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에 해당되는 글 9건

진짜 본능 :: 2019/07/10 00:00

최강의 인생
데이브 아스프리 지음, 신솔잎 옮김/비즈니스북스

나의 본능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고 있다

어설프게 이해된 본능
그건 나의 본능이 아니다

진짜 나의 모습을 모르고 있는 것인데..

나의 진짜 본능이 현재 가리워져 있는 것이고
표면적인 본능이 진짜를 가리고 있는 지금

난 위장된 본능 속에 숨어 있는
나의 진짜 본능을 파헤쳐 나가야 한다

그걸 마주하는 날
그 날이 진정 내가 태어난 날이 될 것이다 ㅎ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2485
NAME PASSWORD HOMEPAGE

필사 본능 :: 2019/06/19 00:09

종이책에그어진 밑줄을 e북에 그대로 옮겨 놓고 싶은
筆寫(필사)의 마음

그건 유전자가 지닌 본능 만큼이나
나에게 있어 강력한 DNA인 것 같다.

복제 본능..

내가 해온 블로그도
결국 내 마음의 필사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았던가? ㅎ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2476
NAME PASSWORD HOMEPAGE

검색 로봇 :: 2017/01/23 00:03

가끔 생각과 행동을 멈추고 뇌를 응시하면
나의 뇌라는 게 참 재미있게 작동하는 것 같다.

끊임없이 뭔가를 찾고 있는 검색 로봇 같다.
뭘 찾고 있는가라고 물어보면 나의 뇌는 이렇게 답한다.
"난 불안을 찾고 있어"

왜 그걸 찾느냐고 묻는다. 그럼 나의 뇌는 이렇게 답한다.
"그냥.. 불안을 찾는 것 자체가 나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싶기도 해."

불안을 찾으면 편안해지는가라고 묻는다.
"아니, 더 불안해져."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묻는다.
"그게 내가 살아있는 증거자나." ㅋㅋ"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불안을 찾는다고?
불안 말고 다른 건 없어?

"글쎄, 그것만큼 절실하게 찾고 또 찾아도 갈증이 심한 게 있을까?"

이런 대화를 하다 보면,
'불안'이 편안해진다.

불안 자체가 목적이라면
불안해질 수 있는 이유를 찾는 게 내 뇌의 본능이라면

불안을 검색하는 로봇과도 같은 내 뇌에 대해서
가끔 말을 걸 수 있는 나라면

불안을 검색하는 과정 속에서
그 로봇과도 같은 행위를 내가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이제 내 뇌가 찾아다니는 불안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겠다.

머리 속에 검색 로봇 하나가 들어 앉아서 끊임없이 검색을 해대는 상황.
그 상황을 들여다 보면서 나는 나를 아주 조금씩 알아나가는 것 같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2099
NAME PASSWORD HOMEPAGE

개악의 힘 :: 2013/03/15 00:05

리더는 조직을 좋게 만들 힘은 그닥 갖고 있지 못하다. 조직은 조직원들이 좋게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하지만 리더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조직을 나쁘게 만드는 힘. 그 힘이 너무도 크기에 리더란 위치는 매우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리더는 자신이 뭔가를 해서 조직을 좋게 만들려는 의지 보다는 내 자신이 하는 일들이 조직에 어떤 나쁜 임팩트를 미치는지에 대해 매우 민감해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좋게 만들려는 의도는 환상에 가까운 것이다.

문명도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자 문명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구르고 굴러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문명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수많은 개악들이 얼마나 많은지. 뭔가를 좋게 만들려는 의지로 구현한 것들이 결국 이전보다 개선한 것이 그닥 없는 허무한 결과들을 낳은 케이스들이 대부분이 아니던가. 문명은 진보로 포장된 퇴행일 것이고 문명의 발전은 '오래된 미래'를 뒤늦게야 이해해 나가는 멋쩍은 뒷북형 학습 해프닝에 불과한 듯하다.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의지는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의도와는 달리 질서는 그리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무질서가 끊임없이 창발한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풍선효과와도 같아서 한 쪽을 누르면 다른 한 쪽이 튀어 나오는 현상의 무한 반복일 뿐이고 그런 쳇바퀴 속에서 뭔가를 했다는 자위는 공허함만을 더할 뿐이다.

개악은 왜 자행되는가?

개선을 향한 인간의 맹목적 본능이 낳은 환상이 인간의 감각기관을 마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개선보단 개악을, 진보보단 퇴보를, 질서보다는 무질서를 낳는 경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좀처럼 인정하지 못하고 그저 생존만을 위한 몸부림으로 생 전체를 일관하는 유전자와 하등 다를 것 없는 개선과 진보를 향한 기계적 몸부림을 아무런 자기비판적 태도 없이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기계적 행동은 유전자 속에 깊숙이 프로그래밍된 유전형질과도 같이 인간의 몸과 마음 속에 견고하게 장착된 채 인간을 유린하고 있는 모습.

개악의 중력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

우선, 맹목적 본능의 기계적 진행을 멈춰야 한다. 본능의 움직임을 느끼고 그것을 제어할 수 있어야 개악과 정면으로 맞설 수가 있다. 어리버리 있다간 본능은 저만치 앞서 달려나가기 마련이다. 이미 달리기 시작한 본능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본능이 본격적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감지하고 본능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일단 말을 걸게 되면 본능은 주춤할 수 밖에 없다. 본능이 주춤거리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맹목적 개악의 몸짓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나의 행동이 개악과 개선 중 어느 쪽으로 좀 더 기울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대개 개선 만을 바라보고 싶어하는 본능 때문에 개악의 효과를 직시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개악이 개선을 압도하기 쉽다는 인간 존재의 미약함을 확실하게 인정하는 순간 개악과 개선을 구분할 수 있는 중립적 판단 능력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사실, 개선과 개악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개악을 덜 했는가의 문제라고 깨끗이 상황을 시인하고 나면 판단력은 명징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악을 자제하려는 마음가짐을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뭔가를 하면 할수록 나빠지기 쉽다는 것을 몸과 마음에 프로그래밍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이 태어날 때 부여된 프로그램만 평생 죽어라 수행하다가 떠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너무 허무하다. 자신에게 주입된 프로그램 말고 자신이 스스로 주입한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로봇같이 흘러가기 쉬운 기계적 인간 삶에 청량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만 어이없는 뇌 놀음에 평생 유린당하는 바보 같은 삶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나의 개악 능력을 시인하고 그것을 인지하고 자제할 수 있는 삶을 지향하 수 있어야 한다. 태어나서 살아가다 뭔가를 바꾸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보람 있었다고 자위하는 환상 속 삶은 지양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개선의 포스가 아니라 개악의 포스이다. 그 포스를 마음대로 휘두르며 끊임없이 세상을 개악할 것인가? 아님 그 포스를 내가 새롭게 창제한 나만의 프로그래밍 기법으로 현명하게 조종할 것인가? ^^




PS. 관련 포스트
무위, 알고리즘
질서,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474
NAME PASSWORD HOMEPAGE

뇌 속여먹기 :: 2012/10/22 00:02

뇌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뇌는 항상 현실과 가상이 믹스된 가상 현실 속을 살아가기 쉽다. 뇌의 가상현실 소비 메커니즘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면 뇌에게,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디자인해 줄 수 있게 된다.

뇌에게 쪼임 & 보챔만 당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뇌를 자주 속여줘야 한다. 뇌를 속이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나를 살찌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뇌에 깊숙이 뿌리 박힌 생존본능 메커니즘은 아주 가끔 도움이 될 뿐 일상 속에서 수시로 발현되기엔 너무 낭비적 요소가 많다. 결국 인간 삶의 질은 뇌의 맹목적 전투모드 돌입을 적시에 제어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우아한 평화모드 상태에서 보낼 수 있는가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걸 이미 이뤘다고 뇌를 속여보자. 어차피 뇌는 실재와 가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게다가 막상 간절히 원하는 걸 이뤄도 뇌는 이윽고 그것에 싫증을 내고 잽싸게 새로운 결핍을 제시한다. 언제까지 뇌에게 당하고만(^^) 살 것인가? 나에게 꼭 필요한 게 뭔지도 잘 모르고 원시시대에서나 작동할 법한 생존 최우선 메커니즘에 틈만 나면 빠져들어가는 단순무식한(^^) 뇌의 전투 모드 돌입을 언제까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인가?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려고 할 때, 그것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긍정적 영상을 머리 속에서 상영해 보자. 감정은 매우 사소한 일로 발생하고 사라진다. 그래서 매우 사소한 방법으로도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뇌는 뭔가를 상상하고 특정한 감정 상태를 발현시킨다. 뇌가 제멋대로 상상하고 띄운 감정 상태이니 나도 내 멋대로 상상하고 그것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감정 상태를 창출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뇌를 속여먹을 궁리를 하는가?  어쩌면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뇌가 이끄는 전투모드에 수시로 접속해서 전투모드가 선사하는 찌질한 퀄리티의 일상 속에 푹 쩔어 있는 것은 아닌가? ^^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도 있고 몇 번씩이나 찌질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나는 나의 모습을 수시로 정의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나의 모습을 정의하지 않으면 나의 몸과 마음 속 깊은 곳에 새겨져 있는 생존 본능 지향의 전투모드가 나를 지배하게 되고 뇌는 감정과 손을 잡고 나를 제멋대로 규정해 버리고 뇌 내키는 대로 나를 어디론가 보내버린다.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뭔가를 상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뭔가를 상상은 자신 만의 고유한 가상현실 플랫폼을 운영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놀이이다. 어려운 물리학 용어로 평행우주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복잡한 얘기에 귀 기울일 것 없이 일상 속에서 평행 우주 놀이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약간의 상상력과 그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가상현실의 힘을 믿고 그것을 부릴 수 있는 의도가 중요할 뿐이다.

얼마나 뇌에 당하고 사는지, 얼마나 뇌를 속여먹고 사는지.
인생은 뇌하기 나름이다. ^^




PS. 관련 포스트
휴식감과 숨
가상현실
가상, 알고리즘
제허, 알고리즘
아주 오래된 미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422
NAME PASSWORD HOMEPAGE

감정과 상상, 그리고 인간 :: 2012/03/26 00:06

난 고소공포증이 있는 편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왜 공포를 느끼는 걸까?
현실을 직시하기 보다는 일어날 지도 모를 뭔가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면 공포감은 그리 강하게 출렁거리진 않을 것이다.

공포는 상상에서 비롯된다. 상상은 강력한 공포 발전소이다. 어디 공포만 그럴까? 상상은 많은 감정을 가능케 하고 감정은 사람을 로봇처럼 이리저리 조종한다. 상상 엔진은 대개 부정적인 감정과 연루되어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공포, 불안, 분노, 우울, 슬픔 등은 대개 상상과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증폭되기 마련이다.

상상이 감정과 연결되어 있기에 상상을 멈추는 방법은 간단(?)하다.
감정을 직시하면 된다. 감정을 직시하면 감정이 멈추고 감정이 멈추면 상상이 작동하기 어려워진다.

부정적 감정의 과잉화를 막기 위해선 '나'의 범주를 넓게 설정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오직 협의의 '나'만 생각하고 협의의 '나'의 지나친 생존만을 의식해서는 부정적 감정과 상상의 시너지 쓰나미에서 헤어나오기 어렵다. '나'를 넓게 규정하고 광의의 '나'의 문제는 무엇이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를 상상하기 시작해야 한다.

창의적/긍정적인 상상을 잘 한다는 것은 본능 깊숙이 새겨진 부정적 감정과 상상과의 시너지 메커니즘을 자신 내부에서 자신의 외부로 꺼내서 타자와 세상과 소통하는데 활용함을 의미한다. 부정적인 감정 에너지와 그것을 증폭시키려는 상상 에너지를 자신 안에 가두지 않고 자유롭게 바깥 공기를 마시며 유동할 수 있게 방생할 수 있는 능력. 그렇게 할 수 있는 의지와 스킬이 상상력의 크기를 좌우한다.

나를 좁게 볼 것인가, 나를 넓게 볼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상상의 용도가 분기점을 타게 된다. 사사롭고 시시각각 발생하기 일쑤인 부정적 감정의 흐름에서 벗어나서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는 테마에 대해 감정을 작동시키고 상상의 트랙을 밟아나갈 수 있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감정을 직시하기도 하고, 감정을 자극하기도 하는 것.
상황에 따라 상상을 억제하기도 하고, 상상을 증폭하기도 하는 것.

감정과 상상은 지금까지 인간을 지배해온 강력한 로봇 조종자였다. 앞으로 인간이 지금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변모한다면 그 혁명의 기반은 감정/상상과 인간의 관계 전복일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감정하고 상상할 자격을 갖고 있다. 그렇게 변해갈 수 있는 인간만이 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상상,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333
NAME PASSWORD HOMEPAGE

쪽팔리고 싶지 않은 욕구 :: 2012/03/16 00:06

원시시대를 살던 인간은 생존욕구가 짱이었다. 현대를 사는 인간은 원시시대로부터 각인된 생존욕구에 여전히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리고 새롭게 획득한 강렬한 욕구가 있었으니. 이름하야 "쪽팔리고 싶지 않은 욕구". 이 욕구에 대한 집착은 실로 거대하다.

왜 쪽팔림에 대한 두려움이 범람하게 된 것일까? 그건 두려움 총량 보존의 법칙 때문이다. 현대를 사는 인간은 생명 위협이 현저히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의 총량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모습이다. 별로 위험하지도 않은 것에 대한 걱정/두려움을 무수히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쪽팔림은 불확실성과 함께 두려움에 굶주린 인간 뇌를 가득 채워주고 있는 두렵고 싶은 인간 뇌의 든든한 친구이자 동반자인 것이다.

쪽팔림을 느끼고 싶어지는 순간, 나의 뇌를 점검해 보자. 뇌는 분명 쪽팔릴 수 있는 상황을 인지하고 그걸 피하고 싶은 욕구에 쩔어 있을 것이다. 그걸 피하면서 뇌는 커다란 위험을 피했다고 자위할 것이다. 이건 한마디로 뇌가 주도하는 거대한 사기극이다. 이런 사기극에 매일 놀아나면서 '쪽'을 신격화시키는 인간. 인간은 거대한 종교를 섬기고 있는 것이다. 이름하야 '쪽교' ^^ 

감정과 마찬가지로 우상도 직시 당하면 움찔하기 마련이다. 감정을 직시할 때 감정은 인간의 몸과 맘을 온통 지배할 수 있는 파워를 상실한다. 우상도 마찬가지다. 우상의 실체를 직시하는 순간 우상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쪽팔리기 싫어하는 나의 욕구를 지긋이 응시해보자. 그것의 실체가 얼마나 나를 우습게 만들고 있는지 찬찬히 바라볼 때 자존감은 고조된다.

두려움 총량 보존의 법칙에서 벗어나야 한다. 두려움이란 감정은 일종의 양자다.  두려움이 엄습하려고 할 때 그 감정을 가만히 관찰해 주면 두려움은 폭주를 멈추고 수줍어하며 순한 양이 된다. 두려움을 직시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에 휘둘리는 것이다.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계에선 뭐니뭐니해도 관찰이 최고의 덕목이다.

쪽팔리고 싶지 않은 욕구.
여기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인생의 품질이 걸려 있다. ^^


PS.
관련 포스트
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BM
사라진 원인, 좀비가 결과
타존, 알고리즘
자존,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321
  • Wendy | 2013/01/28 18:13 | PERMALINK | EDIT/DEL | REPLY

    경쟁노예 포스트에서 타임머신 타고 여기로 왔네요 ^^ 너무나 유쾌하고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관찰'은 정말 중요하고 강력한 덕목인 듯 합니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면밀히 관찰해야 함을 더불어 깨닫게 되는 포스트입니다. 나의 '쪽팔리고 싶지 않은 욕구'를 관찰하고 정의내려보기만 해도, 자존감 상승에 스스로 기여하고 일조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유쾌 상쾌 통쾌한 포스트에 머물다 함박 미소 짓고 돌아갑니다. '경쟁 노예'포스트에선 스트레스가 확~ 날아갔지뭐여요! 오늘은 buckshot님의 포스팅에 '스파클링 워터'라는 별칭을 달아드리고 싶네요! 여느 때처럼, 언제나,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1/28 20:43 | PERMALINK | EDIT/DEL

      밋밋하고 건조한 제 글에 스파클링 워터와도 같은 댓글을 달아주시는 Wendy님~ 저 Wendy님 팬입니다. 울나라/전세계의 그 어떤 초특급 스타보다도 제게 훨씬 큰 기쁨을 주시거든요. 제겐 Wendy님이 최고의 스타이십니다.

      TV,영화,무대 등에서 활약하는 절정의 스타들의 플레이를 봐도 아무런 감흥을 얻지 못하는 제게 Wendy님은 항상 꿈과 희망을 주십니다. 제 블로깅이 지속될 수 있는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지요. 넘 감사합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

가리워진 본능 :: 2011/12/14 00:04


네가 있어 고마워
제니퍼 홀랜드 지음, 노지양 옮김/북라이프


비즈니스북스의 이혜경님께서 보내주신 책이다.  

이 책에는
다른 종의 동물들이 사이 좋게 노는 모습이 책에  가득하다.
따뜻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동물 사진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명유지를 위해 욕망과 공포에 먹고 떠밀리듯 살아 가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본능적으로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
남과 소통하고 싶고 남에게 뭔가를 주고 싶은 본능이
생명유지 본능을 부추기는 욕망과 공포에 살짝 가리워져 있을 뿐,
이타적 본능은 생을 영위하는 모두의 마음 속에 존재한다는 것.

'네가 있어 고마워'에 나오는 아름다운 동물들의 사진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제 아무리 뛰어난 이론가가 이타적 본능을 설명하려 노력한다 한들,
이리도 직관적인 동물들의 따뜻한 몸짓보다 결코 나을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욕망과 공포에 휩쓸리듯 살아가는 나의 모습 속에 숨어 있는
세상 전체와 연결된 나, 본능적으로 남을 위하는 바로 그 '나'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88
  • 글자세계 | 2011/12/15 14:56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내 안의 보이지 않던 나를 알게 되고, 그런 나를 뒤돌아보며 생각하게 되는거... 가끔은 그렇게 생각되어지는 내가 싫을때도 많지만... 어찌보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이기에 그냥 무시하고 싶은 생각이 큰건지도 모릅니다. 배척하고 싶지만 안고 가야 하는 게 세상이고 그 안에 나이기에... ^^;

    • BlogIcon buckshot | 2011/12/15 21:57 | PERMALINK | EDIT/DEL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의 의미. 요즘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나, 싫은 나. 그 모든 것이 바로 나인 것 같습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

Ambient WOM의 시대 :: 2011/01/28 00:08

Survival of the simplest을 읽고 드는 생각.

우주만물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알고리즘은 '복제'이다. 복제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창조'라 부르는 것들도 따지고 보면 고도화된 복제에 불과한 것들이다.

웹은 텍스트의 복제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예전에 책은 서점에나 있는 것이었다. 이젠 책은 더 이상 물리적 공간의 한계 속에 안주하지 않는다. 책에 있는 텍스트가 웹을 타고 흐르고, 웹의 텍스트가 모여서 책이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웹이 되어 가고 있듯이, 모든 것은 책이 되어 가고 있다. 책은 더 이상 종이책/전자책의 포맷 안에 갇혀 있지 않다. 물리적 시공간을 부유하고 버추얼 시공간을 가득 메우는 책. Ambient book의 시대다.

웹은 입소문의 복제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예전에 입소문은 사람들의 대화 공간에나 있는 것이었다. 이제 입소문은 더 이상 물리적 공간의 한계 속에 안주하지 않는다. 입소문이 웹을 타고 흐르고, 웹의 텍스트가 입소문이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웹이 되어 가고 있듯이, 모든 것은 입소문이 되어 가고 있다. 입소문은(WOM: word of mouth) 더 이상 물리적/가상 대화 공간이란 규격화된 포맷 안에 갇혀 있지 않다. 물리적 시공간을 부유하고 버추얼 시공간을 가득 메우는 입소문. Ambient WOM의 시대다.

복제되는 것이 생존한다. 강한 것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복제되기 쉬운 것이 생존하는 것이다.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텍스트와 입소문을 실어 나르는 웹 상의 일부 모듈에 불과하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주목하지 말고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성장을 가능케 하는 입소문의 존재감을 인식해야 한다. 태초에 입소문이 있었고 입소문은 끊임없이 자신의 복제를 지원해 줄 vehicle이 필요했을 뿐이다. 지금은 페이스북/트위터가 입소문의 운반자 역할을 매우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


PS. 관련 포스트
Survival of the simplest
Ambient Book의 시대
복제,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146
  • BlogIcon Wendy | 2011/01/28 19:0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복제되는 것이 생존한다.
    creativity가 something new라기보단 some ideas well-organized 라고 볼 수 있듯이랄까요...^^; 물리적 시공간이 초월되는 만큼 접근과 이해에 있어서도 용이해야 복제의 가능성과 가치가 높여지겠단 생각이 듭니다. 트위터의 공간과 기능 자체에만 묶여있던 저의 생각의 폭이 넓혀지는 계기가 되는 글입니다. =) 복제가능한, 복제가 쉬운, 생존력 강한 idea와 creativity를 vehicle을 통하여 무한 공유하는 one of them이 되어야겠단 사명(?)도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이곳은 복제의 가치와 생존력이 높은 그러한 모두를 위한 곳이지요, 이미^^

    • BlogIcon buckshot | 2011/01/29 12:49 | PERMALINK | EDIT/DEL

      복제가 생존. 결국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복제하는 과정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

  • BlogIcon New Ager | 2011/01/29 01:27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할 말을 잃게 만드십니다... ㅎ buckshot님의 해석 시스템이 너무나도 탐나네요 :)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NAME PASSWORD HOMEPAGE
< PREV #1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