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분리한다는 것 :: 2013/05/24 00:04

나는 블로깅을 하면서 buckshot이란 닉네임을 쓰고 있다. 나의 본명과 다른 별도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벅샷으로 블로깅을 하는 기분은 나름 유쾌하다. 벅샷은 나와 사뭇 다른 포지셔닝을 취하면서 나와 살짝 분리된 또 다른 나로서 살아가게 되는 셈이다.  

내 자신이 분리된 느낌은 사뭇 묘하다.

나와 벅샷은 같은 듯 다르며, 다른 듯 같은 사이이다. 나는 쩐신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찌질한 소시민의 삶을 몸소 살아간다. 부족함이 차고 모자람이 넘치는 존재이다. 반면 벅샷은 현실 속 제약으로 허덕이는 나와는 달리 나름 고고한(?) 사유의 세계 속에서 이상적인 듯한 의견을 블로그에 올리며 현실 속의 나를 끊임없이 계몽한다. 현실 속 나는 벅샷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워 하기도 하고 때론 재수없는 놈이라 여기기도 한다. 벅샷은 현실 속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때론 이해해 주기도 한다. 나와 벅샷은 끊임 없이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자극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의지하기도 한다. 나는 멘토가 필요 없다. 벅샷이 나의 멘토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벅샷은 나를 멘티 삼아 여러 가지 인생의 팁을 나에게 알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멘티인 나로부터 뭔가를 배우기도 한다. 고고한 생각만 일삼는 재수 없는 벅샷에게 결핍되기 쉬운 현실 감각을 내가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나는 벅샷에게 배우고 벅샷은 나로부터 배운다. 나와 벅샷은 인생의 동반자이다.

나와 벅샷 사이엔 일종의 막이 형성되어 있다. 처음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막이 어색하고 촌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으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와 벅샷 사이에 존재하는 막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갔다. 막은 나와 벅샷 사이의 긴장이기도 했고 나와 벅샷 사이의 교감을 대변하기도 했으며 나와 벅샷을 분리시키는 기반이자 나와 벅샷을 하나이게 하는 가교이기도 했다. 나와 벅샷 사이에 존재하는 막을 수시로 투과하기도 하고 막에 가로막혀 옴짝달싹 못하기도 하는데, 변화무쌍한 막의 형상은 나를 항상 설레게 하고 나는 그 막이 일종의 우주가 되어 계속 팽창하고 지속적으로 수축함을 느낀다. 나는 벅샷 속으로 침투하고 벅샷은 내 속으로 틈입한다.

이 모든 현상은 분리에서 시작되었다. 나로부터 벅샷이 탄생하는 순간 나는 두 개의 자아로 분리되었고 분리된 두 개의 자아는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각자의 길이 교차되는 지점이 형성되었고 교차가 잦아지면서 두 개의 자아는 뫼비우스의 띠를 형성했다. 나를 보기 위해선 분리는 필연적이다. 분리하지 않으면 나는 그저 나일 뿐이고 응시하는 주체도 응시 당하는 객체도 존재하기 어렵다. 나와 벅샷은 서로를 응시한다. 나에게 투영된 벅샷, 벅샷에게 투영된 나, 투영에 투영을 거듭하는 나와 벅샷의 스토리는 지금 이 순간도 자가증식을 거듭한다. 이러한 '나-벅샷'의 관계 형성을 가능케 한 블로깅이 내겐 그저 놀랍기만 하다. ^^



PS. 관련 포스트
분류, 막..
막, 도구, 의도, 양자
경계
세포와 세포 사이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519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1:40 | DEL

    This post %title% is priceless. When can I find out more?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1:46 | DEL

    This post %title% presents clear idea in favor of the new visitors of blogging, that really how to do blogging.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3/05/24 00: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alter ego라고 하죠. 슈퍼맨과 클락 켄트, 에미넴의 슬림 셰이디 같은... 이게 현대 대중문화에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세계관인데 그 시초는 기독교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어찌 보면 문화의 중심이 신에서 인간, 또 인간에서 개인으로 옮겨 가면서 누구나 아버지, 아들, 성령의 삼위일체와 같은 자기만의 개성 있는 자아 체계를 구성할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buckshot님이 (이름 모를) '그분'에게는 일개 블로거를 넘어 새로운 차원으로 연결되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죠 ^^

    • BlogIcon buckshot | 2013/05/24 09:21 | PERMALINK | EDIT/DEL

      누구나 나만의 개성을 담은 자아 체계를 구성한다.. 넘 매력적인 상이 그려지네요. 주말을 앞두고 아주 큰 선물을 받은 느낌입니다. 보내주시는 댓글이 얼마나 큰 영감과 자극을 주시는지 모릅니다. 부족한 포스팅을 언제나 통찰력 있는 댓글로 덮어주고 계십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 Sonar | 2013/05/25 23: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감명깊네요 Lil wayne - Mirror 한번 들어보세요 이번 포스트내용을 위한 곡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5/26 08:44 | PERMALINK | EDIT/DEL

      노래 선물 넘 감사합니다. 지금 듣고 있는데 참 좋으네요. ^^

  • Wendy | 2013/05/30 09: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분리된 두 개의 자아로 살아가고 계시는 그 흥미진진하고 멋진 삶과 스토리를 블로깅으로 공유해주시니 더할나위없이 행복합니다! 서로를 응시하는 두 개의 자아. 정말 부럽습니다. ^^ 두 개의 자아 간의 역동과 상호작용을 언제나 이 곳에서 오랜동안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5/30 21:11 | PERMALINK | EDIT/DEL

      부끄럽습니다. 그저 소소한 분리이고 일상의 응시입니다. 작아도 소중한 것이긴 하구요. 항상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