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수 :: 2012/11/14 00:04

'접수'라는 개념은 직장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에서 주인의식을 강렬하게 견지하긴 어렵다. 하지만 누가 시킨 일이라도 그 일에 나의 혼을 불어넣으면 그 일은 어느새 내가 접수한, 내 주인의식 기반으로 작동하는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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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킨 일'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일'로 변주한다는 것은 자신을 경영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자신을 특정 기업체의 부속품으로 기능하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사고/행동의 주체로 정의하고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담아낸 뭔가를 산출한다는 것.

거대한 기업경영의 장 속에서 자신을 경영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기업은 결코 한 개인의 성장을 걱정하고 케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기업 특유의 생존 본능에 입각해서 기업의 영속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기업 영속성을 제고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밖에 없다. 기업의 영속성을 지키기 위해 개인은 자신의 영속성을 소비하는 것이고 그런 과정 속에서 개인경영의 존재감은 더욱 흐릿해질 수 밖에 없다.

나 자신을 단지 소모품으로만 정의하지 않고 나 자신 만을 위한 개인경영의 행보를 전개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무의식/의식적으로 소모품으로 정의되는 삶을 살아가는 한 무기력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고 뭔가를 이뤄간다기 보다는 뭔가를 향해 지쳐간다는 느낌 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한, 자본의 소모품 입지를 완전히 회피하긴 어렵다. 쩐신이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한 쩐교의 교리 체계를 온전히 거부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규정/지배하는 알고리즘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원시시대는 약육강식의 알고리즘이, 봉건시대는 주종의 알고리즘이, 현대는 자본의 알고리즘이 세상을 재단하고 통치한다. 어느 시대를 살아가더라도 개인의 입지는 별도로 마련되어지지 않고 항상 도전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시대를 직조하는 알고리즘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그 시대의 알고리즘에 철저히 유린당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있는 반면, 알고리즘을 직시하고 그것과 견줄 수 있는 개인경영의 체계를 구축하고 그것을 운용하면서 살아가는 삶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접수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이다. 남이 시킨 과제라도, 남이 주입한 개념이라도 그것을 나의 것으로 전환할 수 있는 변주 역량을 견지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실 딱히 주인이 존재하지 않는 중립성을 갖고 있다.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니 남의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고 남의 것인지 아닌지 어리버리 대하니까 나의 것이 되지 않는 것이다. 접수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것으로 접수할 수 있어야 한다. 외부로부터 나를 향해 돌진하는 수많은 것들 중에 나에게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나의 것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규정하고 재단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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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라는 개념은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어리버리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주인의식을 강렬하게 유지하긴 어렵다. 하지만 제아무리 어리버리한 일상이라도 그 일상에 나의 혼을 불어넣으면 그 일상은 어느새 내가 접수한, 내 주인의식 기반으로 작동하는 역동적이고 흐뭇감 가득한 일상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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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emica | 2012/11/16 04: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따금 oo현장접수 란 말을 사용하는데 .. 제대로 정의해 주신 것 같네요 .. ^^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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