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에 해당되는 글 7건

글댓글 :: 2017/09/22 00:02

글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이나 나름의 답변을 정리해 두지 않으면
시간과 함께 글을 읽었을 당시의 느낌이 휘발되어 사라져 간다.

그럼 그렇게 사라진 글에 대한 생각, 느낌이
말 그대로의 느낌이 되어 안개처럼 주위를 맴돌게 되는데
주위를 맴도는 것도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희미하게 사라져 간다.

느낌이 올라왔을 떄 바로 글로 적어두지 않으면
마치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과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바로 메모하는 것도 여간 귀찮지 않다.
귀찮기도 하고 그렇게 느낌을 구체적으로 적는 게 과연 좋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메모하기와 흘려보내기 사이의 중간 정도의 상태가 좋은데
그 중간 상태를 취하는 게 뭔지도 잘 모르겠고.

여튼 뭔가를 접하고 반응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글에 대한 답(댓글)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사라지는 대로 둘 건지
그걸 어떻게든 붙잡으려 애를 쓸 건지

글답을, 글댓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건가

그것이 문제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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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속 편집 :: 2017/09/06 00:06

영화 '메멘토'가 주는 영감

시간의 흐름 순으로 구성한 44개의 scene을 목적과 컨셉에 의해 재배열하는 것 만으로도 엣지 있는 영화가 만들어진다. 물론 플롯 구성 역량이 수반되어야 하는 작업이지만..

내 머리 속에서도 끊임없이 scene이 생성되고 조합되고 편집되면서 흘러가는데

그 속에서 일어나는 정보의 작동 모습을 영화처럼 scene으로 형상화하고 scene들을 일정한 프레임으로 재단하고 편집하고 배치한다면..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어쩌면 내 머리 속에 이미 미래의 어떤 지점이 묘사되어 있을 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미래를 바라볼 수 없는 형태로 구조화되어 있기에 미래가 어려운 것이지
미래를 허심탄회하게 느껴볼 수 있는 구조로 나 자신을 편집해 나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아마.

메멘토라는 영화가 주는 영감
간단치가 않다.
영화가 복잡하니 영감도 복잡해진다.
복잡하다는 건 풀어헤쳐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퍼즐을 풀어가는 과정의 묘미가 있고
만에 하나 퍼즐이 부분적으로라도 풀릴 때 얻게 되는 짜릿한 쾌감도 있을 것이고

모른다.
어떤 영화가 만들어질 지는.
하지만 그 영화는 메멘토 못지 않게 흥미로울 것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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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 2017/08/30 00:00

2001년에 메멘토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후로 16년이 지나서 다시 메멘토를 보았다.

여전히 어렵다. 이 영화는 내게.

44개의 scene의 흐름이
시간의 정방향 흐름과, 역방향 흐름이 교차로 편집되면서 흘러가는 상황이고
사전적인 맥락에 대한 감각을 차단당한 채 그냥 영화가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야 하다 보니 내용 파악이 여간 어렵지가 않다. 그렇다고 44개의 scene을 시간의 흐름 순으로 온전히 정배열해서 보면 영화의 재미가 떨어질 것이 분명하고..

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10분 이상 기억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 상실증 환자)의 입장과 유사한 상황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일 수도..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억이 갖는 역할에 시선을 주게 되고
기억이 편집하는 정보의 구성이 미래,과거,현재의 혼합물이란 느낌도 들고.

기억이란 주제를 갖고
멋들어진 역량으로 풀어나간 이 영화는
확실히 영감을 주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맥락이 제공되어야 편안해지는 동시에
맥락이 차단되었을 때 매력을 느끼게 되는 패러독스

시간의 순서가 커다란 구속이 되어버린 지금
미래는 오지 않은 무언가가 아니라 잃어버린 그것일 수도 있겠다.

미래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대신
현재의 질서와 시간의 흐름이라는 안락을 얻게 된 건데
과연 그게 수지타산이 맞는 거래였는지는..  알기가 어렵다. ㅋㅋ




PS. 관련 포스트
기억과 자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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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을 통한 시간놀이 :: 2013/07/17 00:07

시간은 앞을 향해 흘러간다. 시간은 뒤로 흘러가지 않는다.

'신의탑'이란 만화 때문에 정주행을 몸소 실천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주행을 마치고 나니까 많은 분량을 한꺼번에 읽는 재미는 사라지게 되었고 이젠 매주 월요일에 업데이트되는 작은 분량의 만화를 읽고 아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한참 정주행의 드라이브감을 느끼던 시절이 그리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역주행을 시도하게 되었다. 만화를 거꾸로 보는 것이다. 1회,2회,3회,,, 가 아닌 79회, 78회, 77회,, 이런 식으로..  그렇게 읽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함을 느낀다. 자꾸 과거를 변형시키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이다. 예전에 읽은 내용이니 어렴풋이 이전 장면이 잔상으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77회 이전에 탄생한 바 있는 76회의 스토리를 내 맘대로 변형시켜 보는 만화 조작 놀이를 즐기게 되었다. 내 맘대로 스토리를 변형시키다 보면 어느새 만화는 저자가 깔아놓은 궤도를 저만치 이탈하면서 안드로메다를 향한 장정을 시작하게 된다. 역주행을 하면서 과거를 변형시키는 작업을 하다 보면 현재까지 바뀌어 버리는 상황이 전개되고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토리라인이 붕괴되면서 어느덧 만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더 이상 만화를 저자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갇혀 있는 닫힌 스토리라인이 아닌 독자가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는 오픈된 다차원 스토리 큐브가 형성되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내맡긴 채 시간의 횡포 속에서 무기력하게 이리저리 휩쓸리는 삶은 그닥 재미가 없다. 나를 일종의 만화라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현재의 나를 만화 99회라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98회, 97회, 96회,, 이런 식으로 역주행을 해보자. 그러다가 나름 의미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되는 X회에서 멈춰보자. 그리고 그 상황에서 X회의 만화 내용을 수정해 보자. 그리고 나서 다시 현재로 복귀하면 현재의 나는 X회에서 변형을 가한 '역주행 & 편집' 놀이에 의해 살짝 영향을(?) 받게 된다. 즉,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지난 회의 만화들을 쭉 리뷰하면서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 X회를 수정하고 그를 통해 현재의 나를 재구성하는 놀이를 시도하는 것이다. '나'라는 대본, '나'라는 만화는, 한 번 그리기 시작하면 특정 경로를 이탈하지 못하고 단선적인 행로의 제약에 갇히기 쉽다. 그런 무기력한 존재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즐거운 다차원 일탈 놀이의 주인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란 반문도 가능하지만, 이런 놀이를 직접 해보면 이게 개소리만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뇌는 그렇게 스마트하지 않아서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주입하면 처음엔 저항을 하다가도 어느덧 그 상상의 매력에 도취되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병신 같은 상태에 스스로 빠져드는 나약한 판단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뇌의 병맛 판단력에 수시로 휘둘리면서 정작 나를 설레게 할 수 있는 이런 스펙타클한 놀이를 왜 주저해야 하는가? ^^

나는 한 편의 영화이고 만화이고 대본이다.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은 시간과 대화하고 공간과 협의하면서 수시로 진동에 진동을 거듭하고 유동에 유동을 반복한다. 우리 뇌에 집요하게 주입되고 있는 단선적 시간의 흐름. 그건 굴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변혁의 놀이를 시도하는 것은 유전자가 리드하는 로봇과도 같은 인간 삶에 있어 싱그러운 돌파구를 열어가는 행위이다. 신의탑을 정주행하다가 문득 역주행을 하게 되었고 역주행을 하다가 문득 배움이 생겼다. 시간을 살아가는 것은 시간에 휩쓸리지 않고 시간을 갖고 노는 것이라는 걸. 시간을 갖고 논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나의 취향대로 설계하고 편집하는 흥겨운 놀이들의 축적이고 그것들이 축적되면서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미래의 나는 끊임없이 서로 대화하고 협의하는 '시간 희롱'의 희열을 맞보게 된다는 것을..

시간은 앞을 향해 흘러간다. 시간은 뒤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시간을 갖고 놀 수가 있다. 왜? 뇌가 병신이라서. ^^





PS. 관련 포스트
점, 선, 면, 입체, 그리고..
쓰기, 잊기, 읽기, 그리고..
시간 속의 나
역산, 알고리즘
신의 탑을 정주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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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아크몬드 | 2013/07/17 09:1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스스로 생각했을 때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인데, 이렇게 정리된 글로 보니 새롭게 다가오네요.

  • rodge | 2013/07/22 16: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예전에 한번 벅샷님 블로그 정주행 했던때가 생각나네요.
    마치 시를 읽는 듯한 함축적이고 통찰력 가득한 문장들속에 넋을 잃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굳이 블로그 역주행까진 필요없겠죠? ㅋㅋ

    • BlogIcon buckshot | 2013/07/22 19:29 | PERMALINK | EDIT/DEL

      헉. 정주행만으로도 넘 감사하고 송구스럽습니다.

      정주행이라니요..

      너무 과하게 시간을 내주셔서 읽어주시니 그저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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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 알고리즘 :: 2013/02/25 00:05

생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짜투리 시간이 생긴다. 심지어는 모바일 시대를 맞아 소비자들의 짜투리 시간을 자신의 비즈니스에 득이 되는 쪽으로 유린하려는 사업적 움직임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보니 짜투리 시간은 계속 증가 추세에 놓여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은 짜투리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맘 편하게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먹듯 써버린다. 그런데.. 짜투리 시간의 주체는 누구인가? 스마트폰인가? 나인가?  정신줄 놓고 있으면 나의 짜투리 시간은 그걸 삼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모바일 비즈니스 등에게 속절없이 강탈당하고 만다. 짜투리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 비즈니스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는 삶의 질을 가늠할 중요한 갈림길이다.

갈림길에선, 스탠스를 명확하게 잡아야 한다.
스탠스를 분명하게 취하지 않으면 나를 향한 외부의 의도에 무작정 휘말릴 수 밖에 없다.

짜투리 시간에 대한 나의 태도를 선명하게 정의해보자. 짜투리 시간의 주체를 나로 삼아보자. 내가 짜투리 시간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짜투리 시간을 온전히 나의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비즈니스적 의도에 의해 나의 짜투리 시간이 유린당하지 않으려면 짜투리 시간 활용을 통해 누가 유익해지는가를 가늠해봐야 한다. 애니팡과 같은 모바일 게임에 짜투리 시간을 투입하는 것은 순간적인 뇌의 즐거움을 위해 모바일 사업자에게 나의 짜투리 시간을 갖다 바치는 행위이다. 그건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를 위하는 행동이다. 나의 짜투리 시간이 모바일 게임 비즈니스를 살찌우고 있단 얘기다. 그럼 나를 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시시각각 뇌에서 일어나는 각종 화학 반응들에 의해 휘둘리기 십상이다. 뭔가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을 때 나는 그것에 수시로 지배와 제어를 당하고 불안이 인도하는 기계적 삶의 패턴을 로봇처럼 답습하며 무기력한 몸짓을 반복하게 된다. 불안이 나를 제어하는 삶. 그 상황에 짜투리 시간을 투입해보자. 짜투리 시간이 나에게 허락될 때 그 시간을 애니팡하는데 사용하지 말고 나의 불안을 직시하는데 활용해 보자. 짜투리 시간의 힘은 은근 강해서 단 1분의 시간이라도 불안 직시에 투입될 경우, 불안은 움찔하면서 특유의 위용에 흠집이 생기고 그런 틈을 제대로 노리고 들어가면 불안은 주도권을 유지하지 못하고 어느덧 나의 자존에 위축당하는 수세에 놓이게 된다.

짜투리 시간의 힘은 의외의 맥락에서 나온다. 짜투리 시간은 연속성이 담보되지 않는 시간이어서 단절의 맥락에서 작동된다. 어떤 무거운 존재라도 짜투리 시간의 프레임에서는 가벼움 가득한 시선으로 응시당하게 된다. 나에게 위풍당당하게 군림해왔던 '불안'이란 존재를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낯선 시선으로 바로보면 불안은 예전처럼 나를 쉽게 대하지 못하고 나를 공략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게 된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수시로 기억을 휘발시키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 불안을 바라보자. 낯설어하는 눈빛에 편안함으로 대응하긴 무척 어렵다. 짜투리 시간의 힘은 '낯설어하기'에서 나온다.

무거운 것을 낯설게 바라보자.
나에게 주어진 짜투리 시간으로 무거운 것을 낯설게 대할 수 있다면
짜투리 시간은 더 이상 짜잘한 시간이 아니라 나름 짧고 파워풀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생소하지 않은 것을 생소하게 바라보는 것. 억지로 그렇게 하긴 어렵다. 하지만,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짜투리 시간이 허용될 때마다 메멘토의 남주인공이 되어서 무거움에 가벼움으로 대응해보자. 무거움이 가벼움이 되고 가벼움이 무거움이 되는 짜투리 시간의 매력에 아마 흠뻑 빠지게 될 것이고, 그런 시간들이 축적될수록 짜투리 시간은 나의 풍요를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기억과 자아 사이
짜투리와 메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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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투리와 메멘토 :: 2013/02/04 00:04

스마트폰은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좋은 도구이다. 길을 가면서 잠깐 볼 수도 있고,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잠깐 볼 수도 있고, 화장실에서 볼 수도 있고, 거의 어디서든지 스마트폰을 꺼내 토막 시간을 활용하여 뭔가를 보고 즐기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짜투리 시간과 스마트폰과 인간 간의 관계에 대해 함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스마트폰이란 도구를 통해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비즈니스가 스마트폰이란 도구를 앞세워 인간의 시간을 온통 짜투리 시간의 집합체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일까?

물론 짜투리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내 옆에서 항상 나의 손길을 기다려 주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유저의 짜투리 시간을 공략하여 비즈니스적인 성취를 열망하는 사업자들이 득실거린다는 건 유저에게 그닥 기분 좋은 상황만은 아니다.

나의 시간이 짜투리 단위로 토막화되고 그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짜투리 시간들과 합쳐져서 거대한 공룡의 입으로 던져지는 상황. 만약 나의 시간 중에 스마트폰에 의해서 짜투리 유린을 당하는 시간의 비중이 늘고 있다면 그렇게 유린된 짜투리 시간은 나의 시간이 아니라 사업자에 의해 몰개성화된 시간인 것이고 그렇게 몰개성화된 시간이 거대하게 축적되어 비즈니스적 가치만 드높이고 정작 그 시간을 투입한 각 개인의 상황은 피폐해져 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메멘토'를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전직 보험 수사관인 주인공이, 아내를 잃은 충격으로 인해 10분 이상 기억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 상실증 환자가 되어 자신의 이름, 아내를 잃은 사실, 범인의 이름만을 기억한 채 범인을 추적한다는 얘기다. 주인공은 기억을 지속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항상 메모를 하면서 파편화된 기억의 조각들을 힘겹게 이어가게 된다. 자신이 묵은 호텔, 방문한 장소, 만난 사람과 그에 대한 정보 등을 항상 메모하게 되고 심지어 몸에 문신까지 하게 된다. 주인공은 휘발성 메모리를 복구하고 구조화하기 위해 항상 퍼즐게임의 늪에 빠져 있고 그의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은 어느 사람 하나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억은 변조되고 도대체 무슨 기억이 진짜인지 가물가물해지면서 당초 확실하다고 믿었던 기억마저도 흔들리는 총체적 자아 위기를 맞게 된다.

스마트폰이 열어가는 모바일 세상. 그 세상 속에서 짜투리 시간을 유린당하는 유저들은 적어도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만큼은 어엿한 메멘토 상황에 깔끔하게 갇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모바일 비즈니스는 집요하게 유저의 짜투리 시간을 자신의 비즈니스에 유리한 쪽으로 전용하기 위해 총체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런 거대한 공격 앞에서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자신의 시간이 어떻게 잠식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인지력을 갖추지 않고 무심코 자신의 짜투리 시간을 휘발시키다간 꼼짝없이 메멘토 모드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짜투리 시간. 별 것 아닌 듯하여 막 써버리고 그 의미조차 인지되지 않는 시간. 그 시간 속에 깃들어 있는 묵직한 의미를 우린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짜투리 시간이 나면 짜투리화되어 가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짜투리 시간의 전부를 스마트폰 매만지는데 바치면 나는 더욱 짜투리화되어 갈 뿐이다. 짜투리화된 시간들. 그건 내가 아니라 휘발된 나에 불과하다. 뭐 휘발을 사랑한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




PS. 관련 포스트
접근성의 객체, 빼앗기는 시간
극세관심
기억과 자아 사이
방해
누가 지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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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3/02/04 01:3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짜투리 시간 만큼이나 짜투리 관계도 문제라고 말하고 싶어요. SNS와 모바일 메신저로 극파편화된 사람 사귐 패턴, 심지어 사랑까지 좌우하게 되어 있는 이 시스템이 진짜 인간에게 안전하고 유익한 것인지, 벅샷님처럼 전 요즘 너무 의심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2/04 09:46 | PERMALINK | EDIT/DEL

      새로운 도구의 성장은 도구 예속화의 우려와 함께 도구 응시를 통한 자아 성찰이란 기회를 함께 제공해 주는 것 같습니다. 도구와 한데 엉켜 짜투리 인간이 되기 보단 도구를 도구로 바라보면서 도구에 비친 나의 모습을 응시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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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자아 사이 :: 2008/10/3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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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를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전직 보험 수사관인 주인공이, 아내를 잃은 충격으로 인해 10분 이상 기억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 상실증 환자가 되어 자신의 이름, 아내를 잃은 사실, 범인의 이름만을 기억한 채 범인을 추적한다는 얘기다. 주인공은 기억을 지속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항상 메모를 하면서 파편화된 기억의 조각들을 힘겹게 이어가게 된다. 자신이 묵은 호텔, 방문한 장소, 만난 사람과 그에 대한 정보 등을 항상 메모하게 되고 심지어 몸에 문신까지 하게 된다. 주인공은 휘발성 메모리를 복구하고 구조화하기 위해 항상 퍼즐게임의 늪에 빠져 있고 그의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은 어느 사람 하나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억은 변조되고 도데체 무슨 기억이 진짜인지 가물가물해지면서 당초 확실하다고 믿었던 기억마저도 흔들리는 총체적 자아 위기를 맞게 된다.  이 영화를 보고 평상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기억이란 단어에 대해 강한 환기를 하게 되었던 경험이 또렷이 기억난다.

기억이 파편화되면 자아(아이덴티티)가 흔들린다. 사람은 기억을 통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차곡차곡 시간축을 따라 저장하고 구조화하고 변조한다.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에게 자아 의식을 부여한다.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기억의 합이라고 할 수 있다.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에 이런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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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공간을 3차원 좌표축으로 놓고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물체는 3차원 공간 속의 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시간마저 하나의 차원으로 간주하면 시공간을 4차원으로 볼 수 있고 모든 시공간 상의 이벤트를 4차원 좌표계 상의 한 점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시간은 공간과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시간이 흐른다는 표현이 있듯이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계속 진행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된다. 시간은 과연 흐르는 것일까?

물질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파편적 입자들을 묶어 주는 인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파편적 경험들을 묶어 주는 기억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기억이 없다면 사람은 자신을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를 잃어 버린다. 사람은 기억을 토대로 자신에 대한 자아 의식을 강화시킨다. 기억은 과거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무의식과 의식 체계 속에 저장하고 현재에 대응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은 '자아'가 헷갈리지 않는 확연한 실재감을 갖고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자기 조작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존재하기 위해 기억이 필요하고 기억이 데이터베이스 조작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시간이 흘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자아라는 개념이 희박해지면 기억이 의미 없게 되고 기억이 의미 없다면 과거,현재,미래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게 된다.  3차원 공간 속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걍 4차원 시공간 전체를 한 방에 느끼며 살게 되는 것이다.  과거가 무의식 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듯이 미래도 무의식 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을 수 있다. 단지 저장되는 양태가 다를 뿐이겠다.  기억과 자아 사이엔 악어와 악어새가 공유하는 공생의 집착이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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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ego + ing | 2008/10/31 02:27 | DEL

    그것은 하나의 신체를 공유하고 있는 기억의 집합이다. 기억이 없다면,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내가 서로 동일인물이라고 주장 할 수 있는 근거는 사라진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삶의 문맥, 생..

  • BlogIcon egoing | 2008/10/31 02:26 | PERMALINK | EDIT/DEL | REPLY

    너무 심오해서 제가 따라온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
    반가운 포스팅이내요.
    커뮤니케이션 없이 무엇인가를 공감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체험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10/31 09:09 | PERMALINK | EDIT/DEL

      egoing님의 사유가 담긴 egoing님의 포스트를 통해 배우면서 적은 글입니다. 저 혼자 생각으론 저 이런 스타일의 글은 절대 못 씁니다. 앞으로도 계속 egoing님의 도움을 받을 생각입니다. ^^

  • BlogIcon 구월산 | 2008/10/31 05: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시간과 자아...
    상대성이론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꿈은 인간의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하던데..꿈속에서 나타나는 상징들은 주로 과거이지만,
    시간적으로 배열되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인데..자아가 우리의 의식이고,그 의식은 작은 영역의 무의식이 외면화된 형태라고 했을 때 무의식의 세계에서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요?

    • BlogIcon buckshot | 2008/10/31 09:15 | PERMALINK | EDIT/DEL

      결국 시간은 인간의 오감 한계가 지배하는 일상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뿐, 어쩌면 시간은 아무것도 아닌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분리,경계,다름을 통해 자아가 형성되고 발전을 하게 되는데 필요 이상으로 자아가 넘 심하게 발전할 경우 여러가지 왜곡을 하게 될 것 같고요.. 그 왜곡의 대표적인 현상이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냥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는 공간과 시간을 한계 투성이인 인간이 임의로 나누고 그걸 절대화시켜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런 왜곡스런 발전 본능이 없는 무의식의 세계라면 시간은 완전 다른 의미로 재구성될 것 같구요..

      그냥 가벼운 넋두리구요. 앞으로 생각을 계속 해봐야 할 주제인 것 같습니다. 귀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

  • BlogIcon mepay | 2008/10/31 09:03 | PERMALINK | EDIT/DEL | REPLY

    벅샷님 저희 유전자 검사 한번 받아보는게 어떻겠습니까?
    샴 쌍둥이도 이런 샴 쌍둥이가..-_-;

    • BlogIcon buckshot | 2008/10/31 09:16 | PERMALINK | EDIT/DEL

      놀라운 일이 넘 자주 발생하면 그것도 일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찌 이런 일이... ^^

      정말 검사 한 번 받아봐야겠는데요? ^^

    • BlogIcon 토마토새댁 | 2008/10/31 22:38 | PERMALINK | EDIT/DEL

      악!!! 또~~~~

      음 정말 정밀검사가 필요한 듯...
      이상혀~~아마 39번 유전자가 똑 같을껴...ㅋㅋ

    • BlogIcon buckshot | 2008/10/31 22:45 | PERMALINK | EDIT/DEL

      정말 충분히 경악할 만한 일이에여~ ^^

  • BlogIcon SuJae | 2008/10/31 11:4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는 보다 나은 자아 실현을 위해 애써 기억을 조작하기도 합니다 ㅎ

    • BlogIcon buckshot | 2008/10/31 18:59 | PERMALINK | EDIT/DEL

      저도 가끔 하는데.. ^^
      앞으로 그 빈도를 좀 늘려볼까 생각 중입니당~ ^^

    • BlogIcon egoing | 2008/11/02 23:01 | PERMALINK | EDIT/DEL

      그 스킬을 좀 공개해주시면 어떨런지. 몹시 궁금하내요.

    • BlogIcon buckshot | 2008/11/02 23:13 | PERMALINK | EDIT/DEL

      저도 SuJae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전, 아주 저급한 수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뚜렷한 기억은 조작이 쉽지 않으니 일단 열외를 시키구요. 흐릿한 기억들이 있습니다. 특히 약한 자아, 맘에 들지 않는 자아와 관련된 기억들이 흐릿하게 남아 있으면 그걸 지우고 대신 강한 자아, 맘에 드는 가공의 자아를 생성/발전시킨다고나 할까.. ^^

    • BlogIcon SuJae | 2008/11/03 00:23 | PERMALINK | EDIT/DEL

      가장 간편한 방법은, 그동안 잘해오던 일이 잘 안풀릴때, 난 원래 이 일을 잘하지 못했었어...라던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아무런 기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릴때 소질이 있었던 것처럼 최면을...;;;

  • BlogIcon 데굴대굴 | 2008/11/02 11:18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렇다면 조작된 기억은... 어떤 효과가 나는걸까요? ;;

    • BlogIcon buckshot | 2008/11/02 14:07 | PERMALINK | EDIT/DEL

      자아가 느낄 수 밖에 없는 원초적 불안감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기억의 합이 자아이고 자아가 존재감을 강화하기 위해선 필요에 의해 얼마든지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조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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