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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와 정체성 :: 2017/04/05 00:05

진부하다는 건 당연한 거다.

진부하다는 건 기계적으로 반복된다는 건데
그럴 수 밖에 없다.
그건 정체성에 가까운 거라서 그렇다.

'나'는 정체성과 관련한 부문에서 진부한 경향을 보인다.
변화를 주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되는 영역이 있다.
그건 바로 '나'여서 그렇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나의 정체성에 밀접한 부분에선 난 진부해진다.

진부하다는 걸 굳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본질은 잘 변하지 않는다.
정체성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진부함은 '나'로선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개념이다.

필연적으로
나는
진부하다.

그 진부함을 피하려 해도 결국 나의 원초적 진부함과 마주하게 된다.

중요한 건
내가 어느 영역에서 진부하냐는 것이다.
내가 어떤 영역에서 어떻게 진부해지는가를 아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특히 나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나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진부해지는 영역..
그 지점에 나의 정체성이 살아 숨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진부함을 폄하하고 비웃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진부함을 받들어 모셔야 한다.
평생을 공부해도 잘 알기 어려운 게 나 자신인데
나를 알게 해주는 진부함이라니..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 진부함의 지점에서
새로움의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음을 감지하면 된다.

진부할수록
변하지 않을수록
그 지점을 준거로 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변화는
혁신은
항상 기준점을, 원점을 필요로 한다.
변하지 않는 게 있어야 변화를 꿈꿀 수 있고
진부함이 있어야 혁신의 탄생 근거가 생긴다.

결국 진부는 변화와 혁신을 낳는다.
선명하게 파악된 진부는 명확하게 설정된 변화와 혁신을 예고한다.

그래서 진부함이 곧 변화이고
진부함이 곧 혁신인 것이다.

진부함은 부끄럽게 여기기는 커녕
오히려 자랑스러움의 대상이어야 한다.  ㅋㅋ



PS. 관련 포스트
기억과 차이, 그리고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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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감 :: 2016/12/21 00:01

물리적 관점에서
나의 삶은 내가 위치했던 좌표와 내가 이동했던 좌표 간 거리로 규정된다.

내가 생성하는 물리적 이동.
좌표와 경로
노드와 링크

그런데..
내가 어떤 좌표에 위치했다는 건
내가 그 좌표를 제외한 나머지 수많은 좌표들을 배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내가 좌표와 좌표 간 이동을 했다는 건
내가 그 이동경로를 제외한 나머지 수많은 이동경로의 가능성들을 선택 선상에서 제외했다는 것을 내포한다.

존재로 삶의 궤적을 형성한다는 건
삶의 궤적을 제외한 다른 영역에 대해서 부재를 태깅하는 것이다.

존재로 살아간다는 건
부재로 비워 두는 곳을 규정하고 그 곳을 부재감으로 채워 나가는 일이다.

존재감은 부재감으로 규정된다.

부재란 무엇일까.
왜 부재하는 것일까.
왜 편재의 틀 속에서 수많은 부재를 생성하게 되는 것일까.

표현과 은닉 사이에서
선택과 배제 속에서
존재와 부재 간을 끊임없이 오가는 것

그게 또 하나의 삶의 궤적일 듯 싶다.

존재와 부재..
그것들은 노드들이고
노드들 간의 보이지 않는 이동경로.

물리적 경로가 아닌
또 다른 차원의 링크

그 링크가 뭔지 알아가는 과정
그것도 또 하나의 이동경로

나의 현재 위치
나의 현재 동선
그것들의 흐름 속에서 나의 부재가 서사로 펼쳐진다.

그리고
그걸 어렴풋이 느끼는 것
그게 부재감이다. ㅋㅋ



PS. 관련 포스트
좌표와 이동
망각과 복원
숨겨진 비밀
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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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와 이동 :: 2016/12/19 00:09

시간이 흐르는 삶 속에서 물리적 동선이 형성된다.

자주 가는 장소와
자주 이동하는 경로는
좌표와 좌표 사이를 이동하는 선의 궤적처럼
시간이 흐르는 삶 속에서의 물리적 이동으로 축적된다.

각각의 좌표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고
이동하는 경로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으니
좌표와 좌표 간의 물리적 이동은 일종의 반복처럼 느껴지고
그렇게 쌓여가는 반복감 속에서 일상은 더욱 강화된 삶의 궤적처럼 패인 홈을 구성하게 된다.

동일한 것처럼 보이는 일상
그런 일상 속에서 쌓여가는 감정
삶은 그렇게 구성되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좌표와 좌표 간 이동으로 규정되는 삶의 궤적
그런 궤적 속에서 생성되는 사고와 행동
궤적이란 맥락 속에서 국한되고
패인 홈이란 프레임 속에서 형성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가 위치했던  물리적 좌표와 내가 이동했던 물리적 경로만 쭉 나열해 보면
나의 지나온 시공간들이 물리적으로 리스트업되는 것인데.

그렇게 흘러온 나의 물리적 삶.
그것들만 잘 돌이켜 보아도 내 삶이 잘 보일 듯 싶다.

하나의 좌표가 품고 있는 의미와
하나의 이동경로가 품어 내는 서사가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말을 걸어올 거라서 말이다. :)

좌표와 이동..
나도 모르게 형성되어 왔던, 수많은 좌표와 이동경로 속에서의 나.
분명 흘러온 시간이고 지나온 공간인데 왜 이렇게 궁금한 것인지.
왜 이리도 설레이는 것인지..

그리고 이런 소박한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블로그 포스트 입력창이 왜 이렇게 고마운지.

놀라운 감정의 연속.
오늘도 내가 위치한 좌표와 내가 움직이는 이동 경로는
그렇게 소박하게 형성되고 수줍게 의미를 감춰낸다.

의미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의미는 숨어들어간다.
그렇게 감춰지는 비밀과
어설프게 표현해낸 텍스트 속에서
노드와 링크는 오늘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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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정체 :: 2016/04/22 00:02

어떤 주제에 대해 반복적으로 고민을 거듭한다.
그렇지만, 어려운 주제라서 생각의 진전이 없다.
그래서 정체 상태에 놓였다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정체 상태에 놓여있지는 않다.
모든 것은 계속 움직이다.

특정 주제를 향한 내 생각은 계속 움직인다.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그걸 내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분명 어제와 오늘의 생각이 같은 것 같은데.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은데.
사실은 진전이 있는 것이다.

그 미세한 변화
어제와 오늘의 다름
1시간 전과 지금의 다름
10분 전과 바로 지금의 다름

그 작은 틈입을 인지하는 것
그게 생각의 진전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생각은 계속 나아간다.
결코 멈춘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진척을 인지하 수 있는 감각기관을 가져야 한다.
그건 매일 튜닝해야 한다.

생각을 한다는 건
생각이 나아지고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있는
날카로운 감각기관을 계속 깨어있게 하는 것이다.

반복과 정체 속에서 마이크로 무브먼트를 찾아내고
거기서 큰 증폭의 단서를 꺼낼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은 감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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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dge | 2016/05/03 18: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개인적으로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글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6/05/03 22:20 | PERMALINK | EDIT/DEL

      생각의 진전 없음에도 계속 도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스스로를 동기부여하기 위해 적은 글입니다. 댓글 주셔서 더욱 힘을 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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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지속 :: 2015/11/25 00:05

반복을 지속하면
지속을 반복하면
존재는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까

반복 없이 존재는 존재감을 느낄 수 있을까
지속 없이 존재는 존재할 수 있을까

반복과 지속이 없는 존재는 뭘까

존재는 왜 반복하는 걸까
존재는 왜 지속되는 걸까
왜 존재는 계속 존재하려 하는가

존재의 동력은 뭘까

존재는 존재가 아닌 걸 확인하게 되는 순간을 두려워하는 걸까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존재인가

이 모든 질문 바깥엔 누가 있는가
나는 안에 있는가

나는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이런 몽롱한 질문을 반복적으로 지속하는 과정 속에서
몽롱함은 더욱 명료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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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하기 :: 2015/10/23 00:03

지속을 한다는 것
버틴다는 것

엔트로피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다

엔트로피를 거스르고자 하는 노력
그 노력이 하루 하루 축적되면
지속의 맛을 알아가게 된다.

시간은 강하다
인간은 시간 앞에 나약하다

인간은 태어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이후에 잘 발생하기 힘들다
그만큼 탄생은 강력한 이벤트이다

지속하면
버티면
인간은 세상에 태어난 것과 맞먹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셈이 된다

객체로 세상에 태어나서
주체로 세상에 뭔가를 태어나게 할 때
비로소 인간은 인간이 된다

지속한다는 것
버틴다는 것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를 선언하고 실행하는 것

지속하기를 통해
삶을 배운다
살아있다는 건 지속하기를 위한 기본 전제 조건이다

나는 무엇을 지속하는가
나는 왜 지속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모두 같은 질문이고
그것들의 뿌리는 모두 한 곳이다

지속
그 단어 하나 만으로도 나는 설렌다




PS. 관련 포스트
지속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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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dge | 2015/10/28 07: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무엇을 지속하느가를 곰곰히 생각하다.
    왜 지속하는가란 질문에 생각이 많아지네요...ㅎㅎ
    잠시 생각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5/10/30 23:24 | PERMALINK | EDIT/DEL

      요즘 '지속'에 대해서 생각을 계속 하게 되네요.
      지속의 의미를 새기다 보면 지속하는 것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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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한 생각 2 :: 2014/11/21 00:01

생각에 대한 생각.

생각의 프레임이 굳어진 채로 지속 사용된다는 것.

프레임을 의식하는 건, 프레임을 깨기 위해서이고

패턴을 찾는다는 건, 패턴을 쇄신하기 위해서다.

관성은 프레임 속에서 지내는 것을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패턴에 어두워진 눈을 당연시하게 만든다.

그래서 힘들다.

그래서 생각에 대한 생각을 지속하기 위해선 이것 자체를 반복하는 프레임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생각에 대한 생각을 패턴화하기 위해선 이에 대한 블로깅을 이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 주제에 대한 반복적인 포스팅을 지속하는 것.

이런 중요한 행위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블로깅.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



PS. 관련 포스트
생각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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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아크몬드 | 2014/11/21 11:2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생각의 틀을 정해 놓지 않기. 의식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기에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4/11/24 09:17 | PERMALINK | EDIT/DEL

      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블로깅을 계속하는 게 의미 있는 듯 해요. 생각의 유연성을 계속 챙기게 되는 건데 그것만큼 중요한 건 없는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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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의 잠재 :: 2014/04/21 00:01

루틴이란 무엇인가?

루틴에서 연상되는 의미는 일상, 반복, 지루이다. 
반복되는 지루함.
그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유용과 무용 관점에서 루틴을 생각해 보면 의미가 명확해진다.
무용(?)한 것들이 많아야 유용의 의미가 생생해진다.  쓸모 있는 것들만 향유하고 싶어하지만, 실은 쓸모 없어 보이는 것들이  쓸모 있음을 가능케 한다. 쓸모 없음이 쓸모의 원천이다.

반복과 새로움은 동전의 양면이다. 반복이 싫다는 건 새로움을 갈망한다는 것인데, 반복에서 벗어나고 싶을 수록 반복의 감미로움을 만끽할 수 있어야 한다. 반복이 깊이를 더해갈수록 반복에 대한 반작용이 힘을 얻을 수 있다. 반복의 기반이 탄탄하게 구축될 때 새로움의 탄생이 용이해진다. 문제는 반복이 새로움을 잉태시키는 생성판임에도 불구하고 반복에서 단지 벗어나고자 하는 단순한 스탠스를 취하는 것.

반복을 벗어남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새로움을 끊임없이 암시하고 가이드해주는 멘토라고 여겨야 한다. 혁신은 반복에서 쌓인 에너지를 먹고 살아간다. 반복과 지루함이 뿜어내는 세. 그것이 자연스럽게 창의와 혁신으로 이어지는 흐름. 주파수를 반복 자체에 맞추지 말고 반복과 반복 사이에 잠재하는 에너지에 민감해져야 한다.

존재 못지 않은 극적 매력을 갖고 있는 '잠재'. 

루틴 속에서 지루해하면 루틴의 진가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다. 뭔가 고정된 기반이 있어야 그 기반 위에 뭔가를 세울 수 있다. 루틴은 일종의 지반이다.  혁신의 기저엔 반복이 잠재한다. 반복의 지속에 설레일 수 있어야 한다.

일상 속에서 반복이 흐르는 것.

안정은 변화의 시작점, 지루함은 재미의 원천.

루틴의 잠재. 그것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과 그것에 둔감한 것 간의 간극.

나를 휘감고 있는 루틴을 얼마나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가.
루틴의 잠재를 존재로 여기고 대화할 수 있는가.
루틴에서 발산되는 에너지.  그걸 에너지로 인지할 수 있고 그 에너지를 계속 흡입할 수 있으면 된다. ^^




PS. 관련 포스트
잡 크래프팅
루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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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시간 :: 2014/04/02 00:02

나는 회사에 다닌다.

회사엔 규정된 출퇴근 시간이 있다.

출퇴근 시간이 규정된 환경 속에서 일한다는 것.
자연스럽게 일상이 형성된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한다는 것.
어떻게 보면 반복과 지루함으로 점철될 수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이 규정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함정이다.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결코 고정, 반복, 지루함이 아니다.

특정 시간대에 출퇴근한다는 것은 수동적 행위가 아닌 고도의 능동적 행위이다.
아무 제약조건이 없는 상황은 자칫 무기력한 행동 패턴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뭔가가 정해지면, 뭔가는 유연해진다. 고정된 것을 중심으로 유연한 것들이 발생된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지면 수많은 행동패턴들이 다양성의 꽃이 되어 피어난다.
근무 외 시간이란 거대한 자유 공간이 생겨난다.  근무 시간 조차도 자유의 여지는 충분하다.

뭔가가 정해지면, 그것을 중심으로 수많은 공간들이 생겨난다.  공간은 경계선을 낳는다. 경계선은 자유를 구속하는 동시에 자유를 자극한다. 경계선 안에서 플레이해야 하는 제약은 경계선 밖을 상상하는 자유의 그림자이다. 경계선은 감옥의 문/벽이 아니라 투과할 수 있는 막이다.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경계 지형을 변주한다. 뭔가가 정해지면, 그것을 중심으로 수많은 움직임이 발생한다. 공간은 항상 잠재하고 있다. 공간을 탄생시키는 선언. 뭔가를 정하는 건 잠재하고 있는 공간을 향해 탄생의 방향성을 선언하는 것이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서 생성되어 버린 수많은 공간들.
그런 공간들을 인지하지 못하면 일상의 반복과 지루함으로 점철된 상황 속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고.

일상의 알고리즘 속을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일상을 들여다 보고 또 바라보면 우주와도 같은 공간이 수줍게 형성되어 있고 그것이 끊임없이 자신 만의 길을 지향하며 유동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제약은 우주 탄생의 촉매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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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사시옹 :: 2014/01/27 00:07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의 '벡사시옹(Vexations)은 좀 황당하다. 악보는 달랑 한 페이지인데, '이 악보를 840번 반복하시오'란 지시가 악보에 적혀 있다. 지시대로 악보를 연주하려고 하면 무려 13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13시간 이상이 걸린다니. 그런 음악을 듣고 있다고 상상만 해도 짜증이 난다. 난 음악에 대한 조예가 없어서 이 음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그냥 작곡가가 장난을 친 것 아닌가?란 개인적 의혹을 지울 길이 없다. ^^

그러나..
음악을 잘 모르는 나이지만, '벡사시옹'을 접하게 되면서 느끼는 바가 있긴 하다. 그냥 나의 관점에서 내 멋대로 적어보는 소감이라고나 할까..

'반복'은 사람을 짜증나게 하고 성가시게 하며 무기력하게 만든다. 뭔가를 무한에 가깝게 반복하는 것은 분명 정해진 틀 내에서 쳇바퀴를 도는 에너지 소모적 행위로 여겨진다. 그런데, '반복'이란 단어 자체에 함정이 있긴 하다. 같은 일을 되풀이 한다는 것. 우린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같은 일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되풀이 한다는 것. 그게 인간에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반복'이란 단어 자체가 '버그' 아닐까? 불가능한 개념이 단어로 만들어져서 편의상 널리 유통되고, 그저 사용하기 편리한 단어라서 실상 그 단어가 허상에 가까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단어에 속고 또 속으면서 '반복'이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을 짝퉁처럼 체화시키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그건 환상일 것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아니라 어제와 같은 오늘일 거라고 착각하는, 어제와 그닥 달라지지 않은 오늘의 나일 것이라고 오해하는 어설픈 관성이 '반복'이란 환상을 낳고 스스로 만들어낸 '반복' 환상 속에 갇혀 지내면서 스스로 지루함을 생성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지루함의 굴레를 답답해 하며 '반복'이란 환상을 기어이 실체로 만들어 버리고야 마는 의도치 않은 집요함.

벡사시옹 악보에 적혀진 가이드대로 13시간을 넘게 연주하는 동안 연주자는 어떤 연주를 하게 될까? 그건 연주자의 태도에 달려 있는 것 아닐까? 마찬가지로 벡사시옹과도 같은 악보를 반복하듯 연주하는 모습이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악보엔 벡사시옹보다 훨씬 더 잔혹한(?^^) 가이드가 적혀 있는 것이고 그 가이드를 어떤 자세로 수용하고 어떤 모습으로 연주할 것인지는 각 개인의 역량에 의해 퀄리티가 좌우되지 않을까?

벡사시옹 악보를 보면서 나에게 주어진 벡사시옹 악보를 마음 속에서 형상화시켜 본다. 난 나만의 벡사시옹 악보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으이그. 이 지겨운 연주를 어떻게 해야 하나?란 멍한 눈빛일까? 아님 오늘은 이 악보를 어떤 색깔로 연주할까를 기대하는 초롱초롱한 눈빛일까?

난 지금 벡사시옹을 연주하고 있다. ^^



PS. 관련 포스트
무음,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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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의 모방 :: 2013/11/29 00:09

베끼려면 제대로 베껴라
이노우에 다쓰히코 지음, 김준균 옮김/시드페이퍼


책을 읽지 않고 쓰는 글이다.  책 제목만 봐도 메세지가 느껴지기 때문에. ^^

모방을 모방해서 모방하기 힘든 뭔가를 만들어낸다.
모방과 모방 사이에 독창성을 가미한단 얘기다.
아니, 모방을 하는 자의 독창성이 따라기 힘든 모방을 가능케 한단 얘기다.
결국, 독창성만 갖고 있다면 모방을 해도 자기 스타일이 묻어 나온다는 것.

독창성을 갖추기 위해선 모방을 꾸준히 할 수 밖에 없다. 모방에 모방을 더하고 모방에 모방을 더하고.. 반복되는 모방의 시간 속에서 모방은 어느 순간 티핑 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 거듭된 모방 속에서 자신 만의 고유한 패턴이 발생하게 되고 그런 패턴이 독창성으로 발전하면서 어느덧 모방은 더 이상 100% 단순 복제에 머물지 않고 뭔가 자신 만의 이야기를 발현시키는 구조로 작동하게 된다.

핵심은 모방에 기저하고 있는 '원형'을 인지할 수 있는가이다.  모방 속에서 원형을 탐지할 수 있으면 한 차원 높은 모방이 가능해진다. 일종의 모방을 리버스 엔지니어링한다고나 할까. 모방의 생성 과정을 역설계할 수 있으면 모방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모방이 만들어지기 이전 상태로 이동한 후 나만의 모방을 설계할 수 있는 상황 속으로 진입한다. 모방의 모방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모방의 모방.  반복, 중첩, 재귀가 지향하고 있는 지점에 원형의 숨결이 존재한다.   모방의 모방을 통해 모방한 자의 생각 경로를 따라가 보고, 모방한 자가 택하지 않았던 경로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나만의 경로를 설계하는 과정은 저자의 책을 읽고 저자의 마음을 해부하면서 저자 생각의 랜드스케이프를 한 장의 그림으로 복원시키는 복원예술가의 과정이면서, 아무 것도 없는 '무'의 환경에서 새로운 '유'를 만들어내는 창조예술가의 모습이기도 하다.

고수들의 바둑을 따라 두기만 하면 기계적이겠으나 고수들의 바둑을 따라두면서 고수들의 마음을 읽어 내리는 노력을 지속하면 고수의 기력에 근접할 수 있는 진입로가 형성된다. 타인의 마음을 읽고 타인의 마음을 예술작품으로 형상화하고 나의 마음을 읽고 나의 마음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하는 것. 모방의 모방은 결국 예술로 귀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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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과 의미 :: 2013/10/25 00:05

나는 운동을 정말 싫어한다. 태생이 운동 친화적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평상시에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이가 40대 중반에 이르다 보니 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가끔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찜찜하다. 운동을 하긴 해야 하는데 운동을 하기가 싫다. 어떻게 하지?

몸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라기 보단 협상에 가깝다.
나: 야, 운동 좀 해야 하지 않겠나?
몸: 싫거든.
나: 그래도 좀 하자.
몸: 귀찮다.
나: 하루에 1시간은 해야 하지 않냐?
몸: 미친 거 아냐?
나: 그럼 10분만이라도.
몸: 어쩌다 한 번은 몰라도 계속은 못한다.
나: 그럼 1분이라도 안되겠냐?
몸: 그것도 부담된다.
나: 좋다. 그럼 40초만 하자. 윗몸일으키기 20초, 팔굽혀펴기 20초.
몸: 음.. 그 정도라면 매일 할 수도 있겠다.
나: 오케이, 그럼 앞으로 하루에 40초만 운동하는 거다. 오케이?
몸: 오케이, 함 해보자 뭐.

그렇게 하루에 딱 40초만 운동을 하기로 다짐하고 4월부터 실행하기 시작했다. 윗몸일으키기 20번 하는데 20초가 소요되었고, 팔굽혀펴기 20번 하는데 역시 20초가 필요했다. 매일 했다. 몸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살짝 귀찮기는 했으나 하루에 1분도 아니고 40초도 못하냐?란 질문을 던지면 몸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잘 따라와 주었다. 지금도 1일 40초 운동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1일 40초 운동을 지속하다 보니, 부수적 효과도 생겨나고 있다. 난 원래 운동은 일상 속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매일 출퇴근을 위해 걸어 다니는 것도 운동이라고 생각했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걷기에 운동이란 의미를 부여해도 몸은 살짝 비꼬는 듯한 시선을 나에게 던지곤 했다. 그런데, 1일 40초 운동을 수행하다 보니, 몸에게 '걷기는 운동이다'란 의미를 주입할 때 몸이 예전처럼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나름 걷기를 운동이라고 받아들이는 눈치다. 아무래도 1일 40초 운동을 꾸준히 수행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에 대한 신뢰를 갖기 시작한 것 같다. 허구한 날 몸에게 맨날 까이고 무시만 당해오다가 1일 40초 운동을 통해 몸에게 말빨도 서고 하니 기분도 살짝 좋아지는 느낌이다.

1일 40초가 별 것 아닌 것 같은데도 막상 실행을 지속하다 보니 몸이 좋아지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매우 작은 것이라도 그걸 매일 반복하면 적지 않은 직간접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 변화는 결국 아래와 같은 모습으로 흘러가는 듯.

의도 -> 반복 -> 의식(ritual)화 -> 의미

의도를 생성하고 그것이 지향하는 바를 반복적으로 실행하고 그것이 의식(ritual)이 되고 그러한 바탕이 깔리면서 뭔가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역량이 생겨나는 것.

지속은 의미를 낳고 의미는 지속을 강화한다. ^^



PS. 관련 포스트
복근
상품화
운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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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근 :: 2013/07/29 00:09

한 때 몸무게가 83kg에 달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 6월부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침은 황제처럼, 저녁은 거지처럼'이란 슬로건 하에 아침은 고기,야채를 배불리 먹었고 저녁은 야채 샐러드와 두유로만 배를 채웠다. 저녁에 밥을 먹지 않았다. 그렇게 2개월 정도 하니까 몸무게가 73kg로 가벼워졌고 점차적으로 체중이 줄어들어 지금은 69kg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아뿔싸.

살을 빼고 건강식으로 일관하다 보니 어느덧 복근이 나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

헉.

복근이란 단어는 정말 꿈도 꿔본 적이 없는데 이게 무슨 만행이란 말인가.

정말 이러다 덜컥 복근이 나오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뱃살빼기를 지향하면서 보낸 지난 시간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지향점을 생성하고 있었다니.

파생효과의 묘미가 이런 것일까? ^^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다 보니

당초 건조하게 뱃살만 빼려고 했던 의도가 자칫 다변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그 동안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젠 슬슬 운동에도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운동을 할 스타일은 절대 아니겠으나

운동이란 단어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나에겐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게 다 예기치 않은 복근 때문이다.

뭔가를 꾸준히 지속하면 예기치 않은 뭔가가 파생한다는 것.

그런 serendipity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내는 '반복'의 감미로움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 ^^



PS. 관련 포스트
요요와 바탕
반복, 예기치 않은 보상
생각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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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Crete | 2013/07/29 23:27 | PERMALINK | EDIT/DEL | REPLY

    buckshot님 안녕하세요? 저도 3개월전에 체중이 180 파운드가 넘는 순간 아차 싶어 탄수화물을 적게 먹는 low carb diet를 시작했습니다.
    아침은 주로 단백질과 소량의 탄수화물이 함유된 프로틴 드링크를 마시고 점심과 저녁은 샐러드와 닭고기 혹은 연어로 구성된 식단을 꾸렸죠. 대신에 토요일과 일요일은 특별한 제한없이 먹고 싶은대로 먹었습니다. 주중에는 하루에 1파운드씩 꼬박꼬박 빠지더군요.. 결국 지난달에 목표치인 160 파운드를 돌파했습니다. 현재는 156~159 파운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포스팅하신 내용처럼 복근에 조금씩 관심이 가기 시작하더군요... 사실 시작은 허리의 통증이었습니다. 뱃살이 빠른 속도로 빠지니 배와 등사이의 밸런스가 깨지면서 등쪽의 근육이 배쪽의 근육보다 너무 쎄진 것이 문제였죠. 그래서 윗몸 일으키기를 통해 배쪽 근육을 키워서 배와 등사이의 근육의 밸런스를 잡아 줬는데... 그러다보니 조금씩 복근에 관심이.... ㅎㅎㅎ
    오늘 포스팅에 정말 많은 동감을 하게 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7/30 09:06 | PERMALINK | EDIT/DEL

      아. 저도 요즘 윗몸 일으키기를 하고 있습니다. Crete님 댓글을 보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소중한 체험담을 공유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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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vs. 쌩쌩 :: 2012/08/17 00:07

피로는 반복에서 온다.
첨엔 재미있게 하지만 계속 똑같은 것을 반복해서 수행하게 될 경우 그것에 지루함을 느끼고 물리고 지겨워지고 그것으로 인해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반복은 피로를 부르고 피로는 반복을 강화한다.  

피로는 변화에서 온다.
생각/행동 패턴은 고착화되기 마련이다. 딱딱하게 굳어진 생각/행동 프레임에 변화가 요구될 때 피로를 느끼게 된다. 원치 않는 변화의 압박을 받게 되면 그것을 회피하고자 하는 본능이 강화되고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면 들수록 피로감은 가중된다.

피로는 느림에서 온다.
피로는 과중함을 느낄 때 온다. 무거운 과제를 수행하면서 버거움을 느낄 때 아무리 시간을 투입해도 그 과중함에서 헤어나오기 힘들 때 피로가 찾아온다. 부하로 인해 느려지고 시간의 속도에 뒤쳐질 때 피로 엔진은 가열차게 작동하게 된다.

피로는 빠름에서 온다.
너무 가벼워서 빠른 속도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고 자신의 정체성이 흐릿해지면서 정처 없이 뭔가를 찾아 날라 다닐 때 피로를 느끼게 된다.



쌩쌩은 반복에서 변화를 감지할 때 온다.
아무리 똑같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져도 반복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그 속에 내재한 변화를 발견하게 된다. 세상에 완벽한 반복은 없다. 반복은 반드시 변화를 품기 마련이다. 반복에 잠재한 변화의 스토리는 반복을 생동하게 만드는 열쇠다.

쌩쌩은 변화가 반복의 이면임을 인지할 때 온다.
익숙한 프레임을 벗어나 낯선 상황에 던져질 때 새로운 프레임을 익힌다는 것이 그닥 황당한 일이 아니란 교훈을 얻을 때 변화의 부담은 경감된다. 기존 프레임에 1%의 변화를 가해도 새로운 시각이 형성된다는 점진적 변화 놀이를 즐길 수 있을 때 변화 압박은 변화 유희로 변질된다.

쌩쌩은 느림 속 빠름의 발굴에서 온다.
느림 속엔 반드시 빠름이 내재하기 마련이다. 뭔가 느리다는 것은 뭔가 빠르다는 것의 동의어이다. 시간 차원에서 빠르게 움직이면 공간 차원에서 느려지고, 공간 차원에서 빠르게 움직이면 시간 차원에서 느려진다. 만물은 좌표에서 좌표로 이동하고 속도는 거기서 거기다. 단, 어느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는가가 관건인데 내가 움직이고 있는 차원의 구조를 이해하고 내가 어디서 빠르고 어디서 느린가를 냉철하게 진단하는 순간 느림은 결코 느림 만은 아니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쌩쌩은 빠름 속 느림의 즐김에서 온다.
빠르게 부유하는 순간 속에 정지와도 같은 느림이 병행된다. 빠르게 움직인다고 경험의 밀도가 결코 엷어지지만은 않는다. 고속 주행 속에서 발현되는 정지의 순간을 채취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피로와 쌩쌩은 동전의 양면이고 언제나 쉽게 뒤집을 수 있다. ^^





PS. 관련 포스트
복사기 vs. 재즈뮤지션
제자리
변화, 알고리즘
반복, 알고리즘
주관, 알고리즘
틀린그림 찾기와 거대한 레알앱 스크린
루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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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원마미 | 2012/11/13 16:40 | PERMALINK | EDIT/DEL | REPLY

    피로는 하고 있는 일에 부정적인 마음과 함께 불만이 쌓일때 몸이 좋지 못할 때 더 느끼는 것 같고, 쌩쌩함은 도전적이고, 긍정적이며 자기가 관심이 있을 때 생기는 것 같네요. 벅샷님은 항상 쌩쌩하실 것 같은데?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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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그림 찾기와 거대한 레알앱 스크린 :: 2012/01/09 00:09

8살 딸내미와 아이폰으로 틀린그림찾기 게임을 열심히 하다가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

틀린그림찾기를 할 때는 신경은 온통 "다름"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다른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그림에 대한 예민한 신경은 결국 틀린그림찾기의 환희로 이어진다.
그렇게 하나하나 그림을 찾는 모습을 혁신과 연결시켜본다면.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려고 신경을 집중하는 그 노력을 일상에 기울여본다면,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여러 가지 패턴들 속에 내재한 미묘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무심코 지나쳤던 반복 행위, 당연하게 여겼던 행위를 바꿔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된다.
그리고 그 바뀜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뭔가를 느끼게 되고
예전의 프레임을 깨는 새로운 사고와 행동이 발현될 수도 있다.

틀린그림찾기에 기울였던 집중력을 일상 속에서 발휘하면 일상을 혁신할 수 있고,
업무 속에서 발휘하면 업무를 혁신할 수 있고,
생각 속에서 발휘하면 생각의 혁신이 일어난다.

틀린그림찾기의 자세를 어디에서 견지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앱은 조그만 스마트폰 스크린 상에서만 작동하라고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스마트폰 앱의 설정을 실제 살아가는 현실 세계 속에 살짝 옮겨놓고
스마트폰 앱을 즐기듯 현실을 앱처럼 여기고 살아가다 보면
의외의 수확을 거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은 다양한 앱을 플레이하는 거대한 스마트폰 스크린이다.  일명 레알앱. ^^




PS. 관련 포스트
차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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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민빠 | 2012/01/09 09:22 | PERMALINK | EDIT/DEL | REPLY

    본문 내용과는 좀 동 떨어진 것이긴 하지만, 틀림과 다름은 엄연히 다른 말이니, 틀린그림찾기 보다는 다른그림찾기라고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틀림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름에 집중하기라는 의미에 더욱 더 부합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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