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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팅으로 날린 돈 :: 2018/04/04 00:04

베팅으로 돈을 날릴 때
그 돈은 어디로 간 것일까
누군가의 이익금으로 간 것일까
내 안에 남아 있는 잔소인 것인가

잘 모르겠다.

날린 건지
잃어버린 건지
생겨난 건지
찾은 건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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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내 밖에서 :: 2016/08/12 00:02

내가 블로깅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것.

그걸 블로깅을 하면서 알게 된다.
지금도 잘 모르지만.

블로깅을 한다는 건
내 안을 응시한다는 것이다.
내 밖을 응시한다는 것이다.

응시를 하면
그 곳에서 잠자고 있던 내가 깨어난다.

참 신기하다.
바라보지 않았을 때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조용히 잠자고 있던 내가
바라봄을 통해 잠에서 깨어난다.

그건 탄생이다.

내 안을 응시할 때마다
내 밖을 응시할 때마다
내 안과 밖에 존재하고 있던 내가 숨을 쉬기 시작한다.

숨을 멈추고 있는 상태가 죽음이 아닌 것처럼
숨을 쉬고 있는 상태가 삶은 아니다.

그저 삶과도 같은, 죽음과도 같은 상태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진동하면서 생사(生死)가 흘러가는 것이다.
삶이 아닌, 죽음이 아닌.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생사 말이다.

생사는 살아있는 것도 죽어있는 것도 아니다.
그 중간이다.

인간은 생사의 존재다.

안과 밖의 경계는
경계가 있다는 개념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허상을 제거하면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내 안을, 내 밖을 응시하면서
나는 나를 알아간다.
지금 이 순간도 말이다. :)



PS. 관련 포스트

진화와 죽음, 일각과 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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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2016/06/06 00:06

흥미로운 내용의 책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책을 사려고 도서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는데 그 책은 품절이었다.
허탈한 마음에 책 소개 내용을 자세히 읽어본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 옳았다는 생각이 진해지면서
책을 향한 갈망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책이 만약 품절이 아니었다면 그 책을 구입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품절이란 걸 알게 되니까 없던 결핍감마저 생겨나는 지경이다.

만약 그 책이 품절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았다면..
내게 있어 그 책은 수많은 책들 중 하나 정도에 불과한 그런 밋밋한 존재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품절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존재감.
부재는 존재만큼이나 강력한 이벤트이다.
존재는 부재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존재들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애처로울 정도의 몸짓을 지속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을 알리기 위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그런 무리수들이 겹겹이 남루한 층위를 이루면서 존재는 더 이상 존재답지 않은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냥 살아가는 것.
그냥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결로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
티를 내려고 하지 않고,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과정 속에서 죽어가는 게 아니라 존재를 굳이 증명하지 않으려 하는 태연함.
그 속에서 존재감을 스스로 느끼는 것.

존재라면, 이 세상을 존재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런 자세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존재가 존재를 알림으로 인해, 존재를 돋보이게 함으로 인해 증명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하면 할수록 존재감은 희미해진다는 것.
존재는.. 표현하려고 애쓰는 허무한 몸짓들을 제하고 남은.. 표현하지 않아도 저절로 표현되는.. 그런 자연스러운..
밖을 향하지 않는.. 그런 것들로 구성되는 듯 하다.

품절된 책을 접하게 되면서,
굳이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아도 그 책을 존재로 인지하는
나 자신이 존재임을 인식하는 시간들.
책 한 권의 품절을 통해 존재를 어렴풋이 배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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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하기 :: 2015/10/23 00:03

지속을 한다는 것
버틴다는 것

엔트로피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다

엔트로피를 거스르고자 하는 노력
그 노력이 하루 하루 축적되면
지속의 맛을 알아가게 된다.

시간은 강하다
인간은 시간 앞에 나약하다

인간은 태어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이후에 잘 발생하기 힘들다
그만큼 탄생은 강력한 이벤트이다

지속하면
버티면
인간은 세상에 태어난 것과 맞먹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셈이 된다

객체로 세상에 태어나서
주체로 세상에 뭔가를 태어나게 할 때
비로소 인간은 인간이 된다

지속한다는 것
버틴다는 것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를 선언하고 실행하는 것

지속하기를 통해
삶을 배운다
살아있다는 건 지속하기를 위한 기본 전제 조건이다

나는 무엇을 지속하는가
나는 왜 지속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모두 같은 질문이고
그것들의 뿌리는 모두 한 곳이다

지속
그 단어 하나 만으로도 나는 설렌다




PS. 관련 포스트
지속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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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dge | 2015/10/28 07: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무엇을 지속하느가를 곰곰히 생각하다.
    왜 지속하는가란 질문에 생각이 많아지네요...ㅎㅎ
    잠시 생각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5/10/30 23:24 | PERMALINK | EDIT/DEL

      요즘 '지속'에 대해서 생각을 계속 하게 되네요.
      지속의 의미를 새기다 보면 지속하는 것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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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忘 :: 2015/07/31 00:01

記憶(기억)
忘却(망각)

기억과 망각을 동일시하면 재미있을 듯 싶다.
생성과 소멸을 동일시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듯 싶다.

뭔가를 기억하는 과정 속에서
뭔가를 망각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뭔가를 망각하는 흐름 속에서
뭔가를 기억하는 상황이 형성된다.

망각과 기억이 하나라면
난 지금 무엇을 망각하면서 무엇을 기억해내고 있을까.


記憶(기억) = 忘却(망각)

記忘(기망)

난 앞으로 기억과 망각을 구분하지 않는 놀이를 즐겨볼까 한다
기망 놀이.

미래의 어느 날. 과거의 어느 날. 지금 바로 이 순간..
정말 기억과 망각을 구분하지 않게 되면
시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있을까.
공간은 나에게 어떤 포지션을 부여하게 될까.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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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따슈 | 2015/08/01 11: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올려주신 포스팅 보고 중국어 공부하다 한자가 의아해서 유심히 봤던게 떠올라서 댓글 남겨봅니다!
    잊다라는 단어가 忘记(발음 왕↘지↘)라고 쓰는데 말씀하신 기망의 한자가 뒤집혀 있는 상태지요
    그래서 공부하면서 왜 잊다에 기록/기억하다는 뜻이 들어가있을까 고민을 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이 글을 보고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까먹었다는 결과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는 외웠었는데 잊어버렸다는 전후의 관계를 모두 내포하는 의미라는 것을요.

    옛날에 2007~8년 때부터 벅샷님 블로그 봤는데
    아직도 꾸준히 운영하시고 사색내용 올려주시다니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5/08/01 16:14 | PERMALINK | EDIT/DEL

      아. 그런 의미가 있었네요. 넘 흥미로운 포인트를 짚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욱 풍성한 맥락을 선물해주셔서 넘 기쁘구요. :)

      꾸준히 운영하는 건 아니구요. 그냥 힘을 빼고 하고 싶은 얘기만 가볍게 적어 나가다 보니까 예전보다 경쾌한 흐름으로 운영이 되는 듯 합니다. 귀한 댓글 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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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놀이 :: 2015/07/29 00:09

한가지 자아만 내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복수의 자아, 복수의 개성이 내 안에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복수의 자아/개성을 억지로 단수로 봉합하지 말고
복수의 미학을 즐길 필요도 있을 듯 싶다.

나의 개성과 자아를 3명으로 나눈 후
예를 들어 회사원, 독서가, 온라인서퍼로 나눈 후
셋이 토론을 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면 어떨까?

그래서 서로 대화를 하게 하고
서로 논쟁을 하게 하고
서로 각자의 구상을 얘기하도록 하면 어떨까?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복수의 관점을 어설프게 단수인 듯 뭉개면서 생각을 정리하려 하지 말고
내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관점을 그대로 다 인정하고 그것들이 각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주면 어떨까?

그들이 서로 대화하면서 논쟁하면서
뭔가 공감대를 찾아가도록 판을 깔아준다면
내 안의 개성, 자아들은 거대한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까.

결국 많은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어 있는 것이고
난 그것을 깨우는데 너무 둔감했던 듯.

그것들을 깨울 수 있다면.
뭔가가 깨어날 수 있는 맥락을 내가 감지하고 촉발시킬 수 있다면. :)




PS. 관련 포스트

거잠,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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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폰 :: 2015/07/20 00:00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쳐다보는 폰.

눈에 보이는 빤한 폰
그래서 폰 속 풍경은 눈에 보이는 빤한 것들 뿐이다.

빤한 폰을 가지고 다니면서
폰 속 빤한 세상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내 자신이 너무 빤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좀 불편하다.

그럴 때면
맘 속으로 또 하나의 폰을 상상해 본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폰 하나를 만들어서
그 폰 속 세상을 들여다 보고 싶고
폰 속 세상이 나로 인해 변화하고 내가 그 폰 속 세상으로 인해 변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내 주위를 가득 채워 놓고
온통 그것들에 의해서만 나의 흐름이 이뤄지는 모습으로만 일관하면
나중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듯 싶다.
눈에 보이는 건 결국 휘발될 것이고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고 그것들과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가가 관건일 텐데.


모두가 폰을 만지작 거리며 폰 속 세상에 심취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의도적으로 난 보이지 않는 내 맘 속 폰을 꺼내서 들여다 본다. 손에 잡히지 않고 명확하게 화면 속이 잘 들여다 보이지 않는 특수한 폰이지만.. 난 그 폰이 좋다. 현대 문명의 이기가 사람들을 도구화시켜 나갈수록 난 그것과 궤를 달리하는 나만의 경험을 지향하게 되는 듯 하다. 그리고 그 폰을 통해 빤하지 않은 세상을 보게 되고 그 세상 속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


나만의 히든 폰. 2~3년에 한 번씩 신규 모델을 구입할 필요도 없고, 화장실에 빠뜨릴 염려도 없고, 분실의 우려도 없다.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마음으로 꺼내서 가슴으로 들여다 수 있는 폰이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성장이 나에게 히든 폰의 존재를 알려준 셈이다. 문명의 이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그것 자체는 공허할 뿐이고 그것이 내 안의 무엇이 존재하고 그것을 어떻게 작동시키는지를 암시하는 indicator 역할 정도에 머무르면 딱 좋을 듯 하다. 결국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기술이 화려하게 진화해 나간다고 해도 결국 내 맘 하나를 당해낼 수는 없는 것니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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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입 :: 2015/07/06 00:06

2015년 7월6일.
현재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문득 2005년 7월6일의 내가 현재로 틈입되어 들어온다면,
나는 뭐라고 응대하면 좋을까.

나는 10년의 시간을 오가며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재구성하게 될까.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를까.
10년의 시간이 나를 어디로 데려갔을까.
10년의 시간은 2005년의 나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현재를 살면서 10년의 시간을 내 안에서 느끼고자 한다면
뿌옇게 흐려졌던 10년 전의 기억은 어떻게든 내 안에서 다시 복원되지 않을까.

그게 설사 사실의 왜곡에 가까운 복원이라 해도
복원은 엄연히 복원이다.
뭔가 달라진 채 되살아난 기억은 현재 관점에서 바라본 과거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겠다.

특정 시간대에 연결된 이벤트. 시간이 지난 후 그것을 계속 복원시키고자 할 때, 복원될 때마다 기억은 매번 어떤 식으로든 새롭게 변주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이벤트를 100번 복원하면 100가지 형태의 다양성이 확보되는 셈이다. 그것 모두는 정확히 그 이벤트를 겨냥한 의미 있는 해석들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제 어떻게 복원시키는가에 따라서 수만 가지 색채를 띤 그 무엇이 되고 만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건, 어디로든 틈입되어 무엇이든 새롭게 생성해냄을 의미하는 듯.

2015년 7월6일.  
현재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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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dge | 2015/07/14 07:58 | PERMALINK | EDIT/DEL | REPLY

    10년전의 나, 현재, 10년후의 나
    이렇게 셋이 같이 한 테이블에 앉아 얘기하는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네요. ㅎㅎ
    셋이 무슨 얘기를 할까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5/07/16 14:41 | PERMALINK | EDIT/DEL

      저도 그게 궁금해요. 상상만 해도 설레이는 장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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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ete, Position :: 2014/04/23 00:03

디지털 세상에선 수시로 삭제를 하곤 한다.  필요 없는 파일을 지우고 텍스트와 이미지를 지운다. 1과 0 사이에서 OnOff를 오가는 디지털 모드에선 삭제는 매우 일상적인 행위이다. 삭제를 하면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없어지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고 어렴풋이 추측한다.

삭제란 무엇일까?

삭제는 뭔가를 없애면서 뭔가를 생겨나게 하는 행위이다.  무엇을 지우면 무엇에 연관된 다른 무엇이 변형되거나 생겨난다. 지우는 건 소멸시키는 게 아니라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뭔가를 이동시키는 것이다.  만물은 정보이다. 정보는 완전 소멸되진 않는다. 형태를 바꾸거나 구성이 재편되면서 시공간 상의 좌표 점유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지 완전 없어지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이사를 하면서 책 정리를 할 때, 필요 없을 거라 판단한 책을 내버리는 행위. 그 때 그 책은 정말 나로부터 완전히 사라지는 것일까? 아무리 나로부터 멀어진다고 해도 그 책과 나와의 관계는 분명 존재하는 것일 텐데. 그 책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어느 특정한 계기가 주어지면서 문득 그 책 제목이, 책 내용이 떠오른다면 그 책은 결국 소멸되지 않았음이 입증되는 것 아닐까?

삭제를 하면서 삭제 대상으로부터의 거리를 스스로 컨트롤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실은 삭제하면서 오히려 그 대상과의 거리가 가까워질 수도 있다. 물론 멀어질 수도 있기도 하겠고, 거리가 새로운 양상으로 재구성될 수도 있다. 거리의 차원이 멀고 가까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대상 사이에 놓인 길의 결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고 여러 가지 차원이 형성되면서 어떤 차원에선 거리가 가깝고, 어떤 차원에선 거리가 멀게 형성되는 등의 다채로운 상호작용의 장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삭제는 나름 고도화된 창조 행위이다.
무로부터 뭔가를 만드는 게 어렵듯이, 뭔가를 삭제하는 것도 무가 아닌 유로부터 시작되기 마련이다. 

뭔가를 삭제하면서 뭔가가 있던 공간의 기운을 바꾸는 것.
삭제를 단순하게 생각하면 삭제의 본질로부터 멀어진다.

삭제는 1을 0으로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1을 N으로 만드는 행위다.
디지털은 1과 0을 오가는 선형적 진자 놀이가 아니라, N과 N을 오가는 다차원 네트워킹 게임이다.

삭제되면서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그것이 소멸된 게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여 새로운 포지션을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내가 삭제한 수많은 대상들.
그것이 현재 어느 시공간에 어떤 모습으로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지.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그것을 알게 해주는 좋은 도구가 블로그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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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씽 :: 2013/08/28 00:08

원씽 The One Thing
게리 켈러 & 제이 파파산 지음, 구세희 옮김/비즈니스북스


본질과 연결된 부분은 전체를 머금기 마련이다.

시간투자 대상의 중요성은 '그것이 나에게 있어 얼마나 본질적인 것인가'란 질문 앞에서 확연해진다.

부분이 전체와 맺는 관계의 퀄리티는 본질과의 연계성에 의해 좌우된다.

본질에서 멀어질수록 시간투자 대상은 분화되고 또 분화된다.

분화가 심화될수록 해야 할 것들의 리스트는 풍성해지고
그런 풍요에 본질은 가리워지며 뿌연 본질은 리스트를 더욱 분화시킨다.

분화가 왕성해지기 이전의 원형을 탐험해보자.
본질에서 멀어진 만큼 원형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장구해진다.  

수십, 수백 개로 이뤄진 TO DO LIST가 원형의 관점에선 단 1개로 압축되는 현상.
단 1개로 압축할 수 있다면 본질에 도달한 것이고 압축이 어렵다면 본질에 닿기가 어려운 것이다.

무작정 전개되는 분화는 본질로의 경로를 흐리게 만드는 방해꾼이지만,
체계적으로 통제되는 분화는 본질을 이해하는 좋은 도구로 작동한다.

원형이 무엇인지를 잘 인지하면서 수행하는 분화,
본질과의 연결점을 명확히 규정하고 진행되는 분화.
본질과 분화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뫼비우스의 띠를 형성한다.

TO DO LIST에서 ONE THING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
분화 속 본질, 본질 속 분화가 명징해지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전체를 머금은 디테일
티핑, 알고리즘
무식,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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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따까리 :: 2012/11/02 00:02

9월16일 일요일 제주에서 저녁 7시 대한항공편으로 김포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오후가 되면서 갑작스럽게 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대한항공 7시 비행편이 결항되었다는 문자를 받게 되었다. 헉, 오늘 반드시 서울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쫄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항공사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제주발 서울행 비행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시아나 항공에 제주발 포항행 6시 비행편이 있었다. 급한 마음에 잽싸게 결제를 했다. 포항에서 서울은 어떻게 가나란 고민도 살짝 있었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오후 3시에 택시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점점 날씨가 거칠어진다. 비바람은 물론이요 안개까지 짙게 드리워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더니 덜컥 아시아나 항공에서 문자가 온다. 6시 비행편 결항. 헉. 절망적 상황이다.

그래도 일단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각 항공사 카운터에 엄청 몰려 있다. 대한항공 카운터에 엄청난 줄이 형성되어 있다. 음.. 결국 못 가게 되나. 거의 포기하는 심정이 되었다. 일단 대기표를 받아 놓자는 마음에 줄을 서서 대기표를 받았다. 번호가 무려 623번이다. 휴.. 나한테 과연 차례가 올까. 에이. 맘 비우자.

그러고 시간이 흘러갔다. 차례로 대기 순번이 호출되었고 어느덧 400번대를 지나 500번대를 향해 대기번호가 소진되어간다. 어. 희망이 보이네. 좀더 기다리면 나한테도 콜이 오는 건가?  시간이 흘러갔고 이젠 500번대 후반대가 불려진다. 오호? 이거 될 것 같은데?  이야~ 이것 봐라~ 점점 흥이 나기 시작한다. 콧노래를 부르게 되고 몸이 들썩거려진다.

결국 내 번호가 불려졌고 난 6시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최근 들어, 아니 올해 들어 가장 기쁜 순간이 아닐까?

비행기에 오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감정은 이렇게도 상대적인 것이구나. 그냥 아무 일 없이 비행기에 올랐으면 그저 무덤덤하게 좌석에 앉아 아무 감흥 없이 비행을 했을 텐데 한따까리를 지대로 하니까 비행기에 올라타는 것 자체가 거대한 이벤트가 되는구나. 상대성이 감정상태를 이렇게나 좌지우지할 수 있다니. 감정을 어떻게 컨트롤하고 뇌에 어떤 데이터를 주입하느냐에 따라 나 자신을 심연의 바닥으로 침몰시킬 수도 하늘 높이 기뻐 날뛰게 할 수도 있는 거구나.

9월16일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 나의 감정들. 그 감정들을 되새기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어떤 가상현실 시나리오를 선물로 줄 수 있는지 그를 통해 나는 어떤 감흥 상태로 진입할 수 있는지를 설레는 마음으로 가늠해 보고 있다. 내가 앞으로 우연과 돌발에 의해 한따까리를 만나는데 그치지 않고 의도적으로 한따까리를 자유자재로 기획할 수 있게 된다면 9월16일의 에피소드가 큰 기여를 했음에 틀림 없다. ^^




PS. 관련 포스트
뇌 속여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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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1:21 | DEL

    Can you tell us more about this? I'd love to find out more details Read & Lead - 한따까리.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1:22 | DEL

    Hi there everyone, I am sure you will be enjoying here %title% by watching these funny video les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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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셈과 곱셈 :: 2012/08/01 00:01

딸내미 수학시험 답안지 포스트를 올리고 선물로 받은 귀한 댓글이다.

저는 초등학교 입학 전 쯤이었나 1학년 쯤에 구구단을 외운 기억이 있는데 초등학교 2학년 쯤에 구구단을 까먹은 기억이 있어요. 초등학교 저학년에 수에 관한 새로운 개념들을 배우기 때문에 헷갈리는 경우도 많을 거예요. 방학 동안에 노래 부르는 것처럼 리듬을 타면서 즐겁게 구구단을 외우면 쉽게 배울 것 같아요. 사람과 사탕으로 바꿔서 외워도 좋고요. 4x5= 친구 네 명에게 사탕 5개씩 주면 모두 몇 개일까? 손가락으로 세면서 천천히 더해봐!

아 그리고 구구단을 무작정 외우는 게 간단할 수도 있지만 저학년 아이들의 입장에선 적지 않은 공식을 외우는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2단은 앞에 수에 2를 더해가고 7단도 앞에 수에 다시 7를 더하는 더하기와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더 쉬울 것 같아요. 이렇게 이해한다면 구구단은 더 이상 헷갈리는 곱셈공식이 아니라 평범한 덧셈일 뿐인 것이죠


곱셈은 덧셈의 연장선에 존재한다.

곱셈은 덧셈 메커니즘에서 복제 및 증폭 기제가 작동할 때 발현된다.

덧셈만큼 간단한 게 어디 있을까 싶지만 덧셈은 모든 셈의 기저에 존재한다.

기저를 단단히 다져 놓고 기저 위에 증폭의 연결점을 쌓아가는 것.

생각의 확장, 인간의 확장은 덧셈에서 곱셈을 생성하는 것과 같다.

덧셈에서 곱셈을 생성하는 것 vs. 구구단을 외우는 것. ^^







PS. 관련 포스트
딸내미 수학시험 답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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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댁 | 2012/08/01 12:48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하하하!!
    따님이 벌써 구구단을..
    하긴 울 쩡으니도 분수에 나눗셈에... ㅜㅜ
    갈수록 애들이 너무 힘든 공부를 하는 것 같아요.
    건강조심하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2/08/01 21:30 | PERMALINK | EDIT/DEL

      정말 요즘 너무 더운 것 같네요. 더위에 수학까지. 첩첩산중입니다. ^^

  • BlogIcon 고구마77 | 2012/08/02 11:0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도 3학년이 되서야 구구단을 외웠슴다. 어머니가 1단 외울때마다 천원을 주신다는 말씀을 듣고야 다 외웠죠. 외적 보상의 성공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ㅋㅋ

    수학교육의 올바른 방법론은 '몸으로 직접 체감하게 한다' 입니다. 구구단은 완성된 표를 주기 전에 직접 덧셈으로 다 써보게 만들고, 피타고라스 정리 역시 공식을 알려주기 전에 그림을 그려서 변간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직접 유추하게 해보고, 경우의 수는 천단위던 만단위던 직접 종이에 다써보게 하는게 중요합니다.

    그 단순 무식한 짓을 해봐야 기호와 공식이 얼마나 대단한 발명품인지를 몸으로 깨닫죠. 아인슈타인이 유년기때 삼촌에게 '대수학(Algebra)'가 뭐냐고 물었더니 삼촌이 대수학은 게으름뱅이들이 만든 학문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매번 케이스마다 새로운 숫자로 처음부터 다시 계산하는게 아니라 기호를 이용해 추상화한 패턴의 최종형태, 즉 공식을 활용한다는 걸 이렇게 설명한 삼촌이 참 대단한듯하죠.ㅎㅎ

    문제는 아인슈타인처럼 그런걸 궁금하다 느낄만한 동기가 어떻게 발생하느냐 인듯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수학교육의 방법론은 그렇다쳐도 그 단순무식한 짓을 아이가 순순히 따라해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가 성공의 성패인듯하구요. 성공 요소에는 유적적 요인도 있는거 같아 일반화하기 어려운거 같습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구구단 사례처럼 외적 보상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ㅋㅋ



    요즘 저는 페북에 집중하고 있어서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렀네요. 꾸준히 활동하셔서 뭔지 모를 안도감같은게 듭니다. 그리고 요즘 제가 페북에서 재밌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예요. 영어공부하는 서비스인데, 반응이 꽤 좋습니다. 시간되실때 한번 써보세요. http://www.facebook.com/snsenglish 임다. ^~^

    • BlogIcon buckshot | 2012/08/04 18:08 | PERMALINK | EDIT/DEL

      영감을 자극하는 댓글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추상을 몸으로 체험하고 체험을 추상화하고 몸과 추상이 서로 대화할 때 몸은 더욱 몸스러워지고 추상은 더욱 고도화되는 것 같습니다.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멋진 페북 프로젝트를 하고 계시네요. 애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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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 2012/07/18 00:08

경계의 사전적 정의는 아래와 같다.
1.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
2. 지역이 구분되는 한계.

경계의 사전적 정의는 극복되어야 한다.

경계는 편의상 만들어진 가상의 설정이다.
경계를 구분의 용도로만 사용하면 경계의 반만 사용하는 것이다.
경계는 구분으로 시작되고 투과로 마무리된다.

Stock의 세상에선 구분이 유력한 수단이고
Flow의 세상에선 투과가 유력한 수단이다.

세상은 Stock과 Flow로 구성되어 있다.

Stock을 북마크하고 Flow를 팔로우한다.
북마크는 저장이 아니다. 한 순간을 포착해서 그것으로 전체 흐름을 암시하는 것이다.
팔로우는 구독이 아니다. 전체 흐름에 연결되어 그를 통해 한 순간을 암시하는 것이다.

경계를 만들고 경계를 투과하고 경계를 해체하고 또 다른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를 투과하고 그것을 해체하고.. 생성,투과,해체,생성,투과,해체.. 끝없는 순환고리 상의 쳇바퀴 돌기. 이는 시지프스 신화에 나오는 형벌을 연상케 한다. 산 위로 바위를 굴려서 올리면 바위는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다시 산 위로 그것을 끌어 올리면 또 다시 떨어지고 무한반복되는 행위. 어찌 보면 덧없는 행위의 연속이지만 사실 그 속에 만물 운용의 진리가 숨어 있다. 만물은 모두 시지프스의 행위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경계에 대한 벅샷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1. 사물이 진동하는 단위
2. 끊임없이 생성되고 투과되고 해체되어야 하는 영원의 과업이 행해지는 막

하루를 시작하는 질문, 나는 오늘 어떤 경계를 생성,투과,해체할 것인가?
하루를 마감하는 질문, 나는 오늘 어떤 경계를 생성,투과,해체했는가?

만물은 시지프스다.  광물도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모두 다. ^^







PS. 관련 포스트
시지프스의 링 - 영속발전의 플랫폼 (發展 & 發電)
분류, 막..
세포와 세포 사이
막, 도구, 의도, 양자
태그,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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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과 소멸 :: 2012/07/06 00:06

생성과 소멸은 원래 하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생성과 소멸은 다른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완전히 서로 반대되는 개념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뭔가를 생성한다는 것은 뭔가를 소멸시키는 것과 동일한 행위이다. 뭔가가 생성될 때는 반드시 뭔가가 소멸되게 되어 있다. 인간은 살아가지만 항상 스스로 죽음을 암시하고 죽음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살아가지만 죽어가는 것이다.

생성되는 모든 것은 소멸을 암시한 채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소멸되는 모든 것은 생성의 기억을 어딘가에 묻고 수면 아래로 사라진다.

글을 쓴다는 것은 뭔가를 수면 위로 올리고 뭔가를 수면 아래로 내리는 행위이다. 뭔가 올라온 것은 생성된 것처럼 보이고 뭔가 내려지는 것은 소멸되는 듯이 인식 너머로 사라진다. 조각을 한다는 것은 뭔가를 버리고 뭔가를 취하면서 형상을 만들어가는 행위이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조각품이 생성된 것이고 사람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버려진 조각물들이 소멸된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조각품이 소멸된 것이고 사람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버려진 조각물들이 생성된 것인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선 얼마든지 정반대의 구도가 나올 수 있다. 내가 글을 썼을 때 겉으로 보여지는 씌어진 문장들이 생성물인지 아니면 씌어지지 않고 머리 속을 맴돌다 사라지거나 폐기 처분된 개념들이 생성물인지 굳이 판단을 하고자 하면 아리송하다.

도대체 무엇이 생성되고 무엇이 소멸되는 것일까? 

생성과 소멸을 개념적으로 분리하고 서로 반대되는 개념으로 획정하는 한, 생성과 소멸에 대한 깊은 이해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생성에 내재한 소멸, 소멸에 내재한 생성을 들여다 보고 생성과 소멸이 만들어 가는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은 생성-소멸 하나됨의 에너지를 느끼려고 노력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방안이 아닐까 싶다.

어느 순간 생성과 소멸은 동전의 양면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완전히 서로 일치하는 개념인 것으로 이해되어 가고 있다.

생성과 소멸은 원래 하나였고 지금 이 순간도 역시 그러하다. ^^





PS. 관련 포스트
멍청한 이분법
정보의 분열, 행복과 욕심의 분리
거잠, 알고리즘
망각, 알고리즘
기억,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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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만화다. :: 2012/06/18 00:08

신의탑을 읽다가 느낀 점.

만화는 '칸'과 '사이'로 이뤄진다.

만화를 읽는 독자는 만화를 구성하는 수많은 '칸'들을 본다. 칸은 정지된 '상'이다. 정지된 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면서 flow를 표출하게 된다. 독자는 칸과 칸으로 이어지는 토막그림들을 보면서 칸과 칸 사이의 빈 공간을 스스로 메우면서 만화를 소비한다. 정지된 그림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상그림을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창출하면서 연속된 영상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나름 심대하다. 어디 만화만 그럴까.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만화의 '칸'과 '사이'처럼 작동한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텍스트도 만화와 같다. 독자는 글자와 글자로 이어지는 토막 텍스트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가상의 텍스트를 생성한다. 저자의 토막 글들과 독자가 생성하는 가상의 토막 글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연속된 스트림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독서다.

세상은 텍스트다. 세상을 구성하는 만물은 모두 텍스트이다. 사람은 칸과 칸 사이를 호흡하고 칸과 칸 사이를 걸어가면서 칸과 칸 사이에 숨겨진 코드들을 의식/무의식적으로 해석하고 반응한다. 사이는 일종의 진공이다. 진공은 텅 빈 공간으로 일축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진공은 우리 인지체계로 파악이 되지 않을 뿐 분명 뭔가를 함유하고 있고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다. 만물의 기본은 원자도 아니고 소립자도 아니다. 만물의 기본은 진공이다. 거대한 진공 속을 유동하는 칸들. 칸과 칸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진공은 만화 속에도, 텍스트 속에도 세상 속에도 존재한다. 진공의 색깔, 진공의 냄새, 진공의 소리를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은 끊임없이 진공과 대화하고 교감할 수 밖에 없다.

만화를 읽으면서 '사이'에 집중하는 경험. 사이를 보면서 칸을 지워나가는 경험. 사이를 들으면서 칸에 둔감해지는 경험. 사이를 관찰하면서 사이의 존재감을 느낄 때 칸은 파동이 되고 사이는 입자가 된다. 입자를 파동으로 보고 파동을 입자로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만화는 칸의 구성체가 아니라 칸,사이가 모두 가시화된 구성체가 되고 칸,사이가 모두 흐릿한 구성체가 된다.

만화를 보다가 별 생각을 다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만화는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매체임이 분명하다. 제약은 한계를 낳고 한계는 내공을 낳고 내공은 세계관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나 보다. 만화에 내재한 한계가 만화에 본질이 착상되는 것을 용이하게 했을 것이다. '사이'를 인지하게 해준 만화에게 감사를 느낀다. ^^




PS. 관련 포스트
신의 탑을 정주행하다
공간 지각력 = 공간 창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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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tore

    Tracked from toms store | 2013/06/13 10:56 | DEL

    Remarkable! Its really remarkable Read & Lead - 세상은 만화다., I have got much clear idea concerning from this article.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0:56 | DEL

    Hi there I am from Australia, this time I am watching this cooking related video at this %title%, I am in fact delighted and learning more from it. Thanks for 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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