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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기 :: 2016/09/23 00:03

앞을 본다. 뒤를 볼 수는 없다.
위를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하고 아래를 보려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
보기는 시야의 제한을 따른다.

앞을 듣는다. 옆을 듣는다. 뒤를 듣는다. 위를 듣는다. 아래를 듣는다.
듣기는 전방위적이다.

시각과 청각의 커버리지가 다르다는 점에 착안하면..

보기를 달리 들을 수 있고
듣기를 달리 볼 수 있을 듯

보기에서 놓친 뒷 세상.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보기가 감지하지 못했던 세상을 지각할 수 있다. 앞에 미래가 놓여 있다고 생각하고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고 착각할 뿐, 실은 미래가 앞이 아닌 뒤에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

모든 좌표로부터의 신호음이 한 방에 청각기관으로 몰려들기에 듣기는 현혹의 감각기관이다. 현혹으로 가득찬, 그래서 위험하고 그렇기에 매력적인.. 어디로부터의 소리인지, 왜 그 소리가 들려오는지 시각화하고 구조화하지 못해서 더욱 모호한.. 듣기는 그렇게 흘러간다. 그 흐름에 보기를 개입시키면 또 다른 양상의 전개가 가능하다.

듣보기를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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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zam :: 2016/05/16 00:06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들려오는 음악이 좋다.

스마트폰을 열어 Shazam을 터치한다.

Shazam이 없었다면 알 수 없었을 그 음악의 이름을 알게 되는 기쁨.

공간을 감싼 채 유영하는 소리를 채취하여 폰 안에 담는 행위.

폰 안에 담긴 채 휘발되는 게 아쉬운 찰나,
Shazam에 페이스북 버튼이 있다.
그걸 눌러서 페이스북 안에 담는다.

페이스북은 언제부턴가 나의 개인 아카이빙 공간이 되었다.
뭐든 그 안에 담아두게 된다. 그것이 생각이든, 떠돌아다니는 정보이든, 음악이든.. 뭐든지..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내게 있어 소셜 네트워크라기 보다는
대중들의 군무와 나만의 독무가 한데 어우러진 군독무의 공간.

그건 나만이 정의하는 나의 시간.
페이스북은 나에게 있어 '시간'이 되어간다.

공간을 채우는 정보를 인식하여 그것을 시간에 기록하게 되는 흐름.

굳이 음악 인식 기능의 문제라면 Shazam 외의 대안이 있으나
나에게 음악은 공간을 채우는 정보.
그 중에 나의 취향에 닿는 정보가 있으면 그걸 내 시간 안에 담고 싶었으니
Shazam에 보였던 페이스북 버튼은 내게 있어 나만의 욕구 충족의 솔루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음악이 좋게 들려오면
여지 없이 Shazam을 열게 된다.

공간 속에서 시간을 열고
시간과 공간을 만나게 해주고
그 교차지점에서 자신을 정의해 나가는 인간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



PS. 관련 포스트
페이스북, 군독 플랫폼이 되다.
군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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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는 대화 :: 2016/04/29 00:09

카페에서 사람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들리지 않는 대화 속에서 읽혀지는 뭔가가 있다.

대화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사람 간 대화의 모습만이 유일한 단서가 될 뿐
나머지는 모두 내가 채워야 하는 여백 많은 캔버스인 것이다.

모든 정황이 포착될 수 있다면 그걸 묘사하면 된다.
묘사의 깊이를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제한된 상황만이 나에게 재료로 주어진다면
나는 밑바닥부터 플롯을 짜야 하고 캐릭터를 내 의도대로 정의해야 하는 소설가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그 어떤 대화도 소설의 한 장면이 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결정적인 scene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긴장감을 견지한 채,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를 관찰한다.

명품을 자꾸 쳐다봐야 명품에 대한 감각과 취향이 생성되듯이
대화를 자꾸 쳐다보면 대화에 대한 감각과 취향이 만들어진다.

대화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대화를 보면 대화가 읽혀진다.
들렸다면 읽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묘사를 위한 정보만 많아졌을 듯.

하지만 대화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감각기관이 본격 작동하게 된다.
대화를 그저 보게 되는 것이고, 보다 보면 대화를 읽게 될 수 밖에 없다.

대화를 읽는다는 건
대화를 작성하는 것이다.
읽기와 쓰기는 표면적으로만 다르게 보일 뿐
본질적으로 유사한 결을 띠고 있는 행위다.

대화를 읽는다.
대화가 더욱 들리지 않는다.
그 속에서 시각과 독각은 더욱 첨예해진다.
캐릭터는 스스로 살아움직이는, 대화를 둘러 싼 공기가 자연스럽게 플롯이 되는..

대화가 들리지 않을 때
나의 소박한 창작은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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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미 스토리 :: 2015/12/14 00:04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즘은 그렇게 한다.

스토리는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나 자신에게 전달하는 것이란 생각을 요즘 많이 하게 된다.

이야기를 시도하면 흐릿했던 맥락이 선명해지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듣게 되므로 이야기는 온전히 내 안에서 순환된다.

말하기와 듣기를 내 안에서 실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는 나를 응시하게 된다.

나의 시선이 나를 향할 때
나는 멍 때리는 존재가 아닌 살아 숨쉬는 존재가 된다.

나는 블로깅을 할 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블로깅을 할 때
나는 나에게 말하고
나는 내 말을 듣고
나는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보고
나는 나를 읽고
나는 나를 쓴다.

그런 일련의 행위들은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자고 있는 나를 깨우는
흐름을 창출한다.

이야기는 나로부터 흘러나와 나를 향해 흘러 들어간다.

결국 나는
나란 존재는
내가 생성한 이야기
그 자체일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런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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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dge | 2015/12/14 12:2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접속이 안되길레, 좀 놀랬는데 이제 되는군요 ^^
    잘 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5/12/14 20:21 | PERMALINK | EDIT/DEL

      도메인 만료가 된 걸 깜박 했습니다. ㅠ.ㅠ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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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 2015/11/23 00:03

나의 삶이 음악이라면

내 삶의 악보를 구할 수 있을까?

악보를 구하면 난 그 악보를 읽을 수 있을까?

주어진 악보대로 연주하지 않고 나만의 즉흥연주를 한다면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악보에 적힌 흐름과 즉흥연주의 흐름 간의 갭은 나를 분열시키는 것일까?

분열된 나, 합일된 나. 나는 누구일까?

나의 삶이 음악이라면

난 연주자일까, 작곡가일까, 관객일까..

아니면 악기일까.

내 삶을 난 지금 듣고 있는 걸까.

난 들을 수 있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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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와 듣기 :: 2015/08/03 00:03

걷기는 듣기와 많이 유사한 것 같다.
걷기를 하다 보면 땅과 대화하는 느낌이다.
땅을 밟고 걸어가면서 나를 받쳐주는 땅을 느낀다.
땅이 나를 받쳐주는 건 땅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걸음을 딛고 앞으로 나간다는 건, 땅이 나에게 전하는 메세지를 듣는 것.

발은 일종의 귀.
발을 통해 전달받는 메세지를 잘 해석할 수 있다면
걷기는 보다 신비로운 경험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겠다.
걷기에서 듣기를 경험하고 듣기를 통해 말하기를 행할 수 있다면
걷기는 곧 대화하기가 될 것이다.

걸음.
무심코 오랜 기간 동안 해왔던 걸음이
이제 나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와 주고 있고
난 이제 걸음을 통해 땅과 대화를 하고
나를 둘러 싼 주변의 모든 것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르겠다.

걷기를 통해 만들어 나가는 나의 동선.
그 동선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적 루프에 불과해 보였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어제와 같아 보이는 그 동선이 실은 나에게 새롭게 주어진 대화의 장이고
나는 매일 새로운 길을 걸어나갈 수 밖에 없는 모험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것.

단 하루도, 단 1시간도, 단 1초도
루틴하지 않다는 것.

걷기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면
걷기..  그것 하나만으로도 배움이 지속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걷게 된다.

나는 운전을 못 한다.
그래서 걷기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걷기가 일상이 아니고, 가슴 뛰는 모험이고 여행이란 걸 알게 되었는데.
난 걷는 걸 좋아하는 내가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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