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에 해당되는 글 18건

결핍과 감사 :: 2018/08/24 00:04

평생을 결핍을 추종하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없는 결핍도 굳이 만들어내면서 결핍을 쫓아가는 삶

그런 와중에 결핍의 지배를 당하면서도
불쑥 불쑥 감사의 마음이 치솟을 때가 있다.

그 때 결핍을 직시하게 된다.
나를 옭아매는 그 결핍이
실은 내 친구였다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때
결핍이 비로소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깨닫게 된다는
결핍과 감사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그 연결 속에서 결핍과 감사는 계속 서로를 응시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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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과 충족 :: 2018/07/16 00:06

결핍을 느끼면
결핍을 채우기 위해 뭔가를 자꾸 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결핍이 잘 채워지질 않는다.

결국 결핍은
계속 멀어져만 가는 목적지가 되어가고

그런 과정 속에서
결핍을 느끼고
결핍을 채우기 위한 무력한 몸짓이 정례화 되어간다.

이 악순환의 고리

이걸 깨는 방법은
마땅히 없다.

어쩌면
존재라는 게
결핍을 느끼고
결핍감에 대응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대응하자고 하면..

결핍감이 생겨날 때
이미 그걸 채웠다고 애써 자위하는 것이다.

애써 자위한다는 게
어찌 보면 초라한 거지만

달리 보면
거대한 선언일 수도 있는 거다.

이미 채웠다.
난 이미 부족하지 않다라고
스스로 독백하는 것..

결핍감은 가상의 감정이다.
가상의 감정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가상의 반대 감정을 억지로 생성하는 것일 수도...

결핍감..
충족감..
결국 하나 아니던가?
같은 건데 정반대의 양태를 띠고 서로를 끌어당기고 밀치고 함께 가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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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 2018/04/23 00:03

사기를 치고 배신을 한다는 것.
누군가를 속여서 이익을 취하는 시도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속이려는 마음과
속아주고 싶은 마음

그 두 마음이 만나서 끈끈하게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지는 화음이 사기이다.

속이려는 마음은
속고 싶은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생존할 수 있다.

속고 싶은 마음이 존재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속이는 것 만큼의 커다란 동기가 필요한 것이고
그 동기를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제법 만만치 않은 장벽이 막아서고 있기 떄문이다.

그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속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 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인식은
정상적인 상황에선 형성되기 어려우니
누군가에게 속아서라도 그 인식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속고 싶은 마음이 탄생하는 것이고
세상엔 그런 마음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속이려는 마음이 횡행하게 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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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을 대하는 태도 :: 2017/03/08 00:08

스타벅스에서 블로깅을 할 때
예전엔 주변에서 소음이 들려오면 좀 민감해지는 편이었다.
옆 테이블에서 대화가 좀 시끄럽게 전개되는 느낌이 들면 귀가 자꾸 그 쪽으로 당겨지면서 예민해지는 흐름을 막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어폰을 꺼내서 음악을 듣곤 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음악을 별도로 듣는다는 게 그리 즐거운 경험은 아닌 것이고.

그래서 스타벅스에서 소음을 만나면 나름 당황하게 되는 흐름이 계속 이어져 왔던 것 같다.

그런데
스타벅스에서의 공간감이란 경험을 하게 되면서
소음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도 조그만 균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주 기분 좋은 균열.

스타벅스에서 공간감을 느끼며
결핍감 없이 온전히 스타벅스에서의 시간에 집중하게 되자
예전과는 달리 소음에 대한 나의 태도가 굉장히 편안해지고 부드러워진다.

소음이 들려도 그것에 귀가 감각을 곤두세우지 않는다.
그냥 소음이려니 하게 된다.
스타벅스에 흐르는 음악과 유형이 좀 다를 뿐 앰비언트 사운드라는 차원에서 수용 가능한 정도의 소리라 인정하게 된다. 그냥 스타벅스에서 흘러나올 수 있는 소리라고 인정하게 되자 소음 민감도는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결핍감이 덜한 공간에서
소음을 전보다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되니
스타벅스는 더욱 더 나에게 있어 흐뭇한 공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공간감을 다른 공간에 어떻게 하면 전이시킬 수 있을까란 생각도 하게 된다.
결국 핵심은 나의 뇌가 무엇을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라면
이런 공간감은 충분히 스타벅스 밖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스타벅스에서 이런 느낌을 계속 만끽해 나가다가
나중에 확장성의 기회를 차근차근 엿보아야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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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의 공간감 :: 2017/03/06 00:06

이상하게 스타벅스에 있으면 글이 잘 써진다. 물론 좋은 글이 잘 써진다는 건 아니고 그냥 떠오르는 단상을 글로 옮겨 적기가 매우 수월하다. 아니.. 생각이 딱히 없어도 스타벅스에 앉아 있으면 그냥 글이 잘 써진다. 신기하다. 왜 그럴까.

결핍감이 덜해서인 것 같다.
일반적인 장소에선 블로깅을 할 때 뭔가 다른 행위를 하고 싶어진다. 뇌가 결핍감을 느낀다는 얘기. 그러다 보니 글에 집중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뭔가 글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완결감이 덜하다는 것.

그런데
스타벅스에 있으면
뇌가 충만감을 느끼나보다.
딱히 결핍감이 없다 보니 스타벅스에 있으면 맘이 편안해짐을 느끼고
그런 편안감이 온전히 단상과 글에 집중하게 하는 흐름을 낳게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단상도 잘 떠오르고
글도 잘 써지고

차원이 다른 경험이 스타벅스에서 가능해진다.

이런 공간감을 느끼며 글을 적는 기쁨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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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자막 :: 2017/01/25 00:03

넷플릭스를 통해 수많은 영화/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막이 뜬다. 영어 자막이 뜬다.

예전에 그걸 그렇게도 보고 싶었는데

이제 넷플릭스로 그걸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참 무서운 것이

결핍이 있을 때는 그렇게 간절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그게 이제 구현이 되니까

이젠 다른 꿈을 꾸게 된다.

이건 거의 숨바꼭질이다.   무한루프에 가까운 숨바꼭질.

내가 필요로 했던 건 영어 자막이 아니라
결국 영어자막을 필요로 했던 나의 결핍감이었군. 
난 속은 것인가. ㅎㅎ

넷플릭스로 외국 드라마/영화를 보면서 영어 자막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뇌는 또 다른 결핍감을 향해 내달리려 하고 있다.

나의 뇌에게 속삭여 본다.
"너 어딜 그렇게 서둘러 가니 그럴 필요 없단다 얘야"

결핍감 자체를 추구하는 나의 뇌. 그 끝없는 결핍 고리 사슬.
그걸 잠시 끊어놓고 지금 내 눈에 펼쳐지고 있는 영어 자막의 화려함에 잠시 취해 본다.
예전에, 절대 그런 걸 구경할 수 없던 그 시절로 돌아가 본다.

새로운 결핍감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보다
예전에 충족되지 못했던 결핍감을 향해 반추하는 여행이 더 짜릿하고 스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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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자체가 이유이다. :: 2013/11/01 00:01

***한다면 난 행복할거야.

모순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엔 이유가 없는 거다.

이유를 대는 순간 휘발되는 게 행복이라서 그렇다.

행복을 인과의 과에서 인으로 포지션 이동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행복을 머나먼 곳에 존재하는 파랑새로 단정하지 말고, 지금 여기서 내가 호흡하고 있는 공기와도 같은 존재인 것으로 간주해 보자. 행복을 파랑새처럼 여긴다면 지금 내가 가질 수 없는 뭔가를 행복으로 규정하게 되고 현재의 나의 상태를 다양한 관점에서 '결핍'으로 형상화하게 된다. 왜 멀쩡하게 잘 지내고 있는 나 자신을 어설프게 정의된 행복 때문에 자꾸 모자람이란 이름으로 표현해야 하는가. 그렇게 나의 모습을 낮추면서 얻어낸 행복의 상이 결국 나 자신을 갈증으로 휘감을 것이고 나는 그로 인해 끝없는 행복 추구의 여정을 밟아 나가야 할텐데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또한, 그렇게 해서 행복에 준하는 뭔가를 얻어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행복한 것인가? 그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공허함 가득한 행복허상 놀이를 한 것이다. 행복 앞에 뭔가가 선행하면서 이유가 되는 구도를 전제하기 보단, 행복 앞에 아무 것도 없고 오직 행복 자체가 존재하고 행복에서 파생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집중을 해보자. 그럼 행복 앞에 뭔가가 원인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면서 행복 자체가 이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난다. 그리고 행복 자체가 원인이 되면서 이유로서의 행복을 다양한 양상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된다.

행복을 인과의 과에서 인으로 포지션 이동시킬 때 행복은 허상에서 실재로 변이한다.

어설픈 이유를 없애는 순간 실체가 명확해지는 게 행복이라서 그렇다.

행복 자체가 이유인 것이다.

모순을 보정할 때 행복허상 놀이는 종료된다.

난 어떤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 그것으로부터 어떤 결과가 파생되는가? ^^




PS. 관련 포스트
존재는 이유다.
현재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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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로봇이 있으면 좋겠어요. :: 2013/07/24 00:04

우연히 롯데백화점을 들렀다가 '지금은 로봇시대!展'을 보게 되었다.



한 코너에 가보니 '내가 갖고 싶은 로봇, 발명하고 싶은 로봇'을 주제로 아이들이 포스트잇을 빼곡히 붙여놓은 게 있어서 한 번 쭉 훑어 보았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남자애들 패는 로봇, 강아지 로봇, 백점 맞는 로봇, 숙제해주는 로봇, 일기 대신 써주는 로봇, 공주 로봇, 왕자 로봇, 아무거나 다해주는 로봇, 뭐든지 다 되는 로봇, 힘들 때 달래주는 로봇, 내 말만 듣는 불사조 로봇, 시키는 대로 하는 로봇, 엄마 도와주는 로봇, 심부름 로봇, 청소 로봇, 자동차 로봇, 진료하는 로봇, 놀아주는 로봇, 아기 재워주는 로봇, 아이 돌봐주는 로봇, 안마를 해주는 로봇, 집안일 해주는 로봇 (빨래,청소,설거지), 책 읽어주는 로봇, 요리해주는 로봇, 학교가주는 로봇, 춤추는 로봇, 백점 맞게 해주는 로봇, 소원을 들어주는 로봇, 나를 예쁘게 만들고 숙제를 해주는 로봇, 도우미 로봇, 경비 로봇, 친구 로봇, 일을 도와주는 로봇, 목욕을 시켜주는 로봇, 특히 과학시험을 대신 봐주는 로봇, 미술 로봇, 우리 가족을 즐겁고 건강하게 해주는 로봇, OOO 때리는 로봇, 악당을 물리치는 로봇, 도라에몽 같은 것


내게 필요한 로봇은 뭘까?
나는 누구에게 어떤 로봇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일까?
세상은 봇을 필요로 하고 스스로 봇이 되는 '봇 월드'가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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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알고리즘 :: 2012/03/23 00:03

스마트 디바이스의 대중화로 Always-ON이 보편화되면서 일과 놀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란 느낌이 살짝 들긴 하나, 그건 비즈니스적 니즈에 의해 소비자들의 놀이 속에 일이 침투하는 현상이겠고 소비자 본위의 일-놀이 경계 허물기 현상은 아닐 것이다. 소비자들의 놀이 속에 일이 침투하고 소비자들의 현실 속에 게임 비즈니스가 침투하는 것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비즈니스가 소비자를 완전 봉으로 가지고 노는 작금의 현실. ^^

비즈니스적인 압박에 의해 놀이와 일 사이의 구분이 없어지고, 게임과 현실 간의 격차가 사라지고 있다 해도 놀이/게임엔 일/현실이 갖지 못한 엄연한 엣지가 있다. 그건 바로 자유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많은 것들이 편리해졌지만 그 편리함 속에서 사람들은 자유를 과연 키워가고 있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훨씬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여유는 결핍되어가는 모습. 과연 무엇이 좋아진 걸까? ^^

자유는 점점 희소자원이 되어가고 있다.

문제는 자유가 희소해지고 있다는 것 보다는 자유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자유는 무엇인지,  그 자유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부터 명확히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일 속에서, 현실 속에서 미세하게나마 자유를 느끼고 그 자유를 나만의 방식으로 증폭시켜 나갈 수 있다면 그 때서야 비로소 일과 놀이 간의 경계, 게임과 현실 간의 벽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일-놀이 간의 경계, 게임-현실 간의 벽을 허물 수 있는 레버는 자유 증폭력에 있다. 인간에게 중요한 화두는 자유의지가 아니라 자유의식이다. 내게 허용된 미세한 자유를 분명히 인지하고 그걸 가꿔나가는 능력. 자유의식의 힘만이 일과 놀이의 경계를 허물 수 있다.

놀이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
그건 내가 갖고 있는 희소한 '자유'라는 소중한 자원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생각해보라. 내가 갖고 있는 자유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마이크로 현미경으로 들여다 봐야 보일 것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마이크로인 동시에 거대한 매크로의 세계가 보일 것이다. 미세한 양자 속에 우주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



PS. 관련 포스트
무엇이 희소한가?
놀이, 알고리즘
게임, 알고리즘
보상,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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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0:56 | DEL

    Hi there everyone, I be familiar with YouTube video carries fewer bytes of memory due to that its quality is awful, but this YouTube video has great picture quality Read & Le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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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수동태이다. :: 2012/03/19 00:09

나는 무엇을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갖고 싶어 하고 무엇을 누리고자 하는가?
욕망의 근원은 무엇일까? 결핍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의 욕망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욕망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온전한 나의 결핍감이 아닌 것 같다. 결핍감은 나의 외부에서 내게로 주입된 일종의 강박인 것 같다. 나로 하여금 결핍을 강하게 느끼고 그로 인해 욕망을 자가생산하며 그 욕망에 의거해서 행동하고 그 행동이 뭔가에 의욕과 시간과 돈을 투입하게 만드는 누군가가 나의 욕망을 조정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욕망은 인간 스스로가 생산하기 보다는 외부로부터 주입 받는 경우가 많다. 주입된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욕망 BM'이 굳건히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욕망 BM의 서식처이자 번식처이다. 내 안에서 욕망 BM의 서식/번식이 활발할 수록 나의 욕망은 더욱 요동을 치며 욕망과 결핍감의 뫼비우스 띠는 증폭에 증폭을 더해간다. 거대한 욕망 BM의 쓰나미적 물결이 인간 무리를 덮치면 덮칠 수록 욕망은 인간 관점에선 철저히 수동태적 양태를 띤다.  


욕망은 수동태이다.

욕망이 수동태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걸 인정할 때
질문은 아래와 같이 바뀌게 된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욕망은 누가 주입한 것일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결핍감은 누가 입력한 정보일까?
나의 욕망과 결핍감은 무엇을 향해 디자인되고 있는 것일까?

온전한 나만의 욕망과 결핍이 존재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내가 얼마나 속절없이 의도된 욕망/결핍감을 주입 받고 있는지를 아는 것.
그것이 수동태적 욕망 메커니즘에서 빠져 나와 진정한 나만의 욕망을 생산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


PS. 관련 포스트
허위욕구와 백야
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BM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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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원하는가? :: 2012/03/09 00:09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8.0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옆자리에 앉아 계신 분께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란 책을 읽고 계시길래 살짝 훔쳐 보았다.
곁눈질하면서 보다 보니 책 내용을 읽기 보다는 흥미로운 단어 2개가 눈에 띄었다.
협상.. 그리고 감정.. ^^

의사결정은 이성보다 감정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이성은 결코 감정의 상위 개념이 아니다.  감정은 이성의 기저에서 이성을 좌지우지한다.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실은 감정이 이미 내린 결정을 이성이 뒷북 치듯이 수습하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잘 포장해 주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한 인간은 그가 표출하고 응축하는 감정의 합으로 구성된다. 인간은 그가 산출한 감정으로 규정된다. 감정은 인간의 아이덴티티를 직조한다. 좋아하는 것은 대개 강점으로 연결되고 싫어하는 것은 대개 약점으로 연결된다. 의사결정은 대개 좋아하는 것과 강점에 기반한 모습으로 내려지기 쉽고, 싫어하는 것과 약점을 회피하는 모습으로 내려지기 쉽다.

협상은 의사결정자와 의사결정자 간의 대화이다. 서로 각자가 원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양 쪽이 원하는 결론이 상충되거나 어긋나기 일쑤이고 그것을 푸는 과정에선 필히 상대방의 감정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의사결정에 감정은 반드시 개입된다.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논리적으로만 협상을 이끌어가려고 하면 결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 협상은 논리와 논리 간의 교섭이라기 보다는 감정과 감정 간의 통신이라고 봐야 한다. 협상은 감정 터치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의 방법론을 고민하기 전에 '원한다'의 의미를 먼저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원한다'는 것은 감정이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뭔가를 원한다는 것은 뭔가에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단 원함의 기저에 감정이 도사리고 있음에 주목해야서 한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란 책을 곁눈질하면서 얻게 된 질문,
'왜 원하는가?' '무엇이 나의 원함을 자극하는가?'

원함의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 한 번 들여다 보자.
원하는 것을 얻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고, 원하는 것 중의 일부는 쓰잘머리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원함의 노하우를 키울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감정과 마찬가지로 원함도 역시 관찰과 응시의 영역인 것이다.  세상에 관찰에 당해낼 장사는 없다. 응시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에너지 활동인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감정,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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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1:19 | DEL

    Hello, I log on to your blogs daily Read & Lead -. Your writing style is witty, keep up the good work!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1:19 | DEL

    I am sure this %title% has touched all the internet users, its really really fastidious piece of writing on building up new blog.

  • BlogIcon 고구마77 | 2012/03/09 12: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미 세상을 떠나셨지만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중에 인상깊었던 부분이 있었슴다
    '집착'하는 행동의 기저에 깔린 감정이 '결핍'이라는 얘기였어요.
    어찌보면 원한다는 감정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집착이라는 행동으로 표출되는것인데
    그런면에서 원한다는 감정이란 결핍감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3/10 11:16 | PERMALINK | EDIT/DEL

      결국 내 감정과 의도의 근원을 추적하다 보면 나 자신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귀한 댓글 덕분에 오늘도 중요한 배움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PS. 오늘 알려주신 '결핍'이란 단어를 태그에 추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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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전한 뇌 :: 2010/11/01 00:01

질량을 부피로 나눈 값이 밀도이다. 분자로 빽빽한 고체는 밀도가 높고 액체,기체로 갈수록 밀도가 낮아진다. 밀도는 분자 관점의 개념이다. 만약 분자가 노이즈이고 빈 공간이 주인공이라면. 밀도는 오염도를 의미하게 된다. 빈 공간(?)은 분자 바깥을 ambient하게 채우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분자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다.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의 내부도 대부분 빈 공간이다. 원자를 구성하는 소립자도 마찬가지다. 빈 공간에 대해 가져왔던 우리의 무의식적 관점에 새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빈 공간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empty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적극적인 스탠스일 가능성이 높다고나 할까.

인간은 빈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빈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자신이 빈 공간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자신을 실체라 생각하기에 자신 주위의 빈 공간을 허전하다 생각하고 계속 그 공간을 뭔가로 메워 나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인간 자체가 빈 공간이기 때문에 자신 주위의 빈 공간을 채워보았자 결국 빈 공간이다. 그리고 자신 주위의 빈 공간도 자신 내부의 빈 공간 못지 않은 거대한 empty 밀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걸 채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간 내부와 인간 외부는 empty 상태에 놓여 있다. 아니 인간 내부와 외부의 구분은 그닥 의미가 없다. 그걸 인식하지 못하면 평생을 채움을 향한 레밍적 몸짓으로 일관하게 된다.


인간의 뇌는 허기져 있어서 항상 뭔가를 채우고 싶어한다. 아마 그런 뇌의 본능이 웹 서핑을 거대한 놀이로 발전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 웹서핑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무의미한 클릭질을 중단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다.그건, 인간의 뇌가 그저 뭔가 정보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정보의 유용성 보다는 정보가 채워지는 포만감에 훨씬 더 본능적으로 민감하다. 그래서 정보가 가득한 웹은 시간을 먹는 기계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정보에 허기진 뇌와 정보가 충만한 웹의 환상적 궁합을 직시한다면, 웹을 대할 때 일정한 규칙을 설정하는 것이 필수임을 인지하게 된다. 안 그러면 뇌는 허겁지겁 닥치는 대로 조각 정보를 집어삼키려 할 것이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이 스토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빈 공간을 채우고 싶어하는 본능과 연관이 깊다. 인간은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좋아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빈 공간을 채우고 싶어하는 뇌의 본능에 맹목적으로 반응할 필요는 없다. 채우고 싶은 본능을 잠시 멈추고 비어 있는 공간 자체를 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다소 육성할 필요가 있다.  비어 있는 건 결코 결핍이 아니다. 그 자체로 충만한 표현할 수 없는 존재감이 분명 빈 공간 안엔 있다. 빈 공간을 억지로 채우면 허전함은 더욱 깊어진다. 허전한 뇌가 결핍의 충만감에 익숙해져 갈 때 인간은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단순 기계의 지위에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다.

비어 있는 것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



PS. 관련 포스트
속뇌, 알고리즘
인과,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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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ale

    Tracked from toms sale | 2013/06/13 11:40 | DEL

    I read this paragraph completely about the comparison of latest and previous technologies, it's remarkable article Read & Lead - 허전한 뇌.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1:41 | DEL

    It my first go to see to this site %title%, and I am truly surprised to see such a good feature YouTube video posted at this point.

  • sugar408 | 2010/11/13 23: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런글이 저한테 필요 헀던거 같아요
    왠지모르게 내가 비워있는게 비워있는게 아닌데
    억지로 채울려니까 오히려 역효과가 났던것같네요 ^^

    • BlogIcon buckshot | 2010/11/14 08:58 | PERMALINK | EDIT/DEL

      허전하지 않은데 허전하게 느끼는 것. 그걸 간파하는 것이 핵심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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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에너지 준위차에 의한 '관심'의 이동 :: 2010/07/26 00:06

인터넷은 우리의 주의력을 결핍시키고 있는가?
트위터/페이스북이 우리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트위터 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 수가 있다. 하지만, 책에 정말 집중하고 있었고 책을 통해 얻는 가치가 분명하다면 트위터로 인해 독서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을까? 트위터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급줄어든 것이 아니라, 책 읽기에서 그닥 가치를 얻지 못하고 있던 차에 책 대비 그닥 밀리지 않는 가치를 주는 트위터를 만났을 뿐이다. 온-오프라인 텍스트의 평준화 현상은 책의 체감가치를 감소시킨다.

트위터,페이스북 땜에 주의력 결핍 현상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주의력을 집중할 만한 대상이 딱히 없기 때문에 산만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확실한 집중 포인트를 갖고 있는 사람은 트위터/페이스북에 휘둘리지 않는다.

결국 가치 에너지 준위차에 의한 '관심'의 이동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은 인간 주의력을 결핍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그 동안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로의 접속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는 쪽으로 관심을 이동시키기 마련이다.

인간은 거대한 가치 네트워크 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항상 더 나은 가치를 무의식적으로 추구하기 마련이다. 예전에 책을 통해 얻었던 가치 이상의 그 무엇을 트위터가 제공한다면, 인간 관심의 상당량은 책에서 트위터로 이동할 수 밖에 없다. 예전보다 책 읽는 시간이 줄었다고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트위터를 통해 예전에 책을 통해 얻지 못했던 뭔가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은 가치 네트워크를 새로운 국면으로 인도하고 있다. 트위터/페이스북은 기존 가치 에너지 준위 구도에 균열을 일으키며 새로운 준위차를 생성한다. 중요한 건, 내가 새로운 가치 플로우 시스템 내에서 무엇을 얻고 잃는지에 대한 감을 갖는 것이다. 그 속에서 내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에 어떤 전략으로 임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무심코 보내는 나의 일상 속에 뉴 미디어에 대한 나의 대응 전략이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의식적으로 들여다 보고 해석하는 놀이를 즐길 필요가 있다. ^^



PS. 관련 포스트
"인터넷은 우리를 바보로 만드는가?"란 질문 자체가 바보 ^^
핑커 vs. 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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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tore

    Tracked from toms store | 2013/06/13 10:48 | DEL

    In fact no matter if someone doesn't know afterward its up to other visitors that they will help, so here it happensRead & Lead -.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0:48 | DEL

    It remarkable to go to see this website and reading the views of all mates about this paragraph%title%, while I am also zealous of getting experience.

  • Dynamic | 2010/07/26 10: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Trade off. 한가지를 얻으면 한가지를 잃어야 하는 것이지요.

    • BlogIcon buckshot | 2010/07/26 23:53 | PERMALINK | EDIT/DEL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트레이드오프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

  • BlogIcon allther | 2010/07/27 13: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말씀하신 부분도 있지만, 한가지 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트위터같은 경우에는 단문이라 언제든 1,2분만이라도 시간을 낸다면 부담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반면에 (일하다 짬짬히, 차안에서 이동하다가,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책은 아무리 가벼운 책이라도 트위터보다는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되고 정신적인 부담도 아무래도 더 크다는 건데요.

    그러다보니 손에 쉽게 잡히는 트위터를 할 수록 손에 좀 덜 잡히는 책은 멀어지는 것 같아요. 어느정도는 책에서 얻는 가치가 트위터보다 크더라도.

    • BlogIcon buckshot | 2010/07/27 21:24 | PERMALINK | EDIT/DEL

      예, 동의합니다. 트위터는 분명 책에 비해 사용자의 주목을 소비하는데 있어 유리한 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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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을 팔로우한다 :: 2010/06/18 00:08

게임 중독, 트위터/아이폰중독.. 중독은 삶의 지향 결핍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길을 잃은 거다. 그런데, 길을 잃지 않고서 길을 찾을 수 있긴 한 걸까?  중독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확실히 길을 잃은 자는 역으로 확실히 길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구나 길을 잃는다. 문제는 '길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이다.

세상엔 다양한 중독이 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강력한 중독은 아마 시장(마켓)중독일 것이다. 자존감 있는 인간이길 포기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팔리는 스펙 좋은 상품이 되고자 하는 욕망의 범람. 그게 시장 중독이다.

시장의 중심에 수익 창출을 통해 생존을 영위하는 '기업'이 존재한다. 기업에 다니는 자를 회사원이라 부른다.
회사원은 고용된 자이다 보니 회사에서 부여한 역할에 충실하면서 돈을 번다. 지위가 높아지면 좀 나아지긴 하겠으나 전반적으로 자기 마음대로 뭔가를 하기는 쉽지 않다. 회사원 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니 답답해서 자기사업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회사원이나 자기사업을 하는 자나 모두 자기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 비즈니스는 결국 고객 마음대로 하는 거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비즈니스는 없다.
회사를 다니든, 자기사업을 하든, 비즈니스는 고객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다. 비즈니스는 '고객 마음 맞추기' 게임이다. 돈을 버는 대가로 고객 마음을 철저히 따라가는 '자기 소외'의 과정. 그게 비즈니스다.  (자본주의는 정말 최고의 알고리즘인 것 같다. 어떻게 인간을 이리도 처참하게 인간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자본주의 알고리즘에 철저히 예속시켜 로봇처럼 움직이도록 만들었단 말인가? 정말 위대한 알고리즘이다. 존경한다. ^^)

비즈니스 종사자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인간소외' 플랫폼에 강력 lock-in된 극소 노드다. 돈 받고 고객 마음만 follow하는 자아소외 말고 내 자신의 마음을 팔로우하는 나만의 놀이가 필요한 것이다.
소외된 '나'의 마음을 따라가고 '나'의 마음을 맞추는 게임이 필요하다. 내겐 블로깅/트위팅이 바로 그것이다.

시장 중독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가격으로 환원되기 힘든 '인간'이란 존재가 다양한 국면에서 가격 환원되면서 살아간다는 것. 높은 가격으로 환산되었을 때 기뻐하고 낮은 가격으로 계산되었을 때 슬퍼하는 시장 중독 환경에서 길을 잃고 지내면서도, 때론 시장 중독 알고리즘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소외된 자신을 돌아보고 그 누구도 아닌 나의 맘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읽고 리드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 중독 시대 속에서 즐기는 블로깅과 트위팅은 오늘도 나에게 작지만 소중한 자존감을 선물해 준다. 타존의 시대를 건조하게 살아가면서 작은 것을 크게 기뻐할 수 있다는 건 참 흐뭇한 경험이다. ^^




PS. 관련 포스트
자존, 알고리즘
타존, 알고리즘
동기, 알고리즘
가격,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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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태현 | 2010/06/18 09:31 | PERMALINK | EDIT/DEL | REPLY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고객 마음을 맞추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게 되더군요.

    그 와중에도 자존감을 살릴 수 있는 트위터와 블로그.
    정말 좋은 선물인 것 같습니다. 마음껏 소통하고 마음껏 내 생각을 펼치고...

    벅샷님, 오랜만에 댓글 남기는 것 같습니다. 건강하시죠? =)

    • BlogIcon buckshot | 2010/06/19 11:24 | PERMALINK | EDIT/DEL

      타인의 마음을 맞추는 것과 내 마음을 맞추는 것. 나와 타인의 마음의 공명을 맞추는 것. 어렵고도 흥미진진한 놀이인 것 같습니다. 블로그와 트위터를 하면서 그 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 같구요. 귀한 댓글 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 챨리 | 2010/06/18 18:00 | PERMALINK | EDIT/DEL | REPLY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업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게 중에는 자아를 소외시키지 않고 자아와 비슷하게 사업 모델을 만들고 또 사업과 함께 자아를 발전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쉽게 되는 건 아니고 높은 수준의 용기와 도전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죠. 자본주의의 유일한 희망은 바로 그런 경계에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06/19 11:32 | PERMALINK | EDIT/DEL

      자아와 사업이 절묘하게 공명되는 지점에 위치할 수 있다면 매우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정체성이 흐릿해지는 '경계'를 어떻게 역동적으로 생성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하구요. 주신 댓글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전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 BlogIcon 토댁 | 2010/06/18 21:0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시원한 빗줄기가 하루를 시작하게 한 오늘이였습니다.

    더운데 잘 지내시는지요?^^
    요즘 이 토댁은 고추도 따고, 토마토 따고...]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틈틈히 하는 트윗으로 문명을 실감하고 있습니다..ㅎㅎ
    내남자 눈치 보면서 하는 아이폰으로의 트윗질은 더 잼납니다, ㅋㅋ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0/06/19 11:34 | PERMALINK | EDIT/DEL

      바쁜 일상을 행복으로 채우고 계신 토댁님을 항상 부러워 합니다. 트윗질은 정말 잼난 것 같습니다. 제 아이폰은 사실상 트윗폰입니다. ^^ 즐거운 주말 되세영~ ^^

  • | 2010/06/19 21: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06/19 21:43 | PERMALINK | EDIT/DEL

      저도 잘 모르고, 많이 부족하지만 귀한 댓글을 주셨기에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

      타임라인 상에 흐르는 트윗을 다 읽어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엔, 타임라인을 스캐닝하면서 맘에 들어오는 트윗에만 집중하고 거기서 생각의 단초를 찾는 편입니다. 눈에 띄는 트윗을 주의깊게 읽어보면서 핵심 키워드를 추출하고 그 키워드를 중심으로 생각을 발전시키다가 그것이 구체화되면 트윗을 올리기도 하구요.

      아무래도 평상시에 여러가지 키워드를 맘 속에 품고 있는 상태에서 트윗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초점이 있다면 아무리 빠른 속도로 타임라인이 흘러간다 해도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트위터 사용에 그리 능한 편이 아니라서 앞으로 많은 개선 및 최적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주신 귀한 댓글이 제 생각을 정리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 BlogIcon ego2sm | 2010/06/24 20:1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제 오픈캐스트 No.90에 링크 캐스팅했습니다^^
    http://opencast.naver.com/EG788/90
    (오늘 기분좋게도 베스트 No.에 소개되었네요)
    자존감을 선물해주는 블로깅과 트윗팅을 저도 무지무지 사랑해요~

    • BlogIcon buckshot | 2010/06/25 21:16 | PERMALINK | EDIT/DEL

      감사합니다. 어쩐지 오픈캐스트로부터 리퍼러가 많이 잡히더라구요. ^^
      날이 가면 갈수록 블로깅/트위팅의 소중함을 실감하게 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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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확, 알고리즘 :: 2010/03/12 00:02

작년 5월부터 시작한 트위터는 나에게 있어,
140자 이내로 생각을 표현하는 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트위터의 140자 제한은 표현을 '제약'한다.
그런데, 표현의 제약은 참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생각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키워드만 살아남게 되는 과정은 마치 다윈의 적자생존의 진화 게임을 방불케 한다. 140자를 훌쩍 넘는 초기 문장을 구성하는 키워드 간의 격한 경쟁이 일어나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키워드들과의 합종연횡이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그런 프로세스를 통해 writer의 의도에 대해 가장 높은 적합도를 보이는 키워드 일부가 살아남게 된다.  표현의 제약 때문에 허튼 표현을 쓸 수가 없게 되고 꼭 필요한 단어 위주로 생각을 구조화하게 된다. 제약은 우선순위를 낳고 우선순위는 내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게 해준다.


트위터의 140자 제한은 '생각 확장'을 가능케 한다.
트위터 140자 제한은 표현 제약으로 인한 오해를 낳기도 한다. 심지언 나조차 내가 적은 트윗을 나중에 읽을 때 오해할 때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오해는 의미의 확장으로 재인식될 수도 있다. 내가 의도한 취지를 압축해서 표현한 글을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내 의도와 다른 쪽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건 글에 사용한 골격과 키워드가 확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연 설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을 특정 방향으로 확 고정시켜 버리지 않을 수 있고, 적당한 모호함을 갖는 트윗 메시지는 추후에 다른 의미로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은 트위터의 중요한 매력 중의 하나이다. 아마도, 모호함은 혁신의 이웃사촌 쯤은 될 것이다. 고로, 트위터는 생각 확장과 혁신을 자극하는 플랫폼이다.
키워드 중심으로 골격만 잡기 때문이다.


트위터 140자 제한은 컨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결핍'을 생성한다.
트윗을 하면서 느끼는 재미있는 감정. 적고 적고 또 적어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런 느낌이 지속되기 때문에 트윗을 계속 하게 되는 것 같다. 함축적이고 다소 모호한 메시지를 계속 생성한다는 것은 사고의 수렴보다는 사고의 확산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핵심 키워드만으로 트윗을 날리다 보니, 핵심 키워드와 핵심 키워드 간의 중력이 작용하면서 새로운 컨텍스트가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컨텐츠와 컨텐츠가 만나 컨텍스트를 만들어 내고 그 컨텍스트는 다른 컨텍스트/컨텐츠와 만나 새로운 컨텍스트를 낳게 되고.. 트위터는 사람과 사람 간의 느슨한 네트워크이기 전에 생각을 구성하는 키워드와 키워드 간의 느슨한 네트워크이기도 하다. 뭔가에 대한 지속되는 결핍감은 나를, 타인을, 나와 타인 사이를 채우면서 트윗 타임라인은 그렇게 흘러만 간다.



표현의 제약을 통한 생각의 압축,
생각의 압축을 통한 생각의 확장,
생각의 확장을 향한 끝없는 결핍감. 

트위터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내게 있어 트위터는 대화의 장이라기 보다는 나의 생각을 압축하고 구조화하고 확장하는 생각 수련의 플랫폼인 것 같다. 

한계를 통한 확장.  '한확(限擴), 알고리즘'. ^^



PS 1. 트위터의 티핑 포인트는 어디에 있을까?
트위터의 핵심가치가 '쌍방향 대화'가 아니라 '일방향 Follow', '혼잣말에 가까운 트윗"이란 것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싸이월드 프레임으로 트위터를 바라보면, 트위터의 핵심가치에 대해 혼동하기 쉽다 일방향 follow가 기본 골격인 서비스에서 마주보기와 쌍방향 대화를 추구하는 건 무리다. ^^

PS 2. 관련 포스트
휘발,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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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1:16 | DEL

    What a funny blog! I genuinely Read & Lead - 한확, 알고리즘 loved watching this comic video with my family as well as along with my mates.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1:16 | DEL

    I got so bored today afternoon, however as soon as I watched this %title% funny clip at this blog I become fresh and glad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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