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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 2019/07/12 00:02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통화는 두려움

인간이란 시스템 안에서
두려움이란 이름의 통화는
끊임없이 인간 내부를 순환하면서
유통 흐름의 극대화를 지향한다

인간 안에서
두려움이 흐르면 흐를수록
'인간' 시스템에서의 두려움의 아성은 견고해져만 간다.

통화는 팽창에 팽창을 거듭하게 되고
중국엔 통화는 붕괴를 예고한다

통화 붕괴가 오기 전에
인간 생명이 끝나는 경우도 많지만

어떻게 어떻게 생물학적 인간 수명이 버텨내면서
인간 수명이 다하기 전에 두려움이란 통화가 먼저 붕괴되는 시점이 올 경우

인간 시스템은 통화 없는 새로운 막을 열게 된다

그 막을 여는 게 내 목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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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노예: 이기고 웃는 노예, 지고 우는 노예 :: 2013/01/28 00:08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부/권력/지위/명예와 같은 속물적 덕목으로부터 자유롭기는 매우 힘들다. 아니 심지어는 그런 속물적 스펙에 인생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왜 사람들은 자신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 유전자에 깊게 새겨진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두려움은 원래 생명 위협 상황에서 가치를 발휘하는 기제인데 문명이 발전하면서 수시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이 현저하게 줄어든 지금도 '두려움'은 인간 사회를 강하게 압박하며 인간들을 두려움 숭배 로봇으로 만들고 있는 듯하다. 만약 인간의 마음 속에 두려움이 없다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시선에 합당한 스펙을 갖추기 위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던지듯 로봇처럼 살아가는 행태가 과연 이렇게 만연했을까?

부,권력,지위,명예는 유한 자원이라서 그걸 남보다 많이 획득하려는 경쟁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마치 속물적 덕목을 남보다 더 많이 획득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마냥 인간은 인생 전체를 걸고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대장정에서 헤어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광경은 정말 우주적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이런 개그적 대서사시를 누가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 이 상황을 주재한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보면 볼수록 놀랍고 그 안을 살아가는 내 자신이 놀랍고 이런 체계가 굴러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초대형 블록버스터 판타지 무비가 아닐까 싶다. (일상이 이렇듯 거대한 영화관인데 뭐 하러 극장에 가는가? ^^)

무엇보다도 이런 놀라운 상황을 가능케 하는 동력인 '두려움'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두려움'은 정말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자신을 망각하고 오직 자신을 상품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상품 가치를 드높이기 위한 무한 경쟁 상황 속에 자신을 내던지는 인간소외적 행위, 몰지각한 행위를 당연시하며 인간을 살아가게 하다니, 도대체 두려움 너는 인간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

경쟁지상주의 사회가 낳은 가관을 보면서 두려움에 최상급 찬사를 보내지만, 이 게임에서의 승자는 두려움 하나라는 게 참 안타깝다. 무한경쟁에 뛰어든 수많은 인간들은 두려움이라는 유일한 승자의 발 밑에 엎드려 두려움을 경배하고 두려움에 유린당하는 비참한 패배자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을 두려움은 계속 즐겨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경배를 드리면 경배 드린 만큼 그에 합당한 대우나 케어를 받아야 하는데, 왜 인간은 두려움에 인생 전체를 건 경배를 드리고 두려움으로부터 잔인한 희롱을 당하는 것일까?

경쟁의 결과는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니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일개 범용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이고 범용품으로 살아가는 한 승리도 패배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보다 돈을 많이 벌고 남보다 더 좋은 직장에 다니고 남보다 더 좋은 집에 살고 남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남보다 더 많은 존경을 받고...  아뿔싸~ 여기엔 '나'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타인만 존재한다. 이게 나 자신을 위한 삶일까? 아니면 남을 위한 삶일까?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이타적인 존재였을까? 그리고 이게 과연 이타적 삶일까? ^^  

경쟁의 결과는 인간소외이고 완벽한 범용품으로의 전락이다. 그게 경쟁의 본질이다. 경쟁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 경쟁에서 중요시 하는 스펙에 목을 매며 살아가는 일상 속엔 공허함만이 가득하다. 설사 거기서 좋은(?) 성과를 얻었다고 해도 곧 또 다른 갈증이 찾아오고 근원적 두려움은 점점 나의 목을 조르며 나를 더욱 강하게 압박해 들어올 뿐이다.

결국 "내가 중요시 하는 덕목 속에 내가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란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하고 그 질문 속에 내가 없고 온통 타인이 가득하다면 나는 뭔가 잘못 살아가고 있다는 인정을 해야 할 것이다. 남이 정의한 성공 패러다임, 남이 정의한 행복 패러다임의 바다 속을 해면동물처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두려움이 이끄는 삶. 두려움을 경배하고 두려움으로부터 유린 당하는 삶. 그리고 그걸 인지 못하는 삶. 참 허무한 거다. ^^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흘러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올 때, 아래와 같이 자문해 보자.

"나는 살아가면서 경쟁 말고 한 게 뭐가 있는가?" 

이 질문에 오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게임만을 했다라는 답이 나온다면 그건 정말 비참한 것이다. 왜? 경쟁은 이겨도 지는 게임이니까. 왜 지는 게임을 하는가? 왜 유일한 승자인 두려움에게 퍼주기만 하는가? 왜 승리와 패배만 존재하는 유아적이고 치기 어린 이분법 논리가 지배하는 저급한 프레임에서 평생을 보내는가?  과자 하나 주면 헤헤거리고 과자 안 주면 앙앙 우는 유아. 그게 경쟁 프레임 속에 갇힌 인간의 모습인 건데.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과자 하나 얻어 먹으려고 떼쓰고 헤헤거리고 앙앙 우는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다니. 인간이 그렇게 병신 같은 존재인 건가? 두려움을 숭배하고 두려움에 유린당하는 인간. 그건 노예다.

경쟁에서 이기고 웃는 노예, 경쟁에서 지고 우는 노예. 노예들이 가득한 세상.  나 자신이 노예임을 일단 인지라도 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는 노예스런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정말 나 자신을 아끼고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블로깅을 하면서, 경쟁에서 이기고 웃는 노예들과 경쟁에서 지고 우는 노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쟁은 애니팡, 드래곤플라이트, 다함께차차차를 하듯 걍 가볍게 즐기고 말면 되는 게임이고 그 게임의 유일한 승자는 두려움인 것인데 경쟁의 결과를 놓고 왜 웃고 우는지 난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렇게 두려움의 지배력을 키워주기 위해 웃고 우는 에너지를 다 허비하면 정작 나를 위한 에너지를 어떻게 수급할 것인지. 인간은 정녕 두려움의 힘을 키워주기 위해 태어났고 한 평생을 오직 두려움만 경배하며 살아가야 하는 건가?

블로깅을 하면서 경쟁의 본질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다행스럽다.
블로깅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개그적 스펙터클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도 못한 채
난 지금도 여전히 경쟁 노예로 살아가고 있었을 테니까. ^^



PS. 관련 포스트
쪽팔리고 싶지 않은 욕구
욕망은 수동태이다.
사라진 원인, 좀비가 된 결과
타존, 알고리즘
자존, 알고리즘
우열, 알고리즘
경쟁, 알고리즘
소외, 알고리즘
제허, 알고리즘
비교, 알고리즘
범용,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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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3/01/28 19:3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실 두려움은 자본주의 사회 뿐 아니라 공산 사회, 독재 사회, 유목 사회, 봉건 사회 등 체제와 시대를 초월해서 늘 인간의 생존을 위협해온 '존재'인 거죠. 애초에 신의 관념이 생긴 이유도 두려움 때문일텐데, 신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현대 문화권에서 이제 두려움은 자기 자체를 신격화함으로서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경쟁에서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진짜, 경쟁 시스템을 이기는 게 과제인 듯 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3/01/28 20:45 | PERMALINK | EDIT/DEL

      제가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글자들의 어지러움을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해 주시네요. ^^

      "경쟁에서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경쟁 시스템을 이기는 게 과제이다."

      존경스럽습니다. 넘 감사드리고 싶구요~

  • 휘리릭킴 | 2013/03/11 15: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열등감과 오기로 쓰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타인을 넘어서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실제 적은 우리보다 더 커 보일 때가 많으니까요..특히 저 같은 경우는 말이죠..^^;;
    또 한편으로는 그 벅샷님이 말한 그 두려움을 무작정 이기려만 하다보니, 또 정작 타인이 보는 나와 내 자신이 보는 나와의 거리감도 생기고 있는 중입니다.
    하...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ㅎㅎ

    • BlogIcon buckshot | 2013/03/11 19:50 | PERMALINK | EDIT/DEL

      두려움은 인간유전자에 깊게 새겨진 코드이기도 하고 인간소외의 경쟁시스템을 서포트하는 거대한 동력이기도 해서 감히 제압하기는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

      하지만, 매번 두려움에 맥없이 제압당하기 보다는 아주 가끔씩이라도 두려움을 상대로 멋진 저항, 또는 가벼운 승리를 거두는 경험을 지속하게 된다면 인간의 삶은 보다 더 풍요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블로깅은 두려움 희롱 놀이를 지속하기 위한 좋은 시공간이겠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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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수동태이다. :: 2012/03/19 00:09

나는 무엇을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갖고 싶어 하고 무엇을 누리고자 하는가?
욕망의 근원은 무엇일까? 결핍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의 욕망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욕망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온전한 나의 결핍감이 아닌 것 같다. 결핍감은 나의 외부에서 내게로 주입된 일종의 강박인 것 같다. 나로 하여금 결핍을 강하게 느끼고 그로 인해 욕망을 자가생산하며 그 욕망에 의거해서 행동하고 그 행동이 뭔가에 의욕과 시간과 돈을 투입하게 만드는 누군가가 나의 욕망을 조정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욕망은 인간 스스로가 생산하기 보다는 외부로부터 주입 받는 경우가 많다. 주입된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욕망 BM'이 굳건히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욕망 BM의 서식처이자 번식처이다. 내 안에서 욕망 BM의 서식/번식이 활발할 수록 나의 욕망은 더욱 요동을 치며 욕망과 결핍감의 뫼비우스 띠는 증폭에 증폭을 더해간다. 거대한 욕망 BM의 쓰나미적 물결이 인간 무리를 덮치면 덮칠 수록 욕망은 인간 관점에선 철저히 수동태적 양태를 띤다.  


욕망은 수동태이다.

욕망이 수동태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걸 인정할 때
질문은 아래와 같이 바뀌게 된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욕망은 누가 주입한 것일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결핍감은 누가 입력한 정보일까?
나의 욕망과 결핍감은 무엇을 향해 디자인되고 있는 것일까?

온전한 나만의 욕망과 결핍이 존재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내가 얼마나 속절없이 의도된 욕망/결핍감을 주입 받고 있는지를 아는 것.
그것이 수동태적 욕망 메커니즘에서 빠져 나와 진정한 나만의 욕망을 생산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


PS. 관련 포스트
허위욕구와 백야
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BM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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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팔리고 싶지 않은 욕구 :: 2012/03/16 00:06

원시시대를 살던 인간은 생존욕구가 짱이었다. 현대를 사는 인간은 원시시대로부터 각인된 생존욕구에 여전히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리고 새롭게 획득한 강렬한 욕구가 있었으니. 이름하야 "쪽팔리고 싶지 않은 욕구". 이 욕구에 대한 집착은 실로 거대하다.

왜 쪽팔림에 대한 두려움이 범람하게 된 것일까? 그건 두려움 총량 보존의 법칙 때문이다. 현대를 사는 인간은 생명 위협이 현저히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의 총량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모습이다. 별로 위험하지도 않은 것에 대한 걱정/두려움을 무수히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쪽팔림은 불확실성과 함께 두려움에 굶주린 인간 뇌를 가득 채워주고 있는 두렵고 싶은 인간 뇌의 든든한 친구이자 동반자인 것이다.

쪽팔림을 느끼고 싶어지는 순간, 나의 뇌를 점검해 보자. 뇌는 분명 쪽팔릴 수 있는 상황을 인지하고 그걸 피하고 싶은 욕구에 쩔어 있을 것이다. 그걸 피하면서 뇌는 커다란 위험을 피했다고 자위할 것이다. 이건 한마디로 뇌가 주도하는 거대한 사기극이다. 이런 사기극에 매일 놀아나면서 '쪽'을 신격화시키는 인간. 인간은 거대한 종교를 섬기고 있는 것이다. 이름하야 '쪽교' ^^ 

감정과 마찬가지로 우상도 직시 당하면 움찔하기 마련이다. 감정을 직시할 때 감정은 인간의 몸과 맘을 온통 지배할 수 있는 파워를 상실한다. 우상도 마찬가지다. 우상의 실체를 직시하는 순간 우상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쪽팔리기 싫어하는 나의 욕구를 지긋이 응시해보자. 그것의 실체가 얼마나 나를 우습게 만들고 있는지 찬찬히 바라볼 때 자존감은 고조된다.

두려움 총량 보존의 법칙에서 벗어나야 한다. 두려움이란 감정은 일종의 양자다.  두려움이 엄습하려고 할 때 그 감정을 가만히 관찰해 주면 두려움은 폭주를 멈추고 수줍어하며 순한 양이 된다. 두려움을 직시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에 휘둘리는 것이다.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계에선 뭐니뭐니해도 관찰이 최고의 덕목이다.

쪽팔리고 싶지 않은 욕구.
여기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인생의 품질이 걸려 있다. ^^


PS.
관련 포스트
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BM
사라진 원인, 좀비가 결과
타존, 알고리즘
자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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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ndy | 2013/01/28 18:13 | PERMALINK | EDIT/DEL | REPLY

    경쟁노예 포스트에서 타임머신 타고 여기로 왔네요 ^^ 너무나 유쾌하고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관찰'은 정말 중요하고 강력한 덕목인 듯 합니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면밀히 관찰해야 함을 더불어 깨닫게 되는 포스트입니다. 나의 '쪽팔리고 싶지 않은 욕구'를 관찰하고 정의내려보기만 해도, 자존감 상승에 스스로 기여하고 일조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유쾌 상쾌 통쾌한 포스트에 머물다 함박 미소 짓고 돌아갑니다. '경쟁 노예'포스트에선 스트레스가 확~ 날아갔지뭐여요! 오늘은 buckshot님의 포스팅에 '스파클링 워터'라는 별칭을 달아드리고 싶네요! 여느 때처럼, 언제나,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1/28 20:43 | PERMALINK | EDIT/DEL

      밋밋하고 건조한 제 글에 스파클링 워터와도 같은 댓글을 달아주시는 Wendy님~ 저 Wendy님 팬입니다. 울나라/전세계의 그 어떤 초특급 스타보다도 제게 훨씬 큰 기쁨을 주시거든요. 제겐 Wendy님이 최고의 스타이십니다.

      TV,영화,무대 등에서 활약하는 절정의 스타들의 플레이를 봐도 아무런 감흥을 얻지 못하는 제게 Wendy님은 항상 꿈과 희망을 주십니다. 제 블로깅이 지속될 수 있는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지요. 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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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BM :: 2011/12/23 00:03

우리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말에 쉽게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전 세계가 쓰나미, 블랙스완을 연상케 하는 극단적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한다는 식의 겁주기 메시지에 나름 순응적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세상은 불확실성 급증의 도가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불확실성이 커지는 이유를 외부 환경의 격변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고, 불확실성이 커진다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알기 쉬울 수는 있겠으나, 실상은 불확실성이 급증한다기 보다는 불확실성을 급속하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겠다. 즉, 극적인 변화는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의 수위 보다는 그것을 인식하는 인간의 마음 속 불안감의 수위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확실성은 예측용이성/통제용이성의 반대 의미를 가진다. 인간은 항상 뭔가를 더 예측하고 싶어하고 통제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커지는 쪽으로 시간을 보내왔다. 문명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외부 환경에 대한 예측력과 통제력은 비약적인 고도화를 거듭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거대한 착각일 수 있다. 자고로 문명이 발전되는 동안 인간이 정말 질적 성장을 기록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쉽게 대답이 잘 되지 않는다. 원시시대 대비 생명 위협이 현저히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닥 위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양산하며 두려움의 총량을 유지하고 있다. 원시시대나 현대나 인간은 두려울 것이 있어야 안심한다. 인간 뇌는 두려움을 먹고 사는 기관이다. 인간 뇌는 마치 두려움이 유통되지 않으면 심심해서 미쳐버릴 수도 있다는 듯 끊임없이 두려움을 생성하고 소비한다. 문명 발전이 산출한 최대의 성과는 '원시시대의 원초적 두려움을 현대의 세련된 두려움으로 치환시킨 것'이 아닐까. 인간 뇌 속에 똑같은 두려움이 유통되면 인간 뇌가 지루해할까 봐 끊임없이 새로운 두려움을 인간 뇌 속에 주입시킨 것이 문명의 주요 과업이 아니었을까. ^^

예측용이성, 통제용이성을 높여간다는 착각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불안을 생산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소비했다. 그리고 그런 생산-소비의 순환 고리 속에서 불안 BM은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어느 시대나 인간 마음 속에 잠재한 불안을 자극하고 증폭된 불안에게서 돈을 뜯는 불안 BM이 존재했다.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것. 불안감이 커진다는 것. 두려움과 끝없는 숨바꼭질을 하고 싶어하는 인간 뇌를 자극하는 불안 BM의 존재. 불확실성, 불안감, 불안 BM은 매우 견고한 삼각편대 체제를 구성한다. 그 강력한 삼각 압박에 너무 많이 농락당하면 세상은 정말 불확실성의 소용돌이로 보일 것이다. 불안 BM을 직시하면 불안 BM에게 주입을 강요 받았던 내 마음 속 불안감은 실체성 여부를 검증 받게 것이다. 그리고 불확실성이란 단어에서 불필요한 강박은 필터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불확실성이란 단어를 당연한 느낌으로 어리버리 수용해선 안 된다. 확실한 것 하나만 견지해도 불확실성이란 단어는 충분히 무력화시킬 수 있다. 확실한 것 하나는, 실체 없는 불확실성과 뜬금 없는 불안감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극단, 알고리즘
예측, 알고리즘
[변화관리] 두려움 vs.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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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행격차 :: 2010/07/05 00:05

생각의 속도로 실행하라
제프리 페퍼.로버트 I. 서튼 지음, 안시열 옮김/지식노마드


이 책의 원제는 The Knowing-Doing Gap이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 사이의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재미있는 설명을 해주고 있다. 아래 언급한 5가지 이유 모두 일리가 있어 보인다.

  • 말이 행동을 대신할 때
  • 기억이 생각을 대신할 때
  • 두려움이 지식 실행을 가로막을 때
  • 숫자가 판단을 가로막을 때
  • 내부 경쟁이 친구를 적으로 만들 때


내게 가장 인상적인 지행격차 상황은 '말이 행동을 대신할 때'이다.  정말 말이 행동을 대신하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다. 번지르한 말과 자료는 분명 선행성이 강하다.  화려한 언변은 분명 껍데기에 불과한 데도 인간은 단지 말만 듣고서도 마치 실행까지 다 끝난 느낌을 받고 말 자체에 몰입하고 환호한다. 말이 행동을 대신하는 현상은 뇌가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을 구분하지 못함에서 기인한다고 보여진다. 인간의 뇌는 실제 현실과 가상 현실을 그닥 구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말로 화려하게 지르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용을 보면 별 것도 없는데 멋있는 용어로 포장만 화려하게 내놓고 그게 대단한 것인 양 유포시키는 비즈니스/마케팅적 관행에 잘 속아 넘어가는 것 자체가 지행격차의 극명한 단면이라고 본다.

말이 행동을 대신하는 것은 일종의 부채이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 지르기를 지속하게 되면, 부채가 부채를 낳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지행의 금융위기라고나 할까? ^^

지행격차를 막기 위한 방법은 '엄중한 피드백 루프' 도입이다. 말을 뱉은 후, 그 말을 실행하는 지 여부를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 마련이 중요하다. 즉, 뱉은 말을 기록하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결과를 물어야 한다. 블로그는 훌륭한 지행격차 방지 시스템이다. 여기엔 말의 부채가 하나 둘씩 계속 쌓여 간다. 3년 넘게 해오다 보니 엄청난 부채가 쌓여 있는 셈이다. 이 부채가 내 삶의 무게인 것 같다. 개중엔 부채를 갚은 것도 있긴 한데 그 양이 그닥 많지가 않아서리. 뭐 어쨌든, 지행격차를 줄여나가는 과정 속에 인생의 배움이 있는 것 같고 그걸 도와주는 중요한 툴이 내겐 블로그인 것 같다.

The Knowing-Doing Gap을 읽고 내가 얼마나 많은 말의 부채를 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부채 경감을 위해 실행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에혀~ 빚쟁이~ ^^



PS. 관련 포스트
Run & Learn - 태괘 경영, 배움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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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지민 | 2010/07/05 19:4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좋은 글 매일매일 재미있게 구독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07/05 21:19 | PERMALINK | EDIT/DEL

      귀한 시간 내주셔서 보아 주시니 넘 감사할 따름입니다. ^^

  • BlogIcon 토댁 | 2010/07/06 13: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빚쟁이...앗 뜨금..!!

    잘 지내시죠?
    저 정말 정신이 없이 바쁘네요.

    이 시기가 지나면 좀 나아질 드 합니다.
    제 댓글이 뜸하더라도 건강히 잘 지내십시요..

    기특한 저의 I 폰으로 보고 있습니당..히히히

    • BlogIcon buckshot | 2010/07/06 20:53 | PERMALINK | EDIT/DEL

      여유가 있으면 블로깅/트위팅할 시간이 많아서 좋고, 바쁘면 블로깅/트위팅하는 맛이 꿀맛이라서 좋고. 뭐 어느 경우든지 다 좋은 것 같습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 것 같아요~ 멋지십니다~ ^^

  • BlogIcon 친절한시선 | 2010/07/06 15:4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말이 행동을 대신할 때
    •기억이 생각을 대신할 때
    •두려움이 지식 실행을 가로막을 때
    •숫자가 판단을 가로막을 때
    •내부 경쟁이 친구를 적으로 만들 때

    첫번째 부채는 저도 워낙 자주 발생시키는 것들이라 오히려 익숙한 것 같고, 위 내용중 제겐 두번째 항목이 제일 인상적입니다. 나머지 내용들에도 고개 끄덕여지구요. 기억이 생각을 대신할 때... 그리고 그 기억을 조작하기까지 하잖습니까...하하하 ''

    • BlogIcon buckshot | 2010/07/06 21:03 | PERMALINK | EDIT/DEL

      예, 기억은 생각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억만의 독자적 생존력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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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원인, 좀비가 된 결과 :: 2010/06/23 00:03

실인(失因)
- 원인이 사라진 뒤에도 결과만 붙들고 있는 것.
- 결과의 자가증식 본능.


쫄경, 알고리즘에서 아래와 같이 적은 바 있다.
인간을 움직이는 커다란 동력 중의 하나가 아마 '두려움'일 것이다. 두려움은 굉장히 뿌리깊은 인간 감정 중의 하나이다.  끊임없이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던 수렵채집의 원시시대부터 고도화된 문명의 현대에 이르기까지 두려움은 항상 인간의 뇌를 감싸고 인간의 주위를 맴돌면서 인간을 움직여 왔다.


두려움은 원시시대 인간의 '원초적 생존 추구' 본능에 기반하고 있다. 생명위협이 현저히 감소한 지금도 두려움은 존재한다. 인간은 현대를 살아도 인간 유전자는 여전히 원시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문명발전에 따라 생명 위협(원인)은 현저히 감소했으나, 두려움(결과)의 존재감이 여전하다는 사실은 내게 매우 흥미롭게 느껴진다.

인간은 아무 연관 없는 팩트의 나열 보다는 팩트들이 인과관계로 촘촘히 연결된 스토리를 더 선호한다. 그래서 종종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인하는 경우도 생긴다. 원인-결과 간의 연결고리에 대한 감이 나름 어설프다 보니, 원인이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진 다음에도 결과만 우스꽝스럽게 붙들고 있는 경우가 생기기 일쑤이다. "초심을 잃지 마라"는 말도 그런 연유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

원인은 결과를 낳는다. 원인은 결과를 낳고 결과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기 보다는 어느 순간 원인과 결과 간의 긴밀한 관계가 끊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결과는 원인이 사라진 후에도 원인과 독립되어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찾는 것 같다. 현대를 사는 인간은 생명 위협이 현저히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의 총량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모습이다. 별로 위험하지도 않은 것에 대한 걱정/두려움을 무수히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원인이 사라진 후에도 결과는 계속 남아 자가증식을 반복하는 건지. ^^

'인과관계'에 대해 좀더 진지한 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섣부른 인과관계 판단을 자제할 필요가 있고, 일단 인과관계를 수용한 이상, 원인과 결과가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낼 수 있게 인과 고리의 유효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겠다.

현대는 원시시대만큼 두려움이 필요 없는 시대이다. 인간 유전자에 뿌리깊게 새겨진 두려움의 총량을 맹목적으로 인정하지 말고, 내가 갖고 있는 두려움의 근원을 파헤치는 놀이를 즐길 때, 두려움이 사실 별 것 아닌 것에 기원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초심은 잃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소중한 원인은 잊지 말아야 하니까)
원인이 사라졌거나 당초 취지를 상실했을 때는 결과를 지속할 이유가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결과가 좀비가 되어 활개치는 모습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으니까. ^^



PS. 관련 포스트
남녀, 알고리즘
쫄경, 알고리즘
인과, 알고리즘
Attention은 야생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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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경, 알고리즘 :: 2010/04/23 00:03

인간을 움직이는 커다란 동력 중의 하나가 아마 '두려움'일 것이다. 두려움은 굉장히 뿌리깊은 인간 감정 중의 하나이다.  끊임없이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던 수렵채집의 원시시대부터 고도화된 문명의 현대에 이르기까지 두려움은 항상 인간의 뇌를 감싸고 인간의 주위를 맴돌면서 인간을 움직여 왔다.

'경영'에서 두려움은 어느 정도의 입지를 갖고 있을까?

아마도 두려움은 경영에서 엄청난 동력원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 같다.  CEO는 회사를 성장시키지 못하면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다는 두려움, 중간관리자는 담당 부서의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입지가 약해질 수 있다는 두려움, 일반 구성원들은 가시적인 개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할 거란 두려움.  조직에서 일하는 모든 비즈니스맨들은 두려움을 갖고 일을 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CEO의 두려움은 중간관리자에게 압박으로 전이되고 중간관리자는 그 압박은 부하직원에게 전이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조직은 경직되어 간다..

쫄아서 일하는, 두려움 기반의 경영.. 쫄경이다. ^^

자본주의는 분명 검증된 인간소외 기제임에 분명하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욕망을 장악하면서 인간을 파괴적으로 소외시켰다. 자본주의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는 '조직'에서 두려움이란 개념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강도가 너무 크다는 건 분명 문제다. 두려움을 완화시킬 수 있는 대체재가 필요하다.  두려움의 대척점엔 즐거움/놀이가 존재한다. 리더는 지시하고 구성원은 닥치고 따르는 두려움 기반의 조직과는 달리, 즐거운/놀이 기반의 조직에서는 리더는 질문하고 구성원은 답을 구한다. 업무 자체에 대한 몰입이 조직의 동력원이다.

즐거움/놀이 기반의 조직이 과연 가능할까? 

아마, 매우 어려울 것이다. 조직 구성원의 총체적인 역량과 열정이 기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리더/구성원 전반이 일 자체에 몰입하는 조직은, 아마 거의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수준일 것이다. 두려움 기반 경영의 탈피는 경영의 커다란 숙제이자, 장기 프로젝트라고 봐야 한다. 차라리, 경영혁신은 개인 관점에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먼저 치고 나가는데 더 즉각적인 흥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쫄경 조직 속에서 즐경을 개인적으로 시도해 보자.

경영 혁신의 주체가 꼭 CEO/경영진일 필요는 없다. CEO/경영진은 장단기 성과에 집중하다 보면 인간 중심의 경영 혁신을 시도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불세출의 경영혁신가가 나타나서 회사를 뒤바꿔 놓기를 바라기 보단, '나'를 혁신하는 작은 움직임을 반복해 나가는 과정 속에 진정한 경영 혁신의 참 맛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꽉 붙들고 그 일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 나가고 그 과정이 놀이처럼 느껴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경영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경영은 웹을 닮아갈 것이다. 웹은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두드러지는 공간이다. 누구나 웹에 뭔가를 기여할 수가 있다. 수직적 위계질서보다는 수평적 관계 네트워크의 역동성 속에서 새로운 노드가 끊임없이 탄생하고 노드는 허브로의 성장을 지향하고 허브는 노드에 의존하는 관계지형은 초고속으로 복잡도를 더해간다. 웹을 닮아가는 경영의 시대를 살아가는 비즈니스맨은 스스로 자신을 혁신시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쫄아가면서 운영되는 조직 속에서 즐거운 개인 경영을 시도하는 맛은 꽤 짜릿할 것이다. 

두려움은 감정의 영역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평생을 감정의 영향권 내에서 살아야 하느니만큼, 두려움 기반의 쫄경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감정의 힘만큼이나 강력한 힘이 생각의 힘이다. 배우는 것을 즐기고 나만의 실수/실패를 거듭하면서 평생 배워나가고 싶은 욕구는 감정보다 더 근원적인 힘일지도 모른다. 감정과 생각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쫄경과 즐경의 만남. ^^

'경영 혁신의 민주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성과 압박 속을 헤매는 경영자에게 경영 혁신을 바라지 말고 실무자들 스스로가 자신을 혁신시켜 나가는 모습 속에 경영혁신의 열쇠가 숨어 있다. ^^




PS. 관련 포스트
Run & Learn - 태괘 경영, 배움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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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0/04/23 10:1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와! 정말 좋네요 ㅎ
    항상 좋은글들 읽고 느끼고 싶어서 자주 퍼갈것 같습니다 ㅋ

  • BlogIcon inuit | 2010/04/26 00: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Fun 경영이 의미를 갖는 이유를 '쫄경'으로 쫄깃쫄깃하게 풀어주셨군요.
    항상 벅샷님 글 보면 재미있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0/04/26 09:36 | PERMALINK | EDIT/DEL

      펀과 쫄은 어쩌면 백지 한장 차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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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유머는 두려움과 억압을 무력화한다. :: 2007/05/26 00:01


장미의 이름 -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열린책들


장미의 이름 - 하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열린책들


통제와 지배가 강한 사회에서는 유머가 체제 유지에 커다란 위협으로 느껴지기 쉽다.   유머가 내포하는 포용과 자유의 힘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부 희극론이 불타는 수도원과 함께 사라졌을 것이란 멋진 가설과 기호학, 중세 철학, 미학, 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잘 짜여진 추리 플롯이 이 소설을 빛나게 한다. 

이 책에선 인간에게 불을 가르쳐 준 프로메테우스도 몰랐던 '두려움을 감추는 기술'로써의 웃음이 정의되고 있는데..

두려움은 인간의 활동력을 자극하는 선기능도 갖고 있지만 독재자의 공식적 민중 통제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고 시장 조성을 위한 회사들의 상투적 수단이기도 하다.  이런 두려움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레버로 사랑을 들 수 있는데 웃음도 또 하나의 레버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니..  역시 웃음의 힘은 무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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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관리] 두려움 vs. 통제 :: 2007/04/06 00:01



변화에 수반되는 불확실성은 대개 통제가 불가능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방식을 조절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불확실성의 의미는 호전과 악화를 모두 내포하게 되는데 사람은 흔히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불합리하다.  개방적 자세로 불확실성을 수용하고 과정을 차근차근 통제하면 좋은 결과를 낼 확률은 급증하게 된다.

Change can be scary. But fear is typically a function of control.  If you feel like you have control of the situation you're less likely to be scared.  Think of it like the difference between swimming in a pool and swimming in the ocean.   - Michael Egan, Sr.Director, Content Solutions, Yah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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