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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운반 :: 2015/06/22 00:02

인간을
'자본을 실어 나르는 vehicle'로
간주해 볼 수도 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든, 적게 버는 사람이든
돈과 관련된 뭔가를 하는 사람은 자본을 실어 나르는 운반도구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다.

돈은 사람 안에 축적되지 않는다.
결국 사람으로부터 사람으로 돈은 이동한다.
끊임없이 유동하는 자본의 흐름 속에서
사람은 그저 컨테이너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자본을 끊임없이 어디론가 실어 나르면서
그런 행위를 하는 자신을 제대로 지각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계속 흐릿해져 갈 것이다. 존재가.

운반도구로서의 삶.
자본의 운반수단으로 작동하면서 정작 자신은 흐릿해져 가는 존재.

돈을 많이 벌어서 그걸 기뻐하고
돈을 못 벌어서 그걸 슬퍼하고
돈에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것은 '인간소외'를 몸소 실천하는 것일 텐데.

허상이 실체를 실어 나르면서
나는 실체다. 난 실체를 많이 갖고 있어서 좋다. 난 실체를 많이 갖고 있지 못해서 서글프다.
이렇게 얘기하면 허상은 더욱 허상으로서의 삶을 공고히 하는 것이겠다.

자본운반의 도구로서의 삶.
그 삶의 끝에서 그런 삶을 살았다는 것을 뒤늦게 인지하게 되면 얼마나 슬플까.

운반하면서 운반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로봇과도 같은 운반의 삶에 대해 '나'만의 시각을 견지하고
그 삶을 '나'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기만 해도
숨통은 조금이나마 트일 수 있을 듯 하다.
그렇지 않다면 운반도구로서의 삶이 너무 안타까우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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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 로봇 :: 2015/05/18 00:08

이런 얘길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주식투자를 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은 간단한 로직에 기반해서
주식투자가 자동으로 이뤄지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실제 투자에 적용하고 있는데 꾸준히 수익이 난다고 한다.

그 프로그램이 도대체 어떤 구조를 갖고 있길래 저절로(?) 수익이 나는 걸까?
라는 질문 보다는
인간의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에 투자에서 성공하기 힘든 거겠네
라는 느낌이 든다.

이런 식이라면..
적재적소에 프로그램을 짜놓고 그 프로그램이 이끄는 대로 나를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아니 나를 맡기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동안 신경을 완전히 끄고 있다가
가끔씩 확인만 하는 메커니즘도 나쁘지 않겠다.

주식투자 로봇
감정관리 로봇 (항상 어린아이처럼 요동치는 나의 감정을 유아기적 수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로봇)
의식수행 로봇 (반복하면 좋을 듯한 행동을 정기적으로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로봇)
정기검진 로봇 (블로그에 적어 놓은 나의 지향점을 내가 실행하는 지 검증하는 로봇)

내 상황과 취향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그것을 나의 친구봇처럼 만들어서 실행시켜 놓은 후
나는 뒷짐을 진 채 여행을 떠나면 되는 것 아니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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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이유 :: 2015/05/06 00:06

어떤 부정적 감정이 생겨날 때,
그 감정의 원천을 생각하다 보면 생겨난 부정적 감정이 사그러드는 것을 느낀다.

그건 마치 나를 작동시키는 상세설계서를 내가 들여다 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로봇이 자신의 작동을 규정한 설계서를 보는 순간이 도래할 때,
로봇은 어떤 기분이 들까?
그 설계도를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 할까?
그 설계도에 나와 있는 대로 계속 움직이고 싶을까?
설계도와 자신과의 연계고리에 대해서 어떤 대응을 하게 될까?

설계된 대로 움직여지는 로봇.
로봇이 설계도를 보게 되는 날.
그 날이 로봇에게 올까.

온다면 로봇은 어떻게 변해갈까.
오지 않는다면 로봇의 존재 이유는 설계도 그 자체가 되는 것일까.

설계도가 존재 이유라면
로봇은 설계도를 봐야 할까, 보지 말아야 할까.

감정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어처구니 없게도 단순한 메커니즘 설계에 의해
내가 농락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 저차원적인 메커니즘 만으로도 내가 충분히 작동될 수 있단 생각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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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해체 :: 2013/09/09 00:09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스쳐 지나게 되는 홈쇼핑 채널에서 지금 당장 이걸 사지 않으면 큰 손해라도 입을 것 같은 협박에 가까운 멘트가 난사되는 것을 보면서, 현재의 소중함을 생각한다. 홈쇼핑 사업에만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한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가. 또한, 그렇게도 소중한 나 자신의 현재가 자본의 욕망에 의해 얼마나 속절없이 유린당할 수 있는 상황이 소용돌이 치듯 범람하고 있음을 절감한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마시고 바로 구입하세요."

홈쇼핑에서 하는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흘리면 된다. 현재는 정말 소중한 것 맞다. 그래서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 순간을 음미하고 순간의 의미를 새겨야 한다. 하지만 순간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 상품구입은 아니란 얘기다. 결코 지금 그 상품을 구입할 이유는 없다. 그 상품이 없어서 나에게 해가 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대부분 그 순간을 넘기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게 된다.  이렇듯 상업주의는 대개 전반부는 너무나 맞는 얘기를, 후반부의 본론은 상업이기주의에 입각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흘려야 하는 메세지. 상업주의를 대할 때는 절반만 새겨 듣는 스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본은 항상 인간을 유혹한다. 유혹의 메세지는 달콤하다. 그 유혹의 메세지가 아주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고 절반은 맞는 전반부를 깔고 가기에 어리버리 유혹에 넘어가는 케이스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유혹의 구성은 나름 탄탄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약점 투성이지만 얼핏 보면 굉장히 매력적인 제안이다. 제안이 매력적이어서 자세히 살펴보는 수고를 생략하는 우를 범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덧 유혹에 넘어가 버린 나 자신을 뒤늦게야 깨닫지만, 이미 저지른 나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서글픈 기제가 뒤따르게 된다. 견고한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순간이다.

유혹에 대한 대응은 유혹 거절, 유혹 수용의 양 극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혹의 제안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은 받아들이고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버리는 스탠스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국 중요한 분기점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제안과 나를 소모시키려 하는 제안의 구분이다. 그렇게 하려면 유혹의 메세지를 조각조각 나의 취향에 맞게 해체하고 그 중에서 나에게 적절한 것만 선택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유혹을 해체하고 선택적 수용 태세로 대응하면 유혹을 당하면 당할수록 무기력해지기는 커녕 매우 강력한 생각과 행동의 어엿한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본의 유혹은 더 이상 나를 공격하고 전복시키는 파괴자가 아니라 나에게 유의미한 러닝과 선택적 거절의 참 맛을 느끼게 해주는 최고의 동반자로 수줍은 듯 포지셔닝하게 된다.

유혹을 해체해 보자. 원래 유혹의 의도는 나를 조각조각 해체하고 나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단하고 유린하는 것인데 오히려 그 해체 의도를 역으로 받아쳐보자.

즉, 유혹을 인간 취급해보자는 것이다.
나약한 인간봇처럼 말이다. ^^



PS. 관련 포스트
나를 찾아온 기적을 알아보기
현재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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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아크몬드 | 2013/09/09 09:1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순간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 상품구입은 아니란 얘기다. 결코 지금 그 상품을 구입할 이유는 없다. 그 상품이 없어서 나에게 해가 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대부분 그 순간을 넘기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게 된다." 공감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9/09 19:34 | PERMALINK | EDIT/DEL

      상업주의 메세지도 잘 필터링해서 부분적으로 수용하다 보면 꽤 유익하게 다가오는 것이 제법 있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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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로봇이 있으면 좋겠어요. :: 2013/07/24 00:04

우연히 롯데백화점을 들렀다가 '지금은 로봇시대!展'을 보게 되었다.



한 코너에 가보니 '내가 갖고 싶은 로봇, 발명하고 싶은 로봇'을 주제로 아이들이 포스트잇을 빼곡히 붙여놓은 게 있어서 한 번 쭉 훑어 보았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남자애들 패는 로봇, 강아지 로봇, 백점 맞는 로봇, 숙제해주는 로봇, 일기 대신 써주는 로봇, 공주 로봇, 왕자 로봇, 아무거나 다해주는 로봇, 뭐든지 다 되는 로봇, 힘들 때 달래주는 로봇, 내 말만 듣는 불사조 로봇, 시키는 대로 하는 로봇, 엄마 도와주는 로봇, 심부름 로봇, 청소 로봇, 자동차 로봇, 진료하는 로봇, 놀아주는 로봇, 아기 재워주는 로봇, 아이 돌봐주는 로봇, 안마를 해주는 로봇, 집안일 해주는 로봇 (빨래,청소,설거지), 책 읽어주는 로봇, 요리해주는 로봇, 학교가주는 로봇, 춤추는 로봇, 백점 맞게 해주는 로봇, 소원을 들어주는 로봇, 나를 예쁘게 만들고 숙제를 해주는 로봇, 도우미 로봇, 경비 로봇, 친구 로봇, 일을 도와주는 로봇, 목욕을 시켜주는 로봇, 특히 과학시험을 대신 봐주는 로봇, 미술 로봇, 우리 가족을 즐겁고 건강하게 해주는 로봇, OOO 때리는 로봇, 악당을 물리치는 로봇, 도라에몽 같은 것


내게 필요한 로봇은 뭘까?
나는 누구에게 어떤 로봇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일까?
세상은 봇을 필요로 하고 스스로 봇이 되는 '봇 월드'가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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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설정의 함정 :: 2013/06/07 00:07

점을 보러 가는 자는 '점보기'라는 설정에 함몰되기 쉽다. 점을 보러 가는 상황 자체가 점쟁이의 말에 넘어갈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뭔가에 의존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점쟁이가 점을 잘 맞출 수 있는 강력한 사전 설정인 것이다. 이미 수비벽이 허물어진 상황인데 골잡이가 골을 펑펑 터뜨리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행복도 비슷하다. "나는 행복한가?"란 질문은 이미 나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란 폭력적 가정에 기반하기 마련이다. 질문 자체가 자신의 현 상황을 비하하는 설정인 것이다. 그런 설정의 함정에 빠진 상태에서 질문을 하게 되면 결과는 매우 진부한 답변을 산출할 수 밖에 없다.

힐링도 비슷하다. "나는 힐링이 필요해"란 말 속엔 힐링산업의 컨트롤에 자신을 내맡기는 힐링봇의 나약한 스탠스가 설정되어 있다.  "나는 힐링이 필요해"는 힐링산업의 수익 극대화로 소비자들을 휘몰아가는 일종의 주술이 아닐까?


힐링의 대상이 무엇인가?  인간의 불안?  그게 힐링산업의 요법으로 해결이 될 수 있을까?  이미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자에게 상업적 힐링 처방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힐링 처방을 받아도 그 때뿐이지 이윽고 다시 힐링 약이 필요한 상황에 빠질 텐데 말이다. 희미해져 가는 자아 현상을 처방하려면 나를 복원할 것을 결단하고 실행해야지 어설픈 힐링 요법으로 이슈를 해결할 수는 없다.

지친 몸과 마음을 섣불리 힐링 비즈니스의 처방에 의존하기 보단 "왜 지치는가?"에 대해 먼저 생각을 해봐야 한다. 지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응시하고 어떻게 하면 덜 지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힐링을 한다는 건 끝없는 힐링의 무한루프 속에서 속절없이 시간을 흘려 보내겠다는 결단을 하는 것이다.

병은 약의 BM이다. 병주고 약주고, 그런데 약은 잘 듣지 않고. 그게 '병-약' BM의 핵심이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잘 듣지 않는다는 건 근본적인 처방 없이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힐링 산업은 계속 변죽을 울리면서 발전을 거듭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변죽을 울려야 BM의 지속성이 확보되니까.

행복의 구조, 힐링의 구조에 대해 생각해 보자.

파랑새가 옆에 있는데도 머나먼 곳으로 파랑새를 찾아 떠나고 싶어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처해 있는 행복의 구조 아닐까?  어떤 행복의 구조를 선택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행복을 획득하기가 어려운 구조 속에 놓일 것인가, 아니면 행복을 수시로 맛볼 수 있는 구조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플레이할 것인가?

힐링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힐링 처방을 권유받고 그에 따른 처방전을 수행하고 또 다시 힐링에 굶주리게 되는 영원한 힐링 환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힐링 산업이 권장하는 영원한 환자 모드에서 빠져 나와 상업적 힐링의 손아귀를 비웃을 수 있는 자체 힐링 마스터가 될 것인가?

설정 자체가 함정이다. 설정의 함정에 빠지면 그 상태로 게임은 이미 끝나 버린다. 게임이 끝난 상태에서 게임을 지속하려 하지 말고 게임이 끝나기 전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서 설정의 함정을 직시해야 한다. 설정 자체를 판단하고 어이없는 설정의 늪에 빠지려는 발을 잽싸게 빼낼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행복에 대해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힐링의 함정에 빠질 일은 좀처럼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

행복 현재

"나는 지금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은가?"라고 질문하지 않고 "나는 지금 어떤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즉,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떤 행복으로 얼마나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란 얘기다. 누굴 칭찬할 때 구체적으로 칭찬해야 칭찬의 진정성이 살아나듯, 행복도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행복의 진정성이 생성된다. 나의 현실을 어떤 행복으로 실감나게 정의할 수 있는가?




PS. 관련 포스트
행복 현재
설정 자체가 함정이다.
병과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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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이문연 | 2013/06/07 09: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행복도 구체적으로 정의해야한다는 말 공감됩니다. 잘 읽고 갑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3/06/07 09:58 | PERMALINK | EDIT/DEL

      질문과 정의만 잘해도 참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더러운곰 | 2013/09/02 12: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나는 지금 어떤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 감사할것이 정말 많아요. 항상 누군가로부터 보호받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성인이 되기전에는 부모님, 지금은 대학 이라는 울타리에서 도시농업을 위해 공부하는 내 자신을 보고있으면 얼마나 많은 것을 받으며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는지 느낍니다. 좋은글 읽고 갑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9/02 19:28 | PERMALINK | EDIT/DEL

      감사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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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화 :: 2013/05/01 00:01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는 강력한 중력이다.  세상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이 상품화의 물결 속에 휩쓸려 간다. 예전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돈 한 푼 안들이고 맘껏 뛰어 놀았던 기억인데 요즘 아이들은 뭔가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돈을 요구하고 있고 우린 지갑을 어리버리 열리면서 수시로 새어나가는 돈의 흐름 속에서 쩐봇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상품화란 이름의 중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동하는 가장 강력한 힘 중의 하나다.

어떤 개념이나 단어가 상품화되면 기존의 의미는 희석되고 상품화를 중심으로 의미의 재구성이 일어나면서 단어는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단어에 상품화된 욕망이 집결하면서 단어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고 사람들을 상품화 알고리즘 속으로 휘몰고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상품화 개념 중의 하나가 공부이다. 공부는 상품화 차원에서 철저히 재단한 개념 중의 하나다. 공부라는 멋진 단어가 출세와 성공을 위한 학창 시절의 고된 훈련 과정으로 변질되면서 공부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고 강력한 성공 수단인 공부의 주위엔 쩐을 챙기기 위한 거대한 비즈니스 모델이 난립하게 되었다. 평생을 두고 실행해도 가슴 설레기에 충분한 완소 개념 하나가 상품화의 표적이 되는 순간 기괴한 형체로 변신한 채 자본과 손을 굳게 잡고 상품화의 길을 거침 없이 달려 왔고 욕망과 BM의 찰떡 궁합 속에 상품화 개념의 베스트 성공 사례로 자리잡았다.


운동도 상당히 상품화된 상황에 놓여 있다.  그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모습으로 운동할 수 있으면 되는 건데 운동이 자본과 결합하면서 "운동은 이런 모습으로 이런 곳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에 대한 팬시한 상이 형성되었고 그 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운동하지 않으면 운동한 것 같지 않은 이상한 느낌마저 생기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명백히 운동했는데 운동한 것 같지 않고 자본이 규정한 운동 방식을 따라야 운동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면 과연 진정한 운동은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가 운동이란 단어를 언급할 때 머리 속에 떠오르는 정형화된 상이 존재하는 것. 그 상이 철저히 외부로부터 주입된 것이고 그 상을 만들어내고 그 상을 통해 돈을 버는 비즈니스가 존재하는 것. 운동은 제대로 상품화된 개념이라 할 수 있겠다.

웰빙에 이어 힐링도 상품화의 경로에 들어선 것 같다. 힐링이 필요한 상황을 규정하고 그런 상황에 놓이면 힐링을 받아야 한다는 개념이 생겨났다. 마치 증상이 규정되면서 시장에 약이 등장하듯 말이다. (약이 등장하면서 증상이 가시화된다고 볼 수도 있다. ^^)  문제나 병을 자극적인 상으로 구현하고 사람들의 뇌 속에 주입시킨 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과 약을 팔면서 그것을 복용했을 때 얻게 될 모습을 화려한 상으로 그려서 사람들의 뇌 속에 밀어 넣고 증폭시키는 것.

우리가 접하는 개념과 단어들은 상품화에 의해 잠식되어 있거나 서서히 잠식되어 가고 있다. 우린 순박하고 날 것에 가까운 개념을 접하기 보다는 철저히 돈스럽게 포장된 개념에 경도되고 유린된다. 돈 냄새를 발라내고 당초의 개념을 복원하는 복원사의 면모를 우린 획득해야 한다.  미술 복원사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상품화로 오염된 개념의 원형을 복구하는 과정이야말로 지상 최고의 예술이 아닐까? ^^



PS. 관련 포스트
가격결정
가격 제거
샌지와 빵집주인
동기, 알고리즘
가격,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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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

    Tracked from toms s | 2013/06/13 10:49 | DEL

    This web site Read & Lead - 상품화gives fastidious quality YouTube videos; I always download the dance contest show video clips from this web site.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0:49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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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과 기생 사이 :: 2013/04/01 00:01

정신기생체
콜린 윌슨 지음, 김상훈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나는 과연 온전히 하나인가?  내 안에서 상반되는 2가지 생각이 서로 다투고 갈등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에 홀린 듯이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고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을 일삼고.  굳이 소설가적, SF적 상상력이 없어도 정신기생체란 말은 그닥 황당한 개념은 아닌 것 같다. 정말 내 안에 뭔가가 기생하면서 나를 끊임 없이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가끔 드는 것이 사실이니까.

만약 내 정신 속에 뭔가가 정말 기생체의 형태로 존재한다면, 그건 나를 공격하는 적의 면모와 나 자신이란 자아의 면모를 모두 갖고 있는 것이다. 완전히 외부에서 내 안으로 유입된 유해하기만 한 존재라면 어떻게든 박멸하는 것이 답이겠으나 정신 기생체는 그렇게 무작정 적대적 대응을 하기만 해선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힐 때, 부정적인 감정에 함몰되어 무기력해질 때.. 기생체에 의해 유린당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론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메세지가 나에게 전해지는 것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겠다. 즉, 모든 감정을 일종의 자아 분열로 볼 수 있고 다양한 감정을 다양한 자아의 분열로 여기고 각각의 분열된 자아가 나에게 주는 느낌을 특정한 지향을 지닌 메세지라고 해석한다면 방향성은 자명해질 수 있다. 불안이란 감정이 생긴다면, 나는 나로부터 분열된 '불안' 자아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를 해석하고 불안 자아와 대화하면서 나로부터 분열된 자아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겠다. 그건 기생체라기 보다는 공생체에 가깝다고 봐야겠고, 나에게 공생적 메세지를 자신 만의 언어와 암호 형태로 나에게 발신하는 것이고 메세지를 수신한 나는 그 메세지에 적절하게 대응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메세지가 나에게 도달했는데 그 메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갈팡지팡, 좌충우돌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분열된 자아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생의 의도로 보낸 메세지를 기생으로 오인하는 것이고 공생체를 기생체로 대우하거나 존재 자체를 인지 못하고 자아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면 나에게 보내진 메세지는 공중에 붕 뜬 채 갈 곳을 몰라 방황하게 되고 메세지를 받지 못한 나는 그로 인한 불이익을 어떤 형태로든 받게 된다.  

만물은 메세지이다.
나는 분열을 거듭하는 역동적 자아이고,
분열된 자아는 끊임 없이 메세지를 나에게 발신한다.

나는 메세지이자,
메세지 발신자이면서
메세지 수신자이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분열된 자아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데만 평생이 소요된다.
분열된 자아와 어떻게 효과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친밀하게 소통할 것인가?

우연히 제목을 접하게 된 '정신기생체'란 책.
그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 책의 제목 하나를 갖고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어서 즐겁다. ^^



PS. 관련 포스트
만물은 메시지다.
폰봇
맘봇
고수,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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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1:15 | DEL

    If any one desires to be a successful blogger, then he/she must look at this paragraph Read & Lead - 공생과 기생 사이, as it contains al} methods related to that.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1:15 | DEL

    I was gone to convey my little brother, that he should also visit this webpage on regular basis to take updated from latest gossip Read & Lead - 공생과 기생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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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예기치 않은 보상 :: 2013/01/23 00:03

나는 체중 관리를 위해 아침,점심은 마음껏 먹고 저녁은 야채 위주로 먹는다. 파리바게뜨의 샐러드가 맛도 괜찮고 양도 적당해서 매일 저녁에 파리바게뜨 샐러드를 즐겨 먹곤 한다.

오늘 아침도(2012년 12월5일) 출근 길에 파리바게뜨 매장에 들른다. 저녁에 먹을 샐러드 2개, 두유를 사기 위해서. 내가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사장님이 황급히 카운터 쪽으로 달려가신다. "고객님께 드릴 샐러드 언제 나와요? 5분 안에 나올 수 있게 빨리 만들어 주세요!" 자리에 앉아 샐러드가 나오길 기다리는데 사장님께서 커피 한 잔을 그냥 주신다. 커피를 원체 좋아하는데다 선물로 주시니 깜놀 & 감사하면서 맛있게 마셨다. 샐러드가 생각보다 금방 나와서 커피를 다 못 마시고 나오려고 하니까 커피를 테이크아웃 컵에 담아주신다.

나의 반복된 소비행동은 비즈니스 입장에선 매우 작지만 나름 안정적인 수익원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나는 그저 나의 의도에 의해서 파리바게뜨의 샐러드를 매일 사먹지만 파리바게뜨 점주의 입장에선 매일 매출을 올려주는 나와 같은 고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자주 파리바게뜨의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을 위해 해피포인트를 적립해 주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가는 해피포인트는 파리바게뜨 매장을 계속 방문할 동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의 경험은 그런 일반적인 경험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흔하게 생각할 수 있고 이미 수많은 매장에서 체계화된 적립 포인트 혜택이 아니라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보상을 받게 되니 나에게 가해진 긍정적 임팩트는 나름 묵직했다. 커피 한 잔을 받는 순간,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엄청 시달리면서 쌓인 피로가 한 방에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루를 여는 아침에 묵직하게 쌓인 피로가 커피 한 잔으로 깔끔하게 풀리는 경험. 나의 건강을 위해 들렀던 파리바게뜨 매장이 이젠 건강의 수단을 넘어 고마움과 친근함이 느껴지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고객 로열티, lock-in 지수가 급상승한 오늘 아침이다.

나의 행동이 반복되는 지점에서
나에게 예기치 않은 보상이 가해진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보상을 활동성 높은 고객에게 선사하는 것.
마케팅 관점에서나 CS 관점에서나 매우 중요한 테마일 수 밖에 없다. ^^





PS. 관련 포스트
생각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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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봇 :: 2013/01/18 00:08

바야흐로 앱의 범람 시대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재기 발랄한 수많은 앱들을 보면서 그 앱을 만들어 내기 위해 앱의 컨셉과 전략, 유저 경험의 흐름 등을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 틀림없을 앱 구현자들의 아이디어 퍼포먼스에 감탄을 하게 되기도 하고 그 중에 어떤 앱에는 직접 나의 시간을 투입하여 앱이 제공하는 다양한 재미들을 직접 소비하게 되기도 한다.

하나의 앱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공력을 쏟아 부어 앱을 형상화시켜 나가는 과정은 현대 사회가 만들어내고 있는 신 풍속도가 아닐까 싶다. 그야말로 아이디어 하나로 사업을 일으키고 강력한 생각이 소비자의 거대한 추종을 이끌어내는 신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하는 힘을 갖고 있는 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매력적인 환경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앱의 범람은 과연 앱 만드는 자들에게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일까?  앱을 소비하는 자에게 앱의 범람이 주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앱의 범람은 분명히 소비자들에게 명확한 메세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앱이 만들어지는 과정, 만들어진 앱이 소비자의 시간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 보자. 앱을 만든다는 건 앱에 마음을 담는 것이다. 앱을 소비한다는 건 앱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앱의 생산과 소비는 모두 앱에 마음을 주는 것이다.

앱을 생산하는 자는 앱에 마음을 흠뻑 빼앗긴다. 하지만, 앱이 소비되는 과정에서 생산자는 소비자가 앱에 빼앗기는 마음으로 자신의 빼앗긴 마음을 보상받는다. 앱을 생산하기 위해 마음을 충분히 주었더라도 그것을 소비자로부터 회수할 기회를 부여 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앱의 소비자는 어떨까? 앱을 소비하는 것은 그저 마음을 앱에 빼앗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그닥 의미도 없는 기계적 손가락질을 반복하게 만드는 앱이라면 앱에 의해 로봇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고 그런 빼앗김이 지속되다 보면 앱 소비자의 마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황폐해져 갈 수도 있다. 물론 그 황폐함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긴 하지만 말이다.

아이디어 하나로 앱을 만드는 생각의 힘 시대이다.
근데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야 한다. 아이디어 하나로 앱을 만들지만 거기엔 나름 상당한 공수가 들어간다. 하지만, 앱의 생산과 소비에 수반되는 마음 빼앗김 자체에 집중해보자. 결국 '마음'이 중요하다면, 마음 자체에 집중하고 마음 자체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가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멋진 앱을 만드는 것은 앱 전문가의 몫이겠지만, 멋진 마음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역할 아닐까?

앱을 갖고 노는 것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그 앱들의 컨셉을 마음 수양에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앱에게 맘을 빼앗기지 말고 앱을 관찰하며 맘을 닦는 것. 그게 스마트폰 시대를 살아가는 자의 자세가 아닐까?  폰봇으로 전락한 채 폰에 영혼을 빼앗긴 듯 어리버리 살아가지 말고 맘봇이 되어 나의 마음을 가꾸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제부턴
폰에 마음을 빼앗기고, 앱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내 마음에 마음을 빼앗겨 보자. 맘에 맘을 빼앗긴 맘봇이 되어보자. ^^



PS. 관련 포스트
폰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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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봇 :: 2012/12/21 00:01

상품과 서비스의 대히트는 그것을 소비하는 자를 봇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상품/서비스의 거대한 흥함과 소비자의 거대한 봇화. 소비자를 봇으로 만드는 상품/서비스의 힘이 거세질수록 소비자들은 봇으로의 생활에 푹 젖어만 간다. 봇화 공격에 취약해져만 가는 소비자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주위에서 너도 나도 없이 저마다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 보며 뭔가에 열중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카톡,게임,동영상 등을 하면서 눈이 빠져라 스마트폰에 주의력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지하철 전체가 거대한 폰봇의 집합공간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카카오톡,게임,동영상은 스마트폰에게 피쳐폰에게 우월감을 과시할 수 있는 '스마트폰 만의 존재 이유'를 부여했고 스마트폰은 소비자들을 폰봇의 세계로 인도했다. 스마트폰을 손에 넣는 순간, 폰 유저는 폰을 사용하는 폰 유저의 우아함을 잃어버린 채 폰에 기계적으로 몰입하고 폰과 기계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폰봇이 되어 버린다. 나도 모르게 폰에  손이 가고 나도 모르게 폰에 열중하는 폰봇.

폰으로 카카오톡을 하는 톡봇
폰으로 게임을 하는 겜봇
폰으로 동영상을 감상하는 영상봇
폰으로 뉴스를 보는 뉴스봇
폰으로 페이스북,트위터를 하는 페북봇/트윗봇

스마트폰은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다. 수많은 스마트폰 유저를 폰봇으로 만들어 간다는 것은 대단한 업적임에 틀림없다. 멀쩡한(?) 사람을, 소비자를 일개 봇으로 전락시키고 수많은 봇들로부터 수익을 향유하는 것. 비즈니스 입장에선 최고의 판타지 아닌가? ^^

스마트폰이 사람 사는 인간 공간을 봇화시켜 나가는 광경은 매우 인상적이다.  결국 전 국민의 폰봇화가 최종 destination인 것인가?  오늘도 나는 폰봇들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 속에서 폰봇들의 기계적인 폰질을 경이적인 자세로 바라보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을 닮은, 인간을 능가하는 사이보그가 탄생하는 미래가 도래하기 전에 인간이 스스로 기계가 되어가고 있다. 공간을 가득 메워 나가는 폰봇들의 기계적 몸짓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광경인 듯 싶다. 이런 놀라운 장관을 목격하게 해주는 스마트폰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




PS. 관련 포스트
소셜 네트워크와 창의력
떼소비와 머나먼 C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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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세터 :: 2012/12/19 00:09

남들이 다 보는 영화
남들이 다 듣는 음악
남들이 다 사는 상품
남들이 다 이용하는 서비스
남들이 다 가는 장소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나도 하는 떼소비 속에는 대중 속에 편입되었다는 안도감이 깃들어 있는 한 편, 대중 속에서 나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는 존재흐릿감이 존재한다. 나만의 취향, 나만의 스타일을 갈고 닦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어리버리 떼소비의 거대한 군무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쉽다.

나만 보는 영화, 나만 듣는 음악, 나만 사는 상품, 나만 이용하는 서비스, 나만 가는 장소.

나만 소비할 수 있는 뭔가가 많이 있다면 나는 나를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남들과 다른 나가 되기 위해선 내 안에 '다름'을 향한 지향이 있어야 하고 내 밖에 나의 '다름' 지향을 충족시켜줄 대상이 있어야 한다. 인디영화, 인디음악, 인디상품, 인디서비스, 인디장소,.. 대상의 인디화, 인디의 다변화가 일어나면 날수록 나는 '다름'을 다채롭게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인디 놀이를 하면 떼소비에 젖어 있던 무뎌진 감각세포가 '나' 지향적으로 다듬어지게 된다.  독자적 소비, 주도적 소비를 하는 자들이 전개하는 인디 놀이 속에는 트렌드세팅의 단초가 숨어 있기 마련이다. 떼소비를 겨냥한 공장생산 상품 속에는 영혼이 없다. 영혼이 없는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몸짓엔 영혼이 없다. 트렌드세팅은 이제 더 이상 top down 방식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다름'을 추구하는 수많은 인디 소비자들, 인디 퍼포머들의 몸짓 속에서 트렌드세팅이 얼마든지 생성될 수 있다. 그들은 공장생산의 덧없음에서 멀어져 있는 자들이다. 공장생산 메커니즘에 중독된 떼소비 군무와 거리를 분명히 하고 나만의 사고/행동/소비를 하는 인디 피플들의 합이 진정한 트렌드세터 집단인 것이다.

쏟아지는 공장생산 상품/서비스의 유혹에서 온전히 자유롭긴 어렵다. 하지만, 떼소비에만 젖어 살아가는 소비 봇으로만 살아가기엔 인생이 아깝다. 트렌드는 트렌드세터라는 역할을 가진 특권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소비자들은 모두 트렌드세터가 될 자질과 기회를 갖고 있다. 남들과 다른 나의 취향을 날카롭게 성장시켜 나가는 인디 놀이를 통해 소비 봇들의 거대한 군무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



PS. 관련 포스트
공장생산인간
떼소비와 머나먼 CRM
Detail = Remix Wetail (디테일의 힘: 롱테일 to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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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12/19 01:38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남들과의 '다름'을 넘어 '나다움'을 추구함으로서 좌/우/중의 빅3를 넘어서는 인문-독파(獨波)로 성장하는 것, 그래서 내 취향의 힘이 단지 개인적 경계 뿐 아니라 사회적 지평과 역사적 차원으로 확장되어 가는 것. 컬처리스트로서 제 꿈이기에, 벅샷님의 포스트로부터 큰 공감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2/12/19 19:25 | PERMALINK | EDIT/DEL

      떼봇화에 대한 작은 저항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 rodge | 2012/12/19 09:0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작년 대기업의 공모전 타이틀중 하나로 트랜스새터 라는 네이밍이 있었던게 기억나네요.
    어떻게든 참여하고 싶어, 마치 떼소비에 뒤쳐지지 않았다는걸 증명하려 노력했던것만 같아 부끄럽네요.
    저만이 소비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었는지...생각하게 해주시네요 고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12/19 19:25 | PERMALINK | EDIT/DEL

      '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놀이처럼 즐거운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

  • wendy | 2012/12/27 09:57 | PERMALINK | EDIT/DEL | REPLY

    트렌드는 특권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선언해주심에 '자유'를 얻어갑니다! ^^ 틈만 나면 인디놀이에 심취하고 싶었던 '욕망'을 이 곳에서 칭찬받아 가는 것 같아 든든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12/27 19:53 | PERMALINK | EDIT/DEL

      결국 모든 것은 '나'다운 것이 무엇인가로 귀결되는 것이고, 그의 핵심은 나만의 인디놀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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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21 00:01

트위터를 보다 보면 재미있는 계정이 눈에 띈다.
들뢰즈봇, 칸트봇, 에리히프롬 봇, 지젝봇, 라깡봇, 노자봇, 쇼펜하우어봇, 칼융봇,,
수많은 철학자 봇이 무수한 철학자들의 커멘트를 충실히 트윗 타임라인에 등장시킨다.

봇의 글을 무심코 보고 있으며 묘한 기분이 든다.  1분 이상 읽기 어려운 철학자들의 난해한 문장들. 하지만 철학 봇의 글은 타임라인에 뜬 글을 살짝 읽어보면 되니까 부담이 없다. 철학 봇은 대중과 철학과의 거리를 좁혀주는 철학 대중화의 선봉장인가? ^^

그런데..
철학 봇을 10년 정도 운영하면 어떻게 될까? 특정 철학자의 글을 꾸준히 읽고 음미하고 트윗에 올리다 보면 철학자의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글을 구성하는 개념들이 익숙해지고 그 개념들로 구성되는 세계관이 구체적인 형상으로 다가오면서 텍스트 속에 숨어 있는 의미들이 드러나면서 자연스럽게 텍스트의 의도와 본질에 접속하게 되지 않을까?  특정 철학자의 세계 속에 온전히 들어가게 되면 그 철학자와 봇 운영자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어느덧 봇 운영자는 그 철학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

봇을 하면서 봇 대상의 패턴을 읽고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다면 결국 봇은 봇 대상이 되어간다. 나도 사람이든 사물이든 하나의 대상을 선정해서 봇이 되는 놀이를 해볼까나?

사물의 마음 속, 타인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그 사물의, 그 사람의 패턴을 읽고 예측하는 봇 놀이.

인간은 패턴의 집합체이다. 무의식적으로 패턴을 갖고 논다. 그걸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올려 제대로 놀아볼 수 있다면 인간 본질 속을 유영하는 우아함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



PS. 관련 포스트
패턴, 알고리즘
패턴과 아바타
로봇,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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