자유.

감옥과 자유는 타임라인을 대하는 태도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다. ^^




PS. 관련 포스트
'타임라인'이란 이름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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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5/02 01:4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시간을 기획한다는 개념은 영화나 음악 같은 멀티미디어 예술에서나 가능한 전문적인 영역인 줄 알았는데 이것이 점점 하나의 의식주 패션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과 같이 "분절화된 스트리밍 컨텐츠"의 범람은 마치 휴고(Hugo)에 나오는 것처럼 분절된 사진 필름들을 한 장씩 삐걱삐걱 돌리는 원시적 영화 유통 방식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제 본격적인 일상(daily routines)의 산업화가 고도화되면, SNS라는 과도 체제를 넘어서 한 인물의 알고리듬 자체가 블록버스터가 되는 일이 많아지겠지요. 이건 제가 R&L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겐 이곳이 할리우드보다 크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2/05/02 21:38 | PERMALINK | EDIT/DEL

      저는 The Black Ager님께서 그리고 계시는 세상의 모습이 참 궁금합니다. 멋진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 그것보다 더 멋진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5/03 00:24 | PERMALINK | EDIT/DEL

      (웬만하면 2차 댓글은 안 다는 게 관례인데 ㅎㅎ) 격려해주셔서 늘 진심으로 감사한 거 아시죠? 여기서 제 얘길 표현하려고 할 때마다 슈스케 나온 것 마냥 왜이리 긴장이 되는지... 현재 저는 'R&L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한 새로운 형식의 웹사이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목적이 있지만 이 블로그에 대한 트리븃이 그 큰 목적들 중 하나랍니다. 컬처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걸고 제 모든 것을 쏟아부을 각오를 하고 있는만큼, 기성 대형매체들이 선사해주지 못하는 신선하고 희소한 컨텍스트를 '납품'하게 될 것입니다. (뭔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기대 많이 해주세요. ^^

    • BlogIcon buckshot | 2012/05/03 20:34 | PERMALINK | EDIT/DEL

      헉.. 트리븃이라니요.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준비하고 계신 웹사이트에서 그려가실
      The Black Ager님의 세상이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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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그림 찾기와 거대한 레알앱 스크린 :: 2012/01/09 00:09

8살 딸내미와 아이폰으로 틀린그림찾기 게임을 열심히 하다가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

틀린그림찾기를 할 때는 신경은 온통 "다름"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다른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그림에 대한 예민한 신경은 결국 틀린그림찾기의 환희로 이어진다.
그렇게 하나하나 그림을 찾는 모습을 혁신과 연결시켜본다면.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려고 신경을 집중하는 그 노력을 일상에 기울여본다면,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여러 가지 패턴들 속에 내재한 미묘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무심코 지나쳤던 반복 행위, 당연하게 여겼던 행위를 바꿔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된다.
그리고 그 바뀜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뭔가를 느끼게 되고
예전의 프레임을 깨는 새로운 사고와 행동이 발현될 수도 있다.

틀린그림찾기에 기울였던 집중력을 일상 속에서 발휘하면 일상을 혁신할 수 있고,
업무 속에서 발휘하면 업무를 혁신할 수 있고,
생각 속에서 발휘하면 생각의 혁신이 일어난다.

틀린그림찾기의 자세를 어디에서 견지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앱은 조그만 스마트폰 스크린 상에서만 작동하라고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스마트폰 앱의 설정을 실제 살아가는 현실 세계 속에 살짝 옮겨놓고
스마트폰 앱을 즐기듯 현실을 앱처럼 여기고 살아가다 보면
의외의 수확을 거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은 다양한 앱을 플레이하는 거대한 스마트폰 스크린이다.  일명 레알앱. ^^




PS. 관련 포스트
차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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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민빠 | 2012/01/09 09:22 | PERMALINK | EDIT/DEL | REPLY

    본문 내용과는 좀 동 떨어진 것이긴 하지만, 틀림과 다름은 엄연히 다른 말이니, 틀린그림찾기 보다는 다른그림찾기라고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틀림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름에 집중하기라는 의미에 더욱 더 부합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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