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알고리즘 :: 2010/02/05 00:05

지상 최대의 쇼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김영사

리처드 도킨스의 최신작 '지상 최대의 쇼'를 읽다가 재미있는 문구를 발견했다.
실험이란 내가 직접 뛰어들어서 뭔가를 하는 것이다. 내가 조작하는 것이다. 내가 뭔가를 체계적인 방식으로 바꾸고, 그 결과를 변화가 없는 '대조군'과 비교하거나 다른 변화의 결과와 비교하는 것이다.

실험은 단순한 현상 관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험은 현상 속으로 깊숙히 침투하여 현상에 어떤 교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실험은 개입이요, 조작이다. 이는 질량을 측정하려고 하면 위치를 측정할 수 없고, 위치를 측정하고자 하면 질량을 측정할 수 없다는 양자역학을 연상케 한다. 개입은 대상에 어떤 식으로든 임팩트를 가하게 된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다가 문득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노트'] 삶과 소비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올 한 해 야구열풍이 의미하는 것 아티클을 트윗에 올렸던 일이 기억난다. 그 트윗에 eustino님께서 주신 댓글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트렌드는 단순한 현상 관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트렌드는 현상 속으로 깊숙히 침투하여 현상 속에 분포되어 있는 롱테일적인 파편들을 수집하고 그 파편들을 실험적으로 연결하여 일종의 가상 트렌드를 창출한다. 이는 트렌드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고 그 영향이 심대할 경우, 실제 트렌드로 가시화된다. 트렌드 전문가는 트렌드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트렌드의 프레임을 재단하고 트렌드의 흐름을 리드한다.  가장 강력한 트렌드 예측은 트렌드를 직접 만들어서 트렌드 소비자들이 그걸 믿게 만들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세뇌하는 것이다.  트렌드 구루는 정확하게 트렌드를 예측하는 자라기 보다는 트렌드 소비자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유린할 수 있는 자인 것이다. ^^

트렌드를 의식하고 따라가는 행위 자체가 트렌드로부터 소외되었다는 징후이다. 트렌드에 동화된 사람들은 그것을 공기와 같이 여긴다. 동화되지 못한 채 수용/추종을 위해 에너지를 지속 소비하는 것. 그게 소외의 본질이다. 트렌드란 단어가 범람한다는 것은, 트렌드로부터 소외된 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트렌드 소외자(=트렌드 소비자)들을 마음껏 유린하는 트렌드 구루들이 범람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렌드 소비자들의 마음을 유린하는 트렌드 구루들을 덥석 믿기보단, 트렌드로부터 소외된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내 주위에 범람하는 허상적 트렌드를 철저히 파괴하는 소외 탈출 시도를 슬슬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  트렌드 구루가 운영하는 트렌드 랩의 실험용 쥐로 기능한다는 것, 좀 불쾌한 일 아닌감?  헤헤헤.. 농담 반 진담 반이당~ ^^  

롱테일은 애당초 개별 소비자들의 것이다. 파편적 롱테일을 이리 엮고 저리 엮어서 컨텍스트를 추출하고 그로부터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트렌드 전문가들의 작업에 무심코 동조하지 말고 그 안에 내재하는 오버스런 비약의 로직을 냉정하게 읽어낼 수 있는 시각을 갖는 것이 롱테일들의 잼있는 놀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트렌드 세팅을 위한 비약의 거품을 톡 터뜨려야 비약을 가능케 한 '트렌드 세팅 알고리즘'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트렌드의 외형적 포장은 어차피 허상이다. 그것에 현혹되지 말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기반 로직을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트렌드는 파편(테일)에서 출발한다. 모두가 트렌드 창조자이다. 누구나 트렌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트렌드에 관한 한 누구의 말도 믿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소한 소비자가 되어 거대한 비즈니스/마케팅 실험실의 쥐처럼 살아갈 지라도 실험가의 실험 로직을 얼마든지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즈니스/마케팅 실험가의 뇌 속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똑똑한 실험실 쥐가 되어 가련다. ^^





PS. 관련 포스트
타존, 알고리즘
상충, 알고리즘
Detail = Remix Wetail (디테일의 힘: 롱테일 to 트렌드)
예측, 알고리즘
소외,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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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전설의에로팬더 | 2010/02/05 00:3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소비자를 관찰하거나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소비자의 입에서 나오는 정돈된 단어보다, 무의식중에 발생하는 행위 하나가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연결하면 트렌드를 만들 수 있는 전문가가 될까요? 재미난 생각이 들어 댓글 남겨 봅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02/05 09:23 | PERMALINK | EDIT/DEL

      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정돈되는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것들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다듬어서 내보내는 표현과 함께 무의식적으로 표출되는 소비자 반응 속에 열쇠가 숨어 있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파편과도 같은 수많은 트렌드 후보군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마구 흘러다니고 있을텐데 그걸 잘 놓치지 않고 잡아내고 발전시키는 노력은 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트렌드 전문가의 영역만은 아닌 것 같구요.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

  • BlogIcon 夢の島 | 2010/02/05 01: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양자역학의 측정의 가설에서는 기존의 여러 위상이 중첩되어 있던 것이 측정을 통하여 붕괴되고 단 하나의 가능성만이 남는다고 하지요. 트렌드를 예측하고자 하는 행위는 양자역학에서의 측정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트렌드 구루에 의해 만들어진 트렌드는 수많은 가능성을 트렌드 구루의 손에 의해 배제당한 트렌드이기도 하죠. 타인이 규정한 가능성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추구하는 것, 곧 자기 자신의 트렌드를 만드는 것은 사회의 부품이 아닌 자율적인 인간이기 위하여 가야 할 길이기도 하군요.

    • BlogIcon buckshot | 2010/02/05 09:24 | PERMALINK | EDIT/DEL

      하나의 컨셉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리게 되는 수많은 가능성들.. 그걸 잊지 않는 것이 참 중요할 것 같습니다. 측정한다는 것은 분명 뭔가를 확실히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오늘 다시 리마인드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

  • BlogIcon 토댁 | 2010/02/05 21:0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예전에 생물학실험실습준비 하느라 하얗고 자그마한 실험용 쥐를 길렀었습니다.
    애미가 실험실에서 낳는 바람에 제가 그 녀석의 보모가 되었었죠.ㅎ
    정말 똑똑 한 녀석이었습니다.
    미로 속에 넣고 먹이를 찾는 반복학습 실험 때문에 나랑 몇일 잘 놀았었고
    실험도 잘 했는데 수업 전날 그만 죽어버렸어요.
    아직도 그날의 가슴 먹먹함이 남아있습니다.
    실험실 뒤산에 묻어주었었는데.....

    갑자기 트렌드에 대한 님의 글을 읽다 그 녀석이 생각하는 생뚱 맞은 토댁입니다..^^;;
    아직 수업 중이랍니다.^^

    즐거운 주말보내셈~~

    • BlogIcon buckshot | 2010/02/06 10:43 | PERMALINK | EDIT/DEL

      교감인 것 같습니다. 실험가와 실험대상은 상하관계가 아니라 서로 수평적인 관계로 교감을 나누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은 실험가만의 몫은 아닌 것 같구요. 실험대상이 실험가를 실험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을 때, 빅뱅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생뚱 댓글 드려 죄송해여~^^

  • bell | 2010/02/05 21:48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다그치는 듯한 트렌드 구르들... 좀 무섭더라구요. 본의아니게 오히려 트렌드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만든다는...^^; 글 중에 트렌드를 가능케 하는 기반 로직을 냉정하게 평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음.. 그 밑바탕에 트렌드를 따르든 그렇지 않든지 간에 그 자체를 인정하는 여유도 살포시 깔아두면 더 좋지 않을까요? 아! 정말이지 즐기고 싶은 그 재미있는 놀이를 위해서 말이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좋은 글들, 항상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02/06 10:44 | PERMALINK | EDIT/DEL

      말씀하신 것처럼, 트렌드의 기반로직을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그 트렌드를 여유있게 관조할 수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게 놀이이고 삶의 재미이겠네요.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

  • BlogIcon ego2sm | 2010/02/05 23: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실험이란 내가 직접 뛰어들어서 뭔가를 하는 것이다. 내가 조작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모두 '개인 브랜딩'해야하는 시대가 열린 것 같습니다.
    항상 벅샷님 포스트를 읽으며 저도 리포스팅하게 되는 것 같아요. 덧글로^^
    무엇보다 김난도 교수님 칼럼 중에 놓친 걸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비밀이지만, 여기선 대놓고 제가 야구관련 책을 기획하고 있어서 더욱 반가웠어요.^^)

    • BlogIcon buckshot | 2010/02/06 10:46 | PERMALINK | EDIT/DEL

      1인미디어는 블로그/트위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조작당하지 않고 조작하고, 범용화되지 않고 범용화하는 개인 주체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야구관련 책이요? 와.. 궁금하네요. ^^)

  • BlogIcon 애드민 | 2010/02/07 00: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실험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 대해 배우게 되었네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열어보기 전까지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실험도 사실은 능동적인 수행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된 듯하네요.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02/07 10:07 | PERMALINK | EDIT/DEL

      인생 전체가 거대한 실험이라는 측면에서 인생은 '양자역학 게임'이란 생각이 듭니다. 관찰과 측정을 지속하면서 끊임없이 대상에 영향을 주고 대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대상과의 연을 지속하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 네트워크 속을 인간은 수시로 실험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 Étienne | 2010/05/12 23:27 | PERMALINK | EDIT/DEL | REPLY

    IDEA 결핍증의 고3 수험생의 두뇌에 항상 좋은 자극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갑자기 교과서 내용과 포스팅이 겹쳐져서 댓글 남겨봐요~ '트렌드'를 연구하는 것 그 자체가 트렌드에서 소외되었다는 반증이라는 말에 "번쩍"했습니다. 그러나 "트렌드" 속에 연구자 자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구자도 거기에 녹아있는 가치관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즉 트렌드를 연구하는 연구자도 결국엔 '실험실의 생쥐'라는 생각이.....

    • BlogIcon buckshot | 2010/05/13 09:37 | PERMALINK | EDIT/DEL

      멋진 지적 감사합니다. 주체는 대상을 컨트롤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주체도 대상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인가 봅니다. 귀한 댓글로 인해 오전이 풍요롭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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