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에 해당되는 글 12건

The Tell :: 2014/03/26 00:06

스냅
매튜 헤르텐슈타인 지음, 강혜정 옮김/비즈니스북스


만물은 흘러간다.
흘러간다는 것은 뭔가를 향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뇌는 흘러간다.
뇌에 접수되는 무수한 정보 신호들은 뇌 속에서 조합되어 의미 있는 가공 정보를 만들어낸다.
나는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해도 무의식 레벨에서 나는 끊임없이 뭔가를 예측하고 대응하려고 한다.

이 책의 원제가 'The Tell'인데 참 맘에 든다.
만물은 스토리텔링의 주체이다. 무엇이든 자신 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가는 감각기관이 얼마나 열려 있는가에 달려 있다.

무엇보다도 나로부터 발산되는 '이야기'부터 들어야 한다.  나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걸 전혀 못 알아들을 수 있다. 나의 이야기를 듣는 게 의외로 난해하다.  스토리텔링은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반해 스토리청취는 희소한 상황.  스토리에 관한 한 수요와 공급은 철저한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다.

만물은 진동한다
만물은 존재한다.
존재는 진동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존재 자체가 이야기다 .
존재로 살아가면서 존재로부터 발산되는 이야기를 스스로 감지해야 한다.

편의상 협소하게 정의된 '이야기', '감각'의 범주를 나만의 스타일로 얼마나 넓힐 수 있는가?

세상 자체가 THE TELL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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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을 느끼다. :: 2013/08/21 00:01

리듬의 사전적 정의는 아래와 같다.

'흐른다'는 뜻의 동사 'rhein'을 어원으로 하는 그리스어 'rhythmos'에서 유래한 말이다. 넓은 뜻의 리듬은 시간예술·공간예술을 불문하고 신체적 운동, 심리적·생리적 작용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리듬의 정의는 예로부터 시대나 민족에 따라 다양하다. 가장 포괄적인 것으로는 플라톤의 《노모스(법률편)》에 있는 "운동의 질서"라는 정의가 가장 유명하다. 음악의 3요소라면 일반적으로 멜로디·화성·리듬을 말한다. 그러나 멜로디·화성을 가지지 않는 음악은 있어도, 리듬이 없는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태초에 리듬이 있었다"라고 뷜로가 말한 것처럼, 리듬은 음악의 가장 근원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음악적 리듬의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음(음이 없는 상태인 쉼도 포함)이 연속적으로 진행할 때의 어떤 시간적 질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음악의 리듬은 음표의 시가(時價:장·단)·악센트·악절구조(樂節構造)·뒤나믹(음의 셈여림)·템포·아고기크(速度法)·음색(音色) 등에 의해서 규정되는데, 살아 있는 리듬은 당연히 연주를 통해서 음악적·심리적 시간 안에서 표출되는 것이다.  [출처] 두산백과


텍스트를 읽는 것, 영상을 보는 것, 음악을 듣는 것, 말을 하는 것, 생각을 하는 것.. 모두 리듬을 타는 것이다. 리듬에는 결이 있다. 내가 타고 있는 리듬의 결을 따라 무작정 흘러가는 것도 즐겁고, 의식적으로 결의 라인업을 직조하는 것도 흥겹다.

나의 관점에서 리듬이 좋은 텍스트는 나의 생각을 움직이게 한다. 리듬은 운동이고, 다른 대상에게 운동 에너지를 부여한다. 좋은 리듬을 가까이 한다는 건 유쾌한 일이다. 읽히는 텍스트와 안 읽히는 텍스트를 좌우하는 건 텍스트와 나 간의 리듬 궁합이다.

흥겹게 리듬을 타는 시간을 최대한 길게 가져가는 건 생각/행동의 플로우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나와 리듬 궁합이 잘 맞는 대상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이리 저리 대상을 옮겨 다니며 리듬 파도를 타는 것. 리듬 라이프다.

나와 리듬의 결이 잘 맞는 대상과 함께 하는 즐거움은 당연한 것이고. 나와 리듬의 결이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던 텍스트, 음악으로부터 나와 결이 통할 수 있다는 감을 전달받을 때의 기쁨은 나름 크다. 그건 한 인간의 결은 계속 변화해 나감을 의미한다.

신체의 리듬, 생각의 리듬, 행동의 리듬, 인간의 리듬, 동물의 리듬, 식물의 리듬, 광물의 리듬, 텍스트의 리듬, 영상의 리듬, 고체의 리듬, 액체의 리듬, 기체의 리듬, 땅의 리듬, 하늘의 리듬, 공기의 리듬, 구름의 리듬, 비의 리듬, 지구의 리듬, 우주의 리듬, 세포의 리듬, 원자의 리듬, 양자의 리듬, 감정의 리듬, 뇌의 리듬, 관념의 리듬, 말의 리듬, ..  세상은 리듬으로 가득 차 있다.

만물은 리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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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한다는 것 :: 2012/10/19 00:09

웹을 통해 우리는 사이트에 접속을 한다.  URL이 살아 숨쉬고 있는 사이트의 경우, 우리는 언제든지 그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  우리는 웹을 통해 접속을 한다. 웹은 우리의 감각기관에 접속감을 심어 주었고 우리는 접속이 없던 시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접속이 일상화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존재하는 어떤 사이트에도 우리는 접속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접속은 웹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하고 있는 접속이란 행위는 과연 웹에만 특화된 행위일까? 

접속을 웹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웹으로부터 1차원적인 교육만 받은 것이다. 웹이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는 총체적인 메시지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접속은 세상 모든 만물, 세상 모든 개념에 적용 가능하다.  우리는 길을 지나가다가 바닥에 깔린 보도 블록에 접속을 하고, 무심코 앉은 의자에도 접속을 하며 친구와 메신저로 대화하기 위해 두드리는 컴퓨터 자판과도 접속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흡입하는 음식과도 접속을 하며 집에 가기 위해 탄 지하철의 손잡이와도 접속을 한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 싼 모든 사물들과 접속을 한다. 우리는 감정에 접속을 한다. 기쁨에 접속하기도 하며 슬픔에 접속하기도 하며 때론 두려움에 접속하며 때론 유쾌함에 접속하기도 하고 때론 답답함에 때론 속시원함에 접속한다. 우리는 감사에 접속하기도 하며 우리는 원망에 접속하기도 하며 비방에 접속하기도 하며 존경에 접속하기도 하며 공감에 접속하기도 하며 호감에 접속하기도 한다.

웹은 우리에게 '접속'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는 웹을 통해 접속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접속이 웹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란 것도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모든 것에 접속할 수 있다. 우리가 의도를 가지고 웹사이트에 접속하듯이 우리는 사물에 의도적으로 접속할 수 있고 사람에 의도적으로 접속할 수 있고 개념과 생각과 감정에도 의도적으로 접속할 수 있다.  웹은 끊임 없이 우리에게 접속에 대해 메시지를 보내고 있고 접속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우리는 웹이 전달해 주는 메시지의 단 1%도 이해를 못하고 있고 있는 실정이다. 우린 접속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



PS. 관련 포스트

접속감과 세(勢)

방해
복사기 vs. 재즈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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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1:03 | DEL

    As the YouTube video tutorials are posted at this place same like I also embed YouTube video code at my own web site Read & Lead - 접속한다는 것, since it is simple to obtain embedded code.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1:03 | DEL

    Amazing video, in fact a fastidious %title% quality, this YouTube video touched me a lot in terms of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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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태깅한다. :: 2011/12/19 00:09

시간에 태깅을 할 수 있으면 태그 키워드를 중심으로 시간이 모이게 되고 모인 시간은 특정한 방향성을 띠게 된다. 무의미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시간에 태깅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흘러간 시간이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시간에 태깅을 한다. 흘러가는 시간에 아무런 태깅 없이 무의미를 더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시간도 흐르고 나도 흐른다. 흐름 자체가 시공간 상에 대한 태깅이다. 나는 호흡을 하듯 태깅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화는 태깅이다. 뭔가를 말한다는 것은 뭔가에 태깅을 하는 것이다.
독서는 태깅이다. 뭔가를 읽는다는 것은 뭔가에 태깅을 하는 것이다.
동작은 태깅이다. 뭔가를 행한다는 것은 뭔가에 태깅을 하는 것이다.
식사는 태깅이다. 뭔가를 먹는다는 것은 뭔가에 태깅을 하는 것이다.
수면은 태깅이다. 뭔가에 잠든다는 것은 뭔가에 태깅을 하는 것이다.
생각은 태깅이다. 뭔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뭔가에 태깅을 하는 것이다.
감정은 태깅이다. 뭔가에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뭔가에 태깅을 하는 것이다.
블로깅도 태깅이다. 포스팅하면서 태그 칸에 낱말을 적는 것이 태깅이 아니라 포스팅 자체가 태깅이다.

사람의 흐름 자체가 태깅이다.
생물의 흐름 자체가 태깅이다.
광물의 흐름 자체가 태깅이다.
우주의 흐름 자체가 태깅이다.

만물은 태깅한다.

살아가면서 내가 축적한 태깅의 총합은 곧 나의 정체성이다. 내가 오늘 수행한 태깅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인식할 수 있을 때 오늘의 나를 규정하게 되고, 내가 평생 수행하게 되는 태깅이 무엇인지에 대해 인식할 수 있다면 평생의 나를 규정하게 된다.  나의 태깅은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축적되고 있다. 무엇이 축적되는지, 어떻게 축적되고 있는지 그 모습을 형상화할 수 있다면. 아마도 그 tag map은 거대한 우주의 역사와도 같은 장대함을, 점과도 같은 엄청난 함축성을 띠고 있을 것이다.  

나는 태깅한다.
블로깅은 내가 태깅하고 있음을 직시하게 해준다.
블로깅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을 살아도 내가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



PS 1. 님의 트윗


PS 2. 관련 포스트
Blogging = Broadcasting Identity
시간, 알고리즘
태깅,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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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자세계 | 2011/12/19 08:2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요즘은 한쪽으로 치우쳐지고 있는 듯 하다. 현실 즉, 오프라인 세상이 아닌 온라인 세상속에서...
    그 부분이 안타깝다. 어쩌면 나 역시도 그러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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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 2011/08/24 00:04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역시
리처드 도킨스의 '무지개를 풀며 (Unweaving the rainbow)'를 읽지는 않는다.

그리고 올해도 역시 단지 책 제목만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2011.8.24)

비밀 코드를 해독할 때, 세상의 이치를 밝혀내기만 하는 건 아니다.
밝혀낸 만큼 비밀 코드 속으로 숨는 뭔가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진공은 무엇일까? 정말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진공은 우리 인지체계로 파악이 되지 않을 뿐 분명 뭔가를 함유하고 있고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다. 만물의 기본은 원자도 아니고 소립자도 아니다. 만물의 기본은 진공이다.

원자 이하 레벨로 아무리 내려가봐야 얄미운(?) 소립자와의 기약 없는 숨바꼭질만 반복하게 될 지도 모른다. 만물의 본질은 입자를 통해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만물의 본질을 파헤치려면 진공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그건 과학의 영역이 아닐 수도.

글로 뭔가를 표현할 때는 표현되지 못한 뭔가가 표현된 글의 이면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건 마치 입자와 진공과의 관계와도 같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체만 실재로 판단할 뿐, 그 물체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나누는 진공의 존재를 항상 잊고 살아간다. ^^


PS. 이윤하님의 트윗 멘션

가능성이 아직 원자도 현상도 되지 않은, 슈뢰딩거의 1/2 고양이의 공간, 빛이 탄생하지 않은, 아원자의 세계. 무한하고 영원한, 없지만 있는 세계. 경계이전의 공간.

빛이 있으면 꼭 그림자가 있죠. 빛 이전의 무엇이 바로 그 '진공'의 세계겠죠? 아이슈타인이 빛보다 빨리 뛰어 빛 앞에 서면 무엇이 보일까 궁금해했다는데, 리드리드님도 비슷한 생각중이시군요 ^^



해독과 신념. 그리고 종교.  (2010.11.5)

무지개를 풀며
리처드 도킨스 지음, 최재천.김산하 옮김/바다출판사


서점에서 우연히 리처드 도킨스의 '무지개를 풀며 (Unweaving the rainbow)'를 접하게 되었다.

Unweaving이란 단어에 눈길이 간다. 예전에 읽은 '다윈의 식탁'이란 책이 떠오른다. 위대한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 박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생물학계의 최고 지성들이 진화론에 대해 한바탕 대 설전을 펼치게 된다는 '가상 논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생물학계의 거성들은 진화론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를 중심으로 양쪽 진영으로 나뉘어져 1주일 간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게 된다. "강간도 적응인가?",  "이기적 유전자로 테레사 수녀를 설명할 수 있나?",  "유전자에 관한 진실을 찾아서",  "진화는 1백미터 경주인가, 넓이뛰기인가?",  "박테리아에서 아인슈타인까지"  등의 주제를 놓고 리처드 도킨스 진영과 스티븐 제이 굴드 진영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그 동안 쌓아왔던 자신들의 이론과 자존심을 걸고 팽팽한 의견 대립을 선보인다.

'다윈'이란 코드를 각자의 생각과 방식으로 unweaving하기 때문에 그 결과물은 저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 다른 결과물들에 자신만의 신념과 열정, 그리고 자존심을 듬뿍 실어 결정적인 이견이 발생할 때 격렬한 사상(?) 논쟁을 하고 있는 모습. 생물학자들은 다윈이란 성전(聖典)을 해독하고 다윈에 대한 각자의 신념을 저작하고 있으며 서로 사상이 맞지 않을 땐 격한 자존심 전쟁을 불사한다. 다윈은 가장 핫한 현대 종교다.


비밀스런 코드를 해독한다는 것.
비밀을 하나 둘 파헤쳐 가는 과정 속에서 가설과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발전하게 되고 그것을 코드 해독에 결부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신념은 형성되게 마련이다. 신념은 자가증식의 경향이 있어서 계속 그것을 강화시키고 확장시키려는 노력을 수반하게 된다.

비밀코드와 신념은 공생 관계다. 바로 이 기반 위에서 종교계의 교리 싸움이 작동하고, 과학이란 또 다른 종교계의 교리 싸움이 동작한다.

해독은 신념과 만나 교리를 낳는 메커니즘이 과학에서 매우 왕성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관전 포인트들이 앞으로 마구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다고나 할까. ^^


PS. 관련 포스트
해독과 신념. 그리고 종교.
다윈,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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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 Economy가 도래하다. :: 2011/07/18 00:08

파편화된 토막 토크의 범람. 끝나지 않는 이야기.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 플랫폼이다. 시작과 끝이 없다는 것. Never beginning 이어서 Never ending인 Story. 앨범 단위가 아닌 파편화된 싱글 단위로 음악을 소화하기. 파편화된 정보들의 스트리밍 기반 소비. 페북/트위터는 일종의 정보 스트리밍 서비스이다. 트위터/페북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stream 기반의 소비 시대를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정보가 streaming된다는 것은, 뮤직 앨범과 같이 완성된 스토리가 시작과 끝, 스토리라인이 거세된 체 파편화된 정보들로 해체되어 속절없이 스트리밍 미디어 상을 흘러감을 의미한다. 시작과 끝이 제거되고 스토리라인이 해체된다는 것은 저자의 자존심이 분해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저자의 context가 해체된 파편화된 정보들이 스트리밍 미디어 속에 편입되는 것. 스트리밍 기반의 음악 소비는 스트리밍 기반의 정보 소비의 예고편이었다. 이제 저자의 스토리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투입할 수 있는 소비자의 pool은 점점 엷어져 가고 있다. 저자의 스토리 전체는 소비자에게 중요하지 않다. 소비자는 자신의 관심에 부합하는 파편화된 정보들에 주목할 뿐이다.

Stream Economy가 도래했다. 시작과 끝이 없이 어디론가 속절없이 정보는 흘러만 간다. Streaming Media에 편입하기 위해선 저자는 자신의 스토리라인을 해체해야 한다. 스트리밍 뮤직 서비스에 앨범을 온전히 탑재하기 어려운 것처럼.

음악에 이어 정보도 소비자와 컨텐츠 간의 관계 양식이 소유에서 접속으로 바뀌고 있는 모습이다. 소유에서 접속으로의 관계 양식 변화와 '접속-friendly' 관점의 저자 컨텍스트 해체 현상은 매우 큰 변화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변화는 음반과 책을 수없이 사 모으던 사람들에겐 꽤 서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LP/CD로 음악을 소비하던 시절엔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 모으며 음반을 사재기 했었다. 그게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고 생각했었다. MP3가 뜨자, 음악에 대한 열정이 급속도로 식었다. 결국 난 음악 보단 음악 컨테이너에 열광했던 것이다. LP/CD는 완성된 스토리를 담는 스토리 컨테이너였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지금도 앨범 단위로 음악을 소비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파편화된 싱글 단위로 음악을 소비하고 있다. 스토리 보단 컨테이너에 더 집착했던 나였다. '컨텐츠'란 본질 보단 '컨테이너'란 표피에 집착을 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어찌 보면 컨텐츠보다 컨테이너가 더 본질적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해보게 된다. 만물은 정보다. 결국 세상 어디서나 정보는 흐른다. 그걸 어디에 담을 것인가가 관건인 것이다. MP3가 'LP/CD' 컨테이너를 무력화시켰듯이 e북도 '종이책'이란 컨테이너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무력화시킬 것이다. 나 개인적으론 예스24가 아이패드 전용 앱을 내놓고 예스24에 충분한 규모의 e북이 올라온다면 난 종이책을 LP/CD처럼 대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컨테이너는 이렇게 진화되어 가는 것인가? ^^

결국, 저자의 컨텍스트를 극대화시킨 LP/CD 컨테이너를 통해 뮤직 사업자들은 장사를 해왔던 것이고, 저자 컨텍스트가 해체되고 독자 컨텍스트의 주도성이 커지는 요즘엔 신 흐름에 부합하는 스마트폰/스마트패드와 같은 신 컨테이너가 득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 페이스북/트위터도 streamed content를 효과적으로 담는 신 컨테이너로 볼 수 있겠다. 주체적 정보 소비 시대는 모두를 '독저자(독자이면서 저자인 자)'로 만들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Everything Flows.라고 말했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 만물은 정보임이 분명해졌고
정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과 같이 행동하고 있다. Everything Streams. ^^




PS. 관련 포스트
페이스북 LIKE, 트위터 RT
Facebook, Storyvertizing Platform
페이스북, 지불 플랫폼
페이스북, 감염 플랫폼
페이스북의 광고 플랫폼
폐쇄 플랫폼 (페이스북)
페이스북 Like(좋아요)는 통화이다.
프로슈밍 플랫폼 = 트위터/페이스북
피드 플랫폼 (트위터/페이스북, 인간)
경험 속에 녹아 들어간 용어
페이스북이란 이름의 블랙박스
사이, 알고리즘
페플, 알고리즘
네트,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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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Playing | 2011/08/21 16:1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욤!
    조금 늦었나요? 하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이전 글들도 너무 잘 보고 있었는데... 과연! 이 글로 이전 글들이 어느정도 분류되어지는 거 같아요

    세상의 모든 것을 정보와 한 권의 책으로 보는 것도 그렇고,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본래 의도와 그것을 담는 물질(형식)으로 보는 것도 그렇구요~!

    P.S 하늘이 노하신 듯한 여름이 지나고 있는데 가을맞이 잘 준비하세욤!

    • BlogIcon buckshot | 2011/08/21 21:05 | PERMALINK | EDIT/DEL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시죠? ^^

      아,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 듭니다.
      역시 의미를 부여해 주시니 의미가 살아나네요. ^^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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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메시지다. :: 2011/06/29 00:09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란 말을 남겼지만
그건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봤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일 뿐,

실은 "만물이 메시지다"라고 봐야 한다.


손자의 손자병법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
적을 위험한 존재로 바라보기 보다는 나의 성장 파트너로 재인식하는 관점이 유효할 수 있다.
적이 있다는 건 적으로 인해 나를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심은 우호성 여부가 아니라 대상 자체가 있다는 것이다.

핵심은 상호 영향력의 메커니즘을 누가 더 잘 이용하는가에 있다.

적이 나에게 가하는 공격, 내 공격에 대한 적의 방어는 적이 나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이다.
적은 전략가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이다. 전략가는 적을 통해 자신을 완성해 나간다.


병은 몸과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다.
병이 났다고 무조건 병을 없애는 데에만 신경을 집중하지 말고,
나의 맘과 몸이 병을 통해 나에게 무슨 말을 걸어오고 있는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시각각 흘러가는 나의 감정 파동 역시 나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다.
나의 감정을 느껴지는 대로 단순 분출만 하기 보다는
그 감정이 나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를 읽어가는 재미를 느낄 필요가 있다.

만물은 메시지이고,
세상은 만물이 쏟아내는 메시지들로 가득한 메시지 방송국이다. 결국 핵심은 메시지 수신 기능이다. 간접성 가득한 수많은 메시지들을 어떻게 잘 해석하고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삶의 질이 달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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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0:50 | DEL

    I am sure this Read & Lead - 만물은 메시지다. has touched all the internet viewers, its really really good article on building up new website.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0:51 | DEL

    If any one desires to be a successful blogger, then he/she must read this article %title%, because it contains al} strategies related to that.

  • BlogIcon 태현 | 2011/07/12 11:14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기독교 신앙의 근간 역시 메시지(말씀)로부터 시작됩니다. =)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john 1:1>

    조금 핀이 안맞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인사이트를 얻게되는 포스팅이네요! 늘 감사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1/07/12 22:20 | PERMALINK | EDIT/DEL

      메시지로부터 시작된다. 공으로부터 색이 나온다.
      이 두 문장 간의 유사성에 대한 생각을 해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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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억하기 :: 2011/06/22 00:02

스토리텔링
무심코 한 일도, 무심코 내뱉은 말도 모두 스토리가 될 수 있다. 결국 스토리텔링이란 죽어있는(?) 뭔가에 attention을 투입하여 그 결과값을 받아내는 것이다. 무엇이든 터치하면 반응하기 마련이다.
미디어가 쏟아내는 수많은 메세지들을 보면서, 그것들은 참 교훈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진부한 메세지들과 차별화된 메세지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들과 다르게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 수많은 진부한 메세지 유형들은 소중한 생각 재료들이다. 요즘 스토리텔링이란 말이 매우 유행하고 있지만, 스토리텔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오던 것이었다. 인간의 '기억'은 그 자체가 거대한 '셀프-스토리'이다. 자신에게 들려주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 끊임없이 편집/왜곡되는 나만의 스토리. 스토리는 다른 것 말하기이다. 다르기 위해선 진부함이 존재해야 한다. 세상엔 진부가 널려 있다. 세상에 깔린 진부함 속에서 그것들을 비틀면서 살아가는 재미를 만끽해야 한다. '다름'의 기회는 일상 속에서도 충분히 널려 있다. 일상 자체가 스토리텔링 플랫폼이다.

기억을 기억하기, 편집 & 창조
기억은 자아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기억이 없다면 자아는 흐릿해진다. 기억은 과거의 편집이다. 편집 과정에서 기억은 항상 변질/왜곡된다. 자아는 고정되고 뚜렷한 형체라기 보다는 뿌연 안개와도 같은 모습이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은 '자아'가 헷갈리지 않는 확연한 실재감을 갖고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자기조작이다. 시간은 실재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존재하기 위해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 뿐이다. 자아는 기억으로 구성된다. 지나간 일을 회상하는 순간 기억은 변한다. 기억을 기억하는 순간 기억이 변하듯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나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 나는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기억을 기억할 때 기억은 변한다. 관심에 관심을 가질 때 관심은 변한다. 기억과 관심은 일종의 '존재 편집'이다. 편집은 창조에 준하는 행위이다. 나의 기억을 기억하고 나의 관심에 관심을 기울일 때, 나는 나를 '편집 & 창조'하는 것이다.

나만의 변주
책을 읽다가 뇌리에 팍 침투하는 키워드를 발견하면 거기서 바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기는 것이 책을 계속 읽는 것보다 훨씬 더 비용효율적일 가능성이 높다. 계속 책을 읽어봐야 이미 확보한 키워드를 희석시키는 쪽으로 흐름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재밍(jamming)과도 같은 독서를 해야 한다. 재즈 아티스트들은 오리지널 곡을 그대로 연주하지 않고 자신만의 DNA로 곡을 즉흥적으로 재해석해서 재밍 세션을 펼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글을 자신만의 DNA로 변주시키는 맛을 느껴야 한다. 즉흥 연주는 일종의 '기억을 기억하기'이다. 내 안에 거대하게 잠재하는 악상들을 즉흥적으로 깨워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멜로디/리듬을 생성하는 것이니까.

반복과 영속
반복의 중요한 속성 중의 하나는 'endless'이다. 끝나지 않는다는 것은 영속지향을 의미한다. 무수한 반복을 지속하고 거기서 미세한 확률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차이를 지향하는 지속력 있는 반복 앞엔 장사가 없다. 차이를 지속하는 반복의 강점 중의 하나는 '연결'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절대로 똑같은 것을 반복할 수는 없다. 말이 반복이지 반복 과정 중에 반드시 새로운 요소가 생성되기 마련이다. 기억을 기억한다는 건 반복과 생성 간의 뫼비우스 띠 형성을 끝없이 지속하는 것이다.

분산 뇌
스마트 디바이스의 시대엔, '스마트 핸드/핑거'가 최고의 희소자원이다. 디바이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디바이스 중독을 통제할 수 있는 '손(가락)'의 힘이 유니크함을 만든다. 손(가락)에 장착된 뇌가 멍청하면 스마트 디바이스에게 당한다. 손(가락)이 디바이스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디바이스에 대한 통제 감각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야구에서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맘대로 던질 수 있는 감각을 기억하듯이 말이다. 통제감을 잊어버리면 통제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분산 뇌 시대엔 기억을 기억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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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파동, 언어의 파동 :: 2011/05/20 00:00


트위터, 모바일 등으로 인해 실시간 웹/커뮤니케이션의 묘미를 느끼게 된 듯 하나, 오히려 난 비동시적 커뮤니케이션의 참 맛을 새삼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
동시대를 산다는 것,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의 의미는 과연 뭘까? 허상이 아닐까? 세상에 같은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우린 저마다 다른 자신만의 시공간 속을 살아가고,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시공간의 근접성에 대한 착각(?) 때문에 동시대를 살아가고,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일 뿐. 시공간을 점유(?)하는 수많은 노드들 간의 거리는 그닥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의 속도는 빛보다 빠르다.

생각이란 무엇일까?
생각이란 양자에 가깝지 않을까?

시공간 상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진 생각과 생각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양자역학의 비국소성 원리가 '생각'에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시공간 우주 자체가 거대한 네트워크이고, 광물/식물/동물/인간은 거기에 접속되어 있는 컴퓨터 터미널과도 같다고 볼 수도 있겠다. 만물은 진동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언어를 파동의 형태로 우주 만방을 향해 발산하고 있다. 나는 나만의 신호를 송신하고 시공간을 흐르는 수많은 신호를 선별 수신한다. 만물의 진동은 곧 의도이다. 만물은 의도를 송신하고 의도를 수신한다. 파동과 파동의 중첩 속에서 패턴은 의도되고 구현된다. 의도는 보는 것이 아니라 울림을 느끼는 것이다.

문명이란 무엇일까?
문명은 진보로 포장된 퇴행 아닐까?

문명의 발전은 '오래된 미래'를 뒤늦게야 이해해 나가는 멋쩍은 뒷북형 학습 해프닝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인간 인지구조의 한계로 인한 뒷북형 학습 해프닝 때문에 고전물리학 이후에 '양자'를 다룬 현대물리학이 나온 것일 뿐, 현대물리학의 내용은 오래된 미래 그 자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인류가 오래 전부터 해왔던 '생각'의 궤적을 현대 물리학은 이제서야 이해를 해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어란 무엇일까?
언어야말로 개인화의 표상 아닐까?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서로 다른 언어와 언어가 만나서 이뤄지는 상호작용이다. 이해와 오해의 역동적 믹스. 한국어라고 다 같은 한국어가 아니다. 나는 나만의 언어를 갖고 있다. 나만의 언어를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다른 사람의 언어를 내가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언어는 계속 진화한다. 세상엔 사람의 수 만큼의 언어가 존재한다. 살아간다는 건 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와 교감하는 과정이다. 나와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내 언어를 다른 언어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이 인생력이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random한 생각의 파동을 블로그에 아무 생각 없이 기록한다.
파동하는 인간. 나는 파동인이다. ^^



PS. 관련 포스트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2 - Compilation Post
가설, 알고리즘
심로,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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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8=5840H | 2011/05/20 23: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가 올갈때는
    당연히 언어의 한계를 많이 느끼죠.
    인생력이 부족한건 말할것도 없구요.ㅎㅎ
    가끔 아바타의 교감촉수가 있었으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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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 :: 2011/02/18 00:08

컨셉의 연금술사란 책에 아래와 같은 말이 나온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의도와 함께 시작된다. 자신의 의도를 갖고 의도대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컨셉이 선다. 개념, 즉 컨셉은 남이 해놓은 것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로 설정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확실히 증명된 바가 없지만 만물의 본질은 정보일 가능성이 높다.

모든 정보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광물도 모두 의도를 갖고 살아간다.
만물의 본질은 의도이다. 의도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의도는 우주만물을 작동시키는 에너지이다.
에너지는 물질이 되고 물질은 정보를 내포하고 정보는 에너지를 발산하고.

에너지, 물질, 정보.
세상은 에너지-물질-정보가 복잡다단하게 중첩하고 얽혀 들어가는 과정 자체이다.

에너지-물질-정보 간의 관계가 흘러가는 것. 그게 우주만물이다.

우주만물 속에서 나는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는 어떤 의도를 띠고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어떤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가?
정보로서의 나는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가?

나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하는 것.
그것은 정체성의 시작이자 끝일 수 밖에 없다.

'나'라는 에너지, '나'라는 물질, '나'라는 정보 간의 관계를 느끼고
그것을 어렴풋이 알아가는 흐름. 그것이 나의 인생이다. ^^



PS 1.
블로깅은 그 과정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블로깅은 '나'의 의도 그 자체이다. ^^

PS 2. 관련 포스트
혼자, 알고리즘
원격, 알고리즘
강박과 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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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

    Tracked from toms s | 2013/06/13 10:47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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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0:50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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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권 | 2011/02/18 09: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글을 읽고 이세상에 내가있어야 하는 목적성?을 되찾은거 같습니다~^^ 저도 제가가진 정보를 최선을다해 발산해 보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1/02/19 11:26 | PERMALINK | EDIT/DEL

      나의 의도를 파헤칠 때 나를 좀더 알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 BlogIcon 토댁 | 2011/02/20 20:3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우주 만물 속의 토댁!!
    은 어떤 컨셉을 가지고 있을까요?^^

    질문입니당..ㅋㅋ

  • jargon | 2011/02/24 12:0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의도와 함께 시작된다라고 생각한다면 이 우주와 이 우주가 운행하는 삼라만상의 법칙들이 지적설계론자들의 주장처럼 어떤 절대자의 의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라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스티븐호킹의 최근저서 Grand design을 읽어 보셨다면 혹시 그 관점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1/02/24 23:54 | PERMALINK | EDIT/DEL

      의도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양한 관점들을 관통하는 무엇인가를 계속 찾고 있나 봅니다. ^^

  • BlogIcon hahn | 2011/04/03 02: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몇년 전부터 벅샷님의 글 계속해서 읽어오고 있습니다. 글들이 일상적인 주제, 독서로부터 시작하지만 굉장히 심오한 통찰을 이끌어내는 것을 보며 지금껏 계속 감탄하고 읽어 오고 있었습니다. 너무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저는 웬지 "울림" 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60년대 영국 리버풀 어디엔가에서 녹음된 비틀즈의 "let it be"를 듣는데.. 히야.. 이게 무슨 놀라운 체험인가. 50년 전 영국 어딘가에서 레코드판에 자기적으로 기록된 소리 정보가 0과 1의 비트로 바뀌어 앱스토어에 실려있다가 인터넷의 망을타고 내 아이폰에 싱크되었다가 다시 이어폰의 소리판을 때려 공기에 울림을 만들어 내 귀에 들어오는 과정.. 50년의 시간과 영국과 한국 사이라는 공간을 가로질러 let it be라는 메시지가 나한테 오기까지..... 이 과정을 실감하자니.. 드는 생각은 딱 하나더군요. 아.. 이게 비틀즈가 나한테 말을 거는 방식이구나.. 메시지는 "울리는 것"이구나. 정보는 어쩌면 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웬지 울린다고 하니.. 송맹동야서도 떠오르네요. 첨부해 봅니다. ^^ http://osj1952.com.ne.kr/interpretation/bgomunjinbohojip/dl/037.htm

    • BlogIcon buckshot | 2011/04/04 21:48 | PERMALINK | EDIT/DEL

      조악한 포스트를 올리고 귀한 댓글을 받는 심정.. 죄송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만물은 진동하나 봅니다. hahn님의 댓글이 계속 제 안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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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바벨탑을 쌓고 있는가? :: 2010/11/10 00:00



서점에서 우연히 폴 핼펀의 그레이트 비욘드란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을 대충 훑어 보았는데 자세히 읽어보지 않아도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으리란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

물리학은 만물에 내재한 근본 원리를 탐구한다. 계속되는 물리학의 발전 속에서 인류는 만물의 작동 원리에 대해 하나 둘 새로운 것들을 깨우쳐 갔고 잘못된 믿음을 바로 잡기도 했다. 뉴튼, 아인쉬타인과 같은 획을 긋는 물리학의 대발견은 일반인에게도 제목 만큼은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현대 물리학은 거시 영역, 미시 영역을 아우르는 대통합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상대성 이론으로 과학의 커다란 딜레마를 풀었던 아인슈타인이 평생에 걸쳐 도전했던 최종 이론의 수립은 미결 과제로 남아 있는 상태이며, 지금도 자연의 최종 이론을 찾기 위한 거대한 지적 모험은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물리학의 '물' 자도 잘 모르는 내 눈에는
만물의 원리를 밝히고픈 물리학의 욕망은 거시,미시 영역 모두에서 미궁 속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물리학은 어쩌면 최첨단 바벨탑을 쌓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반인은 해독이 매우 어려운 그들만의 언어.
물리학의 바벨탑. 그 끝은 과연 무엇일까.

어쩌면
언어 자체가 바벨탑인지도 모른다.
언어가 달라서 뿔뿔이 흩어진 것이 아니라
언어가 생겨서 뿔뿔이 흩어진 것이 아닐지.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마음이 흩어진 것은 아닐지.
언어는 인간이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경로를 차단하고 있는지도.

만물의 원리를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
그건 첨부터 잘못된 접근이었는지도 모른다.
왠지 만물은 언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



PS. 관련 포스트
무식, 알고리즘
가설,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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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찬 | 2010/11/10 01:1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다양성이 없는 분야 같아요. 문화에 다양성이 있듯이, 물리학에도 다양성이 숨어있지 않을까요?

  • 웃는남자 | 2010/11/10 18: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말하면 더이상 '도'가 아니듯이 ..
    물리학이 언어로 표현되는 이상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라는 요지로 이해하면 맞을려나요?
    제가 보기에는 '물리학은 언어로 표현된다'라는 전제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리학은 수학으로 표현되는데
    수학이 기호로 표현된다고 해서 수학을 단순히 '언어'라는 집합개념에 포함시킬 수는 없지요.

    수학에서 사용되는 고도의 추상적개념은 의사전달 목적을 가진 '언어'와는 다른 것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11/12 23:58 | PERMALINK | EDIT/DEL

      언어를 넓게 해석하면 수학까지도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 만물은 다 언어인지도 모릅니다. ^^

  • BlogIcon 사시미 | 2010/11/12 16:52 | PERMALINK | EDIT/DEL | REPLY

    확실히 인간은 언어에 갇히는 것 같습니다. 히브리어에는 길게 풀어서 설명해도 알아듣기 힘든 '단어'들도 많으니 말입니다. 또 다른 바벨탑은 많이 세워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세베루스 | 2011/08/29 03:02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글쎄요 저는 물리학의 연구 자체가 신과 인간과의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창조론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신은 이 복잡한 우주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라는 생명체에게
    우주의 비밀을 풀어보라는 숙제를 내주는 것같습니다.
    신을 보통 예술가에 빗대곤 하는데,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정신상태를 표현합니다.
    따라서 신의 창조물인 우주를 이해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신이 원하는 게 아닐까요?
    생물학처럼 생명의 존엄성을 해칠수도 있는 위험성을 가진 학문이
    오히려 바벨탑에 빗대기 좋을 것 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1/08/29 23:12 | PERMALINK | EDIT/DEL

      모든 학문이 대화라 할 수 있겠지요. 다만 그 대화가 서로를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서로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는지의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학문 뿐만 아니라 수많은 것들이 대화의 양상을 띠고 있을텐데 그 대화에서 진정한 소토이 이뤄지고 있는지 아니면 바벨탑을 쌓고 있는지에 대해선 각자 스스로 자문을 던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 요즘 삑사리와도 같은 바벨탑을 많이 쌓고 있는 듯 해요. 반성 많이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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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고갈한다. ^^ :: 2010/08/04 00:04

2000년에 보험설계사로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끊임없이 신규 고객을 발굴하고, 고객과 만날 약속을 잡고, 만나서 고객에게 상품의 가치를 전달하고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보험설계사에겐 고객 리스트가 생명과도 같다. 고객 리스트에 적혀 있는 고객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 수록 실적을 올릴 기회가 많기 때문에, 어떻게든 많은 고객 리스트를 확보하고, 그 숫자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기 마련이다.

보험설계 일을 하면서 느꼈던 점은, 보험설계사는 만날 고객 리스트를 많이 확보하는 것보다는 고객리스트를 빠른 속도로 고갈시키는게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만날 고객을 빠른 속도로 만나면서 연락 가능한 고객 리스트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모습 속에 보험설계의 묘미가 있는 것 같다. 보험설계사는 고객리스트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되고, 고객리스트의 숫자를 빠른 속도로 고갈시키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고객 리스트의 Stock보다는 고객리스트의 생성과 소멸이란 역동적 Flow에 집중할 때, 좋은 실적이 나왔던 것 같다.

축적이 아니라 고갈에 포커스한다는 것은, 만물의 본질이 stock이 아닌 flow에 있다는 것을 인정함을 의미한다. 굳이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세상만물은 모두 유동한다. 절대로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두 흘러가기 마련이다.  멈춰 있다는 생각(착각)만이 존재할 뿐, 모든 것은 운동한다.

Flow가 본질임을 인정하는 순간, '고갈'은 새로운 개념으로 다가온다. '고갈'은 새로운 유입을 자극하는 창의와 혁신의 동력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역량과 지식을 의식적으로 고갈시킬 경우, 새로운 역량과 지식의 유입은 자연스런 수순으로 다가온다. 기존에 갖고 있던 역량/지식의 유한성을 쿨하게 인정하자는 것이다. 유한성을 인정하는 순간, 고갈은 필연이 된다. 필연적 고갈을 회피하는 stock의 개념적 한계 속을 벗어나 flow로 가득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죽음을 인정할 때, 삶이 쿨해지듯이,
'고갈'을 인정할 때, '소유의 환상'을 딛고 '흐름의 현실' 속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다.


고갈은 결코 네거티브한 개념이 아니다. 너무도 우아하고 본질에 쿨하게 근접하는 소중한 개념인 것이다. 이 포스트를 계기로 '고갈'이란 단어를 새롭게 조명하고 생활 속에서 '고갈'의 묘미를 만끽하고 싶다.

만물은 반드시 고갈된다. 그게 '고갈, 알고리즘'이다. ^^


PS. 관련 포스트
지출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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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OnTheWheel | 2010/08/04 11: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네, 끊임없이 비우고 채우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채우고, 정리하고, 비우고...

    • BlogIcon buckshot | 2010/08/07 09:23 | PERMALINK | EDIT/DEL

      쌓기보다 비우기에 집중할 때, 삶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

  • Dynamic | 2010/08/10 09: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소유의 종말입니다. Stock 정지된 시점의 개념, Flow의 일정기간을 같는 개념이겠지요.

    • BlogIcon buckshot | 2010/08/10 21:32 | PERMALINK | EDIT/DEL

      소유와 소외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인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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