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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와 듣기 :: 2015/08/03 00:03

걷기는 듣기와 많이 유사한 것 같다.
걷기를 하다 보면 땅과 대화하는 느낌이다.
땅을 밟고 걸어가면서 나를 받쳐주는 땅을 느낀다.
땅이 나를 받쳐주는 건 땅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걸음을 딛고 앞으로 나간다는 건, 땅이 나에게 전하는 메세지를 듣는 것.

발은 일종의 귀.
발을 통해 전달받는 메세지를 잘 해석할 수 있다면
걷기는 보다 신비로운 경험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겠다.
걷기에서 듣기를 경험하고 듣기를 통해 말하기를 행할 수 있다면
걷기는 곧 대화하기가 될 것이다.

걸음.
무심코 오랜 기간 동안 해왔던 걸음이
이제 나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와 주고 있고
난 이제 걸음을 통해 땅과 대화를 하고
나를 둘러 싼 주변의 모든 것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르겠다.

걷기를 통해 만들어 나가는 나의 동선.
그 동선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적 루프에 불과해 보였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어제와 같아 보이는 그 동선이 실은 나에게 새롭게 주어진 대화의 장이고
나는 매일 새로운 길을 걸어나갈 수 밖에 없는 모험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것.

단 하루도, 단 1시간도, 단 1초도
루틴하지 않다는 것.

걷기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면
걷기..  그것 하나만으로도 배움이 지속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걷게 된다.

나는 운전을 못 한다.
그래서 걷기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걷기가 일상이 아니고, 가슴 뛰는 모험이고 여행이란 걸 알게 되었는데.
난 걷는 걸 좋아하는 내가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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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의 비밀 :: 2014/01/22 00:02

3막의 비밀
권승태 지음/커뮤니케이션북스

모든 영화가 3막 구조로 해석된다는 것.

결국, 누구나 자신 만의 프레임으로 영화를 바라본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모든 영화가 3막 구조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고 어떤 사람의 눈에는 모든 영화가 기승전결 구조로 환원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의 눈에는 ***한 구조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존재하는가이다. 영화를 볼 때 3막 구조라는 프레임을 갖고 있으면 영화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스킬을 갖게 되는 것이고 영화를 스토리 관점에서 통찰할 수 있는 동시에 자신 만의 스토리를 생성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다.

프레임을 만든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에 비견할 수 있다. 프레임은 raw information을 가공한 의미 구조를 형성한다. 가공은 부가가치를 낳는다. 물론 원초적 정보에도 그 자체의 가치는 충분하다. 문제는 원초적 정보를 그대로 수용하기만 해선 정보를 수용한 뇌 차원에서 이렇다 할 의미가 형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보 수용이 흐릿하고 모호한 의미 생성으로만 귀결된다면 뇌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보 회로 속에서 이렇다 할 방향성을 가져가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정보를 수용할 때는 어떤 형태로든 프레임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수용 측면에서도 활용 측면에서도 효율적이다. 마치 어떤 문장을 읽을 때, 그 문장을 알파벳의 조합으로만 받아들이는 것과 문장을 구성하는 알파벳의 조합에서 단어를 읽고 단어의 조합에 의한 의미를 읽고 의미 속에 담긴 패턴 형성의 리듬을 포착하는 것 간의 차이라고나 할까.

영화를 볼 때 이렇다 할 프레임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알파벳/단어의 레벨로 읽어 들이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책을 읽을 때는 알파벳/단어의 레벨을 넘어선 문장 단위로, 문장의 레벨을 넘어선 사건의 흐름 단위로, 사건의 레벨을 넘어선 작가의 의도 단위로, 책에 내재한 세계관이 뿜어내는 특유의 리듬 단위로 정보를 수용하고 해석하고 독서를 통한 나만의 의도/리듬을 형상화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3막의 비밀. 이 책은 나에게 정보와 대화하는 법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정보가 나에게 전달하는 메세지를 얼마나 다차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있는 프레임이 나에게 있는가. 그 프레임은 매일 진화하고 있는가. '3막의 비밀'이 나에게 제공하고 있는 메세지는 나를 충분히 자극하고 있고, 나는 그 자극을 온전히 수용한 채 나만의 프레임을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신경쓰는 사람으로 변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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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란더스개 | 2014/01/24 16:4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좋은 글입니다. 대상을 읽는 프레임과 동명이의로 영화의 숏(shot)이 갖는 프레임(frame)은 일종의 한계이지만 영화언어를 발전시킨 역할을 했습니다. 프레임 없이는 분석도 발전도 쉽지 않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4/01/26 11:21 | PERMALINK | EDIT/DEL

      프레임의 한계가 프레임의 가치인 것 같습니다.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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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 2014/01/06 00:06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살아있는 사람은 계속 심장이 뛴다. 심장이 뛰는 것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심장이 뛰는 것을 알고 있고 심장이 뛰고 있어서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는 것을 인지할 때 건강한 심장이란 것을 간접적으로 전달받게 된다. 직접적으로 실체를 지각하지 않아도 실체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신호를 통해 실체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일종의 그림자 효과라고나 할까.

'시각'은 보이는 것만을 감지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하고 지각하는 것도 시각의 역할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시각 기관이다. 시각 기관을 올바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선 보이는 것에만 시각 기관이 경도되지 말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 기관은 느끼고 있다. 문제는 시각 기관으로 접수되는 보이는 것에 대한 신호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신호를 차별대우하려고 하는 인간 본능을 컨트롤할 수 있는가이다. 마치 달콤한 것만 받아 먹으려고 하는 미각 본능과 마찬가지로 보이는 것만 접수하려고 하는 시각 본능과의 긴장 관계를 형성할 줄 알아야 한다.

MRI, CTI 영상은 실체는 아니다. 영상에 대한 해독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문가의 해독이어서 그걸 마치 실체와도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일 뿐 영상과 해독 사이엔 분명한 거리가 존재한다. 그림자를 보면서 실체를 추정하는 놀이를 뇌가 넘 즐기다 보니 뇌의 농간 때문에 실체와 해독을 구분 못하는 상황은 인간의 삶 전체에 걸쳐서 자행되기 마련이다.

결국 감각 기관은 해석을 하는 것이고 실체는 별도로 인식 너머에 존재한다. 실체를 보면서 살아간다는 생각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인간은 항상 그림자를 보면서 실체를 매우 부정확하게 추정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그런 불안하기 이를 데 없는 추정의 중첩 속에서 판타지는 확대 재생산을 거듭한다.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 암호와 해독.  인간은?

암호가 난무하고 해독이 뒤따라 횡행한다. 세상은 온통 암호들로 뒤덮여 있고 해석의 메세지로 자욱하다. 암호는 원천 메세지이고 해독은 2차 메세지이다. 우린 1차 메세지와 2차 메세지 간의 관계 속을 살아간다.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은 암호와 해독인데 그것은 서로 완전 잘못 연결되기도 하고 축소 또는 확대적 왜곡으로 점철되기도 한다. 암호와 해독이 존재할 때, 인간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일까? 인간은 그저 암호와 해독이 꾸고 있는 '꿈'에 불과한 것 아닐까? ^^

그림자를 보면서 실체를 추정하는 작업은 사지선다형 문제를 풀면서 모르는 문제를 때려 맞추는 것보다 훨씬 난해하다. 그래서 아예 해독이라 생각하지 않고 실체 자체라고 오인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이다. 그게 실체일 수는 없다.  난해한 암호 문장을 접하면서 그 암호 속에 담겨진 메세지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고 해독의 실마리를 찾아 떠나는 인지 여행. 그건 그림자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또한, 그림자를 실체가 아닌 암호문으로 바르게 응시하는 지혜로운 시선도 인간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겠다.  그걸 잘 하는 인간은 '존재'가 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이겠고, 그게 잘 안되는 인간은 존재라기 보다는 암호와 해독 사이를 부유하는 한낱 '꿈'에 불과한 무엇일 수 있겠다. ^^




PS. 관련 포스트
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해독과 신념. 그리고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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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해체 :: 2013/09/09 00:09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스쳐 지나게 되는 홈쇼핑 채널에서 지금 당장 이걸 사지 않으면 큰 손해라도 입을 것 같은 협박에 가까운 멘트가 난사되는 것을 보면서, 현재의 소중함을 생각한다. 홈쇼핑 사업에만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한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가. 또한, 그렇게도 소중한 나 자신의 현재가 자본의 욕망에 의해 얼마나 속절없이 유린당할 수 있는 상황이 소용돌이 치듯 범람하고 있음을 절감한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마시고 바로 구입하세요."

홈쇼핑에서 하는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흘리면 된다. 현재는 정말 소중한 것 맞다. 그래서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 순간을 음미하고 순간의 의미를 새겨야 한다. 하지만 순간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 상품구입은 아니란 얘기다. 결코 지금 그 상품을 구입할 이유는 없다. 그 상품이 없어서 나에게 해가 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대부분 그 순간을 넘기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게 된다.  이렇듯 상업주의는 대개 전반부는 너무나 맞는 얘기를, 후반부의 본론은 상업이기주의에 입각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흘려야 하는 메세지. 상업주의를 대할 때는 절반만 새겨 듣는 스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본은 항상 인간을 유혹한다. 유혹의 메세지는 달콤하다. 그 유혹의 메세지가 아주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고 절반은 맞는 전반부를 깔고 가기에 어리버리 유혹에 넘어가는 케이스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유혹의 구성은 나름 탄탄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약점 투성이지만 얼핏 보면 굉장히 매력적인 제안이다. 제안이 매력적이어서 자세히 살펴보는 수고를 생략하는 우를 범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덧 유혹에 넘어가 버린 나 자신을 뒤늦게야 깨닫지만, 이미 저지른 나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서글픈 기제가 뒤따르게 된다. 견고한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순간이다.

유혹에 대한 대응은 유혹 거절, 유혹 수용의 양 극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혹의 제안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은 받아들이고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버리는 스탠스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국 중요한 분기점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제안과 나를 소모시키려 하는 제안의 구분이다. 그렇게 하려면 유혹의 메세지를 조각조각 나의 취향에 맞게 해체하고 그 중에서 나에게 적절한 것만 선택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유혹을 해체하고 선택적 수용 태세로 대응하면 유혹을 당하면 당할수록 무기력해지기는 커녕 매우 강력한 생각과 행동의 어엿한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본의 유혹은 더 이상 나를 공격하고 전복시키는 파괴자가 아니라 나에게 유의미한 러닝과 선택적 거절의 참 맛을 느끼게 해주는 최고의 동반자로 수줍은 듯 포지셔닝하게 된다.

유혹을 해체해 보자. 원래 유혹의 의도는 나를 조각조각 해체하고 나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단하고 유린하는 것인데 오히려 그 해체 의도를 역으로 받아쳐보자.

즉, 유혹을 인간 취급해보자는 것이다.
나약한 인간봇처럼 말이다. ^^



PS. 관련 포스트
나를 찾아온 기적을 알아보기
현재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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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아크몬드 | 2013/09/09 09:1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순간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 상품구입은 아니란 얘기다. 결코 지금 그 상품을 구입할 이유는 없다. 그 상품이 없어서 나에게 해가 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대부분 그 순간을 넘기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게 된다." 공감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9/09 19:34 | PERMALINK | EDIT/DEL

      상업주의 메세지도 잘 필터링해서 부분적으로 수용하다 보면 꽤 유익하게 다가오는 것이 제법 있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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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귀 해석 :: 2013/04/15 00:05

두려움,불안,기쁨,슬픔,..  감정은 일종의 메세지이다. 뭔가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근데 감정에 감정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메세지는 해석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움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기억을 기억하고 혁신을 혁신하고 관찰을 관찰하고,..  대상 자체보다 대상에 대한 행위를 중첩/순환시키는 재귀 놀이는 유익하다. 하지만 감정에 대해선 재귀놀이를 살짝 자제할 필요가 있다. 두려움을 두려워하고 불안을 불안해 하고 슬픔을 슬퍼하는 것은 무한루프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TV 드라마를 보면 A에 집착하는 B의 이야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도대체 B는 A에게 무슨 전생의 연을 크게 구축했기에 저리도 A만 바라보며 A에게서 벗어나지 못할까란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도 일종의 감정 무한루프에 해당한다. 결국 B는 A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A에 집착하는 B'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집착을 하게 되고 누군가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잘 모른 채 집착이란 행위 자체에 집착을 하게 되고 그렇게 집착이 집착을 계속 반복 생산하는 집착 증폭 회로 속에 갇혀 '집착하는 사람'에 집착하는 무한루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집착의 어느 단계가 되었든 "나는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지고 집착의 고리를 쭉 따라가 보면 어처구니 없게도 최초 단계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음이 밝혀지게 된다. 결국 나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뭔가를 내 안에 채우고 싶었고 그것을 채우려는 마음이 잘 충족되지 않다 보니 쓸데 없는 집착을 계속 증폭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최초의 허전함은 인간 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부여 받은 존재적 불안, 존재적 공허함에서 기인된 것일 테고.

결국 TV 드라마 속의 B는 A가 아닌 B 자신을 스토킹했던 것이다.  (일종의 재귀 로봇)



두려움도 불안도 슬픔도 다 비슷하다. 원초적 대상이 모호한 상황에서 나 자신의 심리적 상태가 어떤 감정을 촉발시키고 나의 심리가 그런 감정을 계속 육성하고 심리와 감정은 서로 화려하고 정교한 1:1 패스를 주고 받으며 나를 어디론가 휘몰고 간다. 이런 식으로 드리블 당하면 정말 어리버리 허수아비처럼 질질 끌려 다니기 십상이다. 인간은 누구나 감정의 무한루프에 빠져들 수 있는 취약한 멘탈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무한루프 자체를 관찰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조금이라도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것에 시선을 주게 될 것이고 무한루프에 나의 시선을 부여하는 순간, 무한루프는 균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고리를 따라가니까 고리의 힘이 강한 것이지, 고리 자체에 대한 질문과 의심을 제기하면 고리는 이렇다 할 답변을 주기 어려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무한루프는 약화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재귀 놀이는 의도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어리버리 나도 모르게 재귀 놀이를 당하면 안 된다. 재귀 놀이의 주체는 나이고 나는 재귀 놀이의 대상을 임의로 정하고 그것을 의식적인 패턴 속에서 즐기면 된다. 나도 모르게 나의 뇌 속에서 플레이되는 재귀 놀이가 혹시 탐지될 경우 그것에겐 '응시'라는 최고의 보약을 선사하면 게임이 끝나게 된다. 능동적 재귀 놀이를 즐기고 수동적 재귀 놀이를 제어하고. 재귀 놀이의 세계. 배우면 배울수록 신기하고 흥미진진한 것 같다. ^^


PS. 관련 포스트
존재와 불안
설정 자체가 함정이다.
감각재귀
재귀 놀이
내가 나를 뒤에서 지켜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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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0:47 | DEL

    Truly when someone doesn't be aware of then its up to other visitors that they will help, so here it takes placeRead & Lead -.

  • toms store

    Tracked from toms store | 2013/06/13 10:47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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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과 기생 사이 :: 2013/04/01 00:01

정신기생체
콜린 윌슨 지음, 김상훈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나는 과연 온전히 하나인가?  내 안에서 상반되는 2가지 생각이 서로 다투고 갈등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에 홀린 듯이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고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을 일삼고.  굳이 소설가적, SF적 상상력이 없어도 정신기생체란 말은 그닥 황당한 개념은 아닌 것 같다. 정말 내 안에 뭔가가 기생하면서 나를 끊임 없이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가끔 드는 것이 사실이니까.

만약 내 정신 속에 뭔가가 정말 기생체의 형태로 존재한다면, 그건 나를 공격하는 적의 면모와 나 자신이란 자아의 면모를 모두 갖고 있는 것이다. 완전히 외부에서 내 안으로 유입된 유해하기만 한 존재라면 어떻게든 박멸하는 것이 답이겠으나 정신 기생체는 그렇게 무작정 적대적 대응을 하기만 해선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힐 때, 부정적인 감정에 함몰되어 무기력해질 때.. 기생체에 의해 유린당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론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메세지가 나에게 전해지는 것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겠다. 즉, 모든 감정을 일종의 자아 분열로 볼 수 있고 다양한 감정을 다양한 자아의 분열로 여기고 각각의 분열된 자아가 나에게 주는 느낌을 특정한 지향을 지닌 메세지라고 해석한다면 방향성은 자명해질 수 있다. 불안이란 감정이 생긴다면, 나는 나로부터 분열된 '불안' 자아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를 해석하고 불안 자아와 대화하면서 나로부터 분열된 자아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겠다. 그건 기생체라기 보다는 공생체에 가깝다고 봐야겠고, 나에게 공생적 메세지를 자신 만의 언어와 암호 형태로 나에게 발신하는 것이고 메세지를 수신한 나는 그 메세지에 적절하게 대응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메세지가 나에게 도달했는데 그 메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갈팡지팡, 좌충우돌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분열된 자아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생의 의도로 보낸 메세지를 기생으로 오인하는 것이고 공생체를 기생체로 대우하거나 존재 자체를 인지 못하고 자아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면 나에게 보내진 메세지는 공중에 붕 뜬 채 갈 곳을 몰라 방황하게 되고 메세지를 받지 못한 나는 그로 인한 불이익을 어떤 형태로든 받게 된다.  

만물은 메세지이다.
나는 분열을 거듭하는 역동적 자아이고,
분열된 자아는 끊임 없이 메세지를 나에게 발신한다.

나는 메세지이자,
메세지 발신자이면서
메세지 수신자이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분열된 자아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데만 평생이 소요된다.
분열된 자아와 어떻게 효과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친밀하게 소통할 것인가?

우연히 제목을 접하게 된 '정신기생체'란 책.
그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 책의 제목 하나를 갖고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어서 즐겁다. ^^



PS. 관련 포스트
만물은 메시지다.
폰봇
맘봇
고수,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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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1:15 | DEL

    If any one desires to be a successful blogger, then he/she must look at this paragraph Read & Lead - 공생과 기생 사이, as it contains al} methods related to that.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1:15 | DEL

    I was gone to convey my little brother, that he should also visit this webpage on regular basis to take updated from latest gossip Read & Lead - 공생과 기생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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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범용화시키는 질문 :: 2013/02/11 00:01

설과 추석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아래 같다. 
연령대별 주요 관심사에 최적화된 묵직한 질문들이다.

10대: 공부 잘 하니? 어느 대학 가니?
20대: 취직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하니?
30대: 결혼 안 하니? 애는 언제 갖니?  애는 더 안 낳니?
40대: 건강은 괜찮은가? 애는 잘 크고 있는가?
50대: 은퇴하면 뭐 할 건가?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자식들은 공부 잘하는가?

묻는 입장에선 매우 궁금하고 대답하는 입장에선 살짝 불편한(^^) 촌철살인과도 같은 질문들.

인간의 라이프 사이클을 관통하는 둔중한 질문들이 난무하는 명절은 우리에게 어떤 메세지를 주는 것일까?  우리의 일상이, 우리 각자의 인생들이 정형화된 몇 가지 질문에 의해 가볍게 체크당할 수 있는 거대한 속물화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는 걸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인생이 이리도 단순한 질문 몇 가지에 의해 빠르게 파악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기만 하다. 우리는 이렇게 쉽게 파악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들인가? 우린 언제부터 이렇게 쉬운 존재들이 되었을까?

인간을 파악/판단하기 쉬운 간단한 질문들에 의해 인생이 가볍게 재단 당하는 시대를 우린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단순한 질문 안에 인생이 통째로 담긴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인생의 품질은 이런 질문들 말고 나에게 특화된 질문이 과연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 나를 범용품으로 간주하고 범용품의 어느 레벨에 위치하는가에 해당하는 질문들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그런 질문들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현 상태를 답해주면 된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만 내 주위에 배치하면 안 된다. 나를 파악하기 쉬운 질문 말고 나를 파악하기 어려운 질문을 항상 내 주위에 분포시켜야 한다. 나를 파악하기 힘든 질문을 나에게 던지고 그것에 대답해 나가는 과정 속에 나의 발견과 성장이 존재한다.

답이 쉽게 나오는 질문은 대상을 무력화시키고 발가벗기는 질문이다.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질문은 대상과 함께 호흡하고 대상을 풍요롭게 하는 질문이다. 나는 어떤 질문들을 받고 살아가는가?  내 주변에 온통 범용화 질문만 가득하다면 난 수시로 무력화되고 발가벗김을 당하는 존재로 전락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범용화 질문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수시로 생성하면서 그 질문들로 내 주위의 공기를 맑게 정화시켜 보자.

나를 범용화시키지 않는, 나를 진정한 나로 보아주는 그런 질문들. 매우 희소한 가치가 되어 버렸다. 그런 희소가치를 견지하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의 간극은 계속 벌어질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경쟁 노예: 이기고 웃는 노예, 지고 우는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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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ndy | 2013/02/13 20:52 | PERMALINK | EDIT/DEL | REPLY

    대상과 함께 호흡하고 대상을 풍요롭게 하는 질문을 하는 제가 될테에요! ^^ 또 하나의 소중한 삶의 목표가 생겼습니다, 덕분에요~!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2/14 07:47 | PERMALINK | EDIT/DEL

      자욱한 범용화 안개 속에서 희소한 것들을 챙기며 살아가는 기쁨은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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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와 관점 :: 2012/11/21 00:01

경계는 사물과 공간을 분간하는 기준이 되어준다. 경계가 있어서 세상은 뭉개지지 않고 조각조각 나눠진 뷰로 인지가 가능해진다. 경계가 획정되고 그 안에서 편안하게 지내다 보면 어느덧 경계 안에 갇혀 버리는 부작용도 생기곤 하지만 경계는 무경계 상태의 혼란을 완화시켜주는 안정제 역할을 하곤 한다.

경계를 넘어설 때 관점과 프레임은 변화한다. A 영역과 B 영역이 경계선으로 분할되어 있다면 A 영역에서 편안하게 활용되는 관점이 B 영역에선 수월하게 이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 A 영역에 최적화된 관점이 존재하고 B 영역에 최적화된 관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관점은 경계에 의해 구별되어지고 경계는 관점을 분할된 영역에 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경계에 의해 배제된 타 영역의 상황과 맥락은 관점을 명확화하는 동시에 구속하게 된다.

경계를 관통하는 관점은 경계를 허물게 된다. A 영역과 B 영역을 포용할 있는 관점이 탄생하면 A 영역과 B 영역은 동일한 프레임으로 포섭되고 단일 언어로 읽혀지게 되면서 서서히 하나의 영역으로 융합되어 간다.

하나의 영역 속에서 관점이 변형되어 하나의 영역이 복수 영역으로 나눠질 때 새로운 경계가 형성된다. 하나의 영역이 분열의 계기를 맞게 되고 나눠진 복수 영역이 각자의 관점을 발전시키고 개별적인 언어 체계를 진화시켜 나가면 영역은 하나였던 때를 까맣게 잊은 듯한 스탠스를 취하며 서로에게서 멀어져 간다.

경계와 경계를 관통하는 관점을 설정하는 힘과 경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관점을 변형시켜 경계를 설정하는 힘은 경계 구도를 재구성하고 관점의 흐름을 재배치한다.

경계는 관점을 자극하고 관점은 경계를 형성한다.
관점을 자극하기 위해 경계를 의식하고 경계를 형성하기 위해 관점을 리뷰한다.

경계 안에서 편하게 상주하는 동시에 경계에서 발생하는 긴장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선 경계를 자꾸 터치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 디바이스의 액정만 터치하다 보면 어느덧 스마트 디바이스에 종속된 도구 인간으로 전락하게 되는데 정작 터치해야 할 대상은 액정이 아니라 경계이다. 경계를 터치하고 경계에서 타전되어 오는 신호를 나만의 촉각으로 해석해야 한다. 경계에서 전해져 오는 신호는 경계가 나에게 선물하는 개인화된 메시지이고 나의 관점에 도달된 신호는 나의 관점을 변화시키게 된다.

일정 시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관점 상에 전시된 경계 구도가 너무도 안정화된 상태라면 나의 관점을 의심해 봐야 한다. 관점이 진부화되고 박제가 되어간다는 신호라서 그렇다. 관점이 왜 굳어지고 있는지 왜 새로운 경계의 생성을 직시하지 못하는지 반성하고 기존에 존재하는 하나의 영역이 복수의 영역으로 분화될 수 있는 분기점이 어딘지를 탐색해야 한다.

경계를 수시로 터치하고 관점을 정기적으로 의심하는 과정 속에서 경계와 과정 간의 순환 고리는 역동적 평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오늘 나는 경계를 몇 번 터치했는가? 액정을 수백 번 터치할 때 경계를 단 한 번이라도 터치해 보자. 나는 정기적으로 나의 관점을 의심하고 있는가? 쓰잘데기 없는 정보들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지 말고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나의 관점을 의심해 보자. 경계와 관점 간의 순환 고리를 강력하게 형성하는 놀이를 즐길 줄 알아야 자존의 시간들을 나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경계
시지프스의 링 - 영속발전의 플랫폼 (發展 & 發電)
분류, 막..
세포와 세포 사이
막, 도구, 의도, 양자
태그,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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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0:48 | DEL

    Hi, yup this article Read & Lead - is truly pleasant and I have learned lot of things from it concerning blogging. thanks.

  • toms sale

    Tracked from toms sale | 2013/06/13 10:48 | DEL

    I am actually pleased to glance at this weblog posts which %title% contains tons of helpful facts, thanks for providing these kinds of information.

  • rodge | 2012/11/27 09:00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항상 읽으면서 느끼는거지만 비슷한 주제인듯 하면서도 새롭게 표현하는 느낌입니다.
    , 매번 많은 영감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11/27 09:42 | PERMALINK | EDIT/DEL

      하나의 주제를 여러가지 시선으로 포획하면서 음미하는 놀이를 저는 즐기고 있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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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한다는 것 :: 2012/10/19 00:09

웹을 통해 우리는 사이트에 접속을 한다.  URL이 살아 숨쉬고 있는 사이트의 경우, 우리는 언제든지 그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  우리는 웹을 통해 접속을 한다. 웹은 우리의 감각기관에 접속감을 심어 주었고 우리는 접속이 없던 시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접속이 일상화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존재하는 어떤 사이트에도 우리는 접속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접속은 웹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하고 있는 접속이란 행위는 과연 웹에만 특화된 행위일까? 

접속을 웹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웹으로부터 1차원적인 교육만 받은 것이다. 웹이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는 총체적인 메시지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접속은 세상 모든 만물, 세상 모든 개념에 적용 가능하다.  우리는 길을 지나가다가 바닥에 깔린 보도 블록에 접속을 하고, 무심코 앉은 의자에도 접속을 하며 친구와 메신저로 대화하기 위해 두드리는 컴퓨터 자판과도 접속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흡입하는 음식과도 접속을 하며 집에 가기 위해 탄 지하철의 손잡이와도 접속을 한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 싼 모든 사물들과 접속을 한다. 우리는 감정에 접속을 한다. 기쁨에 접속하기도 하며 슬픔에 접속하기도 하며 때론 두려움에 접속하며 때론 유쾌함에 접속하기도 하고 때론 답답함에 때론 속시원함에 접속한다. 우리는 감사에 접속하기도 하며 우리는 원망에 접속하기도 하며 비방에 접속하기도 하며 존경에 접속하기도 하며 공감에 접속하기도 하며 호감에 접속하기도 한다.

웹은 우리에게 '접속'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는 웹을 통해 접속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접속이 웹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란 것도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모든 것에 접속할 수 있다. 우리가 의도를 가지고 웹사이트에 접속하듯이 우리는 사물에 의도적으로 접속할 수 있고 사람에 의도적으로 접속할 수 있고 개념과 생각과 감정에도 의도적으로 접속할 수 있다.  웹은 끊임 없이 우리에게 접속에 대해 메시지를 보내고 있고 접속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우리는 웹이 전달해 주는 메시지의 단 1%도 이해를 못하고 있고 있는 실정이다. 우린 접속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



PS. 관련 포스트

접속감과 세(勢)

방해
복사기 vs. 재즈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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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1:03 | DEL

    As the YouTube video tutorials are posted at this place same like I also embed YouTube video code at my own web site Read & Lead - 접속한다는 것, since it is simple to obtain embedded code.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1:03 | DEL

    Amazing video, in fact a fastidious %title% quality, this YouTube video touched me a lot in terms of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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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릿은 생각이다. :: 2012/02/24 00:04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세지다"란 말을 남겼다이 말을 우리네 업무에 비견해 볼 수 있겠다.


내가 작성하는 자료(예:파워포인트)의
템플릿을 바꾸면 생각이 바뀐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자료작성 템플릿은 나의 생각 틀이다. 그게 한 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1, 2, 3년이 흘러간다는 것은 나의 생각 프레임이 딱딱하게 굳어 박제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나의 자료작성 템플릿이 촌철살인과도 같은 보고의 포스를 갖고 있지 않다면 나의 템플릿을 면밀히 검토하고 좋은 템플릿들을 잘 이해하고 입수해서 그걸 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다 보면 결국 나의 생각 프레임이 바뀐다.

여기서 템플릿은 이메일, 워드, 파워포인트의 스킨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스토리라인의 흐름, 문장의 구조, 사용하는 단어, 정보의 높낮이 구별 등과 같이 이메일/워드/파워포인트 자료를 관통하는 문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건 자꾸 들여다 보면 들여다 보는 만큼, 상대방의 문법을 나의 문법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면 노력하는 만큼 나의 것이 된다. 초식을 많이 갖고 있는 자는 아무래도 고수일 밖에 없다.

템플릿은 자료로만 형성되는 게 아니라, 말로도 형성된다.  효과적인 말 템플릿 몇 개만 예를 들어보면..

이거 왜 하는가? → 정말 촌철살인 템플릿이다. 이 문장 하나로 업무에 대한 철학과 자세가 완성될 수 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 팩트 파악을 잘하려면 이 문장 하나만 기억해도 된다.
내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이 일을 끝낸 후에 난 무엇을 자랑할 수 있을까? → 업무 퀄리티를 극대화할 수 있다.
내가 이걸 하면 기존 대비 뭐가 좋아지는 거지?  →  뻘짓 안 하게 하는 최고의 문장이다.

고로..
파워포인트 템플릿은 생각이다. ^^




PS. 관련 포스트
컨테이너, 알고리즘
관틀,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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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메시지다. :: 2011/06/29 00:09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란 말을 남겼지만
그건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봤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일 뿐,

실은 "만물이 메시지다"라고 봐야 한다.


손자의 손자병법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
적을 위험한 존재로 바라보기 보다는 나의 성장 파트너로 재인식하는 관점이 유효할 수 있다.
적이 있다는 건 적으로 인해 나를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심은 우호성 여부가 아니라 대상 자체가 있다는 것이다.

핵심은 상호 영향력의 메커니즘을 누가 더 잘 이용하는가에 있다.

적이 나에게 가하는 공격, 내 공격에 대한 적의 방어는 적이 나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이다.
적은 전략가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이다. 전략가는 적을 통해 자신을 완성해 나간다.


병은 몸과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다.
병이 났다고 무조건 병을 없애는 데에만 신경을 집중하지 말고,
나의 맘과 몸이 병을 통해 나에게 무슨 말을 걸어오고 있는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시각각 흘러가는 나의 감정 파동 역시 나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다.
나의 감정을 느껴지는 대로 단순 분출만 하기 보다는
그 감정이 나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를 읽어가는 재미를 느낄 필요가 있다.

만물은 메시지이고,
세상은 만물이 쏟아내는 메시지들로 가득한 메시지 방송국이다. 결국 핵심은 메시지 수신 기능이다. 간접성 가득한 수많은 메시지들을 어떻게 잘 해석하고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삶의 질이 달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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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0:50 | DEL

    I am sure this Read & Lead - 만물은 메시지다. has touched all the internet viewers, its really really good article on building up new website.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0:51 | DEL

    If any one desires to be a successful blogger, then he/she must read this article %title%, because it contains al} strategies related to that.

  • BlogIcon 태현 | 2011/07/12 11:14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기독교 신앙의 근간 역시 메시지(말씀)로부터 시작됩니다. =)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john 1:1>

    조금 핀이 안맞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인사이트를 얻게되는 포스팅이네요! 늘 감사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1/07/12 22:20 | PERMALINK | EDIT/DEL

      메시지로부터 시작된다. 공으로부터 색이 나온다.
      이 두 문장 간의 유사성에 대한 생각을 해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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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억하기 :: 2011/06/22 00:02

스토리텔링
무심코 한 일도, 무심코 내뱉은 말도 모두 스토리가 될 수 있다. 결국 스토리텔링이란 죽어있는(?) 뭔가에 attention을 투입하여 그 결과값을 받아내는 것이다. 무엇이든 터치하면 반응하기 마련이다.
미디어가 쏟아내는 수많은 메세지들을 보면서, 그것들은 참 교훈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진부한 메세지들과 차별화된 메세지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들과 다르게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 수많은 진부한 메세지 유형들은 소중한 생각 재료들이다. 요즘 스토리텔링이란 말이 매우 유행하고 있지만, 스토리텔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오던 것이었다. 인간의 '기억'은 그 자체가 거대한 '셀프-스토리'이다. 자신에게 들려주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 끊임없이 편집/왜곡되는 나만의 스토리. 스토리는 다른 것 말하기이다. 다르기 위해선 진부함이 존재해야 한다. 세상엔 진부가 널려 있다. 세상에 깔린 진부함 속에서 그것들을 비틀면서 살아가는 재미를 만끽해야 한다. '다름'의 기회는 일상 속에서도 충분히 널려 있다. 일상 자체가 스토리텔링 플랫폼이다.

기억을 기억하기, 편집 & 창조
기억은 자아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기억이 없다면 자아는 흐릿해진다. 기억은 과거의 편집이다. 편집 과정에서 기억은 항상 변질/왜곡된다. 자아는 고정되고 뚜렷한 형체라기 보다는 뿌연 안개와도 같은 모습이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은 '자아'가 헷갈리지 않는 확연한 실재감을 갖고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자기조작이다. 시간은 실재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존재하기 위해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 뿐이다. 자아는 기억으로 구성된다. 지나간 일을 회상하는 순간 기억은 변한다. 기억을 기억하는 순간 기억이 변하듯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나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 나는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기억을 기억할 때 기억은 변한다. 관심에 관심을 가질 때 관심은 변한다. 기억과 관심은 일종의 '존재 편집'이다. 편집은 창조에 준하는 행위이다. 나의 기억을 기억하고 나의 관심에 관심을 기울일 때, 나는 나를 '편집 & 창조'하는 것이다.

나만의 변주
책을 읽다가 뇌리에 팍 침투하는 키워드를 발견하면 거기서 바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기는 것이 책을 계속 읽는 것보다 훨씬 더 비용효율적일 가능성이 높다. 계속 책을 읽어봐야 이미 확보한 키워드를 희석시키는 쪽으로 흐름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재밍(jamming)과도 같은 독서를 해야 한다. 재즈 아티스트들은 오리지널 곡을 그대로 연주하지 않고 자신만의 DNA로 곡을 즉흥적으로 재해석해서 재밍 세션을 펼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글을 자신만의 DNA로 변주시키는 맛을 느껴야 한다. 즉흥 연주는 일종의 '기억을 기억하기'이다. 내 안에 거대하게 잠재하는 악상들을 즉흥적으로 깨워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멜로디/리듬을 생성하는 것이니까.

반복과 영속
반복의 중요한 속성 중의 하나는 'endless'이다. 끝나지 않는다는 것은 영속지향을 의미한다. 무수한 반복을 지속하고 거기서 미세한 확률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차이를 지향하는 지속력 있는 반복 앞엔 장사가 없다. 차이를 지속하는 반복의 강점 중의 하나는 '연결'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절대로 똑같은 것을 반복할 수는 없다. 말이 반복이지 반복 과정 중에 반드시 새로운 요소가 생성되기 마련이다. 기억을 기억한다는 건 반복과 생성 간의 뫼비우스 띠 형성을 끝없이 지속하는 것이다.

분산 뇌
스마트 디바이스의 시대엔, '스마트 핸드/핑거'가 최고의 희소자원이다. 디바이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디바이스 중독을 통제할 수 있는 '손(가락)'의 힘이 유니크함을 만든다. 손(가락)에 장착된 뇌가 멍청하면 스마트 디바이스에게 당한다. 손(가락)이 디바이스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디바이스에 대한 통제 감각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야구에서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맘대로 던질 수 있는 감각을 기억하듯이 말이다. 통제감을 잊어버리면 통제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분산 뇌 시대엔 기억을 기억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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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도구, 의도, 양자 :: 2011/05/27 00:07


경계는 가상으로 설정한 막(membrane)이지 실체가 아니다. 근데 살다 보면 경계를 '막'이 아닌 하나의 견고한 '벽'으로 믿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막'으로 구성된 존재다. 인간 '막'은 수많은 물질적/비물질적 정보들이 빠른 속도로 투과되는 다이내믹한 공간이다. 인간의 '안'과 '밖'을 과연 명확히 규정할 수 있을까? 인간의 '안'과 '밖'을 명확히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인간을 완전 독립된 개체로 규정하고 생존을 위해 경쟁의 몸부림을 지속하는 존재로 살아가게 해야 이익을 보는 구조가 만연되어 있어서 그런 환상이 Fact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도구
인간은 편하게(?) 살기 위해 도구를 발전시킨다 도구가 진화하면 할수록 인간의 삶은 간접화/가상화의 물결 속에 휩쓸려가게 된다. 도구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인간은 '섬'이 되어간다. 도구는 인간과 인간을 매개한다. 매개 당하는 존재는 소외를 당하는 경향이 있다. 도구는 인간을 소외시킨다. 자본, 기술, 미디어는 모두 경지에 이른 거대한 도구들이다. 도구를 통한 커뮤니케이션도 분명 의도를 담은 메세지를 발신/수신하는 과정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도구에 의존하는 커뮤니케이션이란 설정 자체에 함정이 있다. 도구가 규정하는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매개 당하는 과정에서 의도의 감도는 저하되기 마련이다. 도구를 통해 나의 의도를 발신한다고 생각해도 실상은 도구의 의도를 대신 발신하는 의도 에이전트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도구가 advanced 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의도
만물은 저마다 의도를 갖고 있다. 하물며 인간이 고생고생해서(?^^) 축조한 자본/기술/미디어와 같은 거대 도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자본은, 기술은, 미디어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하여 시시각각 우리에게 의도된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만물은 저마다 자신만의 메세지를 발신한다. 인간을 향한 거대 도구의 메세지 발신은 증폭의 양상을 띠고 있다. 그에 비해 도구를 향한 인간의 메세지 발신은 미약하기 그지 없다. 인간-도구 간 메세지 flow의 비대칭 현상. 고유한 나만의 '의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나만의 정체성에 기반한 unique한 의도를 견지할 수 있다면, 어떤 도구를 사용한다 해도 그 도구의 의도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의도를 제대로 발산할 수 있다.

양자
광물, 식물, 동물, 인간은 모두 양자(quantum)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인간이 발전시킨 문명은 인간에게 원자(atom)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도구를 선사했다. 가시적 원자가 암묵적 양자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구 문명은 인간을 자꾸 원자(atom)적 존재로 환원시키려 한다. 하지만 인간은 원자(atom)적 존재로만 환원시키기엔 너무나 양자(quantum)적이다. 바로 여기에 서구 문명의 비극이 존재한다. 나와 타인이 대화할 때, 타인은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바라보고 느끼고 대화하는 게 아니다. 타인은 자신의 인식체계 안에 별도로 '가상의 나'를 새롭게 구축하고 그것을 인지하는 거다. 그건 '실재하는 나'와 다른 별개의 존재다. 수시로 탄생하는 '나'



PS. 관련 포스트
생각의 파동, 언어의 파동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2 - Compilation Post
가설, 알고리즘
심로,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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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알고리즘 :: 2008/11/10 00:00

오래 전에 이런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서류를 복사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복사 새치기를 하기 위해 "제가 먼저 복사하면 안될까요?"라고 말하는 것보단 "제가 먼저 복사하면 안될까요? 왜냐하면...."라고 말하는 게 훨씬 양해를 구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왜냐하면" 뒤에 어떤 말이 나와도 상관없다.  단지 "왜냐하면"이란 말 자체가 듣는 사람을 설득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격물치지님의 '왜냐하면, 최고의 설득 방법' 포스트를 보고 "왜냐하면"이란 말의 파괴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하다가 문득 끌로테르 라파이유(컬처 코드 저자)의 재미있는 커멘트가 떠올랐다. "사람은 질문을 받을 때, 질문자가 원하는 답을 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컬처 코드란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책 내용이 이러저러한 루트를 통해 많이 알려져 있다 보니 주워 들은 내용이 좀 있는 편이다.

그 내용 중에 정말 인상적인 내용이 하나 있었다.

미국인의 비만에 대한 얘기다.
미국인들은 날씬한 사람들은 활동적/참여적이라고 생각하고 뚱뚱한 사람들은 날씬한 사람들에 비해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더 많이 경험한다고 생각한다.  비만해지면 비만한 몸이 원활한 사회적 관계를 방해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관계 도피 성향을 보이게 된다고 생각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라파이유는 그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비만해지기 때문에 도피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도피하고 싶기 때문에 비만해진다는 것이다.  즉, 무엇인가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 속에 코딩되어 내재하고 있는 기제를 작동시켜 비만을 유도하고 유도된 비만은 그 사람을 자연스럽게 도피 추구형 인간으로 변모시켜 간다는 것이다.

즉, 비만의 경향이 엿보이면 내가 무엇인가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잠재 욕구가 발현되고 있는 것이며 그 원인을 찾아 욕구를 충족/해결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면 비만의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재미있다..

결국 인간 속에 내재하고 있는 코딩을 역설계해서 수많은 기제를 밝혀내면 이런 재미있는 솔루션이 무더기로 쏟아진다는 것인데...  인간 자체가 알고리즘이라..

이거 뇌과학이 점점 땡긴다..  땡겨... ^^



PS. 1~2년 사이에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  위 글을 적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거 아무래도 블로깅 때문인 것 같다.  2006년 12월부터 블로깅을 시작하면서 블로깅의 묘미를 알게 되었고 점점 블로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고.. 원하는 만큼 나의 생각을 충분히 블로그에 담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욕구 불만이 생겨났다. 그걸 해소하기 위해선 블로깅을 방해하는 활동을 못하게 막는 것이 필요했고 그 유력한 방편으로 살이 찌게 된 것이다.  난.. 블로깅 때문에 뚱보가 되었다..  빨리 대안을 찾지 못하면 살이 계속 찌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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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냐하면, 최고의 설득 방법

    Tracked from 격물치지 [格物致知] | 2008/11/12 00:31 | DEL

    설득, 협상 사실, 저에게 올해 키워드는 설득, 협상입니다. 협상을 위해 많은 출장도 다녔고, 많은 미팅도 했고 많은 책도 읽었습니다. 사실 포스팅도 많은 부분 설득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

  • 바벨의 현대적 의미

    Tracked from ego + ing | 2008/11/12 20:36 | DEL

    인간은 말을 하기 위해 생각한다.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욕구이고생각은 이것을 위한 활동이기 때문이다.그런 의미에서 말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그래서 우리사회는 듣기를 강조한다.듣..

  • BlogIcon philosup | 2008/11/10 19:2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도피하면 살이 빠지는 사람도 있답니다. 도피에 음식을 먹는 것도 포함되기도 하기 때문이죠. 제가 그렇기 때문에 후자의 의견은 전혀~ 공감이 가지 않네요.

    • BlogIcon buckshot | 2008/11/10 19:34 | PERMALINK | EDIT/DEL

      아.. 제 포스팅은 '관계로부터의 도피'에 대한 내용이었고,
      philosup님의 도피는 '음식으로부터의 도피'네요~

      저도 음식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음식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 ㅠ.ㅠ

  • BlogIcon 토마토새댁 | 2008/11/11 13: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크큭...
    도피보다는 퐁당 빠지는 스따일인 새댁이 살찌는 이유는 ????
    그야 퐁당 빠지니 그렇지...ㅋㅋ
    모든 것을 먹는 것에 귀결하니 어쩔 수 없는 결과...
    블로그땜시 살찌신다는 말씀이 본문내용보다 더 찐~~~하게 다가오는 것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님과
    보잘 것 없는 내가 같은 점이 있다는 동질감을 확인하게 되어서 인듯...ㅎㅎ

    근데 댓글에서 링크가 걸려지네요..우와 신기해라..
    inuit님 댁에 링크 타고 놀러가야징...

    오늘도 많이 많이 웃으세요^^

    • BlogIcon buckshot | 2008/11/11 19:33 | PERMALINK | EDIT/DEL

      항상 토마토새댁님 블로그를 보면서 배워야지 배워야지 하면서 계속 못 배우고 있습니다. 언젠간 배울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제겐 항상 있구요.. ^^

    • BlogIcon 토마토새댁 | 2008/11/13 13:55 | PERMALINK | EDIT/DEL

      오잉~~~
      제가 뭘 배우실 것이 있다시는 공..
      놀리시는 거죵? 놀리시면 싫엉싫엉...-.-;;

    • BlogIcon buckshot | 2008/11/13 19:04 | PERMALINK | EDIT/DEL

      아주 중요한 걸 갖고 계십니다. 전 그걸 배우고 있구요.. ^^

  • BlogIcon inuit | 2008/11/11 22: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하하하.. PS에 포스팅의 진수가 담겨있었군요.
    왠지 buckshot님은 슬림할듯한데 말이죠.
    저도 요즘 살과의 전쟁중입니다. ㅠ.ㅜ

    • BlogIcon buckshot | 2008/11/12 00:23 | PERMALINK | EDIT/DEL

      옛날엔 정말 슬림했는데 요즘엔 정말 뚱보가 되었습니다. 170에 83정도 되는 것 같네요... ^^

      inuit님, 감기는 다 나으셨나요? 혹시 살과의 전쟁에서 도피하고픈 욕구로 인해 감기에 드신 것은 아니신지..

  • BlogIcon 격물치지 | 2008/11/12 00: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연속으로 제 포스팅을 인용해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
    제 목표가 술과 살과의 전쟁인데... 둘 다에 달리기가 좋더군요

    • BlogIcon buckshot | 2008/11/12 08:55 | PERMALINK | EDIT/DEL

      제가 영향을 크게 받은 포스트여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
      격물치지님의 마라톤에 감명받아 저 그저께부터 집에서 러닝머신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남다른 각오로 임할겁니다~

  • BlogIcon egoing | 2008/11/12 20: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는 말과 생각의 관계에 대해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11/13 08:57 | PERMALINK | EDIT/DEL

      인과관계의 역전.. 참 재미있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egoing님의 트랙백을 읽고 넘 깊은 인상을 받은 나머지 실수로 트랙백을 2개나 올리고 말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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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ind is My Mother]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 자연은 인간을 용서하고 있다. :: 2007/05/16 00:03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
베어 하트 지음, 형선호 옮김/황금가지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인디언은 지상의 어떤 종족보다 동물에 가까웠다.  바람의 냄새를 맡고 새 소리를 듣고 나무를 만지고 냇물의 맛을 보며 불을 지피고 이상한 주문을 외우는 인디언들은 분명 자연과 대화를 나눌 줄 아는 마지막 종족이었는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은 그런 인디언들에게서 자연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현대인들은 자연을 이용하고 파괴할 줄만 알지 자신의 삶을 지켜주는 자연의 가치와 자연의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인간을 자연은 계속 용서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계속 우리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선물들을 인간에게 제공하고 있다.  자연은 인간과 연결되어 있고 인간에게 지속적인 메세지를 보내고 있다.  인간은 그런 자연의 마음을 이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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