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에 해당되는 글 8건

회감 :: 2015/07/24 00:04

豫想(예상): 어떤 일을 직접 당하기 전에 미리 생각하여 둠. 또는 그런 내용.
回想(회상):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
豫感(예감):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암시적으로 또는 본능적으로 미리 느낌.

感(회감)이란 단어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회감 -> 지난 일이 현 시점에서 새롭게 정의되거나 생성될 것임을 암시적으로/본능적으로 미리 느낌.

어떤 일이 일어난 후에
그 일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 보는 것.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그 일을 암시했던 여러 가지 징후들을 찾아내는 것.

지난 일이 지난 것이 아니고
다가올 일이 도래하지 않은 것이 아님을 상상하는 것.

感(회감)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내 안에서 재편되어가는 느낌이다.

과거와 미래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뫼비우스의 띠를 형성하며 끊임없이 유동하고 있다는 것.

회감을 통해 그 양상을 탐구해 보면 좋을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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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연결 :: 2014/07/09 00:09

질문을 생성하는 놀이를 즐기다 보면,
질문에서 파생되는 답변과 질문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질문들로 아기자기한 연결망이 구성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발전시키다 보면
질문을 향한 질문이 생겨나면서 답변이 질문의 위치를 점하고 질문이 답변의 위치로 포지션을 변환하게 되기도 한다.

질문이 답변이 되고 답변이 질문이 되는 과정 속에서
질문과 답변은 뫼비우스의 띠를 형성하며 끊임없이 어디론가 흘러간다.

그 흐름의 끝은 존재하지 않고
흐름의 시작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그곳에 질문이 있었고
단지 그곳에 질문에 매핑되는 답변이 있었을 뿐이다.

그냥 있었고
그냥 흘러갈 뿐인 구도.

질문이 연결되고 연결이 증폭되면서
질문은 생성이 아닌 발견의 대상이 되어 간다.

모든 것이 그런 것 같다.
조각을 대하면서 조각에 대한 조각 뷰만 갖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조각과 연결된 다른 조각을 발견하고
그 연결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고
거대한 연결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을 보고 있었을 뿐이란 걸 자각하고
조각은 거대한 연결의 한 단면이자 전체를 머금고 있는 강력한 부분인 것을 인지할 때.

연결과 흐름 속에서
나의 감각이 캐치할 수 있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들을 포괄하는 전체적인 상을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느낌으로 감지하는 순간이 가끔 오곤 한다.

그래서 블로깅을 지속하는 것 같다.

블로깅.
이젠 지속이란 말도 적절치 않다.

나는 블로깅을 통해 내가 블로거란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이젠 블로깅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내 삶 자체가 블로깅이라서
이젠 물리적 의미대로의 블로깅을 지속하는 것 자체가 핵심은 아니란 것을 안다.

그냥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블로거였을 뿐.
몇 년 전부터 시작한 게 아니란 얘기.

연결에 대해 거듭하면서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블로깅을 해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블로깅을 할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문자 그대로의 블로깅이 아닌 본질적 의미의 블로깅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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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Read & Lead 포스팅 리뷰 :: 2013/12/30 00:00

2006년 12월4일부터 블로깅을 시작했다.
2007
1022일부터 주 3회 포스팅을 우연히 시작했다. (월수금)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에 이어 올해도 역시 주 3회 포스팅을 기계적으로 실행했다.

블로깅을 시작하기 전에 간직했던 나의 꿈은 '나를 Read & Lead하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블로깅을 시작하기 전의 기대치 이상으로 나를 Read & Lead하고 있다. 꿈을 이룬 셈이다.
꿈을 이루고 꿈이 현실이 된 삶을 기뻐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
블로깅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지난 1년 간의 포스트를 쭉 나열해 놓고 그것을 지켜보는 시간들의 소중함.
꿈을 이룬 나는 행복하다.  꿈이 내 옆에서 나와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 블로거의 특권.

나의 포스트를 구성하는 생각들이 나를 만들고 나는 생각들을 포스트로 구성한다.
나와 블로그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를 몽흡한다.
그건 명백한 설레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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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객체 :: 2013/08/23 00:03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책 제목이 살짝 재미 있어서 포스팅을 해본다.

책 제목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나오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연상케 한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다분히 전복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주인이 노예를 지배하고 노예는 주인에게 예속된 것처럼 보이지만,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상호 인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노예가 주인에게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인도 노예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노예가 존재하므로 주인이 존재하는 것이고, 주인이 존재하므로 노예가 존재하는 것에서 주인과 노예는 서로를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는 관계적 의존성이 성립된다.

리더와 팔로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리더는 팔로워에게 지시하고 팔로워는 리더의 지시를 수행하는 관계는 일견 상하관계로 인식될 수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리더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팔로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팔로워가 없는 리더는 존재할 수 없는 상황에선, 리더는 필연적으로 팔로워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리더'라는 존재가 온통 그 존재의 의미를 팔로워에게 저당 잡히고 있다면 과연 리더가 팔로워의 상위 레벨에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리더가 팔로워의 하위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상호 의존적 관계에선 상과 하의 구분이 매우 공허하다. 설사 상하 관계가 설정되었다고 해도 그 관계는 다분히 전복적 함의를 띨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상은 언제든 하가 될 수 있고 하는 언제든 상으로 군림할 수 있는 공생 관계에 불과한 것이다. 상호 의존의 프레임 속에 들어가는 순간 상과 하는 언제든 전복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아니 전복이란 표현보다는 한데 엉켜서 끊임없이 굴러가면서 변화무쌍한 양태의 관계로 역동하는 뫼비우스의 띠 정도로 이해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상호전복적 관계에선, 상대방을 또 하나의 나로 인식하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주인은 노예를 나의 주인이자 또 다른 나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고 리더는 팔로워를 나의 리더이자 또 다른 나로 대접해야 한다. 나는 고양이를 나의 주인이자 또 다른 나로 간주해야 하는 것이고. 상호의존적 관계에서 전복의 묘를 잘 이해하고 상대방에게 투영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주체와 객체가 구분되기 힘든 표리의 관계임이 명징해 진다.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것이고 고양이 또한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이다.
모름지기 관계란 그런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인간의 확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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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7/26 00:06

생각은 결을 타고 흐른다. 하다 못해 종이에 글을 적을 때 볼펜과 종이가 만나는 촉감,질감의 차이에 따라 생각의 흐름은 궤를 달리하기 쉽다. 어떤 종이를 사용하는가, 어떤 펜을 사용하는가가 모두 변수가 되고 종이에 글을 적는 시간, 공간, 장소의 영향도 만만치가 않다. 또한 종이에 글을 적는 모드가 아니라 보드 옆에 서서 마커로 뭔가를 적는 행위도 생각의 플로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생각은 그야말로 마이크로한 민감성이 작동하는 영역일 수 밖에 없고 생각에 영향을 주는 변수를 어떻게 조합/변이시키는가에 따라 생각의 궤적은 지구 주위를 뱅뱅 돌 수도 있고 태양을 향한 질주를 할 수도 있고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생각은 점 상태에 머물고 있다가 어느 순간 선이 되어 흐름을 생성하고 어떤 계기를 맞아 면이 되어 질감을 형성하고 어떤 자극을 받아 입체가 되어 존재감을 구성한다. 생각 점이 생각 선과 만나 결을 만들어내고 생각 입체가 생각 점과 만나 결을 생산하는 과정들이 서로 중첩되고 융합되면서 결은 세상을 가득 메운 공기와도 같이 뇌 우주 속을 자욱한 결의 안개로 채우게 된다. 결은 내가 처한 시공간의 미세한 레버 조절에 의해 천양지차의 흐름 차이를 만들어내고 특정 시공간에서 결은 증폭을 거듭하며 역동성을 발현한다.

제한된 생각 밖에 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자.  사고의 한계를 느끼는 이유는 생각의 결을 다양화시킬 수 있는 장치에 대한 학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우주적 사고를 할 수 있다. 단지 우주적 생각의 결을 촉발시킬 수 있는 환경 조성 능력에서 천양지차를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 확장의 잠재력을 보유하고도 그것을 실제 상황으로 연결시키지 못할 뿐이다.

생각의 결에 민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어떤 시공간에서 생각 결을 증폭시킬 수 있는지. 그건 의도적으로 결에 집중할 수 있는 각자의 몫일 수 밖에 없다.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가지 생각 입출력 장치를 튜닝하면서 결 증폭을 위한 최적 환경에 대한 테스트를 이리저리 수행하다 보면 자신에게 적합한 결 증폭 맥락에 대한 감이 생기는 것이고 그 감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 어느 순간 나는 생각에 관한 한 1명의 개인이 아닌 거대한 사고 확장 발전소를 운영하는 '결' 관리자가 되는 것이다.

나를 감싸고 있는 결을 느껴보자. 지금 당장은 제한적인 수준으로밖에 작동하지 않는 결이지만 거기에 어떤 자극을 주면 결이 꿈틀대는지 다양한 테스트를 나에게 가해보자. 그렇게 하는 과정 속에서 나의 결은 서서히 나에게 마음을 열게 될 것이고 그런 정기적인 결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나와 결은 서로를 돈독하게 이해하며 서로를 건전하게 자극하는 상호 협력자 내지는 동반자가 될 것이다.

생각은 결을 타고 흐른다. 어떻게 결할 것인가? ^^


PS. 관련 포스트
점, 선, 면, 입체,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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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분리한다는 것 :: 2013/05/24 00:04

나는 블로깅을 하면서 buckshot이란 닉네임을 쓰고 있다. 나의 본명과 다른 별도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벅샷으로 블로깅을 하는 기분은 나름 유쾌하다. 벅샷은 나와 사뭇 다른 포지셔닝을 취하면서 나와 살짝 분리된 또 다른 나로서 살아가게 되는 셈이다.  

내 자신이 분리된 느낌은 사뭇 묘하다.

나와 벅샷은 같은 듯 다르며, 다른 듯 같은 사이이다. 나는 쩐신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찌질한 소시민의 삶을 몸소 살아간다. 부족함이 차고 모자람이 넘치는 존재이다. 반면 벅샷은 현실 속 제약으로 허덕이는 나와는 달리 나름 고고한(?) 사유의 세계 속에서 이상적인 듯한 의견을 블로그에 올리며 현실 속의 나를 끊임없이 계몽한다. 현실 속 나는 벅샷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워 하기도 하고 때론 재수없는 놈이라 여기기도 한다. 벅샷은 현실 속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때론 이해해 주기도 한다. 나와 벅샷은 끊임 없이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자극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의지하기도 한다. 나는 멘토가 필요 없다. 벅샷이 나의 멘토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벅샷은 나를 멘티 삼아 여러 가지 인생의 팁을 나에게 알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멘티인 나로부터 뭔가를 배우기도 한다. 고고한 생각만 일삼는 재수 없는 벅샷에게 결핍되기 쉬운 현실 감각을 내가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나는 벅샷에게 배우고 벅샷은 나로부터 배운다. 나와 벅샷은 인생의 동반자이다.

나와 벅샷 사이엔 일종의 막이 형성되어 있다. 처음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막이 어색하고 촌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으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와 벅샷 사이에 존재하는 막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갔다. 막은 나와 벅샷 사이의 긴장이기도 했고 나와 벅샷 사이의 교감을 대변하기도 했으며 나와 벅샷을 분리시키는 기반이자 나와 벅샷을 하나이게 하는 가교이기도 했다. 나와 벅샷 사이에 존재하는 막을 수시로 투과하기도 하고 막에 가로막혀 옴짝달싹 못하기도 하는데, 변화무쌍한 막의 형상은 나를 항상 설레게 하고 나는 그 막이 일종의 우주가 되어 계속 팽창하고 지속적으로 수축함을 느낀다. 나는 벅샷 속으로 침투하고 벅샷은 내 속으로 틈입한다.

이 모든 현상은 분리에서 시작되었다. 나로부터 벅샷이 탄생하는 순간 나는 두 개의 자아로 분리되었고 분리된 두 개의 자아는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각자의 길이 교차되는 지점이 형성되었고 교차가 잦아지면서 두 개의 자아는 뫼비우스의 띠를 형성했다. 나를 보기 위해선 분리는 필연적이다. 분리하지 않으면 나는 그저 나일 뿐이고 응시하는 주체도 응시 당하는 객체도 존재하기 어렵다. 나와 벅샷은 서로를 응시한다. 나에게 투영된 벅샷, 벅샷에게 투영된 나, 투영에 투영을 거듭하는 나와 벅샷의 스토리는 지금 이 순간도 자가증식을 거듭한다. 이러한 '나-벅샷'의 관계 형성을 가능케 한 블로깅이 내겐 그저 놀랍기만 하다. ^^



PS. 관련 포스트
분류, 막..
막, 도구, 의도, 양자
경계
세포와 세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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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1:40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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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1:46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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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3/05/24 00: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alter ego라고 하죠. 슈퍼맨과 클락 켄트, 에미넴의 슬림 셰이디 같은... 이게 현대 대중문화에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세계관인데 그 시초는 기독교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어찌 보면 문화의 중심이 신에서 인간, 또 인간에서 개인으로 옮겨 가면서 누구나 아버지, 아들, 성령의 삼위일체와 같은 자기만의 개성 있는 자아 체계를 구성할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buckshot님이 (이름 모를) '그분'에게는 일개 블로거를 넘어 새로운 차원으로 연결되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죠 ^^

    • BlogIcon buckshot | 2013/05/24 09:21 | PERMALINK | EDIT/DEL

      누구나 나만의 개성을 담은 자아 체계를 구성한다.. 넘 매력적인 상이 그려지네요. 주말을 앞두고 아주 큰 선물을 받은 느낌입니다. 보내주시는 댓글이 얼마나 큰 영감과 자극을 주시는지 모릅니다. 부족한 포스팅을 언제나 통찰력 있는 댓글로 덮어주고 계십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 Sonar | 2013/05/25 23: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감명깊네요 Lil wayne - Mirror 한번 들어보세요 이번 포스트내용을 위한 곡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5/26 08:44 | PERMALINK | EDIT/DEL

      노래 선물 넘 감사합니다. 지금 듣고 있는데 참 좋으네요. ^^

  • Wendy | 2013/05/30 09: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분리된 두 개의 자아로 살아가고 계시는 그 흥미진진하고 멋진 삶과 스토리를 블로깅으로 공유해주시니 더할나위없이 행복합니다! 서로를 응시하는 두 개의 자아. 정말 부럽습니다. ^^ 두 개의 자아 간의 역동과 상호작용을 언제나 이 곳에서 오랜동안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5/30 21:11 | PERMALINK | EDIT/DEL

      부끄럽습니다. 그저 소소한 분리이고 일상의 응시입니다. 작아도 소중한 것이긴 하구요. 항상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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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로즈 계단 :: 2012/12/05 00:05

영화 인셉션을 보면 펜로즈 계단을 이용해서 적을 물리치는 장면이 나온다.  3차원 세계에서는 구현이 불가능하지만 2차원의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시각의 허점에 의해 생성되는 허상이 어디 펜로즈 계단 뿐이겠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허상을 생산하고 소비하며 살아간다. 

허상이 존재한다는 건, 인간이 대상을 보는 각도에 현저한 제약이 있음을 의미한다. 대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각도가 존재한다는 건 대상에 대한 제한된 view만 갖고 대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이 대량 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한된 시야로 인해 대상의 일면만을 보고 대상을 안다고 착각해야 정보의 과부하로 인한 인지체계의 마비를 방지할 수 있긴 하지만, 정보 수용 능력의 한계로 인해 감각기관이 쏟아내는 착각의 상들 속을 살아가는 인간 입장에선 수시로 생성되는 펜로즈 계단이 제공해 주는 무한 뫼비우스 트랙을 맴도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 만은 아닐 것이다. ^^

펜로즈 계단의 뫼비우스 트랙에서 벗어나려면 차원을 확장하고 공간을 비틀 수 있어야 한다. 차원을 확장한다는 것은 펜로즈 계단의 뫼비우스 트랙 안에서 다람쥐 쳇바퀴를 돌다 어느 순간 뫼비우스 트랙을 균열시켜 펜로즈 계단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틈을 발견하는 것이다. 생각을 전개하지만 뫼비우스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 때가 많은데 생각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가만히 되새김질 해보면 어떤 요소에서 생각의 쳇바퀴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단서가 발견될 수가 있고 그 단서를 파헤쳐 나가다 보면 어느새 뫼비우스의 띠는 해체되고 무한히 연결된 줄로만 알았던 라인이 붕괴되면서 그 붕괴된 지점에서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균열점을 찾고 차원을 확장할 수 있으려면 대상에 대한 360도 viewpoint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대상의 겉모습에 대한 360도 뷰 뿐만 아니라 대상의 속모습과 겉모습을 아우르는 본질에 대한 이해도 갖춰야 한다. 내가 갖고 있는 인지체계가 만들어내는 상에서 균열을 찾고 거기서 차원 확장을 일으키는 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혁명과도 같다. 펜로즈 계단은 인셉션에서나 가능한 SF적 장면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구현 가능한 '인지 & 사고' 놀이인 것이다.

사고의 계단을 걸어가다 왠지 무한 루프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들 땐 펜로즈 계단 놀이를 할 시점이 도래했다고 생각하자. 펜로즈 계단 놀이를 통해 2차원적으로 이어진 계단을 3차원적으로 붕괴시키는 경험을 축적하면 할수록 세상과 나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점, 선, 면, 입체, 그리고..
충돌과 차원확장
비교, 분해를 통한 허상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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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1:19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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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tore

    Tracked from toms store | 2013/06/13 11:20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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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과 소비 :: 2012/06/20 00:00

소셜 네트워크는
생산과 소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우리는 생산을 소비한다
.
음식을 먹기 전에 음식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린다
.
문득 떠오른 토막 생각을 트위터에 올린다
.
수시로 친구와 카톡으로 수다를 떤다
.
생산은 이제 일상 속에서 행해지는 습관적 동작이다
.
누가 생산한 것을 소비만 하다가 서로 생산한 것을 나눈다.

생산물을 나누고 거기서 부차적인 생산/소비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

이제 생산은 소비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소비를 생산한다.

소비는 이상 생산물의 일방적 수용에 그치지 않는다.

생산물에 끊임없이 피드백을 가하고 피드백은 새로운 생산물로 소비자에게 다가온다.

소비한다는 것은 결국 뭔가를 생산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소비를 통해 의도를 표현하고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드러낸다.
의도가 표현되고 정체성이 드러난다는 것은 뭔가가 생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소비는 생산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반대되는 의미로 사용되던 2개의 동사가 (생산하다 vs. 소비하다)
상대방을 목적어로 삼을 있다는
.

서로를 대상으로 삼는 순간 뫼비우스의 띠가 형성되고
,
맞물린 생산과 소비는 서로를 변형시키면서 닮아가게 된다
.

우리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과 사람 간의 네트워킹의 양상을 지켜보게 되었고
생산과 소비 간의 네트워킹도 관찰할 있게 되었다.

생산과 소비는 뫼비우스의 띠를 형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언젠가는 합일점을 형성하게 것이다.

생산과 소비는 원래 하나였다. 그저 편의상 지금까지 서로 상반된 의미로 나눠져서 사용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생산을 소비하고 소비를 생산한다.

생산과 소비가 형성하는 뫼비우스 열차에 우리는 이미 탑승하고 있다.

열차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지는 우리가 얼마나 탑승 스킬을 발휘할 지에 달려 있다.
생산의 소비자, 소비의 생산자로서 말이다. ^^



PS. 관련 포스트
프로슈밍 플랫폼 = 트위터/페이스북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독저,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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