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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급수 :: 2018/04/18 00:08

미래를 읽는 기술
이동우 지음/비즈니스북스

기업 입장에서
산술급수와 기하급수를 비교하면
당연히 기하급수가 매력적으로 보인다.
가치 생산의 흐름, 성장의 속도 측면에서 기하급수 메커니즘은 매력적이다.
기하급수적인 비즈니스 궤적을 만들어내길 누구나 희망할 것이다.

기업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있어도
산술급수와 기하급수는 흥미로운 개념이다.

생각의 흐름에 있어
기하급수의 메커니즘을 탈 수 있다면..

뇌의 구조 자체가 기하급수적 퍼텐셜이 강할텐데.
네트웍 구조에 걸맞는 생각의 흐름을 펼쳐낼 수 있다면
기하급수는 기업보다도 오히려 인간 내부에서 꽃을 피울 수 있는 컨셉일 수도..

결국 이건 과학일 것이다.
인간 기하급수 알고리즘을 푸는 것.
과학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인간과 기하급수 메커니즘을 연결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과학자들이 골몰했던
수많은 기업체들이 추구했던
그 시행착오들 속에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소박하고 거친 답변들이 숨어 있을 것 같다.

인간을 소외시키기 위해 자행했던 그 모든 시도들은
결국 인간에 대한 준엄한 질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아무리 인간을 소외시키기 위해 문명을 발전시키고 기술을 진전시킨다 해도
결국 그 모든 시도들은 인간을 향하고, 인간을 향해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수줍은 고백을 들려주게 되어 있다는 것.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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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신 러닝 :: 2016/07/29 00:09

마스터 알고리즘
페드로 도밍고스 지음, 강형진 옮김, 최승진 감수/비즈니스북스

머신 러닝이란 말.
내가 잘 모르는 기계가 진화해서
나에게 도움을 주는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얘기로 접수하면
현실과 크게 괴리되어 있다는 신호다.

여기서 머신은 통상적인 개념의 기계가 아니라고 받아들여야 다행이다.

기계 문물이 발전해서
기술이 진화해서
테크놀로지 드리븐 세상이 오는 것?

그런 게 아닌 듯 싶다.

인간은 이미 기계이고
그런 인간이 기계 관점에서 계속 진화당하고 있고 (자본의 요구에 의해)

그렇게 진화해 버리는 인간이
기계로써의 삶(?)을 지속해 나갈 때
인간이 아닌 기계로써의 러닝이 쌓일 때

그 러닝은 인간(?)을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전통적인 개념의 기계와
신 개념의 기계(우리가 인간으로 착각하고 있는 그것)
이 둘의 조합이 앞으로의 기계일텐데.

그 기계가 축적해 나가는 러닝은
이제 전통적인 개념의 인간 입장에선 너무나 멀리 나가버린,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그런 당황스러운 무엇이 되어가고 있다.

머신 러닝
인간에 도움을 주기 위해 발전하는 신문물이 아니라

바로 그 안에 인간이 있고
그 안에서 인간이 기계로서 자라나는 구조물

모든 인간은
이제 머신 러닝의 거대한 메커니즘 안에서 작동하는 신 개념 기계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바로 머신이고
내가 배워나가는 모습을 지칭하는 게 바로 머신 러닝이다.

이렇게 테크놀로지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허물어 냈고
경계가 이미 붕괴되어 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머신 러닝이란 개념을 대하고 있다면
나는 2016년을 살면서 1916년을 꿈꾸고 있는 것이겠다.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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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sjqnrdl | 2016/07/29 17:06 | PERMALINK | EDIT/DEL | REPLY

    "너무 멀리와 버린듯 하다"에,,
    공감이 되서.. 글 남깁니다.

    요즘 너무 세상이 빨리 발전하고 있어요..
    머신러닝(인공지능), 3D프린터, VR,IR, 드론.. 유전자 조작기술..
    몇년뒤에 어떻게 변해있을지 상상도안되는..

    글만 눈팅하고 글은 안 남겼는대 ..
    이 자리를 항상 빌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잘부탁드릴께요.

    • BlogIcon buckshot | 2016/07/31 10:15 | PERMALINK | EDIT/DEL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은 그 지점에서.. 생각을 할 수 있다면, 내가 누군지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면.. 멀리 와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먼 길은 의미 있는 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하기 버거운 주제이지만 조금이라도 잠깐이라도 반추할 수 있으면 의미가 생겨나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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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 2016/06/20 00:00

자전거는 페달을 밟은 만큼 움직인다.
페달 밟기를 멈추면 자전거의 속도는 줄어든다.
어김없이 페달을 다시 밟아야 한다.
자전거를 오래 탄다는 것은 페달 밟기를 오래 했다는 의미다.

나는 운전을 못한다.
차를 운전해본 경험은 없지만, 자전거를 타다 보면 자동차가 어떤 존재라는 것에 대해 약간 감이 온다.

문명의 이기 관점에서 자동차가 자전거보다 훨씬 더 우월한 존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 자전거를 타면서 드는 생각은..

하체 운동을 한 만큼 자전거는 움직인다는 것이고
자동차는 하체운동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스스로의 동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동차는 인간 신체의 확장이라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신체의 확장이 아니라 신체를 실어나르는 기구일 뿐이다. 자동차를 타고 아무리 많이 이동을 해봐야 신체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신체와 자동차는 분리. 따로 노는 두 존재. 신체는 자동차를 신체로부터 소외시키고, 자동차는 신체를 운동으로부터 소외시킨다. 자동차는 운동을 하고, 신체는 자동차에 올라타 있을 뿐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자동차를 운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운다.

확장성이라는 것.
손을 안대고 코를 푼다는 것.
알아서 뭔가를 해준다는 것.

그런 것들은 다 인간을 소외시키는 속성을 띠고 있다.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인간에게 가치를 준다는 지향점을 갖고 있으나 실상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들이 세상엔 참 많다.

자전거를 탈 때 기분이 좋아지는 건, 수많은 인간 소외의 현장에서 쌓인 소외감을 자전거 타기를 통해 살짝 해소할 수 있어서인 듯 하다.

페달을 밟은 만큼 움직일 수 있도록 고안된 자전거. 그 어떤 테크놀로지의 향연보다 더 화려한 메커니즘이다. 신체 운동의 입력에 비례해서 얻어지는 출력. 그 매력을 느끼면서 타는 자전거. 경제적이고 건강에 좋은 무해 이동 기구. 멋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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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6/06/21 04: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여전히 탁월한 통찰이세요. 맑스가 이야기했던 "자본가의 생산수단의 독점에 의한 노동자 소외"도 그때의 언어로 그렇게 재미없게 설명되서 그렇지, 사실은 궁극적으로 오늘날과 같이 테크놀로지가 점점 인간을 대체해가는 상황을 가리킨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언젠가는 결국 허물어지게 될거라고 믿지만, 말씀하신 소외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동시에 그만큼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네요.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개인적으로 감명깊게 보았던 이 TED 토크도 생각나구요. https://www.ted.com/talks/susan_blackmore_on_memes_and_temes?language=en (못보셨다면 buckshot님이 분명히 좋아하실 내용일 거라고 적극추천드려요 ㅎㅎ)

    자전거 타실때 꼭 미세먼지 조심하세요 ^^

    • BlogIcon buckshot | 2016/06/24 11:25 | PERMALINK | EDIT/DEL

      추천해 주신 TED 토크. 넘 좋은데요.
      계속 보고 있어요.
      이걸 기반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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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무용 :: 2016/03/23 00:03

기술의 발전은 결국 인간을 필요 없는 존재로 만드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 아닐지.

기술의, 문명의 발전이 어떻게 보면 인간을 이롭게 하는 흐름인 듯 하지만
사실상.. 인간을 이롭게 하는 척 하면서 자신 만을 위한 패러다임으로 객체인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인간이 굳이 주체적 존재로 작동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인간이 겉으로 보기엔 존재하는 듯 하지만
사실상 '인간'으로 작동하지 않는
그저 기계로 작동하는
아니 기계의 노예로 작동하는
그런 상황으로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있는 것 아닐지.

인간은 한낱 기계가 설정한 알고리즘 기반으로
기계가 툭툭 던지는 트리거에 움찔 움찔 반응하는
단순 반응 기제로만 작동하는 그런 하찮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지.

그것이 인간이 지금 가고 있는 길이라면.
아니 인간이 간다기 보다는 기계가 인간에게 가주길 바라고 강요하는 그런 길이라면.

인간으로 태어나서
'나'를 알아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그런 과업이 아닐런지.

그래서
내가 지금 이 순간 블로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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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확률계산기.. 바둑.. 인간.. 기계.. :: 2016/03/14 00:04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보면서 느낀 점.

알파고는 확률계산기이다.
그저, 바둑판의 비어있는 점들에 돌을 놓았을 때 이길 수 있는 확률을 각각 계산할 뿐이다.

바둑은 확률계산 게임이다.
19X19=361로 구성된 각각의 점에 경우의 수를 감안한 확률을 부여하면서 상대방보다 확률계산을 더 잘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

인간은 확률계산기이다.
바둑을 둘 때만 확률을 계산하지 않는다. 매사에 확률을 계산한다. 내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나의 뇌 속에선 항상 확률 계산이 수행된다. 지금 무엇을 하면 나에게 이로울 확률이 몇 %인가. 그에 대한 계산을 끊임없이 수행할 뿐이다. 

알파고는 차가운 확률계산기이다. 그리고 방대한 정보처리 역량을 갖고 있다.
감정이 없이, 서사도 없이 그저 최적의 위치를 찾기 위한 계산을 한다. 인간이 계산기보다 숫자 계산을 더 잘할 수 없듯이, 알파고는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연산 능력을 바탕으로 정교한 형세 판단을 한다. 바둑에서 흐름을 읽고 형세를 판단하고 승부수를 띄우는 것이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생각했지만, 알파고는 그것도 결국 계산의 영역에서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인간은 상상한다.
기계는 주어진 데이터를,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면서 계산을 한다. 기계는 아직 상상하고 이야기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반면, 인간은 확률계산과 함께 상상도 할 줄 안다. 상상을 하면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감정의 곡선을 따라 자아와 개성을 표출하고 색깔을 뿜어내면서 자신 만의 서사를 끌고 갈 줄 안다.

인간은 작가이다.
인간은 이야기를 생성하고 이야기와 이야기를 연결하여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모든 인간은 작가이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자신 만의 스토리를 써내려간다. 공식적으로 특정 인물에게만 부여되는 '작가'란 타이틀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모든 인간은 작가라는 엄연한 현실을..

단, 스토리텔링조차 계산의 영역으로 포괄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야기라는 건 결국 주어진 정보 기반으로 상상을 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행위 조차도 결국 존재하는 정보를 기반으로 한다. 기계가 이야기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계산 프레임에 넣게 되는 순간, 기계가 작가의 일을 수행하는 날이 결국은 올 것이다.

인간은 계산기가 되어가고 있다.
확률계산을 하든, 창작을 하든 그건 계산 행위이다. 결국 인간은 계산기에 불과한 존재인 것이다. 알파고가 우리에게 알려준 현실은 매우 간단하게 요약된다. 모든 인간은 계산기에 불과한 존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사실.

인간은 기계를 만들었고, 기계는 인간이 기계에 불과한 존재란 사실을 알려준다. 그건 인간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인간은 원래부터 기계는 아니었다. 기계의 속성을 갖고 있었을 뿐, 기계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로 진화할 가능성을 분명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기계를 만들고 그것에 의지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기계 이상의 존재가 될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고 기계 이하의 존재로 스스로를 규정하기 시작했다. 알파고는 그런 인간 노력의 산물이다. 스스로를 기계 이하로 규정하게 될 수 밖에 없는 프레임 속에 빠진 것이다. 문명은 그런 것이다. 인간 삶의 질을 높이려는 지향점을 갖고 있는 듯 하지만 결국 인간 존재를 격하시키는 흐름을 타고 있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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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D와 시간 :: 2015/09/18 00:08

VOD를 통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되니 참 편리하다.

본방을 꼭 사수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VOD로 원하는 시공간을 설정하는 건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VOD를 즐기면서
FOD를 연상하게 된다.

Time Flow On Demand

시계바늘의 흐름
상황의 흐름
의식의 흐름
시선의 흐름

VOD는
흐름을 편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기제인 듯 하다.

나는 VOD 메커니즘을 활용해서
방송,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VOD 메커니즘 속으로 틈입해서
시간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VOD로
내가 보는 건
방송,영화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일 듯 싶다.

문명의 이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문명의 이기로 퇴보된 상황 속에 놓이면서
프리퀄이란 기제로 들여다보는 오래된 미래(=과거)를 보는 것이고
오래된 미래와 대화하면서 그 과거가 실은 미래였음을 깨닫게 해주는 도구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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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콘 2 :: 2015/06/12 00:02

어느 날 TV 리모콘을 잃어 버렸다.
그래서 약 2~3개월 간 리모콘 없이 생활을 했다.
나름 리모콘 없이 TV를 보는 모습에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리모콘은 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리모콘을 다시 찾게 되었다.

리모콘이 생긴 김에
리모콘으로 TV를 보게 되니
무지 편하다.  이렇게 TV를 편하게 볼 수 있구나란 새삼스런 느낌.

근데 리모콘 없이 생활했던 지난 시간들이 그렇게 힘들고 불편했나?
아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리모콘의 존재 자체가 내 맘 속에서 흐릿해져 갔다.

그럼 리모콘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저 있으면 편하지만
없다고 해서 그렇게 딱히 아쉽지는 않은 그런 존재.

문명의 이기들은 대개 그런 속성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익숙해진다는 건 참으로 강력한 메커니즘이다.
문명의 이기들은 계속 새로움으로 무장한 채 우리 앞에 출현하지만
그것들은 실상 우리 생활에 가치를 주기 보다는
뭔가 새로운 가치를 주는 것처럼 우리의 뇌를 현혹할 뿐
존재의 이유는 밋밋한, 시간과 함께 존재 자체가 흐릿해져 가는 듯 하다. ^^



관련 포스트
리모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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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콘 :: 2015/04/13 00:03

어느 날 TV 리모콘을 잃어버렸다.

도저히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리모콘 없이 TV를 켜고 리모콘 없이 채널을 돌리게 되었다.

정말 불편하다.
이젠 TV 채널을 함부로 돌릴 수가 없다.
한 번 선택한 채널을 뚝심 있게 봐야 한다. 채널 한 번 바꾸려면 너무 번거로우니까.

리모콘이 없으니까 리모컨으로 TV를 보는 게 얼마나 편리한 것인지 알게 된다.
채널을 휙휙 돌리기 어렵게 되다 보니 TV를 시청하는 방식이 20~30년 전으로 돌아간 듯 한 느낌이다.

그렇게 몇 주의 시간이 흘러갔다.

이젠 리모콘이 더 이상 그립지 않다.
80~90년대 스타일로 TV를 본다. 그 경험. 은근 나쁘지 않다.

하지만, 어느 날 리모콘을 찾게 된다면
아마 새로운 세상을 접한 듯한 경험의 변화를 맛보게 될 것이다.
순식간에 타임머신을 타고 20~30년을 훌쩍 뛰어넘게 되겠지

문명의 이기가 생활 속에 깊이 침투해 있는 상황 속에서
때로는 하나 정도 선택해서 그것을 생활 속에서 지우는 놀이를 해보면
매우 제한적이긴 하나 제법 생생한 타임슬립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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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악의 힘 :: 2013/03/15 00:05

리더는 조직을 좋게 만들 힘은 그닥 갖고 있지 못하다. 조직은 조직원들이 좋게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하지만 리더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조직을 나쁘게 만드는 힘. 그 힘이 너무도 크기에 리더란 위치는 매우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리더는 자신이 뭔가를 해서 조직을 좋게 만들려는 의지 보다는 내 자신이 하는 일들이 조직에 어떤 나쁜 임팩트를 미치는지에 대해 매우 민감해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좋게 만들려는 의도는 환상에 가까운 것이다.

문명도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자 문명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구르고 굴러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문명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수많은 개악들이 얼마나 많은지. 뭔가를 좋게 만들려는 의지로 구현한 것들이 결국 이전보다 개선한 것이 그닥 없는 허무한 결과들을 낳은 케이스들이 대부분이 아니던가. 문명은 진보로 포장된 퇴행일 것이고 문명의 발전은 '오래된 미래'를 뒤늦게야 이해해 나가는 멋쩍은 뒷북형 학습 해프닝에 불과한 듯하다.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의지는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의도와는 달리 질서는 그리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무질서가 끊임없이 창발한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풍선효과와도 같아서 한 쪽을 누르면 다른 한 쪽이 튀어 나오는 현상의 무한 반복일 뿐이고 그런 쳇바퀴 속에서 뭔가를 했다는 자위는 공허함만을 더할 뿐이다.

개악은 왜 자행되는가?

개선을 향한 인간의 맹목적 본능이 낳은 환상이 인간의 감각기관을 마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개선보단 개악을, 진보보단 퇴보를, 질서보다는 무질서를 낳는 경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좀처럼 인정하지 못하고 그저 생존만을 위한 몸부림으로 생 전체를 일관하는 유전자와 하등 다를 것 없는 개선과 진보를 향한 기계적 몸부림을 아무런 자기비판적 태도 없이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기계적 행동은 유전자 속에 깊숙이 프로그래밍된 유전형질과도 같이 인간의 몸과 마음 속에 견고하게 장착된 채 인간을 유린하고 있는 모습.

개악의 중력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

우선, 맹목적 본능의 기계적 진행을 멈춰야 한다. 본능의 움직임을 느끼고 그것을 제어할 수 있어야 개악과 정면으로 맞설 수가 있다. 어리버리 있다간 본능은 저만치 앞서 달려나가기 마련이다. 이미 달리기 시작한 본능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본능이 본격적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감지하고 본능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일단 말을 걸게 되면 본능은 주춤할 수 밖에 없다. 본능이 주춤거리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맹목적 개악의 몸짓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나의 행동이 개악과 개선 중 어느 쪽으로 좀 더 기울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대개 개선 만을 바라보고 싶어하는 본능 때문에 개악의 효과를 직시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개악이 개선을 압도하기 쉽다는 인간 존재의 미약함을 확실하게 인정하는 순간 개악과 개선을 구분할 수 있는 중립적 판단 능력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사실, 개선과 개악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개악을 덜 했는가의 문제라고 깨끗이 상황을 시인하고 나면 판단력은 명징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악을 자제하려는 마음가짐을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뭔가를 하면 할수록 나빠지기 쉽다는 것을 몸과 마음에 프로그래밍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이 태어날 때 부여된 프로그램만 평생 죽어라 수행하다가 떠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너무 허무하다. 자신에게 주입된 프로그램 말고 자신이 스스로 주입한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로봇같이 흘러가기 쉬운 기계적 인간 삶에 청량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만 어이없는 뇌 놀음에 평생 유린당하는 바보 같은 삶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나의 개악 능력을 시인하고 그것을 인지하고 자제할 수 있는 삶을 지향하 수 있어야 한다. 태어나서 살아가다 뭔가를 바꾸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보람 있었다고 자위하는 환상 속 삶은 지양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개선의 포스가 아니라 개악의 포스이다. 그 포스를 마음대로 휘두르며 끊임없이 세상을 개악할 것인가? 아님 그 포스를 내가 새롭게 창제한 나만의 프로그래밍 기법으로 현명하게 조종할 것인가? ^^




PS. 관련 포스트
무위, 알고리즘
질서,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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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net :: 2012/01/06 00:06

휘발되기 쉬운 생각을 종이나 스마트폰에 적는 것은 분명 효율을 높이는 행위다. 하지만, 휘발되기 쉬운 생각을 머리(?) 속 가상 종이/스마트폰에 적는 것은 효율 제고를 넘어 생각 프레임 자체를 혁신시킬 수 있는 행위다. 인간은 항상 새로운 도구를 고안해왔다. 하지만 도구는 인간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인간을 소외시켜왔다. 도구를 외연화시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제 도구를 내연화시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을 뇌(?) 안에 구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스마트패드.. 스마트디바이스에서 스마트의 주체는 누구인가? 스마트디바이스 사용자? 결코 아니다. 스마트디바이스의 주체는 디바이스 자체다. 디바이스가 스마트해져서 사람을 디바이스의 종속물로 전락시키는 것이 스마트디바이스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도구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가고 도구를 사용하는 자가 도구의 수단이 되어가는 것이 스마트디바이스가 전개하는 새로운 양상이다.

휘발되는 것이 싫어서 기록을 하고 망각하는 것이 두려워서 리마인드를 당하는 것. 휘발을 기피하고 망각을 회피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자세일까? 어디서 어디로 휘발되는 것이고 누가 무엇을 망각하는 것일까? 스마트디바이스가 주고 있는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이 인터넷이고 나 자신이 스마트디바이스가 되면 안될까? 이미 내 안엔 인터넷 부럽지 않은 고도의 신경회로가 존재하고 내 몸은 그 어떤 디바이스보다도 더욱 스마트하다. 그것을 내 자신이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스마트도구의 힘을 빌려 스마트해진다는 착각을 하는 동안 도구로부터의 소외 현상은 더욱 심각해져만 갈 뿐이다.

나의 외연에 인터넷이, 스마트디바이스가 맘대로 존재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된다. 내 자신의 사고회로가 인터넷이 되어야 하고 내 몸과 마음의 작동회로가 스마트해져야 한다. 결국 도구 진화의 종착역은 인간 자체일 수 밖에 없다. 문명의 진화, 도구의 진화는 결코 고도화가 아니다. 그저 랜덤 주사위 놀이가 자아내는 수평적 변화일 뿐이다. 아니, 수직강하일 수도 있다. ^^




PS. 관련 포스트
지뇌,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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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데굴대굴 | 2012/01/06 18:40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 동안 만날 수 있는 정보가 '나 밖의 자료'였음에 반해,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나의 자료'로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전에는 내가 가야하는 맛집의 위치를 찾았다면,
    이제는 내 주변의 맛집으로 바뀐 것이죠.

    이런 변화는 (이게 과연 스마트인지도 의문 스럽지만)
    스마트한 도구의 힘을 빌어 스마트해지는게 아니라,

    머리 속에 불필요한 것을 스마트한 도구에 밀어넣음으로써
    내 머리 속의 공간을 확보하고 보다 바르게 생각하는게
    스마트 디바이스를 접하는 바른 사용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1/07 10:55 | PERMALINK | EDIT/DEL

      데굴대굴님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스마트 디바이스를 사용하면서 도구에 대한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스마트 디바이스는 저에게 큰 메세지를 주고 있는 셈입니다. 귀한 댓글 주셔서 감사해요~ ^^

  • Wendy | 2012/01/11 15: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외연의 함정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 때에 이 포스팅의 발견이 곧 '오아시스'가 되어주네요. 스마트 디바이스가 진정 내게 일말의 스마트함을 안겨줄 것만 같았었는데, 종속되어가는 이 느낌을 이제는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스마트 디바이스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하모니를 이루도록 잘 지휘하는, 더 나아가 나의 브레인 속에서 회로들과 시냅스들을 잘 관리하여 하나의 스마트 디바이스를 만들어야겠단 당찬 다짐도 더불어 해봅니다. 자극받고 숑숑 달려다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2/01/11 20:08 | PERMALINK | EDIT/DEL

      Wendy님께서 제 블로그에 보내주시는 관심이 저에게 진정 스마트해질 수 있는 용기를 주고 계신답니다. 넘 감사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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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BM :: 2011/12/23 00:03

우리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말에 쉽게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전 세계가 쓰나미, 블랙스완을 연상케 하는 극단적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한다는 식의 겁주기 메시지에 나름 순응적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세상은 불확실성 급증의 도가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불확실성이 커지는 이유를 외부 환경의 격변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고, 불확실성이 커진다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알기 쉬울 수는 있겠으나, 실상은 불확실성이 급증한다기 보다는 불확실성을 급속하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겠다. 즉, 극적인 변화는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의 수위 보다는 그것을 인식하는 인간의 마음 속 불안감의 수위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확실성은 예측용이성/통제용이성의 반대 의미를 가진다. 인간은 항상 뭔가를 더 예측하고 싶어하고 통제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커지는 쪽으로 시간을 보내왔다. 문명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외부 환경에 대한 예측력과 통제력은 비약적인 고도화를 거듭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거대한 착각일 수 있다. 자고로 문명이 발전되는 동안 인간이 정말 질적 성장을 기록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쉽게 대답이 잘 되지 않는다. 원시시대 대비 생명 위협이 현저히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닥 위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양산하며 두려움의 총량을 유지하고 있다. 원시시대나 현대나 인간은 두려울 것이 있어야 안심한다. 인간 뇌는 두려움을 먹고 사는 기관이다. 인간 뇌는 마치 두려움이 유통되지 않으면 심심해서 미쳐버릴 수도 있다는 듯 끊임없이 두려움을 생성하고 소비한다. 문명 발전이 산출한 최대의 성과는 '원시시대의 원초적 두려움을 현대의 세련된 두려움으로 치환시킨 것'이 아닐까. 인간 뇌 속에 똑같은 두려움이 유통되면 인간 뇌가 지루해할까 봐 끊임없이 새로운 두려움을 인간 뇌 속에 주입시킨 것이 문명의 주요 과업이 아니었을까. ^^

예측용이성, 통제용이성을 높여간다는 착각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불안을 생산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소비했다. 그리고 그런 생산-소비의 순환 고리 속에서 불안 BM은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어느 시대나 인간 마음 속에 잠재한 불안을 자극하고 증폭된 불안에게서 돈을 뜯는 불안 BM이 존재했다.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것. 불안감이 커진다는 것. 두려움과 끝없는 숨바꼭질을 하고 싶어하는 인간 뇌를 자극하는 불안 BM의 존재. 불확실성, 불안감, 불안 BM은 매우 견고한 삼각편대 체제를 구성한다. 그 강력한 삼각 압박에 너무 많이 농락당하면 세상은 정말 불확실성의 소용돌이로 보일 것이다. 불안 BM을 직시하면 불안 BM에게 주입을 강요 받았던 내 마음 속 불안감은 실체성 여부를 검증 받게 것이다. 그리고 불확실성이란 단어에서 불필요한 강박은 필터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불확실성이란 단어를 당연한 느낌으로 어리버리 수용해선 안 된다. 확실한 것 하나만 견지해도 불확실성이란 단어는 충분히 무력화시킬 수 있다. 확실한 것 하나는, 실체 없는 불확실성과 뜬금 없는 불안감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극단, 알고리즘
예측, 알고리즘
[변화관리] 두려움 vs.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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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선, 면, 입체, 그리고.. :: 2011/12/07 00:07

A는 점에 머무는 자였다.

A는 점이 항상 답답했다. 항상 한 자리에 멍하니 머물러 있는 자신이 바보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유를 꿈꿨다. 어디로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움직이고 싶었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보고 싶었다. A는 점을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했고 점이 자신을 구속하는 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A를 둘러 싼 공간은 점에서 선이 되었다.
A는 너무나 기뻤다. A는 선 상에서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예전 점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자유감을 맛 볼 수 있었다. A는 선이 새롭게 열어준 진보된 세상 속에서 사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어느 날 A를 둘러 싼 공간은 선에서 면이 되었다.
A는 이전의 '선' 시절을 까맣게 잊고 면이 선사하는 꿈같은 신천지를 마음껏 누비고 다녔다. 면에서 생활하다 보니 과거의 선 생활을 돌이켜 보면 너무 끔찍하단 생각이 들기조차 했다. 도대체 선에서의 생활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젠 예전 선 생활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느 날 A를 둘러 싼 공간은 면에서 입체가 되었다.
A는 이제 모든 것을 얻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나의 세상은 완성이 되었구나. 이제 나는 이 놀라운 세상 속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구나. 예전의 면, 선, 점에서의 생활은 이제 나에겐 흐릿하게 잊혀져만 가는 원시적 과거에 불과하겠구나. A는 입체 속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꿈만 같았다.

A는 입체에 머무는 자가 되었다.

그런데.. A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A가 머물고 있는 입체는 아주 오래 전에 A가 머물던 점 속에 잠재하던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결국 점은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빅뱅 이전의 공(空)과도 같은 상태였다는 것을.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고 면이 입체가 되는 과정은 발전이 아닌 단지 점이 추는 가벼운 춤에 불과했다는 것을. 결국 A가 머물고 있고 A가 너무도 자랑스러워 하는 '입체'는 점을 너무도 그리워하고 있고 언젠간 꼭 점이 되고 말리란 꿈을 단 한시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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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파동, 언어의 파동 :: 2011/05/20 00:00


트위터, 모바일 등으로 인해 실시간 웹/커뮤니케이션의 묘미를 느끼게 된 듯 하나, 오히려 난 비동시적 커뮤니케이션의 참 맛을 새삼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
동시대를 산다는 것,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의 의미는 과연 뭘까? 허상이 아닐까? 세상에 같은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우린 저마다 다른 자신만의 시공간 속을 살아가고,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시공간의 근접성에 대한 착각(?) 때문에 동시대를 살아가고,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일 뿐. 시공간을 점유(?)하는 수많은 노드들 간의 거리는 그닥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의 속도는 빛보다 빠르다.

생각이란 무엇일까?
생각이란 양자에 가깝지 않을까?

시공간 상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진 생각과 생각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양자역학의 비국소성 원리가 '생각'에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시공간 우주 자체가 거대한 네트워크이고, 광물/식물/동물/인간은 거기에 접속되어 있는 컴퓨터 터미널과도 같다고 볼 수도 있겠다. 만물은 진동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언어를 파동의 형태로 우주 만방을 향해 발산하고 있다. 나는 나만의 신호를 송신하고 시공간을 흐르는 수많은 신호를 선별 수신한다. 만물의 진동은 곧 의도이다. 만물은 의도를 송신하고 의도를 수신한다. 파동과 파동의 중첩 속에서 패턴은 의도되고 구현된다. 의도는 보는 것이 아니라 울림을 느끼는 것이다.

문명이란 무엇일까?
문명은 진보로 포장된 퇴행 아닐까?

문명의 발전은 '오래된 미래'를 뒤늦게야 이해해 나가는 멋쩍은 뒷북형 학습 해프닝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인간 인지구조의 한계로 인한 뒷북형 학습 해프닝 때문에 고전물리학 이후에 '양자'를 다룬 현대물리학이 나온 것일 뿐, 현대물리학의 내용은 오래된 미래 그 자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인류가 오래 전부터 해왔던 '생각'의 궤적을 현대 물리학은 이제서야 이해를 해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어란 무엇일까?
언어야말로 개인화의 표상 아닐까?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서로 다른 언어와 언어가 만나서 이뤄지는 상호작용이다. 이해와 오해의 역동적 믹스. 한국어라고 다 같은 한국어가 아니다. 나는 나만의 언어를 갖고 있다. 나만의 언어를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다른 사람의 언어를 내가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언어는 계속 진화한다. 세상엔 사람의 수 만큼의 언어가 존재한다. 살아간다는 건 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와 교감하는 과정이다. 나와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내 언어를 다른 언어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이 인생력이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random한 생각의 파동을 블로그에 아무 생각 없이 기록한다.
파동하는 인간. 나는 파동인이다. ^^



PS. 관련 포스트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2 - Compilation Post
가설, 알고리즘
심로,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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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8=5840H | 2011/05/20 23: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가 올갈때는
    당연히 언어의 한계를 많이 느끼죠.
    인생력이 부족한건 말할것도 없구요.ㅎㅎ
    가끔 아바타의 교감촉수가 있었으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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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유전자 vs. 초고속 문명 :: 2010/07/28 00:08

소비자의 주목이 정보과잉 시대의 가장 희소한 자원으로 자리잡으면서 주목/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는 이제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결국 소비자의 제한된 시공간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점유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Attention은 특정 정보에 집중된 정신적 관여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지각되는 다양한 정보 중에서 특정 정보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그에 따라 행동을 한다. 따라서 관심이 없으면 행동이 일어날 확률도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다.

토마스 데이븐포트는
The Attention Economy(관심의 경제학)에서 그동안 은유적 화폐로만 기능하다 (Pay Attention to ^^) 21세기를 맞아 본격 신상 화폐로 급부상하고 있는 'Attention'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길 늘어 놓는데..  제4장에 재미있는 얘기가 나온다.  

우리 대부분은 기업을 치밀하고 논리적이고 지능적이며, 태도와 행동에 있어 천사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 있는 집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떤 기업이든, 어떤 집단이든 기본적으로는 유인원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과 비비원숭이는 유전자 구조가 96% 동일하고, 고릴라는 97%가 동일하다.  우리 인간의 유전자에 입력되어 있는 행동과 반응 양식은 우리 선조들이 침실이나 사무실이 아니라 숲과 들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발달해온 것이며, 이런 진화의 기원은 여전히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받고 유지하는 방식을 지배하고 있다.


즉, 인간의 주목(관심)을 경쟁자보다 더 많이 획득하기 위해선 인간을 이성적/논리적 측면보다 정신생물학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유효하다는 얘기인데...  이 글을 보니 갑자기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에서 에드워드 윌슨이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 인간은 애당초 수렵채집 생활에 알맞도록 적응되어 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유전자 수준에서는 별다른 진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우리 현대인은 사실 능동적으로 변화시킨 환경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며 살아가는 원시인들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자꾸만 현대를 살려 하지만 우리의 유전자는 여전히 야생을 살고 있다.

인간이 몸과 마음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유전자는 여전히 원시시대를 살고 있다는 얘긴데..  그럼 앨빈 토플러가 부의 미래에서 얘기했던 '시간'이라는 심층 기반 관점에서의 '속도 충돌'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은 어쩌면 인간 유전자 vs 인간 문명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사고/행동을 상당한 힘으로 통제하는 인간의 유전자는 변화가 넘 느린데 비해 인간 문명의 발달 속도는 심한 초고속이니까.. ^^


인간의 관심, 욕구에서 원시적 본능이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계속 확인하면서 어느덧 생각은 재작년 7월3일에 올렸던
뉴로마케팅과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 구뇌를 자극하는 사기 마케팅까지 이동한다.  인간의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구뇌의 성향이 아래와 같다는 점이 이 책에서 가져가야 할 핵심 내용이다.

1. 구뇌는 자기중심적이다.
    구뇌는 자신의 안위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다.
2. 구뇌는 명확한 대조에 민감하다.
     구뇌는 전/후, 위험/안전, 유/무, 느림/빠름과 같은 대조관계를 통해 결정을 내리길 좋아한다.
3. 구뇌는 실체적 정보를 원한다.
    구뇌는 구체적이고 단순하고 빠르게 인식할 수 있는 개념을 선호한다.
4. 구뇌는 시작과 끝을 기억한다.
   구뇌는 시작과 끝의 중간에 일어나는 일은 대부분 기억 못한다.
5 .구뇌는 시각지향적이다.
    구뇌는 인체의 시신경과 연결되어 있고 청각신경보다 25배나 빠른 반응을 일으킨다.
6. 구뇌는 감정에 강하게 자극받는다.
    어떤 사건이 감정적 반응을 강하게 일으킬 경우 구뇌는 그것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인간은 소비의 총합이다. - Consuming is Broadcasting Personal Identity.포스트에 대한 alankang님의 과시적 소비와 요란한 선행 트랙백이 인상적이다.

과시적 소비라는 것은 오늘날의 소비자가 똑똑해졌기 때문에 없어질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경제 행위가 아닙니다. 인간의 과시적 소비는 (조류와 포유류의 공통 조상까지는 고사하고) 그 역사를 영장류 까지로만 치더라도 최소한 수백만년간 이어진 본성이고, 하루아침에 바뀔만한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결국 인간의 관심 → 동기유발 → 소비 행위로 이어지는 연쇄 고리 상에서 오랜 세월 동안 인간 유전자 속에서 좀처럼 변화하지 않고 내재화되어 있는 원시적 본능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엔 그냥 당연하거나 개연성 있는 이론으로 가볍게 읽고 흘렸던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Maslow)의 욕구 계층 이론에 대해 한 번 더 시선(관심)이 가는 느낌이다. 이 이론은 분명 Attention Economy를 성공적으로 리드하고 싶은 기업이나 개인 입장에선 깊은 분석과 이해의 필요가 있는 유력한 인간 심리/행동 가설 수립을 위한 좋은 프레임워크임이 분명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간의 Attention이 야생으로부터 시작되므로
Attention을 이해하고 획득하기 위해선
야생에 대한 통찰력부터 길러야 한다.. ^^





PS.
오늘 포스트는
2년 전 오늘 올렸던
Attention은 야생으로부터 시작된다를 그대로 올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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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 - 자전거, 콘돔, 천장선풍기, 빨랫줄, 타이국수, 공공도서관, 무당벌레 :: 2007/06/03 00:01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
존 라이언 지음, 이상훈 옮김/그물코







어떻게 하면 지구라는 거대한 환경을 오랫동안 보전할 수 있을까?

노스웨스트 환경기구의 수석연구원 존 라이언은 지구 자원과 생태계의 고갈/오염을 극복할 수 있는 7가지 방법(물건)을 제시한다.

1. 자전거
경제적이고 건강에 좋은 무해 이동기구이다. 

2. 콘돔
세계 인구를 지구가 부양할 수 있는 적정 수준으로 억제하는 일을 해준다.

3. 천장선풍기
에어컨의 10%에 불과한 전력을 소모하지만 실내온도 저하효과가 뛰어난 에너지 절전형 가전제품이다.

4. 빨랫줄
전기/가스의 도움 없이 태양/풍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5. 타이국수
채식을 많이 해야 고기를 얻기 위한 인위적 노력이 줄면서 생태계 오염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6. 공공도서관
책을 사서 보지 않고 도서관에서 보면 그만큼 나무를 덜 벨 수 있다.

7. 무당벌레
해충을 먹어주기 때문에 화학살충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살충제는 흙의 생태계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결국 서구화된 소비문화에 커다란 경종을 울리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서방에서 수입한 문명/문화가 전반적으로 지구친화적이지 않고 지구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매우 불편하다.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물건이 갖고 있는 의미를 잘 새겨보고 지구촌에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지구를 살리는 실천이 모아질 때 지구의 미래가 확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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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화랑 | 2007/06/05 01: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지난해 도심의 오피스텔에 살았을적에...
    초가울에 창문을 열어놓고 잤다가 다음날 일어나보니 무당벌레 수십마리가 무단침입했던데...
    인간해충인 나를 테러하러 온 것이란 말인가? ^^ㅋ

    • BlogIcon buckshot | 2007/06/03 16:12 | PERMALINK | EDIT/DEL

      앗, 그럴리가요.. ^^ 지구를 지켜주시는 7대 사도 중의 일원으로써 뭔가 지구환경을 위협하는 어떤 기운을 느끼시고 집단방문을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BlogIcon GoodLife | 2007/06/04 11: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재미나네요 - 물론 이것들이 효과가 있을려면... 얼마나 기다려야할까요?

    • BlogIcon buckshot | 2007/06/04 12:52 | PERMALINK | EDIT/DEL

      인간의 건강과 지구의 건강에 대한 의식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니 조만간 의미있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기대하고 싶습니다. ^^

  • BlogIcon 하늘달리기 | 2007/06/04 13:29 | PERMALINK | EDIT/DEL | REPLY

    포스트롤 보고 천장팬을 집에 달아보려고 오픈마켓을 좀 뒤져봤는데...흠~
    천정 높이가 3m 이하의 구조라면 별로 효과가 없다고 하는군요 ^^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인데...아직 에어컨이 없어서 ㅎㅎ
    어쨌건 유익한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7/06/04 15:59 | PERMALINK | EDIT/DEL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3m가 안되어서 천장선풍기를 달고 싶어도 달기가 난처한 상황입니다. 지구를 살린다는게 역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

  • BlogIcon 나인테일 | 2007/06/04 16: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6번 같은 경우엔 작가들이 보면 피를 토할 겁니다. 지금도 대여점이랑 전쟁을 치르느라 피곤에 쩔은 작가들과 출판사에서 저런걸 보면 절망할지도 모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7/06/04 17:03 | PERMALINK | EDIT/DEL

      헉~ 그렇네요. 6번은 맨 나중에 현실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공공도서관에 가는 건 좀 부담이 되고 앞으로도 계속 책을 사보게 될 것 같습니다~

    • BlogIcon 민서대디 | 2007/06/05 15:45 | PERMALINK | EDIT/DEL

      공공 도서관을 동마나 하나씩 운영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중대형은 동에 하나. 소형 서점은 각동마다..^^

      예) 신림동 : 중대형 공공도서관
      신림1동 : 소형 도서관
      신림2동 : 소형 도서관
      :
      :

      이렇게 되면 너무 꿈같은 얘기 일까요?

    • BlogIcon buckshot | 2007/06/05 15:48 | PERMALINK | EDIT/DEL

      거점별 도서관 운영체제로 전국민의 독서 니즈를 무리없이 소화하겠다는 아이디어네요.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인테일님께서 도서관의 성장에 너무 우려를 하고 계시는 것이 마음에 좀 걸립니다.. ^^

    • 에스 | 2009/06/07 21:57 | PERMALINK | EDIT/DEL

      공공도서관이 많아지면 책을 도서관에서 기본적으로 소화해내는 양이 많아져서 작가나 출판사들에게도 득이 된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06/07 22:34 | PERMALINK | EDIT/DEL

      아..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

  • BlogIcon 그리스인마틴 | 2008/01/11 14: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단순하면서도 숨은 의미가 깊네요.
    자전거... 하나 사고싶네요.

    진짜 짧은 글인데도 생각을 하게 해주네요.
    잘보고 갑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1/11 17:09 | PERMALINK | EDIT/DEL

      저도 회사만 가까우면 자전거를 사고 싶습니다.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

  • dark evil | 2008/06/16 20:2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책 상당히 재미가 있어요~~~~

    • BlogIcon buckshot | 2008/06/16 20:51 | PERMALINK | EDIT/DEL

      요즘 물리학,생물학 서적을 많이 읽고 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이 팍팍 가슴에 와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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