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해당되는 글 10건

거울폰 :: 2016/02/19 00:09

지하철, 버스, 거리..

폰을 보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렇게 폰 속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난 거울을 본다.

폰은 거울이다.

사람들은 폰을 갖고 여러가지 행동을 하지만
결국 하는 행동은 '나'를 보는 것으로 귀결된다.

폰 속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그런데..
거울은 그렇게 많이 볼 필요가 없는 도구이다.
그저 필요할 때 잠깐만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울을 자주 본다는 건
불안함을 의미한다.

결국 사람들은 폰을 수시로 들여다 보면서
불안을 표현한다.

그리고 표현된 불안은 폰 속에 투영되면서 또 다른 불안을 생성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불안은 폰에 대한 집착을 더욱 가중시킨다.

거울을 자주 보는 악순환 구조는 그렇게 고착화 되어간다.

세상에서 제일 많이 보급된 제품.. 거울 폰..
그건 세상에 불안이 거대한 규모로 생산, 배급, 배포, 복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불안한 만큼 거울폰을 자주 보게 되는 이 시대.
폰 속에 비친 불안한 나의 모습.
그 모습이 안정을 찾을 때, 폰은 거울이 아닌 한낱 도구로 바람직하게 전락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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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0/09 00:09

창밖 뉴욕
마테오 페리콜리 지음, 이용재 옮김/마음산책

창밖 풍경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창 너머 세상만큼이나
스스로를 드러낸다.


위 문장에 반해서 이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읽는 내내 위 문장이 마음 속을 맴도는 것을 느꼈다. 

정말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 만의 창을 가지고 있고, 그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창 밖에 보이는 풍경은 사실 나의 밖에서 펼쳐지는 풍경이라기 보다는 나의 심상이 밖으로 투영된 또 하나의 '나'에 가까운 상이다.

창밖 풍경은 일종의 동적 캔버스이다. 그 위에 나는 나만의 그림을 그려간다. 기억이라는 게 저장된 정보가 아니라 끊임없이 소환되면서 재구성되는 동적 정보의 연결체에 가깝다면, 창밖 풍경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건 그냥 밖에 존재하는 고정된 광경이라기 보단 내가 시선을 줄 때마다 끊임없이 새롭게 소환되며 재구성되는 동적편집 정보의 집합체에 가까운 것 같다.

창밖 풍경에 대해 말하는 것은 창밖 풍경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나의 마음 흐름'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건 외부에 대한 묘사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것이 축적되는 과정 속에서 창밖 풍경은 더 이상 외적 존재가 아닌 나와 연결된, 나를 구성하는, 나를 설명해주는 그 무엇이 되어간다.

누구나 자신 만의 창밖 풍경을 갖고 있다. 그 풍경을 그냥 나의 밖에 존재하는 풍경이겠거니 여기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보면서도 그것이 자신인 줄을 모르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럼 '나'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왜 나를 알아봐주지 못하는가? 도대체 언제 나를 알아봐줄까?

세상은 거대한 거울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언제 어느 곳에 머물든, 내가 언제 어느 곳을 스쳐 지나가든, 나는 해당 시공간에서 나를 응시하게 되어 있다. 나는 시공간을 흘러가면서 나를 끊임없이 만나는 재귀적 존재인 것이다.

지금 창밖 풍경이 어떠한가? ^^




PS. 관련 포스트
평가와 거울반사
미디어는 거울이다.
비난과 자성 사이
거울 리더십
존중 생산
시장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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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아크몬드 | 2013/10/10 18:2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제 창은 거대한 Windows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 마음 속 한자리에는 언제나... ㅎ

    • BlogIcon buckshot | 2013/10/11 09:27 | PERMALINK | EDIT/DEL

      한 편의 '시'와도 같은 댓글을 주셨습니다.
      넘 멋진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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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고로케를 보며 반성한다. :: 2013/07/08 00:08

충격 고로케에서 실시간으로 집계하는 낚시성 기사 키워드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착잡하다. 언론사와 수많은 뉴스 소비자들의 절묘한 궁합에 의해 탄생한 스타(?) 키워드의 위엄. 온라인에서 뉴스는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대중이 가장 원하는 것이 과연 이것일까.

충격  경악  결국  멘붕  발칵
부디 꼭 클릭해달라고 독자에게 간곡하게 부탁하거나
독자를 낚아보기 위해 언론사가 기사제목에 덧붙이는 일종의 `주문`

헉!  폭소  무슨일  이럴수가  알고보니  화들짝  이것  살아있네
이것이 무엇인지 제목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니, 궁금하면 클릭해보라며
독자에게 클릭을 간곡하게 부탁하는 일종의 `호객행위`

살아있네  몸매  미모  숨막히는  물오른  얼짱녀
언론사가 독자들에게 (주로) 여성의 몸매를 함께 관음하자고,
포르노 사이트가 전시하듯 대충 쓴 설명과 함께 제공하는 저퀄리티 포토 서비스



이런 현상이 횡행하는데 나의 클릭도 한 몫 했을 거라는 자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화려한 낚시성 키워드로 구성된 태그 클라우드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충격 고로케는 나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냉엄한 거울인 듯 하다.

반성을 해야겠다.

충격의 주술, 경악의 주문에 현혹되지 않도록 손가락의 중심을 단단히 바로잡아야겠다.




PS. 관련 포스트
렌즈의 원칙, 고통의 원칙 -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 (Winning With People)
비난과 자성 사이
거울 리더십
시장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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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거울 :: 2013/07/01 00:01

투자와 비이성적 마인드
로버트 코펠 지음, 권성희 옮김/비즈니스북스


시장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뭐가 보일까? 시장의 작동원리가 보일까? 시장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을 느낄까?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묘수가 보일까? 시장에 참여한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보일까?

시장을 바라보면 결국 나 자신이 보인다. 시장을 보고 또 보면 그 안엔 나의 모습이 담겨 있다. 나의 이성과 감정이 시장과 엮이면서 시장이란 시공간 속에서 나는 표출되고 응축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바라보는 그 순간,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버린다.  우리에게 눈이란 기관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깥을 보기 위함만이 아니다. 얼핏 나의 밖인 것으로 보이는 모습 속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내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대상을 보면서 나는 나와 완전 분리된 대상을 바라본다는 착각을 하기 쉬운데 결국 보고 또 보면 그것이 나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시장 속을 살아가면서, 경제적 수익을 획득하고 그것을 유지하고 성장시켜 나가는 것은 매우 시장친화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시장에서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할 것인가란 관점에서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이해하고 단순화된 규율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런 시장친화적인 사고/행동을 잘 축적해 나가는 경험이 쌓여가면서 자연스럽게 시장 속에 담긴 나의 모습을 직시하는 순간이 올 것이고 시장 속의 나를 바라보면서 시장친화적 행동의 보람은 수익으로의 귀결이 아니라 나를 향한 성찰임을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

결국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게 되어 있다.
그리고 바라봄의 대상 속에는 항상 내가 있다.

결국 나는 항상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일종의 성찰 판이다. 만물 속에 내가 담겨 있고 난 항상 그것을 보고 있고.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세상은 나를 담고 성찰의 힌트를 시공간 속에 무수히 뿌려대며 흘러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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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싱 당하는 삶 :: 2012/12/28 00:08

공짜를 표방하는 상품/서비스는 표면만 공짜지 내면엔 유료화 탐욕이 가득하다. 공짜를 표방하는 상품/서비스가 만연하게 되면서 pricing은 간접화, 암묵화의 메커니즘이 고도화되고 소비자는 공짜를 소비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끊임없이 지불한다. 공짜가 많아진다는 건, 검증되지 않은 컨텐츠/상품/서비스가 범람하면서 그것들에 대한 접근성이 증폭됨을 의미한다. 무수한 공짜들의 쓰나미 속에서 소비자들은 그것들을 검증해야 하는 수고를 치르게 된다. 그 비용은 실로 거대하다. 공짜, 그 거대한 비용에 대한 지불자는 누구인가?

공짜가 많아져서 좋아할 일은 아니다. 공짜 소비자로서의 삶에 푹 젖어 살아간다는 건 엄청나게 빨리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짜가 아닌 공짜 비즈니스에 의해 철저히 인력 자원을 소싱 당한다는 것. 누구를 위한 공짜 소비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공짜의 이면에서 이익을 누가 취득하고 자원을 누가 착취당하는 지를.

자본이 세상을 잠식해 나갈수록, 공짜가 시장에 범람할수록, 소비자들은 수시로 소싱 당하게 된다. 소비자로서의 삶 자체가 '피소싱'인 것이다. 소싱 당하지 않는 상황은 점점 희소해져만 간다. 대부분의 시간을 피소싱으로 보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피로해지기 쉽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로부터 착취를 당하니 피로할 수 밖에.

소싱 당하는 시간과 소싱 당하지 않는 시간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점점 희박해져 가는 '소싱 당하지 않는 시간'을 나에게 선물할 수 있어야 한다. 거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소싱의 공간 속에서의 삶을 완전히 외면하기 어렵다. 하지만 소싱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무지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소싱 당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소싱 당하는 삶은 우리 모두의 삶이자 너무도 흔하게 널려 있는 보편화된 양상이다. 소싱의 기운이 희박한 곳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심호흡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피소싱인으로 살아가면서 소싱 알고리즘에 던지는 나의 시선. 거기서 자존의 삶은 시작된다. ^^



PS. 관련 포스트
웹은 거대한 소싱 플랫폼이다
공짜,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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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담고담 | 2013/01/14 21:0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마케팅은 항상 말합니다. '고객 만족을 달성하고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가치를 창출했다'. 전 그 말이 항상 불편하고 거북했습니다. 그것이 벅샷님께서 말씀하시는 피소싱에대한 이야기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에스티로더의 무료샘플 프로모션은 소비자에게 혁신적인 가치를 만들어냈다는 글귀를 본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혁신적인 가치를 받았던 것일까요? 그리고 마케팅은 우리에게 '진짜 가치'를 만들어 전해 주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지속된 착취와 소싱의 담벼락 뒤에서 value up 이라는 변명을 하고 있는것일까요.. 전 항상 궁금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1/14 21:12 | PERMALINK | EDIT/DEL

      우리는 돈이 신이 된 시대를, 고객이 신이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나 봅니다. 쩐신과 고객신을 섬기면서 우리 자신을 잃어가는 경로에 놓여 있는 셈인데요.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을 얼마나 아낄 수 있는가가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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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 생산 :: 2012/10/05 00:05

사람은 누구나 존중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존중을 받고 있지 못한 처지에 머무를 때가 많다. 그렇다면 존중은 나름 희소한 자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

존중, 어떻게 주고 어떻게 받을 것인가?

존중은 일종의 재미인 것 같다.
재미를 결정하는 것은 재미있는 사람, 재미있는 현상이 아니다. 재미를 결정하는 것은 재미있어 하는 자이다. 재미있다고 느끼는 자가 재미를 결정한다. 재미는 주는 자보다는 받는 자 쪽에서 레버를 쥐고 있는 것이다. 재미가 유통되기 위해선 재미를 인지하고 느끼는 자가 많아야 한다. 재미를 생산하는 메인 주체는 재미있는 사람들이 아닌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이다. 존중도 마찬가지다. 존중이 유통되기 위해선 타인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 많아야 한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좀처럼 존중을 생성하지 못하는 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선 존중은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존중 받고 싶다면 먼저 존중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존중은 일종의 선물인 것 같다.
타인에게 선물을 주고 나서 대가를 바란다면 이미 선물의 취지는 자취를 감춘 뒤라고 봐야 한다. 대가를 바라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다. 선물은 대가를 망각할 때 빛을 발한다. 주고 나서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존중도 마찬가지다. 타인을 존중하려는 마음 자세를 갖추고 존중할 타이밍이 도래할 때 용감하게 존중을 해야 한다. 재미를 느끼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고 선물을 주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듯 존중도 용기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타인의 향기를 느끼려고 촉각을 곤두세우는 자세에서 존중이 나온다.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타인을 존중하려고 자세를 가다듬고 존중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존중의 에너지를 발산했는가에 좌우된다.  

존중 받기, 행복해지기.. 모든 사람들이 의식적이든 암묵적이든 바라고 바라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거울의 법칙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에 거울의 법칙을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한 존중과 행복을 가까이 하기란 매우 어렵다. 존중을 하는 만큼 나의 클래스가 격상하고 행복을 전파하는 만큼 나의 자존이 강화된다.

존중 받고자 하는 마음. 치기 가득한 마음이다. 그 유치함을 잘 어르고 달래주면서 성숙한 인간의 향취를 뿜어내기 위해선 존중의 방향키를 반대 방향으로 확 돌려줘야 한다.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을 세상에 더해 보자. 존중의 소비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존중의 생산자가 되려고 노력해 보자. 재미의 생산자가 되려고 노력하면 세상은 재미로 가득한 곳이 되고 존중의 생산자가 되려고 노력하면 세상은 존중으로 가득한 곳이 된다. 내 주위를 재미와 존중과 선물로 가득 채우면 세상은 그렇게 된다. 

결국 핵심은 "내 주위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란 질문에 잘 대답하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재미주기 vs. 재미받기
망각, 알고리즘
자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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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리더십 :: 2012/06/25 00:05

어떻게 따르게 만들 것인가 
케빈 머리 지음, 장세현 옮김/어크로스


@gulthee님께서 보내주신 책이다.  이 책은 리더의 커뮤니케이션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리더의 언어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차근차근 리더 커뮤니케이션의 원칙들을 설명해 나간다. 차분히 자신의 리더십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조직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자만 리더가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최소한 자신의 삶을 리드해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리더일 수 밖에 없고 리더십은 모두의 숙제일 수 밖에 없다. 리더십은 왕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매일 접하는 일상 속에서 나의 리더십을 반추하고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 리더십일 것이다. 누구나 현 시점에서 자신의 리더십의 수준을 측정해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리더십의 측정은 참 용이하다고 할 수 있겠다. 조직에서 리더가 자신의 리더십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고 싶다면 자신이 이끄는 조직구성원(follower)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된다. Follower들의 모습 자체가 리더십이 발휘된 결과이다. 리더는 정확히 자신이 가진 리더십의 수준만큼 조직을 이끌게 되고 조직 구성원들은 리더십의 수준만큼 리드를 받게 되고 변화하게 된다.

조직을 이끌지 않는 follower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자신의 리더십을 측정해 볼 수 있다. 리더와 나와의 관계에서 내가 리더에게 영향력을 얼마나 발휘하고 있는가, 나와 협업하는 동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내가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평가해 보자. 내가 영향력을 미치는 크기만큼 나의 리더십이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리더십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면서 서로를 비춰주는 상호 거울과도 같은 것이다. 나의 수준을 알고 싶으면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 속에 투영된 나의 모습을 보면 된다.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어떻게 따르게 할 것인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고칠 점을 찾아 나가면 된다. 리더십의 핵심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상호거울의 원칙이 작용되는 영역이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호 간의 생각과 행동이 만나고 화합하고 충돌하고 함께 가거나 평행선을 긋거나 엇갈리면서 상호거울이 형성된다.  함께 일하는 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 속에 투영된 나 자신의 모습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모습이 온전히 상대방의 모습이 아니고 내 모습이 온전히 내 모습이 아닌 것이다.

내가 대하는 모든 것은 나의 거울이다. 나는 그것을 대하면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튜닝한다. 조직을 이끌던 이끌지 않던 모든 사람은 리더이다. 리더는 항상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이 사방에 존재함을 느껴야 한다. 거울을 인지하고 그것을 쳐다본 만큼 리더십은 진보해 나갈 것이다.  리더십은 거울이다. ^^



PS. 관련 포스트
평가와 거울반사
비난과 자성 사이
영감을 주는 리더와 일해본 적이 있나요? - 지나간 리더들에 대한 잡담
보스,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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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팔칠 | 2012/06/25 07: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자신의 follower를 보면 리더쉽의 역량을 확인 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되네요.
    리더쉽도 중력 작용처럼 서로의 극성을 맞추고 조율하는 게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6/26 09:54 | PERMALINK | EDIT/DEL

      "극성을 맞추고 조율하는 게임" 저에게 영감을 주시는 말씀이십니다. 깊이 새겨보겠습니다. 귀한 댓글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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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과 자성 사이 :: 2011/12/12 00:02

살다 보면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비난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의 근저에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내 안의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타인을 미워하거나 비난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은, 타인 안에 미움/비난의 근원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타인의 모습 속에 투영된 나의 모습이 나로 하여금 미워하는 마음, 비난하고 싶은 마음을 생성했다고 볼 수 있기에.

사람은 자신과 유사한 것, 자신과 연결되지 않은 것에는 감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미움/비난의 근원은 결코 타인 안에 있지 않고 바로 내 자신 속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이 타인에게 투영된 것을 보고 내 안의 미움/비난의 감정이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비난은 1차원적 반응에 불과한 것이고 비난의 근저를 찾아 헤매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을 만나게 될 수 밖에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 때, 바로 커다란 자성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질 때, 그 감정에 1차원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그 감정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즐길 필요가 있다. 그 여행의 끝에서 나의 성장을 위한 중요한 힌트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 이보다 멋진 여행이 어디 있으리요? ^^

타인을 비난하면 할수록 나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는 심화된다. 분명 나 자신을 보고도 그걸 나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 억지로 간주한다면 나는 얼마나 외롭겠는가? 나를 나로 인지하지 못하고 자꾸 나를 타인으로 칭하면 나는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우리는 항상 세상 속에 투영된 나를 바라보고, 타인 속에 투영된 나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거울 인생을 살고 있을 뿐이다. 거울을 보면서 끊임없이 나를 다듬어 나가는 거울 우주 속에서의 삶.

결국 내가 표출하는 감정적 반응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바로 나 자신의 수준'을 가리키는 바로미터인 것이다. 수시로 발생하는 나의 감정은 나 자신의 수준을 끊임없이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정교한 '내공 측정기'인 셈이다.

나는 비난과 자성 사이에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가? 비난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나는 소외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고 자성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나는 자존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거울의 법칙이다. ^^




PS. 관련 포스트
렌즈의 원칙, 고통의 원칙 -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 (Winning With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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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징가 | 2011/12/12 11:1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잘 지내고 계시지요..? 오랫만에 구경왔는데 마침 이 글이 왜그리 와닿는지요 ^^; 저도 힘든 일이 생겨 맘속으로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건 남이 아니라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었네요. 자학은 조심하되, 철저한 자아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구요 ^^

    • BlogIcon buckshot | 2011/12/12 20:41 | PERMALINK | EDIT/DEL

      마징가님, 오랜만입니다. ^^
      뭐니뭐니해도 리더십의 시작은 자성이라고 생각합니다~

  • 글자세계 | 2011/12/13 12:1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마음 속에 있는 형상들을, 머리속에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생각들을 글로 표현한다는 건... 저에겐 참 힘든일이기에 이렇게 글로 옮겨 놓은 생각들을 접할때마다 대단함을 느낍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라 할 수 있겠죠. 내안의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세상의 다른 누군가를 통해 봐야한다는 거... 그걸 인지하고 스스로를 고쳐나갈 수 있는 실천의 힘이 발견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겠죠.
    글을 읽으면서 조금은 복잡하지만 많은 생각이 드네요^^

    • BlogIcon buckshot | 2011/12/13 20:58 | PERMALINK | EDIT/DEL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인정할 때 한 단계 성장이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

  • BlogIcon 토댁 | 2011/12/13 12: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옴마야!!
    맨날 아이폰으로 보다 보니 가독성이 좋지 않아 댓글도못 달고,,,,
    오늘에서야 인사하러 왔더만..
    자성의 글을....
    네~~~
    자성하고 각성하며
    스스로를 잘 다듬으며 살겠습니당.. 히힛
    연말 잘 보내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1/12/13 20:59 | PERMALINK | EDIT/DEL

      인생의 퀄리티는 자성을 얼만큼 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토댁님은 항상 저에게 자성의 기회를 주신답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복된 연말 보내세염~ ^^

  • Wendy | 2011/12/16 16:02 | PERMALINK | EDIT/DEL | REPLY

    "결국 내가 표출하는 감정적 반응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바로 나 자신의 수준'을 가리키는 바로미터인 것이다."
    아, 나름 임상심리를 전공했지만, 통찰...못 따라 가겠습니다...^^;; 2011년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지금, 가장 큰 자성의 기회가 되는 글이고, 많은 것들을 위한 동기 부여가 됩니다. 언제나 감사드려요. 따스하고, 건강한, 행복한 연말 보내시길!! 2012년에도 이 곳에 계속 계실거죠? 희망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1/12/17 15:08 | PERMALINK | EDIT/DEL

      Wendy님께서 너무나 큰 격려를 주고 계셔서 전 아무래도 블로깅 생활 오래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

  • j_han | 2012/05/08 15:1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read and lead를 구독해서 항상 보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글 남깁니다. 정말 공감가는 글입니다. 타인에 대한 분노와 비난은 결국 자기 스스로를 극복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자신이 싫어하는 모습이든.. 과거의 트라우마든.. 결국 진정한 성장은 자기 스스로를 극복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ㅎ

    • BlogIcon buckshot | 2012/05/11 21:46 | PERMALINK | EDIT/DEL

      예, 자기극복의 과정만큼 보람 가득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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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거울이다. :: 2011/09/2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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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짜라두짜 | 2013/11/05 07:2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미디어 소비는 미디어 소비자와 미디어가 뫼비우스의 띠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정말 멋진 말이네요..
    사실 스마트디바이스는 그 사람이 가진 속성이나 본질을 깅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믿고 있습니다.

    항상 오픈케스트를 통해 좋은 글들 잘보고 있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3/11/05 23:21 | PERMALINK | EDIT/DEL

      디바이스가 결국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란 사실이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전 디바이스를 보면서 저를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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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와 거울반사 :: 2011/09/19 00:09





PS. 관련 포스트
렌즈의 원칙, 고통의 원칙 -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 (Winning With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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