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맥과 라테 사이 :: 2008/11/07 00:07'Starbucks Identity - Commoditization과의 전쟁'에 대해 80님께서 댓글을 주셨는데 80님도 거의 동시에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를 소재로 [Iconic Brand] Nothing Lasts Forever를 올리셨다고 한다. 반가운 마음에 80님의 포스트를 재미있게 읽었다. 80님의 멋진 포스트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맥도날드가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품질/사이즈/재료/중량을 통해 빅맥 가격을 지수로 승화시켰던 것처럼 스타벅스도 전 세계에 복제된 스타벅스 유통망을 기반으로 스타벅스 가격을 지수로 승격시키고 이젠 경제 위기까지 스타벅스 유통의 복제도로 설명하는 단계에 이른다. 빅맥지수와 스타벅스지수는 가히 세계화 시대의 대표적 상징이라 할 수 있겠다. ![]() 음.. 여기서 한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맥도널드와 스타벅스는 자사의 상품이란 렌즈를 통해 전 세계 경제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을 부여한다.. 이거.. 리더십의 본질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리더십은 결국 리더 자신만의 렌즈로 상황을 통찰하고, 언어화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을 의미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상황을 만나게 되는데 모든 상황은 다차원적 요소들이 중첩된 맥락의 복합체인 경우가 많다. 리더는 어떤 상황을 맞이할 때 자신이 갖고 있는 사고 프레임과 통찰력을 기반으로 상황을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걸 follower들에게 긴장감 있고 지향성 넘치는 이야기의 형태로 전달한다. 맥도널드가 빅맥 가격으로, 스타벅스가 라테 가격으로 전 세계 경제상황을 묘사하는 것처럼, 리더는 자신의 내공 가격으로 상황을 묘사한다. 그리고 그 묘사는 설명력과 설득력으로 전달된다. 격물치지님의 멋진 포스트 서평 #4_손자병법을 다시 한 번 환기해 본다. ![]()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이야기로 세상을 보는 눈을 확 뒤집는 사람..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혁명가로 부른다. 리더십의 궁극은 세상을 바꾸는 혁명이 아니던가... ^^ 빅맥지수와 라테지수를 보면서 세상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절단/채취하고 그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런 리더십은 리더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들만의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일상 속을 살아가는 소시민 모두가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 속에 숨어 있고 내 안에 숨어 있는 디테일의 힘을 느끼고 그걸 밖으로 끄집어 내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다 보면 빅맥지수와 라테지수가 부럽지 않은 '나만의 지수'를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의 잠자고 있는 혁명 깨우기를 지향하는 삶은 아름다움 그 자체일 것 같고..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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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찾사와 개콘 사이 :: 2008/11/03 00:03웃음을 찾는 사람들, 개그 콘서트와 같은 유머 프로그램들의 인기는 여전한 것 같다. 나도 그 프로그램들을 자주 보진 못하지만 시간이 나면 즐겨 보는 편이다. 보면서 미소도 짓고 박장대소도 하면서 웃음의 유쾌함을 무의식 중에 즐기게 된다. ![]() 웃음엔 어떤 힘이 있는 걸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오래 전에 읽은 적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부 희극론이 불타는 수도원과 함께 사라졌을 것이란 가설에 기반한 추리 플롯이 기호학, 철학, 미학, 신학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멋지게 어우러지며 흘러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웃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았던 기억이 난다. 통제와 지배가 강한 사회에서는 유머가 체제 유지에 커다란 위협으로 느껴지기 쉽다. 유머가 내포하는 포용과 자유의 힘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선 인간에게 불을 가르쳐 준 프로메테우스도 몰랐던 '두려움을 감추는 기술'로써의 웃음이 정의되고 있는 셈이다. 두려움은 인간의 활동력을 자극하는 좋은 기능도 갖고 있지만 독재자의 공식적 민중 통제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고 시장 조성을 위한 회사들의 상투적 수단이기도 하다. 웃음은 만만치 않은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우린 모두 자신을 구속하는 중력장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유머는 중력장이 선사하는 무게감 속에서 가벼운 스텝을 밟을 수 있게 해준다. 주체와 객체의 분리, 내부와 외부의 분리라는 무거운 설정 속에서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기 위한 엔진의 역할을 바로 유머가 해줄 수 있는 것이다. 웃음은 혈관이 굳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혈액 순환을 돕고 면역 체계를 활성화시킨다고 한다. 유머는 에너지의 흐름과 세포들의 정보교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유동성 엔진이다. 호모 쿵푸스에 유머에 대한 멋진 표현이 나온다. ![]() 사건과 사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와 간극을 관찰하는 힘은 새로운 시각 제시를 통한 리더십 획득과 연결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쉽게 웃게 만드는 사람은 그만큼 매사에 협력과 지지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고 자연스럽게 설득력도 제고할 수 있다. 남을 웃게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은 곧 자신감에 차 있다는 것이고 다른 생각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수용/포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9월말엔가, 개콘에서 왕비호 개그를 보고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동방신기가 움직이면 카시오페아(팬클럽) 80만이 움직인다는데 왜 앨범은 10만장 밖에 안 팔려?" 이 발언은 곧 논란을 일으켰다. 물론, 숫자는 틀렸다. 동방신기는 1~4집 모두 30만장 이상을 판매하고 있다. 카시오페아의 파워는 분명 막강하다. 하지만, 음반 시장에 내재하는 차이와 간극을 날카롭게 묘사한 왕비호의 유머 센스는 분명 인상적이었다. 센스 있는 유머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건강을 주고 그 대가로 리더십을 획득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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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소통의 철학 (망각+연결=소통 → 도행지이성) :: 2007/10/09 05:59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내가 장자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도덕경의 노자와 비슷한 컨셉을 가진 속세초월의 신선사상을 구사하는 중국 철학자라는 정도였다. 노장사상(老莊思想)이라는 말이 있듯이 난 장자가 노자 대비 큰 변별력을 갖는 사상을 갖고 있으리란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었다. 2년 전 우연한 기회에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란 책을 통해 고미숙이란 고전평론가를 알게 되었고 인상 깊게 읽었던 고미숙 평론가의 또 다른 저서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그린비 출판사에서 발간하고 있는 리라이팅 클래식(Re-writing Classics) 시리즈의 일부인 것을 알게 되었다. 리라이팅 클래식 리스트를 둘러보니 나의 관심사와 연결될 수 있는 책들이 좀 있어서 기회가 되면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읽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최근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을 무심코 읽다가 모든 생성은 분자적이다란 포스트를 살짝 올렸는데 그린비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의외의 트랙백을 걸어 주셨고 트랙백을 타고 그린비 출판사 블로그를 둘러보다 우연히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이란 책을 알게 되었고 이 책이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 책을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인문/철학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던 내가 인문/철학에 서서히 관심을 갖게 된 과정 속에서 장자는 나에게 조금씩 조금씩 다가왔던 것 같고 난 나름 오랜 준비 기간 끝에 장자를 만나게 된 것 같다. ^^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이 책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장자에 대한 파격에 가까운 새로운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 저자(강신주)는 노자와 장자는 전혀 다른 사상적 기반을 갖고 있다고 역설한다. 노자의 도(道)는 민중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복종하도록 만드는 일관된 통치의 방법/원리를 의미한다. 또한 노자는 통치자와 민중이라는 위계질서를 자명한 것으로 수용하고 있다. 노자의 텍스트가 81장으로 구성된 철학시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시라는 운문의 형태를 띠고 난해한 형이상학을 피력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독자층을 통치자나 통치계층에 국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장자는 흥미로운 이야기 형식,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강력한 소설/에피소드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더구나 이야기의 주인공들도 백정,목수,뱃사공,농부 등 일반민중들이 대다수이다. 이는 장자가 고유한 삶의 지평에서 인간을 이해하려고 하였지, 결코 빈부귀천이라는 사회적 위계관계로써 인간을 이해하지 않았으며 노자가 자명한 것으로 수용하고 있는 정치적 위계질서를 일종의 꿈에 불과한 것으로 단호하게 비판하고 있다. 노자는 국가 지향적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국가주의 철학자였고 장자는 민중과 아나키즘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주의 철학자인 노자와는 확연히 다른 노선을 표방했던 장자의 철학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망각과 연결의 실천 철학이다. 망각과 연결은 소통(疏通)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소(疏)는 '막힌 것을 터버린다'를 의미하고 통(通)은 새로운 연결을 뜻한다. 즉, 장자의 '소통'은 기존의 고정된 삶의 형식을 망각과 비움을 통해 극복하여 나와 다른 삶의 형식을 갖는 타자와의 새로운 연결을 모색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소통을 가장 잘 설명하는 에피소드로 '수영 이야기'가 있다. 공자는 땅에서의 삶을 가장 잘 영위한다고 정평이 난 사람이다. 그런데 땅의 고수인 공자가 어느 날 육지의 가장 끝, 험악한 폭포수(물)의 영역에 이르게 된다. 자신의 삶의 기술이 무력해지는 이곳에서 공자는 또 다른 고수 한 명을 만나게 된다. 그 고수는 물에서의 삶이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다시 말해 수영의 달인이었다. 공자는 그에게 묻는다. "물을 건너는 데 그대는 어떤 특이한 방법이라도 지니고 있는가?" 물의 고수는 이렇게 말한다. "특별한 방법이 있겠습니까? 나는 옛 삶(故)에서 시작하였고 지금의 삶(性)에서 자라났으며 운명(命)에서 완성하였습니다. 물이 소용돌이쳐서 빨아들이면 저도 같이 들어가고 물이 나를 물속에서 밀어내면 저도 같이 그 물길을 따라 나옵니다. 물의 도를 따라서 그것을 사사롬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물을 건너는 방법입니다." 그러자 공자가 다시 묻는다. "옛 삶에서 시작하였고, 지금의 삶에서 자라났으며, 운명에서 완성하였다고 그대는 말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물의 고수는 대답한다. "제가 육지에서 태어나서 육지에 편안해진 것이 옛 삶이고, 제가 현재 물에서 자라서 물에 편안해진 것이 지금의 삶이며,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된 것이 바로 운명입니다." 수영의 달인은 원래 땅에서의 삶에 익숙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땅과 전혀 다른 규칙으로 흘러가는 물을 만나게 된다. 이 때 땅에서의 방식(선입견)만 고수하고 물을 대하면 물 속에서 허우적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땅 생활에서 축적된 선입견을 버리고(잊고/비우고) 물에서의 새로운 방식을 몸으로 익혀 나갈 경우(연결) 물을 땅과 같이 익숙하게 느낄 수 있고 유유히 물 속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의도하지 않은 채 세상에 태어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특화된 삶의 방식을 몸에 붙인 채 살아간다. 이는 일종의 선입견으로 굳어지면서 다른 공동체에 속한 타자를 만날 때도 그 방식(선입견)을 강요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인생에서 끊임없이 겪게 되는 타자와의 마주침을 파괴적이지 않고 생산적인 모습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선 자신이 갖고 있는 한계에 기반한 자신만의 선입견을 과감히 버리고(잊고/비우고) 타자의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필사적인 연결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장자가 타자와의 소통이라는 난해한 주제를 사유했던 철학자라는 저자의 해석이 매우 신선하다. '타자'라는 개념을 사람으로 한정 짓지 않고 세상 만물로 확대 적용했다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장자의 윤편(輪扁) 이야기도 압권이다. 환공이 회당 높은 곳에서 경전을 읽고 있었고, 윤편은 회당 낮은 곳에서 수레를 깎고 있었다. 윤편이 환공에게 물었다. "공께서는 지금 무슨 말들을 읽고 계십니까? 환공이 "성인의 말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윤편이 "그 성인은 살아 있습니까?"라고 묻자 환공은 "그는 죽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윤편은 말했다. "그렇다면 공께서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옛 사람들의 찌꺼기가 아닙니까?" 그러자 환공이 말했다. "수레바퀴나 깎는 장인인 주제에 네가 지금 경전을 논하려 하는가!" 그러자 윤편이 말했다. "저는 그것을 제 자신의 일에 근거해서 본 것입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엉성하게 작업하면 헐렁해져 견고하게 되지 않고, 꼭 끼게 깎으면 빠듯해서 서로 들어맞지 않습니다. 엉성하지도 꼭 끼지도 않게 작업하려면 저는 그것을 손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대응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입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제가 제 아들에게 전달할 수 없고 제 아들도 저에게서 배울 수 없는 기술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이 70이 되도록 제가 직접 바퀴를 깎고 있는 이유입니다. 옛 사람은 자신이 전할 수 없는 것과 함께 이미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공께서는 지금 옛 사람들의 찌꺼기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윤편은 자신을 비우고 자신이 직접 수레바퀴가 되어서 수레바퀴를 손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대응하면서 수레바퀴와 일종의 소통을 한 셈이다. 그런데 몸과 마음으로 터득한 수레바퀴와의 소통을 언어라는 형식으로 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고백을 한다. 마찬가지로 성인들은 자신이 살았던 시공간에서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데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걸고 타자와 직접 소통하면서 얻은 깊이 있는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바로 옆에 앉혀 놓고 침을 튀기면서 설명을 해줘도 깨달음의 전달이 여의치 않을텐데 곡해의 여지가 심각한 언어로 달랑 남기고 죽었다면 그 경전은 후세 사람들이 읽고 바로 적용하기엔 사실상 불가능하다란 얘길 윤편은 "경전이란 성인의 찌꺼기에 불과하다"란 말로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장자는 계급상의 높낮이는 아무 의미가 없고 오직 누가 소통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다. 정말 멋진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장자의 사상을 압축한 구절로 道行之而成(도행지이성)을 들 수 있다. 직역을 하면 "도는 걸어가야 이루어진다."가 되는데 저자는 바로 이 구절에서 노자의 道와 장자의 道가 전혀 다른 컨셉을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노자의 道는 세상만물의 시작부터 존재하는 만물의 근본이치를 의미하는 반면 장자의 道는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항상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결국 소통하는 만큼 길이 열리는 것이고 길이 열린 만큼 道가 이뤄진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타자와의 마주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비우고 타자와 연결한다'가 말이 쉽지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인가? 나를 비운다는 것도 큰 도전이고 타자와 연결한다는 것도 큰 도전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날들을 돌이켜 보아도 나를 비웠던 적은 거의 없고 내가 가진 선입견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판단하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니 타자와의 연결도 그리 매끄럽지 않았던 것 같고... 최근 블로깅을 하면서 다른 블로거들과 덧글과 트랙백을 주고 받는 경험을 하고 있는데 금번 독서를 통해 장자의 지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앞으로의 블로깅에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내가 가진 지식은 분명 내가 처한 시공간적 한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테고 내 블로깅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지식을 내가 충분히 배울 수 있게 나를 비우고 적극적으로 다른 블로거들과 지식을 교류한다면 장자가 말한 道行之而成을 조금이나마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블로깅 뿐만 아니라 가정,직장,친목 관계에서도 소통의 기본자세인 망각(비움)을 몸에 붙이는 훈련을 착실히 쌓아 나가야 할 것 같다. 그래야만 연결을 예전보다 많이 할 수 있을테니...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을 읽는 내내 생각의 탄생이란 책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생각의 탄생에서 제안하는 생각의 13가지 도구를 한 단어로 압축하면 바로 소통(疏通)이 아닐까 싶다. 무엇인가를 관찰하고 형상화/추상화하고 패턴을 인식/형성/유추하고 몸으로 생각하고 감정이입하고 차원적 사고,모형 만들기, 놀이를 하고 변형/통합하는 것은 결국 무언가와의 소통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비우고 대상과 나를 연결하는 것... 생각의 탄생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은 소통을 통해 道行之而成(도행지이성)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장자의 사상이 내가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들뢰즈의 리좀과 매우 닮아 있어서 반가웠다. 어쩌면 들뢰즈의 리좀과 닮아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이 책을 샀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세월을 거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첨단을 달리고 있는 21세기 현대물리학이 기원전 반야심경과 조우하듯이 고민에 고민을 더하며 사유 여행을 거듭하고 있는 서양철학이 결국 기원전 200~300년에 활동했던 장자와 조우하고 마는건가... ^^ 저자가 멋지게 재해석한 장자의 소통(疏通) 철학은 내게 매우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의외의 인물에게 소통이란 개념을 배운 셈인데 그 배움은 앞으로의 내 삶에 큰 영향을 줄 것 같다. 장자의 철학 공식: 忘却 + 連結 = 疏通 → 道行之而成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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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동의보감-신형장부도] 기는 통해야 한다. :: 2007/05/06 00:01허준의 동의보감을 시작하는 그림, 신형장부도... - 오장: 간,심,비,폐,신 - 육부: 위,소장,대장,담,방광,삼초 - 삼관: 옥침관, 녹로관, 미려관 신형장부도는 인체의 장기와 각각의 특징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는 일종의 해부도이다. 신형장부도는 각 기관에 실체를 부여하고 기관 간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이해한다. 또한 몸 안에서 기의 통로가 어떻게 비롯되며, 그것이 생리작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여기서 정기가 오르내리는 옥침관, 녹로관, 미려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기는 보이지 않는다. 인체의 내부에 있지도 외부에 있지도 않다. 안팎에 두루 걸쳐 있다. 비가시적인 것이 생명의 근본이라고 허준은 역설하고 있다. 허준의 관점에선 기가 잘 통하는 몸이 질병을 차단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인 것이다. 몸은 정보와 에너지가 흐르는 강이다. 믿음과 기억은 몸에 만들어진 생물학적 물질이다. 에너지의 흐름이 정체되는 곳에서 질병이 생기게 된다. (Christiane Md Northrup) 기는 통해야 한다. 기는 일종의 데이터이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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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atos - Evangelion :: 2007/04/14 00:01/음악
Eros (생의 충동) vs. Thanatos (자기 파괴의 충동) 이 두가지는 원래 하나였을 것 같다. 나눌 수 없는 생명의 약동.. Thanatos - Evangelion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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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병은 적이 아니다. 병은 메세지다. (The disease is the message) :: 2007/04/13 00:03
Christiane Md Northrup의 Women's Bodies, Women's Wisdom이 제공하는 implication은 아래와 같이 매우 명쾌하다. "모든 병은 메세지다." 병을 무찔러야 할 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내 몸에 주어지는 의미심장한 메세지로 받아들이는 순간, '병과의 전쟁'은 '병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전환되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양생의 지혜를 되찾게 된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자궁암이나 자궁근종은 오랫동안 당신의 가슴에 묻혀 표출되기를 기다렸던 감정의 분출이다. 여성의 몸은 타고난 영성으로 여성 자신의 관심을 끌어서 삶의 어떤 부분을 변화시키 기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증상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의학계에서는 이러한 여성 내면의 지혜를 무시한 채 여성질환을 단지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만 취급하여 사실상 실패를 거듭해왔다. 여성질환은 치유의 영역에서 다루고 처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치유의 힘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이제 여성들은 자기 몸과의 화해를 통해 어떤 의사보다도 안전하게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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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발견 (Simultaneous Discovery) :: 2007/04/12 00:03과학사에 의해 많이 관찰된 바 있는 복수 발견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과학적 발견이 개인의 천재적 능력이나 행운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까지 축적된 과학 지식과 과학 외적 요건에 영향을 받는 프로세스가 얼마든지 동시적으로 발생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걸까? 아니면, 혁신적 개념들이 앎의 바다나 대기 속을 떠돌고 있어서 여러 과학자들이 거의 같은 시기에 각자의 그물을 휘둘러 의미있는 흐름을 절단/채취한다는 걸 의미하는걸까? 월러스는 일찍부터 주로 지질학적 증거들에 바탕해서 진화를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역시 남아메리카를 여행하게 된 1848년부터 그것을 더욱더 강력히 믿게 되었다. 그리고 1858년에는 다윈과는 독자적인 과정을 통해 자연선택을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제시한 논문을 썼고, 그것을 다윈에게 보냈던 것이다. 이 논문에 접한 다윈은 큰 고민과 좌절감에 빠졌다. 물론 같은 내용을 자신이 훨씬 전에 얻어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을 발표하지 않고 있던 상황에서 이제 그것은 월러스의 업적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오랜 기간 동안의 자신의 연구는 제대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미 다윈의 연구내용을 알고 있던 측근들이 개입해서 이 논문은 다윈과 월러스의 공동명의로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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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의 힘 :: 2007/04/1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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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2007/04/09 00:01
웃음은 마음속에 긍정적인 생각들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이제 웃음은 우리의 행복한 인생과 건강 유지를 위해 가장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웃음은 몸을 바꾸고 관계를 바꾸고 마침내 삶을 바꿀 수도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전에 아래와 같은 포스팅을 한 적 있는데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개념을 좀더 의식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닭이 먼저일 수도 있고 달걀이 먼저일 수도 있다. 1번방향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진정한 아름다움은 2번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1. 행복해서 웃는다. 1. 재미가 있고 적성에 맞아야 몰입이 된다 1. 보상을 받아야 동기부여가 된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에 있는 것 아닐까?
의식적으로 뇌를 컨트롤하지 않으면 결국 뇌에게 컨트롤당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뇌는 의외로 멍청하다. 넘 뇌를 믿지 않고 자신의 뇌를 적당히 컨트롤해줄 필요가 있다. 안 그러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별 발전이 없었던 동물에 가까운 원시적인 인간의 뇌 기능의 세계로 흠뻑~ 푹~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인간 개개인에게 입력된 초울트라캡 저차원 뇌 프로그램의 총체적인 지배를 받는 기계적인 로봇의 행태를 지속할 이유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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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동한다. 고로 나의 뇌는 존재한다 :: 2007/04/08 00:01고미숙님의 '나비와 전사'를 읽다가 아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박문호 선생님께 배운 최근 뇌과학의 성과에 따르면 뇌의 존재 이유는 운동(movement)에 있다. 두뇌가 일사분란하게 다른 기관을 통제한다기 보단 운동이 있기 때문에 두뇌가 존재한다는 것.. 지각신경 변환기라는 특수한 뉴런에 의해 뇌는 바깥 세계로 연결되는데, 그 변환기는 감각기관을 만들며 입력을 뇌에 제공한다. 뇌의 출력은 뉴런에 의해 근육과 분비선에 연결된다. 모든 기관간의 긴밀한 네트워킹, 그것이 곧 뇌의 특성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명체는 뇌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뇌를 쓸 일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랑을 위한 과학'의 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상에서 최고의 개체수를 자랑하는 박테리아는 단세포 생물로서, 다세포의 신호체계나 그러한 교신으로 발생하는 복잡한 행동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도 당당하게 생존하고 있다. 무능력하게 보이는 외관과는 정반대로 그들은 북극의 툰드라에서 부글거리는 유황 온천까지 생태학적으로 적합한 모든 장소에서 적응해왔다." 위 내용은 진화에 대한 수직적 개념화와 상치된다. 종의 형태와 다양성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지만 우월성을 매길 수 있는 기초나 특정 계통이 지향하는 정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관점은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에 의한 연결이 뇌의 존재를 낳게 했다면.. '나는 운동한다. 고로 나의 뇌는 존재한다.'라는 관점이 가능하겠다.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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