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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 :: 2019/05/15 00:05

본다는 것은 대단히 민감한 행위이다.

단지 감각기관으로 시각 정보가 들어오는 것만은 아니어서 그렇다.

보는 것은
관점이 있다는 것이고
관점으로 보는 대상을 자신 만의 결로 편집/가공하게 된다.

정보가 있는 그대로 들어오는 게 아니고 변형된다는 것이
'본다'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정보라 여기고 무엇을 흡수하는가?

내가
나의 관점으로
나의 감각기관으로 유입된 정보를
나만의 결로 판단하고 해석하고 재단하면서
나의 정보 창고에 넣어두는 행위..

이건 나의 밖에 있던 것이 나의 안으로 들어오면서
내가 되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사실상 내가 보는 것은
또 하나의 나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본다
내 안으로 또 다른 나를 불러들이는 것

본다는 것은
내가 되어간다는 것

본다
내가 된다

나는 지금 내 블로그를 보고 있다.
내 블로그를 그저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나일 수 있다.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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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 2017/09/11 00:01

PC 모니터를 본다.
PC 모니터 속의 내용을 본다.
여튼 모니터를 본다.

모니터는 바라봄을 당한다.

모니터의 관점에서 나를 보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모니터가 주체가 되고
내가 객체가 되어서 모니터에게 관점을 부여하면
모니터는 나에 대해서 어떤 시선을 늘어놓게 될까?

이렇다 할 표정의 변화 없이
일관적이고 지루한 모습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그걸 바라보는 모니터는 어느 정도의 지루함을 느낄까.
견디고 있는 걸까. 견디지 못하고 있는 걸까.

모니터에게 관점을 부여하는 순간
모니터와 함꼐 한 시간 동안의 내 표정이 상당히 정적일 거란 생각이 든다.

모니터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계속 그 자리에 존재하면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서비스하는 것?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디자인하는 것?
이미 나는 모니터가 원하는 모습으로 디자인 되어 있는 건가?

그렇다면 지금 모니터를 바라보는 내 표정도 모니터가 의도했던 것인가?

맨날 보면서도
한 번도 그 관점에 서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그 관점에 서보려고 하니까
내가 모니터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물에 관점을 심어 놓으면
사물에 대해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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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 2017/02/10 00:00

경계라는 개념은 참 흥미롭다.

경계가 있어서 그 안에 갇히고
경계가 있어서 갇혀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계선을 넘고
경계선을 넘나들다 보면 경계선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인지하고
희미해진 경계선을 바라보며 그건 그냥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경계선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새롭게 변모하게 되고

경계를 만들고
경계를 넘나들고
경계를 허물고
또 새로운 경계를 만들고
또 넘나들고
또 허물고

이렇게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경계는 더욱 경계라는 역할에
도구적으로 충실해질 수 있게 된다.

경계라는 도구
경계라는 편의성
에 구속을 받는 동시에
그것은 도전을 받아야 한다.

구속과 도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그 속에서 경계라는 개념의 매력도는 상승한다.

경계..
오늘 나를 둘러 싼 경계는 어떤 모습인지
내가 갇혀 있는 경계선
내가 넘나드는 경계선
내가 지워나가는 경계선

그 모든 선들은
내가 누군지 편의성 있게 알려주는 정체성 포인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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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속도 :: 2016/09/07 00:07

주어진 시간에서 더 많은 거리를 이동하면 속도가 빠른 것이라 여긴다.

그럼 주어진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이동하는 건 속도가 느린 건가?

먼 거리를 짧은 시간에 이동한다는 건, 사람에게 좋은 거라기 보단 자본에게 좋은 거겠지.
먼 시간을 짧은 공간에 이동하는 것도 충분히 고속이라 봐줄 수 있는 건데 그게 딱히 자본에게 의미하는 바가 없으니 속도 측면에선 열위에 있다고 보는 것일 듯.

속도의 기준을
시간 당 이동 공간이라 보는 것도 좋지만
공간 당 이동 시간이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그렇게 되면
일종의 '역속도' 개념이 나오게 되는 건데
그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역속도 측면에서 매력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사례는 매우 많을 듯 하다.

그렇게 보게 되면
빠르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
움직임을 공간 이동으로만 한정짓는 생각의 편협함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되고..

시간 이동이 움직임의 한 유형으로 여겨질 수 있다면..

시간을 이동하는 것은 공상과학도 아니고 환상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 속에서, 내 몸 속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는 운동이다.

그런 운동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면
속도에 대한 정의는 새롭게 직조되는 것이 타당하다.

그 동안 너무 자본의 관점에서만 속도를 정의하고 발전시켜 왔던 우를 이제는 바로잡을 때가 된 것. :)





PS. 관련 포스트

자전거

걷기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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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화된 이미지의 범람 :: 2015/09/25 00:05

인스타그램은 이 시대의 문화상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일상을 압축한 해쉬태그 키워드들로 표현되는 세련된 이미지들의 범람.

이미지와 키워드 간의 절묘한 결합이 네트워크 상에서 공유되면서

시대정신은 파편화된 이미지 속에서 확 압축된 해쉬태그 키워드 속에 조각 조각 담겨지면서 관심사 네트워크 속에서 끝없이 생성,공유되고 있다.

그 안에는 사색, 깊이 보다는 순간적인 캡쳐와 감각만이 존재하는 듯 싶다. 짧은 호흡만이 버텨낼수 있는 극도로 정제된 포맷의 탄생과 그 포맷에 모여드는 수많은 사용자들의 에너지가 현재의 흐름을 가능하게 했다.

좋아요를 받기에 적합한 이미지가 계속 서바이벌하면서 복제와 증폭을 반복하고, 사용자들의 관심과 반응이 집중되는 해쉬태그 키워드들은 이제 그 자체가 매체가 되어가고 있다.

파편화된 정보가 범람하고 단편적인 시선만이 유통되는 상황.
그것들을 엮어내고 그것들의 궤적을 읽어내고 그 궤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들이 생겨난다면 지금의 파편화는 충분히 가치 있는 변화일 것이다.

범람하는 파편들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엿보게 된다.
내가 더 발전할 수 있는 자양분들이 그 파편들 속에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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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 의인화 :: 2015/07/15 00:05

책상은 도구다.
책을 읽기 위해, 공부를 하기 위해, 컴퓨터 작업을 하기 위해 책상을 사용한다.

책상은 도구다.
책상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목적이 존재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책상을 사용한다.

책상은 도구다.
책상은 도구 사용자에 의해 쓰여지고 컨트롤되는 존재이다. 물론 도구가 도구 사용자를 지배하는 경우도 발생하긴 하지만..

그런데..
어느 날 책상을 도구가 아닌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 존재로 규정하고 그런 관점으로 책상의 모든 시간을 예측하고 규정하기 시작해본다면 어떨까. 어떻게든 책상의 마음을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그 마음의 경로를 이해하고 따라가 보려고 애를 쓴다면.

책상은 불현듯 생명을 부여 받게 되지 않을까. 책상을 생명체로 간주하는 도구 사용자의 존재가 잠들어 있던 책상을 거대한 잠에서 깨어나게 하진 않을까. 그리고 도구는 도구 사용자와 특정한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지 않을까. 도구 사용자의 집요한 소통 노력이 결국 도구와 도구 사용자를 연결하는 '언어'를 탄생시키지 않을까. 언어가 탄생하는 순간 도구는 생명체로서의 입지를 부여 받게 되는 건 아닐까.

나. 생명체.
나란 존재도 결국 그런 식으로 생명체가 된 건 아닐까.
생명의 메커니즘이 만약 그런 것이라면 우린 지금 무수히 많은 생명 창조의 가능성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도구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을 지속하다 보면 생명은 특정 존재 안에 내재하기 보단 존재와 존재 간의 연결 고리 속을  흘러 다니는 혈액과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생명은 흐르는 것이고 난 단지 생명이 흘러 다니는 파이프라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도구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발굴하는 놀이.
잠겨진 비밀 코드에 접근해 나가는 설레임이 존재하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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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입 :: 2015/07/06 00:06

2015년 7월6일.
현재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문득 2005년 7월6일의 내가 현재로 틈입되어 들어온다면,
나는 뭐라고 응대하면 좋을까.

나는 10년의 시간을 오가며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재구성하게 될까.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를까.
10년의 시간이 나를 어디로 데려갔을까.
10년의 시간은 2005년의 나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현재를 살면서 10년의 시간을 내 안에서 느끼고자 한다면
뿌옇게 흐려졌던 10년 전의 기억은 어떻게든 내 안에서 다시 복원되지 않을까.

그게 설사 사실의 왜곡에 가까운 복원이라 해도
복원은 엄연히 복원이다.
뭔가 달라진 채 되살아난 기억은 현재 관점에서 바라본 과거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겠다.

특정 시간대에 연결된 이벤트. 시간이 지난 후 그것을 계속 복원시키고자 할 때, 복원될 때마다 기억은 매번 어떤 식으로든 새롭게 변주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이벤트를 100번 복원하면 100가지 형태의 다양성이 확보되는 셈이다. 그것 모두는 정확히 그 이벤트를 겨냥한 의미 있는 해석들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제 어떻게 복원시키는가에 따라서 수만 가지 색채를 띤 그 무엇이 되고 만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건, 어디로든 틈입되어 무엇이든 새롭게 생성해냄을 의미하는 듯.

2015년 7월6일.  
현재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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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dge | 2015/07/14 07:58 | PERMALINK | EDIT/DEL | REPLY

    10년전의 나, 현재, 10년후의 나
    이렇게 셋이 같이 한 테이블에 앉아 얘기하는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네요. ㅎㅎ
    셋이 무슨 얘기를 할까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5/07/16 14:41 | PERMALINK | EDIT/DEL

      저도 그게 궁금해요. 상상만 해도 설레이는 장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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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휴가 :: 2015/06/24 00:04

일과 휴가 사이를 횡단하는 것.

일에서 휴가를 꿈꾸고
휴가에서 일을 꿈꾸고
언제나 결핍인 상황 속에서 건너 편을 꿈꾸는.

서로 대립하는 듯한 2개의 방을 만들어 놓고
2개의 방 사이의 긴장감을 편안하게 음미하는 것.

사실 꿈은 환상을 대상으로 하기 마련인 것이고
막상 반대 편으로 건너갔을 때 그 곳엔 사실 아무 것도 없더라는 걸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게 사실.

결국 환상과 환상 사이를 횡단하는 발걸음. 그것만이 사실 아닐까. :)

그리고 그 발걸음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미 그 속에선 일과 휴가가 이미 하나가 되어 있을 것이다.

뇌는 횡단하는 설레임을 만끽하고 싶어 하겠으나
실은 거시적 횡단이 아닌 미시적 횡단을 순간적으로 지속하고 있는 것.

그게 일과 휴가를 오가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 아니겠는가. ^^


PS. 관련 포스트
[장자] 소통의 철학 (망각+연결=소통 → 도행지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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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 :: 2014/09/19 00:09

아무런 맥락 없이 나를 향해 무분별하게 인입되는 메세지.
물론 보내는 입장에선 이유와 맥락이 있겠으나
내 입장에선 전혀 아니다.

그건 스팸이다.

하지만
스팸을 컨텐츠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의 전환이 생긴다면?

기존에 가치 있다고 생각해 오던 것을 스팸이라 간주하고
누가 봐도 스팸인 것을 귀중한 컨텐츠라 여기는 의도적인 시선을 생성하게 되면
스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리게 된다.

스팸을 바라보면서 스팸이 만들어지게 된 맥락을 생각해 본다.
모든 스팸은 공급자 관점에선 분명한 맥락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것에 어떻게든 소비자 관점의 맥락을 넣어보려 애를 쓰면 스팸은 나름의 존재 이유를 갖게 된다.

스팸의 저자를 블로그 이웃이라 생각하고 따뜻한 조언의 한 마디를 작성해 보면
내 자신이 스팸의 저자와 그닥 다를 것 없는 포지션에 처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맥락 없음에서 맥락 충만으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만끽할 수 있다. 스팸을 갖고 놀다 보면.

나를 향해 인입되는 스팸 메세지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예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스팸을 소비하면서 스팸 속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가치를 탐사해 본다.
그러면서 스팸 메세지 안에 투영된 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들이 제법 의미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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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노트 카메라 :: 2014/05/14 00:04

에버노트를 즐겨 사용한다. 길을 걷다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텍스트를 읽다가, 이미지를 보다가 생각이 떠오르면 그걸 에버노트에 잽싸게 적는다.

단편소설을 가끔 읽는다. 20~30페이지로 삶의 한 단면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묘미가 괜찮다. 장편소설의 경우, 읽다가 중단하면 나중에 다시 흐름을 타기가 애매해지는데 반해 단편소설은 단 한 페이지만 읽어도 하나의 단위적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토막 시간을 내서 읽는 경우에도 별다른 부담이 없는 편이다.

에버노트로 각종 생각을 모아 적고 다양한 정보를 스크랩하다 보면, 문득 에버노트가 카메라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는 하나의 컷으로 일상의 단면을 삶의 한 장면을 묘사한다. 하나의 샷 속에 다양한 태그들이 다차원적으로 교차하고 있고 단면 자체로 표출되는 인상과 단면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기운의 플로우. 카메라의 능력치인 듯 하다.

에버노트질은 일종의 카메라질이다. 카메라로 단면을 포획하듯, 에버노트는 단면을 잘 다룬다. 단면을 잘 다루다 보면 생각을 단면으로 스크랩하고 단면에서 생각을 추출하는 놀이에 익숙해진다스크랩은 아카이빙이고 태깅이다. 에버노트 포스팅이 단선적으로 전개되는 동시에 태그 키워드가 입체적으로 축적되는 모습. 카메라 샷이 표현하는 전경 못지 않은 파노라마가 에버노트에서 디스플레이된다.

단면은 발견되고, 스크랩되고, 간파되고, 관통된다.

생각이 단면이 되고 단면이 생각이 된다떠오른 생각이 에버노트에 단면으로 생성되고, 에버노트를 책 삼아 훑어보다 보면 단면과 단면이 만나서 이뤄내는 상호작용이 평면을 넘어 입체로 입체를 넘어 점으로 점을 넘어 장으로 장을 넘어 세로 흘러가는 정보 생명 메커니즘의 맛을 시식하게 된다.

에버노트 카메라로 샷을 찍어내다 보면 결국 샷들이 서로 교미하면서 내가 새로 태어나는 느낌을 맛보게 된다. 결국 내가 뭔가를 창작하게 된다는.

에버노트는 고도의 카메라이다. 세상을 나만의 필름에 담고 창조하는 완전 개인전용 카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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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입장 :: 2013/05/03 00:03

한국의 100억 부자들
노진섭 지음/비즈니스북스

이 책을 비롯하여 수많은 책들이 부자가 되는 비결에 대해 논하고 있다.
돈의 부자가 되면 참 좋긴 할 것이다. 돈이면 안 되는 게 거의 없는 세상 속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부자란 단어는 사람 입장에서 돈을 얼마나 축적했는가를 바라본다. 그런데 돈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사람을 버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부자는 어떤 존재일까? 부자는 돈의 입장에선 '돈'의 가치를, '돈'의 위력을 몸소 터득하고 그것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는 '돈'의 에반젤리스트가 아닐까? 사람은 돈이 움직이기 위한 경로인 것이고 돈은 사람과 사람을 끊임없이 오가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자신 만의 여행을 즐기고 있는 듯 하다.

사람이 돈을 필요로 하고 사람이 돈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돈이 사람을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고 있는 것이고 그런 돈의 갈망에 사람들이 걸려들고 있는 모습. 돈이 목적이 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돈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돈에게 사람은 과연 무엇일까?

부자를 주체로 바라보지 말고 객체로 바라볼 때, 돈에 대해 보다 많이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돈으로 표현되는 위상의 가시성이 너무 뛰어나다 보니 돈이 아닌 것으로 표현될 수 있는 기회들이 속절없이 스러져 가고 그런 현상이 돈을 더욱 강력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순환 고리 속에서 인간은 길을 깊게 잃어가는 것 같다. 돈 말고 나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항상 곁에 두고 살아가는가?

돈의 입장에 서보자. 돈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자. 내 모습이 어떠한가? 부자가 되고 싶은가? 부자가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모습의 존재가 될 것인가? 아무 것도 명징하지 않은 채 오직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 되어 버린 전도된 삶의 경로 속에서 '부자'란 단어는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목적이 되어버린 '돈'을 목적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돈의 마음 속에 투영된 나의 모습을 직시하는 것 아닐까? 돈을 추종하다 인간 자체가 돈이 되어버린다면 그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 사람이 화폐가 되다니 말이다. 물론 돈이 되어서 돈이 경험하는 고속 유영의 삶을 만끽하는 것도 나름 짜릿할 수 있겠으나 그건 어쩌다 한 번 타는 롤러코스터 놀이 정도로 치부하면 될 듯 싶다. 그 이상은 심한 오버다.

돈의 입장에서 나의 입장을 바라보자. 나의 입장이 존재하기는 한 것인가 자문해보자.
난 돈의 부자 보다는 마음의 부자, 존재의 부자가 되고 싶다. ^^



PS. 관련 포스트
교환가치 vs. 희소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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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0:49 | DEL

    In my home when I take bored, then I only ON my PC and open YouTube site Read & Lead - 돈의 입장 to watch the YouTube video tutorials.

  • Wendy | 2013/05/05 17: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블로그를 통해 꽤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시는....이미 존재의 부자이심이 분명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3/05/05 20:11 | PERMALINK | EDIT/DEL

      Wendy님의 댓글이 블로그 존재의 자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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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티브 :: 2012/11/26 00:06

태어나면서 스마트폰을 만지게 되는 아기는 자라면서 스마트폰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간주하고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갖고 놀게 된다. 하지만 어렸을 때 도스 컴퓨터를 갖고 놀면서 성장한 40대 성인은 스마트폰을 접할 때 엄청난 편의성을 제공하는 문명의 이기로 생각한다. 스마트폰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스마트폰을 예전에 사용하던 디바이스 대비 급격하게 변화/발전한 첨단기기로 인식하는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 현대라는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어떤 사람은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보는 반면, 어떤 사람은 현재를 과거의 프레임으로 해석하고 번역한다. 사물과 개념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과 그것을 예전 틀에 맞춰서 억지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사람.

사람은 가장 창의적인 시절에 보고 느꼈던 '상'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40대 남성이 2012년을 살아간다는 것은 1970~80년대에 형성되었던 프레임에 2012년을 끼워 넣고 어거지로 2012년을 이해하려 노력함을 의미한다. 2012년을 살아가고 있지만 결코 2012 네이티브는 아니란 얘기다. 1970년대 네이티브, 1980년대 네이티브로 70~80년대 앵글을 통해 바라보는 2012년의 상. 그건 직시가 아니라 왜곡에 가까운 상일 것이다.

특정 시대를 살아갈 때 그 시대에 네이티브가 되어 살아가는 게 제일 편하고 좋은 것이다. 미국에 사는 사람이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닐 때 겪게 될 어려움을 생각해 보자. 사실상 이방인의 느낌을 갖게 될 수 밖에 없고 항상 머리 속에서는 항상 영어를 다른 언어로 전환시키느라 CPU가 팽팽 돌면서 뇌는 수시로 과부하 모드에 놓이게 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네이티브와 디지털 외계인이 공존한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자본 네이티브와 자본 외계인이 공존한다.
특정 트렌드가 대세일 때는 해당 트렌드의 네이티브와 외계인이 공존한다.

세상은 '** 네이티브'와 '** 외계인'이 공존하는 곳이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엇'이 있다면, 자신이 그것에 있어서 네이티브인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네이티브와 외계인을 구분하는 것은 그 '무엇'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가 여부에 의해 좌우된다.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다른 매개체를 동원해서 그것을 해석하지 않고 아무런 도구와 프레임이 없이 그것을 바라보고 인지하고 정의를 내리고 개념 확장을 시키는 것이다.

아무런 기존 도구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보도록 하자. 그랬을 때 그것에 대한 상이 즉자적으로 형성되고 그것에 대한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네이티브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사람은 어린 시절에 보고 느꼈던 것을 기반으로 프레임을 형성하고 그 고정된 프레임으로 이후에 접하게 되는 것들을 해석하게 되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재미가 없다. 나는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새롭게 접하게 되는 물질과 개념을 어린아이와 같은 유연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옴니 네이티브가 되고 싶다. 2012년을 살아가지만 사실상 70~80년대를 살아가는 2012 외계인이 되는 건 내겐 그닥 재미가 없다. 난 2012 네이티브가 되고 싶다. 어느 시공간을 접하더라도 그 시공간의 네이티브가 되고 싶다. ^^


PS. 관련 포스트
소외, 알고리즘
Mobile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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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1:46 | DEL

    For the reason that the admin of this website is working, no uncertainty very soon it will be famous Read & Lead - 네이티브, due to its feature contents.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11/27 00: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바로 이런 마인드가 벅샷님이 늘 신선한 사고방식을 유지하시는 비결인 거겠죠 ^^ 자기 시스템, 자기 제도권 안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칼바람이 부는 시간의 숲에 겁없이 뛰어드는 야생동물 같은 문화의 여정. 외롭지만 항상 매력 있는 것 같아요.

    • BlogIcon buckshot | 2012/11/27 09:43 | PERMALINK | EDIT/DEL

      시간의 숲에 뛰어든 야생동물.. 너무 멋진 비유이십니다. 정말 제가 야생동물이 되어 시간의 벌판을 달리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설레이는데요. ^^

      하나의 문장으로 저의 오전을 화사하게 만들어주시니 넘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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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와 관점 :: 2012/11/21 00:01

경계는 사물과 공간을 분간하는 기준이 되어준다. 경계가 있어서 세상은 뭉개지지 않고 조각조각 나눠진 뷰로 인지가 가능해진다. 경계가 획정되고 그 안에서 편안하게 지내다 보면 어느덧 경계 안에 갇혀 버리는 부작용도 생기곤 하지만 경계는 무경계 상태의 혼란을 완화시켜주는 안정제 역할을 하곤 한다.

경계를 넘어설 때 관점과 프레임은 변화한다. A 영역과 B 영역이 경계선으로 분할되어 있다면 A 영역에서 편안하게 활용되는 관점이 B 영역에선 수월하게 이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 A 영역에 최적화된 관점이 존재하고 B 영역에 최적화된 관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관점은 경계에 의해 구별되어지고 경계는 관점을 분할된 영역에 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경계에 의해 배제된 타 영역의 상황과 맥락은 관점을 명확화하는 동시에 구속하게 된다.

경계를 관통하는 관점은 경계를 허물게 된다. A 영역과 B 영역을 포용할 있는 관점이 탄생하면 A 영역과 B 영역은 동일한 프레임으로 포섭되고 단일 언어로 읽혀지게 되면서 서서히 하나의 영역으로 융합되어 간다.

하나의 영역 속에서 관점이 변형되어 하나의 영역이 복수 영역으로 나눠질 때 새로운 경계가 형성된다. 하나의 영역이 분열의 계기를 맞게 되고 나눠진 복수 영역이 각자의 관점을 발전시키고 개별적인 언어 체계를 진화시켜 나가면 영역은 하나였던 때를 까맣게 잊은 듯한 스탠스를 취하며 서로에게서 멀어져 간다.

경계와 경계를 관통하는 관점을 설정하는 힘과 경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관점을 변형시켜 경계를 설정하는 힘은 경계 구도를 재구성하고 관점의 흐름을 재배치한다.

경계는 관점을 자극하고 관점은 경계를 형성한다.
관점을 자극하기 위해 경계를 의식하고 경계를 형성하기 위해 관점을 리뷰한다.

경계 안에서 편하게 상주하는 동시에 경계에서 발생하는 긴장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선 경계를 자꾸 터치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 디바이스의 액정만 터치하다 보면 어느덧 스마트 디바이스에 종속된 도구 인간으로 전락하게 되는데 정작 터치해야 할 대상은 액정이 아니라 경계이다. 경계를 터치하고 경계에서 타전되어 오는 신호를 나만의 촉각으로 해석해야 한다. 경계에서 전해져 오는 신호는 경계가 나에게 선물하는 개인화된 메시지이고 나의 관점에 도달된 신호는 나의 관점을 변화시키게 된다.

일정 시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관점 상에 전시된 경계 구도가 너무도 안정화된 상태라면 나의 관점을 의심해 봐야 한다. 관점이 진부화되고 박제가 되어간다는 신호라서 그렇다. 관점이 왜 굳어지고 있는지 왜 새로운 경계의 생성을 직시하지 못하는지 반성하고 기존에 존재하는 하나의 영역이 복수의 영역으로 분화될 수 있는 분기점이 어딘지를 탐색해야 한다.

경계를 수시로 터치하고 관점을 정기적으로 의심하는 과정 속에서 경계와 과정 간의 순환 고리는 역동적 평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오늘 나는 경계를 몇 번 터치했는가? 액정을 수백 번 터치할 때 경계를 단 한 번이라도 터치해 보자. 나는 정기적으로 나의 관점을 의심하고 있는가? 쓰잘데기 없는 정보들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지 말고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나의 관점을 의심해 보자. 경계와 관점 간의 순환 고리를 강력하게 형성하는 놀이를 즐길 줄 알아야 자존의 시간들을 나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경계
시지프스의 링 - 영속발전의 플랫폼 (發展 & 發電)
분류, 막..
세포와 세포 사이
막, 도구, 의도, 양자
태그,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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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0:48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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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ale

    Tracked from toms sale | 2013/06/13 10:48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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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dge | 2012/11/27 09:00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항상 읽으면서 느끼는거지만 비슷한 주제인듯 하면서도 새롭게 표현하는 느낌입니다.
    , 매번 많은 영감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11/27 09:42 | PERMALINK | EDIT/DEL

      하나의 주제를 여러가지 시선으로 포획하면서 음미하는 놀이를 저는 즐기고 있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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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을 기획하라 :: 2012/05/07 00:07

휴가의 과정을 생각해보자.

언제가 가장 기쁜가?
휴가지에서 여흥을 즐길 때?

아니다.
휴가계획 세울 때가 가장 즐겁다.

이는 뇌가 '기대감'을 먹고 산다는 걸 의미한다.

결국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은 기대감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실제 기대감을 실행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기대감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차이'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휴가를 통해 일상과의 차이가 발생하고
부의 획득을 통해 현재의 경제적 상태 대비 차이가 발생하고
지위의 상승을 통해 현재의 위치 대비 차이가 발생하고...

휴가도, 부도, 지위도 뭐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맘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내 맘대로 차이를 발생시킬 수가 없다면 기대감 생성엔 분명 한계가 생기게 된다.
내가 주체적으로 차이를 발생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시대가 인정하는 스펙(?)에 치중하지 않고
나의 관점에서 나의 모습이 어떻게 차이를 발생시킬 수 있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나의 관점에서 나의 모습이 괜찮게 보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타인의 시선, 세상이 추종하는 조건에 얽매이다 보니
자신을 소외시키게 되고 이미 소외되어 있는 자신을 계속 속이기 위한 차이를 발생시키고
그런 의미 없는 차이에 대한 기대감을 생성하고 그 기대감이 허무감으로 귀결되는 악순환의 연속.

세상의 관점이 아닌 나의 관점을 직시해 보자.
"그런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란 질문부터 던져보자.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만들어야 한다. 나만의 관점을.

나만의 관점이 존재하고 그것의 존재감이 강하다면,
나의 일상은 차이로 가득하게 된다. 기대감은 자연스럽게 범람하게 될 것이고
.

휴가의 과정을 생각해 보자.
휴가를 가기 전의 기대감을 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기대감.. 그것은 철저히 기획될 수 있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설정 자체가 함정이다.
휴식감과 세(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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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알고리즘 :: 2012/04/25 00:05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뭔가에 주목한다는 것은 다른 뭔가에는 주목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심'이란 자원은 분명 제한되어 있어서 모든 것에 관심을 골고루 배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關心이 시각적 요소에 의해서만 좌우될 경우 관심은 觀心이 된다. 마음엔 관계가 좋은 양식인데, 마음은 자꾸 시각적 요소에 미혹을 당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關心은 희소자원이고, 觀心은 잉여자원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주기란 매우 어렵다. 관심은 보이지 않는 대상 입장에선 획득 불가의 자원인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관심은 보이는 것에 크게 편향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스크린이 일상 속으로 깊숙이 침투하면 할수록 관심의 시각 집중화 현상은 더욱 심도를 더해갈 것이다. TV, PC, 스마트디바이스.. 스크린의 힘이 세질수록, 스크린 바깥에 대한 관심은 희소한 자원이 되어갈 것이다. 스크린에 노출되는 것들의 흐름 속에 시각과 관심이 매몰되어 가는 현상의 바깥에선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내가 관심을 주는 영역이 나의 관점을 규정하고, 내가 관심을 주지 않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의 관점을 규정한다. 알게 모르게 내가 설정해버린 나의 관심영역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의식 바깥으로 밀려나버린 나의 비관심영역. 중요한 건 비관심영역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비관심 영역과 나 사이의 거리가 핵심이다. 거리가 계속 멀어지고 있는지 가까워지고 있는지, 비관심영역에 대한 의식적 접근을 하는 시간이 1%라도 되는지 아니면 그 희미한 가능성마저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지.. 바깥에 대한 관심과 바깥을 관찰하고자 하는 태도.

내가 '주목'이란 단어에 주목해서 얻은 수확은, 주목하지 않았던 것에 주목해야 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라는 책 제목.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한 자극과 영감을 받는다. 책을 읽지 않기 위해 책을 읽듯이, 주목하지 않기 위해 주목하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기 위한 자양분을 책에서 얻는다. 그렇게 자양분을 책을 통해 얻다 보면 어느 날 책 없이도 다양한 사고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다. 주목도 마찬가지다. 특정 영역에 관심을 갖다 보면, 그 영역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결국 관심은 관심의 대상 자체에 몰입하기 보다는 시각의 범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고 시각의 범주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하는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시각.
그건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주어진 감각이 아니다.
보이는 것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시각의 모습인 것이다.

관심은 결코 편향이 아니다.
모든 감각을 기울여 안과 바깥을 모두 통찰하는 것. 그것이 關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주목,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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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4/25 21: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정말 buckshot님표 Concept-Context 브랜드 중 요즘 가장 팬이 된 것이 이 "관심"의 개념입니다. ^^ 관심이란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즉 단순히 자기 흥미를 좇는 감정 작용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큰 자아의 기초를 세우는 경이로운 작업이란 사실을 buckshot님의 최근작들을 통해 일상 속에서 계속 깨우치게 됩니다. 모든 것(Every-Thing)과 함께 하는 나, 그 꿈의 실현은 곧 관심이라는 작고도 위대한 발걸음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4/25 22:24 | PERMALINK | EDIT/DEL

      작은 관심 속에 우주가 담길 수도 있다는 생각. 그 생각 만으로도 가슴 벅찬 설레임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끝없이 작은 관심들을 생성해 내고 그 관심의 흐름 속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게 얼마나 결정적인 삶의 단서이고 그것 자체로 얼마나 충분한 건지.. 저는 요즘 그걸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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