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에 해당되는 글 31건

연필로 쓰기 :: 2017/11/03 00:03

연필로 글을 쓴다.

가장 옛날 방식인데도
참으로 세련된 느낌이 든다.

연필로 글 쓰기는 아주 오래된 미래 아닐지

예전의, 옛날의 구식의 것들을 잘 살펴볼 때
아주 오래된 미래가 그 속에 숨어 있다는 인상을 문득 받게 된다는 건

시간이란 게 직선적으로 흘러가기만 하진 않고
뭔가 우주에 넓게 분포되어 있고
시간과 공간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채
우리가 시공간 상의 좌표를 계속 유동하고 있는 것인지

그렇게 유동하면서
시간을 입체적으로 느끼고
공간을 통합적으로 투시하면서

시간이 무엇인지
공간은 무엇인지에 대해
어렴풋이 배워나가는 것인지도

연필로 글을 쓴다

참 오래 전에 해봤던 것인데
그 때보다 지금 발전한 것은 과연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진보?
정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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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 :: 2017/02/27 00:07

10일 만에 끝내는 MBA 
스티븐 실비거 지음, 김성미.이은주 옮김/비즈니스북스

모든 분야는 특유의 언어를 지닌다.

경영에도 언어가 있다.
경영의 틀을 규정하고
경영의 결을 형성한다.

그런데..
특정 분야의 언어를 잘 알면 그 분야를 잘 아는 것일까
특정 분야의 언어에 능통하면 그 분야에 능통하게 되는 것일까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
언어를 몰라도 분야를 통찰할 수 있다면

언어는 언어이다.
분야는 분야이다.

언어와 분야 간의 관계는 존재할 수 있어도
언어 능력이 분야에 대한 접근성 자체를 어찌하지는 못할 것이다.

MBA 다녀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경영을 잘 해내는 사례가 넘치고 넘친다.
언어에 특별히 밝지 않아도 몸과 마음으로 분야를 직시하고 부딪치면서 얻어나가는 리얼리티의 힘은 강할 것이다.

그래도 언어를 접하고 언어에 재미를 느끼는 것도 의미는 있겠다.
언어를 단지 기능적 도구로 여기지 않고, 언어 자체에서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언어 없이도 얻을 수 있는 통찰과는 사뭇 다른
틀과 결을 가로지르는 언어 자체로부터의 통찰을 생성할 수 있다면
그건 또 다른 얘기일 것이다.

언어는 단지 기능적 도구 이상의 그 무엇이다.
언어를 기능으로 대할 것인지
언어 자체를 하나의 분야로, 하나의 장르로 대할 것인지
선택에 따라서 언어는 그에 맞춰진, 그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특정 분야의 언어를 다룬 책을 보면
그 분야 보다는 언어 자체에 시각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분야에서 언어를 발라내었을 때 남는 그 무엇
그로부터 풍겨지는 냄새가 좋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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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 문예 :: 2016/10/31 00:01

아이패드로 창작과 비평을 읽는다.
아이패드로 문학과 동네를 읽는다.

종이책을 읽는 것과
e북으로 읽는 것 사이의 차이

문예지를 e북으로 읽는 것이 주는 경험
아이패드로 문예지를 읽는 흐름..




한동안 아이패드로 화려한 비주얼을 펼쳐내는 매거진을 주로 읽었다.
그렇게 경험이 쌓이다 보니 아이패드를 비주얼 매거진과 동격으로 놓기에 이르렀다.
내 손과 눈이 그렇게 경험을 정의하니까 더 이상 그 틀 밖으로 나오기 힘들었다.
그래서 눈과 손이 짜놓은 프레임 속에서 아이패드를 오랫동안 소비했다.
의당 아이패드는 비주얼 리더기였고, 비주얼이 아닌 것에 대해선 주의력을 소진시키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름은 바뀐다.
어느 날 아이패드를 다른 결로 다루고 싶어졌다.

아이패드로 창작과 비평을 읽는다.
아이패드로 문학과 동네를 읽는다.

아주 오랜만에 문예지를 아이패드로 열어보니 느낌이 새삼스럽다.
그야말로 아이패드는 문예지 리더기로 제격이란 내 안의 외침.

넘기지 않고 오랫동안 한 페이지 위에서 머무르는 시선.
한 페이지도 아닌 한 문장 위에 고정된 호흡.
그렇게 오랜 시간이 경과되는 태블릿 디바이스 상의 한 화면.
정지화면으로서의 태블릿.

난 그런 태블릿을 원했던 것 같다. 휙휙 넘기지 않는, 화려하지 않은,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래서 안정감이 느껴지는, 그런 안정감 속에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태블릿 디바이스는 내게 사색의 도구이고 싶었던 듯..

그래서 나는 아이패드로 문예지를 읽는다.
읽고 나서 읽고 싶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역시 난 생각하고 움직이기 보단, 움직이고 난 후에 생각을 하는 스타일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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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폰 :: 2016/10/26 00:06

파리바게뜨(일명 '파바')에 들어갔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려고 하는데 줄이 길다.
할 수 없이 긴 줄 뒤에 늘어선다.

줄을 서있는 상황 속에서
문득 앞에 서있는 사람의 폰을 무심코 보게 된다.
폰에 떠 있는 바코드를 본다.
저 바코드를 카운터에 내밀면 바코드 리더기로 읽혀지겠지.

폰은
이제
언제 어디서나 뭔가 기능을 작동시키는 흐름으로 가는 듯 하다.
폰은 기능 마법사인가..

폰 안에 뜬 바코드
폰 안에는 항상 뭐가 떠 있다.
항상 뭐가 떠 있다. 항상 그걸 보니까 항상 뭔가가 떠 있다.
항상 그걸 본다면, 수시로 그걸 들여다 본다면..

그렇게 사람의 시선과 관심과 주의력을 흠뻑 흡수하고 있다면..

도대체 폰은 무엇인가.

폰은 폰을 사용하는 사람과 어떤 관계일까.
폰과 폰의 사용자를 따로 떨어뜨려 놓으면
어느 쪽의 정체성이 더 선명할까.

이미 폰에 그 사용자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면
이미 폰은 사용자 자체가 아닐까.

폰이 폰 사용자보다 더 선명한 정체성을 품고 있다면..

그 지경이 되도록
폰이 그 지경을 해내도록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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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폰 :: 2016/02/19 00:09

지하철, 버스, 거리..

폰을 보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렇게 폰 속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난 거울을 본다.

폰은 거울이다.

사람들은 폰을 갖고 여러가지 행동을 하지만
결국 하는 행동은 '나'를 보는 것으로 귀결된다.

폰 속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그런데..
거울은 그렇게 많이 볼 필요가 없는 도구이다.
그저 필요할 때 잠깐만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울을 자주 본다는 건
불안함을 의미한다.

결국 사람들은 폰을 수시로 들여다 보면서
불안을 표현한다.

그리고 표현된 불안은 폰 속에 투영되면서 또 다른 불안을 생성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불안은 폰에 대한 집착을 더욱 가중시킨다.

거울을 자주 보는 악순환 구조는 그렇게 고착화 되어간다.

세상에서 제일 많이 보급된 제품.. 거울 폰..
그건 세상에 불안이 거대한 규모로 생산, 배급, 배포, 복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불안한 만큼 거울폰을 자주 보게 되는 이 시대.
폰 속에 비친 불안한 나의 모습.
그 모습이 안정을 찾을 때, 폰은 거울이 아닌 한낱 도구로 바람직하게 전락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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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D와 시간 :: 2015/09/18 00:08

VOD를 통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되니 참 편리하다.

본방을 꼭 사수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VOD로 원하는 시공간을 설정하는 건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VOD를 즐기면서
FOD를 연상하게 된다.

Time Flow On Demand

시계바늘의 흐름
상황의 흐름
의식의 흐름
시선의 흐름

VOD는
흐름을 편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기제인 듯 하다.

나는 VOD 메커니즘을 활용해서
방송,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VOD 메커니즘 속으로 틈입해서
시간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VOD로
내가 보는 건
방송,영화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일 듯 싶다.

문명의 이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문명의 이기로 퇴보된 상황 속에 놓이면서
프리퀄이란 기제로 들여다보는 오래된 미래(=과거)를 보는 것이고
오래된 미래와 대화하면서 그 과거가 실은 미래였음을 깨닫게 해주는 도구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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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폰 :: 2015/07/20 00:00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쳐다보는 폰.

눈에 보이는 빤한 폰
그래서 폰 속 풍경은 눈에 보이는 빤한 것들 뿐이다.

빤한 폰을 가지고 다니면서
폰 속 빤한 세상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내 자신이 너무 빤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좀 불편하다.

그럴 때면
맘 속으로 또 하나의 폰을 상상해 본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폰 하나를 만들어서
그 폰 속 세상을 들여다 보고 싶고
폰 속 세상이 나로 인해 변화하고 내가 그 폰 속 세상으로 인해 변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내 주위를 가득 채워 놓고
온통 그것들에 의해서만 나의 흐름이 이뤄지는 모습으로만 일관하면
나중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듯 싶다.
눈에 보이는 건 결국 휘발될 것이고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고 그것들과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가가 관건일 텐데.


모두가 폰을 만지작 거리며 폰 속 세상에 심취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의도적으로 난 보이지 않는 내 맘 속 폰을 꺼내서 들여다 본다. 손에 잡히지 않고 명확하게 화면 속이 잘 들여다 보이지 않는 특수한 폰이지만.. 난 그 폰이 좋다. 현대 문명의 이기가 사람들을 도구화시켜 나갈수록 난 그것과 궤를 달리하는 나만의 경험을 지향하게 되는 듯 하다. 그리고 그 폰을 통해 빤하지 않은 세상을 보게 되고 그 세상 속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


나만의 히든 폰. 2~3년에 한 번씩 신규 모델을 구입할 필요도 없고, 화장실에 빠뜨릴 염려도 없고, 분실의 우려도 없다.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마음으로 꺼내서 가슴으로 들여다 수 있는 폰이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성장이 나에게 히든 폰의 존재를 알려준 셈이다. 문명의 이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그것 자체는 공허할 뿐이고 그것이 내 안의 무엇이 존재하고 그것을 어떻게 작동시키는지를 암시하는 indicator 역할 정도에 머무르면 딱 좋을 듯 하다. 결국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기술이 화려하게 진화해 나간다고 해도 결국 내 맘 하나를 당해낼 수는 없는 것니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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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 의인화 :: 2015/07/15 00:05

책상은 도구다.
책을 읽기 위해, 공부를 하기 위해, 컴퓨터 작업을 하기 위해 책상을 사용한다.

책상은 도구다.
책상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목적이 존재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책상을 사용한다.

책상은 도구다.
책상은 도구 사용자에 의해 쓰여지고 컨트롤되는 존재이다. 물론 도구가 도구 사용자를 지배하는 경우도 발생하긴 하지만..

그런데..
어느 날 책상을 도구가 아닌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 존재로 규정하고 그런 관점으로 책상의 모든 시간을 예측하고 규정하기 시작해본다면 어떨까. 어떻게든 책상의 마음을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그 마음의 경로를 이해하고 따라가 보려고 애를 쓴다면.

책상은 불현듯 생명을 부여 받게 되지 않을까. 책상을 생명체로 간주하는 도구 사용자의 존재가 잠들어 있던 책상을 거대한 잠에서 깨어나게 하진 않을까. 그리고 도구는 도구 사용자와 특정한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지 않을까. 도구 사용자의 집요한 소통 노력이 결국 도구와 도구 사용자를 연결하는 '언어'를 탄생시키지 않을까. 언어가 탄생하는 순간 도구는 생명체로서의 입지를 부여 받게 되는 건 아닐까.

나. 생명체.
나란 존재도 결국 그런 식으로 생명체가 된 건 아닐까.
생명의 메커니즘이 만약 그런 것이라면 우린 지금 무수히 많은 생명 창조의 가능성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도구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을 지속하다 보면 생명은 특정 존재 안에 내재하기 보단 존재와 존재 간의 연결 고리 속을  흘러 다니는 혈액과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생명은 흐르는 것이고 난 단지 생명이 흘러 다니는 파이프라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도구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발굴하는 놀이.
잠겨진 비밀 코드에 접근해 나가는 설레임이 존재하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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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 :: 2015/07/13 00:03

망치를 든 사람에겐 모든 게 못으로 보일 수 있다.

도구는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도구남용의 경향을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루는 망치만 들고 생활해 보는 거다. 
세상 모든 게 못으로 보일 것이다.

다음 날은 카메라만 들고 생활해 보는 거다.
세상 모든 게 피사체로 보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도구남용을 의식적으로 즐겨보면,
도구 남용의 폐해가 아닌 도구 남용의 미학을 느끼게 될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을 수시로 변신시키면서
세상에 투영된 내 자신의 모습까지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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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운반 :: 2015/06/22 00:02

인간을
'자본을 실어 나르는 vehicle'로
간주해 볼 수도 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든, 적게 버는 사람이든
돈과 관련된 뭔가를 하는 사람은 자본을 실어 나르는 운반도구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다.

돈은 사람 안에 축적되지 않는다.
결국 사람으로부터 사람으로 돈은 이동한다.
끊임없이 유동하는 자본의 흐름 속에서
사람은 그저 컨테이너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자본을 끊임없이 어디론가 실어 나르면서
그런 행위를 하는 자신을 제대로 지각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계속 흐릿해져 갈 것이다. 존재가.

운반도구로서의 삶.
자본의 운반수단으로 작동하면서 정작 자신은 흐릿해져 가는 존재.

돈을 많이 벌어서 그걸 기뻐하고
돈을 못 벌어서 그걸 슬퍼하고
돈에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것은 '인간소외'를 몸소 실천하는 것일 텐데.

허상이 실체를 실어 나르면서
나는 실체다. 난 실체를 많이 갖고 있어서 좋다. 난 실체를 많이 갖고 있지 못해서 서글프다.
이렇게 얘기하면 허상은 더욱 허상으로서의 삶을 공고히 하는 것이겠다.

자본운반의 도구로서의 삶.
그 삶의 끝에서 그런 삶을 살았다는 것을 뒤늦게 인지하게 되면 얼마나 슬플까.

운반하면서 운반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로봇과도 같은 운반의 삶에 대해 '나'만의 시각을 견지하고
그 삶을 '나'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기만 해도
숨통은 조금이나마 트일 수 있을 듯 하다.
그렇지 않다면 운반도구로서의 삶이 너무 안타까우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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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는 도구이다. :: 2014/08/08 00:08

질문을 얼마나 자주 하는가?
질문에 의문사가 얼마나 많이 포함되어 있는가?

why
what
who
where
when
how

의문사가 많다는 건 편견 없는 호기심을 잘 유지한다는 걸 의미한다.
특정 답변을 암시하는 건 오염된 질문이다.

의문사를 많이 품다 보면 철학을 가까이 하게 되고
의문사를 많이 떠올리다 보면 과학을 가까이 하게 되고
의문사를 많이 접하다 보면 전략을 통찰하게 되고
의문사를 갖고 놀다 보면 나를 더욱 많이 알 수 있게 된다.

목적이 무엇이든
지향점이 어디이든
의문사만 잘 활용하면 그것에 근접할 수 있게 된다.

의문사는 매우 강력한 도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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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dge | 2014/08/08 17:3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의문사와 울림있는 단어들과의 연결이네요~^^
    좋은글 항상 눈팅만 하다 오랜만에 답글 남깁니다. 잘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4/08/11 09:24 | PERMALINK | EDIT/DEL

      의문사를 품고 생활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많아지게 되는 듯 합니다. 질문이 많아지면서 생각도 깊어지는 것 같구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여~ ^^

  • 박주형 | 2014/08/12 00:0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의문사가 없다는 건 편견 없는 호기심을 잘 유지한다는 걸 의미한다." 가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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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의 함정 :: 2014/01/24 00:04

"우주의 시초는 무엇이었을까?"란 질문.

인간이 편의상 만들어낸 도구인 '시간'을 전제로 한 질문이 아닐까?
시간은 도구일 뿐 그게 도대체 뭔지에 대한 이해는 너무도 부족하다.
그런 상황에서 우주의 시초를 논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우린 '시간'을 넘 당연시 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뭔가를 편의성 도구로 사용하는 것과 뭔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유를 펼치는 것은 완전 다른 얘기다. 시간을 도구 관점에서 야무지게 활용하는 것은 무난하겠으나, 시간에 대한 철학/과학적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간을 전제로 뭔가 거대한 모델을 구성하는 것은 사상누각을 쌓을 우려가 충분하다.

'시간'
일상 속에서 너무도 쉽게 쓰여지고 있고,
그 정체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는 매우 요상한 도구이자 개념이다. 
시간은 거대한 함정을 곳곳에 숨겨 놓고 우리를 넘어뜨리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시간에서 도구적 기능 이외의 거품을 말끔히 제거하고 시간을 바라보도록 하자.  그럴 경우, 시간에게 우주의 시초를 기술하는 개념적 기반이 될 자격이 여전히 존재할까?  '시간'의 정체가 불투명할 때, 우주의 시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될까? 만물의 근원은 무엇일까? 시간의 흐름 자체가 사고에서 배제될 때 만물을 구성하는 원소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주의 시초를 찾는 탐구는 시간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이 아닐지.

시작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쿨하게 인정하는 순간,
만물의 근원이나 만물을 구성하는 원리를 모델로 규명하는 지난했던 과정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수도 있다. 현재의 모델링은 마치 양파껍질 까기와도 같다. 뭔가를 찾아내면 또 다른 뭔가가 나타나고 또 다른 뭔가를 규정하려 들면 다른 뭔가가 튀어 나온다. 그런 프레임 속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모형을 도출한다는 건 참 난해하다. 근원에 근접하기 위해선 접근력이 뛰어난 프레임을 설정하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아니면 아예 근원에 다가가려는 노력 자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대안적 방향성을 도입하던가.

"왜 존재하는가?"란 질문.  존재와 이유가 하나인데 그것을 분리해서 묻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시초는 무엇인가란 질문도 마찬가지다. 우주와 시초를 분리할 수 없다면 그것을 나눠서 질문을 구성하고 있는 것 자체가 모순이란 얘기다.

원래 하나였던 존재와 이유를 분리해서 둘 다 오리무중으로 만들어 놓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분화시켜 나가는 모습.  분리 이전 상태로의 회귀를 통해 질문의 경로를 재설정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우주의 시초는 무엇인가?"란 질문 대신
"우리가 임의로 분리해 놓은 개념들은 어떻게 합쳐져야 하는가?"란 질문을 던져 놓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차분히 정리해 나가다 보면 새로운 질문이 탄생하게 되지 않을까? ^^



PS. 관련 포스트
존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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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의 함정 :: 2014/01/17 00:07

'디테일은 힘이다'란 말엔 힘이 있다. 굳이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디테일에 강하면 뭔가를 작동시키고 뭔가를 성취하는데 있어서 남다른 역량을 발휘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쉽다. 디테일과 힘은 코드가 서로 맞아 보이는 측면이 있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디테일에 강하다는 것이 꼭 미덕일 수만은 없다. 세상은 수많은 디테일로 이뤄져 있다. 하다 못해 PC질 하면서 수시로 만져대는 마우스만 해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름 깨알 같은 디테일이 숨겨져 있다. 뭐든 까보면 디테일이다. 세상에 널린 게 디테일인 것이다.

널린 게 디테일이라고 볼 때, 디테일에 강하다는 건 엄청난 자원 투입을 특정 포인트에 집중적으로 가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세상에 널린 게 포인트인데 특정 포인트의 디테일을 챙긴다는 것. 디테일에 강하다는 건 엄청난 선택을 하는 것이고, 그 선택이 만약 잘못된 것이라면 디테일은 힘이 아닌 재앙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디테일에 강하다는 것은 선택한 포인트가 매우 적절해야 함을 전제로 깔아야 한다. 그 전제가 무너지면 디테일이고 뭐고 말장 꽝이다.

디테일에 강한 것을 섣불리 미덕이라 믿지 말고, 디테일이란 단어 속에 숨어 있는 커다란 함정을 직시해야 한다. 디테일이란 단어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영역에 대한 디테일인가?란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는 그 영역에 내가 보유한 상당량의 자원을 아낌없이 투입할 수 있는가?  무엇을 근거로 그런 엄청난 투자를 단행해야 하는가? 그것이 헛다리였음이 밝혀질 때 나는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가?  뭐 이런 식으로 '디테일 챙기기'란 거대한 투자를 단행하기 전의 출사표가 나름 심각한 어조로 작성될 필요가 있단 얘기다.

디테일이란 단어를 연상할 때 대개 자신의 약한 디테일을 떠올리며 모호한 부채 의식을 갖게 되는데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디테일에 약한 건 당연한 것이다. 세상에 깔린 게 디테일인데 그것에 어떻게 강할 수 있겠는가?  모든 디테일에 강하다면 그게 어디 인간인가? ^^

사람은 태생이 디테일에 약할 수 밖에 없다. 디테일에 강하다고 해봐야 고작 몇 가지 밖에 안 되는 게 자연스럽다. 문제는 디테일이란 단어의 의미를 명확히 정의하고 내가 챙겨야 할 디테일을 합리적으로 선정하지 않고 쓸데없이 단어의 표피적인 결에만 몰입한 채 '디테일'이란 단어를 끌어안고 머나먼 삼천포행 열차를 타고 봉창 두드리는 여정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디테일에 대한 스탠스를 명확히 하자.  디테일은 일종의 깊은 함정이다. 한 번 빠지면 나오기가 어렵다. 투자 측면의 용단이 필요한 독이 든 성배와도 같은 대상이다. 디테일을 함정으로 정의할 것인가? 아님 시의적절하게 쓰고 버리고를 반복하는 스마트 툴로 자리매김시킬 것인가?  그건 디테일이란 단어(도구)에 대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




PS. 관련 포스트
전체를 머금은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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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의 악보 :: 2013/10/28 00:08

피아노를 듣는 시간
알프레트 브렌델 지음, 홍은정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알파벳으로 글을 읽는 것과 단어로 글을 읽는 것. 그리고 문장으로 글을 읽는 것. 그리고 문단으로 글을 읽는 것. 그리고 그 이상의 덩어리로 글을 읽는 것.

결국 패턴의 문제다. 세상을 읽는 패턴의 크기, 넓이, 깊이가 세상을 읽는 힘을 좌우한다. 이 책을 통해 포괄적 패턴 보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지하게 된다.

피아노를 논하는 대가의 책. 나열되는 단어들에서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언급되는 키워드들이 일종의 생명력을 갖고 다른 키워드와 연결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상호작용의 향내가 맡아진다.

아래 단어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책을 읽는 느낌이 참 감미롭다. 대가의 따뜻한 시선이 단어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따뜻한 화음, 따뜻한 단순함, 따뜻한 평형, 따뜻한 리듬..

A 화음, 악센트, 시작, 터치, 아르페지오, 녹음
B 바흐, 밸런스, 편곡, 베토벤, 브람스
C 칸타빌레, 캐릭터, 쇼팽, 크레셴도
D 디미누엔도, 지휘자, 돌체
E 단순함, 앙상블, 극단
F 환상곡, 운지법, 형식
G 감성
H 하모니, 하이든, 유머, 기침
I 해석자, 해석 1, 해석 2
J 비애의 피아노
K 음향, 피아노, 피아노 협주곡, 작은 음, 작곡가, 감시, 통제
L 레가토, 사랑, 독일가곡, 리스트
M 메트로놈, 모차르트
N 기보
O 옥타브, 오케스트라
P 페달, 프로그램, 맥박
Q 평형 그랜드 피아노
R 규칙, 레퍼토리, 리듬, 리타르단도, 감동
S 스카를라티, 종결, 슈베르트, 슈만, 스타카토, 고요, 싱커페이션
T 춤, 열정, 템포, 텍스트에의 충실성, 깊은, 트릴
U 연습, 이행, 해를 입지 않는
V 변주, 소프트 페달, 다양성, 비르투오시타, 악상기호
W 작품과 인물
X 짧은 풍자시
Y 윽!
Z 연관성


뭔가에 통달하면 뭔가의 주변을 자욱하게 형용하는 키워드들의 구름이 형성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구름의 형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할 때 하나의 세계가, 하나의 우주가 약동하게 되나 보다.

그리고,
뭔가에 통달하면 많은 것들이 악기가 되어주는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피아노만 피아노가 아니다. 컴퓨터 자판이 피아노일 수 있는 것이고, 컴퓨터 마우스가 드럼일 수 있는 것이고, 핸드폰이 바이올린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가?  나의 악기에선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가? 나의 악보엔 어떤 키워드들이 자욱하게 서려 있는가? 그 키워드들은 나를 어떻게 규정하고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을까? 나는 결국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어떤 존재로 진동하고 있는 것일까?

알프레트 브렌델의 '피아노를 듣는 시간'
책을 읽은 것 같다기 보단,
대가의 악보에서 우러나오는 향을 들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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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채기와 악기 :: 2013/08/30 00:00

지인 중에 매우 독특한 재채기 소리를 내는 자가 있다.
에에~~취이~~ 에에~~ 취이~~

그 재채기 소리엔 그 사람의 성격과 스타일 등이 묘하게 포함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퍼스낼러티, 세계관이(?^^) 담긴 듯한 재채기 소리를 들으면, 인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악기인 거구나란 생각이 든다. 자신만의 멜로디, 리듬, 에너지를 가진 악기라고나 할까.

나는 악기이다.
내가 숨을 쉬는 것은 일정한 리듬을 타고 공기와 소리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행위이고, 내가 말을 하는 것은 성대라는 기관을 활용하여 의도한 의미를 음성으로 전환시켜 표출하는 것이다. 내가 걷는 것은 신체의 다양한 기관들을 활용하여 일정한 보폭과 속도를 내면서 '걸음'이란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것이다.

나는 악기인 동시에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이다.
나는 '나'라는 악기가 갖고 있는 물리적 한계 내에서 주어진 기능을 활용하며 연주한다. 또한, 악기가 갖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선 연주를 상상하기도 한다. '나'라는 악기가 갖고 있는 물리적 한계는 '나'라는 연주자의 상상을 자극하고, 나는 한계로 나를 연주하고 상상으로 나의 연주를 변주한다.  

삶은 한 편의 뮤지컬 퍼포먼스이다.
나는 악기로 작동하면서 연주자로 살아간다. '나' 악기는 살아 숨쉬는 기관이고, '나' 연주자는 상상하는 의도체이다. 나는 나의 안에 가둔 기능과 나의 밖에 감춰진 기능을 '나'라는 플랫폼 위에서 명시화하고 암호화한다.

에에~취이~~에에~~취이~~
단순한 재채기 소리를 듣고 나는 내 자신이  '악기 & 연주자'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보면 나의 블로그는 일종의 악보인 건가? ^^



PS. 관련 포스트
인간은 도구다. 하지만 도구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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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3/08/30 01:0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도 음악을 하는 사람 중 1인으로서 공감이 많이 가는 글인데요, 한계와 잠재력 간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일이 음악이라고 규정할 때 자아를 비유하는 개념 수단 중 '악기'만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온 지 쫌 됐지만, 벅샷님께 소개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네요. 제 미국 데뷔 싱글입니다. 들어주세요 ^^
    http://www.youtube.com/watch?v=A9-XMimTSrI

    • BlogIcon buckshot | 2013/08/30 21:58 | PERMALINK | EDIT/DEL

      악기이면서 연주자라는 포지션. 참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데뷔싱글. 넘 멋지십니다. ^^

  • 오리 | 2013/09/05 15:0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읽고 보니 대학교 써클 때 피아노 잘치고 나름 이쁘장했던 여자애가 떠오르는군요. 정확히 에이치 발음으로 그것도 다소곳하게 재채기하던.... 근데 어렸을 때부터의 다년간의 훈련에 의한 것이 아니었는지 살짝 의심해 봅니다.ㅎㅎ 즐거운 오후 되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3/09/05 20:56 | PERMALINK | EDIT/DEL

      아. 저도 가끔 그런 의심을 하게 하는 재채기를 들을 때가 있어요. 참 재미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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