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해당되는 글 15건

거리감 :: 2017/11/06 00:06

거리를 설정하면 볼 수 있는 시야가 확보된다.

거리감이 없으면 앵글이 형성되지 않는다.

나를 관찰하고 싶을 땐

나와 나 사이에 거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내가 나로부터 분리되고 멀어지고 나를 다양한 앵글을 통해서 바라볼 때

비로소 나에 대한 관찰이 시작된다.

나를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기가 매우 어렵지만

그렇게 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거리는 형성되기 시작한다.

분리를 의도하는, 멀어지려는 움직임 속에서

나와 나 사이의 거리가 생성되고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만들어지고

나를 통해 나를 들여다 보는 응시 속에서

나는 나에 대한 관찰을 통해 내가 어떤 존재인지 희미하게나마 느끼기 시작한다.

거리에 대한 감

거리감

이건 대단히 중요한 감각

거리의 척도에 따라 나에 대한 상도 달라지는데..

그렇게 거리감각이 진화하면서 나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 그 자체가 배움이 아닐지. ㅋㅋ




PS. 관련 포스트

나와의 거리를 설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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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 2017/07/12 00:00

원래 주역은 50세가 되면 읽기 시작하려고 맘을 먹고 있었다.

근데 레벤슈타인 거리라는 개념을 접하고 나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주역을 지금 당장 읽기 시작해도 될 것 같다는 느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주역을 점치는 기법과 같은 엉뚱하고 우스꽝스런 개념으로 오해하지 않고
그냥 세상만물을 알기 쉽게 풀어 놓은 도형문자 기반 방정식 정도로 이해하면
참으로 재미있게 주역을 접하게 될 수 있을 듯 하다.

음과 양
이진법적 기호들로 구성된
주역의 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것에 어떤 해설서가 필요할까
그걸 그냥 보고 느끼면 되는 것 아닐까

언어가 나오기 전에
언어 없이 생각하는 힘을 기를 기회가 없었던 지난 날이 아쉽게 느껴지려 한다.

그래서 주역이다.
50세 넘어서가 아닌 지금 당장의 선택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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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벤슈타인 거리 :: 2017/07/07 00:07

Levenshtein Distance(레벤슈타인 거리)라는 게 있다.

두 문자열이 얼마나 유사한지를 측정하는 방법인데
측정 원리가 재미있다.

단어 A와 단어 B가 얼마나 유사한지를 측정하기 위해
A를 B로 바꾸기 위해 문자열을 어떻게 수정해 나가야 하는지 규정하고
그 수정횟수를 두 단어 사이의 거리라고 칭하는 것이다.

논리적이고
수학적이고
명쾌한 방법이다. ㅋㅋ

거리를 이런 식으로도 측정하는구나.
그렇다면 나의 현 위치와 내가 앞으로 가야할 지점과의 거리도 유사한 방식으로 계산해볼 수 있겠구나.

또한 A라는 지점과 B라는 지점이 있을 때
A를 어떤 순서로 어떻게 편집해 나가면 B가 되는지
B를 어떤 항목으로 구성하고 항목별 우선순위, 항목별 편집을 어떻게 진행시키면 A가 되는지
A가 B가 되어 나가는, B가 A로 변모해 나가는 과정도 규정할 수가 있겠구나.

또한 리벤슈타인 거리 말고도
거리를 측정하는 방식은 정말이지 무한한 방식으로 구축될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 속에 내포된 사상이
거리를 규정하고, 거리를 형성하는 두 지점을 칭하게 되는 구나.

'거리'를 이해하는 방식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거리를 바라보는 관점도, 거리를 대하는 태도도 성장하겠구나.

나는 블로깅을 통해 '벅샷 디스턴스'라는 나만의 방식을 쌓아나가고 있겠구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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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09 00:09

난 시를 읽지 않는다

소설은 읽어도 시는 읽지 않는다
그냥 소설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시를 보면 잘 읽히지 않는 듯 했다
왠지 나와 맞지 않는 무언가로 생각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시집 한 권을 주문했다.
종이책이 도착했다.
그 종이책을 가만히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갔다.

계속 흘러갔다

책상 위에 놓인 시집을 본다
여전히 나로부터 먼 위치에 그것은 놓여져 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지만
여전히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손을 뻗을 수가 없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다
여전히 먼 존재였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시간이 흐르면 공간에 변화가 생긴다

나와 시집을 둘러 싼 공간 속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다

나는 시집에 시선을 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시집을 손에 쥔다

책을 펼친다
시 한 편을 읽는다

거의 처음으로 읽는 시의 문장들
그렇게 나는 시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

우주 속 멀리 떨어진 수백억 광년과도 같은
멀고 먼 어딘가에서 시집 한 권이 나에게 다가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거리가 좁혀졌다

사물은 움직인다

내 마음도 움직인다

결국 만나게 될 것은
만나게 된다

오늘 나는 시를 만났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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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 :: 2017/04/10 00:00

원점이 여러 개라면
현 위치에 대한 거리감 또한 여러 개가 존재하게 된다.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과거의 어느 시점이 원점일 수도 있고
현재의 순간도 원점일 수가 있고
앞으로 도래할 미래의 상황도 원점일 수가 있겠다.

나와의 거리를 형성하는 다양한 원점들

원점이 여러 개라서
다양한 거리감이 존재할 수 있어서
각각의 원점에서 보여지는 내 모습이 여러 개라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이 재구성되는 거라서
시간, 공간과 나와의 관계를 구성할 수 있어서

나에게 있어
원점은 여러 개가 되었다.
어느 순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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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폰과 손의 자유 :: 2016/06/10 00:00

아마존 에코를 뮤직 스피커로 주로 사용하다 보니
가끔은 폰이 스피커로 보일 때가 있다.

폰은 주로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갖고 노는 물건인 줄 알았는데..

아마존 에코는 음성으로 컨트롤하는 스피커인데
폰은 무엇으로 컨트롤할 수 있을까란 질문과 동시에 손길은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두었던 와치로 향한다.

와치를 사놓고 거의 쓰질 않았었다. 용처를 몰라서.
물론 정의된, 제안되는 와치의 용처는 많다.
그런데 그것들이 내겐 그닥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와치를 구입한 후 오래지 않아 와치는 내 손에서 멀어져 갔다.

그랬는데.
아마존 에코를 경험하면서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끔은 폰을 손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놓아두고 음악 스피커처럼 활용하고픈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존 에코의 약점. 가요를 들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와치로 폰을 컨트롤하면서 가요를 듣기 시작했다.

폰이 손에서 멀리(?) 떨어지는 느낌도 좋고
폰이 아마존 에코가 들려줄 수 없는 음악을 들려주는 보완적 경험도 좋다,.

무엇보다도 폰이 스피커처럼 작동하게 되는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서 더욱 좋다.

스마트폰이 가끔 원격폰이 될 때
나의 손은 예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자유감을 만끽하게 된다.

이건 거의 두 손을 새로 얻은 듯 한 느낌.
그만큼 나의 손은 폰의 구속 하에 노예처럼 지내왔던 듯. 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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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매거진 :: 2015/11/18 00:08

아이패드로 잡지를 읽는다.
아이패드 속 잡지 내용은 분명 종이 잡지와는 다른 질감이다.
마치 잡지를 유리로 코팅한 느낌이다.
책장을 하나씩 넘기면서 반응형 유리를 경험한다.
유리를 밀면서 유리면 아래의 잡지 내용이 페이지 전환되는 흐름.

이거 유리 매거진이다.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아이패드로 매거진을 읽게 되니 촉각기관에 새로운 감각이 전달되는 듯 하다.

유리를 대하는 느낌.
유리 속 정보는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는 걸까.

책을 읽는게 아니라 쇼윈도우 속 전시된 패션상품을 둘러보는 느낌.

에디터의 글이 패션 매장의 신상품으로 보인다.

유리 매거진을 보면서
난 백화점 매장 속을 거닐게 된다.

유리를 터치하면서 난 쇼윈도우 너머 상품을 직접 실감하지 않고 상상한다.

동일한 내용을
유리 매거진으로 읽고
종이 매거진으로 읽고 나면
두 흐름은 분명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전달해줄 것 같다.

그리고 두 스토리라인은 서로에게 해줄 이야기가 제법 있을 것 같다.
종이와 유리. 그 안에 담긴 이야기.
거리감, 촉감, 시각과 청각..  이 모든 것들 사이에 뭔가가 흐르고 있고
그 흐름 속에서 난 오늘도 유리 매거진과 종이 매거진을 오가며 뭔가를 느껴나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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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 :: 2014/08/29 00:09



원하는 것을 대하는 방법.

그것과 적정한 거리감을 형성한다.

그래야 그것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질 수 있다.

적정한 거리는 적정한 시야로 이어진다.

원하는 것에 대한 적정한 시야를 확보해야

원하는 것에 대한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다.

원하는 것에 대해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절묘한 긴장감.

그게 원하는 것을 대하는 방법으로 좋을 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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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ndy | 2014/08/30 14:51 | PERMALINK | EDIT/DEL | REPLY

    희망사항이에요...제 마음을 읽어가신 듯..^^; 그런데 참 그게 어렵네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기가...불타오르듯 뜨거워졌다가도 순식간에 차디차게 얼어붙어버리니 제게는 아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시야'와 절묘한 '긴장감'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무엇이 부족한 지 깨닫고 갑니다...오늘도 감사드려요! 그 절묘한 긴장감...가질 수 있게 될까요? ㅎㅎ

    • BlogIcon buckshot | 2014/08/31 12:19 | PERMALINK | EDIT/DEL

      결국 거리에 대한 감각을 견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때론 아주 먼 곳을 부드럽게 응시하다가도 어떤 때는 아주 가까운 곳을 해부하듯 들여다 보는 원근 놀이를 즐기다 보면 거리에 대한 일종의 감을 획득하게 되는 듯 싶어요. 저도 아직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구요. 차근차근 원근 놀이를 즐겨 나가 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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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탄생 :: 2013/12/13 00:03

단 3개의 포스트에 불과하지만, '시선'이란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포스트를 3개 갖고 있다는 것이 내가 2013년의 나를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 같다.

시선과 거리
시선과 시선
시간과 시선


특히 시선과 시선이란 포스트를 올해 1월16일에 적을 수 있었던 건 내게 큰 행운인 듯 하다.

나의 생각 여정은 시선과 시선 포스트를 올리기 전과 올린 후로 나뉜다.  이 포스트를 적은 후로 다양한 시선을 접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고 그런 노력들이 당장 가시적인 결과로 나타나진 않았지만 내 안에 차곡차곡 축적되는 모습으로 나의 생각은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얼마나 편협한 시선의 굴레에 갇혀 있었는지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내가 갇혀 있던 시선의 프레임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얼마나 값진 경험인지 알게 되었고 그런 배움을 통해 다른 시선을 알고자 하는 시선 시뮬레이션 여행을 다채로운 모습으로 떠날 수 있는 기회를 극적으로 획득하게 된 것에 감사했다.

돌이켜 보면 2013년 1월16일에 적은 아래 포스트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꽤 오래 전에 적은 것 같은데 불과 올해 초였다니. ^^

시선과 시선

물고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광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독수리의 시선은? 치타의 시선은? 개미의 시선은? 시선 놀이만큼 재미 있는 게 세상에 또 있을까?  본다는 것은 나를 규정하고 나를 규정하는 프레임을 설정하고 나를 규정하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특정 시선을 갖고 객체를 바라보는 주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규정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규정되는 '나'에 의해 시선은 형체를 띠는 것이고, 규정된 나에 의해 형성되는 시선은 지속적으로 규정된 '나'를 강화시킨다. 뭔가를 보는 것은 대단히 후행적인 사건이다. 이미 그전에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세팅되어 버리는 것이고 그렇게 일사천리로 정해진 규격이 이후에 전개되는 대부분의 프로세스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주체는 뭔가를 보면서 시선이 생성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은 시선은 지극히 전면적인 전처리 과정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유형의 시선이 존재한다. 또한 특정 유형의 시선들도 저마다의 독특한 시선 특성을 지닌다. 특정 유형의 시선을 탑재하는 건 세상을 향해 오롯한 선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넓디 넓은 세상을 선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매우 과감하고 무모하고 어이없는 치기 어린 행위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수많은 유형의 시선에게 부여된 냉정한 현실인 것이고, 시선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가공할만한 한계성을 그닥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에게 부여된 가냘픈 '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게 된다.하지만, 부여된 툴이 너무 빈약하기만 하진 않다. 선은 홀로 존재하면 너무도 취약한 상태에 불과하지만 선과 선이 교차하는 순간 선은 면의 가능성을 지니게 되고 선과 선과 선이 만날 때 입체의 잠재성을 발할 수 있다. 문제는 '선'의 한계성이 아니라, 자신에게 부여된 '선'에만 갇히는가 아니면 다른 선과의 만남을 즐길 수 있는가이다. 물고기의 시선이 독수리의 시선과 만날 때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날까?  광물의 시선과 인간의 시선이 만나면 어떤 면이 탄생하는가? 치타의 시선과 개미의 시선과 박테리아의 시선이 만나면 어떤 입체가 만들어질까? 하나의 시선이 만들어지기 위한 무수한 전처리 과정은 특정 시선을 매우 협소한 궁지로 몰아넣는 경향이 있으나 시선과 시선이 만나서 이뤄내는 무수한 가능성은 거대한 후처리 과정을 낳게 된다. 그리고 난 후에 발생하는 전처리 과정과 후처리 과정의 연결. 여기서 시선은 거대한 도약을 하게 된다. 시선과 시선. 그 거대한 매치메이킹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시선을 지닌 자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물고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광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독수리의 시선은? 치타의 시선은? 개미의 시선은? 시선 놀이만큼 재미 있는 게 세상에 또 있을까? ^^


그리고 위 포스트는 2011년 12월7일에 적었던 아래 포스트와 궤를 같이 한다.

점, 선, 면, 입체, 그리고..

A는 점에 머무는 자였다. A는 점이 항상 답답했다. 항상 한 자리에 멍하니 머물러 있는 자신이 바보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유를 꿈꿨다. 어디로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움직이고 싶었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보고 싶었다. A는 점을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했고 점이 자신을 구속하는 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A를 둘러 싼 공간은 점에서 선이 되었다. A는 너무나 기뻤다. A는 선 상에서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예전 점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자유감을 맛 볼 수 있었다. A는 선이 새롭게 열어준 진보된 세상 속에서 사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어느 날 A를 둘러 싼 공간은 선에서 면이 되었다. A는 이전의 '선' 시절을 까맣게 잊고 면이 선사하는 꿈같은 신천지를 마음껏 누비고 다녔다. 면에서 생활하다 보니 과거의 선 생활을 돌이켜 보면 너무 끔찍하단 생각이 들기조차 했다. 도대체 선에서의 생활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젠 예전 선 생활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느 날 A를 둘러 싼 공간은 면에서 입체가 되었다. A는 이제 모든 것을 얻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나의 세상은 완성이 되었구나. 이제 나는 이 놀라운 세상 속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구나. 예전의 면, 선, 점에서의 생활은 이제 나에겐 흐릿하게 잊혀져만 가는 원시적 과거에 불과하겠구나. A는 입체 속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꿈만 같았다. A는 입체에 머무는 자가 되었다. 그런데.. A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A가 머물고 있는 입체는 아주 오래 전에 A가 머물던 점 속에 잠재하던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결국 점은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빅뱅 이전의 공(空)과도 같은 상태였다는 것을.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고 면이 입체가 되는 과정은 발전이 아닌 단지 점이 추는 가벼운 춤에 불과했다는 것을. 결국 A가 머물고 있고 A가 너무도 자랑스러워 하는 '입체'는 점을 너무도 그리워하고 있고 언젠간 꼭 점이 되고 말리란 꿈을 단 한시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난 행복하다.
2011년의 점, 선, 면, 입체, 그리고.. 포스트가 있어서.
2013년의 시선과 시선 포스트가 있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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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상화 :: 2013/06/03 00:03

빅 픽처를 그려라
전옥표 지음/비즈니스북스

나에 대한 명확한 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상화를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사는 자이다.

그게 존재하는 한, 어떤 상황을 맞이하여도 큰 흔들림은 없다.

자상화가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그게 없는 사람은 세파에 속절없이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나'라는 구심점이 약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타존적 삶의 유혹에 주도권을 넘겨주기 십상이고 나를 바라보기 보다 타인을 바라보고 수시로 나와 타인을 비교하며 나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한다.

또한, 나와 타인이 다른 지점에서 불안해 하며 가급적이면 타인과 유사한 트랙을 밟아야 안도하기까지 한다.

'나'는 바라보기에 따라서 보잘것없는 한 명의 무기력한 생물체일 수도 있고 가늠할 수 없는 '상'을 머금고 있는 거대한 우주일 수도 있다.

나의 크기는 나와 어느 정도 거리를 형성하는가에 달려 있다.

나를 소생물체로 규정한다면 바싹 붙어서 내 모습을 바라보면 된다.

하지만 나를 거대한 우주로 정의 내리고자 한다면 나로부터 수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나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나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나를 둘러 싼 전경이 눈에 들어올 것이고, 나와 나를 둘러싼 거대한 둘레가 결국 나 자신임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거리의 생성과 시선의 탄생, 그리고 거리와 시선에 머금어져 있는 자상화의 온기.

세상은 자상화의 투영이다.

나의 시선이 닿는 곳엔 나의 상이 맺힌다.

자상화의 형상이 명확할수록 세상은 더욱 명징하게 나를 드러낸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나를 그려놓은 거대한 자상화 그 자체라니.  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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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의 렌즈 :: 2013/05/08 00:08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

나를 타인 바라보듯 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나에 대해 주관이라는 강한 중력을 느낄 수 밖에 없고 그런 주관적 프레임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장애물을 곳곳에 배치시켜 놓기 마련이다. 나는 나에 대해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사고와 행동을 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나라는 생각 자체에 주관이 스며들어 객관적인 뷰로 나를 바라보기를 방해하는 상황.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건 매우 어렵다.

그런데, 어렵다고 나를 객관의 렌즈로 바라보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나는 주관의 늪에 빠져 우물 안 개구리와도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 이상의 뭔가가 되기는 힘들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 만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본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나는 그 사람 안에 있는 내 모습을 미워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누군가를 비난한다면 나는 그 사람과 나의 공통 분모에 대해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결코 자신과 관련 없는 것에 대해 감정을 일으키지 못한다.  내가 누군가에 대해 판단을 한다면 그건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이라기 보다는 그 사람에 투영된 나의 모습에 대한 판단인 경우가 많다. '나'라는 존재, 가치관, 세계관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렌즈를 통해 나는 세상을 바라보고 결국 세상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고 나의 모습에 반응하는 것이다.

'나' 렌즈가 나의 감각과 감정을 통제하고 나의 생각과 행동을 좌지우지하는 상황.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렌즈를 다룰 수 있는 의도와 결단에서 비롯된다.

렌즈 자체가 나라면 그 렌즈를 나에게로 향하게 해보자. '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하지만 결국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을 인정하는 순간, 본격적인 바라봄을 전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세상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나' 렌즈를 통해 바라보자.  세상을 바라볼 때 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내 자신이 보일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면 자꾸 착각을 하게 된다.  분명 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자꾸 그것을 타인의 모습이라 생각하고 미워하고 판단하고 나와 별개인 대상이라 생각하고 좋아하고 집착하는 착각 놀이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하염없이 세상을 바라보며 수시로 착각하는 어리버리함에서 빠져 나와 이젠 나 자신을 직시해 보자.

'나' 렌즈로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나와의 거리를 형성하게 된다. 거리를 형성한다는 건 나에 대해 봐주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게 됨을 의미한다.  세상을 바라보며 타자에 대한 생각과 판단만 일삼는 자는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갖지 못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더욱 왜곡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시야는 더욱 흐릿해져 간다. 매일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외모를 살피는 게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니다. ^^

나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형성할 수 있는 힘. 그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리이다 . 나와 나 사이의 거리에서 발생하는 통찰만큼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 거리를 생성할 때 나는
나를 설명하는 스펙스런 것들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즉, 나와 나의 스펙을 동일시하는 유아적 수준에서 벗어나 스펙과 분리된 나를 응시하게 되는 것이다. 스펙에서 나를 분리할 때 나에게 무엇이 남아 있는지, 그 때의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지, 이 무거운 진실 속에서 가벼워진 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스펙으로 '나'를 무겁게 하느라 평생 애를 쓰며 살아가는 스펙 로봇과도 같은 삶의 헛된 무게. 스펙을 벨크로(찍찍이) 정도로 여기자. 언제든 나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 나를 둘러싼 스펙을 모두 제거한 나는 과연 무엇인가?

나의 렌즈가 어딜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렌즈가 나를 향하는 시간이 많아질 수록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렌즈의 원칙, 고통의 원칙 -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 (Winning With People)
거리,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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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0:49 | DEL

    These all YouTube gaming movies Read & Lead - 객관의 렌즈 are in fact in pleasant quality, I watched out all these along by my friends.

  • BlogIcon Crete | 2013/05/08 05:5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늘도 정말 좋은 말씀을 주셨네요. 가끔씩 목사님들이 설교중에 이슬람교나 한국출신(?) 이단 세력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다른 중요한 신앙적 문제들도 많은데 왜 저런 문제에 저런 반응을 보일까 궁금할 때가 많았습니다.

    오늘 내용중에 "사람은 결코 자신과 관련 없는 것에 대해 감정을 일으키지 못한다" 라는 말씀이 딱 답인 듯 합니다. 현대 기독교계가 외부에 드러내는 적대감이나 비이성적 반응들은 사실 뒤집어 보면 바로 자신들의 문제점인데 말이죠.

    오늘도 좋은 말씀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5/08 09:34 | PERMALINK | EDIT/DEL

      결국 항상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인데 자꾸 그게 아니라고 착각을 해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나'를 보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아서 그런가봅니다. Crete님 댓글에 힘입어서 오늘도 저는 제 자신을 보면서 소중한 하루 아침을 시작해 봅니다. ^^

  • 맹그미 | 2013/05/08 10: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객관의 렌즈를 통한 제자신을 좀더 객관화 할 필요가 있겠네요. 근데 너무 객관화하면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울꺼 같은데... 그것에 대한 좋은 말씀은 없으신가요? ㅎㅎ 다시 한번 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5/08 20:46 | PERMALINK | EDIT/DEL

      부끄러워지는 그 단계를 거치는 게 자아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워지는 것 보다 그 단계를 거치지 않는 게 더 안 좋다고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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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의 거리를 설정하기 :: 2013/01/11 00:01

나는 블로깅을 할 때 포스트를 바로 올리지 않고 예약 포스팅을 한다. 오늘 쓴 글이 오늘 바로 블로그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2개월 후에 포스팅이 되는 것인데, 처음엔 별 생각 없이 예약 포스팅을 시작했는데 5년 정도 예약 포스팅을 꾸준히 지속하다 보니 이게 나름 의미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2개월 전에 쓴 글이 오늘 올라올 때 그것을 읽어 본다. 2개월 전에 쓴 글이라 글 내용을 살짝 잊을 때도 있어서 어떨 때는 완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기억이 또렷한 글, 기억이 희미한 글, 새로운 느낌의 글 등이 혼재된 상태로 나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묘하다. 분명 내가 쓴 글인데 내가 쓴 것 같지 않은 듯, 내가 쓴 것 같지 않은데 결국은 내 것 같은 듯. 나의 글과 나 사이에 뭔가 거리가 생겨나고 있는 것 같은.

나의 글의 독자가 내가 되는 과정인 것 같다. 필자가 독자가 되고 독자가 필자가 되는 과정.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적은 글을 보면서 "이게 뭐지? 왜 그런 글을 쓰게 된거야?"라며 나에게 말을 걸어 본다. 질문을 던져도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이니 참 편하고 좋다. 중요한 건 내가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거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나를 A와 B로 분리하고 A의 시점에서 B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B는 B의 시점에서 생각한 답변을 A에게 제공한다. 거리는 노드와 노드 사이의 '세'를 형성한다.

우연히 시작한 예약 포스팅이 거리를 만들어 내고 거리는 나와 나 사이의 세를 형성하고 나는 그 세를 유영하면서 나를 발전시키는 대화를 한다. 내 안에 온전히 갇혀 있지 않고 '나'를 일종의 장애물,한계로 규정하고 나를 벗어나 나를 객체화시켜 바라보고 객체화된 나와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나는 한 차원 높은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된다.

거리는 시선을 만들어 낸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생겨나고 그 시선이 나에게 영향을 주고 나는 다시 시선을 발전시키고 나와 나 사이에서 생성되는 대화와 시선, 나-대화-나, 나-시선-나의 관계가 계속 뫼비우스의 띠처럼 흘러가면서 선순환 트랙을 형성하게 되는 모습을 요즘 어렴풋이 보게 된다.

블로깅을 하면서 새롭게 깨달아가는 의미들이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시작할 때 모든 것을 알고 하는 게 아닌 것이고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서서히 뭔가를 알아나가는 느낌이 너무 좋다. 블로깅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블로깅을 지속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지금 나와 함께 호흡한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자기계발 플랫폼이 또 어디에 있을까? ^^



PS. 관련 포스트
시선과 거리
내가 나를 뒤에서 지켜보는 느낌
로망과 속도, 그리고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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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Playing | 2013/01/14 15: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사실 말씀하신 거 보니 '학습'의 재미를 주는 도구로도 쓸모가 많을 꺼 같아요
    '논술이나 토론'을 발전시키려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하는데
    블로그를 꾸준히 하면 이전의 자기 생각을 다시 보고, 다른 사람의 생각도 듣고, 반응을 지속적으로 하면 이게 바로 살아있는 학습자료 같구요~
    자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고, 책임감과 사회성은 부수적으로 딸려오고요

    또래 집단의 놀이 문화속에 파고 들어가게 되길 바랍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1/14 21:10 | PERMALINK | EDIT/DEL

      블로그를 시작할 당시에는 정말 블로그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 같아요. 지금도 블로그가 무엇이라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예전보단 훨씬 많이 이해하게 된 것 같고 앞으로 더욱 많이 이해해 나갈 것 같아서 기대가 큽니다. 블로그란 건 하나의 툴에 불과하지만 블로깅이란 행위에 내포된 의미가 매우 심대하다는 것을 알아나가는 재미가 정말 쏠쏠합니다. 앞으로 어떤 툴이 생겨도 지금 하고 있는 블로깅을 통해 얻은 배움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HJRYU | 2013/01/15 12: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 이제 막 블로그 시작하려 여기저기 좋은 블로그 구경 하고 있던 중
    너무나 유익한 블로그라 이런 블로그 어떻게 만드나.. 구경하다가 이 글은 댓글을 안달수가 없네요
    저도 블로그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좋은하루 되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3/01/15 20:31 | PERMALINK | EDIT/DEL

      부족한 블로그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블로그 URL 링크 걸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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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과 속도, 그리고 거리 :: 2012/09/07 00:07

로망을 꿈꾸고 로망을 찾아 먼 길을 떠나려 하지만, 정작 로망은 자신의 뒷모습인 경우가 많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고 있는 것이다. 멀리 가려 하나 결국 자신의 뒷모습을 쫓고 있는 것. 자신의 뒷모습이야 말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이다. 빛의 속도로 무한 질주를 해도 결코 만날 수 없는 머나먼 대상. 그 대상을 만나기 위한 방법은 하나다. 움직이려 하지 않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장 흔한 자원은 가속력이고 가장 희소한 자원은 감속력이다. 고속으로 질주하다 문득 자신이 이동한 거리를 돌이켜 보자. 이동한 그 거리만큼 본질에서 멀어져 있는 것이고 본질에서 멀어진 만큼 본질과 만날 기회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동한 거리만큼 잃어버린 기회의 시공간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

태초에 정보는 균일한 에너지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이 여러 가지로 쪼개지면서 다양한 에너지장이 우주 사방에 퍼지기 시작했다. 1과 0 밖에 없던 우주 정보 체계는 분열에 분열을, 계산에 계산을 거듭하면서 다양한 양태로 존재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행복과 욕심의 분열이다. 원래 1이었던 정보가 행복과 욕심이란 극단적 상반 스탠스를 갖는 2개의 오브젝트로 분리되면서 행복과 욕심은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실 그 둘은 하나였다. 그렇게 어이없게 분열된 것들이 꽤 많다.

원래 행복과 욕심은 '1'이란 정보 속에 융합되어 있었다. 그것이 어떤 계기를 맞아 '1'이란 컨테이너 밖으로 뛰쳐나와 제 나름의 증폭 프로세스를 타기 시작했다. [1=행복X욕심]이다. 행복과 욕심이 제 아무리 각자의 길을 간다고 해도 한 사람의 행복과 욕심을 곱해 보면 대부분 1로 수렴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본원적 정보의 특성이다. 본원적 정보는 소멸되지도 않고 생성되지도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단지 그것을 다양한 각도로 쪼개고 분열시켜 자가증식을 하는 것 뿐이다. ^^




PS. 관련 포스트
정보의 분열, 행복과 욕심의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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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9/07 19:13 | PERMALINK | EDIT/DEL | REPLY

    멋져요. ^^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란 '생각하는 자리'를 뜻하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 BlogIcon buckshot | 2012/09/08 15:49 | PERMALINK | EDIT/DEL

      예,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디 멀리가는 것 보다는 내 안에 펼쳐진 광활한 우주 속을 누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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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거리 :: 2012/08/24 00:04

'본다는 것'은 시선을 생성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보면서 나와 무엇 사이를 잇는 시선을 존재시킨다. 시선이 존재하게 되는 순간 나와 무엇은 연결되고 그 연결은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된다. 뭔가를 응시한다는 건 뭔가에 말을 건다는 것이다. 말을 거는 과정 속에서 대상으로부터 어떤 인상을 받게 되고 그 인상은 일종의 피드백이 되어 나(관찰자)를 자극하고 나는 그 피드백을 기반으로 또 다른 말을 걸게 된다. 나와 대상은 시선이란 링크를 통해 정보를 주고 받으며 나와 대상 간에 공유되는 정보는 나와 대상을 변화시키고 적응시킨다.  

'시선'은 대상과 나 사이에 거리를 생성하는 힘이다.
거리가 없으면 시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선은 일정한 거리를 확보해야 생길 수 있다. 거리는 일정한 크기의 시간/공간적 간격을 의미하며 그 간극은 나와 대상 사이에 긴장감을 불어 넣고 형성된 긴장은 나와 대상에게 일종의 신호를 송신한다. 나와 대상은 간극이 보내주는 신호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 해석은 나와 대상을 어떤 식으로든 커뮤니케이션하게 한다.

'거리'는 대화를 낳는다.
거리감이 없으면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있으면 된다. 거리감은 일종의 에너지장이다. 거리에서 관찰,인식,이해,오해,규정,왜곡,통찰,편향 등의 온갖 에너지가 생성된다. 노드와 노드 사이의 거리, 노드와 노드를 잇는 링크, 노드와 노드 간의 정보 교환, 노드와 노드 간의 이합집산.. 거리는 노드가 분포된 시공간에서 대화의 창발을 끊임없이 유도한다.  

'대화'는 스토리를 낳는다.
'거리'는 0에서 무한대까지 다양한 스케일 분포를 취하는데 그런 스케일의 다양성이 대화의 다양성을 유도하고 다양한 대화의 양상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다이내믹하게 펼쳐지는 조건을 규정하게 된다.

만물은 거리와 시선을 형성하며 약동한다.
만물은 진동한다. 진동한다는 것은 거리를 호흡하며 시선을 주고 받으며 살아감을 의미한다. 모든 만물은 자신 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그것을 명시적/암묵적으로 끊임없이 표현한다. 이야기가 표현되는 포맷이 원체 다양하다 보니 이야기로 잘 느껴지지 않을 뿐 만물은 생물과 무생물을 막론하고 모두 소설가적 재능을 갖고 태어났고 쉴새 없이 소설가적 본능을 발휘하며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거리와 시선을 형성하며 끝없이 어디론가 떠나는 만물의 몸짓.


우리는 뭔가를 응시할 때 무한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나와 대상 사이에 거리와 시선이 형성되며 나는 대상과 에너지를 주고 받는다.
거리와 시선은 우리에게 주어진 신비로운 축제와도 같은 선물이다. ^^



PS. 관련 포스트
연기, 알고리즘
바깥, 알고리즘
극세관심
관음 플랫폼, 페이스북
기대감을 기획하라
가격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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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0:56 | DEL

    I every time used to study piece of writing %title% in news papers but now as I am a user of web therefore from now I am using net for content, thanks to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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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알고리즘 :: 2010/03/01 00:01



'대상/문제와의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해야 객관적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취지로 위의 글을 트위터에 올렸었는데,  변지석님의 아래 포스트를 보고 다시 한 번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심리학의 Construal Level Theory에 의하면 우리가 문제의 situation과 context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즉 psychologically distant하면 좀더 creative한 solution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문제가 우리가 있는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문제라고 생각하든가,  우리와는 많이 다른 사람들의 시각으로 문제를 보려고 하든가,  지금과는 아주 다른 시점 (미래나 과거)에서 문제를 보려고 하면 문제에 대해 좀더 creative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문제에서 psychologically 멀리 떨어질수록 문제를 자세히 보지 않고 좀더 abstract하게  보기 때문이다.  문제를 Abstract하게 볼수록 문제와 관계가 별로 없는 개념들과 연결시켜서 생각할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와 너무 밀착되어 문제를 감싸는 상황과 맥락 속에 갇혀 버릴 때, 사고의 정체 현상이 발생한다. 문제와 너무 긴밀하게 엮이거나 문제 속에 함몰되지 않고 문제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창의적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올라갈 것이다.

위장취업자가 직원보다 회사의 구조를 더 잘 볼 수 있는 것에서 한가지 착안이 가능할 것 같다.  위장취업자는 회사에서 일을 하지만 일반 직원과는 다른 view를 갖고 있다.  즉, 회사 속에 함몰되지 않고 회사에서 일을 하는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거리 감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문제와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문제를 대하는 나 자신과 거리를 두는 것을 의미한다.  즉, 문제를 다루는 나 자신의 사고회로를 스스로 점검/튜닝/개선/혁신시켜 나가는 것이다.  거리(distance) 창출력은 자신 밖에 또 하나의 자신을 만들 수 있는 자기 관찰력이다.

'내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판단하는가' 자체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습관적인 판단을 중지시키고 상상력과 창의력의 엔진을 가동시킬 수 있다. 어린 시절의 무한에 가깝던 창의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체감할 수 밖에 없다. 어린아이의 마음과도 같은 창의력을 유지하려면, 나를 관찰하고 나의 마음을 관찰하고 나의 사고 흐름을 관찰하는 노력을 유지해야 한다.  Seeing our seeing을 할 줄 알아야 창의적 사고가 가능하다.

Seeing our seeing을 한다는 건, 또 하나의 나를 창조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나를 창조한다는 건, 나를 분리하는 것이다. 
- 행동하는 나와 관찰하는 나.
- 연기하는 나와 모니터하는 나.






PS. 관련 포스트
Creativity를 위해서는 문제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져라
기획의 기본, 자기 반성 능력
[Mobile Mind] Seeing our Se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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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을 보는 관점

    Tracked from melotopia | 2010/03/01 17:00 | DEL

    * 이 글은 대단히 당연한 소리만을 늘어놓을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뻔한 소리를 나만 할 수 있는 것처럼 바꿔서 떠들어 댈 수도 있으니 주의. 관점, 그리고 메타 관점. 언젠가 친구인 C양에게 ..

  • jay | 2010/03/01 05: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위장취업이건.. 비정규직이건.. 아마도 비정규직에 더 가깝겠지만.. 그건 그만큼 정직원, 일반인들과 절대 섞이지 못하기 때문일거예요. 보이지 않는 벽.. 격리된 동선과 정보통제.. 단기계약의 부담에서 오는 냉소.. 자발적/비자발적인 거리두기.. 사실 엄청 스트레스인거고, 퍽퍽하고 비인간적인 거예요.

    그리고 위장취업을 했다면, 자금흐름이나 주요기획의 스탭까지 올라가진 못할거예요. 따라서, 위장취업이건 비정규직이건.. 겉으로 드러나는 피상적인 현상만 관찰할뿐.. 좋은 정보나 핵심적인 인사이트는 접하기 힘들듯..

    • BlogIcon buckshot | 2010/03/01 13:15 | PERMALINK | EDIT/DEL

      제가 올린 포스트와는 다른 관점에서 말씀을 해주셨네요. 귀한 댓글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외부와 내부 간의 벽,괴리..

  • BlogIcon ego2sm | 2010/03/01 13: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바라보는 나'와 '보는 나'
    정말로 그룹에 속해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아웃사이더가 되어 보면 숨겨진 먼지까지 보게 되더라구요.
    (전 고3 교실에서 제일 먼저 알게 되었어요~)
    휴일이라 오랜만에 벅샷님 포스트들 정독하고 가요.
    유니타스 브랜드처럼 거듭나시길!!

    • BlogIcon buckshot | 2010/03/01 13:56 | PERMALINK | EDIT/DEL

      다양한 영역에서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역할을 교대로 해보면서 관찰의 힘을 길러가는 것 같습니다. 상자 안에, 상자 밖에.. 모두 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

      PS. '쇼핑에 관한 모든 것' 포스트가 기대되네요. ^^

    • BlogIcon ego2sm | 2010/03/02 15:55 | PERMALINK | EDIT/DEL

      이제보니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네요^^
      남녀차이를 통해 바라본 쇼핑의 심리학 포스트
      기대해 주세요^_^

    • BlogIcon buckshot | 2010/03/04 20:42 | PERMALINK | EDIT/DEL

      와.. 에고이즘님의 우아한 통찰을 만끽할 수 있는 포스트이겠네요. 정말 기대가 됩니다. ^^

  • BlogIcon snowall | 2010/03/01 17: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예전에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 트랙백 걸어둡니다.
    오랜만에 오네요 ㅋㅋ

    • BlogIcon buckshot | 2010/03/01 18:39 | PERMALINK | EDIT/DEL

      snowall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귀한 트랙백 넘 감사해요~ snowall님의 4년 전 글인데, 제겐 4년 후의 글과 같은 무게감을 주는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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