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흐릿하게 하는 스펙, 나를 선명하게 하는 실패 :: 2012/01/13 00:03

자본주의 사회는 부/지위와 같은 스펙을 통해 물질적 성공을 규격화/정량화하고 상호 간의 비교를 용이하게 한다.  은연중에 스펙 지상주의에 젖어 들기 쉬운 세상이다. 스펙 쌓기와 경력 관리에만 집중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스펙과 경력은 비교를 전제로 하기 마련이다. 남보다 좋은 스펙, 남보다 좋은 경력. 스펙과 경력에 집중하는 자는 비교우위에 집중하는 자이다. 비교우위에 몰입한다는 건, "나"를 생각하기 보다 나를 감쌀 무엇인가를 찾는데 더 분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무엇으로 자꾸 감싸고 포장하다 보면 얼핏 보기엔 풍성한 나인 것 같지만 진정한 "나", Real Self는 흐릿해질 수 밖에 없다.

사람은 보통 자신이 겪었던 실패, 자신이 갖고 있는 한계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스펙/경력에 집중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실패/한계를 드러내놓고 얘기하기가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실패"만큼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극명하게 알려주는 것이 있을까?
나의 실패, 나의 한계는 "나"를 분명히 드러낸다.
내가 누군지 아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다면 실패와 한계 또한 그러할 것이다.

과거에 겪었던 실패의 쓰라린 경험들, 내가 갖고 있는 명백한 한계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명시적으로 가리키는 소중한 바로미터이다. 나를 포장하는 스펙/경력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내가 누군지를 알려주는 실패/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그걸 피한다는 건 나 자신을 외면하는 것이다. 문명이 발전시킨 인간 도구들에 의해 인간이 소외 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내가 나를 소외시킨다는 것만큼 애처로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

평생을 배워도 배우기 어려운 게 바로 "나"이다. "나"를 잊고 사는 삶, "나"를 외면하면서 사는 삶은 공허한 것이다. 나를 흐릿하게 하는 스펙/경력으로 나를 가득 채울 것인가? 나를 선명하게 하는 실패/한계를 소중한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나를 더욱 알아나가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나를 선명하게 하는 것들이 나의 것이지, 나를 흐릿하게 하는 것들을 나의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나를 선명하게 하는 것들을 통해 나를 배우는 것. 學我(학아) 알고리즘. ^^


PS. 관련 포스트
비난과 자성 사이
자존, 알고리즘
타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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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Gony | 2012/01/13 10:21 | PERMALINK | EDIT/DEL | REPLY

    폭풍 동감입니다. 돌아보면서 제가 나름대로 성장할 때는 원하는 바에 도전하고 실패하고 '나'의 한계를 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펙에 뭍혀 나 자신이 흐릿해진다는 말 정말 중요합니다. 특히나 사회 초년생들이 자신이 속해있는 그룹이 자신의 능력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더군요. 저도 그랬구요.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죠..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2/01/14 10:49 | PERMALINK | EDIT/DEL

      결국 스펙을 벗어던진 후에 얼마나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는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

  • BlogIcon karitas | 2012/01/13 12:4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진정한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실패와 좌절은 뼈아픈 고통이지만 그만큼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는군요.. 오늘 새삼스럽게 나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PC에 앉아서 이렇게 타이핑하고 있는 이 순간도, 지난날의 수많은 선택과 고집이 있어서겠지요. 지금이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의 발자취로 인해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는데서 정말 공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1/14 10:50 | PERMALINK | EDIT/DEL

      실패란 단어가 만들어지게 된 근본 원인을 생각해 보면 실패는 재정의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 BlogIcon 토댁 | 2012/01/13 22: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내 앞에 놓은 돌맹이를 디딤돌이라 여기며
    한 걸음 더 성장하는 토댁이 되겠지요.

    농장에게 농장의 차별성과 특징을 묻고 합니다.
    그럴때마다 헷살리고 선명하지 않는
    나의 농장과 나!
    를 찾기를 아직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냥 나일 뿐인데 자꾸 설명하라 하니....;;;

    • BlogIcon buckshot | 2012/01/14 10:53 | PERMALINK | EDIT/DEL

      제가 '나'를 잊고 사는 만큼 저는 범용화되는 것 같습니다. 차별화는 자신을 얼마나 망각하지 않을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봅니다. ^^

  • BlogIcon 태현 | 2012/01/14 14:0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외면하고 감추고 싶은 '실패'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요즘 제 가장 큰 관심사가 '진정한 나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인데, 스펙과 경력에 대해서만 몰두 했지 실패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경력과 스펙이 아닌 나를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해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2/01/14 14:11 | PERMALINK | EDIT/DEL

      깊게 통찰된 실패는 그 어떤 화려한 성공보다 훨씬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

  • Wendy | 2012/01/15 01:2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실패와 한계가 보여주는 'real self', 그 '진정한 나'를 보기 보다는, 실패와 한계를 통하여 드러나게 될 나를 두려워 하기만 해왔던 것 같습니다. 진정한 나에 대한 진정성 어린 나 스스로의 존중도 사랑도 예의도 없었던 듯 싶습니다. 마음 한 켠에선, 스펙과 경력이 채워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그 진정성이 고갈된 그 무언가를 알기에 안타까워 하고 있지만, 다른 한 켠에서 스펙과 경력으로 어떻게든 채워넣고 포장해보려는 어쩌면 낭비였을지도 모를 시간들을 보내온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실패는 앞으로의 제 삶에서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약재료'가 되어줄텐데요....이것을 분명하게 깨닫고 갑니다. 역시나 200% 덕분입니다. ^^ 스펙보다는 실패가 제게 안겨준 스토리로 살아가보렵니다. 감사드려요!! :)

    • BlogIcon buckshot | 2012/01/15 10:53 | PERMALINK | EDIT/DEL

      예, 자신만의 스토리..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

  • 휘리릭킴 | 2012/01/19 13: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실패를 외면하고 있지않지만, 스펙을 보는 사회는 언제나 지속 될 것 같네요.
    내면을 보는 사회로 점차 변해가겠지만, 아직도 스펙을 쫓아야 하는 현실과 마주 하게되고,
    어디를 기준으로 두어야 하는지.. 아이러니한 상황 같아요.~ㅋ
    그래도 전 언제나 나를 선명하게 하는 실패와 마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1/20 20:24 | PERMALINK | EDIT/DEL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항상 유지하고 싶습니다. ^^

  • BlogIcon 서연아빠 | 2012/05/09 11: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언젠가 '진지함'에 대한 생각을 해본적이 있습니다.
    나의 성공보다는 나의 실패와 한계가 나를 가장 잘 드러내는 바로미터임을 생각한다면...
    '한계'를 인식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는 '진지함'은 나의 자아를 이해하는 실천적 방법으로서 의미가 있어보이네요.
    '진지함'으로 나의 '한계'에 도전하고, 그래서 '한계'를 한단계 한단계 극복해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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