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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소통의 철학 (망각+연결=소통 → 도행지이성) :: 2007/10/09 05:59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내가 장자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도덕경의 노자와 비슷한 컨셉을 가진 속세초월의 신선사상을 구사하는 중국 철학자라는 정도였다.  노장사상(想)이라는 말이 있듯이 난 장자가 노자 대비 큰 변별력을 갖는 사상을 갖고 있으리란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었다.  

2년 전 우연한 기회에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란 책을 통해 고미숙이란 고전평론가를 알게 되었고 인상 깊게 읽었던 고미숙 평론가의 또 다른 저서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그린비 출판사에서 발간하고 있는 리라이팅 클래식(Re-writing Classics) 시리즈의 일부인 것을 알게 되었다. 리라이팅 클래식 리스트를 둘러보니 나의 관심사와 연결될 수 있는 책들이 좀 있어서 기회가 되면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읽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최근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을 무심코 읽다가 모든 생성은 분자적이다 포스트를 살짝 올렸는데 그린비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의외의 트랙백을 걸어 주셨고 트랙백을 타고 그린비 출판사 블로그를 둘러보다 우연히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이란 책을 알게 되었고 이 책이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 책을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인문/철학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던 내가 인문/철학에 서서히 관심을 갖게 된 과정 속에서 장자는 나에게 조금씩 조금씩 다가왔던 것 같고 난 나름 오랜 준비 기간 끝에 장자를 만나게 된 것 같다.  ^^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이 책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장자에 대한 파격에 가까운 새로운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  저자(강신주)는 노자와 장자는 전혀 다른 사상적 기반을 갖고 있다고 역설한다. 

노자의 도(道)는 민중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복종하도록 만드는 일관된 통치의 방법/원리를 의미한다.  또한 노자는 통치자와 민중이라는 위계질서를 자명한 것으로 수용하고 있다. 노자의 텍스트가 81장으로 구성된 철학시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시라는 운문의 형태를 띠고 난해한 형이상학을 피력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독자층을 통치자나 통치계층에 국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장자는 흥미로운 이야기 형식,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강력한 소설/에피소드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더구나 이야기의 주인공들도 백정,목수,뱃사공,농부 등 일반민중들이 대다수이다. 이는 장자가 고유한 삶의 지평에서 인간을 이해하려고 하였지, 결코 빈부귀천이라는 사회적 위계관계로써 인간을 이해하지 않았으며 노자가 자명한 것으로 수용하고 있는 정치적 위계질서를 일종의 꿈에 불과한 것으로 단호하게 비판하고 있다. 

노자는 국가 지향적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국가주의 철학자였고 장자는 민중과 아나키즘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주의 철학자인 노자와는 확연히 다른 노선을 표방했던 장자의 철학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망각과 연결의 실천 철학이다.  망각과 연결은 소통(疏通)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소(疏)는 '막힌 것을 터버린다'를 의미하고 통(通)은 새로운 연결을 뜻한다.  즉, 장자의 '소통'은 기존의 고정된 삶의 형식을 망각과 비움을 통해 극복하여 나와 다른 삶의 형식을 갖는 타자와의 새로운 연결을 모색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소통을 가장 잘 설명하는 에피소드로  '수영 이야기'가 있다.

공자는 땅에서의 삶을 가장 잘 영위한다고 정평이 난 사람이다.  그런데 땅의 고수인 공자가 어느 날 육지의 가장 끝,  험악한 폭포수(물)의 영역에 이르게 된다.  자신의 삶의 기술이 무력해지는 이곳에서 공자는 또 다른 고수 한 명을 만나게 된다.  그 고수는 물에서의 삶이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다시 말해 수영의 달인이었다.  공자는 그에게 묻는다.  "물을 건너는 데 그대는 어떤 특이한 방법이라도 지니고 있는가?"  물의 고수는 이렇게 말한다.  "특별한 방법이 있겠습니까?  나는 옛 삶(故)에서 시작하였고 지금의 삶(性)에서 자라났으며 운명(命)에서 완성하였습니다.  물이 소용돌이쳐서 빨아들이면 저도 같이 들어가고 물이 나를 물속에서 밀어내면 저도 같이 그 물길을 따라 나옵니다.  물의 도를 따라서 그것을 사사롬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물을 건너는 방법입니다."  그러자 공자가 다시 묻는다.  "옛 삶에서 시작하였고, 지금의 삶에서 자라났으며, 운명에서 완성하였다고 그대는 말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물의 고수는 대답한다.  "제가 육지에서 태어나서 육지에 편안해진 것이 옛 삶이고, 제가 현재 물에서 자라서 물에 편안해진 것이 지금의 삶이며,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된 것이 바로 운명입니다."

수영의 달인은 원래 땅에서의 삶에 익숙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땅과 전혀 다른 규칙으로 흘러가는 물을 만나게 된다.  이 때 땅에서의 방식(선입견)만 고수하고 물을 대하면 물 속에서 허우적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땅 생활에서 축적된 선입견을 버리고(잊고/비우고) 물에서의 새로운 방식을 몸으로 익혀 나갈 경우(연결) 물을 땅과 같이 익숙하게 느낄 수 있고 유유히 물 속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의도하지 않은 채 세상에 태어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특화된 삶의 방식을 몸에 붙인 채 살아간다. 이는 일종의 선입견으로 굳어지면서 다른 공동체에 속한 타자를 만날 때도 그 방식(선입견)을 강요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인생에서 끊임없이 겪게 되는 타자와의 마주침을 파괴적이지 않고 생산적인 모습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선 자신이 갖고 있는 한계에 기반한 자신만의 선입견을 과감히 버리고(잊고/비우고) 타자의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필사적인 연결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장자가 타자와의 소통이라는 난해한 주제를 사유했던 철학자라는 저자의 해석이 매우 신선하다.  '타자'라는 개념을 사람으로 한정 짓지 않고 세상 만물로 확대 적용했다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장자의 윤편(輪扁) 이야기도 압권이다. 

환공이 회당 높은 곳에서 경전을 읽고 있었고, 윤편은 회당 낮은 곳에서 수레를 깎고 있었다.  윤편이 환공에게 물었다.  "공께서는 지금 무슨 말들을 읽고 계십니까?  환공이 "성인의 말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윤편이 "그 성인은 살아 있습니까?"라고 묻자 환공은 "그는 죽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윤편은 말했다.  "그렇다면 공께서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옛 사람들의 찌꺼기가 아닙니까?"  그러자 환공이 말했다.  "수레바퀴나 깎는 장인인 주제에 네가 지금 경전을 논하려 하는가!"  그러자 윤편이 말했다. "저는 그것을 제 자신의 일에 근거해서 본 것입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엉성하게 작업하면 헐렁해져 견고하게 되지 않고, 꼭 끼게 깎으면 빠듯해서 서로 들어맞지 않습니다.  엉성하지도 꼭 끼지도 않게 작업하려면 저는 그것을 손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대응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입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제가 제 아들에게 전달할 수 없고 제 아들도 저에게서 배울 수 없는 기술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이 70이 되도록 제가 직접 바퀴를 깎고 있는 이유입니다.  옛 사람은 자신이 전할 수 없는 것과 함께 이미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공께서는 지금 옛 사람들의 찌꺼기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윤편은 자신을 비우고 자신이 직접 수레바퀴가 되어서 수레바퀴를 손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대응하면서 수레바퀴와 일종의 소통을 한 셈이다.  그런데 몸과 마음으로 터득한 수레바퀴와의 소통을 언어라는 형식으로 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고백을 한다.  마찬가지로 성인들은 자신이 살았던 시공간에서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데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걸고 타자와 직접 소통하면서 얻은 깊이 있는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바로 옆에 앉혀 놓고 침을 튀기면서 설명을 해줘도 깨달음의 전달이 여의치 않을텐데 곡해의 여지가 심각한 언어로 달랑 남기고 죽었다면 그 경전은 후세 사람들이 읽고 바로 적용하기엔 사실상 불가능하다란 얘길 윤편은 "경전이란 성인의 찌꺼기에 불과하다"란 말로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장자는 계급상의 높낮이는 아무 의미가 없고 오직 누가 소통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다.  정말 멋진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장자의 사상을 압축한 구절로 道行之而成(도행지이성)을 들 수 있다.  직역을 하면 "도는 걸어가야 이루어진다."가 되는데 저자는 바로 이 구절에서 노자의 道와 장자의 道가 전혀 다른 컨셉을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노자의 道는 세상만물의 시작부터 존재하는 만물의 근본이치를 의미하는 반면 장자의 道는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항상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결국 소통하는 만큼 길이 열리는 것이고 길이 열린 만큼 道가 이뤄진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타자와의 마주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비우고 타자와 연결한다'가 말이 쉽지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인가?  나를 비운다는 것도 큰 도전이고 타자와 연결한다는 것도 큰 도전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날들을 돌이켜 보아도 나를 비웠던 적은 거의 없고 내가 가진 선입견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판단하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니 타자와의 연결도 그리 매끄럽지 않았던 것 같고...  

최근 블로깅을 하면서 다른 블로거들과 덧글과 트랙백을 주고 받는 경험을 하고 있는데 금번 독서를 통해 장자의 지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앞으로의 블로깅에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내가 가진 지식은 분명 내가 처한 시공간적 한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테고 내 블로깅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지식을 내가 충분히 배울 수 있게 나를 비우고 적극적으로 다른 블로거들과 지식을 교류한다면 장자가 말한 道行之而成을 조금이나마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블로깅 뿐만 아니라 가정,직장,친목 관계에서도 소통의 기본자세인 망각(비움)을 몸에 붙이는 훈련을 착실히 쌓아 나가야 할 것 같다.  그래야만 연결을 예전보다 많이 할 수 있을테니...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을 읽는 내내 생각의 탄생이란 책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생각의 탄생에서 제안하는 생각의 13가지 도구를 한 단어로 압축하면 바로 소통(疏通)이 아닐까 싶다.  무엇인가를 관찰하고 형상화/추상화하고 패턴을 인식/형성/유추하고 몸으로 생각하고 감정이입하고 차원적 사고,모형 만들기, 놀이를 하고 변형/통합하는 것은 결국 무언가와의 소통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비우고 대상과 나를 연결하는 것...   생각의 탄생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은 소통을 통해 道行之而成(도행지이성)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장자의 사상이 내가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들뢰즈의 리좀과 매우 닮아 있어서 반가웠다.  어쩌면 들뢰즈의 리좀과 닮아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이 책을 샀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세월을 거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첨단을 달리고 있는 21세기 현대물리학이 기원전 반야심경과 조우하듯이 고민에 고민을 더하며 사유 여행을 거듭하고 있는 서양철학이 결국 기원전 200~300년에 활동했던 장자와 조우하고 마는건가... ^^

저자가 멋지게 재해석한 장자의 소통(疏通) 철학은 내게 매우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의외의 인물에게 소통이란 개념을 배운 셈인데 그 배움은 앞으로의 내 삶에 큰 영향을 줄 것 같다.  

장자의 철학 공식:   忘却 + 連結 = 疏通 → 道行之而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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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풍림화산 | 2007/10/09 08:57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긴 글 잘 읽었습니다. 블로깅을 하시는 것 보면 이미 실천하고 계신다고 느껴집니다. 저는 아직 인격 수양이 덜 되어 그러지 못하는 것이 사실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스타일이라 생각하고 너무 스스로를 옭아매려고 하지는 않습니다만...
    지식이라는 측면에서는 유가보다는 도가의 얘기가 더 와닿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입신양명을 목적으로 하는 유가보다는 무위자연을 추구하는 도가가 더 가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 BlogIcon buckshot | 2007/10/09 09:07 | PERMALINK | EDIT/DEL

      다소 지루할 수 있는 글인데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전 풍림화산님의 블로깅 스타일이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모든 블로거가 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서로의 발전을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부러운 스타일을 따라하기 보단 걍 저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잘 발전시켜 나가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유가보단 도가 쪽 얘기에 더 큰 매력을 느낍니다. 수직적 위계질서보다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는 장자의 철학에 큰 공감을 느꼈습니다. ^^

    • BlogIcon 풍림화산 | 2007/10/09 10:10 | PERMALINK | EDIT/DEL

      예... 옳으신 말씀입니다. 제 블로깅 스타일은 둘째 치고 글이 조금은 공격적 성향이 있어서 손해를 많이 보는 편입니다. 그런 부분에서는 buckshot님과 같은 경우를 제가 많이 본보기로 삼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친절하시니까요. 아직 제가 많이 모자랍니다. 직간접 손해를 보면서도 안 고쳐지네요. 맘 편히 차차 나아지겠지 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7/10/09 10:39 | PERMALINK | EDIT/DEL

      풍림화산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 제가 블로깅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 중의 하나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 안녕하세요. 저희 책을 이렇게 즐겁고 적극적으로 읽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책으로 만나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7/10/09 11:47 | PERMALINK | EDIT/DEL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 정말 멋진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 이어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벌써 그린비라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생긴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책 부탁드리겠습니다. ^^

  • BlogIcon 격물치지 | 2007/10/10 14:05 | PERMALINK | EDIT/DEL | REPLY

    꼭 읽고 싶은 책이군요. 서평쓰시는 것도 좋지만, 책을 써보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이미 쓰셨을 것 같기도 하고... ^^

    • BlogIcon buckshot | 2007/10/10 14:31 | PERMALINK | EDIT/DEL

      헉~ 책을 쓰기엔 내공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언젠간 꼭 써보고 싶습니다. 격물치지님께 앞으로 2~3년 정도 열심히 배우면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즘 격물치지님 블로그를 통해 제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음을 느끼거든요. ^^

  • BlogIcon 쉐아르 | 2007/10/12 00: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buckshot님, 풍림화산님, 격물치지님... 제가 보고 많은 것을 배우는 분들이 이야기를 나누시는군요 ^^;;;

    "도는 걸어가야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마음에 새겨놓고 있습니다. 또한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도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산선생 지식 경영법을 읽으면서 동양사상을 공부해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오늘 좋은 시리즈를 추천 받았습니다. 저도 꼭 사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항상 이곳에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책쓰기에 아직 내공이 부족하시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미 넘치십니다. 언젠가 buckshot님이 쓰신 책을 서점에서 꺼내보는 날을 기대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7/10/12 08:50 | PERMALINK | EDIT/DEL

      쉐아르님께서 책 출간하시면 저도 쓰겠습니다. 아무래도 쉐아르님의 저서에서 통찰력을 빌려와야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 근데 이미 저서를 보유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BlogIcon 쉐아르 | 2007/10/15 21:12 | PERMALINK | EDIT/DEL

      아직 제가 쓴 책은 없습니다... ^^;;;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러기에는 제가 만들어낼 수 있는 콘텐츠의 한계가 너무 뚜렷한 듯 합니다.

      저는 buckshot님 쓰시고 나면 그때 생각해보겠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7/10/15 21:36 | PERMALINK | EDIT/DEL

      역시 제 예감이 맞았네요.
      http://futureshaper.tistory.com/90 포스팅을 보며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거든요..

      어제 알았습니다.
      쉐아르님께서 이미 저서를 보유하고 계시다는 것을요.

      바로 아래 블로그가 쉐아르님께서 출간하신 책입니다.
      http://ctms.tistory.com/

      부럽습니다..
      전 아직 제 인생을 건 치열함을 글로 표현하진 못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쓰고 싶은 책은 제 인생 전체를 걸고 쓴 제 인생 자체가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책입니다....

    • BlogIcon 쉐아르 | 2007/10/16 08:30 | PERMALINK | EDIT/DEL

      어떻게 아셨어요? :-0

      "쉐아르의 영적여행"이 책이라면 아직 미완성의 책입니다 ^^;;; 아직 그 문제를 해결 못했거든요. 아니 바쁘다는 핑계로 회피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언제고 다시 정면으로 그 문제를 만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ㅎㅎ 이렇게 저를 알고 이해를 해주시니 꼭 한번 뵙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드네요 ^^;;;

    • BlogIcon buckshot | 2007/10/16 09:40 | PERMALINK | EDIT/DEL

      블로그 서핑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첨엔 깜짝 놀랐습니다. 블로그 전면 개편하신 줄 알고요.^^ 미완성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완성된 책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쉐아르님 뵙고 좋은 말씀 많이 듣고 싶은데 제가 최근에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오프라인으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서요. 근데 11월 중순에 한국에 오신 다음엔 언제 한국에 오실지 모르겠다는 말씀이 맘에 걸립니다. 11월 중순 경에 시간을 내어 함 뵈었으면 합니다. ^^

  • BlogIcon 크레아티 | 2007/10/13 05:5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 방대한 '생각의 탄생'이란 책이 '소통'이란 한 단어로 압축될 수도 있군요. ^^
    대단하세요 :)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압축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전 장자나 노자 이런 분들은 도덕시간에 배웠던게 생각이 나서 좀처럼 가까이 다가서기 힘든 분들이었는데 이 글을 읽고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저에겐 수영의 달인 이야기가 제일 재밌는 듯 해요 ^^

    • BlogIcon buckshot | 2007/10/13 08:36 | PERMALINK | EDIT/DEL

      솔직히 억지로 압축한 느낌이 없진 않습니다. ^^ 제가 수영을 못하는 관계로 수영의 달인 이야기는 정말 급공감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소통'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덧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좀비 | 2008/01/11 13:11 | PERMALINK | EDIT/DEL | REPLY

    결굴 자신을 얽메고 있는 프레임을 벗어 던지는 것이 필요한 일 인것 같습니다..
    '생각의 탄생'은 한번 더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buckshot님 마지막 언급한 내용을 보니 더욱 마음이 동하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8/01/11 13:19 | PERMALINK | EDIT/DEL

      생각의 탄생을 읽고 느낀 바가 많아서 포스팅을 아래와 같이 별도로 올린 바 있습니다. 천재는 결국 세상과 열정적으로 소통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
      http://www.read-lead.com/blog/entry/생각의-탄생-열정-생각의-기술

      좀비님 말씀처럼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프레임을 벗어 던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포인트를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자신을 구속하는 프레임을 벗어 던지자!)

  • BlogIcon 고무풍선기린 | 2009/06/09 10:2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소통이라는 단어 속에서
    도행이지성
    이라는 의미가 도출 될수가 있군요.

    오늘도 많은 배움 안고서
    즐거운 마음으로 갑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9/06/09 22:03 | PERMALINK | EDIT/DEL

      제가 좋아하는 책을 고무풍선기린님 포스트를 통해 다시 리마인드할 수 있어서 넘 좋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 BlogIcon 엘민 | 2009/06/15 09: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자신을 비우고 소통하라. 중요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어제 친구들과 외국인과 사귀면 편견이 없어서 좋다란 이야기도 나왔었습니다. 외국인도 외국인 나름이겠지만요. ^^ 저도 생각의 탄생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확실히 정리를 안해놔서 가물가물합니다. 벅샷님을 본받아 독후감은 제때제때 해야겠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06/15 11:42 | PERMALINK | EDIT/DEL

      외국인.. 그렇네요. 편견이 없는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참 중요하겠구나란 생각이 듭니다. 자신을 비우는 소통에 대해 환기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

  • BlogIcon 삶의여백 | 2009/07/18 12:5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미 포스트 하신지 두 해나 지나서야 트위터에 올리신 트윗을 통해 접하게 되었네요. 저와는 반대로 고미숙씨의 저서를 접하셨네요. ㅋㅋ 전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먼저 읽고 고미숙씨의 글발을 알게 되었고 이후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읽었는데, 감동이 좀 덜 하더군요. 틈 내서 함 읽어봐야겠네요. '장자...'. 서평 포스트 잘 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07/18 13:26 | PERMALINK | EDIT/DEL

      트위터를 통해 예전에 적은 글들을 하나둘 꺼내 다시 읽어보는 재미를 즐기고 있습니다. 과거의 제 생각과 소통하는 느낌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 삶의여백님의 블로그를 방문하고 싶은데 계속 "인터넷 사이트를 열 수 없습니다. 작업이 중단되었습니다."란 메세지가 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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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 공즉시색] 반야심경, 천개의 고원, 노마디즘 :: 2007/09/22 01:24


色不異空 (색불이공)
空不異色 (공불이색)
色卽是空 (색즉시공)
空卽是色 (공즉시색)


빅뱅이론에 따르면 200억년 전에 우주는 점과 같은 상태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팽창을 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는 설을 주장한다.  '크기가 0이고 밀도와 온도는 무한대'인 특이점 상태에서 우주가 생성되었고 계속 팽창을 거듭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팽창을 멈추고 수축이 전개되면서 결국 하나의 점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현대물리학의 가설은 반야심경에서 주장하는 :"색(물질)이 공에서 나오고 공은 색에서 나온다.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라는 컨셉에 상당히 부합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색'은 무엇을 나누거나 단편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이고  무엇을 나누는 것이 인간의 단편적 사고의 한계에서 파생된 행위이니 결국 인간의 시각은 본질을 볼 수는 없는 것이고 '물질의 실재'와 '관찰을 통한 물질의 인식' 간에는 gap이 존재한다는...

양자론은, 전자의 위치는 일정한 궤도를 돌지 않고 언제 어디서 튀어 나올지 모르는 전자로 실재한다는 것..  질량을 측정하기 위해 관찰하면 위치를 측정할 수 없고, 위치를 측정하려면 질량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전자라는 물질은 확률적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관찰자의 마음먹기에 따라 관측의 결과가 달라지는 전자의 행태..   관측이 물질에 영향을 준다..  마음이 물질에 영향을 준다..  현대물리학과 반야심경은 너무도 닮아 있는 모습이다.

또한 질 들뢰즈가 '천개의 고원'에서 말하고 있는 '리좀'이란 개념도 나름 유사한 컨셉을 지향하고 있는 것 같다.  '리좀'이란, 이런저런 줄기들이 어떤 중심뿌리 없이 분기되고 접속되는 모양을 의미한다.  질 들뢰즈는 펠릭스 가타리와 함께 쓴 '천개의 고원'이란 책을 단 2명의 저자에 귀속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천 개의 고원'이란 책이 들뢰즈, 가타리라는 두 사람의 저작으로 간주되지만 그 안에서 그들이 인용한 내용들은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발언했던 것이고 인용이 아닌 내용도 결국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읽고 듣고 경험한 수많은 저자들의 발언을 대신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천개의 고원'은 그런 수많은 타인들의 발언들이 중첩된 연쇄로 이뤄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혼자 스스로의 생각으로 말하는 경우에도 이미 다른 많은 사람들의 말을 하는 것이고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배치 안에서 나름의 집합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책'은 대상도 주체도 갖지 않는다는 개념이 나오게 된다.  "책을 하나의 주체에 귀속시키는 순간, 질료의 가공과 그것의 관계가 갖는 외부성을 무시하게 된다"는 들뢰즈의 말은 반야심경의 컨셉과 매우 닮아 있다고 보여진다.

결국 물질은 그것과 연결된 수많은 다른 물질들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수많은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는 확률적 존재이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물질과 접속하고 만나는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되는 것이다.  '입'이 성대와 접속하여 소리의 흐름을 절단,채취하는 경우엔 '말하는 기계'가 되고 식도와 접속하여 영양소의 흐름을 절단,채취하는 경우엔 '먹는 기계'가 되듯이 욕망/의지에 따라 접속하는 항이 달라짐에 따라 전혀 다른 기계로 작동한다는 것은 양자론의 미시세계나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거시세계 모두 긴밀하게 연결된 물질 네트워크 세계에서 접속과 관계에 의해 다양한 실체로 확률적 생성/변이를 거듭하면서 색즉시공/공즉시색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반야심경, 천개의 고원/노마디즘은 책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플랫폼이란 생각이 든다.  접속할 때마다 읽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기계가 되게 해주는 책이기 땜에... 

솔직히 반야심경을 계속 읽어도 '공(空)'이 뭔지에 대해선 아직도 명쾌한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다.  하지만 딱히 말로 규정하진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만 한계투성이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뭔가가 내 마음 속에서 구체화되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히 어떤 확률적 분포로 존재하는 것 같다.  ^^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 10점
성법 지음/민족사

천 개의 고원 - 10점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지음, 김재인 옮김/새물결

노마디즘 1 - 10점
이진경 지음/휴머니스트

노마디즘 2 - 10점
이진경 지음/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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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텍스트는 외부의 주름이다.

    Tracked from 맑은독백 | 2009/06/11 10:32 | DEL

    텍스트는 외부의 주름이다. 몇 일전 inuit님으로 부터 시작한 독서에 관한 릴레이가 블로그 스피어 여러곳에서 만개하고 있습니다. 바톤을 받아 이어진 연을 쫓아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즐겁습..

  • BlogIcon 풍림화산 | 2007/09/22 02: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네요. ^^
    여기서 말하는 공(空)은 다른 데서도 쓰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크기가 0이고 밀도와 온도는 무한대'인 특이점 상태" 이게 空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7/09/22 12:09 | PERMALINK | EDIT/DEL

      공(空)의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특이점'상태를 공과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앞으로도 계속 공에 대해 생각을 해볼 계획입니다. 한가지 관점이나 양상으로 한정 짓지 않고 다이내믹하게 공을 바라보는 것이 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덧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풍림화산 | 2007/09/22 13:20 | PERMALINK | EDIT/DEL

      제가 많은 책을 읽어본 바는 아니지만 공의 개념에 대해서 다른 책을 통해서 이해하기는 그렇습니다.
      空은 無와 달리 0 또는 무한대의 빈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죠.
      결국 공이라는 것은 근원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로 인해 생긴 색, 다시 근원으로의 회귀.
      이러한 순환 고리에서 공을 바라본다면 여기서 색과 대조되는 공은 시초가 되는 특이점의 상태로 해석이 됩니다.
      buckshot님이 말씀하신 동양 사상으로의 귀착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 덧글에서도 말씀드렸다 시피 서양 사상은 그 근원 자체가 색입니다. 단편적 시각에서의 접근이지요.
      그러나 동양 사상은 근원적인 본질적인 부분에서의 접근이기에 결국 동양 사상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7/09/22 14:16 | PERMALINK | EDIT/DEL

      예, 空을 무한대의 빈 상태, 근원으로 보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모든 물질이 空이란 근원성을 갖고 여러가지 色의 모습으로 다이내믹한 생성/변이의 흐름을 탄다고 판단합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서양사상은 色에 가깝고 동양사상은 상대적으로 空에 가까운데 서양과 동양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초기엔 서양의 환원주의에 기반한 色 기반의 어프로치가 동양을 압도하고 동양을 서양화시켜 나가지만 色이 차면 자연스럽게 空으로의 이동이 가속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거시적인 우주 관점에선 空↔色 순환이 아주 느린 속도로 흘러가지만 미시적인 양자 관점에선 空↔色 순환이 아주 빠른 속도로 이뤄질 것 같습니다. 거시와 미시의 중간에 해당하는 인간세계는 평균적으로는 중간의 속도가 나타나면서 케이스바이케이스로 고속순환과 저속순환이 공존하는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풍림화산님께서 관심 가져주시고 수차례 덧글을 주신 덕분에 제가 제 생각을 발전적으로 다듬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 BlogIcon 풍림화산 | 2007/09/22 21:26 | PERMALINK | EDIT/DEL

      예... 동의합니다. 잘 정리해주셨네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했듯이 어떤 것이 먼저이고 우선이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다만 지금의 흐름은 동양 사상으로 회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서양 사상의 영향을 받은 방법론등이 이제는 다시 그 근원적인 사람에서 찾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도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buckshot님이 잘 정리해주셔서 저도 덧글 잘 읽고 갑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7/09/22 21:48 | PERMALINK | EDIT/DEL

      대충 꾸역꾸역 글 적어서 포스팅 올려놓고 풍림화산님의 통찰력있는 피드백 받아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느낌이 정말 좋습니다.^^

  • BlogIcon hyleidos | 2007/09/22 05: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우주는 점과 같은 상태* 여기에서 출발 하고 종착을 하건 순환을 한다면 모든 것이 그 속에 녹아 있어야
    가능 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사고, 영혼이라 부르는 것들 모든 인식 너머의 것들이 그 한 점에 있겠지요.
    공은 즉 색이고, 색은 곧 공한 것이다.
    아무리 나누어 대상을 만들어 보아도 공 할것이고, 그냥 뭉뚱그려 생각해도 마야는 실재하겠지요.

    인간이 우주를 바라보는 것이 그가 그 속에 포함된 존재임을 알면 고통도 조금씩 녹아 들겠지요.

    • BlogIcon buckshot | 2007/09/22 12:18 | PERMALINK | EDIT/DEL

      점에서 출발해서 무한팽창을 하고 다시 점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순환.. 결국 헤라클레이토스가 얘기한 '만물은 유전한다(everything flows)' 컨셉과도 맥이 닿는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유전하기 때문에 대상을 아무리 기가 막히게 잘 나누어도 모든 것은 결국 설명하기 어려운 '공'일 수 밖에 없고 '공'이라고 생각한 순간 다시 '색'이 발현되는 과정의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의 관찰/사고/표현의 한계를 얼마나 유연하게 극복할 수 있는가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에 있기 마련인데 그 마음이 얼마나 flow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보구요. 제가 블로깅을 하는 이유는 블로깅이 다양한 mind들과의 리좀적인 접속을 통해 mind fluidity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의미있는 방법론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블로깅한지 얼마 안되어 성과는 보잘 것 없지만 그래도 나름 progress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mobile mind 제고를 위해 블로깅을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 덧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BlogIcon hyleidos | 2007/09/23 01:21 | PERMALINK | EDIT/DEL

      저도 감사하고 또 반갑습니다.

      문제인지 답인지 모르겠지만, 공과 색이 서로 다르지 않다.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생각이 미칩니다.
      우주가 대상이 아님(굳이 설명하자면 포함관계의 상위에 있음)을 직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화이트 헤드가 유물론적 과학적 사고를 비판하며 유기론적 관.... 을 가설하고 이끌어 낸 것도 어찌보면 너무나도 우스운 것으로 보이지만. 대상이 없는 사고의 방식이 너무 어려운, 오로지 대상만이 존재하고 대상만을 사유할 수 있는 세계에서는 그 오랜 시간이 당연한 것도 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7/09/23 16:32 | PERMALINK | EDIT/DEL

      플라톤이 이데아를 논했을 때부터 서양은 오랜기간 동안 초월성을 꿈꿔 왔던 것 같습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란 명제를 통해 시도했던 주체와 객체의 이원화는 결국 서양 사상/문명의 딜레마가 되어왔던 것 같구요. 대상을 분리시키고 철저히 분해하여 지배하고 안다고 생각하는 서양 특유의 사고체계가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봅니다. 사실 주체와 객체를 나누는 건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기 편한 툴로써의 의미만 존재하는건데 그 이원화 툴을 진리로 착각하는 오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젠 그 오류의 늪에서 빨리 벗어나와야겠습니다. 근데 동양은 나름 훌륭한 사상적 토대가 있었고 이를 지금까지 꾸준히 발전시켜왔으면 좋았을텐데 서양 문명이 우월하다고 착각하고 이를 너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 BlogIcon snowall | 2007/09/23 00:4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실 천개의 고원이라는 단어에서 "원"을 "환"으로 읽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_-;

    • BlogIcon buckshot | 2007/09/23 00:59 | PERMALINK | EDIT/DEL

      어쩌면 정확히 보신건지도 모르겠네욤.. 사실 천개의 고원은 '환'자와 관련이 높은 책입니다.^^ 서양에서 번성해 온 '환'원주의의 대안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어서요. 그러다보니 반야심경과 유사한 개념들이 자주 나옵니다~ 반야심경과 함께 읽으면 아주 좋을 책입니다. :)

  • BlogIcon soulart | 2009/05/14 20: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空이란..실재하는 것과 실재 하지 않는 사이의 시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철학서를 뒤진다 해도 실제 그 세계를 경험하지 않고선 어떠한 표현의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나타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 이겠지요..^^
    밀도와 무한대...의 표현들을 위에서 봤는데..자연처럼 있는 그대로의 상태..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를 떠난 그냥 그 상태가 공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지금 것 느껴온 것은 여기 까지네요..^^
    언어로 표현 하는 사람이 못 되지만요..실천이 최고겠지요.^^
    특히 인간 관계에서 오는 여러 부딪힘과 나와의 한계에서 벗어 날 수 있는 힘은 이 공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수양 하는 마음을 갖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앗!!다시 시작하는 마음이 0이겠네요..ㅎㅎ)새롭게 세상을 보려하고 더 넓은 마음을 가지려고 할 때.그 마음으로 인해 삶은 아름다워지겠지요..이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닐까 합니다. 완벽할 순 없겠지만 이러한 마음의 노력이 변함없이 지속될 때 空이 무엇인지, 무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 같습니다. 그게 영원함이고 본질아닐까 합니다.
    결국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행복한 삶과 자아가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여러 철학서들과. 종교.예술이 반복 되는 것이기에..

    • BlogIcon buckshot | 2009/05/14 22:52 | PERMALINK | EDIT/DEL

      사람들은 모두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듯 못 느끼듯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자신만의 정의가 있을 것 같은데요.

      soulart님은
      통찰력이 가득한 정의를 갖고 계시네요.

      soulart님의 정의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충만해지는 느낌입니다.

      실재와 비실재 사이
      존재와 비존재를 떠난 상태

      사이와 일탈

      그리고, 마음의 수양

      깨달음에 대한 저의 욕망을 강렬하게 자극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BlogIcon 맑은독백 | 2009/06/11 11:0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 정말 감동적입니다...
    개인적으로 노마디즘, 천개의 고원을 읽으려 맘 잡던 중이라..
    더욱 이글이 귀하게 다가옵니다.

    연구공간 수유 너머를 통해
    불교에 대한 관심과 들뢰즈의 관심이 일던 차에
    이 글을 봤습니다.

    조금은 시간이 지나야 될 듯합니다만,
    언젠간 읽고 흔적을 남기는 시간이 오길 기대해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06/11 19:54 | PERMALINK | EDIT/DEL

      제가 노마디즘, 천개의 고원을 제대로 읽지 않은터라 아쉬움이 남는 차에 맑은독백님 포스트를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다시 노마디즘과 천개의고원을 집어들어야 겠습니다. 맑은독백님의 리뷰도 기다릴거구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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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디즘을 읽다가 떠오른 예전 2개의 포스팅 :: 2007/09/07 00:02



노마디즘의 아래 문구를 읽다가

화폐가 지배하는 상품세계에서는 기발하게 만들어진 어떤 새로운 상품이라도 얼마짜리 상품에 불과하다.  화폐라는 단일한 척도에 의해, 단지 양적 차이만 갖는 상품으로 동질화되고 만다.  전에 알지 못했던 아주 이질적인 것이 나타났을 때도 통상 우리가 아는 문명은 이를 다양성을 확장시키는 계기로 삼기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는 것 안에 갖다 놓음으로써 동질화하고 동일화하는 과정에 끌어들인다.  아메리카 인디언,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이질적인 삶의 방식을 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의 문명 안에 들어올 일종의 과거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문명이란 이름으로 동질화하고 동일화하여 지상에서 제거해야 할 무엇으로 만들었다


예전에 쓴 아래 두 개 포스팅이 생각났다.  앞으론 들뢰즈의 리좀적 사유를 많이 시도해야 할 것 같다.  은연 중에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에 너무 많이 젖어 버린 것 같다..   환원주의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중요한 걸 잃어버리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언 미래를 과거로 착각하기 까지 하니 나원참...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선생을 파괴하면서 배우는 학생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녹색평론사


라다크 개방/개발 전의 라다크 주민들의 서방세계에 대한 반응은 이랬다.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단 말입니까?" 
"여긴 가난 같은 건 없어요."

하지만 1975년부터 마을에 대한 서구화가 시작되면서 반응은 이렇게 바뀐다.
"당신들이 우리 라다크 사람들을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우린 너무 가난해요."

더 편리하고 문명화된 생활을 하기 위해 자연을 개발했을 뿐인데 왜 라다크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서구 문명에 비춰 열등한 문화로 정의되는 순간부터 일이 꼬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다크는 미개한 마을이 아니라 병들어가고 있는 서구적 기술 문명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오래된 미래 교과서였던 것이다.   결국 저자인 노르베리-호지는 서구적 개발에 반대하는 라다크 프로젝트를 발족 시켜 라다크가 잃어버린 예전의 지혜를 되찾도록 지원한다.  결국 라다크는 서구 문명의 어설픈 수입을 통해 자신 스스로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된 셈이다.  

우린 그동안 누구에게 배움을 얻고 실행해 왔는지.  우리도 라다크처럼 자신 스스로에게서 배움을 얻어야 할 때가 아닌지...

아무리 생각해도 서양은 동양을 파괴하면서 엄청 배우고 있는 혜택 받은 학생인 것 같다.





[The Wind is My Mother]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 자연은 인간을 용서하고 있다.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
베어 하트 지음, 형선호 옮김/황금가지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인디언은 지상의 어떤 종족보다 동물에 가까웠다.  바람의 냄새를 맡고 새 소리를 듣고 나무를 만지고 냇물의 맛을 보며 불을 지피고 이상한 주문을 외우는 인디언들은 분명 자연과 대화를 나눌 줄 아는 마지막 종족이었는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은 그런 인디언들에게서 자연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현대인들은 자연을 이용하고 파괴할 줄만 알지 자신의 삶을 지켜주는 자연의 가치와 자연의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인간을 자연은 계속 용서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계속 우리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선물들을 인간에게 제공하고 있다.  자연은 인간과 연결되어 있고 인간에게 지속적인 메세지를 보내고 있다.  인간은 그런 자연의 마음을 이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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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snowall | 2007/09/07 10:2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각에 관한 글을 하나 엮어둡니다.
    적어도, 현대인들은 인류가 자연을 어떻게든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죠.
    사실 어딘가의 나라에서 시작된다는 생명창조 프로젝트(DNA염기 인공 염기 생명체)가 생태계를 위협할 것이라든가, 인간-비인간 교잡 배아의 연구가 인류의 존엄성을 위협할 것이라든가 하는 말들이 많고, 언젠가 자연의 복수를 받을 것이라는 예언(?)도 있죠. 하지만 어차피 인간이 걱정하는 일들입니다. 자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요. 차라리 솔직하게 "죽고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면 되는 것을 말이죠.

  • BlogIcon 至柔제니 | 2007/09/07 12: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선생을 파괴하면서 배우는 학생. 서양 문명의 잣대로 동양을 보면 두리뭉실한 것 투성이겠지만, 그 안에 입증되지 못한 진리와 지혜가 가득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디언의 지혜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계량화 되거나 입증되지 못한 지혜. 보이지 않는 진리. 자연이 더 아프기 전에 우리가 배우고, 앎으로 그치지 말고 실천해 냈으면 좋겠습니다.

  • BlogIcon 크레아티 | 2007/09/07 22: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도 몇 일전에 읽었던 공상과학 소설 넥스트를 읽고 썼던 포스팅을 하나 엮어봅니다.
    자연물에 광고를 붙이겠다는 발상이 나오는 대목이 있었거든요.
    이런 것들이 실현화된다면 우리는 맥도날드라고 몸에 새겨진 물고기가 마이크로소프트라고 새겨진 물고기와 싸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인디언 하니까 어렸을 적에 읽었던 인디언 설화모음집이 생각나네요. ^^

    • BlogIcon buckshot | 2007/09/08 00:12 | PERMALINK | EDIT/DEL

      크레아티님, 덧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넥스트'의 설정이 정말 대단하네요. 광고가 유전자와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 인간의 자연 이용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라는 한숨이 나옴과 동시에 시장 확장의 한계는 없다란 생각도 드네요~

  • BlogIcon sepial | 2007/09/25 03: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라다크.......정말 그래요. 이곳 남아공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원조가 많이 들어가는 마을과 그렇지 않은 곳......다녀 보면 반응이 정말 저렇습니다...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읽으면.....그 답이 나올까요?

    • BlogIcon buckshot | 2007/09/25 20:05 | PERMALINK | EDIT/DEL

      '오래된 미래'가 주는 교훈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sepial님 블로그를 방문해 보니 너무나 소중한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부럽습니다. 저도 남에게 뭔가를 베풀 수 있는 일을 언젠가는 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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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성은 분자적이다. :: 2007/08/31 01:45



난 질 들뢰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천개의 고원...  사놓고 전혀 읽어 보지 않은 책이다.  고로 무엇에 관한 책인지 모른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을 펼쳐 들었고 무심코 책장을 넘기다 아래와 같은 문구를 발견했는데 뭔가 그동안 적어 왔던 포스팅들과 맥이 닿는 듯한 느낌이 든다..  ^^

모든 생성은 이미 분자적이다.  생성은 무엇인가를 또는 누군가를 모방하거나 그것들과 동일해지는 것이 아니다.    

생성은 누군가가 가진 형식들, 누군가가 속해 있는 주체, 누군가가 소유하고 있는 기관들, 또 누군가가 수행하고 있는 기능들에서 시작해서 입자들을 추출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입자들 사이에 운동과 정지, 빠름과 느림의 관계들을, 누군가가 지금 되려고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우며 그것들을 통해 누군가가 생성하는 그런 관계들을 새로이 만들어낸다. 

세상 모든 사람 되기는 세계 만들기이며, 하나의 세계 만들기이다. 없애버림의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의 추상적인 선, 그 자체로 추상적인 퍼즐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다른 선들, 다른 조각들과 접합접속하고 연결하면서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져서, 투명함 속에서 먼저번 세계를 완전히 뒤덮을 수 있게 된다.


들뢰즈의 글을 읽고나니 아래 포스팅들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게 된다.  쭈욱~ 엮어서 생각을 해봐야 겠다...

양자레벨에서 인간을 바라볼 때... - 비국소성의 원칙 (Non-locality)

[Web 2.0] 정보, 사람, 연결 - We are the Web. The Machine is Us/ing Us. Web 2.0 ... Beyond E-text

[흐름과 연결] 믿음,기억,욕구는 생물학적 생성물질이다. 통할 수 있는 능력이 신체의 능력이다. 흐름과 연결이 인간의 핵심이다.

[마르틴 부버 - 나와 너] 마음의 흐름과 관계

정보의 핵심

마음과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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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그린비 | 2008/08/11 19: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들뢰즈 책을 정말 들뢰즈적으로 읽고계시는군요! 들뢰즈도 언젠가 말하길, 『천의 고원』이 사람들에게 '연장통'처럼 쓰이길 바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들 하나하나가 퍼즐이 되고, 다른 퍼즐을 만들어 가길 바랬달까요. buckshot님께서 읽으신 그 방식대로 말입니다. ㅎㅎ

    위의 링크의 3번째 글 '흐름과 연결'은 들뢰즈가 많은 부분에서 빚지고 있는 철학자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을 연상시키는군요! ^^*

    • BlogIcon buckshot | 2008/08/11 23:46 | PERMALINK | EDIT/DEL

      아이고,, 들뢰즈 책을 들뢰즈적으로 읽고 싶고 들뢰즈적으로 살고 싶은 사람일 뿐입니다. 아직 들뢰즈적이란 표현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입니다... 그래도 말씀해주신 들뢰즈적인 독서, 들뢰즈적 쓰임새를 다시 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포스팅한지 1년 만에 받는 댓글이 이렇게 귀한 의미로 다가오는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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