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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감(感) :: 2017/11/22 00:02

퍼블리는 유료 컨텐츠 서비스인데 살짝 톤앤매너가 독특하다.

각각의 컨텐츠에 시간 표기가 되어 있다.
읽는데 소요되는 시간인데..
그걸 보노라면 기분이 묘해진다.

텍트스 위주의 컨텐츠에 시간이 매겨져 있다니.
웹 컨텐츠이다 보니 '총 **페이지'리고 표기하기도 좀 뭐하겠으나
그렇다고 시간을 표기하다니.. 헐..

그런데
첨엔 이상했는데
보면 볼수록 느낌이 괜찮다.  ㅋㅋ

마치 스트리밍 비디오 서비스 같다고나 할까.
텍스트를 읽는 게 아니라 상영되는 텍스트 영상을 본다는 느낌?

정적인 텍스트 정보를 소비하면서
동적인 영상 정보를 소비한다는 느낌을 갖는다는 건 컨텐츠 소비에 있어선 새로운 지점 형성이니까.

텍스트를 읽으면서
영상 플로우를 본다는 느낌을 받게 되니까
정보 소비에 있어서 퍼블리가 왠지 멋져 보이는 컨텐츠 소비처로 인식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경험 속에서 텍스트와 영상에 대한 기존의 생각에도 크랙이 가는 느낌도 나쁘지 않다.

텍스트가 스트리밍될 때
정적인 텍스트는 일종의 상영감을 제공하게 되고
컨텐츠 소비자는 그런 스트리밍감(感) 속에서 컨텐츠를 새롭게 감지하고 그 지점에서 이전 방식으론 얻을 수 없었던 새로운 영감도 받게 되는 것 같다.

넷플릭스와 퍼블리
내겐 그리 다르지 않은 서비스이다.
컨텐츠 필터링 체계를 잘 통과한 웰메이드 컨텐츠들이 아카이빙된 매력적인 곳
컨텐츠의 포맷은 다르지만 큰 틀에 있어선 결국 둘 다 SVOD

읽기과 영상 보기 간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좋다.
읽기가 스트리밍이라면, 나는 스트리밍 기계가 되는 것이고
스트리밍이 읽기라면 나는 흘러가는 영상 속에서 텍스트를 추출하는 텍스트 익스트랙터...

넷플릭스와 퍼블리는 둘 다 내게 있어선 중요한 정보 출처
나를 더 좋은 입처로 만들어주는 고마운 출처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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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량 1 :: 2017/05/01 00:01

판매량이 1인 책을 읽고 싶다.
판매량이 0인 책을 읽고 싶다.

판매량이 1이면서 내 관심을 끄는
판매량이 0이면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런 책을 읽고 싶다.

세상의 모든 재화는 판매되기를 소망한다.
많이 판매되면 재화의 가치가 드높여지는 자본의 흐름에서
나는 희귀한 재화를, 사람들의 손이 많이 타지 않은 그런 책을 원한다.

그런
희귀한
유니크한
취향이 잠재한
그런 책을 읽고 싶다.

나의 가상 서재에
판매량 0인 책들이
판매량 1인 책들이
가득 담겨진 광경을 꿈꾼다.

그런 책들로 채워진 나의 가상 서재에서
희귀한 시선을 발산하는
유니크한 관점이 우러나오는
그런 책 속 문장들을 흡입하고 싶다.

판매량 1
공급자 입장에선 아쉬운 숫자이나
소비자 입장에선 소중한 숫자이다.

판매량 0
공급자 입장에선 실패를 의미할 수도 있겠으나
소비자 입장에선 서막 앞에 초대된 짜릿한 순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
그런 책 속에서 느껴지는 욕망 충족 방정식
그것과
그것 아닌
조합 속에서
나는 강렬한 균형감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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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음영상 :: 2017/04/14 00:04

시청(시&청)을 전제로 하는 컨텐츠를
시로만 감상한다는 것

사운드 오프 상태로
영화를 보는 것
드라마를 보는 것

결국 시청각 소비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컨텐츠라 해도
소비자가 임의로 감각채널을 단절시키면
감각수용 채널이 재편되면서
컨텐츠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묵음으로 동영상 감상하는 것
은근 재미있는 행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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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입 :: 2017/01/13 00:03

나의 생각이라 생각하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나의 생각이 아닌 외부로부터 주입된 생각인 경우가 많다. 아니 대부분일 수도 있다.

너무나 많은 정보가 외부로부터 나를 향해 주입된다.
특히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폭증하는 정보를 관리해 주는 피드(FEED)라는 개념이 일상 속으로 침투하면서 더더욱 그런 현상이 심화된다.

내가 찾아서 나만의 생각 체계를 구성하고 정보의 깊이를 다져나가는 과정 속에서도 얼마든지 주입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마련인데..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나를 향해 정보가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흐름이 지속된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주입 메커니즘이 지배하는 시간 속을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나는 주체가 되어 생각하기가 힘들다.
나는 내 자신이 생각의 주체가 되어 사고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나의 생각을 지배하는 정보들이 있는 것이고
나는 내 취향에 맞는 정보들로 내 주위를 꾸민다.
내 주위에 있는 내 취향의 정보들은 스스로 나의 생각 체계를 구성하고
나의 사고 흐름을 지배한다.

그렇게 통제당하는 나의 뇌는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정보 시스템에 의해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그걸 나 자신의 것이라 은연 중에 믿게 된다.

결국 내 자신이 스스로 생각을 생산하지 못하고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전문화된, 정제된, 권위있는, 믿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그런 정보들이 온통 나를 강력하게 지배하는 흐름이 탄생한 것이다.

그게 FEED이다.
피드는 내 자신이라는 존재는 엷어지고 나를 통제하는 외부 기제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표상하는
2017년 1월 현재의 정보 플로우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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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와 셀프 브랜딩 :: 2015/11/04 00:04

지금 이 순간 내가 상기시킬 수 있는 브랜드들을 떠올려 본다.

최근에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의 저자
강렬한 키워드를 심어준 책
좋아하는 드라마
요즘 맘에 들어라 하는 예능 프로그램
항상 내 곁에서 나에게 멋진 경험을 제공하는 노트북
역사 속 인물
중요한 키워드를 나에게 선사한 역사 속 특정 시기
영감을 주는 래퍼

나에게 '경험'의 감을 제공해 주는 것을 나는 브랜드라고 부른다.
그리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내가 견지하고 싶은 뭔가를 브랜드로부터 얻고 싶고
브랜드가 나에게 영감을 주길 바란다.

내가 소비하는 브랜드들은 속성과 형질을 갖고 있고
그 속성들은 모여서 나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나를 그냥 나로 표현하기 어려워서 어떤 매개체들이 필요한 것이고
매개체들은 필연적으로 나의 정체성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게 된다.

나는 소비한다.
나의 소비는 나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에 불과한 것이지만, 부분적이나마 나의 정체성에 기여하는 건 분명한 사실

정기적으로 내가 선호하는 브랜드 목록을 나열하고
그것의 흐름을 축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를 이해하는 플로우를 탈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상기'라는 과정을 수반하게 되므로
그 필터링을 거쳐 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른 브랜드들을
곱씹어 보는 것 만으로도 나를 Read & Lead하는 시간을 의미 있게 확보하는 것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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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 2014/12/24 00:04

걷는 것은 버스,지하철로 이동하는 것보다 확실히 속도에서 열위다.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원하는 거리를 거슬러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걷기를 즐기다 보면 의외의 영역에서 속도가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 풍경을 음미하다 보면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타임라인 같은 세상 속에서 결코 수월하게 하기 힘든 깊은 생각이 가능해짐을 느낀다. 깊은 생각은 고도의 생각 속도를 요한다. 빠른 속도가 수반되어야 가능한 깊이 파고들기. 깊게 진전하기 위해 필요한 동력을 걷기에서 얻는다.

느리게 걸으면서 빠르게 생각하기.
빠르게 이동하면서 느리게 생각하기.

빠른 이동 속도를 경험하면서 느린 걷기의 가치를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가치를 계속 누리기 위해선 걷기를 계속 즐기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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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ndy | 2014/12/24 09: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제 마음을 읽으신 듯한 글이에요 ^^ 아침/저녁 출근길 30분씩 걷고 있는데, 빠르게 걸으면서 느리게 생각하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정말 매력적이고 재미지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생각'이 기존의 제 생각의 틀에 침투할 때 정말 즐겁습니다! 걷는 것이 참 좋아요. 서울도 걷기에 참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요! 따스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연말 보내셔요!

    • BlogIcon buckshot | 2014/12/25 14:20 | PERMALINK | EDIT/DEL

      정말 생각하기와 걷기는 참 잘 어울리는 행위인 듯 합니다. 정말 걷기만 잘 해도 생활이 즐거워지는 듯 해요. 즐거운 휴일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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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재와 소비노 :: 2013/12/11 00:01

베끼려면 제대로 베껴라
이노우에 다쓰히코 지음, 김준균 옮김/시드페이퍼


책을 읽지 않고 쓰는 글이다. 책 목차만 봐도 메세지가 느껴지기 때문에. ^^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맨 마지막 줄에 너무도 인상적인 문구가 보인다.  경영서를 소비재로 끝내지 않기 위하여. 사실 모든 경영서가 소비재 아니던가?  경영서의 일반적 한계를 넘어서고 싶다는 저자의 의지가 엿보임과 동시에 소비재란 단어가 그리 심상치 않은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머리말: 모방의 패러독스

제1장 모방은 은유다: 메타포와 이노베이션
제2장 모방해야 할 본질을 모델링하라: 인도 노점상의 경우
제3장 모방의 4개 요소와 5단계 스텝: 검은
고양이의 혁명
제4장 모방의 창조성: 2개의 카페
제5장 누구를 어떻게 모방할 것인가: 4개의 교사
제6장 지키고, 부수고, 떠나라: 수파리(守破離)
제7장 모방의 함정: 모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할
수 없는 회사
제8장 모방의 반전: 역발상 모델링
제9장 베끼려면 제대로 베껴라: 모방하는 법 모방하기

후기: 경영서를 '소비재'로 끝내지 않기 위하여

소비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소비의 홍수 속에서 소비에 휩쓸리며 소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소비가 없으면 단 하루도 살기 어려운 소비 의존적 존재가 아닐까?

소비재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 소비재: 인간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일상생활에서 직접 소비하는 재화.

위 문구를 뒤집어 보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 인간: 자본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특별히 축조한 소비 프레임 내에서 마구 유린하는 재화

소비재에 불과한 경영서가 되지 않기 위한 경영서의 몸부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간의 저항 아닐까? 소비재와 거의 동급으로 분류되는 인간 존재의 현재 위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간 본연의 몸짓이 필요한 시점이 지금일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스토리를 생성하며 살아간다. 책을 내든 책을 내지 않든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스토리를 담은 책을 출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책 후기엔 아래와 같은 후기가 들어가야 한다. ^^

후기: 인간을 '소비노(소비의 노예)'로 끝내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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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놀이 :: 2013/09/23 00:03

3개월에 한 번 정도는 서점에 들른다. 아무런 규칙 없이 이리저리 거닐며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러다가 관심이 간다 싶은 책이 있으면 10분 정도 들고 훑어보기 시작한다. 훑어보다가 맘에 드는 단어나 문장이 있으면 여러 번 읽어보고 그래도 잔상이 남으려는 조짐이 보이면 그 단어를 기록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3~4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다리가 아파오면 서서히 서점 나들이를 마무리한다.

e북이 활성화되다 보니 e북을 읽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면서 오프라인/온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을 사는 빈도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심지어는 e북이 제공되지 않는 책은 e북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님 말고 하는 태도를 견지할 때도 있을 정도이니 세상 참 많이 변한 것, 아니 내가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온라인 서점에서 주로 책을 사면서 느끼는 편의성, e북을 구매하고 읽게 되면서 얻게 되는 새로운 경험과 가치. 그렇게 책을 읽는 행태가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오프라인 서점 나들이는 내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 것일까?

오프라인서점에서 종이책을 보는 경험은 책 소비 행태가 진화되어 가는 현 시점에서 더욱 의미를 더해가는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매장에서 상품을 접하고 경험하는 모습은 대개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기 마련이다. 노트북, 냉장고, 가방, 시계, 옷을 산다고 가정해 보자. 기껏해야 그것을 만져보고 작동시켜보고 입어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지 실질적인 상품 소비의 경험을 제대로 하려면 그것을 구매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반면, 서점은 참으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수많은 책들이 진열된 공간에서 나의 시선을 끄는 책을 고르는 재미가 존재한다. 그것은 참으로 대단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많은 책들이 나의 시선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 나는 자유롭게 책들이 전시된 공간을 거닐며 나의 마음을 동하게 할 책 제목을 스캐닝한다는 것은 어떤 유형의 상품 탐색 경험에서도 손쉽게 얻을 수 없는 특별함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관심이 가는 책을 집어 들어 그것을 펼쳐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건 온라인 서점에서 종이책, e북을 구매할 때 결코 얻을 수 없는 경이적 경험인 셈이다. 사실 책을 구매해서 집으로 가져가서 주의 깊게 읽는다고 해도 막상 오프라인 서점에서 둘러보던 그 맛이 나지 않는 경우도 꽤 있다. 서점에서 책을 읽고 거기서 나의 마음을 울리는 단어나 문장을 접하는 경험. 그건 돈을 내지 않고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짜릿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프라인 서점에 갈 때는 예전 대비 마음이 한층 더 설레게 된다. 온라인 서점이 등장하기 전에는 이런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기가 어려웠다. e북이 나오기 전에는 서점에서 종이책을 본다는 것이 이렇게나 대단한 것인지 명확히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책 소비의 모습이 진보(?)를 거듭해 나가면서 오프라인 서점은 나에게 새로운 가치로, 혁신적인 시공간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제발 오프라인 서점이 앞으로 어려움을 잘 극복하면서 오래오래 존재해 주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나는 3개월에 한 번 정도는 서점에 들른다. 그래서 새로 나온 책들을 둘러 보고 예전에 나왔던 책들도 다시 둘러본다. 그렇게 하면서 책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시간이 나에게 허락되는 것을 흠뻑 즐긴다. 서점 나들이의 즐거움을 선명하게 감각하게 해준 온라인 서점의 발전, e북의 성장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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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봇 :: 2013/06/21 00:01

시장은 끊임없이 신상품을 쏟아낸다. 하지만 신상품은 시간의 흐름에 속절없이 신상품의 지위를 다음 상품에게 물려주고 구상품이 되어 시장의 씬에서 사라진다. 트렌드를 추종하는 소비자들은 신상품에 열광하고 신상품 구입의 즐거움을 만끽하지만 시간은 그런 행위를 조롱하듯 신상품을 빠른 속도로 진부화시킨다. 시장은 거대한 의도적 진부화의 장이다. 빠른 속도로 기존 상품을 진부화시키면서 새로운 상품을 등장시키고 신상품은 빠른 속도로 신상품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신상품이 시장에 등장하자마자 진부화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구상품이 되어가는 흐름 속에서 소비자는 신상품, 구상품에 대해 어떤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 좋을까? 시장의 의도적 진부화 메커니즘이 소비자를 조롱하듯 갖고 노는 상황 속에서 소비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일까?

시장에서의 진부화 속도에 순응하지 말아야 한다. 시장은 자본의 문법에 따라 상품을 진부화시키는 것이고 자본의 욕망에 맞춰진 진부화 속도로 상품을 소멸시켜 나간다. 이는 인간의 리듬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흐름이어서 시장의 진부화 리듬을 그대로 수용하다간 인간은 철저히 소비 로봇 단자로 격하될 수 밖에 없고 시장 리듬에 중독된 채 덧없는 진부화의 루프 속을 헤매며 시간을 흘려 보내게 될 것이다.

상품을 바라보지 말고 상품에 내재한 진부화 의도를 바라보자. 진부화 메커니즘이 규정하는 신상품과 구상품 간의 갭이 얼마나 작위적인 것인지 냉철하게 응시해보자. 시장리듬 중독자로 전락하지 말고 시장리듬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는 진부화 메커니즘의 비평가가 되어보자.  

시장이 추천하는 상품에 현혹되지 말고 '나'에게 좋은 상품을 가려내는 혜안을 키워야 한다. 속물적 유행/문법에 부합하는 상품 라인업 속에 내포된 소비자 유린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어야 진정한 소비자로 생활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소비봇으로 작동되는 것이다.

시장은 상품을 유통시키고 소비봇을 사육하는 공간이다. 시장의 리듬을 몸에 착 붙이고 작동되는 소비봇이 얼마나 많은가가 시장의 성패를 좌우한다. 거대한 시장이 존재한다는 건 가공할 소비봇이 사육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리듬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자가 많다면 지금과 같은 시장은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만의 리듬으로 시장을 바라보고 시장과 다른 견해를 취할 수 있는 고유성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나는 시장의 사육을 받고 있는 소비봇인가? 아님 시장을 응시/판단하는 소비자인가? ^^




PS. 관련 포스트
쓰렉,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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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까이, 휘말리아 :: 2013/05/22 00:02

우라까이를 읽고 나서.

우라까이에 대한 수요가 대규모로 존재하니까 우라까이 사업(?)이 번창하는 것이다.  공급은 수요의 거울이고 수요는 공급의 거울이다. 서로 상대방을 의식하고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며 성장한다. 우라까이에 몰입하고 있는 연예뉴스 공급자의 모습엔 우라까이 기사를 탐닉하는 연예뉴스 수요자의 모습이 서려 있고, 그 반대방향의 투영도 엄연히 존재한다. 우라까이가 난무하는 연예뉴스 란에 올라오는 선정적인 헤드라인을 무심코 클릭하고 "에이, 속았다!"를 연발하면서도 계속 시선이 우라까이 기사들 주위를 맴돌곤 하는 우라까이 애호가들이 대규모로 웹에 군집하고 있는 한 우라까이 기사는 계속 우리와 고락을 함께 할 것이다. 우라까이 기사가 사라지려면 대부분의 웹 소비자들이 그런 기사를 외면하면 된다. 우라까이의 성장은 웹에서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웹 소비자 군상들의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휘말리아를 읽고 나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시선에 맞춰 나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변형시키는 것. 대중문화는 타인 시선 의식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폭주기관차이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불안한 대응은 대중문화가 번성할 수 있는 최고의 토양이다. 타인의 시선 따윈 의식하지 않고 오직 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주체적으로 전개하는 자들이 많다면 대중문화가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뭔가 기준점이 필요하고 나의 현 상황을 판단해줄 가늠자가 필요한 자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대규모 휘말리아들을 봉으로 정의하고 그 봉들의 관심을 먹고 살아가는 대중문화가 지금의 거대한 흡심(마음빨아들이기) 플랫폼의 모습을 일궈낸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살짝 참조만 하면 되는 것인데, 완전히 대놓고 의존을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존도가 대중문화에 얼마나 유린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 대중문화는 '휘말리아'들이 대규모로 사육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대중문화 소비자들은 기꺼이 휘말리아의 대열에 동참해 주는 상황. 수요와 공급의 절묘한 궁합이 아닐 수 없다.


우라까이.
휘말리아.
'나'를 잃어가는 사람들의 자화상이다.  '나'를 온전히 소모하는 행위에 전념하는 자들.
'나'를 찾아가기에도 바쁜 세상에서 '나'를 잃어버리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마음이 불안하니까 우라까이에 낚이고 마음 갈 곳이 없으니까 휘말리아가 되는 것이다.

우린 失我(실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失我 압박에 대응하려면 '나'를 읽고 나를 리드하겠다고 결단하고 그것을 실행해야 한다. ^^





PS. 관련 포스트
경쟁 노예: 이기고 웃는 노예, 지고 우는 노예
타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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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0:48 | DEL

    Hello, every time i used to check website posts here Read & Lead - 우라까이, 휘말리아 in the early hours in the morning, because i love to gain knowledge of more and more.

  • toms sale

    Tracked from toms sale | 2013/06/13 10:49 | DEL

    One other technique in favor of advertising your website %title% is posting comments on unique sites with your website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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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와 소모 :: 2013/05/15 00:05

소비할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인간은 소비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뭔가를 소비하지 않으면 시간을 보내기 어려울 정도로 소비는 공기와도 같이 인간의 삶 속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소비는 소비자를 재편한다. 소비자의 일상은 소비에 의해 흘러간다. 소비자의 생각과 행동은 소비 플랫폼 상의 타임라인 상을 하염없이 흘러간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왜 가는지도 모르는 길을 따라 정처 없이 흘러가는 모습.

소비자는 소비의 주체라는 외피를 두르지만 사실상 소비의 객체로서 작동하면서 소모되어 간다. 소비는 인간이 스스로를 소모하는 행위이다. 소비는 뭔가를 자본 시장에 유통시키면서 자본의 흐름을 살찌우는 행위인데 자본은 인간을 단자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므로 인간은 소비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고유성을 소모하면서 자본의 문법을 고착화시키는데 기여하게 된다.

소비는 소모를 낳고, 소모는 소비를 강화한다.
소비와 소모는 뫼비우스의 띠를 형성하며 인간을 끝없이 단자화시킨다.

소비에 대해 생각하는 자는 소모에 대해 반추하는 자이다. 소비하면서 소모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소모 과다로 인한 고갈을 사전에 컨트롤할 수 있다.

나만의 스토리가 없다는 것. 자본 만의 스토리가 있다는 것. 서사를 잃어버린 좀비와도 같은 인간들이 자본의 문법에 복종하면서 로봇처럼 살아간다.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어버린 과정 자체가 자본 관점에선 가슴 설레는 서사일 것이다. 인간을 개조하고 인간을 변형시키는 가슴 벅찬 성과.

자본의 서사는 날이 갈수록 화려해지고
인간의 서사는 날이 갈수록 빈약해진다.

빤히 들여다 보이는 패턴과 프레임 안에서 쳇바퀴 도는 인간 로봇.
그런 인간 로봇의 쳇바퀴 플레이를 발판 삼아 거대한 세를 형성하게 된 자본.

나만의 스토리를 복구하려면 단자화된 나의 빈약한 플롯을 다양한 생각들과의 연대를 통해 보강해야 한다. 일상의 디지털화는 나만의 고유성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될 수도 있고 더욱 고립될 수 있는 위기일 수도 있다. 소비를 할수록 소모되는 나. '소비-소모'의 순환고리 속에서 헤매기만 할 것인지, 아니면 소비-소모의 연대에 대응할 수 있는 '나' 연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인지.

나를 소모할 것들이 공기와도 같이 나의 감각기관에 스며들어오는 상황 속에서 무작정 소비만 하며 살아가다간 나의 서사를 송두리째 분실할 우려가 있다. 소비하면서 나의 서사를 챙겨야 한다. 나는 지금 소비하면서 나의 스토리를 얼마나 잃어버리고 있는가, 나의 내러티브는 어느 지경으로 약화되고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영화/드라마 보면서 스토리라인 약하네라고 말할 시간에 소비자로서의 내 모습이 어느 정도의 서사를 갖고 있는지 냉정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소비-소모의 연대는 너무도 강력해서 멍하니 있다간 홀랑 '나'의 서사를 날려 먹을 수 있다.

소비할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




PS. 관련 포스트
베를린, 서사, 졸음
소비와 소외
생산과 소비
소싱 당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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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1:47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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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와 소외 :: 2013/04/29 00:09

현대인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소비를 한다. 음식을 사먹고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지갑은 항상 열려 있고 소비자에게서 사업자로 돈은 지속적으로 흘러 들어간다. 소비의 대가로 효용을 얻고 만족을 느끼는 소비자.

소비란 무엇인가? 생산할 수 있는 자로부터 생산을 거세하고 남은 무기력에 대한 거대한 인증 아닐까? 소비자는 과연 무엇을 원하는가? 소비하고자 하는 그것을 정말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소비하고자 하는 자신 자체를 원하는 것일까?

만약 소비자가 자신에 대해 올바르게 성찰하고 소비의 정체를 명확히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고 하면, 소비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아마 현재 작동하고 있는 소비 메커니즘은 극적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소비는 다분히 기획되고 있으며 소비자는 기획된 소비 프레임 안에서 주어진 제한적 역할을 대단한 권리라도 되는 양 흡족한 마음으로 수행하고 있는 상황. 만약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소비자로부터 일어난다면 소비는 거대한 전환점을 맞게 되지 않을까?

충분히 의미 있는 뭔가를 생산할 수 있는데 생산하지 못하고 소비만 하도록 압제되어 있는 구조 속을 살아가는 한 무기력한 소비는 끝없이 지속될 것이다. 소비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소비의 의미는 정확히 짚고서 소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찰 없이 행하는 소비와 꾸준히 성찰을 견지하면서 행하는 소비 간의 간극은 매우 클 수 밖에 없다. 철저히 외부로부터 기획된 소비 구조 하에서 안쓰러운 선택을 하는 것 보단 기획된 소비 구조의 맹점을 통찰하고 가급적 자신의 진정성과 의도를 반영한 소비를 시도할 때 '무기력 소비'와의 거리감을 형성할 수 있다.

어리버리한 소비로 인해 무기력해진 인간. 뭔가를 생산할 때 기력 회복을 시작할 수 있다. 인간의 성찰력은 결국 생산에서 나온다. 소비만 하면 결국 남이 주는 먹이를 주워먹는 사육동물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 생산을 하게 되면 사육을 넘어 야생을 향한 발걸음을 디딜 수 있게 된다. 사육에 젖어 있을 땐 사육을 인지 못한다. 하지만, 단 한 순간이라도 사육과의 거리를 형성하고 사육을 바라보면서 야생의 몸짓을 시도할 때 무기력한 소비자로 사육되고 있는 자신의 실체를 어렴풋이나마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무기력 소비는 소외를 낳는다. 생산하지 못하는 피사육의 삶은 인간소외 그 자체이다. 무기력 소비를 지속하다 보면 인간소외 자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을 즐기다(?) 보면 소비 자체를 위한 소비를 일삼게 되고 소비하는 자신을 소비하는 재귀 놀이에 빠지면서 소외의 늪 속을 깊숙히 파고 들어가게 된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소비와 소외 간의 강력한 시너지 트랩에 계속 빠져만 있는 건 너무 아쉽다. 생산의 몸짓을 잊지 말자. 인간은 원래 뭔가를 생산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동물이다. 내 몸 깊숙이 코딩된 생산 알고리즘에 ON 스위치를 켜보자. 생산을 통해 소비를 응시하고 소비를 통해 소외된 나 자신을 복원시켜 보자.

소비자는 소비를 원하는 게 아니라 소비하는 자신 자체를 원한다.
그건 원하는 게 아니라 원하도록 기획되는 것이다.
기획되는 것.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기획의 대상이 되지 말고 기획의 주체가 되어 보자.
생산은 기획의 주체임을 선언하는 행위이자 소외와 나 사이의 선을 명확히 긋는 몸짓이다. ^^





PS. 관련 포스트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가격결정
생산과 소비
소싱 당하는 삶
트렌드세터
노래로부터의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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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

    Tracked from toms s | 2013/06/13 10:49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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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0:50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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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ndy | 2013/04/30 12:03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기획의 주체가 되어보고자 시도하고 있는 꿈틀거림이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주체가 되는 행위 자체가 즐겁고 행복합니다. ^^ 자주 언급하시는 그 '재귀놀이'에서 많은 힌트와 힘 얻어갑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4/30 19:00 | PERMALINK | EDIT/DEL

      저도 Wendy님 트윗에서 많은 힌트를 얻고 있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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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봇 :: 2013/01/18 00:08

바야흐로 앱의 범람 시대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재기 발랄한 수많은 앱들을 보면서 그 앱을 만들어 내기 위해 앱의 컨셉과 전략, 유저 경험의 흐름 등을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 틀림없을 앱 구현자들의 아이디어 퍼포먼스에 감탄을 하게 되기도 하고 그 중에 어떤 앱에는 직접 나의 시간을 투입하여 앱이 제공하는 다양한 재미들을 직접 소비하게 되기도 한다.

하나의 앱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공력을 쏟아 부어 앱을 형상화시켜 나가는 과정은 현대 사회가 만들어내고 있는 신 풍속도가 아닐까 싶다. 그야말로 아이디어 하나로 사업을 일으키고 강력한 생각이 소비자의 거대한 추종을 이끌어내는 신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하는 힘을 갖고 있는 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매력적인 환경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앱의 범람은 과연 앱 만드는 자들에게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일까?  앱을 소비하는 자에게 앱의 범람이 주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앱의 범람은 분명히 소비자들에게 명확한 메세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앱이 만들어지는 과정, 만들어진 앱이 소비자의 시간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 보자. 앱을 만든다는 건 앱에 마음을 담는 것이다. 앱을 소비한다는 건 앱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앱의 생산과 소비는 모두 앱에 마음을 주는 것이다.

앱을 생산하는 자는 앱에 마음을 흠뻑 빼앗긴다. 하지만, 앱이 소비되는 과정에서 생산자는 소비자가 앱에 빼앗기는 마음으로 자신의 빼앗긴 마음을 보상받는다. 앱을 생산하기 위해 마음을 충분히 주었더라도 그것을 소비자로부터 회수할 기회를 부여 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앱의 소비자는 어떨까? 앱을 소비하는 것은 그저 마음을 앱에 빼앗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그닥 의미도 없는 기계적 손가락질을 반복하게 만드는 앱이라면 앱에 의해 로봇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고 그런 빼앗김이 지속되다 보면 앱 소비자의 마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황폐해져 갈 수도 있다. 물론 그 황폐함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긴 하지만 말이다.

아이디어 하나로 앱을 만드는 생각의 힘 시대이다.
근데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야 한다. 아이디어 하나로 앱을 만들지만 거기엔 나름 상당한 공수가 들어간다. 하지만, 앱의 생산과 소비에 수반되는 마음 빼앗김 자체에 집중해보자. 결국 '마음'이 중요하다면, 마음 자체에 집중하고 마음 자체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가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멋진 앱을 만드는 것은 앱 전문가의 몫이겠지만, 멋진 마음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역할 아닐까?

앱을 갖고 노는 것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그 앱들의 컨셉을 마음 수양에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앱에게 맘을 빼앗기지 말고 앱을 관찰하며 맘을 닦는 것. 그게 스마트폰 시대를 살아가는 자의 자세가 아닐까?  폰봇으로 전락한 채 폰에 영혼을 빼앗긴 듯 어리버리 살아가지 말고 맘봇이 되어 나의 마음을 가꾸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제부턴
폰에 마음을 빼앗기고, 앱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내 마음에 마음을 빼앗겨 보자. 맘에 맘을 빼앗긴 맘봇이 되어보자. ^^



PS. 관련 포스트
폰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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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생산 뮤직의 전성시대 :: 2013/01/07 00:07

지난 주 토요일에 우연히 무한도전을 보게 되었다.  '박명수의 어떤가요' 편이었는데 박명수가 작곡한 여섯 곡을 무한도전 팬들이 모인 자리에서 소개하는 광경이었다.  무한도전이란 방패막이(?)가 없었다면 결코 들어주기 힘든 음악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무한도전이란 브랜드를 등에 엎고 예능과 뮤직에 한 다리 씩을 걸치고 흥겹게 놀아제끼는 모습이었는데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곡의 퀄리티완 상관 없이 내일 뮤직 차트는 이 노래들로 도배가 되겠군. ^^"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예상대로 뮤직 차트는 어떤가요에 수록된 6곡이 상위권을 점령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심지어 대한민국 대표 아이돌인 '소녀시대'의 신곡조차 밀어낸 채 차트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는 모습이어서 무한도전의 차트 영향력에 새삼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돌 뮤직은 하나의 장르를 넘어서 대한민국 뮤직 시장을 장악하는 지배적 주류가 되어 있다. 아이돌은 탄탄한 팬덤 및 선호 계층을 형성하면서 대중음악 산업을 지배하는데 그치지 않고 예능, 광고,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으로 영향력을 확장시키며 일종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래서 탑 클래스의 아이돌 그룹이 신보를 발표할 때 차트가 그들의 음악으로 깔끔하게 도배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현상이 되어 버렸다. 

오디션 뮤직도 만만치 않은 지지 계층을 형성하며 뮤직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 공급원이 되어가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화제를 낳은 곡은 어김없이 차트의 최상위권에 모습을 드러내고 일부 참가자는 오디션이 끝난 후에도 아이돌 그룹 못지 않은 인기와 차트 지배력을 과시하게 된다.

또한, 예능 뮤직도 강력한 차트 영향력을 갖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기획된 유니크하고 예능스런 포맷으로 잘 포장된 가요들은 예능 프로그램의 맥락과 팬들의 지지 속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차트 상위권에 진입한다.

바야흐로, 한국의 뮤직 시장은 공장생산형 컨텐츠의 창궐로 수놓아지고 있다. 아이돌 공장에서 생산되는 컨텐츠가 차트를 주름잡고, 오디션 공장에서 생산된 컨텐츠가 차트 최상위권에 진입하고, 예능 공장에서 생산된 컨텐츠가 차트를 지배하고. 가히 공장생산 뮤직의 전성시대라 칭할 수 있겠다.  

공장생산 뮤직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소비자가 갖게 되는 질문은 "나는 어떤 음악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내 귀에 들려오는 주입형 음악은 무엇인가?"이다. 소비자의 취향 자체가 기획되고 있는 상황.

공장생산 뮤직의 부흥을 지속하게 하는 가치사슬의 견고함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한국 특유의 떼소비 현상이 공장생산 뮤직의 장기 흥행을 가능케 할지, 이런 기괴한 방식의 뮤직 생산/소비 현상에 찬물을 끼얹는 새로운 유형의 시장이 형성될 것인지 앞으로의 행보가 매우 흥미진진할 것 같다. 이런 체제가 계속 유지된다면 그것 자체가 '거대한 예능'이 아닐까?  소비자의 취향을 철저히 통제하는 공장생산 뮤직이 대중의 귀를 지배하는 모습. 철저히 기획된 자극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파블로프형 소비자들이 안정적으로 공장생산 뮤직을 소비하고, 소비된 뮤직은 더욱 강화된 자극으로 소비자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소비자를 자극의 굴레 속으로 몰아넣는 작금의 상황에 실소 아닌 실소를 머금어 보게 된다. ^^




PS. 관련 포스트
공장생산인간
트렌드세터
떼소비와 머나먼 C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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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tore

    Tracked from toms store | 2013/06/13 10:49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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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싱 당하는 삶 :: 2012/12/28 00:08

공짜를 표방하는 상품/서비스는 표면만 공짜지 내면엔 유료화 탐욕이 가득하다. 공짜를 표방하는 상품/서비스가 만연하게 되면서 pricing은 간접화, 암묵화의 메커니즘이 고도화되고 소비자는 공짜를 소비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끊임없이 지불한다. 공짜가 많아진다는 건, 검증되지 않은 컨텐츠/상품/서비스가 범람하면서 그것들에 대한 접근성이 증폭됨을 의미한다. 무수한 공짜들의 쓰나미 속에서 소비자들은 그것들을 검증해야 하는 수고를 치르게 된다. 그 비용은 실로 거대하다. 공짜, 그 거대한 비용에 대한 지불자는 누구인가?

공짜가 많아져서 좋아할 일은 아니다. 공짜 소비자로서의 삶에 푹 젖어 살아간다는 건 엄청나게 빨리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짜가 아닌 공짜 비즈니스에 의해 철저히 인력 자원을 소싱 당한다는 것. 누구를 위한 공짜 소비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공짜의 이면에서 이익을 누가 취득하고 자원을 누가 착취당하는 지를.

자본이 세상을 잠식해 나갈수록, 공짜가 시장에 범람할수록, 소비자들은 수시로 소싱 당하게 된다. 소비자로서의 삶 자체가 '피소싱'인 것이다. 소싱 당하지 않는 상황은 점점 희소해져만 간다. 대부분의 시간을 피소싱으로 보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피로해지기 쉽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로부터 착취를 당하니 피로할 수 밖에.

소싱 당하는 시간과 소싱 당하지 않는 시간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점점 희박해져 가는 '소싱 당하지 않는 시간'을 나에게 선물할 수 있어야 한다. 거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소싱의 공간 속에서의 삶을 완전히 외면하기 어렵다. 하지만 소싱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무지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소싱 당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소싱 당하는 삶은 우리 모두의 삶이자 너무도 흔하게 널려 있는 보편화된 양상이다. 소싱의 기운이 희박한 곳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심호흡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피소싱인으로 살아가면서 소싱 알고리즘에 던지는 나의 시선. 거기서 자존의 삶은 시작된다. ^^



PS. 관련 포스트
웹은 거대한 소싱 플랫폼이다
공짜,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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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담고담 | 2013/01/14 21:0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마케팅은 항상 말합니다. '고객 만족을 달성하고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가치를 창출했다'. 전 그 말이 항상 불편하고 거북했습니다. 그것이 벅샷님께서 말씀하시는 피소싱에대한 이야기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에스티로더의 무료샘플 프로모션은 소비자에게 혁신적인 가치를 만들어냈다는 글귀를 본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혁신적인 가치를 받았던 것일까요? 그리고 마케팅은 우리에게 '진짜 가치'를 만들어 전해 주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지속된 착취와 소싱의 담벼락 뒤에서 value up 이라는 변명을 하고 있는것일까요.. 전 항상 궁금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1/14 21:12 | PERMALINK | EDIT/DEL

      우리는 돈이 신이 된 시대를, 고객이 신이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나 봅니다. 쩐신과 고객신을 섬기면서 우리 자신을 잃어가는 경로에 놓여 있는 셈인데요.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을 얼마나 아낄 수 있는가가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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