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에 해당되는 글 6건

구독 욕구 :: 2014/10/31 00:01

9월말에 우연히 아래 글을 접하게 되었다.
서투르게라도 '붉은 선'을 그어보자...그것이 창작이다


구독하고 싶었다. 이거 북마크해도 나중에 그 북마크 지점으로 찾아 들어가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다. 북마크는 일종의 박제 행위라서, 나중에 들어가야지라고 맘을 먹더라도 막상 그곳으로 들어가면 북마크할 때의 마음가짐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북마크라는 행위엔 하기 전과 하기 후의 큰 언밸런스가 존재한다는 점 때문에 이런 글은 구독이란 행위로 대응하고 싶었다.

그런데 페이지의 어디를 둘러 보아도 구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럼 나는 이걸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이 연재 글로의 접근성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 고민이 생겼다. 그런데 정확히 내가 원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보니 뭘 해도 성에 찰 것 같지가 않았다. 이렇게 흐지부지 또 하나의 인연을 놓치겠군.

그래서 할 수 없이 포스팅을 한다. 포스팅을 해 놓으면 적어도 나의 개인 아카이빙 공간 안으로 영입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다시 내 기억의 수면 위로 소환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이런 조치를 취해 놓고도 뭔가 아쉽다.

정작 구독이 필요한 페이지엔 구독 장치가 없고, 그닥 구독이 필요하지 않은 페이지엔 구독해 주세요란 애원 가득한 버튼이 난무하고. 이 언밸런스를 어찌 해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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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아크몬드 | 2014/10/31 15:4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우측의 RSS 버튼이 보이긴 합니다만..
    http://www.hankookilbo.com/rss.aspx
    신문사처럼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 정보의 경우 전체 RSS는 오히려 해악일 때가 많습니다. 원하는 카테고리나 원하는 필자의 글만 따로 RSS로 분리시켜 주는 센스가 안보여서 좀 아쉽긴 하네요.

    • BlogIcon buckshot | 2014/11/01 19:11 | PERMALINK | EDIT/DEL

      예, 정말 필요한 부분만 구독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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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감 :: 2014/05/26 00:06

TED의 어떤 동영상 강연에서 양치질을 할 때 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는 황당한 얘길 들은 적 있다. 김중혁의 '상황과 비율'이란 소설에선 비닐봉지를 터뜨릴 때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등장한다.

쾌감엔 보편적 쾌감과 개인적 쾌감이 존재하는 것 같다. 보편적 쾌감의 경우, 굳이 이 포스트에서 언급할 필요도 없이 자명하게 이해가 되겠으나,  개인적 쾌감은 그야말로 개인별 편차가 극심하게 날 것으로 보인다.

나의 경우엔, 블로깅을 할 때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블로깅을 즐기고, 블로깅을 즐기다 보니 쾌감을 이끌어내는 경험을 들여다 보게 된다. 쾌감의 메커니즘에 대해 돌이켜 보는 혜택도 얻게 된다. 단순한 소모적 쾌감과 구분되는 쾌감이 있다. 

성장의 쾌감. 

나의 모자람을 인지하면서 느끼게 되는 쾌감. 성장은 '잘난 나'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못난 나'를 인지하는 과정인 것 같다.

나의 모자람을 하나 둘 알아가는 즐거움.
잘난 내가 되지 못할 때 불안해지는 이 사회의 메커니즘과 선을 긋는 쾌감.

모두가 이 순간 쾌감을 추구하고 그것을 얻어간다. 모두가 저마다의 쾌감을 무의식적으로 정의하고 그 프레임 속에서 일상을 고착화시킨다. 블로깅은 고착화된 일상이다.  그런데, 고착화된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상이라서 고착화되어도 경화의 이슈가 그닥 크지 않다.

블로깅의 쾌감. 만만치 않은 쾌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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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와 충격 :: 2014/05/02 00:02

현대인은 스트레스를 수시로 받고 산다.  신문기사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인 '충격'도 종종 받으며 살아간다. 스트레스와 충격. 현대인의 절친이다. 현대인은 스트레스, 충격을 핵심 키워드로 지속적 RSS 피드를 충실하고 온전하게 받아보기로 작정하고 살아가는 듯 하다.

스트레스가 축적되면 만만치 않은 피로가 쌓이게 되고 그것이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충격이 누적되면 더욱 부정적인 임팩트가 몸과 마음에 가해지게 된다.

스트레스와 충격.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것일까?

스트레스의 강도와 부정적 임팩트는 철저히 수용자의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자가 스트레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스트레스는 수용자의 기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스트레스 수용자가 스트레스를 매우 부담스러워 하고 그것을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하게 되면 스트레스는 서서히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스탠스를 잡아가게 된다.  충격도 마찬가지다. 충격을 받게 되는 자가 그것을 별 거 아니라는 태도를 형성하면 충격은 미풍에 불과한 뭔가로 격하된다.

스트레스의 임팩트는 스트레스 자체에 내재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건 철저히 수용자의 태도에 의해 수위가 정해진다.  재미가 재미를 제공하는 자가 아닌 재미를 제공받는 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과 유사한 원리이다. 충격은 흡수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는 당당한 태도가 충격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시킨다. 수용자가 맘을 단단히 먹고 있으면 스트레스/충격 무력화 메커니즘을 타는 것이고 수용자가 어리버리 상태로 넋 놓고 있으면 멘붕 메커니즘을 타게 된다.

스트레스를 수용하는 자세.
충격을 수용하는 태도.

철저히 수용자의 역량에 의해 스트레스/충격의 강도와 효과가 정해지는 게임.

스트레스,충격의 주체가 누구인가?
누가 그걸 결정하는가?

바로 '나'라는 걸 망각하고 있어서 스트레스가 괴로운 거고 충격이 충격적인 거다. ^^



PS. 관련 포스트
재미와 착함
주체와 객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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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독서 :: 2014/04/30 00:00



장편소설의 초중반을 읽었다. 60~70% 정도를 읽은 셈이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로 진입하지 않고 1개월 이상 그 상태로 머물러 있다. 소설이 재미있어서 분명 후반부가 어떻게 전개될 지 매우 궁금했지만 가장 궁금한 그 지점에서 가차없이(?) 중단했다. 읽기를 중단했지만, 남은 후반부에 대한 다양한 상상이 머리 속에서 새록새록 기어 나온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주인공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해 관계의 사슬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주인공의 협력 관계에 있는 자들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주인공과 갈등 관계에 있는 자들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인물과 인물 간의 상호작용은 어떤 변수를 만들어낼 것인지, 관계의 장은 어떤 색깔을 띠며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복합적인 관계망은 어떤 방식의 결론을 낼 것인지, 소설의 결말에서 나는 어떤 메세지를 생성하게 될 것인지. 소설의 완결을 본다는 건, 어찌 보면 참으로 싱거운 이벤트가 아닌가 싶다. 굳이 소설가가 머리를 쥐어짜며 얻어낸 결과물이 나에게 적합한 엔딩이 될 수 있을지, 작가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끝 모습을 내가 시간을 투입하며 확인할 필요가 과연 있는 것인지.


장편소설을 하루 만에 내달리듯 다 읽어버리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게 나름 괜찮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계속 '읽기'로만 일관하다 보면 기계적인 리딩 머신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소설의 구조와 메세지를 음미하기 보단 종착역에 빨리 도달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나머지 여행의 향취를 충분히 만끽하지 못하고 질주하는 KTX와도 같은 모습이 되어 버리곤 했다.  달음질의 끝에서 확인하게 되는 건 상상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다소 허무(?)한 결말들. 물론 작가 입장에선 혼신의 힘을 다한 마무리였겠지만 독자 입장에선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달려왔던 길이라서 어지간해선 엔딩 신에서 흠뻑 만족하기가 여간 쉽지가 않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독자가 소설의 레일에서 이탈해서 자신 만의 노선을 따라 걸어가는 건 그닥 쉬운 일은 아니다. 자칫 실망스런 시나리오 전개에 허망하게 지쳐버릴 수도 있는 것이라서. 마치 고등학교 때 정석수학 공부하던 모습이 재현될 수도 있다. 문제를 풀다가 지쳐서 책 뒤에 있는 답안지를 슬쩍 보고 문제 풀이 방법을 의존적으로 익히던 그 시절. 실력이 늘기가 어려웠다. 문제풀이 기계가 되어 생각하면서 문제를 풀기 보다는 정해진 모범답안을 외워대는 시간들의 반복. 소설을 단선적으로 줄달음치듯 다 읽는 것은 상상력을 스스로 제한하는 독서 습관의 고착화의 길이다.


1개월의 중단 기간 동안, 나만의 엔딩이 어느 정도 형성되는 듯 싶다. 물론 작가가 정해 놓은 결말과 비교하면 매우 조악한 스토리라인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초중반을 읽으면서 이미 내 안엔 작가의 레일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나만의 서사가 천천히 움트기 시작했던 것이고 그렇게 생성되어 가는 나만의 스토리라인은 초중반을 다 읽은 시점에선, 유치하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의 색채가 입혀진 채 수줍은 듯 자신 만의 플로우를 진행한 것이다. 독자의 위치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전개시켜 온 나만의 소설 흐름을 자각하지 못하고 저자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 보편적인 소설 읽기의 양상이지만, 그건 왠지 모르게 아쉽다. 독자 참여형 소설 읽기의 방법론은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그걸 서서히 인지할 수 있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 독자는 더 이상 수동적 노선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 만의 레일을 구축할 수 있다. 특히 다양한 소설 읽기가 중첩된 스토리라인이 독자의 마음 속에 축조될 수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작품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셈. 물론 그걸 가시화된 언어 표현으로 옮기는 건 매우 어려울 수 있겠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열린 마음으로 작가가 구성해 놓은 후반부를 읽어볼 것이다. 나의 엔딩과 어떻게 다른지, 나의 결말과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지, 나는 어떤 메세지를 발신했고 어떤 메세지를 수신했는지.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다. 그게 소설의 진정한 결말이 아닐까. ^^



PS. 관련 포스트
小說三分之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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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ete, Position :: 2014/04/23 00:03

디지털 세상에선 수시로 삭제를 하곤 한다.  필요 없는 파일을 지우고 텍스트와 이미지를 지운다. 1과 0 사이에서 OnOff를 오가는 디지털 모드에선 삭제는 매우 일상적인 행위이다. 삭제를 하면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없어지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고 어렴풋이 추측한다.

삭제란 무엇일까?

삭제는 뭔가를 없애면서 뭔가를 생겨나게 하는 행위이다.  무엇을 지우면 무엇에 연관된 다른 무엇이 변형되거나 생겨난다. 지우는 건 소멸시키는 게 아니라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뭔가를 이동시키는 것이다.  만물은 정보이다. 정보는 완전 소멸되진 않는다. 형태를 바꾸거나 구성이 재편되면서 시공간 상의 좌표 점유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지 완전 없어지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이사를 하면서 책 정리를 할 때, 필요 없을 거라 판단한 책을 내버리는 행위. 그 때 그 책은 정말 나로부터 완전히 사라지는 것일까? 아무리 나로부터 멀어진다고 해도 그 책과 나와의 관계는 분명 존재하는 것일 텐데. 그 책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어느 특정한 계기가 주어지면서 문득 그 책 제목이, 책 내용이 떠오른다면 그 책은 결국 소멸되지 않았음이 입증되는 것 아닐까?

삭제를 하면서 삭제 대상으로부터의 거리를 스스로 컨트롤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실은 삭제하면서 오히려 그 대상과의 거리가 가까워질 수도 있다. 물론 멀어질 수도 있기도 하겠고, 거리가 새로운 양상으로 재구성될 수도 있다. 거리의 차원이 멀고 가까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대상 사이에 놓인 길의 결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고 여러 가지 차원이 형성되면서 어떤 차원에선 거리가 가깝고, 어떤 차원에선 거리가 멀게 형성되는 등의 다채로운 상호작용의 장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삭제는 나름 고도화된 창조 행위이다.
무로부터 뭔가를 만드는 게 어렵듯이, 뭔가를 삭제하는 것도 무가 아닌 유로부터 시작되기 마련이다. 

뭔가를 삭제하면서 뭔가가 있던 공간의 기운을 바꾸는 것.
삭제를 단순하게 생각하면 삭제의 본질로부터 멀어진다.

삭제는 1을 0으로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1을 N으로 만드는 행위다.
디지털은 1과 0을 오가는 선형적 진자 놀이가 아니라, N과 N을 오가는 다차원 네트워킹 게임이다.

삭제되면서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그것이 소멸된 게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여 새로운 포지션을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내가 삭제한 수많은 대상들.
그것이 현재 어느 시공간에 어떤 모습으로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지.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그것을 알게 해주는 좋은 도구가 블로그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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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지각력 = 공간 창출력 :: 2011/08/15 00:05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중혁 외 지음/문학동네

김중혁의 단편소설 1F/B1에서 아래 글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1F/B1의 표지판 아래에 비밀통로가 있었다. 비밀관리실은 숫자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1층과 지하 1층 사이의 어떤 곳이었고, 슬래시(/)처럼 아무도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아주 얇은 공간이었다.
...................................................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갈 때마다 저는 늘 층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을 봅니다. 표지판은 층과 층 사이에 있습니다. 1층과 2층 사이, 2층과 3층 사이, 3층과 4층 사이... 저는 그 표지판들을 볼 때마다 우리(건물관리자)의 처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특히 숫자와 숫자 사이에 있는 슬래시 기호(/)를 볼 때마다 우리의 처지가 딱 저렇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층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끼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그저 사이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하1층과 1층 사이, 1층과 2층, 2층과 3층...  층과 층 사이에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슬래시가 없어진다면 사람들은 엄청난 혼란을 겪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미미한 존재들이지만 꼭 필요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누군가 저의 직업을 물어본다면 저는 자랑스럽게 슬래시 매니저 (Slash Manager)라고 얘기할 것입니다.

사이, 얇은 공간, 그 얇은 공간의 중요성.
흐릿하게만 느꼈던 무언가에 주목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상력을 불어 넣는 능력
단서, 주목, 의미, 상상의 흐름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생성할 수 있는지.

모든 것은 결국 공간의 문제이다.
공간 속에서 틈을 발견하고 틈 속에 내재한 관계와 관계의 가능성을 파헤치는 과정
나의 블로깅도 1F와 B1 사이에 존재하는 슬래쉬(/)의 의미를 파헤치는 과정이겠구나란 생각이 든다.

의미있는 뭔가를 하기 위해 헤매는 것보다는 이미 하고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강력한 수동태적 상황 아니겠는가? 인간은 자신이 뭔가를 능동적으로 한다는 착각을 하기 마련이지만 결국 수많은 외부 입력값에 의해 끊임없이 조종당하는 삶의 에이전트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이 정말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신의 삶을 관조하면서 그것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

(시)공간 좌표 상을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인간.
(시)공간 좌표 상에 펼쳐지는 나의 이동경로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릴 수 있는가?
뛰어난 공간 지각력, 공간 해석력을 접할 때 나는 설레인다.
공간 지각력/해석력은 곧 공간 창출력이다.
김중혁의 1F/B1은 나에게 공간적 설레임을 선사하는 소설이다.



PS.  관련 포스트
시공간을 빛의 속도로 이동한다는 것.
나, 시공간, 해체
휘발, 알고리즘
시간,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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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

    Tracked from toms s | 2013/06/13 11:17 | DEL

    What's up, yeah this piece of writing Read & Lead - 공간 지각력 = 공간 창출력 is really pleasant and I have learned lot of things from it on the topic of blogging. thanks.

  • BlogIcon todaeg | 2011/08/16 19: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호호호..
    잘 지내셨죠?^^
    토마토 따느라 바쁜 척 하던 토댁입니다..^^;;
    따님은 첫 방학을 어찌 보내고 계신지??
    이제 지난 글들 차곡차곡 읽어보라구요..
    근디 글이 너므 많아요..흑 ㅋㅋ

    오늘도 즐거운 날 되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1/08/17 21:55 | PERMALINK | EDIT/DEL

      토댁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당~

      저의 지나간 글은 과감히 패쓰해주세요~

      즐거운 한 주 되시구여~

  • 마리 | 2011/12/24 08:39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해리포터가 생각나네요 ㅎㅎ

    • BlogIcon buckshot | 2011/12/24 12:59 | PERMALINK | EDIT/DEL

      시간,공간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인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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