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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과 맥락 :: 2015/12/04 00:04

밤에 VOD로 영화, 드라마를 자주 본다.

그런데 주로 밤에 보다 보니 보면서 자주 졸게 된다. 

졸다가 깨어서 보다가 다시 졸다가

10분 보다가 1분 졸다가 20분 보다가 3분 졸다가
10분 졸다가 2분 보다가 20분 졸다가 1분 보다가

졸음과 깨어있음의 다양한 조합으로 VOD를 보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내용을 온전히 따라가지 못하고 전체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내용을 다 따라가지 못하고, 맥락을 놓치고, 내 기억 속에서 스토리라인이 군데군데 끊어져 있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한 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그 동안 너무 밀집된 스토리라인의 흐름 속에서 내가 영화,드라마를 봤던 건 아닌지.
너무 밀도 높은 맥락 만을 편하게 여기고, 스토리라인이 아주 희미하게 이어지거나 많은 지점에서 단절된 채 자유로운 플로우로 전개되는 이야기의 흐름을 왜 어색하게 생각해 왔던건지.

영화/드라마로부터 나를 향해 일방적으로 주입되어 들어오는 스토리라인을 무방비적,수동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꽉 짜여진 이야기의 구조나 흐름을 자유롭게 해체하고 이야기의 구성 요소를 선별적으로 내가 수용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시퀀스로 재조합될 것이다.

꽉 짜여진 스토리라인을 주로 접하다가
듬성듬성 성긴 스토리라인을 접하게 되니

스토리를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을 만난 느낌이 들고
스토리를 대하는 태도는 정말 다채로워질 수 있겠다란 배움을 얻은 듯 하다.

앞으로도 밤에 VOD를 즐기면서 계속 졸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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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마의 묘미, 오프라인 :: 2013/10/04 00:04

크레마는 와이파이를 켜놓으면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는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외부에서 크레마로 독서를 할 때는 와이파이를 꺼놓는 습관이 생겼다.

휴대용 디바이스를 사용하면서 와이파이를 꺼놓는다..

이거 참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폰/태블릿의 경우, 온라인 접속이 끊어지는 것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상황인데 반해 크레마는 와이파이 오프 상태가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깜박임이 심해서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는 것도 모자라서 와이파이를 꺼놓지 않으면 배터리 조기 방전의 압박까지 받는 상황에 화가 나기 보다는 그저 그런 제약 조건들을 포근하게 받아들이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게 살짝 재미가 있다.

크레마를 사용하면서 Always OFF의 미학을 배운다.

온라인에 수시로 접속하면서 나의 존재를 접속감을 통해 확인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자세를 크레마를 통해 몸에 붙이게 된다. 새로운 e북을 다운로드 받을 때에만 온라인에 접속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OFF 모드에서 차분하게 책을 감상하는 모드. 그야말로 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 할 수 있겠고, 섣불리 온라인 접속을 시도하지 않는 안정적인 심리상태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오프라인 상태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디바이스를 몸에 붙이고 살아간다.

새로운 디바이스는 그것에 내재한 DNA가 자연스럽게 디바이스 사용자의 몸과 마음에 이식되기 마련이다. 나는 크레마를 사용하면서 크레마가 갖고 있는 속성을 일상으로 초대하게 되고 그런 과정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크레마에 내재한 태도를 읽게 된다. 크레마는 나에게 접속으로부터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접속으로의 도약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나는 크레마로 책을 읽는다.  
그리고 크레마를 읽는다. ^^



PS. 관련 포스트
크레마 샤인으로 독서하기
전자책과 주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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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절 시대 :: 2012/08/22 00:02

초연결 시대.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케 해주는 각종 스마트한 도구가 초연결 시대를 리드하고 있다.

그런데..
실은 초연결 시대가 도래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연결이 인간 도구에 의해 가시화되고 있을 뿐, 연결의 강도가 예전보다 강해졌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연결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뭔가가 연결되는 만큼 뭔가는 단절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인간의 인위적인 조작에 의해 발현된 것이라면 더더욱 제로섬 게임의 굴레에서 벗어나긴 힘들다. 인간의 대표적 특기 중의 하나가 개선을 빙자한 개악, 발전을 가장한 퇴보 아니던가? ^^

표면적으로는 초연결 시대가 도래한 것 같으나 실은 초연결 시대와 함께 초단절 시대 또한 도래했다. 인간의 관점에서 말이다. 연결이 촘촘해지는 만큼 단절은 심화된다. 인위적 관점에서 연결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건 연결 급증의 에이전트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에이전트가 연결을 주도하는 상황에선 인간은 뒷전으로 물러나 연결을 간접 경험하고 있을 뿐, 실질적인 연결 경험은 에이전트가 도맡아서 하고 있다. 페이스북 플랫폼 상에서 가공적을 창조된 나의 프로파일이 또 다른 가공의 프로파일과 대화하고 있는 것이지 나와 타인이 직접 대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페이스북 유저는 페이스북이 정의한 게임 룰 속에서 플레이하는 일종의 로봇이다. 웹은 로봇과 로봇이 커뮤니케이션하는 공간이지 인간과 인간이 대면하고 오감을 교감하는 공간은 아니다.

연결의 접점이 늘어나고 연결의 빈도가 증가하는 건, 인간이 로봇이 되어 로봇 조종 플랫폼 상에서 무기력하게 플레이하는 기계적 노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로봇 모드에선 인간 모드에서보다 확장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나, 확장성을 얻은 대가로 직접성을 잃어버린다. 직접성은 연결 에이전트가 전담하고 인간은 에이전트 뒤에 숨어 에이전트가 제공하는 연결선에 의존하여 간접성의 향이 그윽한 기호,신호를 연결선에 띄워 어디론가, 어느 에이전트에겐가 보낸다.

도구에게 직접성을 전가할 수록 인간은 간접성의 향에 취해 흐릿해진다. 흐릿해지면 질수록 인간은 자신의 흐릿함을 인지하기가 힘들다. 초연결의 마력에 경도된 나머지 초단절이 동시에 동일한 세기로 진행되고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초연결의 시대에서 인간의 정체성은 명료하게 의도한 단절의 합으로 정의될 수 있다. 초연결이란 바다 속에 사는 인간이란 해면동물은 자신의 몸에 부착된 연결선에 의존한 채 연결을 호흡하며 살아간다. 연결을 호흡하다가 때때로 호흡을 중단하고 맞이하는 단절의 순간, 흐릿한 자신이 어떤 결을 갖고 있는지 어떤 겹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희미하게 나마 감지하게 된다. 내가 누군지 알려면 내가 어떤 대세를 거부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나는 어떤 연결을 거부할 수 있는가? 나는 어떤 연결을 의식적으로 끊고 단절을 즐겨라 호흡할 수 있는가?

모두가 초연결의 세상을 흐릿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흐릿해져 가기 싫다면 초연결 세상과 초단절 세상을 냉탕-온탕 드나들 듯 오갈 수 있어야 한다. 초단절 세상에 머무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초연결 세상 속에서 아무런 체취도 뿜지 못하는 비존재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초단절 시대. ^^




PS. 관련 포스트
무엇이 희소한가?
접속감과 세(勢)
극세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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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uminsem | 2012/08/22 07:13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기술이 발전할수록 파생실제가 실제를 대체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도가 영토를 대체하고 통장에 찍히는 수치가 실제 돈을 대체하듯 인간관계도 소셜미디어라는 파생실제로 대체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언뜻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현실에서 맺는 관계는 파생실제가 아닌가? 오프라인에서도 학교와 같은 조직을 통해 에이전트가 요구하는 인간상을 길러내고,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나 학교에서의 추억이란 것도 어쩌면 게임의 룰 안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는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초연결은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의 파생실제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초단절은 실존적 사유와 경험의 순간으로 나누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8/26 10:40 | PERMALINK | EDIT/DEL

      추상이 실재를 뒤덮어가는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 심화될 것 같습니다. 추상의 위험성을 잘 이해하고 추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추상과 잘 노는 법을 몸에 익혀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

  • BlogIcon 아크몬드 | 2012/08/22 09: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히려 '초연결 도구'가 있는 세상이라 더욱 단절된 느낌을 받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8/26 10:40 | PERMALINK | EDIT/DEL

      예, 연결이 단절을 더욱 명확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단절과 연결은 공생 관계인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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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세관심 :: 2012/05/11 00:01

스마트폰은 관심을 분절화시키고 커스터마이징시킨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나의 관심을 극도로 세분화시키고 세분화된 관심을 철저히 나의 취향에 맞게 최적화시키게 된다. 예전엔 1시간~2시간을 진득하니 투입하던 관심이 이젠 1분 단위로 쪼개져서 운용된다.

극세화된 관심은 매우 쉬크한 태도를 취한다. 사람과 같이 있어도 사람에 관심을 그닥 많이 주지 않고 철저히 나의 관심을 끄는 정보에만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회의를 해도 자신에게 관심가는 정보에만 귀를 기울이고 나머지 정보는 모두 스킵한다.

스마트폰은 수많은 연결을 가능케 한 동시에 심도 깊은 단절을 리드하고 있다. 연결은 증식에 증식을 거듭하고 있으나 각각의 연결점들의 농도는 매우 희박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끊어짐 상태로 지내면서 간헐적인 연결이 일어날 뿐이다. 연결 심화 & 단절 심화.

극세화/이기주의적 관심이 심화될 수록, 문자의 힘은 드세져만 간다. 면대면 회의 대신 이메일로 일을 하고 면대면 대화, 음성통화 대신 메신저 대화가 일상을 점유한다. 그게 극세화된 나의 관심의 이기주의적 스탠스에 적합한 툴이기 때문이다.

심이 분절화될 수록, 관심의 대상인 인간도 분절화된다. 나는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가? 사람? 아니다. 나는 극도로 세분화되고 나의 순간적 관심 취향에 부합하는 세포 레벨의 극세화된 존재와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결코 사람이라 볼 수는 없다.

내가 보는 드라마, 내가 읽는 책, 내가 먹는 음식에서 나의 취향에 부합하는 것만 취한다면 드라마,책,음식은 해체 후 재조립되어야 한다. 관심/취향은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관심은 드라마,책,음식 뿐만 아니라 사람마저도 재단하고 있다.

관심 기반의 연결은 관심 기반의 단절의 이면이다. 관심을 따라 연결되고 관심을 따라 단절된다. 단절 기반의 조건부 연결. 그게 연결의 본질이다. 연결성이 좋아진 게 아니라 on-off의 자유도가 높아진 것이다. 사람도 관심 앞에선 철저히 해체된다.

나는 누구인가? 
극세관심의 총합인가? 

그럼 나는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가?
나의 극세관심에 적합한 분절화된 극세모듈들인가?

관심이 세분화되고 세분화된 관심의 이기주의가 창궐하게 되고 있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인간은 과연 무엇이 되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



PS. 관련 포스트
바깥, 알고리즘
감정과 관심을 지불하다
가치 에너지 준위차에 의한 '관심'의 이동
주목,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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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5/12 00: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단절 기반의 조건부 연결" 진짜 어렵고 오묘한 용어네요 ㅎㅎ 이런 스타일의 철학 세계를 여기 말고 어디서 또 경험해볼 수 있을까요? (군대 땜에) 심신이 지대로 지쳐가는 와중에도 뚫어져라 집중하게 만드는 흡입력, 정말 닮고 싶습니다. ^^ 주말이라 정말 다행인 것 같은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2/05/12 15:44 | PERMALINK | EDIT/DEL

      저도 잘 모르고 적는 글입니다. 잘 몰라서 적는 것이고 적다 보면 좀더 잘 이해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 항상 응원해 주시는 것이 제겐 무한의 에너지 공급처럼 느껴지구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 더러운곰 | 2013/09/01 11: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심심하면 이곳에 들러 포스팅을 읽곤 합니다. 이렇게 댓글을 달기는 첨인대... buckshot님의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포스팅들이 자꾸 저를 이끄는거 같네요. 연결성이 아닌 on-off의 자유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9/01 16:38 | PERMALINK | EDIT/DEL

      댓글 주신 덕분에 저도 다시금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 포스트는 제가 나름 아끼는 포스트인데 댓글 주셔서 너무 기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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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감과 세(勢) :: 2011/10/10 00:00

접속은 무엇인가에 연결되는 것이다. 접속을 통해 연결감을 느낄 수 있으려면, 무엇인가로부터 단절되어 있어야 한다. 접속은 단절을 전제할 수 밖에 없다. 접속을 통한 기쁨과 단절을 통한 기쁨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접속하고 싶어서 접속을 했는데 그 접속을 통해 기쁨이 충만하지 않다면 그건 단절의 결핍으로 인한 접속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단절이 없는 접속은 불면의 밤을 끝없이 헤매는 것과 같다. 확실한 단절이 있어야 접속감은 극대화된다. 깊은 잠과도 같은 단절이 충만할 때 접속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접속을 즐길 수 있으려면 단절의 감미로움을 맛볼 줄 알아야 한다.

손자병법 兵勢(병세)편의 말미에 아래와 같은 말이 나온다.
故善戰人之勢, 轉圓石於千之山者, 也.   고선전인지세, 여전원석어천인지산자, 세야.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사람의 싸움의 세는 마치 둥근 돌을 천 길이 되는 급경사의 산에서 굴러 내려가게 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곧 세다.

접속감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일종의 勢(세) 형성이다. 세상엔 수많은 세가 존재한다. 접속과 단절은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흘러 다니기 마련이다. 접속을 즐기면서 단절을 살짝 그리워하고 단절을 즐기면서 접속을 살짝 그리워하는 자는 접속-단절의 勢(세)를 향유하는 자이다. 접속과 단절은 결국 하나라는 것. ^^




PS. 관련 포스트
좀비, 알고리즘
real-time web의 늪
휴식감과 세(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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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희소한가? :: 2010/07/21 00:01

희소성은 경제에서만 주목 받는 개념이 아니다.
개인 정체성 관점에서도 희소성이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띤다.
나를 둘러 싼 자원 중에서 희소한 것이 무엇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연결 시대엔,
'단절'이 최고의 희소자원이다.
넘쳐나는 연결 속에서 '단절'을 잘 다뤄야 유니크해질 수 있다.
내가 선택하는 '의식적인' 단절이 나를 결정한다. 언제,어디서,왜,무엇을,어떻게 단절할 것인가?


스마트 디바이스의 시대엔,
'스마트 핸드'가 최고의 희소자원이다.
디바이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디바이스 중독을 통제할 수 있는 '손'의 힘이 유니크함을 만든다.
언제,어디서,왜,무엇을,어떻게 손으로 다룰 것인가?


혁신 로망의 시대엔,
'운영에 대한 프라이드'가 최고의 희소 자원이다.
너도나도 혁신을 부르짖고, 기획에 몰입하고 있을 때,
자잘자잘한 운영의 소중함에 눈을 뜨고 소박한 운영 속에서 통찰을 갈고 닦는 기회가 분명히 존재한다.



외모 지상주의 시대엔,
외모에 대한 끝없는 결핍감을 생까는 '외모튜닝 무감증'이 최고의 희소자원이다.
외모지상주의의 벼랑 끝으로 줄달음치는 레밍의 무리에서 홀연히 떨어져 나와
내추럴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뿜어내는 무모함.


스펙의 시대엔,
'자존감'이 최고의 희소자원이다.
표면적 성공의 크기를 서로 비교하려 드는 '타존' 만땅의 시대에
'존재(being)'의 과정 자체에 몰입(flow)하는 '자존'의 면모는 우아한 희소성을 띠게 마련이다.



대중성을 확보한 자원의 이면에서 유니크한 기운을 뿜어내는 희소자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희소자원을 어떻게 정의하고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개인 경영의 최대 화두일 수 밖에 없다. ^^



PS. 관련 포스트
자존, 알고리즘
타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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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ynamic | 2010/07/21 08:0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단절과 자존감이 희소자원이다는 말이 와 닫네요.
    하나추가요. 초고속화 시대에 여유도 희소자원인 듯 합니다.
    또하나. 물질의 시대에 사랑도 희소자원인 듯 합니다.
    (현시대는 쌀이 부족한게 아니라 사랑이 부족한 듯)

    • BlogIcon buckshot | 2010/07/21 09:58 | PERMALINK | EDIT/DEL

      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여유.. 사랑.. 참 희박해져 가는 것들인 것 같아요. 현 시대는 쌀이 부족한 게 아니란 말씀이 참 와닿습니다.. ^^

  • p | 2010/07/21 12:4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몰입은 언제나 희소자원이면서 궁극(?)의 자원이 아닐까요? ^^

    • Dynamic | 2010/07/21 14:28 | PERMALINK | EDIT/DEL

      "몰입의 부족" 절대공감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07/22 09:59 | PERMALINK | EDIT/DEL

      몰입에 대한 포스팅을 별도로 한 번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

  • BlogIcon OnTheWheel | 2010/07/21 16: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자존감... 어쩌면 점점 희소해져가는 인간적 희소자원(위에 분이 말씀하신 사랑, 이타심, 배려...)을 되찾기 위한 출발점인지도 모르겠네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면 타인도 사랑할 수 없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면 타인도 소중히 여기지 못하니까요. 걸핏하면 흔들리는 이빨처럼 자존감이 위태로운 제게는, 공감가는 말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07/22 09:59 | PERMALINK | EDIT/DEL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금번 포스팅으로 큰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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