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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구성 :: 2016/10/19 00:09

2026년 10월19일 월요일

그 날은 어떤 날일까.
나는 그 날 어디에 있을까
어디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인지도 못하는 이 순간
무의식의 나는 10년 후의 나를 예측하고 있을 것이다
미래의 나를 구성하는 나의 무의식은 어떤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까
그 상상은, 그 예측은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게 될까.

미래의 나를 구성하기 위해
어떤 소스들이 사용되고 있을까

이제 의식의 나까지 미래의 구성에 참여하게 된다면
그런 참여는 무의식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그 교란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게 될까

미래를 상상하는 건
과거의 나를 소환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과정일 것 같기도 하다.

2016년 10월19일에 상상하는 10년 전 미래
2016년 10월19일에 소환하는 10년 후 과거

일방향, 단선적 시간 흐름 속을 살아가고 있지 않으면서도
굳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착각 속에 빠뜨리고 있어서
시간은 그렇게 창의력 제로의 공간 속에서 시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시간을 살리지 않으면
결국 시간이 나를 시들게 할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예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시간을 상상해 보면
시간은 실재에 가까운 신비를 드러내게 되는 것 같다.
그건 거대하고 소박한 놀이일 수 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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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2014/10/29 00:09

어떤 정보를 우연히 접하고 그 정보로부터 영감을 받고 그에 관한 글을 적을 경우 원천 정보는 발아점이 된다.  생각의 출처인 셈이다. 나의 생각을 적고 그 생각을 낳게 한 출처를 적어 놓으면 나중에 다시 되새김질할 때 생각을 떠올리게 된 과정을 나름 생생하게 복원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떠오른 생각을 적을 때 출처를 적었다가 지우면 어떻게 될까?

출처가 분명히 있는데 출처를 표기하지 않고 마음 속에서 출처를 지운다면..

출처를 지우면 어쩔 수 없이 나의 생각이 원천이 된다. 참조하려고 출처를 남길 수도 있으나 일부러 출처를 지우면서 원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그렇게 글을 적고 시간이 흘러가면 출처는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시간이 흐른 후 글을 다시 읽어 볼 때 출처를 떠올리기 어렵게 된다. 잃어버린 링크. 그걸 복원하려는 시도는 또 다른 원천을 낳을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예전 글을 읽을 때,
출처를 소환하는 경험.
출처를 복원하는 경험.

둘 다 재미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표기해 놓았던 출처 이외의 출처를 복원하는 경험.
표기하지 않은 출처로 인해 아예 새로운 출처를 생성하는 경험.
이 또한 신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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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아크몬드 | 2014/10/29 01:55 | PERMALINK | EDIT/DEL | REPLY

    퍼머링크가 'permanent' 하지 않는 요즘, 출처 표시도 시간의 흐름에는 거역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4/10/30 09:50 | PERMALINK | EDIT/DEL

      시간을 거스르는 건 힘들고 매력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주신 댓글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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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과 욕망 :: 2012/09/26 00:06

초단절 시대 포스트에 uminsem님께서 아래와 같은 댓글을 주셨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파생실제가 실제를 대체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도가 영토를 대체하고 통장에 찍히는 수치가 실제 돈을 대체하듯 인간관계도 소셜미디어라는 파생실제로 대체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언뜻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현실에서 맺는 관계는 파생실제가 아닌가? 오프라인에서도 학교와 같은 조직을 통해 에이전트가 요구하는 인간상을 길러내고,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나 학교에서의 추억이란 것도 어쩌면 게임의 룰 안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는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초연결은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의 파생실제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초단절은 실존적 사유와 경험의 순간으로 나누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상은 특유의 증폭력을 갖고 있어서 물리적 한계를 갖고 있는 실재를 쓰나미와도 같이 뒤덮으며 증식해 나간다. 파생이 소스를 대체하는 현상. 소스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사람의 뇌 속에 기생하는 파생 인자들. 실재가 개념적 추상으로 대체되고 추상이 지향점이 되어가고 지향의 대상으로서의 추상이 더욱 거대해져 가면 갈수록 인간 소외 현상은 심화된다. 인간의 욕망과 추상은 공생 관계를 유지해 나가며 서로를 증폭시키고 각자 거대화의 경로를 밟아 나간다. 추상의 거대화 프로세스 속에서 인간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추상의 거대화가 가속되면서 인간 소외의 양상도 더욱 고도화 되어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은 추상을 어떻게 직시해야 할까?

추상 자체만 놓고 보면 무리가 없다. 문제는 추상이 증폭된다는 것이다. 추상이 증폭되면서 소스를 덮치고 소스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거대해진 추상만 홀연히 남아 추상 자체의 생존 게임이 전개되고 추상이 소스를 지배하는 구조 속에서 인간은 추상의 노예가 되어가는 현상이 일상화되는 모습. 추상의 증폭과 인간 욕망 간의 교접이 증폭의 도화선이었으므로 인간 소외에 대한 대응은 욕망과 추상의 연결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나의 욕망은 어떤 추상 증폭 기제를 드리블하고 있는가?  내가 갖고 있는 욕망이 증폭시키고 있는 추상 기제의 거품은 무엇인가? 거기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의 빈틈은 무엇인가?  증폭된 추상을 현실적인 사이즈로 축소시키기 위해선 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수면 아래로 내려야 하는가?

금융에만 거품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각 개인의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거품이 자본주의가 생성한 거품의 총합보다 결코 왜소하지 않다. 내 안의 거품, 내 안의 거품 생성 기제를 영화 감상하듯 플레이 시키고 나의 욕망 스토리라인 상의 어설픈 연결점을 찾아내는 영화 평론가의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나의 몸과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상영되는 초 스펙타클 SF 영화의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시나리오에 지나치게 토핑된 추상의 거품을 드러내고 날 것의 향이 가득한 '나' 소스(source)를 음미해야 한다. 드레싱이 너무 강하면 진정한 미각을 잃어버리게 되니까. 

추상과 실재 간의 균형, 욕망과 나 사이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평형 감각을 간직하도록 하자. 실재를 압도하는 추상, 나를 소외시키는 욕망의 작동을 컨트롤하고 실재를 서포트하는 추상, 나를 건강하게 만드는 욕망을 양육해야 한다. 추상과 욕망을 그냥 냅두면 그들은 항상 제멋대로 안드로메다를 향해 고속 비행을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 나를 둘러싼 추상의 크기는?
나를 규정하는 욕망의 실체는?

추상과 욕망은 항상 관찰하고 규정해 줘야 한다. ^^




PS. 관련 포스트
역측정
초단절 시대
몸과 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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