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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 :: 2013/08/02 00:02

불확실성은 두려움을 낳고 불안을 낳는다. 인간은 두려움/불안에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인간은 불확실성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이 있다. 사실 불확실성은 가치 중립적 개념인데도 말이다. 불확실성을 직시하고 그것이 긍정의 불확실성과 부정의 불확실성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불확실성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

불확실성을 논의하기 이전에 인간 상태 자체부터 먼저 짚어 보자. 누구나 매일 잠을 자고 매일 잠에서 깨어난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나의 상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어제 잠들기 전과 비슷한 몸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일 경우다. 몸은 서서히 노화하기 때문에 하룻밤 사이에 갑작스런 변화가 일어나진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미 있는 태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의 상태를 어제의 나와 비교하는 것. 그게 맞는 건가? 오늘 아침의 내가 어제 밤의 나와 똑같아야 하는 법이 있는가? 어제와 오늘의 나를 단절시켜 놓고 오늘의 나를 '무(無)'와 비교해 보자. 불확실성의 시대를, 아니 불확실성이 원래부터 가득했던 세상을 살아가면서 왜 어제 잠들기 전의 나와 오늘 아침 깨어난 나 사이에 연속성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오늘 아침의 나를 어제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나가 아닌 '무'에서 홀연히 등장한 놀라운 '유'로 규정하면 안 되는가? 사실 어제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오늘의 나 자체가 충격이고 기적 아닌가?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하지 않은가? 



인간은 수시로 디폴트를 체크하며 현재 상태를 살핀다. 항상 기준점을 필요로 하면서 수시로 자신의 상황을 비교할 대상을 찾는다. 그런데, 그건 인간 인지력의 나약함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비교하면 할수록 자신에 대한 판단력은 약해진다. '나'는 그저 나일 뿐인데 자꾸 나를 뭔가와 비교하는데 몰입하면 '나'는 흐릿해져만 가고 흐릿해진 나를 바라보며 점점 불안감은 증폭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꾸 뭔가를 디폴트로 규정하고픈 본능을 살짝 눌러주면서 디폴트 '무'의 법칙을 서서히 몸으로 익혀 보자. 오늘 아침 깨어난 나의 모습을 디폴트 '유'(어제 잠들기 전의 나)와 비교하지 말고 디폴트 '무'와 비교해 보자. 불확실성에 디폴트 '무'의 법칙으로 대응해 보자. 그럼 불확실성은 사실상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 불확실성은 디폴트 유의 법칙이 강력하게 작동할 때 권력을 갖는 것이지 디폴트 무의 법칙을 인간이 활용하는 순간부터 불확실성은 거대한 불안/공포에서 왜소한 역동성 정도로 리포지셔닝될 것이다. 



핵심은,

인간의 뇌리를 환영처럼 지배하는 개념을 객체화시키면 모든 것이 자명해진다는 것.

나는 알아가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시 하는 일상들의 흐름이 내겐 기적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현재의 자신과 대비해서 모든 것을 판단하지만 나는 그게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 나의 현재는 '무'와 비교되어야 하는 긍정적 충격이라는 것을. 나는 항상 충격과 기적 속을 살아가는 것이다.
긍정적 충격과 기적이 내 안에서 수시로 작동하고 있는데 뭘 불안해 하는가? 세상에 만연한 불확실성보다 훨씬 역동적인 시스템이 내 안에 있는데 나는 그렇게도 파워풀한 것을 들고서 왜 덜 파워풀한 것에 기가 죽는가?

디폴트 '무'와 항상 나를 비교하자. 그럼 불확실성이 매우 순한 어린 양처럼 보일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욕망은 수동태이다.
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BM
예측, 알고리즘
극단,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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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감과 세(勢) :: 2011/10/10 00:00

접속은 무엇인가에 연결되는 것이다. 접속을 통해 연결감을 느낄 수 있으려면, 무엇인가로부터 단절되어 있어야 한다. 접속은 단절을 전제할 수 밖에 없다. 접속을 통한 기쁨과 단절을 통한 기쁨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접속하고 싶어서 접속을 했는데 그 접속을 통해 기쁨이 충만하지 않다면 그건 단절의 결핍으로 인한 접속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단절이 없는 접속은 불면의 밤을 끝없이 헤매는 것과 같다. 확실한 단절이 있어야 접속감은 극대화된다. 깊은 잠과도 같은 단절이 충만할 때 접속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접속을 즐길 수 있으려면 단절의 감미로움을 맛볼 줄 알아야 한다.

손자병법 兵勢(병세)편의 말미에 아래와 같은 말이 나온다.
故善戰人之勢, 轉圓石於千之山者, 也.   고선전인지세, 여전원석어천인지산자, 세야.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사람의 싸움의 세는 마치 둥근 돌을 천 길이 되는 급경사의 산에서 굴러 내려가게 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곧 세다.

접속감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일종의 勢(세) 형성이다. 세상엔 수많은 세가 존재한다. 접속과 단절은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흘러 다니기 마련이다. 접속을 즐기면서 단절을 살짝 그리워하고 단절을 즐기면서 접속을 살짝 그리워하는 자는 접속-단절의 勢(세)를 향유하는 자이다. 접속과 단절은 결국 하나라는 것. ^^




PS. 관련 포스트
좀비, 알고리즘
real-time web의 늪
휴식감과 세(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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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색, 알고리즘 :: 2011/08/31 00:01

4년 전에 올린 포스트에
[색즉시공 공즉시색] 반야심경, 천개의 고원, 노마디즘

최근에
아래와 같은 댓글을 선물로 받았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것은 주역에서 무극이란 무에서 에너지화 된 태극이 되어 음과 양으로 분리되고 이것이 다시 물질계에서 6개의 변수에 의해서 2^6개 즉 64가지 경우의 수를 만드는데. 즉,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 무의 세계에서 유의 세계로 변화된 세계이지요. 무의 세계는 에너지 세계인데 그 에너지의 세계 이전의 무는 에너지 이전단계입니다. 이것을 반야심경에서는 공이라고 하고. 유대의 카발라에서는 아인소프 주역에서는 바로 무극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물질로 현현한 세계는 하나이지요 즉 우리나라에서 천부경에서는 음과 양 모두 하나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되는 것이구요

無는 energy 의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주역에서는 陰에 해당하고
有 즉 있음의 세계 물질계는 보이는 陽의 세계이지요.
E=mc^2
즉 에너지와 물질의 등가 법칙이 성립하는 식인데 우변의 물질의 특성인 질량이 있고 좌변은 에너지인데 이것은 파동이 아주 짧아서 형태가 없는 기체나 불처럼 불완전한 상태이지요 그러나 이것이 핵자 즉 양성자나 중성자에 잡혀서 안정화 된것이 물질입니다.

이 우주는 특이성 즉 에너지 상태에서 빅뱅으로 물질로 현현한 것이지요. 이것이 허블의 법칙인데. 이것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한 것이고 불교철학이나 기독교에서도 있음의 세계 이전을 무로 상정합니다. 무라고 해서 진짜 무가 아닌 에너지 상태를 의미하지요.

끝으로 특이성 상태는 에너지 상태를 의미합니다.



4년 전 포스트에 달리는 댓글은 지나간 4년의 세월을 반추하게 한다.
그 동안에 이 주제에 대한 생각의 성장이 전무했음을 반성하는 동시에
4년 전 포스트에 나의 댓글을 적을 때가 도래했다는 느낌이. ^^



PS. 관련 포스트
[색즉시공 공즉시색] 반야심경, 천개의 고원, 노마디즘
기억의 소환
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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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

    Tracked from toms s | 2013/06/13 10:50 | DEL

    Pictures are really pleasant source of education instead of text Read & Lead - 공색, 알고리즘, its my familiarity, what would you 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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